철의 시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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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상진 시인의 시가 지닌 진정성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조금도 퇴색하지 않고 빛날 것이다.?아니 그 투박함이 더 큰 새로움으로 다가온다. 존재의 깊고 푸른 열정에 닿아 있기 때문이다. 시를 어렵게 쓰고 싶으면 열정을 빼고 쓰면 된다. 어려운 시는 열정과 거리가 있다. 열정이라는 불후의 낭만을 질주하고 있는 시를 읽어서?기분 좋은 밤이다. 그의 시가 지향하는 궁극에 불후의 낭만이 깃든 문장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라고 시집을 평하고 있다.
경남 창원에서 활동 중인 남상진 시인이 두 번째 시집 『철의 시대 이야기』를 2019년 경남문화예술진흥원에서 발간비를 지원받아 창연출판사에서 내 놓았다. 1부 「빙하, 혹은 바다 같은」 외 13편, 2부 「철의 시대 이야기」 외 12편, 3부 「발자국 지층」 외 13편, 4부 「삽목」 외 11편으로 총 53편의 시가 실려 있다.
남상진 시인이 쓴 『철의 시대 이야기』는 인간이 편리함을 위해 산업과 자본의 발달 속에서 희생도 동반되는 아이러니함을 보여준다. 그것은 누군가의 앞선 희생의 열매가 현대인에게는 안락함으로 존재하게 된 것이다. 부모님들의 희생으로 가족들이 안전하고 안락하게 살아온 것과 같은 맥락이다. 시집 속에 들어 있는 시편들은 용광로의 쇳물처럼 뜨겁고 위험하지만 또한 완성된 제품이어서 안전하면서도 따뜻함으로 읽혀진다.
작가정보
저자(글) 남상진
남상진 시인은 경북 상주에서 출생했으며, 경남대학교를 졸업했다. 2014년 《애지》로 등단, 2008년 시흥문학상, 2009년 민들레문학상을 수상했다. 2017년 시집 『현관문은 블랙홀이다』가 세종나눔도서로 선정되었다. 현재 영남시 동인, 시산맥 회원, 민들레문학회, 경남문인협회. 마산문인협회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목차
- 1부
빙하, 혹은 바다 같은
낙타
어머니의 기도법
그라목손
징
승화昇華
나무의 시간
멍
어머니의 문장
나나니벌과 어머니
벌 춤
아버지의 구두
감꽃 목걸이
뻘밭에서
2부
장마
철의 시대 이야기
진명전기 정숙씨
파문
낡은 트럭을 타고 도착한 봄
나무를 위하여
향기는 보이지 않는다
안개
하늘수박
요란한 침묵
새벽 새
닻
수평은 죽었다
3부
사방치기
그릇
발자국
발
평발
빈티지 스타일
둥근 방
명중의 조건
환승
미더덕
환청
공중 거처
비
발자국 지층
4부
지적측량
삽목揷木
새벽의 발성
잠을 벗고
그리다 만
고해告解
빈칸에서 물구나무서기
진심
황진이
석교石橋
돈키호테
슬픔을 이기는 방식
■시집 해설
남상진 시집 『철의 시대 이야기』에 부쳐 / 권기만 시인 101
■시인의 말 / 남상진 109
책 속으로
남상진 시집 『철의 시대 이야기』에 부쳐
권기만 시인
시는 문장의 꽃이다.
응축을 통해 피어나고 진술을 통해 향기를 발산한다.
응축과 진술은 남상진 시인의 발화법이다. 시를 읽어 가다 보면 곳곳에서 발을 멈추고 코를 벌름거리게 된다.
마음이 바쁜 시대에 사는 우리들은 시간에 맞춰 버스에 타야 하고 늦을라치면 샌들을 들고 뛰어야 한다. 그러한 “분주한 발자국이 모여 한 생이 완성되는 법”(진명전기 정숙씨)이다. “까막눈인 엄마는/ 가슴으로 글씨를 쓴다/ ....../ 동제사 지내는 정월 보름 즈음이면/ 깨끗한 문종이를 몇 날 며칠 품고 있다가/ 가위로 오려 나뭇가지에 매다는 것이다”(어머니의 기도법), “살아가는 일은/ 허공에 집 한 채 지어 버리고 가는 것인가”(나나니벌과 어머니), 곳곳에 나타나는 가슴 울리는 진술엔 오래 묵어 깊이 삭은 삶의 향기가 난다. 그 향기는 가슴을 울리고 멀리 퍼져 간다. 이제 그 향기를 따라가 보자
갱신을 통해 되살아나는 삶의 의미들
삶에 있어 가장 무거운 건 생이다. 너무 무거워서 들고 다니기가?버겁다. 그래서 스스로 버리기도 하지만 본의 아니게 훼손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돌이켜 보면 생이란 소중하고 늘 어떤 시기를 힘겹게 건너야 그 건넘으로 갱신된다. 그 갱신을 통해 새롭게 삶의 의미를 부여받고 비로소 우리네 삶의 곡진한 일부가 된다. 그래서 어머니는 평생 바다로 살았고 가장 낮은 곳에서 말없이 존재 했지만 모든 것의 종착지가 된다. 그렇게 내 안에서?다시 사는 삶으로 갱신된다. 온전한 그리움이 있고 절실한 불러봄이 있게 된다. 그러한 갱신을?통해 보잘 것 없는 우리의삶이 구원된다. 남상진의 시에는 삶은 힘들지만 온몸으로 건너려는 투지가 있다. 뿌리까지 껴안는 극강의 인내가 있다. ‘타오를 겨를도 없이 녹아내리는 살점/ 안전화 속으로 흘러든 그놈을 빼내려고/ 미친 듯 다리를 흔들었지만/ 끈은 풀리지 않고/ 살 타는 냄새가 바닥에 낭자했다/ 안전화 끈을 칼로 자르고 나서 보니/ 꺼낼 발이 없었다/(철의 시대 이야기),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살아남는 것이 갱신이고 구원이라고 말하고 있다.
“제 색깔을 낸다는 것은/ 온 생을 던져/ 살아남는 일이다”(그릇), 그에게 있어 인생은 불가피하게 떠나보낸 부재의 아픔조차 온몸으로 살아야 하는 것으로 드러난다. 그러나 그 부재의 아픔을 견디고 아파하는 그 아픔으로 삶은 참다운 의미에 닿는다고 믿는다. “당신이 빠져나간 강둑을/ 쫓아가다 그만/ 주저앉고 말았습니다”(그라목손), 제초제를 마시고 떠난 삶을 부여안고 울고 있는 가슴은 “씻어도 씻어도 지워지지 않는 제초제 냄새”라고 말하지만 거기엔 극강의 인내와 용서하고 보듬어 안는 뜨거움이 있다.
“산다는 것은/ 내 무게로/ 땅 위에/ 선명한 발자국을 찍으며/ 걸어가는 일이다”(발자국), 건넘도 삽목도 각주처럼 맺히는 열매도 갱신이다. 삶은 갱신을 통해 다음으로 나아가고 희망의 땅에 닿는다. 비록 우리 사는 세상이 “낯선 이승의 시간”일 뿐이지만 “앞서간 이들의 지혜를 빌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내 숨이 나갔다 돌아오지 않는다 해도” 가야 하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나무를 태우면 먼 길 달려온 말발굽 소리가 나”고 “오랜 기다림을 지나온 것들은 자신을 비울 줄 아는”(승화) 것이다.
“아버지는 유난히 흉터가 많았다/ 삶은/ 제 상처/ 속으로 말아 넣어/ 단단해지는 것// 상처가 속으로 스며들어/ 꽃으로 필 때까지/ 굽은 등뼈를 얼마나 곧추 세웠을까”(나무의 시간) 저러한 격동의 삶이 내 안의 호흡으로 깊어진 것은 그러한 과정을 겪지 않고는 알 수 없는 체험이다.
마디진 함축성에 내포된 진술은 숙성된 삶의 붉음이다. “오래 숙성된 어둠만이/ 새벽의 심장을 끌어당겨/ 붉어지고 있었다”(잠을 벗고)라는 토로는 통과의례를 온몸으로 통과해야만 가능한 깨달음이다.
죽음을 넘어선 삶으로
남상진 시인이 죽음과 친숙해진 것은 아니 그 죽음을 넘어 삶으로 자리매김 한 것은 뇌부종으로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온 때문일 것이다. 기적처럼 삶으로 되돌아온 그 경험이 무덤을 요람으로 받아들인 깨달음으로 이어졌을 것이다.?죽음은 두려움이나 기피의 대상이 아니다.?온몸으로 죽음을 관통하지 않고는 발현 될 수 없는 발화다. 그런 까닭에 죽음은 “우주의/ 거대한 무덤 속으로 들어서는/ 오래된 나의 잠”(잠을 벗고)이 될 수 있으며, “무덤과 요람이 공존하는 땅을 건너고도/ 부끄러운 나”(새벽의 발성)일 수 있는 것이다.
돌을 던져라
선을 밟지 않고 건너는 것이 사는 길이다
어느 칸이든 쉽게 치나칠 수는 없고
순서대로 건너야 한다
때로는 흔들리는 중심
발끝으로 더듬어 중심을 잡고
내일로 넘어가야 하는
거미줄 즐비한 세상
끈적한 유혹을 지나
금지된 선을 건너뛰어
온전하지 않은 한쪽 발로
선을 밟지 않고 살아남기란
기어이 넘어서야 하는
금단의 끝에 미리 서 보는 것
녹록하지 않은 길 위에서
한 칸에 두 발을 딛고 쉬어 갈 수도 없는 일
끝까지 살아남아야 허락된
처음 그 자리
- 「사방치기」 전문
그런 혹독한 과정을 거쳐도 삶은 다시 처음의 그 자리다. 거기서 다시 시작될 뿐인 것이다. 그걸 모르면 참다운 희망의 땅에 닿을 수 없다고 일러주고 있다. 그 희망의 땅에 닿기 위해 “온 생을 분주히 뛰어야 하는 우리네 삶”(발)인 것이다. “기다리는 것이 사람의 일이라/ 기대하고 실망할 것은 아니지만/ 행로를 벗어난 바람처럼 나의 하루는/ 투명한 허무의 바다”(고해)라는 자조와 “목구멍으로 다 삼키지 못한 울음이/ 자꾸만 맨홀 뚜껑을 열고 거꾸로 역류했다”(장마)고?푸념도 하지만 “더 닿을 데 없는 사랑이 무언지,/ 인간 궁극의 마음이 어딘지 배웁니다”(진심)에 마음을 바치고 “당신 앞에 나뭇잎처럼 엎드립니다”하고 자세를 바로 잡는다. 그리하여 기어이 희망의 땅에 닿는다. “남김없이 나를 던지는 새벽,/ 이제/ 사위는 환해 질 겁니다”(향기는 보이지 않는다)고 희망의 깃발을 올린다. 희망의 깃발을 올려야“속에 든 것들을 비워내야/ 비로소 투명해지는 생”(둥근 방)에 닿을 수 있는 것이다.
“참/ 짧은 생/ 긴 울음이었다”(환청)고 고백하는 남상진 시인의 진정성이 절절하게 울어나는 시 한편 올려본다.
너는
눈물 한 방울로 태어났다
보잘것없는 난생의 몸으로
막막한 물속 세상에서 파도를 견디며 살아내기란
눈물을 제 살 속으로 밀어 넣는 일
짜디짠 바닷물을 들이마시고
삼키지도 뱉어내지도 못하고 연명하던 시절
깊은 수심의 물속을 견디는 일은
스스로 빈틈을 여며 단단해지는 것
태풍이 몰려와도
바위의 멱살을 부여잡고 버티던 하루가
물속에서 눈물 한 방울로 맺혔을까?
누군들 제 안에 눈물 자루 하나 키우며 살지 않을까
아름답고 붉은 석양은
늘
수면 위만 비추는 멀고 먼 그림 속 세상
밀려오는 세파에 온몸으로 맞서고
일렁이는 너울에 흔들리며 키워온
단단하고 둥근 집
껍질 한 꺼풀 벗겨
입안에 넣고 깨물면
툭!
숙성된 향기가
온몸으로 번지는 너는
깊이 발효된 맛으로
오래된 봉인을 푼다
- 「미더덕」 전문
에필로그
시란 내가 정말 사랑하는 존재에게 보내는 연서다. 그 대상이 나무일 수도 허공일 수도 있지만 존재에 대한 거침없는 사랑이 없다면 단 한 줄도 읽을 필요가 없는 죽은 문장일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유치환의 시를 사랑하고 이육사와 소월의 절규를 그리워하고 윤동주의 별 헤는 밤과 백석의 나타샤를 기다리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삶이란 모든 열정의 토로를 마지막 한 톨까지 다 받아주는 연모의 미지인 것이다. 우리의 시가 방언이 된 까닭은 길을 잃었기 때문이다. 이상도 마지막 한 톨까지 다 받아주는 연모를 돌진했을 뿐이다. 절절한 열정의 넘침이 아니고는 획득할 수 없는 포즈에 사로잡혀 분노하듯 질주했을 뿐이다. 그의 언어가 절절한 몸짓이 아니라면 왜 아직까지 살아남을 수 있겠는가, 이름을 얻기 위해 알량한 명성을 지키기 위해 글을 쓰는 순간 그 글은 죽는다. 그렇지 않고야 어찌 새로울 수 있으며 혼절하게 아름다울 수 있을 것인가, 문학이란 솟구침이다 솟구침을 쓰지 않고 구상과 배열을 쓰려는 순간 솟구침은 줄어들고 결국 물이 말라 탈진하게 된다. 남상진 시인은 결코 머리로 쓰지 않았다. 기호로 기교로 쓰지 않았다. 참을 수 없는 열정의 다른 이름이었을 뿐이다. 머리로 쓰려고 하기 때문에 이상을 넘어서는 시가 나오지 못하는 것이다 시인인 내가 읽어도 와닿지 않는 시를 독자들이 왜 읽겠는가, 열정이 메말라버린 묘사에 누가 눈길을 주겠는가, 갱신이 없다면 그건 다만 부도수표일 뿐이다. 온몸으로 쓴 남상진 시인의 시는 아프지만 따뜻하다. 보듬어 안으려는 시선과 마음씀이 여리고 보드랍다. 다정하고 속 깊은 이웃이다. 그래서 호흡이 거칠고 문장이 투박하지만 가슴을 울리는 진술로 깊은 영혼의 향기를 풍긴다. 코끝이 찡하다. 그의 시가 이토록 강한 표현의 정직한 폭풍 속에 있다는 건 참으로 뜻밖의 즐거움이다. 남상진 시인의 시가 지닌 진정성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조금도 퇴색하지 않고 빛날 것이다. 아니 그 투박함이 더 큰 새로움으로 다가온다. 존재의 깊고 푸른 열정에 닿아 있기 때문이다. 시를 어렵게 쓰고 싶으면 열정을 빼고 쓰면 된다. 어려운 시는 열정과 거리가 있다. 열정이라는 불후의 낭만을 질주하고 있는 시를 읽어서 기분 좋은 밤이다. 그의 시가 지향하는 궁극에 불후의 낭만이 깃든 문장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기본정보
ISBN | 9791186871614 | ||
---|---|---|---|
발행(출시)일자 | 2019년 10월 10일 | ||
쪽수 | 112쪽 | ||
크기 |
132 * 210
* 11
mm
/ 197 g
|
||
총권수 | 1권 | ||
시리즈명 |
창연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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