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니체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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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해야 하는 것들’로 채우고 싶지 않았던, 그래서 늘 “아니오!”를 외쳤던 스무 살 청년은 ‘가치의 비판자’ 니체에게 첫눈에 끌렸다. 그리고 그의 철학들을 소리 내어 읽기 시작하면서 알게 되었다. 비판은 무언가를 부정하는 데서 그치는 게 아니라는 걸. 니체의 비판은 “세계를 파괴하는 일인 동시에 세계를 출현시키는 일이었고, 자기 자신으로부터 떠나는 일인 동시에 스스로에 대한 새로운 긍정에 이르는 일”이었다. 그리하여 니체가 자신이 맞서 싸운 모든 인간적인 것들 속에서 자기 자신을 발견했고, 그 싸움의 과정을 통해 자기 자신과 결별했듯이, 청년도 ‘진정한 미지의 영역’인 자기 자신에게로 니체와 함께 탐사를 떠났고, 이 책은 그 탐사의 기록이다.
이 책 1부에서는 ‘평범함’, ‘냉소주의’, ‘나르시시즘’ 등의 키워드로 ‘나 자신’이라고 믿고 있던 것의 정체를 파헤치고 있으며, 2부에서는 ‘예술’, ‘재능’, ‘우정’, ‘취향’ 등, 자신을 둘러싼 온갖 것들에 스스로가 덧씌운 환상들을 돌아본다. 그리고 3부에서는 ‘교양’, ‘저항’, ‘노동’, ‘언어’, ‘성’, ‘정치’ 등에 대해 저자가 느끼는 ‘참을 수 없음’에 직면하여 그것들과 다른 방식으로 관계 맺을 수 있는 가능성을 사유해 보려 한다.
작가정보
저자(글) 정건화
1993년 12월에 서울에서 태어났다. 강화도에 있는 대안학교를 졸업했고, 지금은 혜화동의 ‘규문’에서 책 읽고, 글 쓰고, 밥해 먹고, 청소하고, 동료들과 수다 떨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밥 얘기가 나와서 말이지만 연구실에서는 카레와 계란말이 장인으로 불린다.
스물한 살, 군 입대를 앞두고 정처 없이 떠돌던 중 우연히 니체를 읽게 되었고 이해하기에 앞서 니체에게 반해버리고 말았다. 짧고도 강렬했던 만남을 금세 잊고(!) 몇 년을 지내다 스물다섯 살에 니체전집 읽기 세미나를 시작하면서 니체와 다시, 그리고 본격적으로 만났다. 그 이래로 지금까지 니체에게서 (정답을 도출하는 방법이 아니라) 내 힘으로 질문을 구성하고 문제를 제기하는 방법을 배우는 중이다.
허세 없는 중년남성이 되는 것(정말 드물고도 귀하다!), 노동하지 않는(정확히 말하자면 노동/여가의 구분이 없는) 삶을 사는 것, 꾸준히 글을 쓰는 것. 이것이 현재 내 꿈(?)이다. 공부가 이를 실현시켜 주는 한 공부를 계속할 생각이다.
작가의 말
“니체를 읽으면서 느낀 것을 구체적으로 언어화해 보자면, ‘삶이란, 진지한 얼굴로 이러저러한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하고는 금세 싫증을 느껴 권태에 빠져도 될 만큼 그렇게 만만하고 간단한 것이 아니로구나!’ 정도가 되겠다. 니체는 내게 말해 주는 것 같았다. 똥폼 잡지 말라고. 너의 진지함과 무거움은 삶의 무의미함이 아니라 너의 뒤틀린 오장육부를 보여 줄 뿐이라고. 삶은 그렇게 함부로 옹호되거나 폄하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우연한 기회로 니체를 읽고 글을 쓰게 되었을 때, 나는 니체의 철학을 학문적으로 해설하거나 니체의 사유를 빌려와 어설프게 현실을 진단하지 않으려 했다. 그렇게 할 수도 없었고, 하고 싶지도 않았다. 나는 나의 현재 속에서 니체를 해석하고 싶었다. 2018년을 살아가고 있는 지금 나의 기대, 좌절, 욕망, 기쁨, 분노, 편견, 오류와 더불어 니체와 만나고 싶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니체를 가장 즐겁게, 그리고 능동적인 방식으로 읽어 내는 길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 니체와의 만남은 나 자신과의 만남이기도 했다. 내게 글쓰기는 무언가를 새롭게 만들어 내는 일이기보다는 이미 갖고 있는 것들을 정리하는 일이었다. 내가 무겁게 짊어지고 있던 짐들을 내려놓는 일. 나는 글을 쓰며 온갖 것들에 대한 나의 막연한 환상들과 숙고되지 않은 전제들을 낯설게 보기를 시도했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 나는 처음으로 허세도 자기비하도 없이 나 자신과 마주할 수 있었고, 딱 그만큼 한때 나 자신이었던 것들을 떠나보낼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지금까지도 공부를 해왔고 지금도 공부를 하고 있지만, 이상하게도 이제야 비로소 나의 공부를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글을 쓰는 동안 나는 조금 더 가벼워지고 조금 더 건강해졌다.”
목차
- 머리말 나는 조금 더 가벼워졌고 조금 더 건강해졌다
프롤로그 모든 사랑은 실패한다
한 철학자를 좋아하게 된다는 것 | 온몸으로 읽기 | 이제 나는 니체를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1부 나 자신의 계보학 : 허무를 의지하다
1장. 한 번도 되어 본 적 없는 내가 되기 위하여
어떤 수치심의 기억 | 어떤 자의식의 기억 | 그리고, 어떤 시작
2장. ‘평범’의 냉소주의에 맞서
나는 별일 없이 산다 | 냉소적인 너무나 냉소적인 | 자신을 매장하는 자의 명랑함 | 고귀해지고 싶다
3장. ‘자기애’라는 이름의 사이비 이기주의
나는 전부 다 안다, 나 자신을 제외하고는 | 사이비 이기주의 | 나에 대해 쓴다는 것
4장. 글쓰기, 나를 떠나 나에 이르는 길
글을 쓰고 싶다 | 모든 글은 사적이다, 그러므로 어떤 글도 사적이지 않다 | 흔들리며 말 건네기 | 가벼움이라는 가면 뒤의 무거움 | 더 ‘잘’ 쓰고 싶다
2부 즐거운 학문, 유쾌한 몰락 : 사랑하고, 경멸하고, 떠나라
5장. 예술과 철학, 일상의 힘
패터슨, 평범의 경이로움 | 환상은 일상을 잠식한다 | ‘매일매일’의 시(詩) 와 철학 | 예술은 삶이다, 아니, 삶이야말로 예술이다
6장. 천재, 초인적으로 배우는 자들
나는 천재가 아니니까! | ‘될 놈은 된다’ : 쿨하지 못한 냉소주의 | 천재는 있다, 저기가 아닌 여기에 | 고귀하도다, 배우는 자들이여
7장. 적, 내 미지의 친구들
밀실 속의 환상 | ‘동경’이라는 장막 뒤의 비겁함 | 가장 가까이의, 더 없이 먼 이들 | 적, 나의 미지의 친구들
8장. 여행, 두 발로 생각하기
여행이라고 다 같은 여행이 아니다 | 나는 삶의 관광객이다 | 체험을 숙고하라 | 삶의 여행자가 되기 위하여
9장. 바보야, 문제는 취향이 아니라니까
나의 ‘개인적인’ 음악취향 변천사 | ‘취존’의 시대 | 취향은 나의 힘 | 난 널 존중해, 싸우자!
10장. 이 죽일 놈의 썸
‘썸’, 나의 쿨한 사랑법 | 불임의 사랑 | 태양처럼 사랑하라
11장. 솔직함, 혼돈을 살기
그녀에 대해 알고 있는 두세 가지 것들 | 니체 속의 비-니체들 | 정직함, 자신의 모순과 혼돈을 사는 힘 | 나의 아침놀
3부 우상의 황혼, 나의 서광 : 이제, 더 이상, 그러고 싶지 않습니다
12장. 참을 수 없는 교양의 공허함
새로운 교양주의의 도래? | 나는 ‘진보 꼰대’가 싫어요! | 참을 수 없는 교양의 공허함
13장. 관념적 저항에 저항하라
권위를 혐오하면서 승인하는 나 | 나, 또 다른 아담 | 공허하고 무력한 거부 | 행동함으로써 내버려 둔다
14장. 내 자유는 내가 알아서 만들어 볼게요
‘일하지 않는 삶’이라는 꿈 | ‘자유’를 갈망하는 노예의 역설 | 돈에 의한, 돈의, 돈을 위한 자유 | 행복한 노예가 될 것인가, 자신의 주인이 될 것인가
15장. 판관의 언어, 전사의 언어
니체가 트윗을 한다면? | 언어를 의심하는 언어 | ‘우리’ 선희는 어디에? | 두 방향의 힘, 두 개의 폭력
16장. 어느 것도 아닌, 동시에 모든 것인 성(性)
‘한남’과 ‘페미’ 사이에서 | 나의 친구들에게 보내는 편지 |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미숙함 | 몸은 이름을 모른다
17장. 즐겁고 유쾌한 정치는 불가능한가
정치는 노잼이다 | 정치, 미지의 친구를 만드는 일 | 정치, 즐거움의 생산
에필로그 나의 변신, 그리고 나의 작은 건강
‘이 정도면 괜찮아’ vs ‘노 땡큐’ | 나는 원한다, 그러므로 나는 부정한다 | 지금, 여기,에서의 창조 | 철학, 건강의 기예
책 속으로
우린 각자의 현실에 적당한 불만을 품은 채 적당히 적응해 가고 있다. 김예슬은 “자유의 대가로 나는 길을 잃을 것이고 도전에 부딪힐 것이고 상처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우리는 길을 잃지도, 도전에 부딪히지도, 상처받지도 않은 것 같다. 세상 모든 것이 문제라고 배웠는데, 사실은 어떤 문제도 절실하지 않았다.
나는 대학생도, 유학생도, 직장인도 되지 않았다. 그러나 내 문제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대학을 가지 않아도, 취직을 하지 않아도 그럭저럭 살아졌다. 알바를 하고, ‘내일로’ 티켓을 끊어 국내 곳곳을 여행하고, 친구들과 밴드를 하고, 연구실 주변을 배회하며 공부도 간간이 하고, 연애도 하고… 고등학교 졸업 후 군대에 가기 전까지 그렇게 2년을 보냈다. 그러나 거부하는 것으로는 ‘다른 삶’이 자동적으로 시작되지 않았다. 나의 문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데 있었다. (「1장_한번도 되어 본 적 없는 내가 되기 위하여」 중에서)
내가 니체를 읽으며, 그리고 니체를 읽고 글을 쓰며 배운 것은, 삶이야말로 인식의 수단이라는 것이다. 나의 고유한 모순, 편견, 오류, 습관 따위가 없다면 인식은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답’을 원했지만, 사실 모든 답은 그것을 구하기까지 자신의 편견과 오류를 인식하고자 시도하는 과정 자체와 구분되지 않는다. 나의 오류들은 인식의 수단이자 대상인 것이다.
‘나’를 설명해 줄 ‘말’을 찾고 싶었던 나는 이제 나 자신이 궁금해졌다. 어쩌면 철학은 철학책을 읽고 철학 개념들을 다루게 될 때가 아니라, 내가 누구인지를 질문할 때 시작되는 게 아닐까. (「1장_한번도 되어 본 적 없는 내가 되기 위하여」 중에서)
그렇다. 사실 ‘평범’이라는 말도 이들에 대한 반감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나는 삶이 살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말하는 모든 이들에게 반감을 느꼈다. “삶이란 살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라는 말은 굉장히 듣기 좋은 아름다운 말인 것 같지만, 사실 여기에서 제시되고 있는 ‘가치’는 곧바로 ‘목적’으로 뒤바뀐다. 나는 “모든 삶은 소중하고 특별하다”, “너의 꿈을 찾아라” 따위의 말들을 듣고 자랐다. 다들 내게 사회적 척도나 타인의 시선을 신경쓰지 말고 ‘너의 삶’을 살라고 말했다. 그러나 ‘너의 꿈’, ‘너의 삶’이란 사실 ‘다른 방식의 성공’과 ‘다른 방식의 성공한 삶’을 가리킨다. ‘성공’에 대한 기준과 척도가 조금 달라졌을 뿐이다. ‘너의 삶은 특별하다’라는 말은 결국 ‘성공하라! 성공해야 한다!’라는 명령에 다름 아니다. (「2장_‘평범’의 냉소주의에 맞서」 중에서)
니체는 “이 다섯 부류의 여행자는 대체로 모든 사람들이 통과하는 삶의 전 여행편력이기도 하다”라고 했다. 그렇다. 사실 삶이야말로 여행이다. 무수한 우연과 사건으로 매순간 무늬를 달리하는 만화경과도 같은. 나는 여행과 체험을 열망했지만, 역설적이게도 삶의 여정에서 가장 낮은 등급의 여행자였던 것은 아닐까? ‘여행’이라는 비일상을 꿈꾸며 일상을 비방하는 동안 나는 번번이 세계를 놓쳤다. 어떠한 체험도 변형도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삶의 관광객이었다. (「8장_여행, 두 발로 생각하기」 중에서)
기본정보
ISBN | 9791186851838 |
---|---|
발행(출시)일자 | 2018년 11월 20일 |
쪽수 | 240쪽 |
크기 |
143 * 207
* 19
mm
/ 318 g
|
총권수 | 1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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