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새끼의 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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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보영 작가의 첫 소설집으로 표제작인 「개새끼의 변명」을 포함해 열편의 단편을 묶었다. 작가는 인간의 욕망을 에둘러 감추거나 미화하지 않고, 천태만상 욕망의 현장을 정직하면서도 집요하게, 때로는 과장하고 비꼬는 역설과 반어를 통해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다.
표제작인 「개새끼의 변명」은 여자 친구 민아의 자살을 통해 돌아본 나의 욕망과 변명의 심리를 집요하게 추적한다. 작품에서 내가 욕망을 직시하는 태도는 상당히 문제적인데, 그것은 민아의 죽음 앞에서 내가 보인 욕망의 윤리성 때문이다. 나는 욕망이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의 태도이자 그것을 지키는 철저함이 중요하다고 변명하는데, 그런 변명이 나름의 윤리성을 만든다고 믿기 때문이다.
서른이 넘도록 마스터베이션밖에 모르는 중학교 교사 육질도 선생의 욕망을 다룬 「에로스의 화살」은 시종일관 남자의 욕망을 정면으로 그린다. 육질도 선생의 형상을 통해 인간의 성 욕망이 얼마나 그로테스크한 본질을 지니고 있는지를 걸출하게 포착해낸 이 작품은 사실 인간들은 성 욕망의 본질보다 그 이미지나 그를 둘러싼 이야기에 집중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작가정보
1935년 전북 남원 출생
1956년 전주사범학교 졸업
1958년 서라벌예술대학 문창과 졸업
1959년 월간 『女性界』 『교육평론』 취재기자
1963년 대중잡지 『아리랑』 취재기자
1971년 『주간시민』편집국 연예부장
1973년 서울신문 스포츠서울 편집^해설위원
1981년~2007년 MBC복싱해설위원
2003년 한국권투위원회 사무총장^부회장, 문화ㆍ스포츠 칼럼리스트
2004년 著書 『한국의 세계챔피언들』
2017년 4월 『조선문학』 단편소설 』너와 나의 끈』으로 신인상
작가의 말
여기 수록한 10편의 단편은 모두 문학지에 발표된 작품이다. 과연 작품이라고 내세울 수 있는지는 이제 독자들 몫이다. 데뷔하고 1년 만에 불의의 간암수술을 받는 바람에 다소 질척거리긴 했지만, 그런대로 꾸준히 써왔다고 볼 수 있다. 쓰고 싶은 게 많지만 갈 때까지 간 늙다리에겐 그렇듯 시간이 넉넉하지 않다. 언제까지 온전한 몸과 맘을 지탱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어차피 시작한 일이다. 마음 같아서는 정신이 온전한 한 쓰고 싶다. 단편 뿐 아니라 중편, 장편도 손대고 싶다. 엿장수 맘대로 될지 어쩔지는 모른다. 하지만 이왕 저지른 짓이 아닌가. 되든 안 되든 글쓰기는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다.
목차
- 작가의 말
개새끼의 변명
에로스의 화살
그는 살아있었다
부나비의 꿈
친부의 꿈
아들의 꿈
당선소감
너와 나의 끈
천사의 미소
시인과 전쟁
해설
욕망의 현장, 그 생생한 목소리 _ 김성달/소설가
책 속으로
아아 저절로 탄식이 터져 나왔다. 선화의 집요한 얼굴 위에 죽은 민아의 얼굴이 포개진다. 또 그 얼굴을 웬 낯선 여자의 얼굴이 덮씌운다. 대번에 그 낯선 얼굴은, 내가 두어 살 때 사라진 어머니일 거라는 생각이 퍼뜩 떠오른다. 비릿한 게 역류하면서 비위가 뒤틀려온다. 왜 하필 이때 어머니라는 존재가 밀물처럼 다가오는가.(?개새끼의 변명?)
나는 그때 왜 봉투에서 그의 타오르는 연서를 꺼내고 백지를 대신 넣었는지 모른다. 먼발치에서나마 수차례 그녀를 보다 보니까 나도 모르게 뜨거운 불씨가 인 건 분명하다. 엉뚱한 불씨가.(?그는 살아있었다?)
나는 세계도전을 위해 호텔에서 캠프를 차렸을 때, 모형 관 하나를 만들어 방에 놓고 지냈다. 챔피언이 되지 않고선 결코 살아 돌아오지 않겠다는 각오를 다지기 위함이었다. 트레이너는 물론이고 그것을 본 동료 선후배들도 한결같은 관심으로 나에게 말이 씨가 된다며 관을 치우라고 권유했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뱃속의 핏줄을 생각하며 절대 물러설 수 없는 각오였기 때문이다.(?부나비의 꿈?)
어머니는 아들이 앉아있는 코너는 거들떠보지 않고 고개만 깊이 파묻고 있다. 계부는 그런 어머니의 어깨를 감싸 안은 채 계속 뭐라고 위로하고 달래는 듯 보였다. 순간, 꿈속에서 친부가 역정을 냈던 일이 떠오른다. 그렇다. 나는 어머니의 입장을 단 한 번이라도 깊이 헤아려본 적이 있었는가, 가책 같은 게 폐부를 파고들었다.(?친부의 꿈?)
어미는 또 머뭇거린다. 아직도 어미의 귀에는 아기 울음소리가 쌩쌩 바람을 일으키는구나, 동팔아. 진짜 환청이라도 좋아, 야. 농약이 목구멍을 넘어갈 때까지, 숨이 끊기는 그 순간까지 계속 아기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아들의 꿈?)
아니다. 아내 이야기를 써야 할 것 같다. 아니다. 소녀와의 이야기를 담는다고 뭐가 달라지는 거지? 아니다. 아내 이야기를 써야 한다. 아니다 소녀 이야기를 쓰고 싶다. 아니다. 아니다….(?당선소감?)
“나, 오늘 학교 안 갈래, 할아버지. 할아버지랑 함께 병원 갈 거야. 빨리 일어나, 할아버지! 병원에 가야 한다니까, 할아버지!”(?너와 나의 끈?)
40년 가까이 살아오는 동안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감정, 그것을 감히 사랑이랄 수 있을까? 단순한 순간적 성 충동은 아닐까? 처음은 분명 사랑이란 낱말이 낯간지러웠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봄 단비에 땅 비집고 돋는 새순처럼 천사를 향한 사랑의 큐비트가 가슴을 달궈놓았다. 아내가 있는 몸으로 언뜻, 망설임이 머리를 스치지 않는 건 아니다. 하지만 내친걸음이었다. 감정이 끌리는 대로 나는 끝까지 달려가고 싶었다.(?천사의 미소?)
“어머니, 저는 사람을 죽였습니다. 돌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10여 명은 될 겁니다. 팔다리가 찢겨나간 적병을 보면서 누군가에게 묻고 싶었습니다. 전쟁은 왜 하는가, 하고요./어제 내복을 빨아 입었습니다. 청결한 내복을 갈아입으면서 문득 저는 이 내복이 수의가 될지 모르겠다고 생각했습니다./어쩌면 오늘 저는 죽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어머니, 저는 살고 싶습니다. 꼭 살아 돌아가겠습니다, 어머니./갑자기 상추쌈이 생각납니다. 이가 시리도록 차가운 옹달샘 물도 생각납니다, 어머니/아, 적들이 다시 몰려오고 있습니다. 또 쓰겠습니다, 어머니. 안녕, 어머니. 아, 안녕은 아닙니다. 어머니. 다시 편지를 쓸 테니까요, 어머니. 아들 올림.”(?시인과 전쟁?)
추천의 말
?개새끼의 변명?에서 나타나는 욕망에 대한 다채로운 묘사는 현실에서 우러나오는 서사적 절실함과 얼핏 서로 상충되는 것 같으면서도, 하나의 견고한 이야기로 촘촘하게 직조해내고 있다. 그것은 정면으로 바라본 욕망의 생생한 목소리를 가감 없이 들려주어 독자들로 하여금 매우 특별한 욕망의 정서로 이르게 하는 작가의 능력 때문이다.
출판사 서평
「그는 살아있었다」는 사랑의 욕망을 진솔하게 풀어놓는다. 친구가 사랑하는 여자를 아내로 삼은 나의 욕망과 심리를 이야기하면서, 어떤 대상에 대한 욕망은 자기 판단에 대한 강력한 복종이라는 이야기가 돋보인다. 그래서 친구가 살아있다는 확신에 빠져나오지 못하는 나의 형상을 통해 본성의 측면에서 보자면 오히려 미치광이 친구 시인이 더 본질적이라는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부나비의 꿈」 「친부의 꿈」 「아들의 꿈」은 동일한 이야기를 가지고 각자 다른 화자의 시점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흥미로운 작품이다. 아마도 실재 존재했던 복싱선수를 소재로 한 것 같은 이 작품들은 세계챔피언이 되기 위해 미국 라스베이거스로 건너갔지만 들소같이 힘이 좋은 백인 챔피언의 주먹에 싸늘한 시체가 된 복싱선수(「부나비의 꿈」), 그 복싱선수의 아들(「친부의 꿈」), 그리고 복싱선수 어머니(「아들의 꿈」)의 이야기가 박진감 넘치면서도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심리묘사와 함께 가슴 저릿한 슬픔으로 직조되어 있다. 그러면서도 인간의 욕망이 어떻게 물질화되는가를 잘 보여주면서도, 자본주의 물신화 속내를 적나라하게 꼬집고 있다.
「당선소감」은 신춘문예에 당선한 나는 당선소감에 자신의 문학적 잠재력을 부추겨준 어릴 적소녀의 이야기를 쓸 것인지, 아니면 아내 이야기를 써야 할지 밤새도록 고민한다. 경직된 나의 욕망과 절대적 주체성의 화신인 소녀의 욕망이 맞부딪치며 내는 파열음은 세속적이고 디테일한 욕망서사의 뼈대를 정교하게 만들어 따뜻한 인간의 욕망을 기워내고 있다.
손주를 키우는 할아비의 심리와 일상을 차분하게 다룬 「너와 나의 끈」은 새삼 핏줄이라는 욕망의 근원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사람이 살아있어서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교감을 나누고 감흥을 이루는 밑바탕은 서로의 욕망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행위가 있다. 그것은 어른이나 아이나 할 것 없지만 특히 어린아이에게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래서 그런지 어린아이의 할아비에 대한 집착과 애정이 할아비의 생태적 욕망과 교집합을 이루어 강렬하고도 뜨겁게 빛을 발하고 있다.
간암수술에서 회복한 환자가 간호사의 얼굴을 보자 성충동을 느끼는 「천사의 미소」는 읽을수록 묘하게도 사랑이야기는 껍데기처럼 느껴지고 천사를 향한 욕망만 알갱이로 남는다. 숨겨진 인간 욕망의 허위의식을 이렇게도 적나라하게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작가가 욕망에 눈치 보지 않고 구축하는 언어가 삶의 실제적인 욕망 속 공간을 헤집고 건드리기 때문이다.
「시인과 전쟁」은 숨을 거두기 전에 다부동 전투를 회상하는 스승의 모습을 통해 전쟁과 휴머니티 그리고 신을 생각하는 작품이다. 전쟁은 사람을 살고 싶은 극한의 욕망에 빠뜨리기 마련이다. 이 작품에서 그런 욕망이 극대화된 상징인 소년병의 편지를 읽어주던 스승이 결국 신의 은총을 이야기하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이처럼 한보영 작가의 『개새끼의 변명』에서 묘사되고 있는 인물들의 욕망은 그 자체로 강력한 호소력을 지닌다. 욕망의 사회적인 의미를 부각하면서도, 모럴리스트의 면모를 가진 작가는 그 두 얼굴을 가진 욕망의 풍속화가로 독자들에게 다양한 서사적 육체를 제공한다. 그 결과 소설은 강력한 욕망의 외양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특정한 권위주의나 엄숙죽의 같은 경직성과 폐쇄성까지 극복한다.
소설 「개새끼의 변명」에서 보여주는 다채로운 욕망의 세계는 작가가 지니고 있는 현실에 대한 탁월한 서사성과 포착력의 소산이다. 그 결과 욕망의 간절한 매듭이나 순간의 절실함이 아무렇지도 않듯이 놓여있고, 그곳에서 서서히 발견되는 밀도 있는 욕망의 심리공간이 공감과 감동의 수준으로 육박해온다.
기본정보
ISBN | 9791186644935 |
---|---|
발행(출시)일자 | 2019년 10월 07일 |
쪽수 | 268쪽 |
크기 |
141 * 211
* 24
mm
/ 372 g
|
총권수 | 1권 |
Kl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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