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박골 산1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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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내역/미디어추천
- 미디어 추천도서 > 주요일간지소개도서 > 경향신문 > 2019년 6월 3주 선정
권소희 작가가 두 번째 펴내는 장편소설로 유년의 기억을 담고 있는 독박골의 비밀스런 내면고백이다. 독박골은 불광동 사거리에서 구기터널 방향 개천을 지나 북한산 자락으로 이어지는 무허가 집들이 많은 곳의 지명이다. 1969년 초등학교 1학년 때 불광동으로 이사를 한 저자는 외갓집이 있는 독박골에서 성장하면서 어른들의 무능력, 교복을 입은 채 담배를 뻐끔거리며 껄렁거리는 동네 오빠들의 모습을 보며 가난이 주는 불편함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독박골에 살고 있는 것이 창피하고, 내일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같은 것이 정서에 적잖은 영향을 끼쳤다. 저자가 외갓집에서 성장하게 된 것은 직업군인이었던 아버지의 잦은 전근 때문이었다.
장편소설 『독박골 산1번지』는 이런 저자의 내면을 바탕으로 미래와 찬우라는 두 젊은 남녀를 주인공으로 어린 시절의 독박골에서의 기억으로 시작해 성인이 된 후의 만남과 사랑 그리고 독박골로 들어가는 결말을 이루고 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기억조차 생소할 정도로 빠르게 변하고 있지만 소설은 가난하고 촌스럽지만 생명에 대한 감사가 있던 그 시절을 사실적으로 그리면서도, 실존적이고 다층적인 인물형상으로 두터운 깊이와 몰입의 강도를 더하고 있다. 전쟁으로 쓰러진 폐허 속에서 오로지 살아야겠다는 어른들의 강인한 몸부림이 때로는 불법과 합법으로 뒤엉킨 속물근성으로 나타나지만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다행으로 여기던 시절이기에 마음이 병든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군인으로 전쟁을 겪은 미래의 아버지는 그런 어른들 사이에 좀처럼 섞여 들지 못하고 독박골에서 외딴섬으로 부유한다. 미래는 그런 아버지에 대한 저항과 원망으로 끝도 없이 방황했지만, 총을 들고 전쟁을 겪은 군인 아버지의 정체성을 재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자책과 회한이 평생 내려놓을 수 없는 짐처럼 가슴에 남는다. 소설 속에서 그럼 아버지는 어떻게 살아야했을까? 하는 미래의 질문은 결국 자신에게 묻는 것이기도 하다. 그 물음은 그녀의 미세한 심리의 결을 따라 그 파장이 섬세하게 전해져 소설은 결국 자기 자신의 현재 삶 속에서만 그 답을 찾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이야기하면서, 아버지의 삶 역시도 그 당시 ‘현재의 삶’ 맥락으로 이해하고 존중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독박골 산1번지』의 재미교포 사진작가인 미래는 자칫 자신에 대한 혐오와 끊임없는 실패의 자괴감 속에서 타인에 대한 분노로 살아갈 뻔했지만, 독박골 과거의 소소하면서도 정감어린 기억들을 직조해 그 일상의 순간순간들이 지금 왜 그렇게 소중했는가를 깨닫게 된다. 그 결과 자기 삶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려는 관계 회복의 상징으로 찬우를 찾는다. 나를 두렵게 하는 어떤 강박도 없이, 나를 증명할 필요가 없이, 서로를 인정해주는 독박골 어린 시절의 남자 찬우는 과거와의 관계 회복을 위한 그녀 삶의 변화에 중요한 암시이다. 그것은 곧 우리 사회 모두가 이제라도 과거 불화와의 관계회복을 위한 각자의 삶의 이야기를 시작해보자는 소설적 메시지로 읽힌다. 그런 의미에서 『독박골 산1번지』는 지난 시대, 그리고 사람들과의 화해와 소통을 시도하는 소설이다.
작가정보
성신여자대학교 산업디자인학과 졸업. 한국소설 4월호에 단편소설 「시타커스, 새장을 나서다」 발표(2003년)로 작품활동. (사)한국문인협회 월간문학에서 단편소설 「틈」으로 신인상(2005년)을 받음. 현재 한국문인협회, 한국소설가협회, 민족작가회의, 국제펜클럽 회원. 미주중앙일보 ‘이 아침에’ 컬럼 연재 중.
저서:『독박골 산1번지 』 장편소설(2019년) 『초록대문집을 찾습니다 』 에세이(2019년) 『하늘에 별을 묻다 』 장편소설(2016년) 『시타커스, 새장을 나서다 』 중단편 소설집(2006년).
수상경력: 2017년 『하늘에 별을 묻다 』 세종도서 문학나눔 우수도서 선정. 제3회 해외한국소설문학상 수상. 월간문학신인상 수상. 재외동포문학상 수상. 미주한국일보 문예전 수상. KBS America “끝나지 않은 6일, 429” 다큐멘타리 작가. 보훈문예작품전 수필부문 최우수상 수상.
작가의 말
이미 흘러가서 현재일 수도 없는 시간. 이 돌작밭 어딘가에 흘리고 다녔을 유년의 조각들이 무덤덤하고 밋밋한 기억 사이로 떠올랐다. 나에게 독박골은 가슴 깊숙이 박혀있는 유리조각이었다. 성장이 배양되다 말라버린 계절처럼 초라했고 가련했던 시절의 이야기를 고스란히 간직한 파편은 숨을 쉴 때마다 가시처럼 폐부를 찔렀다. 나는 가슴 어디엔가 깊이 박혀있던 추억의 편린들을 더듬더듬 꺼내며 독박골에, 지금 서 있다. 돌아온 것이다. 그토록 오고 싶었던 곳으로.
목차
- 말라버린 로즈마리
어떤 표정
돈을 줍는 비둘기
독박골이 어딘가요?
요셉이 업은 마리아
꿈꾸는 사마리아 인
라면 한 그릇
하늘에서 뛰노는 아이들
난장이가 되어버린 어른들
날개 잃은 장군
유기된 놀이터
독박골의 겨울
휘어진 십자가
사라진 도시
토담집의 서재
우리들의 이야기
작가의 말
책 속으로
도시가 변하는 건 도시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의 문제였다. 그걸 챙이 알았던 건지도 모른다. 나는 그때 그녀가 도시를 말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아차렸어야 했다. 도시에서 소외됐다는 그녀의 외침을 듣지 못했다. 그녀가 이미 스스로를 포기했다는 것을 말이다. 버거웠던 것일까. 결국 그녀는 힘겹게 붙들고 있던 삶을 놓아버렸다. 하지만 그녀가 아니었다면 어쩌면 내가 먼저 살아있는 목숨을 놔버렸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지금 나는 미국 국적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시민권을 신청할 때도 망설임이 없었다. 주저하지 않고 한국국적을 포기했다. 존재감 없던 내가 한국국적을 포기하는 일이 무슨 대수인가. 필요에 의해서 취득한 국적이지만 나에게는 미국시민과 한국인이라는 건 중요하지 않았다. 조앤 플린으로 살아가든 양미래로 살아가든 중요한 건 지금까지 버텼다는 것이다. 무엇을 하며 살았냐가 중요하겠지만 빵을 먹고 살든 밥을 먹고 살든 생명이 붙어있다는 건 소중한 일이다. 나는 살아야만 했다. 정말로 살고 싶었다.
공기 중에 노출된 과자의 눅눅함처럼 습기를 머금은 침묵이 흘렀다. 나도 좀 전까지만 해도 망설이기도 했다. 막막했고 무슨 말을 꺼낼까 고심했다. 낭만적인 감정을 기대했던 것은 아니었다. 이런 분위기일 거라고는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 내가 오랫동안 그리워했던 만큼 그 시간을 응축시킬만한 강렬함이 끓어올라야 했다. 좀 더 극적이라면 마땅히 눈물이 흘러내렸어야 했다. 건조했다. 덤덤했고 아주 지루했다. 잔뜩 이물질이 껴있어 더는 가까이 다가갈 수 없는 답답함이 느껴졌다. 뭉텅뭉텅 공기마저 압축기에 빨려 나간 공간에는 연민도 애틋함도 그 어떤 그리움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 무미건조함에 나도 당황스러웠다. 상대방은 나를, 자신의 기억에서 지워버렸을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내가 붙들지 않으면 찬우의 존재는 금방이라도 비눗방울처럼 푹 하고 꺼질 것만 같았다. 그는 망설였고 나는 매달렸다.
북한산 자락과 연결되어있는 독박골은 유난히 돌멩이들이 많았다. 독박골이 ‘돌밭골’에서 비롯됐다는 유래를 모르는 독박골 아이들은 없다. 개울가에도, 산골짝에도 둥글둥글한 돌멩이들이 뜨거운 햇볕 아래 누워 달궈졌다. 돌멩이만 많은 게 아니라 산속에는 집도 많았다. 친구들 따라 구불구불한 산길을 따라 올라가면 대문도 없는 집이 자꾸 나타났다. 사람이 살 것 같지 않은 골짜기마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허름한 집들이 참새 둥지처럼 산속에 박혀있었다. 사람들이 산속에 숨어 사는 건지 모르겠지만 멀리서 보면 산은 엄마처럼 집을 품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삶의 이야기, 양철로 덧댄 지붕에 빗물이 떨어지면 지붕이 무너질까 맘 졸이던 사람들, 햇빛이 병아리 꼬리만큼 비치다 사라지는 창문을 열고 하늘을 쳐다볼 줄 알았던 사람들. 푸른곰팡이들이 서럽게 내려앉은 무겁고 눅눅한 방안에 누웠어도 별을 보면 감탄할 줄 알던 사람들. 일자리를 잃어 인대가 끊어지는 것 같은 굶주림에도 웃을 수 있었던 순박한 사람들. 허름한 토담집에서 바람이 문짝을 흔들어대는 소리를 들으며 내일의 끼니를 걱정하고 살아가야 했지만 슬픔조차 아름다웠던 지난 장면들이 광장 벽면을 가득 채웠다.
독박골, 한때는 가난 때문에 수치스럽다고 여겼던 동네였지만 자연과 더불어 살았던 나는 비로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에서 살았음을 깨닫게 된 것이다. 하늘을 향해 얼굴을 들 수 있는 사람은 좌절 같은 것은 없는 거라고.
기본정보
ISBN | 9791186644843 |
---|---|
발행(출시)일자 | 2019년 05월 30일 |
쪽수 | 248쪽 |
크기 |
140 * 211
* 23
mm
/ 476 g
|
총권수 | 1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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