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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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저녁」은 외국산 포도를 수입하는 가락시장 상인이 화자인 소설로 수입농산물 반대를 둘러싼 갈등을 바탕으로 평생 포도 농사를 지어 가족을 부양해온 아버지의 인생을 들여다본다. 화자가 외국산 포도수입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긴 누군가가 포도상자에 살모사를 넣어놓기도 한다. 그런 환경에서도 버티던 화자는 어머니의 전화를 받고 고향집에 내려가 ‘세상 사람들이 다 병들어 죽는다’ 해도 죽지 않고, 바위 같고 강철 같았던 아버지가 이제 인생의 저녁을 앞둔 모습을 보며 포도 수입을 하는 자신에게 부끄러움을 느끼면서 어미를 잡아먹은 살모사의 의미를 깊이 자각한다. 아버지 시간의 흔적과, 그 시간을 채우던 온갖 감정의 결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호흡 깊은 감동이 전달되는 작품이다. 「공연」은 다방에서 배달 일을 하면서 몸을 팔기도 하는 여자의 삶을 걸죽한 입심으로 맛깔나게 풀어내고 있다. ‘몸이 재료고 재료가 곧 돈’이 되는 다방 여자들의 현실을 눈에 보일 듯이 생생하게 그리면서도 그들의 슬픔이 애잔하게 전달된다. 자식을 대하는 여자의 태도가 인상적인데 그것은 삶의 구체적인 현실과 거기에 동반되는 음습하고 질척한 것들을 마주보는 여자의 당찬 자세 때문이다. 「거미」는 평생 아버지의 작은댁으로 살다가 죽은 샘터 댁의 삶을 곡진하게 그리고 있다. 아들을 낳지 못한 어머니의 처지와 평생 작은댁으로 살아야 했던 샘터 댁의 처지, 그리고 화자의 처지를 그려나가는 풍경이 정갈하다. 하지만 인생에서 해답이 주어지는 듯하지만 그 답 역시 수수께끼에 불과할 수도 있다는 의미가 거미라는 상징과 어울리는 서사 전개가 돋보인다. 「지구재활용」은 저수지 공사를 둘러싼 마을사람들의 갈등과 사연을 담고 있는 작품으로 등장인물들의 성격이나 형상이 끌로 세긴 듯이 명확하게 돋음질 되어, 그 인상이 오래도록 가슴에 남는다. 인물들 모두의 내가 나쁜 짓을 하고 싶은 것도 아니고, 이익을 취하는 것도 아니고, 내 일만 신경 쓰고 싶다는 심리의 간극을 절묘하게 파고든다. 「쌔무워커」는 군대이야기를 다룬 작품으로 만석꾼 집안의 아들인 화자와 만석꾼 집안의 마름겸 일꾼의 딸인 명자의 인연을 통해 들여다보는 삶의 이면을 군대라는 공간을 통해 더욱 극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속도감이 인상적인 이 작품은 자신도 몰랐던 마음의 진실을 마구 토해내는 과정에서 인간적인 규범이나 가치가 어떻게 시험받는가를 묻고 있다.
김웅기 작가는 『아버지의 저녁』을 통해 타자를 알고 있다고 확신하는 일이 얼마나 오만한지를 보여주고, 우리 자신의 모순을 발견하게 만들면서도 한걸음 더 나아가 현실의 단단한 벽을 향한 모종의 시위를 하고 있다.
작가정보
저자(글) 김웅기
영주 부석 출생.
『월간문학』 등단.
작가의 말
나는 살아가는 방법이 서툴러서 생존경쟁에 시달려야했고 그러다보니 나이 들어서 이제 겨우 소설가가 되었다. 자식들 다 출가시키고 시골에 내려가 뒤늦게 그림을 배우면서 많은 것을 깨달았다. 빛과 그림자는 무엇이 있어야 동시에 공존한다는 것을.
나는 외롭고 쓸쓸하게 살았지만 하나의 무엇이었다. 내가 쓴 소설이 세상에서 빛을 만들지는 못해도 작은 그림자 역할은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목차
- 작가의 말
아버지의 저녁
공연
거미
지구재활용
쌔무워커
서예와 문인화
책 속으로
온 가족이 다 모여있는데도 적적하기만 하다. 멀리에서 종소리가 들린다. 부석사에서 저녁 예불을 드리는 종소리였다. 아련하기만 하다. 작은 개울 건너서 아버지의 포도밭이 보였다. 포도밭은 야트막한 산자락 밑에 있었는데 산허리가 잘록했다. 어떻게 보면 등이 굽은 아버지의 허리 같기도 하고 포도밭은 자글자글 늙은 아버지 같기도 했다. 우리 가족에게는 유일한 생계의 땅인데도 나에게는 왜 그렇게도 먼 이국의 땅처럼 보여지는지 알 수 없었다.
「아버지의 저녁」 중에서
다방의 인력은 시간과 돈이 맞물려 있었다. 배달은 우주왕복선처럼 빠르게. 티켓은 한 시간에 이만원. 쓰나미의 나라 일본은 얼만지 몰라도 대한민국은 전국이 비슷하다. 다방의 질서는 나라님들이 만드신 국법보다 칼 같이 지켜진다. 국회의사당처럼 멱살잡이도 하지 않는다. 나가서 몸을 팔든 공연을 하든 시간당 일만 원은 공연비로 나가고 나머지는 내 수입이다. 많이 뛰면 뛴 만큼 벌기도 하지만 돈을 벌기 위해 몸뚱어리 작살나는 손비 처리도 감안해야 한다. 왕언니 말씀에 의하면 몸이 재료고 재료가 곧 돈이었다.
「공연」 중에서
삼일장이 무사히 치러졌다. 양지바른 언덕에 유택이 마련되었다. 산허리 비스듬히 부석사가 보였다. 나도 모르게 나무관세음 보살을 읊었다. 아들은 내가 말하지 않아도 망인과 어떤 관계라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가르쳐 주고 말 것도 없었다. 세상은 가르쳐 주지 않아도 배우게 되는 것들이 내 어린 시절에도 있었다. 있어서는 안 될 일도 일어나고, 안 될 일이 일어남으로써 그 치유하는 방법도 스스로 터득하게 되는 것이 세상에는 수두룩했다. 이젠 되돌아 가야할 시간이다. 하회 아줌마에게 깊이 고개를 숙이고 차에 올랐다.
「거미」 중에서
점심 때 시작한 회의는 저녁나절이 되어서야 흐지부지 끝났다. 결론도 조잡하게 끝났다. 이장이 공사장 측과 전화 통화로 형철이네 송아지 값만 물어준다는 걸로 종결을 지었다. 그래도 회의는 또 열릴 것이다. 저수지 둑 높이는 이미 다 올라갔는데 마을 사람들 인심 수위는 점점 낮아졌다. 강 선생도 마을 회관을 나왔다. 지구재활용이라는 생소한 단어가 자꾸만 귀에 거슬렸다. 돌아오는 길에 개미 떼가 있던 자리를 보았더니 저수지 공사장처럼 아직도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미물인 개미 떼들의 공사도 만만치 않은 갈등이 있었는지도 몰랐다.
「지구재활용」 중에서
“오빠, 조금만 기다려. 내가 무슨 짓을 해서라도 꼭 빼내 줄께.”
그리고 그녀는 돌아섰다. 그녀가 막상 돌아서자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그녀가 무슨 힘이 있어 나를 빼내줄 것인가? 무슨 짓을 해서라도 빼내준다면 그 무슨 짓은 뻔한 것 아닌가? 그런데 그 무슨 짓이라는 것이 과연 나를 위한 것이기는 할까?
많은 물음표를 남겨 놓고 그녀는 또각거리는 구둣발 소리를 내며 내게서 멀어져 갔다. 나는 쌔무워커를 내려다보았다. 명자의 앳된 얼굴이 구두 발 끝에 걸려있었다.
「쌔무워커」 중에서
기본정보
ISBN | 9791186644812 |
---|---|
발행(출시)일자 | 2019년 03월 05일 |
쪽수 | 368쪽 |
크기 |
152 * 224
* 19
mm
/ 401 g
|
총권수 | 1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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