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워진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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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서림 시인
작가정보
작가의 말
내가 걸어온 역사는 인화물질로 가득 찬
드럼통이 굴러 내리는 비탈길이다.
자갈과 바위가 깔린 울퉁불퉁한 길이다.
좌충우돌 부딪혀 먼지 자욱한 길이다.
뾰족한 바위에는 볼품없이 찌그러져서
전혀 엉뚱한 길로 튀기도 한다.
드럼통이 제 길 찾아 한가운데로 느릿느릿 굴러가게,
이름도 없는 시인들이 비탈길에다
말로 잡목도 심고 숲도 가꾸어본다.
가난한 시인들이 사랑하는 역사는
괴물이 아닌 인간의 얼굴을 하고 있다.
개똥지빠귀, 산 까치가 집을 짓는 숲이 있고
모래무지, 뚝지가 납작 엎드려
지느러미만 살랑거리는 강이 있다.
논밭으로, 공장으로 가는 사람들의 길이 있고
호박꽃, 수세미꽃 피는 마을들이 있다.
목차
- 시인의 말
1부
황장黃腸의 힘
정저지와井底之蛙
볏 시울
송곳
분노의 미루나무
잃어버린 입
가벼워진다는 것
오동의 마음
몸꽃
나의 사랑하는 말들
모던타임즈
고흐의 해바라기
카프카적인 너무나 카프카적인
집 밖의 사람
2부
빗장
장미아파트
괴물
구보씨의 하루
돼지 나폴레옹
말들의 전쟁
얼어붙은 고독
가을 텃밭
때로는
사과꽃잎
이데아
죽은 시의 사회
3부
해금과 물항아리
가객歌客
아카시아
시인의 수입
낙인찍기
미아로 37길 14
눈물을 잃어버린 사회
생의 측면
감꽃 향기
너의 말
울기 좋은 나무
휘청거리는 아킬레우스
바람에 부치는 말
단 한 편의 시
4부
보헤미안 랩소디
서울의 달
민감한 애인
오래된 골목
그냥
누에
막내
음지식물
그녀의 집
청도아라리
안식 없는 안식
나의 나타샤
해설
불온한 시대, 시의 길, 시인의 길│송기한(문학평론가 · 대전대학교 교수)
책 속으로
가벼워진다는 것
미움이 꼭대기까지 올라가면
용서의 계곡도 가까워진다.
나같이 마음이 뚱뚱한 사람들에겐
내려가는 길이 더 멀고 힘들다.
울룩불룩 균형이 안 잡힌 마음의 관절이 자그락거려
계곡을 바로 앞에 두고 곧잘 주저앉는다.
까치처럼 가난해진다는 것은 그만큼 가벼워진다는 것이리라.
마음에 구멍이 많아진다는 것이리라.
말들의 전쟁
말[馬]같이 내달려온 역사는
온갖 말[言]들의 싸움터다.
말을 거머쥔 자가 세상을 지배한다.
흰색, 붉은색, 검정색, 노란색 깃발을 든 말들이
수천 년을 내려오면서 죽자고 싸우고 있다.
정객들은 웃는 얼굴로 적과 악수도 하고
영혼 없는 말로 서로 포옹도 하지만,
시인은 말로써는 악수도 포옹도 하지 않는다.
시인의 말은 칼이기 때문이다.
시인은 혹 허리를 굽힐 수 있지만
시는 굽히지 않는다.
시인의 말은 벽돌이고 대들보이기 때문이다.
왕과 군사들은 싸우다 죽을지언정
말[言]은 결코 죽지 않는다.
죽지 않고 살아남은 말은
승리한 말이 끌고 다니는 역사의 말발굽에
짓밟히고 짓밟혀서 땅 밑으로 내려간다.
모반을 꿈꾸는 슬픈 노래가 되어 여기저기서 솟아오른다.
나의 나타샤
잠결에 두들겨 쓴 글이 참 비뚤비뚤하구나
다 내려놓기로 하니 몸도 맘도
배추흰나비처럼 잘도 날아오르는구나
저마다 자기 목소리만 쇳소리로 높여가는 세상,
바람머리를 한 선배 시인은 홀로 북방까지 찾아갔건만
북방 끝 마가리에다 인생의 짐을 풀었지만
나타샤, 지금 내 곁엔 나와 같이
부여안고 울어줄 나귀 한 마리 없구나
바르샤바나 산티에고, 지구 끝에다 마가리를 짓고 싶은 내 마음,
갓 부화한 어린 나비처럼 바르르 떨며 날고 있구나
나타샤, 낡고 지친 심장은 죄어오고
감각도 없는 몸이 저 혼자 눈물을 흘리고 있는데
나타샤, 봄볕보다 함박눈 속으로 숨어 들어갔으면
내 마음, 배추흰나비처럼 네게로 날아 들어갔으면
출판사 서평
-
기본정보
ISBN | 9791186557990 | ||
---|---|---|---|
발행(출시)일자 | 2021년 06월 15일 | ||
쪽수 | 128쪽 | ||
크기 |
125 * 189
* 14
mm
/ 179 g
|
||
총권수 | 1권 | ||
시리즈명 |
현대시학 기획시인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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