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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 중국, 미국의 치명적 선택』은 1945년에 일어난 격변에 관한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주는 책이다. 저자는 미국 외교관들과 군사 지도자, 그리고 여론 주도자들 사이에서 일어난 격렬한 내분에서부터 마오쩌둥과 그의 후원자 스탈린 사이의 복잡한 관계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요소들을 날카롭게 분석한다. 그 시기의 비극적인 사건들과 다양한 인물들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작가정보
저자 리처드 번스타인 Richard Bernstein은 존 K. 페어뱅크 교수가 있던 하버드 대학에서 중국사를 공부했다. 1980년에 베이징에 《타임》의 지국을 개설해 공산 중국에 주재한 1세대 기자가 됐다. 이후 《타임》과 《뉴욕 타임스》 특파원으로 아시아?유럽?아프리카의 20여 나라에서 기사를 썼으며, 중국에 관한 기사와 논평을 《타임》과 《포린 어페어스》 등을 통해 발표했다.
여덟 권에 이르는 전작 가운데 중국의 과거와 현재를 다룬 것으로는 《세계 한가운데 나라에서 From the Center of the Earth: The Search for the Truth About China》, 《중국과의 충돌이 시작된다The Coming Conflict with China》(Ross H. Munro와 공저), 《대당서역기 Ultimate Journey: Retracing the Path of an Ancient Buddhist Monk Who Crossed Asia in Search of Enlightenment》(《뉴욕타임스 기자의 대당서역기》) 등이 있다. 뉴욕 브루클린에서 중국인 아내와 아들과 함께 살고 있다.
역자 이재황은 서울대 동양사학과에서 공부하고, 한국방송(KBS)?내외경제(현 헤럴드경제)?중앙일보 등에서 기자로 일했다. 역사와 언어ㆍ문자 등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고 있다.
저서로 《처음 읽는 한문》, 《한자의 재발견》 등이 있고, 번역한 책으로는 《비잔티움제국 최후의 날》, 《초목전쟁》, 《시간이 멈추는 날》, 《엘도라도 혹은 사라진 신의 왕국들》, 《신들의 전쟁, 인간들의 전쟁》, 《나사, 그리고 거짓의 역사》, 《달러》, 《맹자》, 《순자》 등이 있다.
목차
- 들어가는 글
제1부 중국 속의 미국
제1장 희귀한 승리
제2장 장제스와 미국인들
제3장 피폐해진 나라
제4장 마오쩌둥, 저우언라이, 그리고 미국인들
제5장 어두운 부분
제2부 적대감의 씨앗
제6장 엉뚱한 사람
제7장 특사의 분노
제8장 도덕상의 양보
제9장 칼을 감추고
제10장 중국 정책을 둘러싼 전쟁
제11장 마오 신과 스파이
제3부 승勝과 패敗
제12장 가슴과 정신
제13장 스탈린이 원한 모든 것
제14장 현장의 진실
제15장 어떻게 해야 하나
제16장 거의 이룬 타결
제17장 희망에서 적대감으로
에필로그: 중국 혁명의 비극
감사의 글
옮긴이의 글
주/ 참고 문헌/ 찾아보기
추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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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저한 연구와 명쾌한 서술로 쓰인 이 책에서 리처드 번스타인은 중국 정치의 변화무쌍한 패턴과 그 불안정한 나라가 미국 및 세계와 맺고 있던 관계가 불가피하게 변화하는, 역사적 변천의 분기점이 되는 순간을 묘사하고 있다. 이 책은 이후 반세기 동안의 게임의 룰을 만들어놓은 다양한 인물 군상으로 가득 찬, 매우 눈길을 끄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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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에 일어난 극적인 사건들은 지속적으로 미국과 중국의 관계 형성에 영향을 미쳤다. 이 책에는 마오쩌둥, 저우언라이, 조지프 스틸웰, 조지 마셜 등이 끊임없이 위기가 닥치던 한 해 동안 그들에게 강요된 운명적 선택을 하게 되는 사건들이 살아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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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범위한 연구와 유려한 서술, 도발적인 주장을 담은 이 책은, 루스벨트의 그릇된 결정이 스탈린의 지정학적 전략상 야망 및 마오쩌둥의 이데올로기적 성향과 어우러져 이후 3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아시아에서 펼쳐진 냉전의 운명을 결정짓고 오늘날까지도 중국과 미국 간의 적대라는 지속적인 영향을 낳은 그 치명적인 시기를 재검토하고 있다. 모든 미국 외교관들과 중국 연구가들이 읽을 만한 충실하고 진지한 연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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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번스타인의 책은 그 중요한 해에 대해 전해주는 것을 훨씬 넘어서서, 중국과 미국을 멀어지게 하고 오늘날의 세계를 만들었던 인물들과 세력들에 관한 학구적이고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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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초에 미국은 마오쩌둥 및 그가 이끄는 중국의 공산 반군과 호의적인 관계를 구축할 기회가 있었다. 그때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에 대한 리처드 번스타인의 이 훌륭하고 중요한 이야기는 창조적 외교에 관한 결정적인 교훈을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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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중국이 강대국 관계의 ‘새로운 모델’을 탐색하고 있는 시기에 리처드 번스타인의 이 고무적이고 유용한 책은 오늘날 도전의 뿌리가 된 시기를 근본적으로 조명하고 있다. 이 책은 우리로 하여금, 미국의 동아시아 개입의 끔찍한 복잡성과 역사의 중요성, 그리고 운명적인 선택을 한 사람들의 시각이 제한돼 있었던 사실에 관해 그 어느 때보다도 잘 알 수 있게 해주고 있다.”
책 속으로
그런 의미에서 1945년은 미국과 중국의 공산 세력 사이에 벌어진 경쟁의 시발점이라 할 만하다. 그 경쟁은 재발하는 병처럼 항상 원점으로 돌아가게 했으며, 열광에 가까운 친밀함을 드러내고 공동의 이익을 선언하여 과거의 의구심과 적대감을 영구히 해소한 것처럼 보였던 시기를 겪고 난 후에도 양측 관계를 어렵게 했다. (11쪽)
미국에게 이 일은 아시아에서 진정한 전환점이 되었다. 완딩 전투보다 훨씬 더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중국을 적의 손아귀로부터 구출하는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었지만, 중국은 그 뒤 곧바로 사라져버렸다. 미국이 아시아에서 추구했던 주요 목표는 중국이 미국의 새 적수와 동맹을 맺은 독재자의 손에 넘어가면서 허물어졌다. 그 적수는 미국과 상반되는 야망, 가치, 관습을 가진 나라였다. 이런 상황은 사반세기 동안이나 지속된다. 그 결과 미국은 역사가 반복되는 것을 막기 위해 막대한 비용을 쏟아부은 2개의 전쟁에 참여하게 된다. 하나는 한국에서, 또 하나는 20세기 미국의 역사에서 가장 처참한 싸움이 되고 만 베트남에서 일어난 전쟁이다. 두 전쟁은 모두 완딩에서의 가슴 벅찬 승리 이후의 열두 달 남짓한 기간에 일어난 사건들이 가져온 장기적인 결과의 하나였다. (31쪽)
언어에 소질이 있는 사람들은 ‘메이궈 페이지美國飛機’(미국 비행기)나 ‘바루쥔 八路軍’ 같은 중국어 몇 마디를 배웠다. 이런 여러 가지 장치들은 배로프와 그의 승무원들이 허베이에 낙하했을 때 요긴하게 쓰였다. 배로프가 처음 만난 중국인에게 한 첫마디가 ‘메이궈 페이지’와 ‘바루쥔’이었다. 우호적인 분위기를 길러낸 것은 이런 종류의 협력이었다. 이와 함께 상쾌하고 맑은 공기와 혁명의 용광로에서 떠오른 새로운 인간상에 대한 인식도 있었다. 모두가 허세의 불쾌함과 부패, 무능에 싸인 무덥고 허물어진 충칭과 너무도 대조적이었다. 몇 년 뒤에 배럿은 이 모든 것을 산뜻한 한 문장으로 요약했다. “중국 공산 세력은 지금 우리에게 철천지원수지만, 당시에는 틀림없이 ‘좋은 친구’였다. 특히 그들의 구조를 받은 항공병들에게는.” (194쪽)
시어도어 화이트 같은 다른 관찰자들은 국민당 군의 징병이 납치나 다름없는 것이었다고 전했다. 신병들을 밧줄로 한데 묶어 총을 들이대고 잡아갔다. 반면에 이 나라의 정부 주석은 나긋나긋한 하인들과 옛날 그림 속에서 살았다. 이런 강제 징집은 대체로 이미 피폐해진 아내와 아이들에게서 경제적 버팀목을 빼앗아버리는 결과를 낳았다. 미국은 전선에서 싸우는 병사들의 봉급이 후방의 아내들에게 지급되지만 중국은 그렇지 않았다. 수많은 중국 여성들은 남편이 군에 가 있는 한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었고, 더구나 남편이 죽으면 그런 상태가 영원히 지속되었다. (121쪽)
스노뿐만이 아니었다. 그는 국민당 정권을 경멸하고 공산 세력에 호의적인 사람들 무리의 일원이었다. 물론 자기네 주장을 열광적으로 옹호하는 사람에서부터 가능성에 대해 좀 더 냉철한 판단을 내리는 사람까지, 정도는 각기 달랐다. 그들은 이데올로기적이고 강경하기보다는 민족주의적이고 민주적이었다. 이 비조직적 그룹에는 외교관과 군 장교와 언론인들이 있었다. 이들은 결국 미국인들의 삶에서 분열의 한 축이 된다. 그 분열은 혹심하고 화해할 수 없는 것이었으며, 그 속에서 그들의 충고는 무시되고 그들의 삶은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중국과 미국은 적이 되었다. 이 그룹 가운데 일부, 특히 외무 공무원인 중국 전문가들은 1930년대 초중반에 베이징에서 서로 알게 되었다. 그들은 젊었고, 상상 속의 중국에 이끌렸으며, 일본 제국주의와 국민당 모두에 대한 혐오로 가득 차 있었다. (160쪽)
그리고 몇 해 전에 살인과 보복의 게임을 일삼았던 저우언라이는 국민당의 임시 수도에서 정치적인 사교와 설득이라는 점잖은 일에 종사하고, 외국의 언론인 및 외교관들과 주기적으로 만나면서, 공산주의자들이 합리적이고 믿을 만하다는 것을 그들에게 설득시키기 위해 애썼다. 그는 대여섯 명의 직원들과 함께 충칭의 한 골목 깊숙한 곳에 있는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듯한 낡은 복합건물에 살았다. 골목은 비만 오면 발목 깊이까지 빠지는 곳이었다. 그곳 응접실에는 의자 몇 개와 긴의자 하나가 놓여 있었다. 긴의자는 “중국 농민과 노동자들이 입는 것과 똑같은 거친 푸른색 천으로” 덮여 있었다. (169쪽)
출판사 서평
“미국과 중국이 동아시아에서의 주도적인 역할을 놓고 벌이는 현재의 경쟁 관계는 1945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복잡한 역사에 뿌리를 두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기간과 그 직후의 중미 관계에 대한 리처드 번스타인의 흥미진진하고 감동적인 연구는 그 시기의 비극적인 사건들과 다양한 인물들을 새롭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해준다. 이 책은 일반 독자를 위한 역사 서술의 모범으로, 책을 한번 잡으면 내려놓을 수 없다는 점이 유일한 결점이다.”
― 스티븐 I. 러빈, 《마오쩌둥의 진실 Mao: The Real Story》 공저자
새로운 G2 관계의 기원이 된 1945년의 기록
― 마오의 중국 혁명과 미국의 치명적 선택
1945년은 중국에 있어 1840년 아편전쟁 이후 전개된 100년 굴욕의 역사에 마침표를 찍은 해이다. 《뉴욕타임스》 기자 리처드 번스타인은 이 해를 전후로 미국에 타전된 중국발 보고서를 모두 모아 한 편의 정치 외교 드라마로 구성했다. 협상을 위한 노력을 펼치다가 공산당에 동정적이라는 비난의 화살을 맞게 되는 노련한 ‘중국통’ 존 페이튼 데이비스와 존 스튜어트 서비스, 훈장을 받은 장군이자 자칭 카우보이인 루스벨트 대통령 특사 패트릭 J. 헐리와 미국 여론의 흐름을 바꾸는 데 일조한 사설들을 쓴 《타임》의 언론인 헨리 루스, 새로운 지도자 마오쩌둥과 그의 버거운 라이벌 국민당 지도자 장제스,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주역 저우언라이……, 이 책은 이들이 펼친 군사 활동이자 방첩 활동, 스파이 활동이자 정보 활동의 기록이다.
1945년 호젓한 별장의 장제스, 충칭 골목의 저우언라이, 옌안 동굴의 마오쩌둥…
리처드 번스타인은 이 책에서, 미국 외교관들과 군사 지도자, 그리고 여론 주도자들 사이에서 일어난 격렬한 내분에서부터 마오쩌둥과 그의 후원자 스탈린 사이의 복잡한 관계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요소들을 날카롭게 분석하며 1945년에 일어난 격변에 관한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바야흐로 G2 시대, 두 나라는 이념이나 외교관계보다 더 복잡한 상황에 놓여 있으며 더 이상 상대에 대한 낙관도 비관도 없다. 이 책은 그 시작을 연 1945년의 이야기이다.
1945년이 시작될 때 미국은 중국의 공산 반군과 매우 죽이 잘 맞는 관계였다. 공산군 병사들은 미군 친구들을 영웅으로 대접했고, 적지에 추락한 미국 항공병들을 구조했다. 중국 공산당 지도자들은 미국의 자본과 기술의 도움을 받아 중국을 빈곤에서 건져 올리는 등의 장래 문제를 이야기했다. 마오쩌둥은 미국 대표단과 우호적인 만남을 갖고, 중국에서 미국식 민주주의를 확립하겠다는 자신의 의지를 그들에게 분명하게 밝혔다. 그러나 연말이 되자 친밀함은 사라지고 그 대신 냉랭한 적대감과 불신이 들어섰다. 중국 공산군은 북중국에서 미국 해병을 매복 공격했고, 공산당 신문들은 미국을 철천지원수 제국주의자로 묘사했으며, 중국에서 내전이 폭발했다. 이로써 30년 가까이 이어진 중-미 사이의 거의 총체적인 불신의 원형이 형성됐으며, 그 결과들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한국과 베트남에서 일어난 치명적인 전쟁이었다.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저자는 하버드 대학에서 중국사를 전공하여 탄탄한 기본기를 갖추고 있는 데다 기자로 중국에서 근무한 현장 경력을 바탕으로 대중을 위한 역사서를 여러 권 써낸 경험을 이 책에서 유감없이 발휘하였다. 당시 여러 사건들의 진상과 더불어, 장제스와 미군 사령관 스틸웰 사이의 갈등과 장제스 암살 계획설, 《타임》의 장제스 띄우기, 저우언라이의 초창기 비밀경찰 수장 경력, 미국의 언론인과 외교관들을 사로잡았던 매력적인 저우언라이의 여성 비서 궁펑 이야기, 미소 정상의 얄타 밀약 등 여러 가지 에피소드와 당시 역사를 이끌어간 세계적 거물들에 대한 세세한 정보와 이력, 심지어 그 성격까지 자세히 살펴볼 수 있다.
미국의 단순성 대 중국의 복잡성, 그 결과는
전쟁 마지막 단계에 미국의 여러 기관들이 중국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그 가운데는 몇몇 정보기관들도 있었다. 가장 온건한 활동을 펼친 전시정보국(OWI)은 중국과 일본의 문서 자료들을 수집하고 중국 언론에 미국 정부의 선전물을 보급했다. 이 기관은 대부분의 전쟁 기간 동안 하버드 대학 역사학 교수였던 존 K. 페어뱅크가 이끌었다. 그는 1932년에 처음 중국에 왔고, 중국 지식인들 사이에서 비길 데 없는 인맥을 구축했다. 그 대부분은 미국 유학생 출신이었다. 이후 페어뱅크는 1946년에 다시 하버드 대학으로 복귀해서 1955년에 동아시아연구센터를 설립했으며, 저자 리처드 번스타인는 이곳에서 중국학을 공부했다.
또 하나의 중요한 그룹은 ‘공지空地 자원기술단(AGFRTS)’으로서 1944년 봄부터 활동하기 시작했다. 쿤밍에 자리 잡은 이 기관은 날씨 정보와 일본의 비행기, 병력, 배의 움직임에 관한 정보를 수집했다. AGFRTS는 대부분 전략정보국(OSS)에서 파견된 요원들로 채워져 있었고, 산둥성 지역에서 위험하고도 결정적인 임무를 지휘했다. 이들과 달리 ‘점잖지 못한’ 곳도 있었는데, 충칭의 미국 해군 무관 밀턴 마일스가 이끄는 비밀 기구가 그러했다. 마일스는 중국에 있던 다른 미국 기관들과 끊임없이 세력 다툼을 벌였다.
미국의 국무부, 스파이, 좌파 중국통, 특파원 등이 1945년 중국에서 맞닥뜨린 현실은 매우 복잡했다. 미국과 중국은 동맹국이었지만 공통점을 찾을 수 없었고, 현저한 차이점만 있었다. 그것은 미국의 단순성 대 중국의 복잡성이었다.
미국의 유일한 목표가 일본을 꺾는 것이고 그것은 중국의 목표이기도 했기 때문에, 미국인들은 장제스가 왜 이를 달성하기 위한 조치들을 취하는 데 그렇게 미적거리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장제스의 참모장 스틸웰 같은 미국인들에게 이러한 군 개혁은 그야말로 상식이었다. 마찬가지로 루스벨트 대통령의 특사 헐리는 국민당이 미국식의 정치적 경쟁을 통해 공산당과 평화적으로 경쟁할 기회를 환영하리라고 생각했을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인들에게는 단순한 것이 장제스에게는 엄청나게 복잡한 문제였다. 장제스의 권력은 군대 지도자들 사이의 개인적인 관계망에 의존하고 있었다. 따라서 자신에게 충성할 의무가 있는 지휘관들을 해임하기를 거부했다. 또한 장제스는 정치 개혁이 자신을 파멸로 이끌 것이라고 확신했다. 이제까지 비적 떼였던 자들에게 합법적인 지위를 부여하도록 회유당하고 강요당하는 것은 나약한 것으로 해석될 것이고, 나약한 것으로 보이면 반대편으로의 변절을 부르게 될 터였다.
복잡한 상황은 마오쩌둥의 공산 세력도 마찬가지였다. 미국으로 하여금 자신들을 ‘마가린 공산주의자’ ‘홍당무 공산주의자’로 믿게 하느라 애썼으며, 미국의 제국주의적 실체는 간파하였으나 소련은 영원한 혁명 수호자로 인식했다. 그러나 스탈린은 일본과의 전쟁에 참여하는 대가로 일본이 북중국에서 자기네 대신에 차지하고 있던 식민지 특권을 부활시키는 것이 궁극의 목표였다.
스토리텔링 역사의 역작 《1945 중국, 미국의 치명적 선택》은 미국의 힘과 이상이 아시아의 강력한 혁명 운동과 맞닥뜨린 첫 번째 순간을 살펴보고, 현대 중미 관계의 기원에 관한 익숙한 가설에 도전한다.
현실로 마주한, 1945년 중국 역사의 가정假定들
결과적으로 중국이 소련과 긴밀하게 협력하고 아시아의 다른 지역의 혁명 운동을 지원하는 공산주의 국가로 떠오르게 된 것이 미국의 엄청난 패배였음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1945년 중국에 대해 미국은 치명적 선택이 아닌 다른 길을 선택할 수 있었을까? 작가, 정치가, 학자 들은 반세기 이상 이 어려운 문제에 대한 치열하고 서로 모순되는 대답들을 내놓았다. 논쟁의 한쪽에는 미국이 좀 더 단호하고 좀 더 통찰력 있게 행동했다면 공산당의 맹공격으로부터 장제스를 구하고 중국은 친서방-민주주의의 방향으로 서서히 전진했을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미국이 국민당에 더 많은 원조를 제공했더라면, 그들이 중국에서의 전략적 목표를 좀 더 분명하게 했더라면, 일본의 점령 기간 동안 그들이 중국 정부에 공산 세력과의 싸움을 중단하라는 요구를 해서 압박하지 않았더라면, 장제스가 1946년 초 거의 성공적인 공세를 취하고 있을 때 더 많은 국민당 병력을 만주로 공수했더라면, 스틸웰과 중국통들이 마오쩌둥과 공산당 때문에 곤경을 겪고 있는 장제스의 평판을 손상시키지 않았더라면. 그러면 공산당의 승리를 막을 수 있었으리라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중국과 중국의 미래 관계를 결정한 중요한 요소는 미국의 선택이 아니었으며, 그것은 소련과 마오쩌둥의 본성과 행동이었다고 진단한다. 이러한 분석에는 천안문 사태 이후 페어뱅크의 중국 인식과도 잇닿아 있다.
이후 중국은 미국을 적으로 지목하고, 중국에서 혁명 열기가 소진되고 자신보다 더 크고 가까이 있는 경쟁자이자 자신의 독립을 위협하는 존재와 맞닥뜨리게 될 때까지 오랫동안 그런 상태를 유지했다. 이러한 냉전 상태로 인해 우리 현대사 역시 미국과 소련이 절대적인 영향력을 미치는 가운데 전개되었다. 냉전의 끝에서 한국이 마주하고 있는 현실은 또다시 미중일러 강대국의 틈바구니다.
중요한 것은 1945년 격변의 시기를 둘러싸고 미국과 중국, 일본과 러시아가 수없이 썼다 지웠다를 반복했던 역사의 가정들이 눈앞의 현실로 펼쳐지고 있다는 점이다. 세계는 미래에 대한 상상력이 필요하다. G2 시대는 신냉전의 서막을 열 것인가, 지속 가능한 새로운 세계 체제에 대한 모색으로 이어질 것인가.
책속으로 추가
마오쩌둥은 중국 공산당이 민주주의를 열망하고 있고 서구적인 가치를 존중하고 있다고 포먼에게 장담했다. 그는 포먼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소련과 같은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공산주의를 추구하고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이 미국 내전에서 링컨이 추구했던 것과 같은 종류의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바로 노예 해방입니다.”
마오쩌둥은 스노가 《중국의 붉은 별》에서 그를 묘사하면서 ‘링컨풍’이라는 말을 사용한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마오쩌둥은 더 나아가 포먼에게 “우리는 민주주의를 신봉하고 실천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신시켰다. 마오쩌둥이 지칭한 “국민당이 지금 실행하고 있는 일당 독재”와 대조되는 일이었다. (187~188쪽)
이것은 중요하다. 만약 마오쩌둥이 만들어낸 운동이 중국의 오랜 ‘질병’(왕스웨이의 표현)을 뿌리 뽑고자 한다면 음침한 권위와 권위에 대한 맹목적이고 자동적인 복종을 모두 뿌리 뽑을 필요가 있었다. 혁명은 단순히 절대적인 한 권위를 다른 권위로 대체하는 것이 아니었고, 왕스웨이는 감히 마오쩌둥의 절대적인 권위와, 모스크바의 스탈린이 그 정점에 있는 국제 공산주의의 권위에 의문을 제기했다. (198쪽)
스노, 데이비스, 포먼, 엡스타인 등이 주목하지 않았던 옌안의 특성 가운데 하나는, 그곳이 외부의 영향을 받지 않고 고립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1937년에서 1940년 무렵 사이에 옌안의 인구는 20배로 늘었지만, 이 수만 명의 사람들(그들 가운데는 왕스웨이 같은 도시 지식인도 수천 명이나 있었다)에게는 라디오가 거의 없었고,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신문도 없었다. 대자보들은 지적인 동요를 보여주었다기보다는 감시받지 않는 의사 표현이 허용된 공간이 얼마나 심하게 제한되어 있었는지를 드러내는 것이었다. (202쪽)
딕시 사절단 파견 이후의 오랜 기간 동안 수많은 관측통들과 학자들은 중국이 미국을 적대시할 불가피한 사정은 전혀 없다고 강력하게 주장해왔다. 미국 정부가 전쟁 막바지에 장제스에게 편파적인 지원을 하는 대신 마오쩌둥 및 그 세력과 별도로 협력 관계를 구축했다면, 서비스가 말한 것처럼 우리는 결국 “우리가 한때 가까운 친구이자 맹방이 되고자 희망했던 나라”와 관계가 끊어지지 않았거나 적어도 “철천지원수”보다는 나은 관계가 되었을 것이라고 했다. 가장 중요한 점은, 나중에 서비스와 다른 학자들 및 관측통들이 주장했듯이 미국이 치열하고 피를 많이 흘린 내전에서 지는 편을 지원하는 일이 없게 되고, 이에 따라 “한국과 베트남 문제는 아마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말이다. (213쪽)
이에 대한 대답은 미국과 중국 사이의 중요한 차이점과 관련이 있다. 이들은 동맹국이지만 공통점을 찾을 수가 없다. 역사가 쩌우당(鄒?)은 이것을 미국의 단순성 대 중국의 복잡성이라고 불렀다. (245쪽)
여기서 한 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독재와 자유민주주의 사이에서 오도 가도 못하고 있는 정당은 어느 한쪽에 굳건하게 자리 잡고 있는 정당에게 전략적 이점을 내주게 된다는 것이다. 스스로의 잘못이 알려질 수 있었던 국민당은 피할 수 없고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는 불명예를 뒤집어썼고, 멀리 떨어져 있고 선전을 잘 활용하여 잘못을 숨길 수 있었던 공산당은 무죄 추정의 덕을 보게 되었다. (258쪽)
역사가 허버트 파이스가 말했듯이, 장제스는 그것이 “공산 세력으로 하여금 반대와 방해 없이 혁명을 수행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공산 세력은 자기네가 장악하고 있는 지역과 관련된 원칙 문제는 재고할 의사가 없었다. 마오쩌둥은 이제 막 끝난 2년간의 숙청을 통해 반대파를 제거하고, 독자적인 견해들을 질식시켰으며, 허용된 유일한 보도기관인 자신의 선전 기구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고 있었다. (268쪽)
얄타에서 도덕상의 양보는 아시아로 확대되었다. 그곳에서는 소련의 도움이 더해지지 않았고, 도움이 필요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그것은 미국과 미국의 가치에 통탄할 만큼 해를 끼치게 된다. 몇 달 전인 1944년 8월, 저우언라이는 소련 참전의 영향을 예측했다. 딕시 사절단이 막 옌안에 도착하고 공산당이 미국과 깊은 협력 및 친선을 원한다고 표명한 상황에서 저우언라이는 국제 정세 분석을 담은 장문의 당내용 보고서를 썼다. 그는 당시 시점에서 소련이 참전할지의 여부는 알 수 없지만 참전하는 것이 그들을 위해 매우 바람직하며, 다만 이런 바람을 공개적으로 표명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썼다. 미국인들에게 소련과 중국 공산 세력 사이의 미래의 동맹에 대한 경고로 작용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었다. 소련의 참전은 바로 “중국의 새로운 민주 혁명의 승리”를 의미할 것이라고 저우언라이는 썼다. 그것은 장제스가 패퇴하고 공산주의가 바르샤바에서 광저우까지 유라시아 대륙 전체로 확산된다는 의미였다. (309쪽)
미국인들은 언제나, 다른 나라들이 중국으로부터 식민지적 특권을 강제로 빼앗던 19세기 말에 처음으로 공식화한 그들의 ‘문호 개방’ 정책이 중국을 기독교적 민주주의 국가로 개조하는 데 도움을 주려는 미국의 이상주의적 충동과 궤를 같이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왔다. 예컨대 1901년 의화단義和團 운동으로 중국이 제국주의 열강에 패한 뒤 막대한 배상금을 물도록 강요당했는데, 미국은 그 배상금을 한 교육 위탁 단체에 주어 똑똑한 중국 학생들이 미국에 유학할 수 있게 했다.
그러나 20세기 전반기의 중국인에게는 미국인들의 의도가 늘 좋게만 보인 것은 아니었다. (……) 그들이 보기에, 선량하다고 하는 미국이 가증스러운 일본에게 중국 영토의 지배권을 넘겨주는 데 동의한 사실은 ‘문호 개방’이 중국 시장에서 자신의 몫을 지키겠다는 미국인들의 완곡 어법이라는 의혹을 입증하는 것이었다. (329쪽)
한 가지 중요한 측면에서 7차 전국대표대회는 적어도 일부 참석자들에게는 헛갈리는 이벤트였음에 틀림없다. 한편으로는 고금을 통틀어 가장 편협한 수령 가운데 하나인 사람의 손에 유난히 비민주적으로 권력이 집중된 것이었다. 그런 집중은 다른 사람들이 지니고 있는 삐딱한 생각이나 경향을 무자비하게 탄압한 결과물이었다. 확실히 마오쩌둥의 권력은 상당 정도 그의 특이한 리더십과, 그가 지휘한 운동이 항일전쟁 기간 동안 살아남았을 뿐만 아니라 놀랄 만큼 신장되었다는 사실에 기인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권력은 또한 자신과 권력을 다툴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을 술책으로 제압하는 마오쩌둥의 비범한 능력에 기인한 것이기도 했다. 그것은 자신의 주위에 열성적인 지지자들로 이루어진 핵심 세력을 모음으로써 가능했고, 이들은 그의 명령을 집행하는 일을 담당했다. 옌안에서 공산주의 운동을 하고 있던 모든 당원들은 마오쩌둥의 지도적 위치가 캉성의 당내 비밀 보안 기구에서 집행하는 테러, 탄압, 투옥, 재교육, 숙청으로 유지되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383쪽)
1945년 봄에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은 이 논쟁의 실체에 어느 정도 접근할 수 있게 해준다. 마오쩌둥은 이데올로기적인 사람이기도 했지만 실용적인 사람이기도 했다. 그는 미국이 당시 그들에게 원조를 하겠다고 했다면 기꺼이 받아들였으리라는 데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특히 그 도움이 총이나 총알 같은 것이었다면 말이다. 국민당과의 협상 역시 자기네 군대에 대한 통제권을 유지한 채 공산당이 새 정부에서 자리를 얻을 수 있었다면 받아들였을 것이다. (387쪽)
몇 년 뒤 워싱턴의 영향력 있는 칼럼니스트가 된 앨솝은 《새터데이 이브닝 포스트》에 실린 기사에서 이를 요약했다. 장제스에게 정치 개혁을 요구하고 공산 세력과 협상하도록 그를 압박하며 중앙정부가 그 군대를 옌안이 아닌 일본과 싸우는 데 사용하도록 고집함으로써 미국은 그를 치명적으로 약화시켰고, 공산 세력이 정권을 잡는 데 도움을 주었다는 것이다. 공산 세력은 미국에 대한 적대감을 가지고 있었지만 중국통들이 이를 얼버무리도록 해주었다. 앨솝의 주장은 미국이 단독으로 일본을 처리하고 장제스는 공산 세력을 상대하게 하는 편이 더 나았을 것이라는 얘기였다. (396쪽)
그렇기 때문에 전쟁이 끝났을 때 자주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 가운데서 장제스가 용감하고 훌륭했다고 평가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물론 수많은 중국인들은 여전히 장제스를 떠받들면서 그를 전쟁 기간 항복 거부의 상징으로, 백마를 타고 저 애국적 저항의 칼을 휘두른 인물로 보고 있었다. 그러나 대단히 명성이 높았던 마인추가, 중국의 다른 유명한 여러 작가들과 학자들이, 그리고 수많은 저항적 학생들이 공개적으로 장제스에게 등을 돌린 것은 핵심적인 하나의 약점을 시사하는 것이었고, 중국의 유일한 다른 무장 세력은 그 약점을 자기네에게 유리하게 이용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420쪽)
그러나 마오쩌둥이 정말로 보여준 것은 저우언라이가 말했다고 하는 ‘타타담담(打打談談)’이라는 네 글자의 어구에 집약된 전략이었다. 한편으로 싸우면서 한편으로 대화를 한다는 뜻이다. 그가 보기에 협상의 목적은 절충된 합의안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시간을 벌고, 자신의 권력과 평화론자로서의 평판을 확대할 기회를 이용하는 동안 적의 공격 행위를 저지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상황이 무르익으면 협정을 내팽개치고 적의 문제점을 비난하며 군사적 승리를 위해 전력투구하는 것이었다. (453쪽)
토대는 일본이 항복한 뒤 몇 주 또는 몇 달에 걸쳐 스탈린의 도움으로 만들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공산 세력의 움직임은 대체로 은밀했고, 스탈린의 도움도 비밀에 부쳐졌다. 따라서 양측은 모두 내전을 피하려 애쓰는 평화 정당이라는 허구를 유지할 수 있었다. 스탈린은 계속해서 중국과 체결한 협정을 준수할 것이라고 다짐했고, 헐리 같은 사람들은 어리석게도 그 말을 믿었다. 미국이 혼란스러워하고 미심쩍어하는 기간이 지나고 나면 스탈린의 정책이 분명하게 드러나게 된다. 그것은 바로 장제스와 맺은 협정에 대해서는 입에 발린 말이나 하고, 한편으로는 미국의 격렬한 반발을 불러일으키지 않는 한 최대한 중국 공산 세력을 돕는 것이었다. (488쪽)
중국은 집안싸움을 생각나게 했다. 모든 사람은 중국에서 별난 짐승을 보았다. 정말로 미국인들은 “중국에서 내전이 계속되었기 때문에 그 나라에 환멸을 느꼈다고 루스는 《라이프》에 썼다. 미국인들은 스스로에게 이렇게 묻는다. “지금 미국이 처리할 수 있고 처리해야 하는 (……) 중국이라는 사업이 성업 중인가?”
자신의 질문에 대한 루스의 대답은 ‘그렇다’이다.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중국에 관해 이런 간단한 사실을 극도로 저평가하고 있다. 중국의 합법 정부가 중국 땅에서(망명지에서가 아니라), 적어도 중국 땅의 절반 이상에서 유일 정부로 스스로를 유지해왔고, 다른 절반의 지역에서 대다수의 충성을 받고 있다는 사실 말이다. (520쪽)
이제 장제스는 미국인들이 그에게 원했던 것을 하겠다고 공식 선언을 하고 있었다. 중요한 순간이었고, 커다란 몸짓이었다. 중국 역사에서 처음으로 자유민주주의적 이상이 국가 정책으로 제시되었다. 장제스는 열흘 안에 중국에서 모든 인민의 자유가 보장되고, 언론 검열이 폐지되며, 정당들이 합법화될 것이라고 약속했다. 또한 일주일 이내에 모든 정치범이 석방될 것이라고도 했다. 물론 친일 매국노는 제외되었다. 동시에 1월 10일 정치협상회의의 개막으로 중국은 또 하나의 전례 없는 발걸음을 내디뎠다. 이 나라에서 자유롭게 경쟁하는 정당들의 회합은 이전에도 소집된 적이 없었고, 나중에 드러나게 되지만 이후에도 소집되지 않았다. (551쪽)
중국에 있던 미국 외교관들이 공산당의 태도 변화를 알아차리기 시작한 것은 바로 이 시기였다. 1944년 딕시 사절단의 일원으로 공산당 장악 지역을 방문하고 그들이 현지에서 인기가 있음을 알렸던 레이먼드 러든은 마셜에게 긴 메모를 보내, 중국 공산당이 소련의 노선에 어느 때보다도 가깝게 다가서 있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공산당 신문들은 유럽과 아시아 양쪽에서 2차 세계대전 승리의 주역은 소련이었다는 소련의 공식 입장을 거듭 보도하고 있으며, 반면에 미국과 영국의 공헌은 언급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그는 이어 중국 공산당이 선전물에서 ‘파시스트’라는 말을 사용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571쪽)
이 말은 과장의 정도라는 측면에서 놀라운 것이다. 19세기 중반의 아편전쟁과 애로호 전쟁(2차 아편전쟁), 20세기로 접어들 무렵의 의화단 운동 탄압, 그 결과로 중국에 부과된 배상금, 그리고 일본의 타이완 점령과 만주 점령, 그 뒤에 일어난 1937년 일본의 전면 침공 등의 사건이 일어난 100년 동안의 역사를 두고, 당시 미국이 국제적으로 승인된 중국 정부에 군사적 지원을 제공하는 것을 중국 문제에 대한 최악의 제국주의적 간섭으로 보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당시 미국 입장에서 가장 중요했던 것은 분노에 찬 말투가 더욱 격렬해짐으로써 공산당이 거침없이 반미 적대감을 표출하는 쪽으로 돌아섰다는 것이었고, 미국은 이런 상황을 바꾸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다. (588쪽)
중국과 중국의 미래 관계를 결정한 중요한 요소는 미국의 선택이 아니었다. 그것은 소련과 마오쩌둥의 본성과 행동이었다. 그 시기 전환점이 된 것은 워싱턴에서 내려진 몇 가지 결정이나, 패트릭 헐리의 기자회견이나, 미국 해병대의 베이징 · 톈진 · 상하이 파견이 아니었다. 그것은 1945년 8월에 있었던 소련의 중국 동북부 지역 침공이었다. 그 이후로는 미국의 중재자들이 타협을 이루어내려고 아무리 총력을 기울이더라도 마오쩌둥과 공산당이 더 이상 국민당과 정치적인 타협을 할 가능성이 없어졌다. 스탈린이 100만 명 이상의 병력을 보내 만주를 점령하자 중국의 내전은 불가피해졌다. 마오쩌둥은 중앙정부가 더 이상 자신을 군사력으로 제거할 능력이 없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물론 미국 대통령이 얄타에서 스탈린을 만나 만주에 소련 군대를 보내달라고 간청하고, 소련의 침공이 미국의 무기 대여 프로그램에 따른 무기 공급으로 용이해졌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그러나 애버렐 해리먼과 조지 케넌이 당시에 알고 있었던 것처럼, 미국이 요청하든 하지 않든 스탈린은 무자비한 로디온 말리놉스키가 이끄는 11개 군을 보낼 예정이었다. 이런 측면에서 중국은 장제스 때문에 “잃었”을지 모르지만, 대체로 스탈린과 그의 충실한 똘마니 마오쩌둥이 얻은 것이었다. (607쪽)
기본정보
ISBN | 9791186293478 | ||
---|---|---|---|
발행(출시)일자 | 2016년 03월 15일 | ||
쪽수 | 672쪽 | ||
크기 |
153 * 225
* 32
mm
/ 969 g
|
||
총권수 | 1권 | ||
원서명/저자명 | CHINA, 1945: Mao's Revolution and America’s Fateful Choice/Richard Bernstei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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