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마의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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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정보
작가의 말
바람이 나뭇가지를 스쳐 지날 때 나뭇가지는 바람의 흐름을 흔들림으로 드러낸다. 삶의 자취도 시간의 흐름 속에서 나부끼는 제각각의 모습일 거다. 내가 기억하는 내 삶의 자취들은 순간에 스쳐 지나간 길고 긴 궤적이었다.
어릴 적 마을 앞 선착장에 여객선이 다가오면 누군가 오고 또 누군가 떠나가는 그곳을 향하여 무작정 뛰어가던 날들.
눈보라 치던 추운 겨울날 해풍에 실려 오는 눈보라를 피하려 둑길 옆에 고개를 납작 숙이고 기러기처럼 줄맞추어 종종걸음치며 등하교하던 날들.
풍어제 올리는 날이면 개구쟁이 꼬마들이 이 배 저 배에 몰려가 고삿밥을 얻어와 함께 먹으며 깔깔거리며 밤을 지새우던 날들.
절집에 와서 학인 시절 아주 이른 새벽에 일어나 꽁꽁 얼어붙은 수각의 얼음을 깨고 뼛속까지 스며드는 한기로 잠을 씻고 새벽 3시 한데보다 더 썰렁한 법당에 모여 새벽 예불을 드리던 날들.
청소년수련관을 만들자고 도반들과 문경 김용사에 모여 농사짓고 나무하고 법회해주면서 젊은 열정을 불태우던 날들.
중앙승가대학의 교육부 인가와 학사 이전을 위하여 촌음도 아까워하며 동분서주하던 날들.
불교의 유적을 찾아 배낭 하나 메고 원타, 함현, 현진 스님들과 천산북로와 천산남로를 오가며, 타클라마칸사막과 고비사막을 넘어 인도, 파키스탄, 중국, 티벳, 네팔, 스리랑카, 태국,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 등등 부처님의 자취를 따라 고행 정진하던 날들.
불교문학의 발전과 전승을 위하여 20년 세월 동안 쌓은 탑이 사익을 추구하는 무리들의 한심한 이기심으로 흔들리던 날들.
헤아릴 수 없이 수많은 흔적들이 순간에 스쳐 지나간 바람결에 흔들리는 나부낌이었다. 오늘 또 하나의 바람결에 나부끼는 흔적들을 시집으로 묶어 내면서 지난 시간과 다가오는 시간이 하나의 궤도로 이어지는 삶의 자취를 본다.
시집 출간을 위하여 수고한 양문규 시인, 이 시집에 새 옷을 입혀주신 오세영 시인과, 표사를 써주신 이하석, 김은령 시인께 고개 숙여 감사드린다.
살아온 날들과 살아갈 날들에서 만나고 헤어지는 인연의 행복을 기도드린다.
2019년 새해 아침
정취암에서
수완 합장
목차
- 제1부
여시아문·11
붓다, 그 눈뜸의 순간·12
I miss you·14
무우수나무 아래서·15
흐르는 길·1·16
흐르는 길·2·18
흐르는 길·3·20
금강반야바라밀경·22
기도·24
광장에 서다·25
타지마할·1·26
타지마할·2·28
귀향곡·29
사랑의 랩소디·30
눈꽃·31
쓰러진 고목·32
제2부
무문관·1·35
무문관·2·36
납월 팔일 소식·37
선탈(蟬脫)·38
유마의 방·1·39
유마의 방·2·40
자취·41
성도재일에 거울을 보다·42
이명증·43
귀밑에 내린 서리·44
봄소식·45
그릇·46
너구리 극락도·47
봄빛으로 오시는 님·48
낙산사 동종·49
나비의 꿈·50
제3부
가을비에 젖은 노랑나비·55
마음의 빗장·56
분노의 봄·58
멸도(滅道)·60
바람개비·63
대학살·64
설악 무산의 봄꿈·66
포물선·68
막 핀 꽃·69
우담바라·70
기억의 소실점·72
무지개 꿈·74
성스러운 손·76
금호역에서·78
흡혈귀·80
관심·82
제4부
소이 할매·85
연우 모친 소풍가던 날·86
어머니의 노래·88
소나무 존자·90
블루문·91
차창에 비친 흔적·92
아지랑이·94
연등·95
모내기 풍경·1·96
모내기 풍경·2·98
시월의 노래·99
태어나는 것, 그리고 떠나가는 것·100
회춘·102
연(緣)·1·103
연(緣)·2·104
연(緣)·3·106
해설·109
시인의 말·126
책 속으로
유마의 방·1
무엇이 참다운 삶에 이르는 길입니까?
운문선사는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키며
‘떡 먹고 가게나’ 한다
무엇이 차별 없는 세상을 여는 길입니까?
조주선사는 찻잔에 비친 그림자를 응시하며
‘차 마시고 가게나’ 한다
유마는 병문안 온 문수에게
‘중생이 아프니 내가 아프다’ 한다
오늘 우리가 드는 촛불은
우리가 사는 세상을 깨우는 함성이다
외침이다
출판사 서평
발고여락(拔苦與樂)을 향한 두타행
수완 스님의 다섯 번째 시집 『유마의 방』이 시와에세이에서 출간되었다.
수완 스님의 시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불교적 세계관이라 할 수 있다. 총 4부로 구성된 이번 시집도 그 연장선상에 놓여있다.
제1부의 시들은 기행시들의 모음이다. 대체로 인도의 성지 순례길에서 석가세존의 발자취를 회억(回憶)하는 내용들로 이루어져 있다.
무우수 꽃잎 나비되어 펄펄 날리는
룸비니동산으로 오세요
금빛 여우가 자유로이 뛰놀고
물소리 새소리 풀벌레 소리 한데 어우러진
봄빛 그득한 꽃 바다네요
마야왕비 무우수나무에 살포시 기대니
브라흐마의 옆구리가 열리고
빛나는 탄생의 동산이 됐네요
아홉 마리 용이 물을 뿜어 꽃다운 몸 씻으니
하늘 위와 하늘 아래
가장 존귀한 생명의 불꽃이 되네요
룸비니여! 룸비니여!
고귀한 씨앗 싹 틔운 땅
너와 나 그리고 우리
모두 함께 어우러진 생명의 바다
―「무우수나무 아래서」 전문
석가세존이 탄생하신 룸비니동산을 답사하면서 보고 느낀 환희와 감동을 여여하게 고백한 신앙시 한 편이다. 이렇듯 시인은 제1부에서 부처님의 행적을 따라 그의 발자취를 더듬는다. 그것은 시인에게 있어 한마디로 지상에 실현된 불국토(佛國土)에의 체험이자 자기 신앙에 대한 확인이라 할 수 있다.
제2부의 시들은 수행자로서 자신의 고뇌를 형상화한 작품들로 이루어져 있다. 거기에는 삶의 무상감이나 영원성에 대한 희원 혹은 성(聖)과 속(俗)의 여정에서 오는 감정들이 표출되어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깨달음에 이르고자 하는 갈망이 그 중심을 이룬다.
나는 누구인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 걸까?
다른 누군가에게
나를 묻는 나는 누구인가?
보이지 않는 누군가도 나에게 그 자신을 묻고 있다
우리들 모두 파닥거리는 날갯짓이 그리는
일렁이는 물결을 보고 있다
시공 안에서도 또 시공 밖에서도
그물에 걸린 세월의 잔상
봄 여름 가을 겨울
빛의 변화를 보고 이름을 붙인다
그 빛깔마다 각기 다른 고향이 된다
―「나비의 꿈」 부분
시인은 자신이 나비가 되어 있는 꿈을 꾸면서 꿈속의 나비가 원래의 ‘나’인지 아니면 인간으로서 꿈을 꾸고 있는 내가 실제의 ‘나’인지 알 수 없는 미몽(迷夢) 속에 빠져든다. 그리고 끝내 그 해답을 얻을 수 없다. 다만 확실한 것은 꿈이 즉 현실이고 현실이 즉 꿈인데(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 나비이든 인간이든 그 미몽의 허공 속에서 거미줄에 걸려 허덕거리는 존재가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어떻게 그 걸린 거미줄을 벗어나 하늘로 비상할 수 있는가. 분명한 것은 그 무엇보다 내가 누구인지를 먼저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시인은 이렇게 절규한다. “나는 누구인가?/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 걸까?/다른 누군가에게/나를 묻는 나는 누구인가?” 묻고 있다.
제3부는 수행자로서의 현실 인식을 보여준 시편들이다. 그것은 구도의 희원을 노래한 것도 자아 탐색을 염두에 둔 것도 아닌. 그러니까 우리가 발을 딛고 사는 이 사바세계의 안녕과 평화에 대해 소명하는 시편들이다. 그의 이 제3부의 시가 앞서의 시들과 달리 이렇게 ‘나’가 아닌 ‘우리’의 문제를 들고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우린 오늘 어디에 서 있는가?
그리고 또 우린 무엇을 보는가?
―「우담바라」 부분
무릇 모든 종교란 신자 개인의 기복과 구원의 문제만을 염두에 두어서는 안 될 일이다. 보다 넓게 그가 생을 영위하고 있는 이 현실 삶의 모순과 고통을 해결해주는 것 또한 주요한 본분일 터, 인간은 원래 실존적이면서도 사회적인 조건 아래 놓여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시인은 제3부에서 우리 사는 세상의 질곡과 불합리를 비판하면서 불국정토(佛國淨土)의 이상이 실현되는 미래 세상을 꿈꾸는 데 있다.
제4부의 시는 불교적 이상과 향토적 세계가 조화된 삶을 형상화한 시편들로 수완 스님이 궁극적으로 이루고자하는 시적 세계다.
황소 등에 쟁기를 매달고 가르마 타듯 논바닥을 갈아엎은 후
봇도랑 물꼬를 터 가르마 등대기가 잠길 듯 물을 채운다
쟁기를 떼어내고 써레를 바꿔단 후 미끄럼 타듯 물살을 가르며
골진 바닥을 굴곡 없이 평평히 고른다
물수제비뜨는 제비들이 제트기처럼 빠르게 그 위를 난다
한 뼘 넘게 자란 모를 찌는 아낙네들의 손놀림도 경쾌하다
콧노래 소리에 흥을 돋우다가
만석이 아재 선소리에 맞추어 합창 소리 들녘을 채운다
모 시중하는 아이들도 더덩실 춤바람난다
못줄 넘기는 손이 경쾌해질수록 모심는 손놀림도 바빠지고
물살 가르는 소리가 장단을 이룬다
줄 넘어가요?
새참 나올 즈음이 가까워지면 개구리 떼같이 아이들도 함께 모인다
못밥에 생선찜이 어른도 한몫이고 아이도 한몫이다
물빛에 일렁이는 하늘 가득
산 메아리 소리 들 메아리 소리
?「모내기 풍경·1」 전문
늦은 봄, 농촌의 모심는 정경이 하나의 수채화처럼 그려져 있다. 비가 흡족히 내려 논 가득히 물살이 잠방대는 무논, 그 위를 스치듯 나는 제비 떼, 모를 찌는 아낙네의 부지런한 손놀림, 격앙가를 부르는 농부들의 모심기, 새참을 나누는 그 푸짐한 농경 공동체의 인심, 이 모두는?지금은 다소 사라지기는 했다 하나 소중히 간직해야 할?우리네 농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들이 아니던가. 직접적으로 불교시를 지향하지는 않았다 하나 그의 향토시들은 이처럼 우리의 전통적 삶의 아름다움과 그 안에 내재한 자연주의를 하나의 이상으로 탐구하고 있다. 이 또한 분명 정신 분열적인 것, 무의식 무의미적인 것에 집착하고 있는 요즘 우리 시의 유행 세태와는 온전히 다른 수완 스님만의 시 세계라 할 것이다.
대성산 자락 정취암 벼랑 위의 소나무가 인상 깊다면 수완 스님을 볼 일이다. 스님이야말로 그 주인이자, 절친한 객이기 때문이다. 소나무는 절벽 위 아찔한 삶을 제격으로 삼지만 어지러워하지 않고, 오히려 낮은 곳의 삶이 더 아찔한 지경임을 넌지시 우리에게 일깨운다. 스님이 시를 쓰는 게 그 일깨움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하심(下心)을 두루 뻗쳐 우리에게 말을 거는데, 그 말은 너그러우면서도 간곡한 가파름까지도 품고 있어서 예사롭지 않다. 스스로를 넘어서 더 사랑한다면 그렇게 우렁거리는 게 한결 떳떳하지 않겠는가. “추녀 끝에서/하늘을 나는 물고기”인 그는 “문 없는 문을” 여는 이. 그리하여 그의 사랑은 벽이 없어서, 산간을 노닐며 “선탈의 매미”가 되기도 할 뿐만 아니라, 광장에서 피워 올리는 촛불에 공감하고, 세월호의 그 바다에 핀 울음의 큰 꽃으로 나비가 되어 내려앉기도 한다. 그러므로 이 시집은 “천 개의 손으로/천 개의 눈으로/내 눈을 적시며/불현듯 오시는 님”을 세상 그 복판에서 가득 맞으려고 발뒤꿈치를 든, 또는 가파른 길목에 솟은 한 청청한 소나무가 품은 열린 바람의 속삭임이 아닐 수 없다._이하석(시인)
쉬라바스티, 쿠시나가르, 야무나강을 거쳐, 금남로, 봉화, 팽목항, 산청군 신안면의 소이리까지 흐르는 그 길에는 부처, 성자, 소, 개, 너구리, 나비, 소나무, 꽃, 바람, 안개가 있고, 그들은 세월호, 로드 킬, 살처분, 올무! 등에도 가 닿아 있다. 그 풍경은 경이롭고, 온유하고, 처참하고, 아프고, 애잔하고, 아득?아득하기도 하다. 절암현정취(絶巖懸淨趣)에 머무르며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문 없는 문을” 열고 나와 길 위에 길을 내는 시인 수완 스님의 만행(萬行)을 따라가며 “풀무치들을 처참하게 휩쓸은/눈에 거슬리는 것들은 모조리 잡아들인”, “불길 속에 온몸이 녹아 내려/등신불이 되는”, “자지러지는 여름” “소나무 사이로 스치는 바람결” “풍류를 즐기던 매미/화들짝 놀라 허물을 벗는” “태어남의 소리와 죽어가는 소리가 다르지 않음”을 보았다. 『유마의 방』은 야단(野壇)에서 펼치는, 대기설법(對機說法)의 진경을 보여주고 있다._김은령(시인)
기본정보
ISBN | 9791186111598 | ||
---|---|---|---|
발행(출시)일자 | 2019년 01월 31일 | ||
쪽수 | 127쪽 | ||
크기 |
131 * 207
* 17
mm
/ 173 g
|
||
총권수 | 1권 | ||
시리즈명 |
시에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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