젖은 국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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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규 시인의 두 번째 시집
꿈꾸었던 세상이 더디게 사라지길 바라면서
가난하여 배를 채우는 일이 무엇보다 급선무였던 유년 시절은 이미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수 없는 과거가 되었다. 마음속에 나비를 품고 사는 시인은 일탈을 꿈꾸었으나 현실을 살아내고 있다. 여전히 인문학을 외면할 수 없어 펜을 든 시인의 눈에 비친 세상을 시집 안에 담았다. 때로는 차돌멩이처럼 단단하게, 때로는 허허롭게 담아낸 시에선, 나비의 날갯짓이 느껴지는 듯하다.
작가정보
저자(글) 주민규
서울 근처에서 생각보다는 오래 잘 살고 있습니다.
목차
- 책을 내며
연두
첫 번째 이별
젖은 국수
공술
골목
도보 순례자
고목
나 아니면
칼갈이
여름
시인
일몰
기울어진 운동장
터미널
선운사
미꾸라지
비가 오면 옷을 벗고 싶다
국제서점
그녀를 보내고
갈매기
산지기
덫
생일
산에 가는 길
하늘로
맑은 날
산동네
고양이의 꿈
관계
꽃사랑
그릇
해당화
수정봉
간이역
사당
흔적
꽃 방울
들판에서
전봇대
세월
참새
하루살이
부두
로또
마누라
앞바퀴
여보
뒷바퀴
백수
들병이
발바닥
막차
어느 비 오는 날
까치
와락
발톱
어떤 하루
똥배
해방
꽃비
북한강
후회
봄
토지
꽃
가을아
별
돼지 저금통
가을비
호랑이
바람
남산
변기
낮술
책 속으로
세상이 궁금하면 세상 속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그전에 내가 누구인지부터 알고 싶어서 산으로 들로 무리에서 떨어진 들개처럼 쏘다니다가 산등성이에서 나비 두 마리를 만났다.
장자에게는 평화를 파피용에게는 자유를 꿈꾸게 해 준 나비가 내 마음 속에서 또 다른 나비로 살아 숨쉬고 있더라.
그 나비로 수십 년을 산다.
평생 일탈을 꿈꾸면서 살았는데 어쩌다가 들른 서점의 매대에서 죽어가는 시집들을 보고 가엾게 죽어가는 인문학을 이대로는 보낼 수 없어서 펜을 들었다.
첫 번째 시집으로 이 세상에 나왔으니 두 번째 시집으로 홀가분하게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한다.
전문 작가가 아니라서 어색하지만 이렇게라도 해서 내가 꿈꾸었던 세상이 사라지는 것을 조금이라도 더디게 하고 싶다.
대부분의 시간을 무리 짓지 않고 홀로 살아온 세상에서 평범하게 살아 가는 꿈을 꾸면서….
어차피 세상은 제멋대로 가겠지만 사람들이 이 시집을 보고 용기를 얻어서 더 많은 사람들이 글을 쓰고 출간하길 바란다.
- 4~5쪽, 책을 내며
국수가게 안에서는
젖은 국수를 팔고 있습니다
미닫이처럼 닫혀 있는
하얀 국수커튼을 밀고 들어서면
물에 젖어서 두 배나 몸을 불린
국수가 가마솥 옆에 자빠져 있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지만
끊임없이 하얗게 쏟아져 나오는
마른 국수 가락만 응시하다가
젖은 국수 오십 원어치를 주는 대로 받아서
주인의 눈초리를 피하면서
하얀 막을 반으로 가르고 얼른 나왔습니다
어디서 주워 온지도 모르는 솥단지 속으로
젖은 국수에 딸려 들어가는
하얀 마른 국수 몇 가락이 안타까워서
나는 속이 타들어 가는데
배 속에 들어가는 것보다
입에 들어가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모르는
어른들 속은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내일도 국수가게 밖에서는
변함없이 마른 국수 가락이 휘날리겠지만
나는 애처롭게도 젖은 국수를 사러 가게 안으로 들어가야만
할 것입니다
군둥내 나는 김치밖에 없는 밥상
젖은 국수 무덤 속에서 마른 국수 한 가닥을 찾아서
입에 넣습니다
- 14~15쪽, 젖은 국수
풀잎 하나 입에 물고 산등성이로
붉게 떨어지는 해를 바라본다
그 사람, 돌아오지 못할 것을 알지만
이렇게 기다릴 수밖에 없는 것은
내가 사랑했던 사람이기 때문이다
더 기다려도 된다면
기다리다가 나도 그 사람 곁으로 가고 싶은데
그 사람은 영영 돌아올 수 없고
나는 아직 사랑이 끝나지 않아서
엇갈린 사랑 때문에
사랑을 산에 묻고 세월도 산에 묻고
빈 지게로 산을 지고 나르는
고독한 산의 주인이 되어
영원히 오지 않을 사람을 기다리며
산이 되어 산에서 산다
- 49쪽, 산지기
기본정보
ISBN | 9791165399467 |
---|---|
발행(출시)일자 | 2021년 09월 01일 |
쪽수 | 149쪽 |
크기 |
141 * 211
* 14
mm
/ 245 g
|
총권수 | 1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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