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파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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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등지느러미가
다른 범고래들과 다르다는 거.”
과거에 얽힌 미스터리
삶과 죽음, 기억과 꿈을 따라 풀어 나가는
한 편의 아름다운 시 같은 소설
병원 침대 위에 메모 한 장 달랑 남겨 놓고, 그 길로 경주 함월산의 골굴사로 들어온 이도익. 그는 이곳에서 이름 대신 “이 행자”로 불리며, 스님들과 법사, 다른 행자들과 함께 선무도를 수련하며 지내기 시작한다.
입산하던 날, 도익(이 행자)은 요사채 방에서 『고래의 시』라는 한 권의 책을 발견한다. 이상하게도 그날 밤부터 거대한 범고래 ‘틸리’가 나오는 꿈을 꾼다. 한편 자신을 둘러싼 주변 환경, 사람들의 말과 행동 속에서, 분명 자신이 과거에 겪었던 일인 것만 같은 기시감을 느끼는 이 행자. 그때마다 눈앞이 아찔해지는 현기증을 겪는다.
이제 그는, 마치 자신의 꿈속에 나오는 ‘30년 만에 수족관에서 풀려난 범고래’ 틸리처럼, 눈앞에 끝없이 펼쳐진 기억의 바다 위를 헤매기 시작하는데….
작가정보
목차
- 일러두기
1. 고독
꿈 Ⅰ / 입산 / 고독 / 삼천배 / 삭발 / 선무도 / 특별 수련 / 강 행자 / 꿈 Ⅱ
2. 만남
거시기 / 만남 / 포행 / 권주먹, 감각 / 펩시콜라 / 장 사범 / 태양이 / 촬영 / 꿈 Ⅲ
3. 그리움
임 행자 / 그리움 / 산소 / 편지 / 발우공양 / 꿈 Ⅳ
4. 교감
골굴사 / 새싹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 교감 / Tim / 스마트폰 / 경용암 /
다시 삼천배 / 꿈 Ⅴ
5. 자유
후라이드 치킨 / 법문 / 자유 / 보법 / 월간지 / 꿈 Ⅵ
6. 다른 세상
임 행자의 왼손 / 검정색 세단 / 꿈과 기억 / BTS / 죽음 / 몸을 바꿔 태어나다 /
다른 세상 / 영동행관 / 꿈 Ⅶ
7. 꿈
동아의 꿈 / 꿈, 고래의 시 / 아버지 / 고래 배 속에서 나온 어부 / 단식 / 별똥별 / 꿈 Ⅷ
8. 기다림
기억상실 / 이상한 꿈 / 영동입관 / 꿈 Ⅸ / 연대 / 파편
작가의 말
적운 스님의 말
책 속으로
“그날, 장례가 끝나고 주지 스님이 이상한 위로를 해 주셨어요.” “이상한 위로?” “네. 좌관하다 보면, 누구든 만날 수 있다고. 염원하는 사람은 누구든. 엄마도 볼 수 있다고.” “꿈속에서 만나는, 그런 거네요.” “아뇨. 현실 만남과 똑같대요. 스님은 양익 스님을 종종 찾아뵙는다고. 좌관하며. 대화도 나누고 궁금한 것도 여쭙고.” “말도 안 돼요. 양익 스님이면, 2006년도에 좌탈입망 하셨잖아요?” “맞아요.” “강 행자님, 그렇게 따지면 세종 대왕, 이순신, 부처님, 예수님, 다 만날 수 있는 거네요. 말이 됩니까? 무협지에나 나오는 얘기를….” “그게 다 가능하대요. 제가 하는 얘기가 아니라 주지 스님이 그러셨다니까요. 그래서 좌관하면 지혜를 얻을 수 있고 참선을 공부한다고 말하는 거래요.” “그럼, 강 행자님도 그런 적 있어요? 좌관하며…. 아, 어머니 뵙고, 하고 싶었던 이야기 나누시면 되겠네요!” “그런 능력이 생겨도, 생기더라도 저는 어머니하고 마주할 수 없어요. 자신 없어요.” “왜요?” “그냥 그래요. 그리워하는 거로 족해요.” “아무튼, 이상한 위로…. 맞네요.” “이 행자님, 그리움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그리움이요? 글쎄요.” “그리움은 만날 수 없는 사람을 생각하는 거예요. 만날 수 없는 사람과 함께했던 시절을 생각하는 거죠. 만날 수 없는 사람이 했던 말을 되새기는 거. 어머니 돌아가시고 온종일 어머니만 생각한 적은 없지만 저는 단 하루도 어머니를 생각하지 않은 날이 없어요.”
(108쪽)
“틸리, 넌 왜 다른 범고래와 어울리지 않니?” 케토가 틸리의 귓가에 와서 물었다. “….” “진짜로 아무도 없는 거야? 친구가 하나도 없어?” 틸리가 말이 없자 케토가 다시 물었다. “몰라.” “이유가 있을 거 아니야?” “30년 만에 바다에 오게 됐는데, 친구가 있겠어?” 케토가 놀라서 날개를 퍼덕였다. “난 두 살 때 인간에게 포획됐었어. 그것도 엄마, 아빠가 보는 앞에서. 그게 30년 전이야.” “포획? 30년 전에?” “그래. 30년 동안 난 수족관에서 부모와 친구들 그리고 바다를 그리워하며 지냈지. 시간이 지나면서 그리움은 분노, 슬픔, 그리고 절망으로 변해 가더군. 그런데 요즘엔 엄마, 아빠의 아픔을 생각해.” “엄마, 아빠의 아픔?” “자식이 포획되는 걸 무기력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부모. 자식을 잃고 자책하면서 마음 아파하고 자식을 그리워했을 부모. 그게 아픔이 아니고 뭐겠어?” “고향에 가면 가족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고향이 어딘지는 기억할 수…, 설마 고향이 어딘지 모른다는 건 아니겠지?” “난 한 번도 내가 자유롭게 헤엄치며 놀던 바다를 잊어 본 적이 없어. 너무나 많은 것이 변해서 어릴 적 내가 놀던 바다를 찾을 수가 없을 뿐이야.” “바다가 변했다고?” “그래.” “틸리, 도대체 뭐가 변했다는 거니?” 케토는 도대체 30년 전의 바다가 지금의 바다와 뭐가 다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음, 수온도 다르고. 물의 깊이에 따라 변하는 압력도 달라. 바람의 느낌도, 냄새도 달라. 물의 흐름과 방향, 유속도 다 변했어. 물맛도 다르고. 그래서 내가 기억하는 바다를 찾을 수 없다는 거야.” 케토는 고개를 갸웃했다. “틸리, 그럼 혹시 하늘도 바다처럼 변할까?” “그렇지 않을까? 바다가 이렇게 변했는데 당연히 하늘도 변하지 않겠니? 세상에 변하지 않는 건 없어.”
(120쪽)
“스님, 제가 이상한 꿈을 꿉니다. 그것도 연속극처럼 꿈이 이어집니다. 시간이 지나도 생생하구요.” “….” “다른 꿈은 아침에 잠깐 생각났다가 잊히는데, 이 꿈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그래, 무슨 꿈을 꾸는데?” 이 행자는 스님에게 그동안 자신이 꾸었던 ‘틸리’라는 범고래와 갈매기 ‘케토’ 이야기를 했다. “예전에 말이야. 고래에 관심이 남달랐던 행자가 한 명 있었어. 그 아이는 고래를 소재로 책을 쓰겠다고 했었지. 틈만 나면 종무소 컴퓨터 앞에 앉아 있곤 했어. 자네 얘길 들으니 그 행자 생각이 나.” “아, 네.” “자네가 그 행자 아닌가?” 갑자기 주지 스님이 정색하고 물었다. “….” “자네가 종무소 컴퓨터 앞에 앉아 고래 이야기를 쓰던 행자가 아니냔 말일세!” 이번엔 스님이 벼락같이 호통을 쳤다. “네…?”이 행자는 움찔했다. 황당하기도 했다. 겁도 나서 머리끝이 쭈뼛해졌다. 도대체 어떻게 처신을 해야 할지 몰랐다. “하하하! 뭘 그렇게 놀라나? 농담을 농담으로 들으면 되지.” “…아, 네.” 이 행자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러나 방금 전 스님의 무서운 표정과 벼락같은 목소리의 여운은 가시지 않았다. 스님의 변화무쌍한 모습이 섬뜩했다.
(147쪽)
“혹시 그거 아니? 너의 등지느러미가 다른 범고래들과 다르다는 거.” “옆으로 쓰러져 있는 거 말하는 거니? 알고말고.” “왜 너만 그래?” “어렸을 땐 나도 꼿꼿했었어. 언제부터 옆으로 쓰러지게 됐는지 정확히 기억나진 않아. 음, 수족관에서 지내면서 그렇게 된 것 같기는 해. 아무튼, 지금은 움직여지지 않아.” “전혀 못 움직여?”“응. 감각이 없어.” “혹시 다쳐서 그런 거 아니니?” “아니야. 다친 적 없어.” “다른 고래들도 그러니? 수족관에 있던 범고래 말이야.” “그곳에서 지내는 범고래들은 모두, 나처럼 등지느러미가 옆으로 쓰러져 있었어.”
(156쪽)
“세상에는 내 것이라 할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 『금강경』에 ‘과거심불가득過去心不可得’, ‘현재심불가득現在心不可得’, ‘미래심불가득未來心不可得’ 하는 거거든. 나 말고는 누구도 볼 수 없는 내 마음조차 내 것이 아닌 거지.” 주지 스님이 다시 말을 멈췄다가, 법문을 이어 갔다. “내가 반야심경이 한마디로 지혜의 완성이라 했는데, 사실 완전한 지혜는 완전한 자유와 같은 말이야. 생멸과 감각, 인식, 마음과 마음의 작용, 모든 것이 실체가 없음을 깨달아야 비로소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롭게 돼. 그럼 완전한 자유를 얻게 되느니….” 탁! 탁! 탁! 주지 스님은 죽비를 크게 세 번 치며 법문을 마쳤다. 죽비 소리에 권 행자가 놀란 듯 어깨를 들썩였다. 주지 스님의 눈을 피해 고개를 돌리던 태양이는 뭐가 그리 좋은지 주지 스님을 보며 싱글벙글했다. “임 행자님, 스님 말씀이 맞는 것 같아요.” 법당을 나오며 강 행자가 말했다. “오늘 아침에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는데 똥이 안 나오는 거예요. 저는 똥을 누고 싶은데 말입니다. 변비도 아닌데, 참. 똥 누는 것도 내 맘대로 할 수 없으니, 스님 말씀대로 내 몸을 내 것이라 할 수 없죠.”
(173쪽)
“이 행자, 한 가지 물어보겠네. 자네가 이 방에 들어와 거기 무릎을 꿇고 앉는 그 짧은 시간 동안에 이 공간에서 무엇을 보았는지 말해 보겠는가?” 스님의 물음에 이 행자는 고개를 숙였다. 그의 머릿속에는 좌탁 위에 놓인 찻잔과 스님 등 뒤 책장에 꽂힌 책들 그리고 방바닥이 떠올랐다. 이 행자가 대답하려는 찰나, 스님의 물음이 다시 이어졌다.“자네는 문 옆에 놓인 우편물을 보았는가? 내 등 뒤에 있는 책 중에 한 권만 제목을 말할 수 있겠는가? 내가 지금 안경을 끼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주지 스님은 연이어 질문을 던지면서 고개 숙인 이 행자의 정수리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이 행자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했다. 특히 안경을 끼고 있느냐는 마지막 물음 때문에 더 그랬다. 스님의 눈빛과 표정은 기억나는데 안경을 꼈는지가 기억나지 않았다. 어이가 없었다. 이 행자는 고개를 들어 스님을 보지 않았다. 자신의 기억에 의존해 대답하라는 것이 스님의 뜻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습게도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우편물은 없었던 것 같고 책 제목을 기억한다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단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스님은 안경을 쓰지 않았다는 대답을 마음속으로 했다. “자네는 기억나지 않는다거나 못 보았다고 말할지 몰라. 하지만 우리 무의식은 수없이 많은 것을 보고, 우리 뇌는 그 많은 것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세포에 저장하고 있지. 인간의 뇌를 ‘소우주’라고 하지 않나. 1,000억 개가 넘는 뇌 신경세포. 그 신경세포의 무한한 연결과 조합. 그로 인해 만들어지는 무수한 생각과 무수한 기억의 공간들. 까마득해서 헤아릴 수 없는 다른 세계지. 마치 아득한 우주처럼.” 스님은 그렇게 말하고 안경을 벗어 좌탁에 올려놓았다.
(203쪽)
기본정보
ISBN | 9791165398347 |
---|---|
발행(출시)일자 | 2021년 07월 02일 |
쪽수 | 290쪽 |
크기 |
147 * 211
* 22
mm
/ 346 g
|
총권수 | 1권 |
Kl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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