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 간 사회이동의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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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정보
저자(글) 박현준
박현준은 미국 위스컨신대학교(University of Wisconsin-Madison)에서 사회학을 공부하고 박사학위를 받았고 현재 유펜대학교(University of Pennsylvania) 사회학과에서 교수로 일하고 있다. 한국의 세대 간 사회이동과 교육 불평등, 가족 변화, 청년의 성인기 이행 등을 비교관점에서 연구하고 있다.
목차
- CHAPTER 01│ 서 론 3
1. 세대 간 사회이동과 대물림 3
2. 더 이상 개천에서 용이 나지 않는다는 주장에 시비 걸기 #1 7
3. 더 이상 개천에서 용이 나지 않는다는 주장에 시비 걸기 #2 10
4. 더 이상 개천에서 용이 나지 않는다는 주장에 시비 걸기 #3 12
5. 더 이상 개천에서 용이 나지 않는다는 주장에 시비 걸기 #4 13
6. 더 이상 개천에서 용이 나지 않는다는 주장에 시비 걸기 #5 14
7. 그럼 이 책에서 하고 싶은 말은? 17
8. 이 책의 내용 18
CHAPTER 02 │ 사회이동의 개념적·이론적 논의 25
1. 개념적 이해 25
2. 사회이동에 대한 이론적 시각 47
CHAPTER 03 │ 한국 사회의 세대 간 사회이동 추이 73
1. 분석 대상 73
2. 계급 구성 변화 77
3. 절대적 이동율 80
4. 상대적 이동 106
5. 직종을 중심으로 살펴본 사회이동 112
6. 확인: 상대적 사회이동은 정말 증가했는가? 126
7. 상대적 사회이동은 어떻게 증가했는가│ 132
CHAPTER 04 │ 세대 간 사회이동의 국가 간 비교 145
CHAPTER 05 │ 결 론 157
출판사 서평
한국학 총서 서문: 한국의 교육과 사회이동
최근 들어서 한국사회에서의 사회이동에 대한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개인의 노력과 능력에 따라서 직업을 선택할 수 있고 부모 세대와 다른 직업과 지위를 획득할 수 있다고 믿어 왔다. “개천에서 용이 난다”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가난한 집안의 자녀들도 열심히 노력하면 부모세대보다 더 좋은 직업과 높은 사회적 지위를 얻을 수 있다는 믿음이 한국 사회의 오래된 가치관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가치관에 대하여 비판적인 인식도 많다. 자녀의 직업과 지위는 개인적 노력보다는 부모의 학력이나 직업, 재산 등 다양한 가정배경 요인에 더 많은 영향을 받기 때문에, 사회이동 가능성은 더욱 줄어들며 불평등구조는 더욱 고착화된다고 믿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사회이동의 계층사다리가 사라졌다” 혹은 “사회적 지위향상의 엘리베이터가 고장났다”는 주장은 이러한 의견을 반영한다.
또한 사회이동에 대한 논란이 제기될 때 자주 등장하는 문제는 교육의 사회이동 효과이다. 소수의 집단만이 교육을 받는 전통사회와 달리, 현대 한국사회는 최소한 초·중등학교에서 교육받을 기회를 전 국민에게 동등하게 제공해 왔으며 대학교에 진학할 수 있는 기회도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교육기회를 활용하여 좋은 일자리를 선택하고 더 높은 사회적 지위를 얻고자 노력하기 때문에, 교육은 현대적 사회계층 이동의 주요 수단으로 인식되어 왔다. 한국사회에서 교육열이 높고 명문대학 진학 욕구가 강한 것은 이러한 사회이동의 순기능적 효과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교육불평등이 심화되면서 교육을 통한 사회이동 가능성이 줄어든다는 주장이 확산되고 있다. 가정배경이나 거주지역에 따라서 더 좋은 교육을 받을 기회가 달라지며, 부모의 학력이나 직업, 재산 정도 등이 자녀의 명문 학교 진학률, 안정적이고 전문적인 직업 선택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특히 고학력층 청년세대의 실업률이 증가하고 비정규직 고용이 확대됨에 따라서 고등교육이 사회적 지위형성에 미치는 긍정적 효과 혹은 교육을 통한 세대 간 사회이동 가능성에 대한 회의적 시각이 확대되고 있다.
교육과 사회이동은 교육기회 확대와 사회구조 변화를 경험한 많은 국가에서도 주요 관심사항이다. 학자들은 부모·자녀 세대 간 직업지위의 연관성 혹은 교육기회 확대에 따른 사회이동 결과 등을 분석하고 국가·시기별 사회이동의 개방성 혹은 폐쇄성에 대해서 다양한 결론을 제시하였다. 또한 전 세계적으로 사회적 불평등이 심화되면서 이 주제에 대한 관심은 더욱 높아졌으나, 이들의 연구에서도 단일한 결론이 제시되는 것은 아니다.
교육과 사회이동에 대한 학계의 논의를 고려할 때, 한국사회의 사례를 연구하는 작업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주지하다시피 한국의 교육팽창 경험은 다른 나라와 비교해도 예외적인 사례이다. 근대적 교육제도를 도입한 미국이나 유럽의 국가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신흥공업국도 대부분 교육기회를 확대해 왔으나, 한국은 이러한 국가보다 더 빠른 속도의 교육팽창을 경험한 바 있으며 현재 전 세계에서 고등교육 이수자가 가장 많고 여성의 고학력화 경향이 매우 높은 나라 가운데 하나로 알려져 있다. 또한 이러한 교육팽창은 ‘고도성장’ 혹은 ‘압축성장’으로 지칭되는 역동적인 사회변동에서 나타난 현상이다. 해방 후 산업화가 낮은 수준에 머물렀던 시기, 중화학공업을 중심으로 하는 고도성장기, ‘IMF위기’로 상징되는 경제위기 시기, 세계화와 정보화의 흐름이 본격화된 시기에 이르기까지, 한국은 시기별로 다른 특징을 나타내는 사회경제적 변화를 경험하였으며 교육팽창도 이러한 거시적 변화의 흐름에서 나타났다. 각 시대별로 인구구조, 직업구조, 교육제도, 노동시장 작동방식 등이 복합적으로 변화하면서, 부모세대와 자녀세대의 교육성취 정도가 변화하였고 사회이동의 형태와 가능성도 시기별로 상이하게 나타났다. 따라서 한국의 경험을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 사회이동 문제를 종합적으로 이해하고 이 주제에 대한 이론을 정립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한국사회의 전반적인 사회이동 가능성과 교육의 사회이동 효과 등에 대해서는 많은 의문이 제기된다. 한국의 사회이동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변화하였으며, 최근 들어서 사회이동 가능성이 축소되었는가? 교육기회가 팽창되는 상황에서, 고등교육 제도의 확대는 교육불평등을 완화시켰는가 아니면 강화시켰는가? 부모의 사회경제적 배경이 고등교육에 미치는 영향력은 어느 정도인가? 교육이 직업이나 임금 등 노동시장 성과에 미치는 영향은 고학력화 되는 한국사회에서 어떻게 달라져 왔는가? 교육기회 확대는 남성과 여성에서 어떻게 상이하게 나타나는가? 여성의 고학력화는 여성의 노동시장 지위와 사회진출, 결혼 등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이 연구총서는 국내외에서 활동하는 사회학자와 교육학자 5인이 교육과 사회이동을 주제로 3년간 공동 연구한 결과이다. 연구진들은 한국과 미국에서 사회이동, 교육불평등, 사회계급, 노동시장 등을 오랫동안 연구하고, 다양한 학술모임에서 교류하면서 최근 한국사회의 경험에 대하여 논의해 왔다. ‘한국의 교육과 사회이동’에 관한 체계적인 연구가 필요하다는 공감대를 형성하고 한국학중앙연구원으로부터 3년간(2015년 12월부터 2018년 11월까지) 연구비를 지원 받아 세부 주제별 실증분석을 실시하였다.
본 연구팀은 ‘부모 계급, 자녀 학력, 자녀계급’의 삼각형 연구모형을 활용하여 한국 사회이동의 세 가지 경로를 분석하였다. 이른바 OED로 지칭되는 이 연구모형은 학계 전문가들이 세대 간 사회이동을 연구하는데 일반적으로 활용하는 분석틀로서, 부모계급(Origin)과 자녀계급(Destination)의 연관성, 부모계급(Origin)이 자녀교육(Education)에 미치는 효과, 자녀 교육(Education)이 자녀계급(Destination)에 미치는 효과를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데 유용하다. 또한 연구팀은 교육과 사회이동이 성별로 상이하다고 가정하고, 여성의 고학력화 경향과 사회이동을 별도로 분석하였다.
《한국학총서》 4권은 이러한 삼각형 모형에 따른 연구결과이다. 1권은 “세대 간 사회이동 변화”, 2권은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와 자녀의 교육 결과”, 3권은 “교육 프리미엄”, 4권은 “교육, 젠더와 사회이동”을 주제로 한다. 독자들이 4권 주제의 연관성을 고려하여 읽는다면, 한국의 교육과 사회이동에 대한 전체적인 논지를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각 권의 내용을 간략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권(“세대 간 사회이동 변화”)은 부모의 계급이 자녀의 계급 성취에 미치는 영향을 시기별로 분석하고, ‘한국 사회가 사회이동의 관점에서 얼마나 개방적으로 변화하였는가?’를 설명하였다. 사회이동과 관련하여 절대적 이동(absolute mobility)과 상대적(relative mobility) 이동을 개념적으로 구분하고, 사회조사자료를 기초로 한국사회의 세대 간 사회이동 추이를 실증적으로 분석하였으며, 국내외 세대 간 사회이동 현실을 비교하였다.
2권(“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와 자녀의 교육 결과”)은 지난 반세기 한국 사회에서 부모의 사회 경제적 지위가 자녀의 교육 결과에 미치는 영향이 어떻게 변화되어 왔는지 실증적으로 분석하였다. 계층 이동에 있어 교육의 역할에 대한 사회학적 이론을 검토하고, 한국 사회의 교육기회 확대 과정과 교육제도 변화를 고찰하였다. 교육과 사회계층이동 조사, 인구총조사, 국제학생학업성취도평가 등 다양한 자료를 활용하여 양적 측면과 질적 측면에서의 교육 불평등 변화 양상을 분석하였다.
3권(“교육 프리미엄”)은 개인의 교육성취가 임금과 직업 등 노동시장 성과에 미치는 영향을 규명하였다. 교육과 노동시장에 대한 국내외 이론을 검토하고 한국사회의 교육과 임금·직업 등 노동시장 성취에 대한 실증적 연구를 수행하였다. 다양한 사회조사 원자료를 활용하여, 한국사회에서 학력과 노동시장의 연관성, 특히 고학력층의 노동시장 성과를 분석하고 연령집단 혹은 성별로 비교하였다.
4권(“교육, 젠더와 사회이동”)은 한국사회에서 교육과 계층화 과정의 성별 차이를 설명하였다. 교육제도 변화가 교육성취, 임금 및 사회이동에 미친 효과를 성별로 구분하여 연구할 필요성을 설명하고, 가부장제 사회에서 성별에 따른 교육과 사회이동의 연관성을 이론적으로 정리하였다. 특히 여성의 경우, 교육을 통한 사회이동은 직업을 통한 사회이동과 결혼(남편)을 매개로 한 사회경제적 지위획득 두 가지로 나타난다는 점을 설명하였다.
현재의 연구결과를 사회이동의 삼각형 모형으로 종합 정리하면, 한국의 사회이동이 시기·연령별로 크게 다른 경향을 보인다고 주장하기 어렵다. 사회이동의 첫 번째 경로인 부모세대(Origin)와 자녀세대(Destination)의 계급 연관성은 약화되었다. 절대적 이동은 산업 및 직업구조 변화의 지체로 인하여 더 이상 크게 늘지 않지만(상승이동은 줄어들고 하강이동은 늘어남), 상대적 이동은 오히려 더 활발해졌다. 다시 말해 한국 사회의 개방성이 더 늘어난 것이다. 또한 ‘학력’을 기준으로 할 때, 가정배경(Origin)이 자녀의 교육(Education)에 미치는 효과가 예전보다 더욱 강화되었거나 이러한 학력의 노동시장 효과가 변화되었다고 단정하기도 어렵다. 대학이라는 고학력이 임금수준과 직업획득에 미치는 효과도 일시적인 변화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으로 지속되고 있다. 그리고 대학졸업자 등 고학력층의 노동시장 성과도 크게 변화하였다는 실증적 증거를 찾기 어렵다.
그러나 이러한 사회이동 경향이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 거시적인 관점에서 볼 때, 한국의 사회이동이 일정한 패턴을 유지해왔던 것은 교육과 노동시장이 긴밀하게 연계되었기 때문이다. 교육제도 변화에 따라서 대학졸업자 등 고학력층은 양적으로 빠르게 늘어났으며, 동시에 전문·관리·사무직 등이 확대되면서 노동시장에서의 상층이동 기회도 증가하였다. 교육팽창과 노동시장 확대가 비교적 긴밀하게 연계되면서, 학교졸업자들의 노동시장 이전(transition from school to work)은 안정적으로 지속되었다. 그러나 1997년의 경제위기 이후 교육과 노동시장의 연계성은 약화되고 있다. 고학력화 경향은 더욱 강화되지만, 노동시장은 안정적 일자리와 불안정한 일자리로 분화되고 있다. 고학력층은 학교졸업 후 선배세대와 마찬가지로 고학력에 맞는 일자리를 찾고 있으나, 노동시장은 과거와 같이 충분한 기회를 제공하지 못한다.
이러한 변화는 이 연구에서도 부분적으로 나타난다. 한국사회에서 상대적 사회이동은 증가하였으나, 최근에는 경제여건 변화에 따라서 사회계층구조의 상층부에 해당하는 일자리가 줄어들어 절대적 사회이동이 감소하는 경향을 보인다. 최근 들어서 많은 사람들이 사회이동이 줄어들고 더 나아가 불평등이 심화되었다고 인식하는 것은 이러한 절대적 사회이동감소 현상을 반영한 것이다.
또한 교육성과를 학력이 아니라 ‘학업성취’ 개념으로 해석하면, 가정배경의 효과는 최근에 좀 더 명확히 나타났다. 노동시장에서의 고학력층 일자리구조가 분절화되면서 단순히 대학졸업생이라는 ‘학력’이 아니라 명문대학 입학 혹은 전문직 진출이 용이한 전공 졸업자가 더욱 중요해지고, 이를 위해서는 초·중고등학교 단계의 ‘학업성취’를 위한 경쟁이 더욱 치열해졌다. 따라서 가정배경 요인이 자녀의 학력보다는 사교육 및 학업성취도에 미치는 영향이 최근 들어서 명확히 나타나고 있으며, 이러한 점이 한국사회의 교육불평등 현실로서 자주 언급되고 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최근 교육불평등의 사회이동 효과에 대해서는 실증적인 분석이 쉽지 않다. 가정배경의 학업성취도 효과가 명확한 집단은 수월성교육을 강조하던 1990년대 중반기 이후에 태어나거나 중·고등학교를 다닌 젊은 연령층이다. 이 연령층 가운데 많은 사람들은 아직 노동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입하지 않았다. 일부는 아직 대학을 졸업할 만한 연령이 아니며, 20대 중반의 연령층도 졸업을 미루고 스펙 쌓기에 집중하거나 공무원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따라서 가정배경별로 학업성취도가 달라지는 20대 연령층이 노동시장에서 차지하는 계급지위(Destination)를 실증적으로 확인하는 작업은 현재로서는 불가능하다. 이러한 연구는 앞으로 학업성취도 혹은 대학 등 고등교육기관의 종류 등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장기 시계열적 자료를 확보할 때 본격적으로 시작할 수 있다.
이 과제의 일부 연구성과는 국내외 학술대회자료집과 학술지에 게재된 바 있다. 4권의 연구주제를 3년간 연구하면서 연도별로 세부 주제를 분석하였고, 일부 연구 결과를 ?한국사회학? 혹은 ?교육학연구?에 논문으로 게재하였다. 또한 국제사회학회(International Sociological Association)의 학술대회 혹은 사회불평등 국제심포지엄에서 연구결과를 발표하면서, 한국의 경험을 국내외 전문가들과 토론한 바 있다. 이 연구총서는 이러한 연구과정 및 성과 등을 토대로 작성된 결과물이다. 이러한 연구를 재정적으로 지원해 준 한국학중앙연구원, 그리고 3년의 연구기간에 훌륭한 연구조교 활동을 수행했던 공주박사와 연구결과에 대하여 귀중한 조언을 해 주었던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린다.
이 연구총서가 교육과 사회이동에 대한 학문적 연구와 사회적 인식 형성에 활용되기를 희망한다. 교육문제에 대한 관심이 높은 한국사회에서, 국내외 학자들이 이 연구결과를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학문적으로 발전시키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또한 한국의 교육과 사회이동 경험을 객관적으로 이해하고 교육과 노동시장에서의 불평등 문제에 대한 생산적인 담론을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2020년 11월 25일
저자 일동
서문
사회학과 대학원생 시절 프랑스 사회학자 부르디외(Bourdieu)의 교육과 사회이동 연구에 흥미를 느껴 한국의 세대 간 사회이동을 석사 논문의 주제로 정한 이후 세대 간 사회이동은 나에게 중요한 화두였다. 세대 간 사회이동은 전 세대와 비교해서 현 세대의 계급·계층 위치는 어떻게 다른가 하는 문제로 한 사회의 기회 구조가 얼마나 개방적인지 혹은 폐쇄적인지 드러내준다. 한국의 기회 구조는 다른 국가와 비교해서 얼마나 개방적인가? 급격한 산업화와 교육 팽창을 겪은 한국 사회의 기회 구조는 계속해서 개방적이었을까 아니면 반대로 더 폐쇄적이었을까? 이런 질문은 비단 사회학자들뿐만 아니라 언론과 일반 대중들의 큰 관심거리이기도 하다. 지난 수십 년간 한국 사회의 발전과 변화를 돌아볼 때 교육을 통한 계급·계층 상승 이동의 꿈은 많은 한국인들의 노력과 인내의 원천이 되어왔음을 부정하기 어렵다. 대학 졸업장이 가져다 줄 중산층 진입이라는 코리안 드림은 교육을 둘러싼 수많은 스토리텔링과 함께 역동적인 한국을 가능하게 한 비밀 아닌 비밀이었다. 가방끈이 짧았고 대부분 농민이었던 부모 세대와는 달리 대학을 졸업하고 화이트칼라 직업을 가지게 된 자녀들은 그만큼 코리안 드림에 가까워질 수 있었다. 그런데 최근 들어 그런 코리안 드림에 문제가 생긴 듯하다. 이제 그렇게 코리안 드림을 이룬 세대가 나이를 먹고 직장 내에서 시니어가 되자 그들의 자녀들은 자신들의 부모가 도달했던 계급·계층을 넘어서 더 높이 올라가기가 어렵게 된 모양이다. 대부분의 부모들이 농민이었던 경우 부모 세대의 계급·계층을 넘어서기가 수월했지만, 화이트칼라층의 정점을 차지하게 된 세대의 자녀들은 자신들의 부모가 이룩한 세계를 그만큼 넘어서기 어렵게 되었다. ‘세대 간 사회이동의 사다리가 사라졌다’, ‘더 이상 개천에서 용이 나오지 않는다’는 인식은 코리안 드림을 근본에서부터 뒤흔들고 있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과연 얼마나 ‘평등한’ 사회로부터 멀어진 걸까? 세대 간 사회이동이 얼마나 어려워진 걸까? 이 책은 이 질문에서 시작한다.
세대 간 사회이동이 어려워지고 있다는 근래의 언론 기사나 학계의 논의들을 다시 검토하려는 근본적인 이유는 이런 주장이 사회학 내 사회계층론 분야의 수많은 사회학자들이 오랫동안 제시해 온 경험적 근거와 배치되기 때문이다. 사회학 연구 결과가 반드시 옳다고 주장하려는 게 아니다. 다만, 여러 국가에서 다른 시기에 이루어진 많은 연구들이 세대 간 사회이동은 쉽사리 변하지 않는다던지 혹은 세대 간 사회이동이 오히려 증가한다고 밝힐 때 왜 유독 한국 사회에서는 세대 간 사회이동이 어려워졌는지 궁금증이 생긴다. 이 퍼즐을 풀기 위해 사회학자들이 개발한 세대 간 사회이동 분석 도구를 가지고 지난 30년간 한국 사회에서 실제로 세대 간 사회이동이 어떻게 변했는지 살펴보는 것이 이 책의 기본적인 목표이다. 이 과정에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세대 간 계급·계층 이동을 분석하면서 절대적 이동과 상대적 이동을 구분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학자들이 세대 간 사회이동을 분석하면서 개발한 가장 중요한 개념적 장치 중의 하나는 바로 절대적 이동과 상대적 이동의 구분이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 이야기되고 있는 세대 간 사회이동 논의들의 대부분은 절대적 이동과 상대적 이동을 구분하지 못한다. 흔히 듣는 세대 간 사회이동이 더 어려워지고 있다든지 계급·계층 상승 이동의 사다리가 없어졌다는 주장들은 주로 절대적 이동을 가리킨다. 반면에 한 사회가 얼마나 개방적인지 혹은 기회 구조가 얼마나 평등한지의 문제는 상대적 이동과 관련된다. 따라서 한국 사회에서 최근에 세대 간 사회이동이 어려워지고 있다는 인식은 실제로 한국 사회의 기회 구조가 더 폐쇄적으로 변하지 않았어도 가능하다. 절대적 이동은 직업구조나 계급구조의 변화에 의해 영향을 받기 때문에 그 자체로는 한 사회가 더 개방적이 되었는지 아니면 폐쇄적이 되었는지 말해주지 못한다. 한마디로 말하면, 절대적 이동은 이전 세대에 비해 현재 세대에 피자의 크기가 얼마나 커졌는지 혹은 작아졌는지의 문제이다. 반면에 상대적 이동은 그렇게 커진 (혹은 작아진) 피자를 어떤 계급 출신들이 어떻게 나누는지에 관한 문제로 기회 구조의 평등 정도를 보여준다. 피자가 커졌다고 해서 피자를 나누었던 근본적인 원칙이(즉, 기회 구조가) 반드시 변하는 것은 아니다.
분명히 말하지만 예전에 비해 피자 크기가 줄었다면 그 또한 심각한 문제임은 분명하다. 이전 세대에 비해 현재 세대가 소위 상층 직업이라 할 수 있는 전문직·관리직에 도달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면 이 문제의 원인과 결과에 관한 심도 있는 사회적 논의가 있어야 함은 당연하다. 하지만 이 자체로 사회가 더 폐쇄적이 되어간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피자의 크기 문제는 교육 체계나 직업구조, 경제 발전 같은 요소에 의해 결정되는 것으로 피자를 어떻게 나누는가 하는 불평등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는 절대적 이동을 늘리는 방법 역시 불평등을 해소하는 문제가 아니다. 어찌 해서 다시 절대적 이동이 늘어난다고 해도 불평등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다. 불평등은 분배의 원칙에 관한 문제로 상층 계급·계층 출신들이 하층 계급·계층으로 하강 이동하지 않고 상층 계급·계층에 머무는 정도가 하층 계급·계층 출신들이 하층 계급·계층에 머물지 않고 상층 계급·계층으로 상승 이동하는 정도에 비해 얼마나 다른지의 문제이다. 두 개의 출신 계급과 두 개의 도달 계급 간의 총 네 개의 집단을 동시에 분석하는 문제이다.
세대 간 사회이동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절대적 이동과 상대적 이동을 구분하는 것이 첫걸음임을 강조하고 나서, 이 책은 실제로 절대적 이동과 상대적 이동을 따로 분석할 수 있는 방법론을 소개한다. 나아가 그런 방법론을 직접 적용해 한국의 절대적 이동과 상대적 이동이 총 일곱 개의 출생 코호트(1950-54, 1955-59, 1960-64, 1965-69, 1970-74, 1975-79, 1980-84년 출생자들) 간에 어떻게 변해왔는지 살핀다. 한국 여성들의 경우 전반적으로 노동시장 참여율이 낮고 이는 직업과 노동시장에서의 사회적 관계에 근거를 둔 계급 구성 문제를 복잡하게 한다. 아울러 여성의 경우 결혼과 출산을 둘러싼 노동시장 참여의 문제가 남성의 경우보다 복잡한 점을 감안해서 이 책은 남성들의 세대 간 이동만을 살핀다. 이 책의 경험 연구 부분에서는 저자가 정인관 교수와 공저로 발표한 연구 논문(Chung & Park, 2019)에서 보여주고 있는 결과들을 소개하며 나아가 몇 가지 새로운 분석을 덧붙인다. 새로 시도된 분석들은 정인관·박현준(2019) 논문의 결론을 지지해준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서 지난 30년간 한국 사회에서 상대적 이동은 더 어려워지지 않았고 오히려 더 활발해졌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세대 간 사회이동이 더 어려워지고 있는 인식은 상대적 이동이 증가한(다시 말해, 기회 구조의 불평등이 줄어든) 경험적 추세와 일치하지 않는다. 적어도 1950-1984년 사이에 태어난 남성들을 전제로 할 때 한국 사회는 기회 구조가 더 평등해지는 쪽으로 움직여왔다. 이런 연구 결과는 근래에 다른 사회를 대상으로 한 사회학 연구 결과들과도 대체로 일치한다.
세대 간 사회이동이 더 어려워지고 있다는 인식은 아마도 절대적 이동 추세 때문이 아닐까 싶다. 직업 구조의 변화가 점점 더디어지면서 지금까지 계속되었던 상승 이동이 더디어지고 하강 이동이 늘어난 절대적 이동 추세는 현재 많이 이야기되는 논의와 전반적으로 일치한다. 계속 강조하지만 이런 절대적 이동 추세는 기회 구조의 불평등 추세를 말해주지 않고 직업구조 혹은 계급구조가 어떻게 변했는지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하지만, 이러한 절대적 이동 추세 역시 농민을 제외하고 나면 다른 이야기가 된다. 1950년대와 1960년대에 태어난 한국 남성들의 경우 농민을 아버지로 둔 경우가 많았고 이는 자연스럽게 상승 이동을 높일 수 있었다. 따라서 농민 출신이거나 자신이 농민인 아들들을 제외하고 분석하면 1950년대와 1960년대에 태어난 아들들의 경우 농민을 포함했을 때보다 상승 이동이 줄어들게 된다. 결국 농민을 제외하면 총 일곱 개 출생 코호트에 걸쳐 상승 이동이 계속해서 증가해온 추세를 발견할 수 있다. 농민을 제외할 때 반대로 하강 이동은 1950년대와 1960년대에 출생한 아들들의 경우 오히려 늘게 되어 농민을 포함했을 때 일곱 개 코호트에 걸쳐 하강 이동이 계속해서 늘어난 추세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된다. 즉, 농민 출신이 지배적이었던 1950년대와 1960년대 코호트의 경우 상승 이동이 많고 하강 이동이 적을 수밖에 없어서 당시에 세대 간 사회이동이 활발했었다는 인상이 생기게 된 건 아닌가 싶다. 요사이 세대 간 사회이동이 줄었다는 인식은 농민 출신이 많았던 1950년대와 1960년대 코호트의 사회이동 정도에 대한 과장된 인식에 기반을 둔 것일 수도 있다.
책을 끝내고 보니 결과적으로 해답보다는 질문을 더 많이 남긴 책이 되어 버렸다는 걱정이 든다. (농민을 포함했을 때) 절대적 이동은 왜 최근 코호트에 와서 더 이상 늘지 못하게 되었을까? 이런 추세가 사실이라면 절대적 이동을 늘리기 위해서는 어떤 정책적 노력이 필요할까? 절대적 이동이 불평등의 문제를 말하지는 않지만 사람들은 자신의 부모 세대가 도달한 계급·계층보다 높은 위치에 도달할 수 있는지 여부를 말하는 절대적 이동에 더 민감할 수 있다. 부모들의 입장에서는 내 자식들이 나보다 얼마나 더 높은 계급·계층에 도달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이 사회이동과 관련해서 가장 중요한 질문일 수 있다. 1970년대나 1980년대처럼 급속한 경제 발전을 이루기 어려운 현재에 어떻게 하면 상승 이동이 계속될 수 있을까? 나아가 이 책에서는 1980-84년 코호트가 가장 최근 코호트였지만, 그 이후 코호트가 나이 30세를 넘어 안정적인 직업을 가지게 되었을 때 그들의 상대적 이동은 1980-84년 코호트나 그 이전 코호트에 비해 계속 더 활발할 수 있을까? 다시 말해, 1980-84년 코호트까지 지속된 기회 구조 불평등의 약화라는 추세가 1985년 이후에 출생한 한국 남성들에게서도 나타날까? 여전히 국가 비교 관점에서 보면 한국 여성들의 노동시장 참여율이 낮지만 계속해서 증가해온 점을 감안하면 이제 한국 여성들의 세대 간 사회이동 추세를 제대로 분석할 수 있는 시점이 되었다. 한국 여성들은 어떤 추세를 보여줄까? 이 책에서 이런 질문들에 대한 답을 제시할 수는 없었지만 발간을 계기로 이런 문제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졌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이 책은 한국학중앙연구원으로부터 연구비를 지원 받은 “한국의 교육과 사회이동” 프로젝트의 일부분이다. 3년간 같이 연구하면서 많은 토론을 함께 할 수 있었던 연구진 선생님들과(김창환, 변수용, 신광영, 이성균 교수) 특히 연구진들이 연구를 수행하는 데 큰 도움을 주신 공주 박사께 감사드린다. 이 책의 핵심 내용을 발표할 때 계봉오 교수와 김영미 교수께서 조언을 많이 주셨다. 이 책의 주요 분석 결과를 제공하는 논문(Chung & Park, 2019)을 공저한 정인관 교수에게 특별한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특히 논문에서 사용된 자료에 새로운 변수를 추가해주는 수고를 해주셔서 이 책에서 몇 가지 새로운(특히, 직업 지위 점수를 이용한) 분석을 시도할 수 있었다. 원고를 읽고 글의 방향과 내용에 대해 여러 가지 조언을 해준 임영신 학생에게 감사드린다.
박 현 준
기본정보
ISBN | 9791165191115 | ||
---|---|---|---|
발행(출시)일자 | 2021년 03월 15일 | ||
쪽수 | 204쪽 | ||
크기 |
151 * 224
* 18
mm
/ 402 g
|
||
총권수 | 1권 | ||
시리즈명 |
한국학 총서 한국의 교육과 사회이동
|
Kl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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