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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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잊혀가는 이러한 바람 같은 기억을 되살려 놓는 서글픈 추억은 나에겐 곧, 슬픔이자 희망이기도 하기 때문에 내 마음은 오늘도 늘 바람 부는 언덕을 오르내린다.
여기 책 속의 글들은 사실 나의 독백이자 푸념뿐이다. 지독한 니힐리즘의 정신 안에도 들풀처럼 질기게 삶을 추구하는 몸부림의 소리를 끼적인 공허한 바람 소리일 뿐이다.
작가정보
저자(글) 이각구
이각구 시인은 2007년 국보문학에서 시詩로 등단했다.
네이버 카페 《시와 사는 이야기》를 오랫동안 운영했다.
https://cafe.naver.com/silverclub4060cafe
시와 사진예술작품을 위주로 한 네이버 블로그 <바람소리>를 오랫동안 운영했다.
https://blog.naver.com/lgk9999
목차
- 1부_홍수
홍수/약국 가는 길/걸음마/터널을 지나며(사진)/걸어야 산다/서풍西風/자작나무 숲/알리바이/한가위 소묘/세탁기 앞에서/어느 날/지병持病/방황/오를 수 없는 산/공空/어느 봄날의 생사生死/안개 강/돌부리/공원 호숫가에서/반전
2부 그즈음에
춥던 수업/사색/그랬었지/그즈음에/호기/홍등가/버들강아지/콩나물 한 봉지/개 주검/짜장면이 먹고 싶다/무심천에서/휴지통 비우기/억새의 사유思惟/생일/겨울비/밤안개 속에서/사는 척/강아지 풀/그날/올빼미
3부 뭇국을 끓이며
포장마차/애증의 밤/그림자/꿈/어느 아침/개망초/대나무 숲/나목裸木/물가에 앉으면/꽃망울 아래서/개밥바라기/군고구마/꽁초의 화단/황태 덕장/뭇국을 끓이며/무명씨/싱거운 저녁/감나무 밑에서/나를 기웃거리는 것들/건망증/
4부 멀어진 인연에 대한 소고小考
식탁에 앉아/정념情念/애호박(도마 위의 단상)/물안개/개망초/소나기/빈집/정형외과/적자생존/두물머리/다시 아침이 오고/쑥부쟁이/어느 겨울의 단상/어머니와 목련/유복자 보물찾기/모닝커피/이방인에 끄적인 독백/덫/존재2/행복한 여인/꽃과의 대화/멀어진 인연에 대한 소고小考/잘 있는지/주정酒酊/재활 수업
출판사 서평
힘든 배역配役, 울적한 대사臺詞
조향순(시인)
소설에서 1인칭 시점 소설과 3인칭 시점의 소설을 비교해보면 1인칭 시점이 3인칭 시점의 소설보다 훨씬 가깝고 친근하게 느껴진다. 허구임에도 불구하고 사실로 다가와 읽혀지기 때문일 것이다. 시에서도 시적화자詩的話者가 있다. 시적화자는 시 속에서 이야기하는 사람으로, 시인은 어떤 인물을 내세워 자신의 사상이나 감정을 보다 효과적으로 드러내고자 한다. 물론 시인 자신이 될 수도 있고, 시인이 창조한 인물이 될 수도 있다. 시인 자신이 시적 화자가 되면 그 시의 내용은 사실로 인정되어 1인칭 소설을 읽을 때처럼 독자와 시인의 거리는 바싹 좁혀지게 마련이다. 이각구 시인의 시들은 1인칭 소설 혹은 자신이 시적화자일 때의 그 간격으로 읽혀지게 된다. 그의 울적한 대사臺詞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의 시詩를 대사臺詞라고 함에는 이유가 있다.
작년에 원로 연극인을 인터뷰한 적이 있는데, 그분이 ‘사람 하나가 태어나는 것은 연극 한 편이 시작된 거예요.’라고 했다. 공감을 했다. 우리는 각자 어떤 배역을 맡아 세상으로 나왔다. 화려한 주인공 역을 맡아 무대 중심에서 살다가 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이는 어려운 역할을 맡아 무대 변두리에서 힘들게 연기하는 사람도 있다. 이각구 시인의 시를 읽어보면 시인은 참 어려운 배역配役을 맡았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의 시는 힘든 연기를 하면서 뱉어내는 울적한 대사라고 볼 수 있다.
그가 맡은 배역은 엄마가 그리워서 뒷산에 올랐다는 말은 차마 못하고 바람 소리가 듣고 싶어서였다고 말하는 소년의 역할에서 시작되었다. 동구 밖 신작로의 버스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소년의 기다림이 어떠했을까. 독자들은 비슷한 그리움의 경험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그의 눈에 들어오는 모든 사물은 어머니로 연결되어 강아지풀을 보고도 어머니의 젖은 속눈썹을 생각한다. 개밥바라기를 보면서도 감나무 밑에서도 어머니를 떠올린다. 어디 어머니뿐인가. 난 왜 아버지 사진도 한 장 없느냐고 묻는 소년, 그에게 맡겨진 역할은 그런 소년의 역할이었다. 지금도 목련 나무 아래서는 죽은 듯이 사뿐히 걷는다. 어머니가 대문 옆 목련 나무를 붙들고 혼절하고 누워버린 그 자리가 아니던가. 시인이 목련 나무 아래를 사뿐히 걷는 것은 서정이 아니라 서사다. 그의 시는 서정보다 먼저 서사로 읽으면 좋겠다.
소설이 사건을 읽는 즐거움이 있다면 시는 운율의 맛을 보는 즐거움이 있다. 그러나 시 속에도 사건이 있다. 그래서 운율의 맛에다 사건을 읽는 재미가 더해지기도 한다. 이런 시는 조용한 서정시보다 역동적力動的이고, 밋밋하지 않아서 좋다. 이각구의 시에는 서사敍事가 있다.
자연의 거대한 힘 앞에서 인간은 속수무책일 때가 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갈수록 그러한 자연의 위력을 몸소 체험한 경험들이 많다. ‘다리 뻗고 눕던 방이 냇가를 이루고 퇴비 더미처럼 쌓여 썩어가는 가재도구’들, 모든 것들을 무서운 힘으로 쓸어가던 붉은 황토물, 홍수가 있었다.
그래도 ‘가까스로 다다른 정신의 고지 위에 한 줄기 선선한 바람’을 불어넣었으니 시詩는 해피엔딩이 된다. 그러나 이것을 자연 재해나 일반적인 서사만으로 읽어서는 안 된다. ‘내 허벅지와 장딴지 / 높고 낮은 산맥들도 지독한 홍수에 휩쓸려 떠내려갔다’부터 다시 읽어보아야 한다. 그의 허벅지와 장딴지를 휩쓸고 지나간 홍수는 무엇일까. ‘내 육신은 더 이상 대뇌의 명령을 수행하지 않고’에서 ‘내 사지보다 말을 잘 듣는 TV 리모컨’으로 생각을 이어가다 보면 자연현상인 홍수와 겹치는 시인의 고역苦役이 잡혀진다. 「홍수」는 이각구의 시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아주 큰 사건이 된다. 왜냐하면 다음의 모든 시들이 여기서 이어져 쓰이게 되고, 이제부터 시인은 힘든 배역配役을 맡아 긴 연극을 상연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입은 가능한 크게 벌려서 콧등 시큰한 설움도 함께 삼켰다’는 너무나 구체적인 설움이다. 죽지를 못하면 살아야 한다고? 사는 척하는 것이 살아가는 방법이라고 한다. 이걸 감히 산다고는 할 수 없고, 사는 척하는 것뿐이라는 말로 그에게 주어진 배역配役이 얼마나 버거운지 짐작이 간다. 이각구 시인의 시는 투박하다. 무뚝뚝한 사람이 툭툭 던지는 말 같다. 그러나 말이 많다고, 목소리가 곱다고 말을 잘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 말들이 도리어 귀에 잘 들어오지 않고 공감과 멀어질 때가 많다. 무뚝뚝하게 한마디씩 툭툭 던지는 말이 더 무게가 있어 가슴에 와 닿는다.
무중력을 꿈꾸며 바람을 타고 있는 육신, 그는 걸어야 산다고 한다. 시인에게 왜 하필이면 이런 배역이 맡겨졌을까. 그러나 각자에게 어떤 배역이 주어지느냐 하는 것은 우리의 권한이 아니다. 그러니 중요한 것은 결국 어떤 배역이 주어지느냐보다도 얼마만큼 열연熱演하느냐가 문제다. 훌륭한 배역을 맡아도 제대로 연기를 하지 못하고 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이각구 시인은 어려운 배역을 훌륭히 소화하고 있다. 열연熱演 중이다. 두껍게 돋아나는 끈질긴 이끼는 그래도 푸르고, 그 이끼에도 꽃이 피리라 장담한다. 시어詩語로는 그다지 환영받지 못할 추상어들을 눈 감아 줄 수밖에 없다.
무너지고 무너져 더 이상 무너질 것이 없다고 하면서도 그는 분명히 아담한 집 한 채 짓는 꿈을 이루게 될 것이다. 콩나물국을 끓이면서도 콩나물 음표가 경쾌한 왈츠곡을 만들고 있다고 보는 사람은 분명히 일어선다. 야심을 숨기고 있는 사람이다.
누가 뭐래도 나는 눈 깜짝하지 않을 사람이고, 무서움 같은 건 없는 사람이라고 그가 하는 큰소리는 물론 역설적인 표현이다. ‘외로움’을 힌트로 보여주지 않아도 모두 짐작한다. 그의 호기豪氣는 반갑고 기특할 뿐이다. 아마도 이 호기豪氣는 이각구 스토리를 해피엔딩으로 끌어가는 호기好期가 되리라 장담한다. 그의 연극은 상처와 역경의 딱지를 시원하게 떼어내고 틀림없이「반전」으로 갈 것이다.
기본정보
ISBN | 9791163561439 | ||
---|---|---|---|
발행(출시)일자 | 2019년 03월 29일 | ||
쪽수 | 168쪽 | ||
크기 |
125 * 210
* 14
mm
/ 234 g
|
||
총권수 | 1권 | ||
시리즈명 |
시산작가선
|
Kl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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