깔때기 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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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계〉에 필적할 액션 누아르가 떴다.
돈 냄새와 피 냄새 가득한 인천 깔때기 포트 재개발 지구
냉혹한 세상에서 폼 나게 살고 싶은 삼류 인생들
한번 들어서면 결코 도망칠 수 없는 길이 여기 있다
2015년 악의 심연과 폭력의 밑바닥을 섬뜩하게 그린 첫 장편소설 『가토의 검』으로 만만치 않은 필력을 보여주었던 작가 김이수의 두 번째 장편소설 『깔때기 포트』가 나무옆의자에서 출간되었다. 『가토의 검』이 탄탄한 구성과 기막힌 반전으로 독자를 사로잡은 추리소설이었다면 『깔때기 포트』는 인천의 ‘깔때기 포트’라는 재개발 지구를 중심으로 냉혹한 세상에서 폼 나게 살고 싶은 삼류 인생들의 꿈과 현실을 누아르풍으로 그렸다.
가난한 대학생 영민은 인천 지역의 전설적인 폭력 조직 장바우파의 말단 조직원인 친구 상구의 소개로 그들이 불법으로 들여와 판매하는 약을 배달하는 아르바이트를 시작한다. 폭력 조직과 연계된 일이라는 점이 찜찜했지만 수입이 다른 일과는 비교할 수 없이 좋은 터라 영민은 착실히 일해 등록금을 벌어 반드시 졸업하리라 다짐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약 배달 사무실의 사장은 과거 장바우파의 행동대장이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합리적인 사업가로 보였으나, 그의 수하인 조배는 첫 만남부터 영민을 모욕하더니 사사건건 괴롭힌다. 게다가 영민이 사랑하는 다해마저 조배와 기분 나쁘게 얽혀 있다.
한편 깔때기 재개발이 본격화되면서 장바우파의 움직임도 바빠진다. 상구는 지금이 기회라며 영민에게 조직에 들어올 것을 종용하고, 조배는 1년에 억은 가뿐히 번다는 약 배달 사업을 차지하려는 야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영민과 조배, 조배와 사장의 관계도 꼬일 대로 꼬인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약 배달 사무실 금고가 털리고, 일대를 발칵 뒤집은 방화 사건이 일어난다. 태풍이 몰아치던 그 밤, 장바우파는 한번 들어가면 절대로 빠져나갈 수 없다는 깔때기의 삽치기 골목에서 배신자를 응징하는 토끼몰이를 시작한다. 그리고 영민의 인생도 돌이킬 수 없는 길로 들어선다.
작가정보
목차
- 깔때기 포트
작가의 말
추천사
-
한국식 누아르의 정점. 인천 앞바다에 〈신세계〉에 필적할 액션 누아르가 떴다.(〈신세계〉 〈검사외전〉 〈아수라〉 제작)
책 속으로
“깔때기에서 허락하지 않을 거야. 북성동 일대는 우리 구역이니까, 회장님 허락 없인 이곳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사장도 독립했다지만 회장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했어. 회장님이 부르면 만사를 제쳐놓고 올라온다니까. 조배가 독자적으로 일하려면 깔때기부터 설득해야 할 거야. 가망 없다는 건 본인이 더 잘 알 텐데 왜 저 지랄인지 모르겠어. 정신 차리는 게 좋을 텐데 말야. 사장이 겉보기에는 좋아 보여도 진짜 무서운 사람이거든. 저렇게 까불다가 한 방에 훅 가는 수가 있어. 너는 모른 척하고, 둘 사이에 관여하지 마. 괜히 끼어들면 피곤해져.” (59쪽)
대학생이 되면 뭔가 달라질 것 같았다. 어려운 가운데서도 고학해서 대학교까지 들어간 기특한 놈, 우리 사회는 이런 미담을 좋아하지 않는가. 영민이 착실한 이미지를 쌓는 대가로 정혜는 거리를 방황해야 했고 어머니도 혼자서 빚을 갚으며 힘겹게 살아야 했다. 그리고 아직 3년을 더 고전분투해야 했다. 이 모든 게 자신의 유치한 생각 때문이었다. 올해 거치 기간이 끝나면 내년부터는 이자에 원금까지 상환해야 한다. 게다가 졸업 때까지 내야 할 등록금을 생각하자 어깨에 거대한 원목 더미를 이고 있는 기분이었다. 이런저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자 잠은 점점 더 달아났다. 시팔, 어떻게 되겠지. (68~69쪽)
웃음이 나왔다. ‘시팔, 이렇게 좋은 날’이라니. 그래, 시팔 가자. 가자는데 못 갈 것도 없다. 영민은 액셀을 당겼다. 피닉스가 다시 한 번 굉음을 질러댔다. 백 미터 전방에 회색 콘크리트 벽이 보였다. 축항로 끝이었다. 흥분한 나머지 속력을 너무 내고 말았다. 급브레이크를 잡는다면 둘 다 아스팔트 위로 나가떨어질 것이다. 속력을 줄이면서 코너링을 해야 한다. 다해가 걱정됐다. 겁을 먹고 몸을 움직인다면 피닉스는 아스팔트 바닥에 깊은 상처를 내고 해체될 것이다. 물론 두 사람도 온전할 순 없었다. 다해를 믿는 것밖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가능한 범위에서 넓게 코너링을 했다. 영민은 다해 체중이 그대로 자신의 몸에 실려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다해가 그를 믿고 몸을 맡겨주었다. 그 덕분에 무사히 턴을 했다. 그의 등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부활하는 기분이 어떤 건지 알 것만 같았다. (89쪽)
“깔때기가 재개발되면 거기에 아파트가 들어선다는 건감?”
“소문으로야 아파트며 빌딩이며 해수 공원도 들어선다고 하는데, 당최 거기다가 뭘 그리 많이 짓는다는 건지 모르겠어.”
“솔직히 말해 거기가 개발이 안 돼서 그렇지, 언덕에서 바다를 바라보는 전망이야 어디에다 내놔도 손색이 없잖아. 재개발 이야기야 진작부터 있었던 거고. 그러기에 미리미리 대책을 세웠어야지.”
상구 할머니가 깔때기를 빠져나오지 못한 할아버지들을 타박하는 투로 말했다.
“그러니까, 그 좋은 전망에 아파트 지으려고 우리를 쫓아버린다 이거구먼. 땅 주인이야 보상이라도 받겠지만 우리 같은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 거야? 아파트라도 한 채씩 주는 건감?”
“이 영감탱이가 돌았나, 누가 그 비싼 아파트를 공짜로 주겠어? 이주비나 주면 모를까.” (121~122쪽)
“시팔, 삐딱하게만 듣지 말고, 내 말 잘 들어봐. 지금 우리 회장님이 업종 전환을 하려고 해. 약이나 팔고 포장이나 해주고, 그런 야바위꾼 같은 일로 언제 돈을 벌겠어. 송도, 청라, 이런 데가 개발되는 걸 보고 회장님이 느낀 바가 있는 거지. 여기는 우리 나와바리야. 회장님이 가지고 있는 땅도 엄청나다고. 시장 쪽은 상업지구로 변경된대. 그럼 거기에 다운타운 먹자골목 같은 유흥가가 들어설 거야. 완전히 황금 어장이 되는 거지. 우린 빌딩도 세우고 진정한 조폭으로 거듭나는 거야. 일본 야쿠자 같은 조직이 될 수 있다고. 너도 학교 때려치우고 본격적으로 여기서 나랑 같이 일하자. 이번 기회에 아주 새 출발 하자고. 약 배달같이 시시껄렁한 일은 중석이한테 넘기고.” (144쪽)
출판사 서평
인천의 역사성과 특수성이 탄생시킨 독창적 리얼리즘
소설의 주요 무대인 깔때기 포트는 가슴 아픈 역사를 지닌 곳이다. 인천상륙작전 당시 미군이 월미산의 인민군 방어시설을 무력화하면서 민간인 마을까지 네이팜탄으로 폭격하는 바람에 수많은 민간인 사상자가 나왔다. 이후 미군은 월미도에 상륙해 살아남은 원주민을 모두 내쫓고 마을을 미군기지로 사용했다. 월미도 포격으로 쫓겨난 원주민이 모여 살면서 형성된 무허가 판자촌이 바로 깔때기 포트다. 영민과 상구 모두 이 깔때기 출신으로 이들에게 깔때기는 가난과 모멸의 상징이었다. 어린 시절 그토록 떠나고 싶었고, 떠난 후에는 두 번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았던 그곳이 지금은 재개발업자들과 땅 주인들에게 일확천금을 낳는 황금어장으로 탈바꿈하려는 중이다.
깔때기 포트 재개발 사업권을 따낸 한영건설과 그들의 뒤를 봐주는 장바우파는 깔때기 똥치 골목에 사는 원주민들을 쫓아내려 한다. 이에 대항하여 깔때기 원주민들은 항만노조 간부 출신 황철배를 철거대책위원장으로 내세워 재개발 반대운동을 벌여왔다. 이들은 오랜 세월 정부를 상대로 월미도 사건 진상규명과 피해자 보상을 요구해왔는데 거기에 더해 이제는 철거에 맞서 싸워야 하는 처지다. 그런데 황철배가 한영건설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되면서 주민들은 허탈감에 빠지고, 깔때기 재개발은 급물살을 탄다.
이처럼 깔때기 포트라는 공간이 지닌 역사성과 특수성, 그로부터 비롯된 이해관계와 갈등은 소설의 서사를 작동시키는 정교하고 풍요로운 밑그림이다.
영민은 깔때기 출신에 월미도 피해자 가족이기도 하지만 장바우파와 관련된 조직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더욱더 현실적인 이해관계의 당사자가 되어간다. 이제 그의 주변을 채우는 것은 허세에 찬 건달들과 비즈니스로 포장된 폭력의 세계다. 깡패가 된 걸 자랑스럽게 떠벌이며 친구를 조직에 끌어들이려는 상구, 노골적으로 적의를 드러내며 영민을 무시하고 조롱하는 조배, 겉으로는 사람 좋아 보이지만 언제 무서운 민낯을 드러낼지 모르는 사장, 그리고 권력의 꼭대기에 앉아 허허실실 상대를 꼼짝 못 하게 만드는 장바우. 영민은 그 속에서 영리하게 처신하며 꿋꿋하게 자기 미래를 설계해간다. 조폭 세계에 발을 담글 생각은 추호도 없다. 하지만 그 역시 그들의 사업과 권력관계에 영향을 받고, 실리를 위한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어머니와 여동생과 다해는 그의 선택을 더욱 절박하게 만드는 사람들이다.
영민에게 어머니와 여동생은 아킬레스건이며, 그를 버티게 하는 이유인 동시에 미치게 만드는 존재들이다. 대학 졸업하고 제대로 된 직장 잡아서 대문 있는 집에서 가족과 함께 사는 것이 그가 꿈꿔온 미래였는데, 이제는 미래를 꿈꾸는 것 자체가 불투명해졌다. 다해는 얼마간 이 미래에 들어왔다가 금세 나가버렸다. “너 같은 가난뱅이하고는 그냥 엔조이야”라며 이별을 선언한 그녀. 그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킬 돈도 백도 없다. 사장은 누누이 얘기했다. 비즈니스에서 가장 중요한 건 ‘때’라고. 때를 놓치면 편하게 갈 수 있는 길도 가시밭길을 헤치며 돌아가야 한다고. 기회를 엿보며 절치부심하던 영민에게 이윽고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충격적인 사건이 닥치면서 때가 온다. 분노에 찬 그는 분신과도 같은 피닉스 오토바이를 몰고 깔때기로 질주한다. 자신이 하려는 일이 무엇인지 똑똑히 인식하면서.
소름 끼치도록 현실적인 결말, 짙은 페이소스, 비장미 넘치는 누아르
언덕에서 포구로 이어지는 동네의 형태가 여성의 자궁 모양 같다 하여 깔때기 포트라 이름 붙여진 이곳에서는 독특한 지형 탓에 한때 폭력배들 사이에서 일명 토끼몰이라고 불리는 수많은 살인 작전이 벌어지곤 했다. 이 골목에 갇히면 깔때기 앞바다에 수장되는 것 말고는 빠져나갈 도리가 없었다. 그날 밤 영민은 또 하나의 먹잇감을 기다리는 사람들 속에 있다. 소설 전체를 통틀어 최고의 명장면으로 꼽힐 이 작전은 팽팽한 긴장감과 폭발적인 에너지로 순간순간 긴박하게 전개된다. 눈앞에서 영상을 재생하는 듯한 생생한 묘사와 진실을 따져 묻게 하는 대사, 잔혹한 비밀의 공모는 누아르의 비장미를 한껏 끌어올린다.
[책속으로 추가]
“불상사는 없었어?”
인터넷에 떠다니는 철거 사진을 보면 화염병이 난무하고, 사람들이 피를 철철 흘리며 바닥에 나뒹굴었다.
“준비가 완벽했거든. 경찰이 일차로 장벽을 쳐주고, 그 뒤를 용역애들이 막아줘서 마음 놓고 작업할 수 있었어. 2인 1조로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안에 사람이 있나 살펴보고, 빈집이 확인되면, 바로 기사한테 무전 때리는 거야. 그러면 기사가 삽차를 몰고 와서 그냥 뭉개버리는 거지. 골목 하나 해치우는 데 30분도 안 걸렸어. 집이 허술해서 삽차로 쓰윽 미니까, 쭈르르 무너지더라고.”
“시장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이 몰려왔을 텐데?”
“여기가 깔때기 아니냐? 전경하고 용역 애들이 입구를 꽉 막고 있으니까, 소리만 빽빽 지르지 한 발짝도 못 들어오더라고. 나중에 시의원하고 단체에서 쫓아왔지만 그때는 상황이 마무리된 상태라 길을 터주고 우린 싹 물러났지.” (238쪽)
배달은 이제 자릴 잡았다. 수입도 좋았고, 사장하고도 잘 맞았다. 오랜만에 일이 잘 풀리기 시작했다. 영민은 어머니의 얼굴을 떠올렸다. 아버지 병 수발로 구겨진 종잇장 같은 인생을 살던 어머니였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숨통이 트이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그가 대학만 졸업하면 아무 걱정 없다고 했다. 믿는다고 했다. 어머니는 자신만 믿는다고 했다. 어머니 말대로 그동안 잘해왔다. 고등학교를 무사히 마치고 대학도 들어갔다. 하지만 더 이상 잘할 수 없었다. 다해를 생각하면 조배, 이 개새끼를 그냥 둘 수 없었다. (267쪽)
스르렁, 스르렁. 삽날이 시멘트 바닥을 긁었다. 조배가 겁을 먹고 슬금슬금 뒷걸음질 쳤다. 영민은 삽을 들어 벽을 한 번 내리쳤다. 단단한 화강암에 부딪힌 삽날에서 불꽃이 튀었다. 조배가 후닥닥 두 걸음 물러섰다. 후후후. 영민은 음침한 웃음을 흘렸다. 삽날로 시멘트 바닥을 긁으며 조배와의 간격을 좁혀갔다. 접지한 날 끝에서 기분 나쁜 소리가 났다.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한 소리는 골목 안에 울려 퍼졌다. 조배가 겁먹기에 충분한 사운드였다. 단번에 요절내긴 아까웠다. 천천히 공포를 느껴야 한다. 다해를 위해 무릎을 꿇고 참회의 눈물을 흘려야 한다. 그때까지 자신은 인내할 것이다. 골목의 폭이 점점 좁아졌다. 화강암 벽은 단단한 근육처럼 조배를 조여왔다. 조배가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봤다. 거센 파도가 골목 끝을 타고 넘어왔다. 막장에 다다랐다. (380~381쪽)
『깔때기 포트』는 한 가난한 청년이 어려운 환경 속에서 고군분투하다 결국 폭력 조직의 하수인이 되는 과정을 소름 끼치도록 리얼하게 그린다. 순종적이지도 그렇다고 반항적이지도 않은, 다분히 위악적인 성향을 가진 그는 결국 현실을 뛰어넘기 위해 기득권의 하부세력으로 남는다. 작가로서는 현재 우리 사회의 구조에서 기존의 질서를 역전시키는 다른 결말을 생각하기 어려웠을지 모른다. 이러한 결말이 주는 짙은 페이소스는 이 소설이 가진 또 하나의 매력이다.
기본정보
ISBN | 9791161570280 |
---|---|
발행(출시)일자 | 2018년 03월 05일 |
쪽수 | 308쪽 |
크기 |
146 * 211
* 29
mm
/ 412 g
|
총권수 | 1권 |
Kl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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