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토크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2
도서+교보Only(교보배송)을 함께 15,000원 이상 구매 시 무료배송
15,000원 미만 시 2,500원 배송비 부과
20,000원 미만 시 2,500원 배송비 부과
15,000원 미만 시 2,500원 배송비 부과
1Box 기준 : 도서 10권
해외주문/바로드림/제휴사주문/업체배송건의 경우 1+1 증정상품이 발송되지 않습니다.
패키지
북카드
키워드 Pick
키워드 Pick 안내
관심 키워드를 주제로 다른 연관 도서를 다양하게 찾아 볼 수 있는 서비스로, 클릭 시 관심 키워드를 주제로 한 다양한 책으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키워드는 최근 많이 찾는 순으로 정렬됩니다.
1398년 1차 왕자의 난, 1453년 수양대군의 계유정난 등에 대한 기존의 해석과 새로운 해석, 그리고 왜 그와 같이 해석의 차이가 생겨났는지에 대한 이유 등을 확인시켜주고 영조는 왜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둬 죽였는지에 대해 기존의 통설과 새로운 설에 대한 상세한 설명으로 보여주고 조선사 500년의 주요 인물들을 자연스럽게 등장시켜 오늘의 눈으로 각 인물들을 입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게 했다.
작가정보
저자 박시백은 만화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전 20권)의 저자. 고려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어릴 적부터 꿈꾸던 만화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한겨레신문>의 시사만화가로 데뷔했다. 이후 ‘한겨레 그림판’, ‘박시백의 그림 세상’을 그려 많은 독자의 공감을 얻었다. 2000년 《조선왕조실록》을 만화로 만드는 구상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 신문사를 그만두었다. 2003년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1권이 출간되었고, 그해 대한민국 만화대상 장관상을 수상했다. 이후 장장 10년의 노력 끝에 조선왕조 500년 역사를 20권의 만화에 담아 2013년 완간, 독자들로부터 ‘21세기 사관’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총 13년간의 대장정을 마감한 그해 부천만화대상을 수상했다.
저자 신병주는 이 시대의 역사 대중화에 가장 앞장서고 있는 역사학자.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및 동 대학원에서 석사·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울대학교 규장각 학예연구사를 거쳐 2017년 현재 건국대학교 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KBS <역사스페셜>, <역사추리> 등의 자문을 맡았고 〈역사저널 그날〉에 참여했으며, KBS 라디오 〈글로벌 한국사, 그날 세계는〉과 EBS 라디오 〈신병주의 이야기가 있는 역사여행〉을 매주 진행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책으로 읽는 조선의 역사》, 《왕으로 산다는 것》, 《조선과 만나는 법》, 《조선평전》, 《조선왕실 기록문화의 꽃, 의궤》, 《규장각에서 찾은 조선의 명품들》, 《조선후기를 움직인 사건들》, 《고전소설 속 역사여행》, 《이지함 평전》 등이 있다.
저자 남경태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인문학 전문 번역가이자 저술가.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졸업했다. 1980년대에는 사회과학 고전을 번역하는 데 주력했고, 1990년대부터는 인문학의 대중화에 관심을 가지고 역사와 철학에 관한 책을 쓰거나 번역했다. 지은 책으로 《개념어 사전》, 《누구나 한번쯤 철학을 생각한다》, 《한눈에 읽는 현대 철학》, 《종횡무진 역사》, 《종횡무진 한국사 1, 2》, 《종횡무진 동양사》, 《종횡무진 서양사 1, 2》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는 《문학과 예술의 문화사 1840~1900》, 《페다고지》, 《비잔티움 연대기》, 《선생님이 가르쳐준 거짓말》, 《30년 전쟁》 등이 있다. 총 134종 145권을 남겼다. MBC 라디오 <타박타박 세계사>의 진행자로 활약하다가 2014년 12월 23일 세상을 떠났다.
저자(글) 김학원
저자 김학원은 (주)휴머니스트 출판그룹의 대표이사/발행인. 서강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 입학,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으로 세 차례 투옥과 출소를 거듭했다. 월간 <길을 찾는 사람들> 기자, 전국노동단체연합 기관지 편집장으로 활동한 후 1992년 인문사회과학출판사인 새길에 입사하며 출판계에 입문했다. 이후 도서출판 푸른숲, 푸른역사를 거쳐 2001년 5월 휴머니스트를 창업해 1,800여 명의 국내 저자와 1,000여 종의 책을 출간했다. 한국출판인회의 부설 서울북인스티튜트 원장을 역임했고, 지은 책으로 《편집자란 무엇인가》 등이 있다.
목차
- Talk 11 광해군일기 ― 경험의 함정에 빠진 군주
분조 활동으로 민심을 달래다 | 세자를 질투한 왕 | 유성룡의 자기변명 | 대동법 실시와 탕평 인사―주목할 만한 집권 초기 |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문묘 종사 | 왕실의 권위와 성리학적 질서를 다시 세우다 | 존재 자체만으로도 부담스러웠던 형, 임해군 | 봉산옥사: ‘광해군식 옥사’의 시작 | ‘폐모살제’―반정의 씨앗을 심다 | 허균의 석연치 않은 죽음 | “오직 패하지 않을 방도를 강구하라” | 음양술에 빠져 무리하게 토목공사를 진행하다 | 인조반정―광해군과 소성대비의 인생 역전 | 피해의식을 버리고 개혁으로 나아갔다면 ……
Talk 12 인조실록 ― 명분에 사로잡혀 병란을 부르다
인조반정의 주역들: ‘잡군자’ 이귀, 화합형 관료 김류 | 이괄의 ‘난’인가, 이괄의 ‘변’인가 | 굴러가는 힘이 부족했던 반란 | 정묘호란: 후금의 후방 다지기 | 조선은 정묘호란 이후 어느 나라 연호를 썼나? | 유일한 대안은 남한산성, 그러나 결국 …… | 시대착오적인 친명배금의 대가 | ‘환향녀’를 저버린 조선 사대부들 | 김상헌과 최명길, 누가 옳았나? | 비운의 장수 임경업, 인생 역전 정명수 | 비극의 씨앗이 된 심양 생활 | 소현세자의 죽음, 독살인가? | 잔혹한 인조―며느리와 손자들을 죽음으로 몰아넣다 | 인조와 소현세자: 선조·광해군 세트의 확대증보판
Talk 13 효종·현종실록 ― 군약신강의 나라
사대부들이 예학에 집착한 까닭 | 두 번 쿠데타의 주역이 될 뻔한 김자점 | 효종의 정통성 콤플렉스 | 무인적 기질이 강한 실용주의자 | 네덜란드 상인들은 조선의 존재를 몰랐을까? | 대동법, 그들은 왜 반대했나? | 효종과 송시열의 미스터리한 독대 | 효종이 꺼내 든 회심의 카드, 북벌 | 여론조사로 대동법 실시의 근거를 마련하다 | 1년복이냐 3년복이냐―기해년의 예송논쟁 |현종의 이미지와 실체 | 송시열과 그의 적들 | 군약신강의 나라 | 이번에는 ‘9개월복이냐 1년복이냐’로―갑인년의 예송논쟁 | 밖으로는 굴욕, 안으로는 기근 | 정통성 문제로 에너지를 소모한 25년
Talk 14 숙종실록 ― 공작정치, 궁중 암투, 그리고 환국
강력한 소년 군주 | 사관조차 쩔쩔매게 한 왕의 비답 | 북벌의 숨은 주창자, 윤휴 | 당파에 치우치지 않은 허적과 공작정치의 달인 김석주의 연대 | 숙종식 환국정치의 서막―경신환국 | 서인이 노론과 소론으로 분화하다 | 사극의 단골 주인공 장 희빈의 부상 | 기사환국: 그녀를 위한 기획 | 송시열의 시대가 막을 내리다 | 갑술환국: 군강신약의 나라로 | 장 희빈과 인현왕후의 최후 | 대리청정의 그물에 걸린 세자 | 조선 사회에 다양한 변화를 가져온 숙종시대 46년 | 민간 외교사상 유례없는 쾌거―안용복의 울릉도 지키기 | 군강신약은 이루었으나
Talk 15 경종·영조실록 ― 탕평의 깃발 아래
소론 임금, 노론 정권 | 경종의 ‘숙종식’ 환국 | 벼랑 끝에 몰린 세제―목호룡 고변사건 | 거대한 그늘을 남긴 경종 집권 4년 | 노론 임금, 소론 정권 | 영조의 탕평책에 숨겨진 의미 | 탕평의 효과, 하나: 소론이 소론의 난을 평정하다 | 탕평의 효과, 둘: 소론의 양보를 얻어내다 | 탕평의 효과, 셋: 영조가 역모의 혐의를 벗다 | 껍데기만 남은 탕평 | 탕평정치에서 척신정치로 | 성실한 유학 군주의 긴 치세 | 최연소 원자, 최연소 세자 | 선위파동―세자 길들이기 | 노론이 왕과 세자 사이를 이간질했을까? | 영조는 아들의 죽음을 슬퍼했나? | 사도세자의 죽음에 대한 몇 가지 해석
Talk 16 정조실록 ― 높은 이상과 빼어난 자질, 그러나 …
영조 말년의 두 척신 세력: 북당과 남당 | 세손·홍국·서명선 라인의 형성 | “과인은 사도세자의 아들이오” | 단호한 의지로 척신을 숙청하다 | 대놓고 시도한 정조 암살 | ‘원한 비서실장’의 실각 | 사회 비주류들이 일으킨 역모사건 | 정조와 예순대비의 정치적 타협 | 정조식 탕평책: 준론 탕평 | 정조식 탕평의 세 번째 축, 채제공 | 정조는 실학의 후원자인가? | “대체로 이문을 넓히려는 것이었습니다”― 정약용의 해명 | 시파와 벽파 | 실록과는 다른 사도세자 묘의 지문 내용 | 5·22하교의 속뜻 | 금등 이야기는 사실일까? | 백성이 그나마 좀 편안했던 시절 | 정조는 개혁군주인가? | 18세기를 마감하고 떠나다
Talk 17 순조실록 ― 가문이 당파를 삼키다
벽파 정부의 등장 | 명분의 승리―예순대비의 언문 하교 | 벽파의 복수―홍낙임 처형 | 예순대비는 왜 천주교를 박해했나? | 예순대비의 정치, 반동인가 계승인가 | 대왕대비와 좌의정의 설전 | 김조순 시대의 개막 | 홍경래의 난―새로운 성격의 반란 | 정주성, 조선시대판 해방구 | 똑똑한, 그러나 전략이 없었던 왕 | 효명세자의 대리청정은 빛났으나 …… | 세도정치는 당파정치와 어떻게 다른가? | 사대부에 의한, 사대부를 위한, 사대부의 나라 | 이양선의 출현, 무반응으로 일관하는 조정
Talk 18 헌종·철종실록 ― 극에 달한 내우, 박두한 외환
안동 김씨가 비변사를 중심으로 국정을 장악하다 | 또다시 천주교를 탄압하다―기해박해 | 안동 김씨의 천하 | 헌종의 반격―안동 김씨에 맞서다 | 강화 도령의 즉위, 안동 김씨의 음모인가? | 세도정치의 희생양, 추사 김정희 | 안동 김씨를 위한 세상 | 삼정의 문란과 민란 도미노 | 아무 성과 없이 끝난 삼정 개혁 | 서로 달랐던 중국과 일본의 개항 | 사대부의 조선 500년 | 이양선에 대한 대책: ‘중국을 통해서 해결한다’ | 존재감이 없었던 헌종과 철종
Talk 19 고종실록 ― 쇄국의 길, 개화의 길
효유대비와 흥선군이 손을 잡다 | 요즘 정치가들도 살펴볼 필요가 있는 흥선대원군의 정치 | 부정부패 척결에서 제도 개혁으로 | 온갖 적폐의 온상, 서원을 철폐하다 | 속전속결로 경복궁을 재건하다 | 대대적인 천주교도 학살 | 병인양요와 신미양요―본격적인 척사의 길로 | 흥선대원군의 공과 과 | 반反흥선대원군 세력의 형성 | 대원군 저격수, 최익현 | 고종의 대원군식 인사정책 | ‘명성황후’인가 ‘민비’인가 | 서양을 인정하고 근대화에 나서다―일본의 메이지 유신 | 불평등했던 조선의 개항 | 《사의조선책략》을 둘러싼 시각 차이 | 임오군란―흥선대원군의 재등장 | 시아버지와 며느리, 기막힌 운명의 교차 | 개화 흐름의 형성 | 친청 온건개화파 vs 친일 급진개화파 | ‘삼일천하’로 끝난 갑신정변 | 갑신정변이 실패한 원인은 무엇인가?
Talk 20 망국 ― 오백 년 왕조가 저물다
잃어버린 10년 | 동학의 확장: 교조 신원을 넘어서 | ‘수탈의 달인’ 조병갑, 혁명의 도화선이 되다 | 청일전쟁을 초래한 고종의 파병 요청 | 일본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한 갑오개혁 | 일본에 맞서 다시 봉기하는 동학농민군 | 1894년의 농민전쟁, 어떻게 부를 것인가? | 갑신정변 주역들의 귀환 | 이노우에는 왜 친일 세력의 상징 박영효를 퇴출시켰나? | ‘여우 사냥’: 명성황후 시해사건 | 아관파천―치욕적이지만 굉장히 치한 작전 | 명성황후와 흥선대원군, 주연이 되려 한 두 조연 | 고종, 황제가 되다 | 러시아를 둘러싼 고종과 독립협회의 갈등 | 독립협회운동에서 의회설립운동으로 | 관민 합동 국무회의 |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의 종언 | 고종황제의 마지막 승부수: 대한국 국제 반포와 광무개혁 | 일본의 러일전쟁 승리―한국에 대한 우위를 결정짓다 | 을사조약: “한국의 외교권을 박탈한다” | 역사의 비극, 최익현의 죽음 | 자강운동, 그러나 …… | 헤이그 밀사 파견으로 퇴위당하는 고종황제 | 일제의 홍보에 이용당한 순종 | 안중근의 하얼빈 의거 | 조선왕조의 최후 | 망국 후의 황실
출판사 서평
1. 장장 17년, 《역사 토크 조선왕조실록》이 나오기까지
―《조선왕조실록》이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으로, 다시 《역사 토크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으로
2001년 《국역 조선왕조실록》 시디롬을 구입하여 공부에 나선 박시백 화백. 2003년 1권 개국편을 시작으로 10년 만인 2013년 7월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전 20권)을 완간하여 350만 독자의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2013년 완간과 동시에 박시백 화백에 건국대 사학과 신병주 교수, 인문학 번역가 겸 저술가 남경태 선생, 휴머니스트 출판사 김학원 대표 등이 결합하여, 네 사람이 함께 만 1년 동안 역사 방송 ‘팟캐스트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을 총 50회(70시간 분량)에 걸쳐 진행, 역사 방송으로는 최초로 1000만 다운로드를 기록하며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리고 이 방송을 녹취한 원고 6000매를 3000매로 축약하여 조선왕조 500년사의 핵심을 짚은 것이 바로 《역사 토크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이다.
왕과 신료의 말을 글로 담은 《조선왕조실록》이 박시백 화백에 의해 글과 그림으로 재탄생했고, 다시 이를 바탕으로 나눈 70시간의 말이 《역사 토크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이란 글로 이어졌다. 17년, 이 어마어마한 프로젝트의 배경에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실록이라는 방대한 역사서로 기록문화의 정수를 보여준 조선의 기록 정신을 오늘에 되살려보고자 한 의도가 있었다. 더불어 하나의 역사에서 다양한 역사로, 주어진 역사에서 생각하는 역사로 나아가는 시대적 흐름에 발맞추어 논쟁을 통해 역사를 다양하게 해석하는 것의 즐거움을 독자들과 나누고자 한 것이다.
2. 4인4색 역사 수다꾼들과 함께 조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실록 담당 박시백, 역사 소통 담당 신병주, 세계사 담당 남경태, 흐름을 꿰는 진행 김학원, 환상의 조합
한 사람이 쓴 역사책은 일목요연하여 이해하기가 쉽다. 그러나 ‘이건 무슨 뜻이지?’ ‘이 통설은 내 생각과 다른데……’ 하는 부분에 이르러도 꾹 참고 계속 읽어 내려갈 수밖에 없는 것이 아쉬운 점. 그렇다면, 나의 궁금증을 바로바로 해소해주는 역사책은 없을까? 《역사 토크 조선왕조실록》은 내가 그 속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책이다. 나 대신 그들이 질문하고 그들이 답을 해주어 궁금증을 풀어준다. 진행자 김학원 대표가 역사 용어의 뜻을 물으면 신병주 교수가 머리에 쏙쏙 들어오게 정리를 해준다. 남경태 선생이 방금 말한 내용이 실록에 정말 나오느냐 하면, ‘실록에 나온다’ 또는 ‘야사에 등장하는 이야기다’라고 정리해준다. 이 인물을, 이 사건을 학계에서는 어떻게 보냐는 질문에 신병주 교수가 연구 동향을 쭉 풀어주면, 때로는 박시백 화백이 ‘실록을 보면 좀 다른 것 같은데요’ 하고 딴지를 걸기도 한다. 그 무렵 다른 나라 상황은 어땠는지 궁금할라치면, 바로 남경태 선생이 끼어들어 부연설명을 한다. 그래서 어느 순간, 나는 강연에 참석하여 일방적으로 듣는 것이 아니라 4인4색 역사 수다꾼들의 술자리에 끼어들어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이렇게 직접 참여하고 능동적으로 읽을 수 있는 역사책이 바로 《역사 토크 조선왕조실록》이다.
3. 하나의 사건, 다양한 해석
―조선사 핵심 쟁점을 놓치지 않고 전달하다
조선사 500년 핵심적인 사건만 가려 뽑아 전하되, 네 사람의 토크로 각 사건의 핵심 쟁점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특히 서로 다른 시선이 교차하면서 하나의 사건에 대한 다양한 해석 가능성을 보여주고, 예리한 분석과 뜨거운 토론으로 조선사 명장면을 확인케 한다.
- 어쩔 수 없이 일으킨 반란이다?: 실록에 따르면, 1398년 1차 왕자의 난은 정도전 세력이 왕자들을 죽이고 정권을 찬탈하려 했기 때문에 이방원이 이를 막으려고 일으킨 것으로 서술된다. 그러나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당시 정도전이 태조 이성계의 허락 없이 왕자들을 죽일 까닭이 없다. 게다가 거사를 앞둔 정도전이 남은의 첩 집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는 것도 납득이 되지 않는다. 이런 의문을 가지고 실록의 행간을 읽어보면 1차 왕자의 난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가능하다. 과연 진실은 무엇일까? 1453년 수양대군의 계유정난도 마찬가지다. 안평대군 측의 역모에 반격을 가하다보니 그렇게 되었다는 것이 실록의 기록인데, 기존의 해석과 새로운 해석, 그리고 왜 그와 같이 해석의 차이가 생겨났는지 그 이유를 《역사 토크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 훈민정음은 누가 만들었나?: 훈민정음은 세종과 집현전 학자의 합작품이라는 학계의 통설에 대해 박 화백은 반론을 제기한다. 세종이 언문 28자를 지었다고 발표한 1443년 12월까지 실록에 훈민정음과 관련해 단서가 될 만한 그 어떤 기록도 없으며, 당연히 집현전이 관여했다는 기록도 없다는 것. 그리고 여기에 문종이 세자 시절 훈민정음 창제에 관여했다는 설까지 나오는데 … 그렇다면 훈민정음 창제, 어떻게 보아야 하나? 실록에 기록이 없다니, 그렇다면 혹시 세종이 비밀리에 단독으로 만들고 깜짝 발표를 한 것은 아닐까?
- 영조는 왜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둬 죽였나?: 사도세자의 죽음에 대한 기존의 통설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노론이나 사도세자를 싫어하는 쪽에서 왕과 세자를 이간질했다, 즉 사도세자의 죽음은 당쟁의 산물이라는 설이다. 또 하나는 사도세자가 미쳐서 온갖 악행을 저질렀고, 그걸 차마 볼 수 없었던 영조가 죽였다는 설이다. 여기에 대해 박 화백은 제3의 설을 제기한다. 좀 뜬금없지만, 영조의 이례적인 장수가 결정적인 원인이었다는 것. 영조의 장수와 사도세자의 죽음,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 걸까? 기존의 통설과 새로운 설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역사 토크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에서 확인할 수 있다.
4. 이미 평가가 끝난 인물, 그러나 ……
―700여 명의 인물이 입체적으로 살아나다
네 사람의 토크 속에서 조선사 500년의 주요 인물들이 자연스럽게 등장하면서 오늘의 눈으로 각 인물들을 입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엇갈리는 평가의 인물을 다시 견줘보기도 하고, 애석하게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인물을 되살려내기도 하며, 너무 후한 평가를 받은 인물들을 냉철하게 돌아보기도 한다.
- 우리가 알던 그 황희 정승 맞나?: 공평무사, 청렴결백의 화신으로 알려진 청백리이자 19년 동안 영의정의 자리에 있었던(정승 기간을 모두 합치면 24년) 명재상 황희. 그러나 실록은 그의 전혀 다른 면모를 전한다. 개간작업을 추진한 공을 내세워 개간한 땅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뇌물을 받고 벼슬자리를 주는 것도 모자라, 살인을 저지른 사위를 구하기 위해 동료와 짜고 공문서를 위조하기까지……. 그렇다면 우리는 황희에 대한 기존 평가를 모두 철회해야 할까?
- 정조는 개혁군주인가?: 서얼의 차별을 금지한 서얼허통법, 시전 상인의 독점권인 금난전권을 폐지한 신해통공, 공노비 해방 등 숱하게 많은 개혁정책을 추진했고, 더 나아가 실학을 적극적으로 후원했다고 알려진 정조. 그가 개혁군주라는 데에 아무런 이견이 없을 듯 보이지만, 박 화백은 ‘정조=개혁군주’ 도식을 재검토해야 한다며 문제를 제기한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위대한 군주로 알려진 정조가 사실은 조선시대의 그저 그런 왕 가운데 한 명이었다는 말인가?
- 재위기간은 짧지만 강렬했던 왕들: 재위기간이 짧아 왠지 유약할 것 같고 별로 한 일도 없을 것 같은 왕들이 있다. 하지만 그건 편견이다. 문종은 재위기간이 짧았지만(2년 3개월) 대리청정 기간까지 합하면 10년 가까이 정치를 하면서 화포 개량, 측우기 제작에 참여했고, 최근에는 훈민정음 창제에도 관여했다는 설이 나올 정도. 예종 역시 치세가 짧지만(1년 2개월) 세조의 판박이라 불릴 정도로 기세가 대단한 임금이었다. 그 전까지 유명무실했던 분경금지법(고위공직자의 청탁을 금지하는 법)을 강력하게 시행하여 공직사회의 기강을 바로 잡으려 했다. 30년의 세자 생활을 거쳐 왕위에 오른 경종. 장 희빈의 아들이라는 핸디캡 때문에 즉위 뒤에도 숨죽여 지내지만,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 숙종식의 환국을 단행, 자신의 정적을 일거에 무너뜨리는 놀라운 정치력을 보여준다.
- 아직 연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인물들: 유자광은 세조시대부터 중종시대까지 다섯 임금을 거치는 동안 온갖 권모술수로 대신과 사림을 축출했고, 연산군시대에 부귀영화를 누리고도 중종반정에 참여하여 최고 공신 반열에 오른 인물. 그러나 그는 조선시대 간신의 대명사로 불려서인지 여전히 학계의 관심 밖에 있다. 정광필은 중종 집권 후반기에 권신들이 조정을 장악하고 있을 때 정승 자리에만 14년을 있으면서 정국의 균형을 잡는 역할을 했다. 중종이 조광조와 함께 투톱으로 삼아 조광조를 개혁 엔진으로 삼고 정광필로 개혁의 속도를 조절했다면 하고 박 화백이 아쉬워했을 정도. 중종시대의 연구는 조광조에 초점이 맞춰지다 보니 정광필 같은 인물에 대한 연구가 부족한 것이 아쉽다. 그 외에도 한국의 솔로몬이자 오늘의 지방자치단체장들이 모범으로 삼을 만한 풍기 군수 주세붕, 대동법을 위해 일생을 바친 김육 등 오늘날 다시 떠올릴 만한 인상적인 조선 인물들이 그득하다.
5. 조선사 명장면을 박시백 화백으로 그림으로 다시 보다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에서 엄선한 200여 장의 그림
통찰력 있는 이해와 명민한 분석으로 실록의 핵심을 전하는 박시백 화백의 그림 중에서도 명장면만을 뽑아 네 사람의 토크와 함께 보여준다. 두세 컷 속에 사건의 핵심을 오롯이 담은 그림, 인물의 특징을 한눈에 알아보도록 한 그림, 다시 보고 싶은 조선사 최고의 장면을 연출한 그림 등을 선별해 책에 담았다. 이 책에 실린 그림을 통해 다시 한 번 박 화백의 통찰력과 재치를 확인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조선의 주요 인물과 사건을 인상적으로 떠올릴 수 있다.
기본정보
ISBN | 9791160800968 |
---|---|
발행(출시)일자 | 2017년 12월 18일 |
쪽수 | 496쪽 |
크기 |
153 * 224
* 28
mm
/ 711 g
|
총권수 | 1권 |
Klover
e교환권은 적립 일로부터 180일 동안 사용 가능합니다.
리워드는 작성 후 다음 날 제공되며, 발송 전 작성 시 발송 완료 후 익일 제공됩니다.
리워드는 리뷰 종류별로 구매한 아이디당 한 상품에 최초 1회 작성 건들에 대해서만 제공됩니다.
판매가 1,000원 미만 도서의 경우 리워드 지급 대상에서 제외됩니다.
일부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거나 불편을 끼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아래에 해당하는 Klover 리뷰는 별도의 통보 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
- 도서나 타인에 대해 근거 없이 비방을 하거나 타인의 명예를 훼손할 수 있는 리뷰
- 도서와 무관한 내용의 리뷰
- 인신공격이나 욕설, 비속어, 혐오발언이 개재된 리뷰
- 의성어나 의태어 등 내용의 의미가 없는 리뷰
리뷰는 1인이 중복으로 작성하실 수는 있지만, 평점계산은 가장 최근에 남긴 1건의 리뷰만 반영됩니다.
구매 후 리뷰 작성 시, e교환권 200원 적립
문장수집
e교환권은 적립 일로부터 180일 동안 사용 가능합니다. 리워드는 작성 후 다음 날 제공되며, 발송 전 작성 시 발송 완료 후 익일 제공됩니다.
리워드는 한 상품에 최초 1회만 제공됩니다.
주문취소/반품/절판/품절 시 리워드 대상에서 제외됩니다.
구매 후 리뷰 작성 시, e교환권 100원 적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