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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관련 프랑스외무부 자료. 6 [1953.01.06 ~ 1953.07.31 / 장관실문서 (1950.06.25 ~ 1952.12.10)]

성균관대학교 프랑스어권문화융합연구소 | 한불외교자료총서 9 | 양장
선인 편집부 지음 | 이지순 , 박규현 , 김영 옮김 | 선인 | 2021년 02월 22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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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상세정보
ISBN 9791160684551(1160684553)
쪽수 853쪽
크기 162 * 235 * 47 mm /1341g 판형알림

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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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은 냉전문제에 관련된 대표적인 전쟁이다. 또 한편으로는 탈냉전의 문제와도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러한 복합적 국제관계 상황에서 프랑스 자료들은 향후 한국전쟁을 비롯한 냉전과 탈냉전 연구에서 무척 중요하다. 프랑스는 미국과 보조를 맞추거나 미국의 발표에 따라 정보를 수집했음에도 미국과 항상 동일한 입장을 취한 것이 아니라 자국의 독립적인 시각을 견지했다. 이러한 까닭에 프랑스의 한국전쟁 자료는 한국전쟁의 단면을 다각도에서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자료가 될 수 있다. 본 자료집이 담고 있는 외교문서를 보면 휴전협상의 과정이 미국의 입장이 유엔에서 관철되는 과정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지만, 유엔 총회나 휴전회담 전개 과정에서 프랑스가 반드시 미국과 보조를 맞추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달리 말하면, 제2차세계대전 이후 달라진 미국의 위상이 절대적으로 반영되기는 하지만 프랑스 또한 유엔에서 자국의 입장을 관철시키려고 노력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직접 휴전협상국은 아니었으나 각국에 파견된 외교관들을 통해 포로가 된 프랑스 포로들의 귀환을 시도하기도 했다. 당시 프랑스는 한반도보다는 베트남을 비롯한 인도차이나반도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렇기에 조기 종전을 내세우며 미국과는 다른 입장에서 휴전협상을 인식했고, 프랑스외무부 자료에서는 이러한 프랑스의 입장을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본 자료집에 실린 프랑스 자료는 미국(워싱턴)과 유엔(뉴욕), 일본, 영국, 소련에 주재한 프랑스 외교관들을 통해 수집된 정보가 주를 이루지만, 그 외에도 세계 각지의 프랑스 외교관들을 통해 수집된 정보를 담고 있다. 이러한 수집 정보를 통해 한국전쟁 당시 프랑스가 어떠한 부분에 집중하고 있으며, 각국에서 한국전쟁의 어떠한 면이 쟁점으로 제기되고 있는가를 검토할 수 있다.

목차

해제

1953년 1월 6일~7월 31일

【1】 한국전쟁과 마주한 중국과 미국(1953.1.6)
【2】 아이젠하워 정권의 아시아 정책에 대한 예상(1953.1.7)
【3】 한국전쟁에 대한 케이시 장관의 성명(1953.1.9)
【3-1】 별첨 1-케이시 장관의 성명서
【4】 도쿄 회담에 대한 러시아 언론의 반응(1953.1.10)
【5】 이승만 대통령의 도쿄 초청 방문(1953.1.10)
【6】 공산주의자들의 판문점 호송 안전 보장에 대한 미국 정부의 결정(1953.1.13)
【7】 이든 장관의 중국과 한국에 대한 발표(1953.1.23)
【8】 극동 미군 주요 지휘관들의 견해(1953.1.25)
【9】 미 공화당 정부와 한국(1953.1.29)
【10】 공산군의 동향(1953.1.31)
【11】 중국 국민당 군사력의 사용 결정(1953.2.4)
【12】 미 행정부의 전체적 구상(1953.2.6)
【13】 미 행정부의 입장(1953.2.11)
【14】 호주대표단의 정보(1953.2.13)
【15】 중공-북한군 증원에 관한 미 참모부의 판단(1953.2.14)
【16】 미 행정부의 입장(1953.2.11)
【17】 떠나는 밴 플리트 장군의 메시지(1953.2.15)
【18】 아랍 및 아시아대표단 회의(1953.2.16)
【19】 미 행정부의 입장(1953.2.17)
【20】 한국 군사 지원 국가들의 차기 총회를 대비한 회의(1953.2.19)
【21】 한국에 관한 영국 국방부장관의 견해(1953.2.19)
【22】 전쟁에 대한 각 열강들의 입장(1953.2.19)
【23】 남일 장군이 유엔연합군사령관에게 보낸 편지(1953.2.24)
【24】 조선통신사의 북한 폭격 상황 결산 배포(1953.2.24)
【25】 미국이 부담하는 한국전쟁 비용(1953.2.25)
【26】 호주 대표단의 정보(1953.2.26)
【27】 미군에 대한 한-미 재정 협의(1953.2.27)
【28】 전쟁포로 재판에 대한 미국의 계획(1953.3.3)
【29】 미 합참의장의 연설(1953.3.3)
【30】 중공-북한 전쟁포로 재판(1953.3.4)
【31】 영국 상·하원에서 다룬 한국문제(1953.3.4)
【32】 영국 국방부장관의 한국분쟁에 대한 발표(1953.3.4)
【33】 주베이징 스웨덴대사의 정보(1953.3.5)
【34】 한국문제에 관한 회의 보고(1953.3.5)
【35】 중공-북한 전쟁포로 재판에 관한 프랑스 정부의 입장(1953.3.5)
【36】 남한 정부의 서울 이전(1953.3.5)
【37】 한국전쟁에 대한 밴 플리트 장군의 의회 증언(1953.3.5)
【38】 이승만 대통령의 성명(1953.3.6)
【39】 한국 포로수용소 폭동(1953.3.9)
【40】 정책위원회의 한국문제 논쟁(1953.3.10)
【41】 인도차이나 문제에 대한 한국 지도자들의 반응(1953.3.11)
【42】 한국 재건에 관한 결의안 투표(1953.3.12)
【43】 밴 플리트 장군의 샌프란시스코 방문(1953.3.12)
【44】 유엔군 전쟁포로(1953.3.13)
【45】 한국정부 서울 이전(1953.3.15)
【46】 소련-북한 협약 체결 4주년에 대한 소련 언론의 반응(1953.3.17)
【47】 클라크 장군과의 대담(1953.3.17)
【48】 중공-북한 포로 재판(1953.3.18)
【49】 중국과 한국(1953.3.18)
【50】 클라크 장군에게 보낸 김일성과 펑더화이의 메시지(1953.3.29)
【51】 중공-북한의 새로운 제안에 대한 영국언론의 반응(1953.3.31)
【52】 중공-북한의 새로운 제안에 대한 영국 외무부의 입장(1953.3.31)
【53】 포로송환 합의와 저우언라이의 변화(1953.3.31)
【54】 부다페스트에서 개최되는 세계평화회의의 주제(1953.4.1.)
【55】 소련과 중국의 모스크바 회담에서 데탕트의 입장 표명(1953.4.1)
【56】 병들고 다친 포로송환 문제에 대한 클라크 장군과 저우언라이의 서신 교환(1953.4.1)
【57】 저우언라이의 선언문(1953.3.30)
【58】 저우언라이의 스위스대사 접견(1953.4.2)
【59】 중국 정부의 태도에 대한 외무부의 신중한 접근(1953.4.2)
【60】 한국문제에 대한 몰로토프의 담화문(1953.4.2)
【61】 한국문제에 대한 몰로토프의 담화문(1953.4.2)
【62】 클라크 장군의 서한에 대한 중국·북한의 답변(1953.4.3)
【63】 몰로토프 씨의 발표에 나타난 소련의 입장 해석(1953.4.3)
【64】 클라크 장군의 서한에 대한 중국·북한 군 사령관의 답변(1953.4.3)
【65】 공산진영의 제안에 대한 미국의 여론과 워싱턴 관가의 반응(1953.4.4)
【66】 저우언라이의 메시지에 대한 일본의 반응(1953.4.4)
【67】 판문점 협상의 상황 총정리(1953.4.9)
【68】 대(對) 유엔군 세균전 고발 관련하여(1953.4.8)
【69】 소련 대표 비신스키 장관의 발언(1953.4.10)
【70】 남일 장군의 답변서 관련하여(1953.4.10)
【71】 폴란드의 제안문에 대한 논쟁(1953.4.11)
【72】 포로 협상 관련한 한국 외무부장관의 발언(1953.4.11)
【73】 유엔포로수용소에서 공산군 포로들의 전투태세(1953.4.12)
【74】 미국의 신중치 못한 언론에의 공개에 대한 비판(1953.4.13)
【75】 저우언라이의 메시지에 대한 프랑스·영국과 미국 간의 의견 차이(1953.4.14)
【76】 브라질의 해결안(1953.4.14)
【77】 중국·북한의 제안에 대한 유엔군사령부의 답변 준비(1953.4.14)
【78】 한국의 통일에 대한 계획(1953.4.14)
【79】 유엔 사무총장에게 보내는 프랑스의 의견서(1953.4.14.)
【80】 중국의 제안에 대한 세계의 환영(1953.4.15)
【81】 만장일치로 브라질 안 채택(1953.4.16)
【82】 미국 수정문의 중국·북한으로의 전달(1953.4.16)
【83】 일본과 한국 휴전협상의 전망(1953.4.16)
【84】 한국 국회와 학생 시위(1953.4.25)
【85】 남일 장군의 6개 항목 제안(1953.4.28)
【86】 공산진영의 제안에 대한 회의적 견해(1953.4.28)
【87】 휴전협상에서 스위스 감독관들의 중립적 행동 강조(1953.4.28)
【88】 영국 언론의 휴전협상에 대한 관점들(1953.4.29)
【89】 이승만 대통령의 발언들(1953.4.29)
【90】 미 국무부의 휴전협상 상황 요약(1953.4.29)
【91】 영국 신문들의 미 국무부의 조치에 대한 비판적 견해(1953.5.1)
【92】 비자발적 포로 보호를 맡을 중립국 선택에 대한 해리슨 장군의 발언들(1953.5.1)
【93】 유엔 측의 병들고 부상당한 포로들의 송환 이행 촉구(1953.5.2)
【94】 판문점 협상에 대한 영국 관가의 긍정적 견해(1953.5.4)
【95】 파키스탄 대사의 중립국 관련 제안(1953.5.4)
【96】 휴전조약 성사에 대한 긍정적 전망(1953.5.5)
【97】 미 국무부의 문제시되는 발언들(1953.5.5)
【98】 소련 관료의 한국 종전과 아시아 상황에 대한 견해(1953.5.6)
【99】 남일 장군의 8개 항목 제안(1953.5.7)
【100】 송환을 거부하는 포로들의 이송에 대한 영국의 견해(1953.5.8)
【101】 판문점 대표단이 발표한 8개 항목의 제안서(1953.5.8)
【102】 공산군 측의 제안에 대한 분석(1953.5.9)
【103】 공산군 측의 제안에 대한 분석(1953.5.9)
【104】 유엔군 측이 제기한 질문들에 대한 남일 장군의 답변(1953.5.11)
【105】 유엔총회의 이전 해결안의 폐기에 대한 견해(1953.5.12)
【106】 미국 비행기의 중국 영토 침입에 대한 저우언라의 항의(1953.5.12)
【107】 유엔군사령부 측의 반대안 제출(1953.5.12)
【107-1】 별첨 1-중국 공산주의자들에 대해 취한 억류 조치의 잠재적 철회
【108】 공산군 측의 제안에 대한 미국의 반대안 준비(1953.5.13)
【109】 한국 휴전협상에 대한 미국 여론 조사(1953.5.13)
【110】 미국의 반대안에 대한 프랑스 당국의 견해 전달(1953.5.12)
【111】 미국의 반대안에 대한 영국과 캐나다, 일본의 견해(1953.5.13)
【112】 유엔군사령부 측의 반대안 제출(1953.5.13)
【113】 미국 신문에 게재된 미국의 제안서 내용(1953.5.14)
【114】 인도의 안과 미국의 반대안과의 차이에 대해(1953.5.15)
【115】 미국 신문에 게재된 미국의 제안서 내용(1953.5.15)
【116】 중공, 인도, 캐나다, 미국 정부의 입장(1953.5.16)
【117】 중화민국의 항의(1953.5.16)
【118】 판문점 회담에서의 양측의 입장차(1953.5.16)
【119】 판문점 회담 보고서(1953.5.16)
【120】 포로송환에 관한 프랑스 외무부의 입장(1953.5.16)
【121】 인도 정부의 입장(1953.5.16)
【122】 캐나다 정부의 우려 전달(1953.5.17)
【123】 포로 송환 문제 협상 경과(1953.5.17)
【124】 미 국무부의 성명(1953.5.미상)
【125】 인도 정부의 입장(1953.5.17)
【126】 포로 문제에 대한 영국 외무부의 입장(1953.5.18)
【127】 프랑스 외무부의 우려(1953.5.18)
【128】 미 정부의 입장에 관한 ?데일리헤럴드? 기사(1953.5.19)
【129】 중화민국의 대미 항의 통첩(1953.5.19)
【130】 포로 송환에 관한 남한 외무장관의 성명(1953.5.19)
【131】 미 극동 담당 국무차관보와의 면담(1953.5.19)
【132】 인도 결의안 수락에 관해(1953.5.20)
【133】 휴전안에 대한 미 정부의 입장(1953.5.20)
【134】 유엔군 사령부의 입장(1953.5.20)
【135】 유엔군 사령관의 입장(1953.5.20)
【136】 주한 프랑스대사의 보고 내용(1953.5.20)
【137】 미 극동 담당 국무부차관보와의 면담(1953.5.20)
【138】 전쟁포로 송환에 관한 유엔의 수정안(미상)
【139】 판문점 협상(미상)
【140】 연합국 간 사전 협의에 관한 영국 외무부의 입장(1953.5.22)
【141】 영국 외무부의 반응(1953.5.22)
【142】 영국 총리의 입장(1953.5.22)
【143】 프랑스 외무부의 입장(1953.5.22)
【144】 미국의 수정안(1953.5.23)
【145】 한국전 및 휴전 협상 상황(1953.5.26)
【146】 미 정부의 타협안(1953.5.27)
【147】 미 유엔 담당 국무차관보의 보고(1953.5.26)
【148】 미 대통령의 성명(1953.5.28)
【149】 아랍 및 아시아 국가 대표단들의 입장(1953.5.29)
【150】 한국 전선의 상황(1953.5.30)
【151】 영미 간 마찰(1953.5.31)
【152】 남한 측 입장(1953.5.31)
【153】 한국 협상과 인도차이나반도 협상 연계
【154】 남한 측 입장(1953.6.1)
【155】 남한 정부의 태도에 대한 미 정부의 반응(1953.6.1)
【156】 휴전에 관한 대한민국 정부의 입장 재표명(1953.6.3)
【157】 휴전에 대한 남한 정부의 입장(1953.6.3)
【158】 남한에 대한 미국의 원조 계획(1953.6.4)
【159】 공산군 측 수정안 내용(1953.6.4)
【160】 공산군 측의 수용 사항(1953.6.5)
【161】 말리크 주영 소련대사의 견해(1953.6.6)
【162】 주미 영국대사관이 얻은 정보(1953.6.6)
【163】 휴전협정에 관한 소련 언론의 보도(1953.6.6)
【164】 포로 송환 문제 관련 협의(1953.6.6)
【165】 휴전협정에 관한 언론 보도(1953.6.7)
【166】 이승만 대통령의 입장(1953.6.7)
【167】 남한의 태도 변화(1953.6.7)
【168】 남한의 휴전협정 수용설로 인한 동요(1953.6.7)
【169】 미 대통령 친서에 대한 남한의 반응(1953.6.7)
【170】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친서에 대한 AFP통신의 보도(1953.6.7)
【171】 휴전회담에 관한 ?프라우다?의 보도(1953.6.8)
【172】 전쟁포로 처리에 관한 협정 조인(1953.6.8)
【173】 전쟁포로 처리에 관한 협정 내용(1953.6.8)
【174】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친서에 관한 미 언론 반응(1953.6.8)
【175】 포로교환협정 체결에 관한 남한의 반응(1953.6.9)
【176】 남한 정부의 휴전 동의 소식 부인(1953.6.9)
【177】 군사분계선 조정 협의 시작(1953.6.9)
【178】 미 국무부에 대한 프랑스 외무부의 요청(1953.6.9)
【179】 스위스 정부 발표가 불러온 혼란(1953.6.10)
【180】 휴전계획에 대한 한국의 반발(1953.6.16)
【181】 한국 전선의 상황과 미 전쟁포로 송환 계획(1953.6.16)
【182】 분계선 획정에 관한 합의(1953.6.16)
【183】 한국 전선의 상황과 공산군의 의도(1953.6.16)
【184】 휴전계획에 대한 한국의 반발(1953.6.11)
【185】 반공포로 석방(1953.6.18)
【186】 유엔 군사정전위원회와 반공포로 석방(1953.6.18)
【187】 반공포로 석방에 관한 미군 측 보고(1953.6.18)
【188】 프랑스의 수정에 대한 에티오피아의 부정적 반응(1953.6.19)
【189】 포로 탈주에 대한 의견 교환(1953.6.19)
【190】 이승만 대통령의 태도에 대한 영국과 미국의 우려(1953.6.19)
【191】 남한의 상황에 대한 미국 정부의 단호한 대처(1953.6.19)
【192】 15개국 한국 참전국들의 결의안 공표 계획(1953.6.19)
【193】 미 국무장관의 현 상황 발표(1953.6.19)
【194】 파리 발신 공문(1953.6.19)
【195】 한국 휴전협정의 결과들(1953.6.19)
【196】 북한포로 석방 사태에 대한 여러 언론의 관점(1953.6.20)
【197】 북한포로 석방에 대한 미국의 입장(1953.6.20)
【198】 북한포로들의 탈출에 관해(1953.6.20)
【199】 수용소 포로들에 대한 사령부의 조치(1953.6.20)
【200】 중국·북한 최고사령관의 서한문(1953.6.20)
【201】 반공포로 석방 사태로 인한 미국과 이승만 대통령의 관계(1953.6.21)
【202】 최근의 포로 탈주에 대한 견해(1953.6.21)
【203】 정치회담을 바라보는 네덜란드의 관점(1953.6.22)
【204】 반공포로 관련 클라크 장군의 발표(1953.6.22)
【205】 한국 전선의 상황(1953.6.22)
【206】 남한 당국에 대한 미국의 의중(1953.6.22)
【207】 한국 정부에 보내는 영국의 외교각서(1953.6.23)
【208】 한국에 외교각서를 전달한 영국 의회의 상황(1953.6.23)
【209】 영국 수상의 암시적 표현 방식(1953.6.23)
【210】 포로탈출 사건 관련 미국의 대처에 대한 프랑스의 견해(1953.6.23)
【211】 미국 기자의 최덕신 장군과의 인터뷰(1953.6.23)
【212】 이승만 대통령과 클라크 장군의 회담(1953.6.23)
【213】 이승만 대통령과 클라크 장군의 회담에서 도출된 외교각서(1953.6.23)
【214】 미 국무부의 한국 관련 회의 내용(1953.6.23)
【215】 덜레스 씨가 이승만 대통령에게 보내는 메시지(1953.6.23)
【216】 이승만 대통령이 유엔군사령부에 제시한 원칙들(1953.6.24)
【217】 이승만과 장제스, 이승만과 미국의 공모에 대한 기사(1953.7.01)
【218】 한국사건을 다루는 소련 언론의 태도(1953.7.1)
【219】 한국정부에 각국의 견해서 전달(1953.7.1)
【220】 유엔한국민사지원처 개편 건(1953.7.1)
【221】 한국 휴전을 위한 국제회의에 대한 프랑스 측 견해(1953.7.2)
【222】 이승만 대통령에게 보내는 케이시 외무장관의 메시지에 대한 보고(1953.7.2)
【223】 한국 관련 정치회담에 대한 견해서(1953.7.2)
【224】 이승만-로버트슨 회담의 진행 상황(1953.7.3)
【225】 이승만-로버트슨 회담에 대한 캐나다 정부의 입장(1953.7.4)
【226】 미-한 회담에서 이승만 대통령의 의도(1953.7.4)
【227】 이승만 메시지를 다루는 미 언론의 태도(1953.7.4)
【228】 유엔총회 소집 시기에 대한 미-영-프의 입장(1953.7.4)
【229】 한국 관련 정치회담에 대한 견해(1953.7.6)
【230】 한국 휴전협정 관련 문제에 대한 견해서(미상)
【231】 한국 관련 정치회담에 대한 영국 정부의 입장(1953.7.7)
【232】 이승만을 비판하는 소련 언론(1953.7.7)
【233】 특별총회 소집에 관한 피어슨 유엔총회 의장의 입장(1953.7.7)
【234】 미-한 회담에서 이승만의 요구(1953.7.7)
【235】 미-한 협상에 대해 존슨 차관보의 국무회의 내용 보고(1953.7.7)
【236】 미국의 미-한 회담 의도를 비판하는 소련 언론(1953.7.8)
【237】 정전회담에 대한 각 측의 입장(1953.7.9)
【238】 필리핀의 유보적 입장(1953.7.10)
【239】 정치회담 참여를 원하는 터키 정부(1953.7.10)
【240】 미-한 회담 내용과 미국 측 입장(1953.7.10)
【241】 미-한 회담과 판문점회담에 대한 미 국무부 보고(1953.7.10)
【242】 성명서 추가 조항 작성 건에 대한 프랑스와 미국의 입장(1953.7.11)
【243】 미-한 회담 결과에 대해 부정적인 영국 언론보도(1953.7.13)
【244】 미-한 회담을 대하는 미국 측의 입장 분석(1953.7.13)
【245】 추측하기 어려운 이승만 대통령의 휴전협상에 대한 입장(1953.7.13)
【246】 이승만-로버트슨의 성명(1953.7.13)
【247】 한국 상황에 대한 미 국무부의 정보 제공(1953.7.14)
【248】 한국과 인도차이나 관련 영국·미국 정부에 보내는 프랑스 정부의 견해서(1953.7.14)
【249】 총회소집에 대한 네루 수상의 서한과 유엔 사무총장의 입장(1953.7.15)
【250】 네루 수상의 서한과 총회 의장의 입장(1953.7.16)
【251】 총회 소집에 대한 피어슨 의장의 입장(1953.7.16)
【252】 한국에 대한 대만의 태도(1953.7.17)
【253】 공동성명에 대한 주요 열강의 입장(1953.7.17)
【254】 미 국무부의 이승만-로버트슨 회담에 대한 공개 설명(1953.7.19)
【255】 공동성명 내용과 공개에 대한 캐나다 정부의 입장(1953.7.20)
【256】 정치회담 참여국가 구성에 대한 캐나다 로닝 국장과의 회견(1953.7.20)
【257】 주미 한국대사의 도발적 담화에 대한 주의 촉구(1953.7.20)
【258】 공동성명 발표 및 추가 조항에 대한 미 국무부의 활동(1953.7.20)
【259】 로버트슨이 주재한 16개국 회담(1953.7.21)
【260】 휴전협정 과정과 논의사항에 대한 미 국무부의 15개국 대상 설명회(1953.7.21)
【261】 이승만 태도에 대한 로버트슨 특사의 속내(1953.7.22)
【262】 판문점 회담 연기의 의미(1953.7.22)
【263】 휴전협정과 정치회담에 대한 덜레스 장관 성명 보도(1953.7.22)
【264】 휴전문제 합의내용에 대한 이승만과 미 국무부 각각의 성명(1953.7.22)
【265】 정치회담 시기와 장소에 대한 논의(1953.7.24)
【266】 특별총회와 정치회담에 대한 캐나다 관련 부서의 의견 요약(1953.7.24)
【267】 판문점 협정에 다한 공산 측과 미국의 입장(1953.7.24)
【268】 한국 지원비(원조)에 대한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발의(1953.7.24)
【269】 휴전을 알리는 네덜란드 언론(1953.7.27)
【270】 정치회담 속행 조건으로 미 국무부가 이승만에게 해준 약속의 부당성에 대한 보도(1953.7.27)
【271】 휴전에 대한 스웨덴 언론의 반응(1953.7.27)
【272】 휴전협상에 대한 변영태 외무장관의 발언(1953.7.27)


장관실문서(1950년 6월 25일~12월 10일)

【273】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남침 소식(1950.6.25)
【274】 1950년 6월 25일 이후 한국 사태와 유엔(1950.7.12)
【274-1】 별첨 1-대한민국 침략 고발에 관한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안
【274-2】 별첨 2-유엔 한국위원회의 군사적 상황 보고
【274-3】 별첨 3-트루먼 대통령의 6월 27일 성명
【274-4】 별첨 4-미국 정부의 각서
【274-5】 별첨 5-1950년 6월 27일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안
【274-6】 별첨 6-미국 각서에 대한 소련의 답변
【275】 한국 사태(1950.7.12)
【275-1】 별첨 1-1950년 6월 27일 안보리 결의안에 따른 사무총장의 서한에 대한 유엔 회원국들의 답신
【276】 한국전쟁에 대한 유엔의 협력(1950.7.20)
【277】 한국에 대한 군사 원조(1950.7.27)
【278】 소련의 의도(1950.7.27)
【279】 38선 돌파(1950.10.5)
【280】 대한민국(1950.10.16)
【281】 맥아더 장군의 공산주의자들과의 발전소에 대한 협상(1950.11.7)
【282】 만주 중국 후방에 대한 미 공군의 개입 문제(1950.11.13)
【283】 긴급 월경 추적권(1950.11.14)
【284】 중국 전투기 추적에 관하여(1950.11.15)
【285】 동북아시아 사무국장 존슨 씨와 회담(1950.11.16)
【286】 주미 영국대사에게 보낸 영국 외상의 친서(1950.11.16)
【287】 한국 사태(캐나다 대사관이 외무성에 제출한 외교 의견서)(1950.12.19)
【288】 총회: 제1위원회 전 중국의 한국 개입(1951.1.9)
【289】 네루 총리의 전언(1951.1.20)
【290】 1951년 1월 26일 미국 대사관이 프랑스 외무부에 전달한 각서(1951.1.29)
【291】 유엔총회: 제1위원회에서 중국의 한국 개입 논의(1951.1.30)
【291-1】 별첨 1-베이징주재 인도대사가 중국 외무장관에게 제기한 몇 가지 질문에 대한 중화인민공화국의 답변
【292】 한국 사태(조정과 제재)(1951.2.22)
【293】 한국 사태(군사적 문제)(1951.2.22)
【294】 미 극동 담당 국무차관보의 발표(1951.4.3)
【295】 중국공산군에 관한 정보(1951.4.3)
【296】 영국이 프랑스에 전달한 각서(1951.4.3)
【297】 영국 각서의 번역문 전달(1951.4.3)
【298】 한국전쟁의 새로운 방어선(1951.4.3)
【299】 한국 사태: 미국, 영국, 프랑스 3개국 성명 계획안(1951.6.19)
【299-1】 별첨 1-프랑스 정부의 성명발표 계획안
【300】 프랑스의 한국 원조 참여(1951.6.26)
【301】 한국 사태(1951.7.2)
【301-1】 별첨 1-말리크 씨의 선언부터 리지웨이 장군이 북한 사령부에 전달한 서한까지의 보고서
【301-2】 별첨 2-리지웨이 장군에게 내려진 지시에서 검토된 휴전의 조건
【302】 휴전협정에 대한 전망(1951.7.15)
【303】 뉴욕에서 본 한국 사태(1951.7.17)
【304】 1950년 7월 20일자 쇼벨 씨의 개인 편지 발췌
【305】 개성 휴전회담에 관한 보고서(1951.7.30)
【306】 한국 사태(1951.8.24)
【306-1】 별첨 1-개성 회담에서 제안된 휴전선에 대한 의견서
【307】 1951년 9월 14일 미 국무부에서 개최된 7차 회의 보고서
【308】 헤이터 씨가 외무부에 제출한 비공식 통지(1951.10.8)
【309】 한국 참전용사들의 파리 체류
【310】 유엔 한국 참전용사 단체의 파리 체류(1951.11.29)
【311】 참전 용사들을 위한 연설 계획안
【312】 한국 원조(1951.12.29)
【313】 3개국 회담과 한국휴전협정(1952.1.28)
【314】 휴전협정(1952.1.30)
【315】 한국의 휴전협정 보고서(1952.3.25)
【315-1】 별첨 1-한국의 휴전협정 보고서
【316】 상대 병력 수 조사(1952.5.16)
【317】 한국 상황(1952.5.24)
【317-1】 별첨 1-한국 상황에 관한 보고서
【318】 한국의 상황(1952.6.14)
【319】 한국에 억류된 프랑스 포로수용자(1952.6.24)
【319-1】 별첨 1-한국의 프랑스인 억류자
【319-2】 별첨 2-한국의 프랑스 전투부대
【320】 한국문제(1952.6.25)
【320-1】 별첨 1-보충자료(압록강 이북 군사작전 확대에 대한 프랑스의 입장)
【321】 한국에서의 3국 정책 공조(1952.7.1)
【322】 압록강 폭격(1952.7.1)
【323】 판문점 회담의 현 상황 보고(1952.7.19)
【324】 제1위원회에서의 오프노 프랑스대사의 연설문(1952.10.30)
【325】 슈만 단장과 변 남한대표의 회담 보고서(1952.11.14)
【326】 한국에 관한 소련의 제안(1952.11.28)
【326-1】 별첨 1-소비에트 사회주의 연방: 결의 계획안
【326-2】 별첨 2-소비에트 사회주의 연방: 소련 대표단의 결의 계획안 추기(追記)
【327】 한국문제: 인도 결의안에 제1위원회의 투표(1952.12.2)
【327-1】 별첨 1-인도결의안
【328】 총회 토론 이후 한국문제와 아이젠하워 장군의 방문(1952.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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