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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관련 프랑스외무부 자료. 3 1951.06.01~1951.12.30

성균관대학교 프랑스어권문화융합연구소 | 한불외교자료총서 6 | 양장
선인 편집부 지음 | 이지순 , 박규현 , 김영 옮김 | 선인 | 2021년 02월 22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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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9791160684520(1160684529)
쪽수 784쪽
크기 162 * 231 * 43 mm /1234g 판형알림

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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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은 냉전문제에 관련된 대표적인 전쟁이다. 또 한편으로는 탈냉전의 문제와도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러한 복합적 국제관계 상황에서 프랑스 자료들은 향후 한국전쟁을 비롯한 냉전과 탈냉전 연구에서 무척 중요하다. 프랑스는 미국과 보조를 맞추거나 미국의 발표에 따라 정보를 수집했음에도 미국과 항상 동일한 입장을 취한 것이 아니라 자국의 독립적인 시각을 견지했다. 이러한 까닭에 프랑스의 한국전쟁 자료는 한국전쟁의 단면을 다각도에서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자료가 될 수 있다. 본 자료집이 담고 있는 외교문서를 보면 휴전협상의 과정이 미국의 입장이 유엔에서 관철되는 과정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지만, 유엔 총회나 휴전회담 전개 과정에서 프랑스가 반드시 미국과 보조를 맞추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달리 말하면, 제2차세계대전 이후 달라진 미국의 위상이 절대적으로 반영되기는 하지만 프랑스 또한 유엔에서 자국의 입장을 관철시키려고 노력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직접 휴전협상국은 아니었으나 각국에 파견된 외교관들을 통해 포로가 된 프랑스 포로들의 귀환을 시도하기도 했다. 당시 프랑스는 한반도보다는 베트남을 비롯한 인도차이나반도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렇기에 조기 종전을 내세우며 미국과는 다른 입장에서 휴전협상을 인식했고, 프랑스외무부 자료에서는 이러한 프랑스의 입장을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본 자료집에 실린 프랑스 자료는 미국(워싱턴)과 유엔(뉴욕), 일본, 영국, 소련에 주재한 프랑스 외교관들을 통해 수집된 정보가 주를 이루지만, 그 외에도 세계 각지의 프랑스 외교관들을 통해 수집된 정보를 담고 있다. 이러한 수집 정보를 통해 한국전쟁 당시 프랑스가 어떠한 부분에 집중하고 있으며, 각국에서 한국전쟁의 어떠한 면이 쟁점으로 제기되고 있는가를 검토할 수 있다.

목차

해제

1951년 6월 1일~12월 30일

【1】 중재위원회의 해체 분위기(1951.6.1)
【2】 중재위원회의 휴전 시도(1951.6.1)
【3】 트리그브 리의 오타와 연설 요약(1951.6.1)
【4】 유엔군의 상황과 소련의 원조 정황(1951.6.2)
【5】 유엔 사무총장 특보 코디어 씨의 도쿄 방문(1951.6.2)
【6】 애치슨 국무장관의 국회 증언(1951.6.2)
【7】 한국전 휴전에 대한 국제 언론의 분위기와 중국의 전쟁기금 모금 운동(1951.6.5)
【8】 휴전성명서에 대한 러스크 차관보와의 대화(1951.6.5)
【9】 38선 정전에 대한 한국 정부의 반발(1951.6.6)
【10】 38선 정전설에 대한 애치슨 미 국무장관의 상원 증언(1951.6.6)
【11】 38선 휴전 소문에 대한 한국 지도자들의 반응(1951.6.7)
【12】 애치슨의 상원 증언(1951.6.7)
【13】 중재위원회의 제안에 대한 미 국무부의 반대 표명(1951.6.7)
【14】 프랑스의 집단대책위원회 답변서에 대한 미 국무부의 논평(1951.6.8)
【15】 유엔군 첫 승리의 의미(1951.6.8)
【16】 휴전 성명안 방식에 대한 논의(1951.6.8)
【17】 38선 휴전협정 체결을 위한 존슨 상원의원의 결의안(1951.6.8)
【17-1】 별첨 1-존슨 상원의원의 휴전 결의안 프랑스어 번역본
【18】 진군과 휴전 결정에 대한 고려 사항(1951.6.9)
【19】 말리크와 중재위원회 위원 그라프스트룀의 회담(1951.6.12)
【20】 마샬 장군의 도쿄 방문(1951.6.12)
【21】 북한 아동을 위한 모금(1951.6.12)
【22】 한국의 전투 상황(1951.6.13)
【23】 웨더마이어 장군의 국회 증언(1951.6.13)
【24】 휴전 성명안에 대한 러스크 미 국무차관보와의 회담(1951.6.13)
【25】 그로스 미 유엔대사의 추가조치위원회에 제출할 미 대표단 보고서에 대한 정보(1951.6.14)
【26】 남한군의 현실(1951.6.14)
【27】 밴 플리트 장군의 한국 상황 인터뷰(1951.6.14.)
【28】 한국전쟁의 목적에 대한 14개국 공동성명의 영국 수정안(1951.6.14)
【29】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트리그브 리가 취하는 입장(1951.6.15)
【30】 유엔사무총장의 ‘평화계획’에 대한 중재위원회 및 각국대표단의 입장(1951.6.15)
【31】 트리그브 리의 심리적 요인(1951.6.15)
【32】 한국 전선의 상황(1951.6.16)
【33】 각국의 대북, 대중국 금수조치 현황(1951.6.20)
【34】 거창사건으로 국무위원 일부 해임(1951.6.20)
【35】 휴전 가능성에 대한 마시글리의 의견(1951.6.21)
【36】 추가 파병을 호소하는 방법에 대한 미국의 견해(1951.6.21)
【37】 미 국무부의 한국 지원군 요청이 유엔 사무총장에게 전달된 배경(1951.6.22)
【38】 추가 파병 호소문에 대한 미국의 입장(1951.6.23)
【39】 바 장군과 뉴랜드 의원의 국회 증원(1951.6.23)
【40】 한국에 대한 ?가제트리테레르? 기사 내용(1951.6.24)
【41】 말리크 담화에 대한 미 국무부의 반응(1951.6.24)
【42】 한국전쟁 기념일에 대한 ?보르바?의 기사(1951.6.25)
【43】 말리크 담화에 대한 영국 정부의 대처(1951.6.25)
【44】 말리크 담화의 의도에 대한 분석(1951.6.25)
【45】 소련 휴전협상 제안의 배경 분석(1951.6.25)
【46】 한국전쟁 휴전 및 세계 평화를 위한 트루먼 대통령의 담화(1951.6.25)
【47】 휴전협정에서 예상되는 어려움(1951.6.25)
【48】 말리크 선언에 대한 ?보르바?의 시각(1951.6.26)
【49】 마오쩌둥의 휴전 동의 내용을 실은 ?데일리익스프레스? 기사(1951.6.26)
【50】 중국과의 동맹을 바라보는 시각에 대한 ?프라우다? 기사(1951.6.26)
【51】 휴전안에 대한 ?프라우다? 기사 요약(1951.6.26)
【52】 말리크 담화에 대한 유엔의 분위기(1951.6.26)
【53】 유엔 사무총장의 추가 파병 요구에 대한 노르웨이 여론(1951.6.26)
【54】 추가 파병 요청에 대한 그리스 정부 답변(1951.6.27)
【55】 한국전쟁 1주기를 맞은 중국 ?인민일보?의 논설(1951.6.27)
【56】 말리크 선언에 대한 미 정부의 입장 설명(1951.6.27)
【57】 말리크 선언에 대한 미 국무부의 복잡한 상황(1951.6.27)
【58】 휴전에 대해 소련과 중국의 입장을 확인하기 위한 각국의 자세(1951.6.28)
【59】 영-미 정부를 비판하는 여론전(1951.6.28)
【60】 말리크와의 불확실한 회담 참여 여부에 대한 각국의 입장(1951.6.28)
【61】 말리크 담화에 대한 중국의 시선 보고(1951.6.28)
【62】 대 중국 중재 및 유엔의 휴전 성명에 대한 트리그브 리의 의견(1951.6.28)
【63】 ‘교전국’이라는 용어의 해석에 대해(1951.6.28)
【64】 휴전안에 대한 유엔 인사들의 입장(1951.6.28)
【65】 말리크 제안에 대한 미 국무부의 태도(1951.6.28)
【66】 한국 전선의 상황(1951.6.28)
【67】 16개 참전국 회의(1951.6.28)
【68】 한국 전선의 상황(1951.6.28)
【69】 애치슨 국무장관의 외무위원회 답변(1951.6.28)
【70】 휴전안에 동의하는 중국의 속내에 대한 보고(1951.6.28)
【71】 휴전안에 대한 남북한의 반응(1951.6.29)
【72】 프랑스 외무부 사무총장과 영-미 대사들의 대담(1951.6.29)
【73】 평화안에 대한 소련의 의도(1951.6.30.)
【74】 말리크 담화에 대한 중국 입장(1951.6.30)
【75】 트리그브 리가 보낸 한국전에 대한 국제기구의 입장문(1951.6.30)
【76】 한국 파병과 북대서양조약에 대한 노르웨이 의회 결정(1951.6.30)
【77】 북한군 사령관에 대한 리지웨이 장군의 회담 제의(1951.6.30)
【78】 평양라디오 방송이 전하는 휴전 조건(1951.6.30)
【79】 리지웨이 장군이 북한군사령관에게 보낼 메시지의 주요 내용(1951.6.30)
【80】 휴전 조건에 대한 남한 정부의 입장(1951.7.1)
【81】 유엔군이 구상하는 새로운 전선(1951.7.1)
【82】 리지웨이 휴전 제안에 대한 공산군의 수락 성명(1951.7.2)
【83】 리지웨이 장군의 예비 휴전회담 제안(1951.7.3)
【84】 휴전에 대한 남한의 입장(1951.7.4)
【85】 한국의 휴전 반대 시위(1951.7.4)
【86】 예비회담 개최에 대해 리지웨이와 공산군 측 사이에 오간 메시지(1951.7.5)
【87】 금수조치안에 대한 프랑스의 입장(1951.7.5)
【87-1】 별첨 1-금수조치 결의안에 대한 프랑스 조치 보고서
【87-2】 별첨 2-프랑스의 금수조치 목록
【88】 휴전회담안에 대한 소련 언론의 분석(1951.7.7)
【89】 휴전협정을 둘러싼 국제관계 역학에 대한 소련의 견해(1951.7.6)
【90】 리지웨이 장군의 3차 메시지에 대한 공산군 측의 답변(1951.7.6)
【91】 예비회담에 대한 리지웨이 장군의 4차 메시지(1951.7.6)
【92】 휴전협정에 대한 중국의 관측(1951.7.6)
【93】 리지웨이의 메시지에 대한 공산군 측 답변(1951.7.7)
【94】 예비회담 유엔 측 대표(1951.7.8)
【95】 1차 정전회담 공산 측 대표(1951.7.7)
【96】 휴전협정에 대한 폴란드 언론의 반응(1951.7.9)
【97】 러스크 국무차관보가 전하는 휴전회담을 둘러싼 분위기(1951.7.9)
【98】 회담을 대하는 소련의 의도를 파악하기 위한 샤테뇨 대사의 접견(1951.7.10)
【99】 휴전협정 비준 조건에 대한 미국, 영국, 프랑스 유엔대표들의 의견 교환(1951.7.10)
【100】 휴전협정을 총괄할 유엔 기구 선택에 대한 미국, 영국, 프랑스의 입장(1951.7.10)
【101】 미 정부와 통합사령부가 생각하는 휴전의 조건(1951.7.10)
【102】 휴전회담 직전 리지웨이의 기자회견과 공산 측 대표에 대한 정보(1951.7.10)
【103】 한국 휴전 협정을 바라보는 호주의 분위기(1951.7.10)
【104】 조이 제독의 휴전회담 개회사와 회담 분위기(1951.7.11)
【105】 휴전협정의 영향에 대한 폴란드 언론의 분석(1951.7.11)
【106】 협상을 위한 유엔기구 조직에 대해(1951.7.11)
【107】 소련의 한국 휴전협상정책 분석에 관한 통신문(1951.7.11)
【108】 남일 장군과 덩화 장군의 휴전회담 개회사(1951.7.12)
【109】 휴전회담 보도를 최대한 자제하려는 소련의 분위기(1951.7.12)
【110】 휴전회담 분위기와 한국의 휴전 반대 시위(1951.7.12)
【111】 휴전회담 진행상황(1951.7.12)
【112】 협상지로 개성을 채택한 의미와 개성에 대한 설명(1951.7.12)
【113】 북한 유력인사에 대한 보고(1951.7.12)
【114】 회담 중에도 지속되는 중국의 전쟁 준비 움직임(1951.7.13)
【115】 회담 재개를 촉구하는 리지웨이 장군의 통신문(1951.7.13)
【116】 시로키 외무장관의 김엄기 북한 전권공사 환영사(1951.7.15)
【117】 미국의 휴전협상 중지에 대한 공산 측의 시각(1951.7.16)
【118】 회담구역 조건과 미국의 협상 조건(1951.7.16)
【119】 휴전 협상을 대하는 소련의 분석과 의도(1951.7.17)
【120】 분계선과 외국군 철수에 대한 휴전회담 분위기(1951.7.17)
【121】 개성회담에 관한 러스크 미 국무차관보의 보고 사항(1951.7.17)
【122】 애치슨 국무장관의 선언문(1951.7.17)
【123】 휴전협정의 유엔 비준 문제(1951.7.19)
【124】 개성회담 추이(1951.7.19)
【125】 휴전 협정 승인 절차 문제(1951.7.20)
【126】 개성회담에 대한 중국 여론의 반응(1951.7.21)
【127】 개성회담에 대한 소련 언론의 반응(1951.7.22)
【128】 남북한의 전력(戰力)과 휴전협상 중지(1951.7.22)
【129】 외국군 철수 문제로 중지된 휴전협상에 대한 전망(1951.7.22)
【130】 개성회담 추이(1951.7.24)
【131】 도쿄 최고사령부의 보고 내용(1951.7.26)
【132】 휴전협정에서 합의된 사항(1951.7.27)
【133】 회담 의제에 관한 5가지 합의 사항(1951.7.27)
【134】 군사분계선과 비무장지대 설치 협상에 관한 보고(1951.7.27)
【135】 개성회담에서 유엔대표단이 거둔 성과(1951.7.28)
【136】 군사분계선 문제로 지체되는 휴전회담(1951.7.30)
【137】 개성회담에 대한 북한 언론의 반응(1951.7.30)
【138】 개성회담에 관한 히커슨 미 국무차관보의 보고 사항(1951.7.30)
【139】 중국에 대한 미국과 영국의 견해차(1951.8.2)
【140】 개성회담의 추이와 예측(1951.8.2)
【141】 소련제 제트기 추락(1951.8.4)
【142】 ‘캔자스라인’에 관하여(1951.8.4)
【143】 제19차 개성회담(1951.8.5)
【144】 유엔군 장군의 성명에 대한 언론 반응((1951.8.5)
【145】 논란에 대한 최고사령부의 해명(1951.8.6)
【146】 개성회담에서 서로 다른 휴전선을 제안함(1951.8.6)
【147】 회담 지연에 대한 베이징 언론 보도(1951.8.7)
【148】 분계선 획정에 대한 유엔군 전략(1951.8.7)
【149】 회담 중단에 대한 언론 반응(1951.8.9)
【150】 소련의 한국전쟁 자금 조달(1951.8.10)
【151】 개성회담 중단 사태 분석(1951.8.10)
【152】 공산군 사령부의 답변(1951.8.10)
【153】 휴전협상에 관한 폴란드 언론 보도(1951.8.10)
【154】 휴전선 획정에 대한 미국의 입장(1951.8.10)
【155】 한국파병국대표회의 내용(1951.8.10)
【156】 난관에 봉착한 개성회담(1951.8.11)
【157】 개성회담에 관한 ?프라우다? 보도(1951.8.13)
【158】 교착 상태에 빠진 개성회담(1951.8.14)
【159】 한국 광복 6주년 기념 논평(1951.8.15)
【160】 분계선 획정을 둘러싼 대립(1951.8.15)
【161】 제21-23차 개성회담에 관한 대표단장 회의(1951.8.5)
【162】 제24-25차 개성회담에 관한 대표단장 회의(1951.8.16)
【163】 북한의 공습 위협(1951.8.19)
【164】 포로 문제(1951.8.19)
【165】 분계선 획정에 관한 언론 보도(1951.8.23)
【166】 미국 측 분계선 제안에 대한 비판 보도(1951.8.23)
【167】 개성회담 경과 예측(1951.8.23)
【168】 세 번째 휴전회담 중단 사태(1951.8.23)
【169】 회담장 폭격에 관한 조이 제독의 보고서(1951.8.23)
【170】 한국파병국대표 임시회의(1951.8.23)
【171】 개성회담 결렬 사태의 성격(1951.8.23)
【172】 사령부 보도 자료(1951.8.23)
【173】 중립지대 공습 사건에 대한 총사령부 공문(1951.8.24)
【174】 공산 측의 개성회담 중단 의도(1951.8.25)
【175】 소위 개성 폭격에 대한 공산군 서신(1951.8.25)
【176】 소위 개성 폭격에 관한 리지웨이 장군의 회신(1951.8.25)
【177】 공산 측 서신 분석(1951.8.25)
【178】 캔자스라인에 관한 제안(1951.8.25)
【179】 미 제10군단 전선 지역의 군사 충돌(1951.8.25)
【180】 개성 폭격 사건 이후 중공군 프로파간다(1951.8.27)
【181】 공산 측 답변과 언론 반응(1951.8.28)
【182】 개성 폭격 재조사 가능성(1951.8.28)
【183】 최근 사건들에 대한 분석(1951.8.28)
【184】 중국의 외교 방식과 행동 전망(1951.8.29)
【185】 미-영 공동 행보(1951.8.29)
【186】 공산군 사령부에 대한 유엔군 사령부의 답신(1951.8.29)
【187】 한국 전선의 상황(1951.8.30)
【188】 공산군과 소련의 계획(1951.8.30)
【189】 유엔군 총사령관의 군 상황 보고(1951.8.31)
【190】 유엔군의 중립지대 침범에 대한 공산군의 항의(1951.8.31)
【191】 소련 언론 반응의 의미(1951.8.31)
【192】 소련의 의도 추정에 대한 의견서 사본(1951.8.31)
【193】 샌프란시스코 회의를 앞둔 양측 사령부의 태도(1951.9.1)
【194】 개성 중립지대 침범 소식(1951.9.1)
【195】 각국 언론의 반응(1951.9.2)
【196】 ‘미국의 음모’에 관한 소련 신문 기사(1951.9.4)
【197】 한국 전선의 상황(1951.9.5)
【198】 유엔군 사령관의 전언 전문(1951.9.6)
【199】 공습 사건에 관한 소련의 통첩문(1950.9.7)
【200】 한국 전선의 상황(1951.9.7)
【201】 소련 정부의 태도(1951.9.8)
【202】 공산군의 태도 전망(1951.9.9)
【203】 미군 포로들의 전언(1951.9.11)
【204】 중공-북한 대표단 인터뷰 내용(1951.9.11)
【205】 공산군 사령부의 전보(1951.9.11)
【206】 양측 간 통신 및 한국 전선의 상황(1951.9.12)
【207】 베트남 국민대표단의 북한 방문(1951.9.15)
【208】 공산군의 개성협상 재개 제안(1951.9.20)
【209】 의장직 문제와 제6차 회의에 대한 전망(1951.9.21)
【210】 협상 재개를 제안하는 중국의 속내(1951.9.25)
【211】 양측 연락장교들의 회의 전개 상황(1951.9.25)
【212】 연락장교회의 전개에 관한 신화통신의 공식 성명(1951.9.26)
【213】 한국 전선의 상황과 개성 연락장교회의에 관해(1951.9.26)
【214】 개성 연락장교회의 제안과 한국 전선의 상황(1951.9.27)
【215】 휴전협상에 대한 공산군의 전략(1951.9.28)
【216】 미 합창의장의 한국 방문 소식(1951.9.28)
【217】 소련 언론의 반응(1951.9.29)
【218】 한국 전선의 상황(1951.9.29)
【219】 소련 언론이 밝힌 미국의 군사 계획(1951.9.30)
【220】 협상 장소 변경 문제(1951.10.3)
【221】 소련 신문에 실린 일본군 포로의 증언(1951.10.4)
【222】 소련 정부의 반응(1951.10.5)
【223】 한국전쟁의 전반적 문제들(1951.10.5)
【224】 유엔군 사령부와 일본의 입장 추정(1951.10.5)
【225】 양측 총사령관의 서신 왕래(1951.10.5)
【226】 한국전쟁에 대한 총사령관의 의견(1951.10.6)
【227】 한국 전선의 상황(1951.10.6)
【228】 한국 전선의 상황 및 합참의장의 전선 시찰 반응(1951.10.6)
【229】 공산군 사령관들의 내분(1951.10.7)
【230】 연락장교회의에 관한 공산군사령부의 전언(1951.10.8)
【231】 소련에서 커크 대사의 임무(1951.10.4)
【232】 미 대사가 국무부에 제출한 비망록(1951.10.8)
【233】 휴전협상 실패 대비 조치에 대한 영국 정부의 반응(1951.10.8)
【234】 공산군의 전언에 대한 리지웨이 장군의 회신(1951.10.9)
【235】 볼렌 미 국무부 고문의 한국 방문 소감(1951.10.9)
【236】 유엔 제출 통첩을 첨부한 공문(1951.10.9)
【236-1】 별첨 1-참전국 대표들이 유엔에 제출할 통첩
【237】 리지웨이 장군의 전언에 대한 공산군 장군들의 답신(1951.10.10)
【238】 김일성 및 펑더화이 장군의 답신 보도(1951.10.12)
【239】 양측 연락장교회의에 관한 언론 보도(1951.10.12)
【240】 미그기에 대한 미국의 평가(1951.10.12)
【241】 3국 외무장관 회의에서 논의된 한국 상황(1951.10.12)
【242】 언론의 미 공군 중립지대 침범 소식 보도(1951.10.13)
【243】 히커슨 미 국무부 유엔담당 차관보의 연락장교회의 보고(1951.10.13)
【244】 개성 중립지대 침범 사건에 대한 리지웨이 장군의 입장 발표(1951.10.15)
【245】 한국문제에 관한 소련 언론의 보도(1951.10.16)
【246】 비신스키 소련 외무장관이 미국에 전달한 선언문(1951.10.16)
【247】 체코를 방문한 중국 대표단장의 기자회견 내용 요약(1951.10.16)
【248】 유엔군 측 전 국제적십자 대표의 한국 정보(1951.10.16)
【249】 한국에서 생포된 그리스계 포막인(1951.10.17)
【250】 연락장교회의 미합의 사항(1951.10.17)
【251】 미 국방부 대변인의 전황 개략 보고(1951.10.17)
【252】 양측 대표 회담을 위해 해결해야 할 사항(1951.10.18)
【253】 한국의 포로 문제에 관해 유엔 사무총장에게 전달한 서한 내용(1951.10.18)
【254】 헝가리의 한국 원조(1951.10.18)
【255】 연락장교회의에 관한 미 국무부의 정보(1951.10.19)
【256】 10월 중순 전황(1951.10.19)
【257】 북한·소련 수교 3주년 기념 축전(1951.10.20)
【258】 연락장교회의에서 진전 사항(1951.10.20)
【259】 파병국대표회의 내용(1951.10.20)
【260】 개성·문산 중립지대에 관한 진전 사항(1951.10.20)
【261】 미합의 사항의 일부 해결 및 기타 소식(1951.10.21)
【262】 미합의 사항 해결(1951.10.22)
【263】 미합의 사항 해결(1951.10.22)
【264】 맥아더 장군의 복귀에 관한 상원 청문회 보고서(1951.10.22)
【265】 한국분쟁에 대한 소련의 입장(1951.10.26)
【266】 휴전회담에 대한 신화통신 공보(1951.10.26)
【267】 이승만 대통령의 발표(1951.10.26)
【268】 이승만 대통령의 성명서(1951.10.26)
【269】 한국 외무부장관의 성명서(1951.10.26)
【270】 개성 휴전회담 반대 운동(1951.10.26)
【271】 판문점 휴전회담 상황(1951.10.26)
【272】 중공개입의 자체적 전체 평가(1951.10.27)
【273】 중국 주재 인도대사와의 대화(1951.10.27)
【274】 판문점 휴전회담 상황(1951.10.27)
【275】 공산군의 공군력(1951.10.30)
【276】 중공의 한국 개입 1주년에 대한 체코 외무부장관의 서한(1951.10.30)
【277】 휴전회담 재개(1951.10.30)
【277-1】 별첨 1-휴전회담 구역과 이 구역의 안전을 규명하기 위해 대표단들이 결정한 8가지 합의 사항
【277-2】 별첨 2-유엔군과 공산군 연락장교들 사이에 이루어진 합의에 대한 5가지 부대 사항
【278】 판문점 휴전회담 상황(1951.10.27)
【279】 소련 언론(1951.11.1)
【280】 한국 휴전협상에 대한 소련 언론의 보도(1951.11.2)
【281】 양측의 휴전선 제안(1951.11.2)
【282】 판문점 휴전회담과 전방의 상황(1951.11.6)
【283】 판문점 휴전회담과 전방의 상황(1951.11.6)
【284】 판문점 휴전회담과 전방의 상황(1951.11.7)
【285】 공산 측의 분계선에 대한 유엔 제안 거부(1951.11.7)
【286】 판문점 휴전회담(1951.11.8)
【287】 한국의 군사적 상황(1951.11.8)
【288】 한국문제에 대한 딘 러스크의 연설(1951.11.8)
【289】 한국 휴전협상에 대한 소련 언론의 보도(1951.11.8)
【290】 판문점 휴전회담과 전방의 상황(1951.11.10)
【291】 한국 휴전협상에 대한 소련 언론의 보도(1951.11.12)
【292】 판문점 휴전회담 상황(1951.11.12)
【293】 판문점 휴전회담과 전방의 상황(1951.11.13)
【294】 프랑스와 소련 외무부장관들의 워싱턴 연설에 대한 평가(1951.11.19)
【295】 소련언론의 보도(1951.11.24)
【296】 판문점 휴전회담과 전방의 상황(1951.11.28)
【297】 신문의 신화통신의 공식 발표 게재(1951.12.1)
【298】 휴전협상의 난항(1951.12.1)
【299】 임시분계선(1951.12.1)
【300】 적군의 공군 활동 보고(1951.12.1)
【301】 북한의 한국에서의 연합국 군대 철수 요구와 휴전협상의 난항(1951.12.1)
【302】 신문들의 신화통신 내용 게재(1951.12.3)
【303】 휴전협상 쌍방 간의 요구와 이의 제기(1951.12.3)
【304】 휴전협정에서 북한 측 대표의 주장(1951.12.4)
【305】 공산군과 유엔군 측의 공군력 비교(1951.12.4)
【306】 공산군 측의 새로운 제안에 대한 연합국 측의 21개 질의(1951.12.4)
【307】 공산주의 측의 태도 변화에 대한 미국의 반응(1951.12.4)
【308】 공산군 측이 제안한 7개 항목 번역문 전달(1951.12.4)
【309】 12월 2일자 신화통신에 실린 공식 발표(1951.12.5)
【310】 유엔군 측의 21개 질의에 대한 공산군 측 답변 번역문(1951.12.5)
【311】 공산군 측의 답변에 대한 유엔군 측의 평가(1951.12.6)
【312】 한국 정부가 유엔에 제기한 3가지 질문(1951.12.6)
【313】 국제적십자위원회 위원장의 서한(1951.12.6)
【314】 12월 6일자 신화통신에 실린 공식 발표(1951.12.7)
【315】 휴전협상의 전개에 따른 남한 정계의 반응(1951.12.7)
【316】 휴전협상 관련 유엔대표단의 수정안(1951.12.7)
【317】 휴전협상 관련 유엔대표단의 수정안과 공산군 측의 반응(1951.12.8)
【318】 동해안과 서해안 북쪽에 유엔군이 점령하고 있는 섬들(1951.12.8)
【319】 휴전협상위원회와 중립적 조사기구(1951.12.8)
【320】 휴전협상 기간 중 군대의 교대나 군수품 및 무기의 이송에 대한 공산군 측의 반대(1951.12.9)
【321】 유엔군이 점령하고 있는 섬들에 대한 공산군 측의 계속된 반환 요구(1951.12.9)
【322】 휴전협상에서 1개 조항의 추가(1951.12.9)
【323】 신화통신에 실린 휴전협상의 상황(1951.12.10)
【324】 양측의 양보를 통한 휴전협상의 실질적 진전(1951.12.10)
【325】 휴전협상 기간 동안 유엔군 공군의 활약(1951.12.10)
【326】 신화통신에 따른 두 가지 공식 발표(1951.12.11)
【327】 삭제된 제5항과 제8항(1951.12.11)
【328】 한국의 판문점 회담에 대한 반응(1951.12.11)
【329】 언론에 실린 이승만 대통령의 성명과 한국의 입장(1951.12.11)
【330】 전쟁 포로 관련 공산군 측의 지연 태도에 대한 반대 성명(1951.12.11)
【331】 적군의 공군력 증대(1951.12.11)
【332】 워싱턴 정부의 판문점 회담에 대한 견해(1951.12.11)
【333】 휴전협상의 진전과 전쟁 포로 문제 논의 시작(1951.12.12)
【334】 적군과 유엔군의 전투기의 피해 통계와 적군 전투기의 활동 증가(1951.12.12)
【335】 포로교환에 대한 논의와 유엔대표단의 제안들(1951.12.1)
【336】 의제 3항을 위한 공산군 측 대표단의 4개 원칙 제시(1951.12.13)
【337】 판문점 회담에 대한 한국 내에서의 시위 및 국회의장의 서한(1951.12.14)
【338】 포로교환에 있어서의 난관들(1951.12.15)
【339】 대만 외무부장관의 기자 회견 내용(1951.12.19)
【340】 북한의 공군 강화(1951.12.20)
【341】 ?뮌히너일루스트리에르테?에 실린 독일인의 한국 참전 비판 기사(1951.12.21)
【342】 공산군 측이 제출한 전쟁포로 명단의 오류 지적(1951.12.22)
【343】 휴전협상의 교착상태와 전쟁포로 문제(1951.12.25)
【344】 휴전협상 상황 보고(1951.12.26)
【345】 전쟁포로 관련한 신화통신의 공식 발표 내용(1951.12.27)
【346】 유엔대표단 측의 새로운 수정 제안(1951.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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