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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시선이 머문 곳마다 “배후가 되어주는 작은 나의 골목”이 된다. “고양이를 하늘로 쏘아 올리”기도 “얼굴 없는 사람도 품어주”기도 하는 골목. 이곳은 빛과 어둠과 수많은 정서로 흔들리는 세계다. 김상숙 시인은 세상을 작동시키는 슬픔의 내력과 완고한 힘에 주목한다. 해설을 쓴 진순애 평론가도 “김상숙은 거대 자본의 도시 공간에서 소외된 풍경으로 휴머니즘의 복원력을 그리면서도, 궁극에는 보편적이자 본질적인 세계에 이른다”고 상찬한다.
보통의 시들은 언어를 통해 공간을 짓고 부풀리며 거기에 독자들을 초대하기 마련이다. 반면 김상숙의 시들은 여간해서 공간을 제공하지 않는 묘한 특질을 보인다. 대신에 그는 공간을 이루는 벽이나 벽의 질료인 낱낱의 벽돌들을 들추어 거론하는 것으로 소재를 제안하고, 그것들을 통해 시의 공간이랄 것을 독자들에게 직접 일으켜 세워보라고 권유한다. 이런 방법론은 자칫 시를 우리가 알던 기존의 시보다 평면적으로 보이게 할 수도 있는 한계를 내포할 수도 있는 것이기에, 기꺼이 위험 앞에 몸을 내던지는 시인의 도전정신과 과감함이 없다면 불가능한 시도가 될 터이다. 그렇기에 그의 시에 구미가 당기는 독자들이라면 ‘공간 짓기’라는 특별한 즐거움을 함께하자고 보채는 낯선, 우리가 채 알지 못하던 김상숙을 만날 수도 있을 것이다.
- 임재정(시인), 추천사 중에서
작가정보
저자(글) 김상숙
강원 속초에서 태어나 2003년 시집 『강물 속에 그늘이 있다』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물렁물렁한 벽』이 있으며, 경기문화재단 창작지원금을 수혜했다. 한국문인협회 회원, 〈다층〉 문학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작가의 말
흔들리며 흔들며 홀로 멀리도 걸어왔다
어디에도 머물 곳이 없다
바람을 앞세워 나를 밀고 갈 뿐
내 문장이 다 녹이 슬 때까지,
2020년 7월
김상숙
목차
- 시인의 말
제1부
슬픈 도형
낭만적 엉덩이
조카는 항해 중이다
자화상
불러봐도 없는
드라이플라워
골목의 깊이
.
.
.
.
.
중략
.
.
.
귀향
성냥
앞뒤가 안 맞는다고요?
그래사막
해설 |휴머니즘의 우울한 복원력과 무의식의 지평
|진순애(문학평론가)
책 속으로
어릴 적 산수시간
삼각형 사각형 다각의 뿔 달린
선을 그려나가다 보면
무덤처럼 닫히던 도형이 슬펐다
심장 속
스키드마크처럼 줄이 그어지던 폐곡선에
죽은 언니가 살고 있었다
-「슬픈 도형」 전문
먼발치에서 하늘다람쥐가 새끼를 눈으로 핥고 있다 따스한 눈빛을 끌어다 덮은 새끼 다람쥐가 졸고 있다 산목련 나뭇가지 옆구리가 파르르 떨린다 어미가 누군가를 향해 눈 화살을 쏘더니 잽싸게 새끼를 물고 달아난다 일순간 하늘이 푸른빛으로 찢어지고 구렁이의 날름거리는 혀가 들통 난다 저도 모르게 날을 세운 등뼈와 발톱을 더듬어보는 어린 눈꺼풀, 어미와 밀착되어 겪는 결행의 순간이 생의 결기이고 동력이다 어미의 잿빛 숨결 무늬 그대로 폐부에 새겨진다 한 움큼 빠져나간 숲이 헐떡거리다 다시 초록으로 돌아온다
-「품」 전문
페인트공이 줄에서 떨어졌다
아파트 외벽에서 세상과 소통하던 길이
눈 깜박할 사이 사라졌다
미처 펼치지 못한 날개인가
며칠째 부엌 창가에서
헤매고 있는 밧줄
거꾸로 매달린
찰나의 간극이
아찔한 한 줄의 유서가
세로로 새겨져 있다
-「간극」 전문
기본정보
ISBN | 9791158964764 | ||
---|---|---|---|
발행(출시)일자 | 2020년 07월 27일 | ||
쪽수 | 114쪽 | ||
크기 |
125 * 206
* 11
mm
/ 177 g
|
||
총권수 | 1권 | ||
시리즈명 |
문학의전당 시인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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