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철학자는 꽃이 지는 이유를 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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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미 시인은 ‘클릭’이라는 사유를 통해, 일상의 지루하고 반복적인 흐름 위로 새 창 하나를 띄운다. 그 새 창에는 시인이 활을 팽팽하게 당겨 쏘아올린 화살들이 일차원적이던 세계로 쏟아진다. “도시의 옆구리” 정도 되는 우리의 세계에 틈입하여 새로운 감각을 펼쳐 현실의 경계를 허물어 나간다. “십일월”이나 “박태기나무의 구두”, “아부다비” 등의 연작들은 시인이 새 창을 띄워 바라본 다층적인 세계로, 우리는 그 세계를 통해 우리가 향유하고 있던 현실을 새롭고 흥미진진하게 다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해설을 쓴 백인덕 시인은 “정경미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이성에 의해 합리적이라고 보증되었던 현실에 의문을 제기한다. 사적(史的)으로 이 의문은 초현실주의의 목표를 넘어선다.”라고 이야기한다. 꿈과 환상의 세계가 결코 현실을 돌아설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과정에서 시인은 언어라는 채찍을 벼르고, 드넓게 내다보이는 세계를 향해 시를 쓴다. 그것은 아마 현실에 처음 도착한 질문일 것이다.
우리는 그 질문을 받아들고 시인의 시집 앞에 선다. “도시는 허물어지고 찬란한 경적이 팔차선 도로를 건너”가는 풍경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 현실과 초현실의 포개어짐 속에서 시인이 겹쳐 비추고자 했던 것은 “은유를 넘어서려는 기도(企圖)”일지도 모른다. 그것이 가장 사실적이면서도 가장 비현실적인 것인 동시에, 그 주소가 우리가 당도해 있는 세계의 지금이라는 것을 이 시집을 통해 경유할 수 있다.
작가정보
작가의 말
내일은
붉은 소문이 먼저 도착할 것이다.
지상에서의 하루는
애월, 이라는 이름처럼
간지럽다.
2019년 겨울
정경미
목차
- 시인의 말
제1부
클릭 13
유혹 14
십일월의 푸시킨 1 15
십일월의 푸시킨 2 16
십일월의 푸시킨 3 18
십일월의 푸시킨 4 20
십일월의 푸시킨 5 21
십일월의 푸시킨 6 22
십일월의 푸시킨 7 23
십일월의 푸시킨 8 24
십일월의 푸시킨 9 26
십일월의 푸시킨 10 28
십일월의 푸시킨 11 30
십일월의 푸시킨 12 31
나는 클릭한다 32
제2부
에덴의 골목 35
하오의 빠삐용 36
헬 바르트 뭉크의 연인들 38
마취과 병동 40
어떤 일탈 42
매직 쇼 1 43
매직 쇼 2 44
매직 쇼 3 46
매직 쇼 4 48
매직 쇼 5 50
조준(照準) 52
이월의 광기 54
적소(謫所) 56
타임캡슐에 기대어 1 58
타임캡슐에 기대어 2 60
제3부
박태기나무의 구두 1 63
박태기나무의 구두 2 64
박태기나무의 구두 3 65
박태기나무의 구두 4 66
박태기나무의 구두 5 67
박태기나무의 구두 6 68
박태기나무의 구두 7 70
박태기나무의 구두 8 72
박태기나무의 구두 9 73
박태기나무의 구두 10 74
브레비카리스의 반란 76
아부다비 1 78
아부다비 2 79
아부다비 3 80
사막 검색 82
제4부
아웃사이더 85
램프란트 미술관에서 86
붉은 소나기 87
반정 88
붉은 르네상스 90
일기오보 기타 91
구스타프 빌리지 92
재생처방전 94
도시철도 1 96
도시철도 2 97
걸어 다니는 조각 98
늙은 스피노자 100
겨울 알리바이 101
샛별미술관에서 102
비의 진혼곡 104
해설 이중부재와 시 쓰기의 괴로움 105
백인덕(시인)
책 속으로
중독된 쓸쓸함 나부낄 때
지상의 문들은 먼 하늘로 열린다
추락한 비트코인 쓸어 담는 미화원 빗자루 끝에
객장을 찾지 못한 하루살이 떼 몰려들고
깨지고 지친 신발 한 짝
어둠의 정수리를 밟고 지나간다
-「십일월의 푸시킨 5」 부분
머리칼 풀어헤친 열기가 빌딩 숲을 핥는다 횡단보도 위에서 뙤약볕이 몸부림치고 잠을 놓친 에어컨은 덧칠한 피자집 창문에 앉아 붉은 비명을 지른다 수족관에서 컬러 테트라 무리가 물 계단을 오르면 귓바퀴 돌리는 수초가 열 오른 수은주를 삼킨다 수영복의 마네킹들 자두빛 물방울을 뿌리며 거리를 활보한다 별빛 아래서 분수가 샤워를 즐기고 올빼미족들 어둠을 갉아먹는다 남아공 주먹별이 쏟아진다 소나기가 발톱을 세운다 고비사막 건너온 쌍봉낙타가 등판을 흔든다 공중에서 짝짓기 하는 달맞이꽃 네온은 열대성 고기압을 풀어놓고 신호기를 당긴다 말복이 교회 첨탑에서 나부낄 때 해독할 수 없는 자귀나무 그림자 눈을 뜬다
-「나는 클릭한다」 전문
사과나무 그늘에서 풋잠에 빠진 뉴턴
심장을 미루나무 숲에 풀어놓고
비상등을 탈출한다
무너진 철학들이 해리포터 검은 뿔테에 걸려
잠적을 기다린다
-「타임캡슐에 기대어 2」 부분
나는 타오르는 절벽에서
탱탱한 리우사막을 당긴다
느린 시차가 하늘을 헐어내자
불면의 그늘이 박물관 어귀에서 서성이고
밤의 뿌리가 뜨겁게 몸부림친다
허공의 경계에서 사투를 벌이는 안개 무리
무심히 돔 지붕을 낚아챈다
노을을 끌고 가는 철새들의 성난 부리가
보름달을 쪼고 있다
젊은 차이코프스키의 시선 너머로
날아오르는 붉은 그림자
코니쉬 해변 위에 천막처럼 걸려 있다
내 입술에 속삭이는 하현달 숨소리
벼랑 끝을 돌아 나갈 때
초저녁잠 깊은 은하수 허리에
눈동자 하나 매달린다
꿈은 아홉 번째 언어를 지상에 내려놓는다
-「아부다비 1」 전문
기본정보
ISBN | 9791158964436 | ||
---|---|---|---|
발행(출시)일자 | 2019년 11월 22일 | ||
쪽수 | 120쪽 | ||
크기 |
125 * 204
* 13
mm
/ 177 g
|
||
총권수 | 1권 | ||
시리즈명 |
시인동네 시인선
|
Kl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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