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괜찮은 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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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마다에는 지형적으로나 기억조차로도 복원할 수 없는 함몰된 지금의 상태에 놓여 있다가 웅덩이처럼 고인 이야기를 첨벙거리며 나아간다. ‘내’가 마주한 ‘풍경’과 밀착하여 대치하는 가운데, 슬픔의 기류를 느끼거나 그럼에도 나아가볼 수 있다는 희미한 희망을 엿듣는 것이다. 「비누」에서 등장하는 만년 대리인 나, 「저수지」에서 등장하는 팔리지 않는 소설을 쓰는 전임교수인 나, 대학 시절의 친구들과 불륜으로 뒤엉킨 「해변 여인숙」의 나까지, 삶에 쉽게 절망하지도, 희망을 내걸지도 못하는 불안한 얼굴의 ‘나’로 삶을 소진해간다. 그것이 진짜 ‘나’의 모습인가에 대해 의문을 품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던져지는 갈고리와도 같다.
‘슬픔’에 머물지 않고 종말에 가까운 지난 ‘기억’의 안식처를 빠져나온 ‘나’는 주어진 오늘도 어김없이 살아갈 것이다. ‘약장수’나 ‘사이비 교주’와 같은 나 자신이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는 것은 현실을 배반하는 ‘상술’이 아니라, 가슴 어딘가에 묵직하게 놓여 있는 ‘가능성’이다. 그 가능성을 축조해내기 위해서는 수몰된 풍경 속에서 꺼내온 ‘나’와 ‘아직은 괜찮은 날들’을 함께 살아갈 타인들, 그리고 복원될 수 없는 지난 과거들의 균형이 필요할 것이다. 『아직은 괜찮은 날들』은 이 희미한 연대의 기록이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어서는 자의 작은 비명이며, 남아 있는 날들을 살아야할 우리들을 어렴풋이 닮아 있다.
작가정보
한양대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2년 ≪현대문학≫에 평론이, 2007년 ≪매일신문≫ 신춘문예에 소설이, 2021년 ≪강원일보≫ 신춘문예에 ‘김겸’이라는 필명으로 시가 각각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펴낸 책으로 문학평론집 ≪폐허, 이후≫・≪꿈꾸는 토르소≫・≪그대라는 이름≫・≪비평의 오쿨루스≫, 소설집 ≪숨결≫(제1회 김용익 소설문학상)・≪잘 가라, 미소≫(2012년 우수문학도서)・≪아직은 괜찮은 날들≫, 장편소설 ≪여행의 기술-Hommage to Route7≫(2014년 우수문학도서), 소설 이론서 ≪현대소설의 이해≫ 등이 있다. 현재 가톨릭관동대학교 VERUM교양대학에 재직하며 연구와 창작을 병행하고 있다.
목차
- 작가의 말 · 6
Track 01_ 해변 여인숙 · 13
Track 02_ 버스 정류장 · 39
Track 03_ 바람 계단 · 67
Track 04_ 비누 · 91
Track 05_ 저수지 · 123
Track 06_ 종이상자 · 157
Track 07_ 가위 · 185
Bonus track_ 편의점 · 215
해설 · 223
책 속으로
“내 청춘의 지도 한가운데 존재했던 해변 여인숙. 녹슨 파란 대문을 단, 일곱 칸의 방이 딸린 낡은 여인숙. 인연의 사슬에 얽혀 있는 누군가에게 난 이렇게 말해주어야 할지도 모른다. 비록 지금은 사라져 그 흔적조차 찾을 수 없지만, 여인숙이 있던 그 바다에 서면 새로운 인연의 뱃길이 열릴 것이라고. 그 항해가 순항일지 난항일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 운명 앞에, 샨티, 샨티, 샨티.”
-「해변 여인숙」 중에서(p35)
“정체된 도로 한가운데에서 전진도 후진도 할 수 없는 처지가 막혀버린 생의 지도처럼 가슴을 옥죄어 온다. 생은 작은 조각부터 큰 윤곽까지 모든 것이 닮아 있다. 그런 의미에서 부분은 전체를 향한 메타포이고, 오늘 하루는 내 지옥도의 기하학적 구조 속의 한 조각 닮은꼴이다. 같은 생각이 말장난처럼 꼬리를 문다.
-「비누」중에서(p85)
“저수지만큼 평온하고 호젓한 공간은 없었다. 잔잔한 수면은 내게 사변의 노트가 되어주었고, 아득한 황혼의 하늘은 두고 온 것들에 대한 그리움을 간절히 앓게 해주었다. 이방인들의 일탈과 도회의 번다함은 가끔 구경하는 것만으로 되었다. 애써 피해온 것들을 다시 마주칠 필요는 없었다. 나에겐 스스로와 맞설 마음의 뼈대가 중요했다. 그것을 만들기 위해 이 변방으로 자진해 밀려온 것이 아닌가. 아프다고 소리쳐도 누구도 내 목소리를 들을 수 없는, 첩첩산중의 산을 헤치고 들어온 이역(異域)의 땅.”
-「저수지」 중에서(p137)
출판사 서평
그리고 ‘나’는 무엇보다도 습관적인 우울과 피로에 시달리면서도 계속 자신의 상실과 공허를, 회한을 감내하면서 쓰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그 자체가 어쩌면 낯설고 희미한 희망의 증거일지도 모른다. 그 고백(쓰기)의 소실점에서 마주하게 되는 것은 결국 타인 것이다. ‘나’의 삶으로는 타인의 삶에 접근할 수가 없지만, 타인의 삶으로는 ‘나’의 삶을 다시 볼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소설집의 모든 작품이 일인칭으로 적힌 이유일 것이다. 인간은 자신에게 몰두하다가 타인을 에둘러서야 겨우 자기 자신을 발견한다. 그런 ‘타인’을 발견하는 것이야말로 인문적 의미의 성장일 것이다. 곤궁한 삶을 흔드는 아이에게서 오히려 위로를 받는 ‘나’의 역설처럼 말이다.
-이정현(문학평론가)
기본정보
ISBN | 9791158963477 | ||
---|---|---|---|
발행(출시)일자 | 2017년 11월 17일 | ||
쪽수 | 236쪽 | ||
크기 |
139 * 211
* 17
mm
/ 363 g
|
||
총권수 | 1권 | ||
시리즈명 |
다이얼로그 소설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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