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꽃 피기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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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내역/미디어추천
- 미디어 추천도서 > 주요일간지소개도서 > 세계일보 > 2016년 6월 1주 선정
작가정보
작가의 말
인연에 대해서 생각한다. 우리 집에 들어와 있는 저 커다란 거미,
언젠가 만난 담양 식영정의 금강소나무, 두고 온 땅콩 알갱이를 주워 먹고 찾아온
청설모와 까치 부부, 어디선가 나타난 호피무늬견의 길 안내를 받고 찾아간 월명암,
그 자체가 한 방울의 이슬 같았던 지리산의 죽림정사, 목탁소리를 참으로 좋아한
강아지 보람이, 필요할 때마다 내게 깨우침을 주곤 하는 ‘그때’ 만난 책들,
이따금씩 내게 길을 물어오는 영혼들, 그리고
기쁘거나 아픈 영혼을 안고 오는 사람들……
내가 가진 연필 한 자루, 시(詩)와 내 몸뚱이까지도.
이번 생에서는 그 인연들에게 훈훈한 마음 한 자락 내어주고 싶다.
그리고 발길을 멈추고 그로 인해 이어지는 삶에 대해
다시 써내려가고 싶다.
목차
- 시인의 말
제1부
새 13
옛살라비 14
등꽃 16
오동꽃 피기 전 18
낙마(落馬) 메시지 20
봄밤 22
죽은 사람 24
못은 나무의 역사를 만든다 26
능소화 28
선운사 동백숲 29
붉은 넝쿨장미 30
자귀화 필 때 32
프리지어를 든 남자 34
잠 안 오는 밤에 쓴 시 36
제2부
윤회 39
동백 40
복수초 42
구석 43
처서비 44
십일월 46
심향사 48
가야금 50
달개비 51
청설모 52
아쟁 소리 54
포플러나무 56
국화 57
밤 눈 58
숟가락 60
제3부
청피리 63
발자국 64
문 65
겨울, 여덟 시발 기차 1 66
겨울, 여덟 시발 기차 2 68
국화 2 70
목련 71
여음(餘音) 72
터 74
막쥔금 76
차[茶] 78
망해사(望海寺) 80
아이 82
안개 84
달개비 2 85
내가 그린 그림 86
제4부
한로(寒露) 89
혼자 있는 것들 90
첫눈 92
가난 93
폭설 94
동행 96
당신의 손 98
산중에게 준 집 100
바둑 두는 할아버지 101
비단풀 102
남포추어탕 집 104
무화과 106
사람을 사랑한다는 그 일 108
지음(知音) 110
별점 111
오후 일곱 시 112
해설 ‘더 깊고 짙은 어딘가’에 이르기까지의 도정 113
/이성혁(문학평론가)
책 속으로
선운사 동백숲
선운사 절문 앞에 늦도록 앉아 있었네
꽃들은 모두 한 곳을 바라다보고 있었네
죽음이 이미 와 있는 방문 앞보다
더 깊고 짙은 어딘가를 향하고 있는 꽃들
동백을 홀로 바라본다는 일은,
큰 산 하나 허물어져 내릴 만큼 고독한 일
어쩌면 기억도 아득한 전생에서부터
늑골 웅숭깊도록 나는 외로웠네
꽃핀 숲보다 숲 그늘이 더 커 외로웠네
하여 봄볕에 흰 낯을 그을리며 나는
선운사 절문 앞에 한 오백 년 죽은 듯이 앉아
동백이 피고 지는 소리를 다 듣고 말았네
큰일 치룬 뒤의 동백숲이
어떻게 마음을 정리하는지를 다 알고 말았네
이제 붉은 피가 돌았던 내 청춘은
이끼 낀 돌담 속에나 묻어둘 테지만
고난이 더할수록 가슴은 설레어
선운사 동백숲에 작은 위안이 지나가네
출판사 서평
〈시인동네 시인선〉 054. 2000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2003년 『문학사상』 시 부문 신인상을 통해 등단한 이래로 세계와 내면의 고요하고도 강렬한 화답과 조응이라는, 독특한 서정세계를 빚어온 김형미 시인의 두 번째 시집이다. 김형미 시인의 이번 시편들은 한국 서정시의 불멸의 전통을 세운 김소월의 시를 떠올리게 한다. 김소월이 깊은 서정을 길어 올릴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시론 「시혼」에서 설파했듯이 세계와 마음의 그림자(음영)를 읽어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김형미 시인의 시편들을 읽으면 이 ‘시혼’의 전통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된다. 삶의 그림자가 죽음이라면, 이 죽음과 삶의 얽힘이 바로 사랑과 슬픔으로 뒤흔들리는 우리네 삶의 안쪽을 형성한다. 김소월 시인이 사랑이 지니는 비극적인 면모를 드러내며 삶의 오의(奧義)를 드러냈다면, 김형미 시인은 인간의 전존재를 견딜 수 없을 만치 뒤흔드는, 사랑의 슬픔이 삶에 드리운 그림자를 여실히 그려 보여주고 있다.
[출판사 서평]
‘더 깊고 짙은 어딘가’에 이르기까지의 도정
김형미 시집 『오동꽃 피기 전』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김소월의 시를 떠올리게 된다. 김소월에 따르면, 시는 세계의 그림자에 조응하면서 “작자의 심령상에 무시로 나타나는 음영의 현상이 변환”된다. 이 세계와 ‘심령’의 음영이 조응하여, 미묘하게 변환되는 현상을 포착하는 작업이 바로 서정시의 시작(詩作)이다. 김소월의 「시혼」을 한국 현대 서정시의 전통을 세우는 시론이라고 해도 큰 이의는 없을 것이다. 김형미 시인의 시편들을 읽으면 자연스럽게 이 ‘시혼’의 전통을 생각하게 되는데, 시인 자신도 이를 의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시인 자신이 ‘그림자’의 존재에 대해 예민하게 의식하고 있다는 것은 「동행」이라는 시에 잘 나타나 있다. 그는 이 시에서 “나의 나는/나가 아니라 그림자의 나”라고 말하고 있다. 나의 삶 깊은 곳에 존재하는 ‘그림자의 나’를 드러내는 것이 김형미의 서정시들이다.
그의 시들은 실연의 아픔을 깊이 파고들어가 나의 짙은 그림자를 드러내거나, 우리네 삶에 내재하는 운명적인 비극성을 선명하게 이미지화함으로써 그러한 시작(詩作)에 성공하고 있다. 이렇게 김소월의 ‘노래―시’에서처럼 감상과 실존의 그림자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데 성공했을 때, 그 ‘노래―시’는 사랑을 늘 현재나 과거로 앓으며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큰 울림을 가질 수 있게 된다.
살아 있기 때문에
밤마다 통증은 찾아온다
아흐, 몹쓸 사랑이여
그대가 나를 버린 것보다
내가 나를 잃은 슬픔이
이 세계 끝 마지막 집에 저녁내 불을 켜두어
한 생의 낯이 더 캄캄하니 야위어가는 밤
그대의 널찍한 등만큼이나
살다 보면 두 팔로 다 안을 수 없는 것이 있다
자귀화 만발한 이 밤도 그러하지만
이 밤의 어둡고 긴 골목길 끝
동그랗게 내버려진 내 사랑 또한 그렇게 외롭다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 했던가
때로 일정한 거리가 그리움을 유지하는 것,
처럼 세월 속에 같은 간격으로 서 있는
이 지독한 외로움 제 목숨을 끊듯
끝내 자귀나무 가지 하나를 끊어놓아
가슴 텅텅 울리도록 나는 속병이 들었지만
내 병은 내가 안다
아흐, 몹쓸 사람이여
?「자귀화 필 때」 전문
사랑을 잃은 사람은 안다. 살아 있음은 지옥의 시간을 견디는 일이라는 것을.“살아 있기 때문에/밤마다 통증은 찾아”오기에,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고통인 것이다. 사랑을 잃은 사람은 이러한 고통 속에서“내가 나를 잃”는 데까지 이른다. 속병이 든 마음의 지극한 고통을 시인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고 칭하고는, “한 생의 낯이 더 캄캄하니 야위어가는 밤”이라는 이미지로 객관화한다. 이러한 객관화가 시를 감정의 늪으로 빠뜨리지 않는다. “어둡고 긴 골목길 끝/동그랗게 내버려진 내 사랑”또한 실연 이후 외로움을 이미지화한 것이다. “이 지독한 외로움”으로 인한 가슴 통증은 죽음에의 충동을 낳을 터, 그래서 삶의 고통은 죽음을 삶에 스며들게 만든다. 이 죽음에의 충동은“제 목숨을 끊듯/끝내 자귀나무 가지 하나를 끊어놓”는 대체 행위로 상징화된다. 상징화된 대체 행위가 삶이 정말로 죽음으로 떨어지는 것을 막을 것이다.
이러한 시적 객관화를 통해, 시인은 ‘지독한’ 감정으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가질 수 있게 된다. 다시 말해서 시인의 고통과 죽음에 대한 이미지화 작업은, 시인으로 하여금 그러한 감정과 상태를 계속 ‘유지’하면서도 그로부터 조금씩 거리를 가질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이러한 ‘유지’와 ‘거리’의 긴장은 나아가 시인에게 고통으로부터 치유되는 길을 열어줄 수도 있을 것이다. 치유는 고통을 외면한다고 가능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치열하게 앓았을 때 비로소 가능하다. 시는 그 치유를 위한 앓기로 시인과 독자를 이끌 수 있다. 시는 마음의 고통을 극한으로까지 밀고 나가 표현하는 동시에 객관화―이미지화하기 때문이다.
시인의 삶에 대한 태도의 전환은 삶과 죽음의 형이상학적인 인식을 지렛대 삼아 어떻게든 고통스러운 과거에 속박된 삶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의지에서도 나타난다. 가령, “푸른 속내 깊고 깊은 속에서/아예 나오지나 말아버리자고/동박새 붉은 배 밑만 쳐다보며/내 발자국 속을 나가려 했지요”(「동백」)와 같은 의욕의 표명이 그것이다. “푸른 속내 깊고 깊은 속”이란, 시인이 동백을 응시하면서 인지하게 된 죽음 너머 어딘가를 의미할 것이다. 그 깊숙한 곳에 들어가 나오지 않으려는 욕망은 지독한 외로움을 앓고 있는 나 자신으로부터 초월하고자 하는 욕망에서 비롯된다. 즉 그것은 고독에 속박된 나 자신의 현재에서 다른 삶(비록 역시 은둔의 삶이긴 하지만)으로 나가고자 하는 욕망인 것이다. 이는 「포플러 나무」에서 시인이 “다아 비워보기로 했다/곁에서 소란스러웠던 잎들을/조용히 네 곁에 묻어두고/보이지 않는 세계로 들어가기로 했다”는, 다 비우고 어떤 다른 세계로 들어가고자 하는 의지와 상통한다.
시인이 들어가고자 하는 ‘보이지 않는 세계’, 그것은 모든 보이는 것들(잎들)을 묻어둔 세계, 나아가 죽음 너머 그림자 내부 깊은 곳에 있는 세계일 것이다. 그래서 이 세계로 들어가겠다는 의지는 죽음 충동이라고만 말할 수는 없게 된다. 그것은 앎의 의지, 경험하고자 하는 의지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림자의 깊은 곳, 죽음 너머의 세계는 미지의 세계일 터, 미지의 세계에서 거주하고자 하는 것은 아직 경험하지 못한 세계를 경험하고 살아가고자 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그 의지는 삶의 의지라고도 말할 수 있는 것이다. 「포플러 나무」의 마지막 부분에서“그것은 너를 더 크게 살리기 위한/지극한 행방이므로/저어 먼 곳으로 가지를 두려 하는 것이다”라고 시인이 쓰는 것은 그 때문이다. 김형미 시에서 ‘가지’는 어떤 지향 속에서 지속되는 삶의 상징이다. 그래서 “저어 먼 곳으로 가지를 두려”한다는 것은 삶의 지향을 “저어 먼 곳”에 둔다는 의미라고 해독될 수 있다. 목이 떨어지기 직전의 동백꽃들이 응시했던 “더 깊고 짙은 어딘가”와 상통할 “저어 먼 곳”에 시인이 접근했을 때, 시인은 무엇을 알게 되었는가? 놀랍게도 ‘사람들’이다.
사람아, 외로워 마라
산이 외롭다고 하는 것 봤더냐
산은 하루 종일 있어도
제 그림자를 밟지 않고
달은 제 빛으로 세상을 안는다
혼자 있는 것들은 모두 저를 보게 한다
방안에 켜둔 촛불이 그렇고
거문고 소리가 그렇다
절집 서까래 밑을 따라 도는
나방이 또 그렇다 장독대 위로 휘늘어진
저 매화나무 향기는 남고 꽃잎은 졌다
아무도 찾아와주지 않는 가운데 그리 되었다
마음은 허공과 같아서
붙잡으려 하면 높거나 낮아지고
해와 달은 지나간 자국이 없다
사람아, 외로워 마라
맑은 낯을 한 사람을 만나면
그 기운이 하루를 살게 하고
좋은 낯을 한 산을 대하면
그 기운이 대를 이어 터를 다져주는 법
삼천대천세계에 달팽이집이 너무 많아서
지금 우리는 외로운 것이다
어디 멀리 외딴섬은 이 내 마음을 알리
?「혼자 있는 것들」 전문
이제 시인은 돌탑처럼 홀로 외로이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외로워 말라고 말할 수 있게 된다. 홀로 있다고 해서 홀로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 비록 “지나간 자국”을 남기지 않는 해와 달이지만, 해와 달은 홀로 있는 당신과 함께 있었다는 것, 그리고 알게 모르게 “맑은 낯을 한 사람을 만나면/그 기운이 하루를 살게 하고” 있었다는 것을 시인은 우리들에게 설파한다. 나아가 시인은 “좋은 낯을 한 산을 대하면/그 기운이 대를 이어 터를 다져”준다는 우주적인 인식에로까지 나간다. 이 세계, 불교의 우주론에서 말하는 ‘삼천대천세계’의 모든 존재자들은 서로 기운을 주고받으면서 가늠할 수 없이 엄청난 시간 동안 생명을 계속 이어나간다. 시인에 따르면, 다만 우리가 외로운 것은, 한편으로 우리가 ‘달팽이집’에 거주하기 때문이다. “달팽이집이 너무 많아서/지금 우리는” 외로워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시인은 외로움을 쉽게 벗어던질 수 있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우리 중 대다수는 달팽이집에 거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인은 「내가 그린 그림」의 말미에서, 맨 나중에 나온 ‘사람’이 원래는 그림 그리는 마음의 처음에 있었다고, 즉 “내가 그린 그림은/처음부터 순하게 웃는 사람이 있었다”고 말하고 있다. 이 사람 그리기가 현재 이 시인의 시작(詩作) 방향이 아닐는지? 이 시집의 표제작인 「오동꽃 피기 전」은 타인에 대한 관찰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는 이 시집의 주조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하지만 주조에서 벗어난 시라고 하더라도, 이 시를 표제작으로 삼은 것은 타인을 그리고 있는 이 시가 김형미 시인의 미래의 시작 방향을 암시하기 때문 아닐까?
하지만「오동꽃 피기 전」에서 관찰되는 대상의 모습은 ‘순하게 웃는 사람’의 그것은 아니다. 이 시는 화자가 파고다 공원에서 본 한 연인을 묘사하고 있다. 이 연인은 서로 헤어지게 되었는지, “여자는 오동잎 같은 발자국을 남긴 채/먼저 돌아서서 가고/남자는 제 몸만큼 앙상한 벤치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다. 이 모습에 대해 시인은 “곧 죽을 것처럼 걸어가는 저 여자/뒤에 겨울 파고다 공원을 통째로/가슴에 집어넣은 남자가 댕그러니 남아 있다”고 다시 시화(詩化)하고는, 시의 후반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우리들 가슴은 뜨겁다고 리어카는 노래하지만
술을 먹고, 섹스를 마시고, 시를 토악질해도
세상 모든 연인들은 집에 돌아가서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쓴 채 찬 겨울바람 소리를
들으리라
그럼에도 여자들이 남자들보다 외로움을 덜 타는 건,
죽어서도 심장이 뛰는 소리 들으며 묻힐 수 있는
두 개의 젖가슴이 있기 때문이다
오동꽃 피기 전, 그렇게 한 연인이 서둘러 어두워졌다
저 헤어진 연인들은 아픈 마음을 움켜쥐면서 마음속으로 울고 있을 것이다. 예전의 시인이 그랬던 것처럼. 하지만 시인 역시 그랬듯이, 저들도 집에 돌아갈 수밖에 없으며,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쓴 채 찬 겨울바람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으리라고 시인은 추측한다. 여기서 시인은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저 헤어진 연인들을 바라보고 있다. “오동꽃 피기 전”에 헤어진 연인. ‘오동꽃’은 사랑의 완성을 상징하리라(오동나무는 혼수로 마련하는 장롱의 재료로 쓰인다고 한다). 오동나무의 키는 15미터쯤 될 만큼 크다. 오동꽃이 사랑의 완성을 상징한다면, 그만큼 사랑의 완성은 높은 곳에 있다는 의미일 수도 있겠다. 그런데 시인은 이 오동나무 위의 위치에서 저 연인들을 관찰하고 있는 듯하다. 시의 말미에서 시인은“여자들이 남자들보다 외로움을 덜” 탈 수 있다고 말하고 있는데, 그 말은, 인용부분 바깥에 있는 구절을 빌면, “폐가 다 썩어문드러질 때까지” 외로워 담배를 피우는 남자들에 대한 연민을 보여주면서도 여성에 대한 자긍심 역시 보여준다. 여성이 덜 외로울 수 있는 건 “두 개의 젖가슴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을 보면 그렇다. 이 젖가슴은 남성보다 더 생명력 강한 심장을 여성이 가지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김형미 시인은 현재, 사람들이 살고 있는 삶의 현장으로 들어가면서 김소월의 그 ‘사랑―실연’과 ‘삶―죽음’의 운명적인 비애의 세계로부터 벗어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표제작에서도 볼 수 있듯이, 그는 자신의 삶뿐만 아니라 자신이 함께 살아가고 있는 세계에서 그 자신과 같은 고통으로 살아가고 있는 이들을 그려낼 수 있는 것이다. 시집 뒤 표지 글에서도 시인은 “인연에 대해서 생각한다”고 말한다. 그리하여 그는 사람뿐만 아니라 그와 함께하는 모든 존재자들―거미에서부터 쥐고 있는 연필 한 자루, 그리고 시와 자신의 몸뚱이까지―과의 인연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그렇게 삶을 알게 모르게 형성하고 있는 존재자들과 인연을 맺는 세계가 죽음을 넘어 저 “더 깊고 짙은 어딘가”라고 말할 수 있으리라. 또한 하나의 삶과 죽음을 넘어서 있는 인연의 우주적 시간이야말로 전 생으로부터 이어져온, “이 세상에 없는 시간”이기도 하다.
김형미 시인은 현재의 자신의 시작(詩作)에 대해 이렇게 스스로 규정하고자 하는 것 같다. “날아와 유리창에 머리를 부딪고 죽을지언정” “결코 뒤돌아보는 법이 없”(「새」)는 새처럼, 저 세계의 존재자들과의 인연으로 얽혀 있는 “아득한 곳”을 향해“지금 나는 달린다 내달리고 있다”(「옛살라비」)고. 이 내달림의 과정에서, 그는 앞으로 또 다른 시세계를 보여주게 될 것이다.
기본정보
ISBN | 9791158962562 | ||
---|---|---|---|
발행(출시)일자 | 2016년 05월 20일 | ||
쪽수 | 138쪽 | ||
크기 |
152 * 225
* 20
mm
/ 207 g
|
||
총권수 | 1권 | ||
시리즈명 |
시인동네 시인선
|
Kl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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