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상과 장미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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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정보
나림 이병주(那林 李炳注)
1921년 경남 하동에서 태어나 일본 메이지 대학 문예과에서 수학했다. 1944년 대학 재학 중 학병으로 동원되어 중국 쑤저우에서 지냈다. 진주농과대학(현 경상대)과 해인대학(현 경남대)에서 영어, 불어, 철학을 가르쳤고 부산 《국제신보》 주필 겸 편집국장을 역임했다.
1961년 5·16이 일어난 지 엿새 만에 〈조국은 없고 산하만 있다〉는 내용의 논설을 쓴 이유로 혁명재판소에서 10년 선고를 받아 2년 7개월을 복역했다. 한국외국어대학교, 이화여자대학교에서 강의하다 마흔네 살 늦깎이로 작가의 길에 들어섰으며 1992년 지병으로 타계할 때까지 한 달 평균 200자 원고지 1,000여 매 분량을 써내는 초인적인 집필로 80여 권의 작품을 남겼다.
1965년 「소설·알렉산드리아」를 《세대》에 발표하며 등단했고 『관부연락선』, 『지리산』, 『산하』, 『소설 남로당』, 『그해 5월』로 이어지는 대하 장편들은 작가의 문학적 지향을 보여준다. 소설 문학 본연의 서사를 이상적으로 구현하고 역사에 대한 희망, 인간에 대한 애정의 시선으로 깊은 감동을 자아내는 작품들은 세대를 넘어 주목받고 있다.
1977년 장편 『낙엽』과 중편 「망명의 늪」으로 한국문학작가상과 한국창작문학상을 수상했으며, 1984년 장편 『비창』으로 한국펜문학상을 수상했다.
목차
- 1. 개나리
2. 배리의 꿈
3. 비어스 윌슨
4. 바위와 무지개
5. 화려한 함정(陷穽)
6. 전설(傳說)의 탄생(誕生)
7. 어떤 해후(邂逅)
8. 바람을 심어
9. 흐려진 무지개
10. 굴절(屈折)있는 풍경(風景)
책 속으로
p. 121~122_ 바위에 무지개란 말이 생각이 났다. 형산이란 바위를 윤숙의 무지개 같은 마음이 움직일 순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형산은 손녀에게 대해 너무 불친절했다고 생각했던지 천천히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했다.
“돈이란 무서운 것이다.”
한숨을 섞어 이렇게 말해 놓곤 형산은 다음과 같은 얘기를 했다.
“중일 전쟁이 시작된 해던가 그 이듬해던가, 상해에서 임시 정부가 부지못할 때가 돼서 일부분이 장사(長沙)로 옮겼다. 그때 만주에서 얼마간의 돈을 보내왔다. 뒤에 알고 보니 그 돈은 어떤 개인이 개인에게 보내온 순전히 개인적인 돈이었다. 그러나 그 사람은 반을 모두를 위해 내놓고 반은 자기가 간수하고 있었던 것인데 임시 정부를 위해서 보낸 돈을 그자가 가로챘다는 풍문이 돌았다. 이런 풍문을 안그자는 불쾌하다는 감정으로 나머지 돈을 가지고 장사를 떠나버렸는데 혈기 방장한 사람들이 추격해서 구강(九江)이란 데서 그를 죽여버렸다. 그 일이 도화선이 돼서 죽이고 죽는 참극이 벌어지고 드디어는 수습 못할 정도로 분열되고 말았다.”
형산은 또 중경(重慶)에서 김구(金九) 선생이 장 총통(藏總統)으로부터 얼마간의 돈을 받고 있었는데 그 돈을 시기해서 모략과 중상이 그칠 사이가 없었다는 얘기도 했다.
“그래 나는 평생 생존할 정도 이상의 돈은 갖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어. 가족과 의가 상하는 것도 돈 때문이고 친구와의 사이가 틀어지는 것도 돈 때문이고 배신자가 생겨나는 것도 돈 때문이고 분파(分派)가 돼서 아귀다툼을 하는 바탕에도 돈이란 게 있더구먼. 그리고 나는 어떤 운동, 어떤 활동도 돈이 있어야 되는 것이면 안 하기로 작정을 했던 거다.”
p. 291_ “4·19가 없으면 나라는 오늘의 존재가 없어지는 걸.”
전호의 이 말엔 여러 가지 복잡한 감회가 담겨져 있었다. 첫째 4·19가 없었다면 민덕기라는 학생이 없었을 것이고, 따라서 자기는 수학 교사가 되지 않았을 것이고, 형산 선생도 윤숙이도 몰랐을 것이다. 그런데 민덕기, 형산, 수학 교사, 윤숙이 이런 것이 오늘날 전호의 전부인 것이다. 게다가 최성애를 알게 된 것도4· 19 때문이다.
“그러나 과거는 과거, 현재는 현재, 이렇게 매듭이 있게 살아야 하잖아요? 차지도 덥지도 않은 과거라는 목욕탕에 흥건히 몸을 담가놓고 있는 것 같은 꼴이 아니꼽단 말예요.”
윤숙은 성애의 동의를 얻어야겠다는 듯이 성애 쪽을 보며 말했다.
성애는 그저 웃고만 있었다.
“사람이 덜 돼서 그런 걸 어떻게 해…….”
전호는 그 화제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출판사 서평
‘대중성의 첨탑’이 지닌 읽는 재미를 맛보다
“또 하나 유의해야 할 대목은 그렇게 창작된 대중적 성향의 소설들이 놀라울 정도로 ‘소설 읽는 재미’를 충족시키고 있다는 데 있다.”
이병주 장편소설 『허상과 장미』는 ‘역사성과 대중성의 조화로운 만남’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병주의 소설이 대중적 흥미 유발만을 과녁으로 하지 않고, 거기에 그의 특장이라 할 역사성을 결부했을 때는 더욱 그렇다. 이 모든 허구적 이야기의 조합과 심금을 울리는 소설적 교훈을 함께 공여하는 터이기에, 우리가 여기에 ‘대중성의 첨탑(尖塔)’이란 수식어를 헌정해도 무방할 것이다.
베스트셀러가 반드시 좋은 작품은 아니지만 좋은 작품은 베스트셀러가 될 소지를 더 많이 안고 있다. 그런 만큼 당대독자에의 수용은 좋은 작품에 대한 판정에 있어 하나의 바로미터가 될 수 있다. 이병주를 ‘한국의 발자크’라고 부르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용서가 답이다
“자공(子貢)이가 공자를 보고 종평생(終平生) 지켜야 할 것을 한 마디로 하자면 어떤 것이 있겠습니까 하고 물었거든. 그랬더니 공자가 기서호(其恕乎)라고 했지. 기서호란 용서하라는 뜻 아니겠나. 나는 이 말이 제일이라고 생각하네.”
소설의 결미에 이르러 전호와 최성애는 구원(久遠)을 바라보는 사랑의 결실을 얻는다. 그러나 윤숙은 전혀 다른, 새 길을 간다.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과 결별했다고 느끼면서 ‘저금통장에 늘어나는 돈의 액수’에서 위안을 얻는다. 사용가치 중심의 시대가 교환가치 위주의 시대로 변환해가는 그 길목에 윤숙이 서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 모든 소설적 이야기와 인생 행로의 드라마들을 두고 작가가 궁극적으로 포기하지 않는 원론적 개념은, 고색창연한 공자의 옛말 곧 논어의 한 구절이다. 기서호(其恕乎), 용서가 그것이다. ‘이 세상에 살아가면서 용서하지 않고, 용서받지 않고 배겨 낼 도리가 있겠나’라는 것이 형산의 말이다. 이 복잡한 세상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답은 의외로 단순할지 모른다. 바로 용서다.
왜 지금 여기서 다시 이병주인가
“백년에 한 사람 날까 말까 한 작가가 있다. 이를 일러 불세출의 작가라 한다. 나림 이병주 선생은 감히 그와 같은 수식어를 붙여 불러도 좋을 만한 면모를 갖추었다.”
2021년은 나림 이병주가 탄생한 지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이 뜻 깊은 해를 맞아 이병주기념사업회에서는 〈편찬위원회〉를 구성해 선집을 발간하기로 했다. 이 선집은 모두 12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중·단편 선집 『삐에로와 국화』 한 권에 「내 마음은 돌이 아니다」(단편), 「삐에로와 국화」(단편), 「8월의 사상」(단편), 「서울은 천국」(중편), 「백로선생」(중편), 「화산의 월, 역성의 풍」(중편) 등 6편의 작품이 실려 있다. 그리고 장편소설이 『허상과 장미』(1·2, 2권), 『여로의 끝』, 『낙엽』, 『꽃의 이름을 물었더니』, 『무지개 사냥』(1·2, 2권), 『미완의 극』(1·2, 2권) 등 6편 9권으로 되어 있다. 또한 에세이집으로 『자아와 세계의 만남』, 『산을 생각한다』 등 2권이 있다.
『허상(虛像)과 장미』는 인생이 어떻게 한 순간의 허상과 같으며 그 종막에 바치는 장미꽃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묻는다. 역사에 대한 ‘균형감각’과 ‘소설 읽는 재미’를 모두 놓치지 않는 이 소설은 이병주라는 대가의 풍모를 잘 드러내는 작품 중 하나이다.
기본정보
ISBN | 9791158772567 |
---|---|
발행(출시)일자 | 2021년 09월 30일 |
쪽수 | 318쪽 |
크기 |
141 * 211
* 21
mm
/ 392 g
|
총권수 | 1권 |
Kl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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