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위한 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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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치열했던 시위현장에 밤새 비가 내렸다. 새까맣게 그을린 화염병, 타다 만 솜뭉치, 깨진 벽돌, 시위대의 진로를 막으려고 쳐놓은 바리케이드는 돌멩이에 맞아 상처투성이가 되어 이제 막 돋아나기 시작한 파릇파릇한 잔디 위에 널브러져 비에 젖어있었다. 물대포가 하늘 높이 치솟아 오르고 최루가스가 분사되고 기자들은 화염병을 던진 시위대를 향해 셔터를 눌러댔고 이를 제지하려는 세력과의 몸싸움에 생채기가 난 얼굴에서 피가 흘렀다. 사진 속 최루가스에 눈물 흘리는 시위대는 이제 6월의 아이콘이 되어 버린 지 오래다. 시위현장은 참혹했다. 젊은 열사들의 함성이 들리는 것만 같다.
진우와의 거리가 멀어질수록 잠들어 있던 감정들이, 사랑이 부서진 자리에 떠돌던 잔해들이, 미처 정리되지 못한 감정의 부유물들이 화영에 대한 열패감, 다시는 만날 수 없을 거라는 안타까움, 다가갈 수 없다는 절망감이 내면에서 아우성쳤다. 시간에 쫓기며 생각 없이 오갔던 이 철길, 지금 이 순간 수많은 상념들이 몰려든다. 조용히 눈을 감고 생각들을 밀어내려 했다.
작가정보
작가의 말
‘찌륵, 찌륵, 찌륵’
아, 매미 소리다. 소리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들리는 것 같다. 간판들이 뿜어내는 인공불빛과 자동차의 질주 소리가 새벽까지 그대로 이어지는 역세권 아파트에서 듣는 매미 소리는 차라리 처연하다.
그것은 끈질기게 움켜쥐고 버티는 생명의 경이, 짧은 생의 시간을 알기라도 하는 걸까, 소리는 도시의 소음에 묻혔다 다시 들렸다 반복하면서 더운 여름밤을 유희한다.
매미는 이 한 철의 존재를 위해 낮고 어둡고 습한 땅속에서 그 미망을 견디며 7년을 기다린다지.
눈을 뜨면 범람하는 폭염 그리고 밤에도 빠져나가지 못하고 마천루처럼 곧게 솟은 콘크리트 건물 속에 갇힌 열기가 만들어내는 열섬현상, 그 속에서 들려오는 생명의 소리, 고향의 소리는 낯선 듯, 부조화인 듯, …잠들지 못하는 하얀 여름밤을 잠식하면서 상념 속으로 안내한다.
글을 쓴다는 것, 때로는 치유이고, 때로는 현실과 초월의 간극에서 자아를 잃어버리고 방황하기도 하면서 여기까지 왔다.
내 관념을 뒤져 새로운 세계를 현상하고 시간 속으로 사라져 버린 마을을 되살려내기도 하고, 땅 밑으로 사라진 고대도시를 재건하기도 하면서, 그런가 하면 현존하는 마을을 더 아름답게 더 쓸모 있게 리모델링하기도 한다.
작가는 무엇이든 글로써 되살려내야 한다. 마을을, 도시를, 그 속에서 숨 쉬고 피어나는 사랑을, 사라진 꿈도 불씨처럼 되살려내고 싶었다.
사람들은 누구나 아련한 기억 속에 존재하는 공간을 가지고 있다. 그곳에는 어린 시절의 그림이 있고, 영혼을 살찌워 주는 서사가 깃들여 있다.
이 작품 속에서 그려낸 관악동, 도림동, 철쭉꽃을 월계관처럼 머리에 두른 관악산과 흰 아카시아가 그 진한 향내를 대기 속으로 휘발하는 청룡산이 다정하고, 그 사이를 관악산 골짜기에서 시작된 물줄기가 유려하게 흐르며 갖가지 수생식물들을 키워내는 곳, 도림천 들머리를 나는 사랑한다. 작열하는 과부하 같은 햇빛이 아닌 초록의 숲에서 숨어 우는 매미 소리는 위태롭지도, 처연하지도 않을 테니까, 그리고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선명하게 펼쳐지는 그곳, 도림천 들머리.
관악산 들머리에서
송경하
목차
- 작가의 말 5
줄거리 8
별이 지던 밤 15
노란 잉어의 꿈 37
카오스의 시간 73
귀향 202
죽은 자를 위한 세레나데 212
첫사랑 귀환 233
책 속으로
모든 것이 무서워졌고 지난 시간들이 영화 속의 슬로우 장면처럼 현재를 멈춰 세우고 지나간다. 예민해진 감각이 극에 달했을 때, 의식은 무의식으로 그 너머의 분열로 그리고 사고는 불능상태에 이른다.
혜란은 어쩌면 생의 끝자락 같은 막다른 길에 앉아서 지나간 시간들이 한 편의 드라마처럼 펼쳐진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어릴 적부터 꿈꿔왔던 서울대학교에 입학하던 날. 웅비하듯 솟아있는 관악산 봉우리에서부터 노란 산수유가 수줍게 피어나는 정문 앞까지 야트막하게 기울기를 이루면서 건물들이 들어서 있었다. 그 모습은 퍽 웅장해 보이면서도 엄숙했다. 아버지는 골 깊은 주름에 검버섯이 흩뿌려진 얼굴, 대관령 분지마을에서 밭뙈기 평수와는 상관없이 홀아비 티가 역력했다. 검정색 낡은 모직 점퍼 주머니에 양손을 찔러 넣고, 혜란의 동선 따라 움직여주었다. 그 모습은 주변 다른 부모와 확연히 구분되게 초라했다. 아버지도 그런 어색함을 느꼈는지 혜란의 눈치를 살폈다.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도 그랬다. 탈이념적이고, 탈인습적, 탈관습적으로 기성세대에 종속되지 않고 차별화하면서 가장 자유롭고 독창적이기를 그들은 원했다.
공생은 애당초 법전에서는 배제된 자연의 법칙이었고, 공동우승이나 공동수상은 유소년 경기에서나 간혹 등장하는 덕담 같은, 고시생들에게는 배제되다가 어느 순간부터 사멸화 되어버린 낱말이었다.
관악산 중턱이 하루가 다르게 푸르러지고 있었다. 만개한 철쭉이 관악산을 뒤덮고 함께 즐길 상춘객을 부르지만 상춘객은 없었다.
혜란은 그의 얼굴에서 배어 나오는 자신감을 보면서 자신도 감염된 듯 따라 기분이 상승했다. 곁에 두고 보아 저절로 기분이 좋아지는 연인이란 바로 이런 것이구나, 함께 공부하고 함께 시국을 토론하는 같은 시대적 상황에 들어있고 같은 목표를 향해 걸어가는 동행자이면서 길라잡이 같은 사람, 바로 눈앞에 있는 진우였다. 진우는 언제, 어디서 보아도 매력적인 남자였다. 혜란은 문득 두려운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그 치열했던 시위현장에 밤새 비가 내렸다. 새까맣게 그을린 화염병, 타다 만 솜뭉치, 깨진 벽돌, 시위대의 진로를 막으려고 쳐놓은 바리케이드는 돌멩이에 맞아 상처투성이가 되어 이제 막 돋아나기 시작한 파릇파릇한 잔디 위에 널브러져 비에 젖어있었다. 물대포가 하늘 높이 치솟아 오르고 최루가스가 분사되고 기자들은 화염병을 던진 시위대를 향해 셔터를 눌러댔고 이를 제지하려는 세력과의 몸싸움에 생채기가 난 얼굴에서 피가 흘렀다. 사진 속 최루가스에 눈물 흘리는 시위대는 이제 6월의 아이콘이 되어 버린 지 오래다. 시위현장은 참혹했다. 젊은 열사들의 함성이 들리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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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ISBN | 9791158609856 |
---|---|
발행(출시)일자 | 2021년 10월 31일 (1쇄 2021년 10월 20일) |
쪽수 | 248쪽 |
크기 |
137 * 196
* 24
mm
/ 403 g
|
총권수 | 1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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