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도의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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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지고 부서지는 시간을 응시하며 건져낸 진실들
“시체 해부학에 관한 디테일한 서술을 문체로 환원시키면서 자기만의 고유한 서사 공간을 연출”(임우기 문학평론가, 소설가 윤대녕)하고 있다는 평을 받은 「애도의 방식」과, “소설 혹은 예술은 그 상징의 가치를 우리에게 일깨워 삶의 의미를 되살려내는 것”(김인숙, 최수철 소설가)임을 상기하면 신뢰할 만한 작가라는 평을 이끌어낸 「종이집」을 비롯하여 모두 7편의 작품을 수록하였다.
사무보조원, 서비스직 노동자, 인지 장애를 보이는 노인, 유리창 청소부, 해부학 기사 등 작품 속에 등장하는 다양한 인물들은 저마다의 ‘집’과 ‘가족’을 만드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것처럼 보인다. 각자의 아픔과 슬픔을 간직한 인물들이 끝끝내 삶을 지속해나가는 모습들 속에서 불합리한 세계에서도 분투하는 작은 개인들의 표정과 마주하게 된다.
목차
- 종이집
검은 비닐봉지
추락
캠핑 페스티벌
다녀올게요
가청범위
애도의 방식
해설: 젖어가는 종이집에서 혼자_이지은
작가의 말
추천사
-
김수영의 소설은 뿌리 없이 유동하거나 무너지고 부서지는 삶을 포착한다. 대다수의 등장인물은 집이 없고 가족의 유대가 사라진 존재들이다. 고아 의식이나 상실의 상처를 품고서 죽음의 충동에 시달리기도 한다. 이와 같은 인물들을 작가는 일인칭 전지의 시점으로 내밀하게 추적하고 있다. 플로베르의 ‘일물일어’에 어울릴 만치 구체적인 서술이 돋보이며 밀도 높은 구성으로 단편소설이 갖추어야 할 진면에 충실한데 우리 시대의 불길한 전망을 표출하기에 적합하다.
책 속으로
컨테이너가 이리저리 흔들리더니 쿵 소리를 내며 옆으로 쓰러졌다. 수인도 나자빠졌다. 바닥에 쌓여 있던 종이집이 무너져 내렸다. 쪽방 문이 위에서 수인을 내려다보았다. 바닥에 깔린 쪽창으로 물이 새 들었다. 무너진 종이집이 바닥부터 젖어 주저앉았다. 벽과 천장에 걸어놨던 종이집도 찢기고 떨어졌다. 수인은 움츠린 자세 그대로 한참을 꼼짝도 못 했다. 보기만 해도 힐링이 되는 집을 가슴에 안았다. 고개를 앞으로 접듯이 숙였다. 허리를 구부려 무릎에 닿도록 접고, 다리를 가슴에 바싹댔다. 천천히 종이집 안으로 들어갔다.
- 「종이집」 중에서
덤불 너머는 숨 막히게 복잡했다. 무엇이 있을지, 길이 어디까지 이어져 있을지, 도중에 얼마나 많은 장애물이 있을지는 종잡을 수 없었다. 플래시 빛을 따라 날벌레가 달려들었다. 먼 곳에서 개가 짖었고, 정체를 알 수 없는 동물들이 울었다. 그러나 어둠에 잠긴 숲의 표정은 볼 수 없었다. 나는 산책을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 「검은 비닐봉지」 중에서
새대가리야? 작업 중 휴대전화 사용 금지.
마 사장이 버럭 화를 냈다. 귀도 밝으시네. 별것도 아닌데 화를 내는 게 아무래도 수상쩍었다. 불똥이 어디로 튈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진동이 빨리 끊기기를 바랐다. 보나 마나 안부처럼 독촉 문자를 보내는 마고일 것이다. 확인도 하기 전에 이미 기분은 언짢았다. 꼬박꼬박 이자를 내는데도 그는 계속 쪼아댔다. 원금을 갚지 못하면 각오하라는 엄포까지 놓았다.
나는 유리벽에 비친 하늘을 보았다. 비행운이 하늘을 쪼개며 지나갔고, 내 눈은 비행운을 따라갔다. 비행운을 경계로 하늘의 이쪽과 저쪽이 묘하게 달라 보였다. 비행기는 보이지도 않았으나 조종석에 앉은 희진을 보는 착각에 빠져들었다.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갔다. 흩어지는 비행운을 향해 안전 비행, 이라고 외쳤다. 엄지를 척 들어 올렸다.
- 「추락」 중에서
잘 오셨습니다. 요즘 같은 시기에 딱 맞는 곳이죠. 여유로운 공간에 맑은 공기까지 모두 공짭니다. 돌아가실 땐 다른 사람이 되어 있을 겁니다.
그는 등고선 표시가 선명한 지도의 한 부분을 짚었다. 나무 터널 표시가 경계 지점이라고 말했다. 경계라니. 나는 그를 흘긋 쳐다보았다. 어디서든 캠핑은 가능합니다. 사실 수목장이 더 고즈넉하고 여유롭죠. 그래도 알려는 드려야 해서요. 직원의 말을 경청하는 내가 나는 더 우스웠다. 자발적으로 캠핑 홍보 직원의 볼모라도 된 기분이었다.
- 「캠핑 페스티벌」 중에서
독거, 라고 중얼거리며 청자 씨는 허탈하게 웃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혼자 사니 독거는 맞았고, 예순이 넘은 지 한참 되었으니 아직은 젊다고 우기기도 애매했다. 그러나 주변엔 혼자 사는 사람들로 넘쳤다. 젊어서 혼자, 젊지도 늙지도 않아서 혼자, 늙었으니 혼자. 혼자 살기는 새로운 트렌드였다.
- 「다녀올게요」 중에서
들리는데, 들리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을까. 말장난 같지만 사실이었다. 소리 덩어리는 들렸다. 덩어리 속에 뒤죽박죽으로 섞인 내용의 차이를 잡아내지 못할 뿐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것까지 묻지는 못했다. 뭐든 잘 들리는 의사가 내 고충을 정말 알까, 회의적이었다. 들리는 말조차 제대로 못 듣는, 아니 듣지 않으려는 사람도 많다고 하면 할 말이 없었다.
- 「가청범위」 중에서
출판사 서평
2021년 심훈문학상 소설 부문 수상자, 김수영 소설가의 첫 번째 소설집
무너지고 부서지는 시간을 응시하며 건져낸 진실들
2018년 대전일보 신춘문예에 「애도의 방식」이, 202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종이집」이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김수영 소설가의 첫 번째 소설집이다.
“시체 해부학에 관한 디테일한 서술을 문체로 환원시키면서 자기만의 고유한 서사 공간을 연출”(임우기 문학평론가, 소설가 윤대녕)하고 있다는 평을 받은 「애도의 방식」과, “소설 혹은 예술은 그 상징의 가치를 우리에게 일깨워 삶의 의미를 되살려내는 것”(김인숙, 최수철 소설가)임을 상기하면 신뢰할 만한 작가라는 평을 이끌어낸 「종이집」을 비롯하여 모두 7편의 작품을 수록하였다.
“새로운 가족을 만들어야 할까”
지극히 평범하면서도 도무지 가능하지 않은 일들
작품집 속 인물들은 다양한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깊게 유대감을 갖고 소통하는 타인은 없어 저마다 외로운 표정을 짓고 있다. 「종이집」 속 인물 ‘수인’은 부동산에서 사무보조원으로 일하며 사람들이 집을 사고파는 일을 가까이서 지켜본다. 하지만 자신의 집은 없고 대신 종이로 집을 접는 행위로 위안을 얻는다. 가족들도 있긴 하지만 기댈 만한 인물이 못 되고 종종 오는 문자메시지도 피하고 싶은 존재일 뿐이었다. 힐링이 되어야 할 집과 가족이 ‘수인’에게는 해결해야만 하는 문젯거리였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종이집을 접는 장면을 촬영해 올린 브이로그에 댓글을 달아주는 사람들이다.
「애도의 방식」의 해부학 기사 ‘공시인’은 ‘이언’을 자신의 생활공간에 들이면서 유사가족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 일시적인 관계는 ‘이언’이 쉽사리 이해할 수 없는 방식을 선택하면서 끝이 나고 만다. ‘공시인’은 이에 대해 제대로 슬픔을 표출하지도 못한다. 하지만 자신이 그동안 꾸려온 생활방식이 허락하는 내에서 최대한 예를 갖추어 ‘이언’의 죽음을, 또한 ‘이언’과의 관계를 애도하려고 한다.
이처럼 작품들 속에 등장하는 사무보조원, 서비스직 노동자, 인지 장애를 보이는 노인, 유리창 청소부, 해부학 기사 등의 다양한 인물들은 저마다의 ‘집’과 ‘가족’을 만드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것처럼 보인다. 각자의 아픔과 슬픔을 간직한 인물들이 끝끝내 삶을 지속해나가는 모습들 속에서 불합리한 세계에서도 분투하는 작은 개인들의 표정과 마주하게 된다.
“천천히 종이집 안으로 들어갔다.”
함부로 낙관하지 않되 절망으로만 일관하지 않기.
외로운 삶에 눈감지 않되 연약한 희망을 소중하게 여기기. _이지은 문학평론가
『애도의 방식』엔 감염병의 그늘이 등장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감염병의 시대가 누락한 우리의 삶을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지금 여기 맞춤하게 도착한 소설이라 하겠다. 혼자 살아가는 이들의 삶을 보여주면서 우리 시대의 문제가 ‘자가 격리’가 아니라, ‘자가의 부재와 격리된 삶’이 아니냐고 묻는다. 그리고 그 물음 속에는 우리의 삶이 파편처럼 흩어져 있다.
함부로 낙관하지 않되 절망으로만 일관하지 않기. 외로운 삶에 눈감지 않되 연약한 희망을 소중하게 여기기. 이러한 마음이 발견해낸 삶이 바로 『애도의 방식』의 단편들일 것이다. (이지은 문학평론가)
기본정보
ISBN | 9791156625698 |
---|---|
발행(출시)일자 | 2021년 11월 15일 |
쪽수 | 232쪽 |
크기 |
128 * 188
mm
|
총권수 | 1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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