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의 명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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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시작(詩作)은 우리의 영혼과 삶을 담아내는 아름다운 그릇을 빚는 일과 다름이 없다. 그래서 많은 시인들이 아름다운 영혼과 아름다운 삶을 노래하며 아름답게 살아가기를 희망하고 있다.
시에는 시인의 영혼, 지성, 감성, 사랑 등 삶 자체가 용해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선자 시인의 시(詩)는 세월과 파도에 의해 동글동글 다듬어진 몽돌같이 내게 아름답고 정겹게 다가온다.
몽돌은 긴 세월 검푸른 파도와 하얀 포말에 의해 둥글둥글 모나지 않게 다듬어진 까닭에 많은 이의 사랑을 받고 있다.
작가정보
저자(글) 이선자
그때는 고집이 세고 울보인 애들은 모두 다리 아래서 주워왔다.
남한강 다리 아래로 풀빵장사를 찾아갔다.
해가 물안개를 채 걷어내기 전
선진을 건 신륵사 스님 목탁 소리가 강물에 가 닿았을 때
그 신선하고 서러운 풍경을 보고 난 후
다시는 주워왔다는 소리는 듣지 않았다
세상에는 내가 선택하기만 하는 상황은
오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정체성도 찾지 못한 나이에 너무 이른 아픔으로
방황은 종지부를 찍지 않을 것 같이 마풍에도
가슴은 따갑고 아팠고
세상이라는 넓은 곳에 첫발을 들여놓았을 때는
허구한 날 지각으로 아침 회의 열외라는 상사의 특혜를 받았다
그로 인해 같은 동료에게 머리채를 잡혔음에도
무모한 배짱은 콧방귀를 뀌며 손사래를 쳤다
어두운 거리를 역량도 없이 동행도 없이 걷다가
다소 엉뚱하고 럭비공 같은 나는 한 남자와 공동으로
아이를 낳았다.
아이들은 교양 떠는 내 입을 오리주둥이로 만들기도 하고
우아 떠는 얼굴을 일그러뜨려 목덜미를 뒤로 잡고
쓰러지게도 했지만
심장이 뛰게 기쁘게 하는 일로 힘든 기억은
저장 공간 에러로 만들었다.
국문학을 전공하고, 등단도 하고, 연사도 쓰고, 시도 가르치고
일상의 언어보다 시의 언어를 좋아하고
윌리엄 엠슨의 모호성을 즐기고
이규보의 귀신 붙은 시인 예찬론 역발상에 깔깔대고 웃는,
결핍을 알면서도 게으름에 이유도 적당히 붙이고 사는,
역시 시가 좋아 시마에 걸려 멋진 시인이 되기를 기도하는
나는 오늘도 좌충우돌 무모하기 짝이 없는 두 아이 엄마다.
목차
- 펴내는 글 | 시인에 대해서 | 한명희(수필가) |4
해설 | 영혼의 치유를 위해 ‘시의 키트’를 들고 다가오는
시인의 온기를 느끼다 | 이충재(시인, 문학평론가)|141
제1부 매일 꿈꾸는 여자
고양이 시계 | 12
검은 파도 | 14
가을, 기울어진다는 것 | 16
그해 겨울 | 17
여주댁 자화상 | 18
기일, 비망록 | 20
기일, 엄마의 봄 | 22
동치미 | 24
막국수 | 25
매일 꿈 꾸는 여자 | 26
벌우개 골짜기 -故 현곡 선생님 묘소에서 | 28
서리가을 | 29
신 제망매가 -운주사 동백꽃을 보고 | 30
은행알의 오체투지 | 31
엄마는 정년도 없다 | 32
엄마 -전화 | 34
엄마 -양녀 | 36
엄마 -오만과 편견 | 38
요양병원 201호 고요 속에 일어난 일 |4 0
요양병원 201호 그녀의 시간은 달콤하다 | 42
요양병원 404호 *페니아 | 44
우듬지 수줍음 | 46
챕터 -그의 한 시기는 | 48
혜화역 4번 출구 | 50
This too shall pass away | 51
제2부 그 섬에 술집을 차리고 싶다
달의 명령 | 56
12월 별 | 57
가을, 에필로그 | 58
검은 등 뻐꾸기는 홀딱 벗고 | 60
계절이 바뀌어도 | 61
그 섬에 술집을 차리고 싶다 | 62
그의 목울대에는 무화과가 피었다 | 64
도서관 가는 길 | 66
장자를 읽고 우파니샤드를 읽고 | 68
마침표처럼 낮은 꽃 이마에도 봄을 찍는 | 69
밥 끓는 시간, 저녁 풍경 | 70
벚꽃 라떼 | 72
별, 그리고 가을 | 73
봄은, 내게 | 74
비자림 | 76
사랑이 그리운 날에는 서점에 간다 | 78
사랑하다가 | 80
새별 오름 | 81
섬진강 매화 | 82
여름밤 풍경 | 83
월하정인 | 84
은빛 자작나무 심장을 열다 | 85
있잖아, 별이 있어서 그랬어 | 86
주방 예찬 | 88
정류장 | 90
플라타너스 나무에 걸린 불빛
-〈별이 빛나는 밤에〉 고흐의 그림을 보고 |91
제3부 시를 등에 업고 있을 때
늙은 개 한 마리 | 94
같은 값 | 96
고양이 전래동화 - 꾸구리 | 98
고추장에 관한 기억 | 100
광릉내 정육점에는 | 102
그대 있잖아, 이제 사랑할래 | 104
내 나이 오십이 넘으니까 | 106
내 슬픈 전설의 49페이지 - 천경자 그림 속에서 | 108
달 파라치 | 110
브래지어 후크 | 112
블루아워 | 113
뼈(Bones)가 그대를 밀어낸다 | 114
사랑 | 115
새빨간 거짓말 | 116
시를 등에 업고 있을 때 | 118
아버지와 맘모스 빵 | 120
온도 | 121
아이덴티티 상실 | 122
오후 두 시, 매미 | 124
운주사를 찾던 그 날 | 126
유통기한 | 128
장마 | 130
진료 대기실에서 | 132
플랙스 | 134
햇살 한 줌 손에 꼭 쥐는 오후 |136
환상사지 | 137
골담초 | 138
빠삐용 보다 더 간절한 자유 | 140
책 속으로
동치미
그늘의 넓이가 더 넓어지는 저녁이다
냉장고 김치 통을 여니 겨울 꽃이 활짝 피었다
차갑게 여문 동치미에 손을 대본다
뒤창에 걸린 그믐달을 새가 물어오는 저녁
달의 얼굴에도 얼음 꽃이 붙어있다
밤꽃 진자리가 명당이지
한기를 두른 밤나무가 시린 이를 딱딱 부딪치는 저녁
나는 밤나무 허리를 감싸 안고
귀를 닫고 잠든 항아리 뚜껑을 연다
겨울 달빛이 하얗게 스며들어 꽃이 피었다
얼음 꽃나무가 달을 다 채우고 자라 무청처럼 자랐다
살얼음 피기에는 밤나무 아래가 명당이라 했다
무섭다고 징징대던 내게
맛있는 동치미 국수 만들어 준다고 했다
아버지 명당도 얼음 꽃이 피었을까
오늘 한기를 두르고 피워낸 얼음 꽃 명당 아래도 이렇게 차갑겠다
서리가을
꽃 떨어진 자리 위에 비가 내린다
100년 된 빈집에는 이야기가 쌓여
이내 자욱한 도린곁 풀 푸름이 가을임을 알게 한다
개울가 소국은 늦은 밤비에 더 은은하다
산돌림 사이 낮은 하늘은 더없이 작아 보이는데
비바람에 다급한 철새는 허리 안개 위에서
날갯짓 바빠진다
고요함 속에 젖은 하늘을 보니 여우별 사라지고
산보다 더 높은 그녀의 시간이 서서히 기울어진다
출판사 서평
-이충재 시인의 작품해설 중에서
영혼의 치유를 위해 ‘시의 키트’를 들고 다가오는
시인의 온기를 느끼다
이선자 시인의 시를 보면 시적 창조성과 가치관과 인생관을 이해할 수 있다. 순수한 시의 정점을 가로지르는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선자 시인의 첫 시집 『달의 명령』은 많은 시인이 놓치고 있는 소시민 혹은 인간의 서사적 이야기를 충분히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그 의미와 가치가 크다.
누군가 울고 있다
해가 기울고 바람이 빛의 각을 세운다
날카로운 밤이 파열음으로 바다를 후려친다
그럼 난,
헤세를 생각하면 되는지
그대를 생각하면 되는지
스쳐 지나갈 것 같은 울음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슬픈 울음의 살들은 제살들을 바다에 던지고
날카로운 빛이 울음의 살 한가운데로 작살을 꽂는데
그래도
헤세를 떠올리면 되는지
그대를 떠올리면 되는지
수면과 수면 사이 물의 신음소리는 검은 그림자로 야위어
가는데
등이 휘도록 바위를 치는 바다는 누군가의 울음을 퍼 올린다
멈춰버린 지구 어디쯤 놓고 간 가슴 가득한 폭우 같은 눈물
헤세가 본 구름보다 더 아름다운 구름에 금이 가던 그날
젖은 현실의 무게를 내려놓고
가슴에 맺힌 그 뜨거운 절규가 출렁거린
이쯤에서 다 지나갈 것 같은 울음이 다시 들린다
- 시 〈검은 파도〉 전문
시인의 삶이 그대로 투영되는 듯 은빛 그림자들의 춤사위를 목격할 수 있으며 그들이 내뿜는 거친 호흡을 경험할 수가 있다. 그런가 하면 슬픈 함성을 지닌 뭇 형상들의 움직임이 일제히 어디론가 향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시는 다른 작품 〈요양병원 201호 고요 속에 일어난 일〉, 〈요양병원 201호 그녀의 시간은 달콤하다〉, 〈요양병원 404호 *페니아〉 와 연결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위의 시는 시인
의 시각적 관심도를 집중적으로 표현한 능력의 산실로 보이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위의 시는 이선자 시인의 시를 이끌고 있는 애증 혹은 관심, 연민, 사랑을 촉발시키는 서시로도 읽힌다고 할 수 있다. 시인은 이웃하는 독자들의 고뇌를 외면할 수가 없다. 그러니까 시인은 돈 되지 않는 지적 노동을 감내하면서도 자기의 것을 퍼다가 슬픈 이웃들에게 나누는 살신성인의 의를 멈출 수 없는 깊은 인간애를 지니고서 살아가는 이들이다.
이선자 시인은 이러한 삶의 동적이고도 정적인 균형을 이루면서 자신의 위안을 헤세나 시공간을 공유하는 불특정한 공간을 유영하는 벗들을 찾아 받고 에너지를 공급받는다. 그런데 이러한 자발적인 노력이 없다면 과연 살아있는 시인의 소리를 낼 수가 없다. 이런 무형의 자산이 사라지고 기계적 인간이나 출세 지향적 삶을 추구만 한다면 이는 시인으로서는 절대적 모순이 아닐 수 없다.
“밥 먹어라 약은 꼭 먹어야 하는 거니
한약을 먹는 건 어떻겠니?”
자라 새끼처럼 머리를 가슴 밑으로 숨기고
잠깐 마음을 닫아걸었을 뿐인데
사랑에 질끈 눈 감아 버리고 말았는데
마음이 아픈 건 용서가 안 되는구나
엄마는
바위보다 더 무거운 숨을 등에다 엎고
형광등 안 마른 화석이 된 하루살이를 본다
짧은 생을 저 안에서 마감했을까
멀리 훨훨 날아가 자유롭게 죽지
웅우웅 웅우웅 걱정을 켜켜이 쌓아두는 핸드폰
오래가는 건전지 에너자이저가 떠오른다
다 닫지는 마라 숨 쉴 틈은 열어둬라
그래야 사랑도 다시 할 수 있다
냉장고 문을 활짝 열었다
잘 익은 열무김치 국물에 아픈 것들을 말았다
문득 탯줄이 덫이 된 그녀와 나
엄마는 정년도 없다
-시 〈엄마는 정년도 없다〉 전문
위의 시를 감상하면서 또 다른 시들을 떠 올리지 않을 수 없다. 지금 열거하는 시들은 이선자 시인의 시적 내공을 불러일으키는 유년의 혹은 자신이 엄마가 된 현재의 삶을 버티게 하는 뿌리가 되었던 가족애가 깊게 내재해 있다고 할 수 있다.
사람은 자신의 삶과 동떨어진 시를 창작할 수가 없다. 가능성을 열어놓는다고 하더라도 감동이 없고, 공감을 형성하기란 어렵다. 그래서 요즘 시인들이 숨은 이야기 혹은 자신만의 서사를 축적 시켜 놓지 못하고 언어의 유희만을 의존하기 때문에 독자들로 하여금 시적 공감에 이르는데 실패를 거듭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이선자 시인은 그 숨은 이야기가 다양하다. 그 유년의 추억이 오늘날의 이선자 시인의 시인됨을 구축시켜 놓았으며 동시에 무궁무진 시를 창작하는 동기부여가 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 배경이 되는 시들은 다음과 같다. 〈여주댁 자화상〉, 〈기일, 비망록〉, 〈기일, 엄마의 봄〉, 〈막국수〉 등의 시가 그 예다. 위의 시 〈엄마는 정년도 없다〉에서 시인의 삶뿐 아니라 엄마 그리고 오늘을 살아가는 수많은 엄마들의 희생이 낳은 실체를 극명하게 드러내 보임과 동시에 충분히 형상화 시켜놓고 있다.
이와 함께 시인의 삶의 희망이 돋보이게 하는 모든 삶의 편린들을 한 방향으로 집중하게 하는 결과론적 시를 들라면 〈매일 꿈을 꾸는 여자〉 ‘먼 길 돌아온 여자는 황혼 앞 성모 마리아 앞에 무릎 꿇는다/바람 앞에 등불처럼 훅 꺼져버릴 아이의 눈빛이/실 바구니에 채워지는 날/가시 같은 편견은 그녀의 올무가 되었다/아프게 뚫린 심장은 옅은 바람에도 수시로/구멍이 뚫렸고/혈관 속 피들이 광활한 우주를 떠돌다/ 붉고 비린내 나는 언어로 결국 그녀는 신을 버렸다’ 이다.
상처를 치유하는 자연의 힘에 안기다
인간은 창조물 중의 일부일 뿐이다. 신은 인간을 창조할 때에 모든 만물의 우위에서 군림하라는 특권을 허락한 적은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다만 균형을 이루면서 관리자로서의 명분을 잘 지켜 행하라는 조언을 남기셨을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선자 시인은 인간의 이야기가 아닌 자연으로 돌아와 삶을 재조명하고자 하는 성찰을 그의 시를 통해서 시도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오후 다섯 시 반
잠깐 동안은 가을의 의도를 읽지 않을 것이다
처음부터 해를 감아올린 태엽을 아주 조금만 뒤로 돌릴 것이다
미치고 싶은 불면도 사랑하게 만드는 어제의 시간으로,
환타처럼 톡 쏘는 달콤한 아침보다
바겐세일을 해야만 할 것 같은 넘치는 햇살보다
쓸쓸한 바람을 적자라고 한데 묶는
저녁을 고집하는 이유는
수천 개의 상상력이 한꺼번에 서사가 되어
결말을 짓고 바코드를 찍기 때문이다
그중 하나의 바코드를 집어 들면
아무것도 줄 것 같지 않은 가을은
앞섶을 풀고
낮부터 태양을 삼켜버린 가을비를 내줄 것이다
그럼 난, 흥분된 심장 3분의 1쪽을 내어 여백의 자리를 반쯤
채울 것이다
별안간이라고 말하고 싶어도 꾹 참을 것이다
살짝 입꼬리를 올리는 미소를 지으며
이미 예정된 계획에 어깨를 살짝 올리고 모자를 고쳐 쓸 것
이다
난 이미 의도된 에필로그를 알고 있었으므로
- 시 〈가을, 에필로그〉 전문
인간은 시인이 아니라 할지라도 변화무쌍한 계절의 현상에 직면하게 되면 감성적이게 된다. 그런데, 이러한 현상 앞에서 시인과 독자들과의 차이가 있다면 시인에게는 독자가 소유하지 못하는 점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그 내적 표현을 말이 아닌 글로 형상화 시키는 탁월한 능력이 그렇고, 그 사유의 결실에 삶을 결부시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감동을 흡입시키는 영성이 또한 그 두 번째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이선자 시인은 시인으로서의 아주 특별한 능력을 지녔다고 할 수 있다. 위의 시가 이를 증명해 주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작품 말고도 이와 병치시켜 감상할 작품들을 들라면 다음과 같은 시들을 들 수 있겠다. 〈12월의 별〉, 〈검은 등 뻐꾸기는 홀딱 벗고〉, 〈계절이 바뀌어도〉, 〈달의 명령〉, 〈별 그리고 가을〉, 〈봄은 내게〉, 〈비자림〉, 〈섬진강 매화〉, 〈은빛 자작나무 심장을 열다〉, 〈플라타너스 나무에 걸린 불빛〉 등이 그 예다.
자연과 시인이 하나가 되어 몰아의 경지를 예찬하게 될 경우, 그보다 나은 힐링이자 아포리즘의 절창을 찾을 수 없다. 그 내공이 시인으로 하여금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자유인이나 철학자들도 동경할만한 삶을 살아내게 하는 비결인 것이다. 위의 시를 통해서 이선자 시인이 자연 현상을 읽어내는 탁월성과 그 중심에 자신의 둥지를 틀고 사유하며 즐거움을 길어 올리는 특유의 시적 상상력이 깊게 내재해 있다는 것은 시인 스스로와 독자들에게 복이 아닐 수 없다.
비취색 물색처럼 맑고 고운 시집 한 권이다
모래알 사이에서 낯선 단어들이 빼꼼 고개를 내민다
섬 한가운데 기우뚱 매달린 미끈한 초록색 삼나무가
웃통을 벗고 바닷물로 뛰어든다
바다는 삼나무 그림자를 건져 올려 바위에 널어놓는다
사람들은 그 그림자에 손을 얹기도 하고 품기도 한다
갑자기 꿈 하나 새로 장만하고 싶다
수만 장을 풀어놓은 시집을 몽땅 끌어안고 살았으면 좋겠다
아니 아예 여기서 살림을 차리고
작은 해변 안주인이 되고 싶다
아니 아예 격이 있는 작은 술집 하나 차리고
항구에 들어오는 사람을 초대하고 싶다
웃통을 벗은 삼나무가
생소한 물기를 털고 나올 때를 기다려
섬에 떨어진 별 하나 주워 목에 매달아주면 좋겠다
블랙러시안을 들고 탱고를 추고 그 별에 입맞춤하면 좋겠다
밤새 모래알과 은밀하게 얽히다가 달빛도 털고 놀았으면 좋
겠다
나는 가을 햇살에 꿈 하나 걸어두고
신간처럼 두근거리는 시집 한 권 주머니에 넣어 본다
- 시 〈그 섬에 술집을 차리고 싶다〉 전문
필자는 개인적으로 이선자 시인의 작품들을 읽으면서 백미로 뽑으라면 위의 시도 그 범위에 넣을 만큼 아름다운 시로 분류하고 싶은 시이다. 시를 쓰고 문학평론을 수없이 하곤 하지만, 이선자 시인의 시집을 대하고, 그 시집에서 자신의 시적 세계관을 연결하는 계단이 이토록 아름답게 형상화된 시들을 이적지 발견하지 못했다. 그런데 위의 시를 보면서 타인의 시집을 그리고 그 시집을 정독하여 얻은 시적 발상과 시인의 미래상을 연계하여 비전을 지닐 수 있다는 그 탁월함이 시 이면의 또 다른 절경을 낳았다는 점에서 이선자 시인만의 기발함을 발견케 하는 작품이다. 그래서 우리는 타인을 배제하고 독불장군의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교만으로서의 자멸을 초래하게 된다는 교훈을 얻게 되는 것이다.
위의 시에서 이선자 시인의 겸손함으로부터 획득한 또 다른 시 세계 그 중심에 그 모진 풍파에도 파선되지 않을 자신의 둥지를 구축시켜 놓고 존재를 과시하는 시인의 정체성을 발견할 수 있어서 좋았다.
기본정보
ISBN | 9791156344322 |
---|---|
발행(출시)일자 | 2020년 11월 11일 |
쪽수 | 168쪽 |
크기 |
135 * 211
* 12
mm
/ 229 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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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권수 | 1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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