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시: 그 문학사적 맥락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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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윤리적 지평을 넓힌 지사적(志士的) 평론가 염무웅!
그가 자신이 쓴 모든 글 가운데 스스로 엄선하고 보태어
한 권으로 묶은 결정본 ‘한국 현대시의 문학사’
1970년대와 1980년대에 걸친 군사독재 시절 한국문학의 가장 전위적인 화두가 된 것은 ‘민족’과 ‘민중’이다. 염무웅은 《창작과 비평》의 편집 동인에 합류한 뒤 백낙청과 더불어 민족문학과 민중문학 진영을 이끈 대표적 평론가 중 하나다. 문학을 평가하는 그의 일관된 잣대는 “민중적 현실과 민중적 실천에 대한 참여의 정도”다. 따라서 그가 지향하는 문학은 ‘민족ㆍ민중사관’에 바탕을 둔 문학이다. 그것은 민중에게 계몽적 · 해방적 작용을 하는 문학이다. 한편 그는 월북 문인들의 작품 발굴에도 힘쓰며 민족문학론의 구체적이고 역사적인 근거를 마련하는 데 이바지한다. 그는 ‘위대한 작가’란 어떤 시대이건 제 양심의 실체를 제가 속한 공동체의 운명 속에서 발견하는 사람이며, ‘위대한 작품’이란 일상 생활에 길든 범인들에게 계몽적 · 해방적 작용을 하는 작품이라고 주장한다.
염무웅은 현대시의 탄생과 성장에 관심을 가져왔지만 체계적인 공부에 몰두하지 못했다고 고백한다. 그럼에도 시론이나 시인론을 쓸 때마다 자신이 다루는 대상이 우리 현대시의 역사적 맥락 속에서 어느 지점에 위치하는지를 의식했다고 말한다. 그의 『한국 현대시: 그 문학사적 맥락을 찾아서』는 ‘실천적 양심의 시문학사’로 시인의 구체적 삶과 또 내면의 삼투과정이 어떻게 한 편의 시로 구현되는가를 보여주는 ‘증언의 시문학사’이기도 하다.
작가정보
호적명 염홍경. 1941년 강원도 속초에서 태어나, 경북 봉화(춘양)와 충남 공주에서 성장, 서울에서 대학을 다녔다. 1964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문학평론으로 등단하여 창작과비평사 대표, 민족예술인총연합 이사장,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영남대 명예교수이며 겨레말큰사전남북공동편찬사업회 이사장과 국립한국문학관 관장을 겸하고 있다. 저서로 평론집 『민중시대의 문학』, 『혼돈의 시대에 구상하는 문학의 논리』, 『모래 위의 시간』, 『문학과 시대현실』, 『살아 있는 과거』, 산문집 『지옥에 이르지 않기 위하여』, 『자유의 역설』, 『반걸음을 위한 생존의 요구』, 대담집 『문학과의 동행』 , 역서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공역) 등이 있다.
목차
- 책머리에
Ⅰ
1. 오늘의 시와 전통시의 맥락: 전통의 해체와 그 계승의 길
2. 근대시의 탄생을 보는 하나의 시선: 서구문학의 수용과 우리의 대응
3. 가혹한 시대의 시인들: 이상화ㆍ김동환ㆍ김소월ㆍ정지용
4. 낭만적 주관주의와 급진적 계급의식: 일제 강점기 임화의 시와 시론
Ⅱ
5. 시와 행동: 윤동주의 생애와 시를 보는 하나의 시각
6. 한 민족주의자의 정치적 선택과 문학적 귀결: 김광섭의 시를 위협하는 것들
7. 서정주와 송욱: 1960년대 한국시에 대한 하나의 개관
8. 김수영론
9. 신동문과 그의 동시대인들
Ⅲ
10. 순수, 참여 그리고 가난: 다시 돌아본 천상병의 삶과 문학
11. 민중성의 시적 구현: 신경림의 시세계
12. 서사시의 가능성과 문제점
Ⅳ
13. 서정시ㆍ담시ㆍ대설: 김지하 시의 형식문제
14. 김남주의 시 번역에 대하여
15. 『만인보』의 문학사적 의의
16. 현대시로서의 정형시조: 구중서 시조집 『불면의 좋은 시간』을 화두로
17. 김수영이 수행한 문학사의 전환
해설: 문학이라는 생명체의 비밀을 탐구하다 | 김수이
수록 원고 발표 지면 및 연도
찾아보기
책 속으로
우리 근대문학의 탄생은 한국사회 전체의 근대적 전환이라는 큰 윤곽 안에서, 그러나 동시에 문학이라는 독특한 제도의 형식적 제약과 미학적 가능성을 통해서 때로는 점진적으로 때로는 돌발적으로 진행되는 과정이었다. 그리고 이 과정은 모방과 습작의 단계를 거치면서 명실상부한 근대문학으로 무르익기까지 상당한 준비기간을 불가피하게 요구했을 것이다. 당연히 거기에는 허다한 시행착오도 포함되고 뜻밖의 비약도 발견된다. (42쪽)
생각해보면 우리 삶의 길은 모험이고 암중모색이며 수많은 요인의 예측할 수 없는 착종 가운데를 통과하는 것이었다. 문학은 바로 그러한 뒤얽힌 인간운명의 등신대의 초상이다. 문학적 근대의 성취를 위해 지불된 한 세대의 노고와 상처가 있었다면, 그다음 세대는 앞 세대의 것과 구별되는 또 다른 고통과 좌절의 역정 위에 자기 고유의 이름표를 달고자 미지(未知)를 향해 새로운 발걸음을 내디딜 것이다. 왜냐하면 역사에는 결론도 종착점도 없기 때문이다. (66쪽)
시대적 현실에 대한 윤동주의 예민한 의식을 부인할 수는 없으나, 그것은 그에게 내면화된 형태로 나타나 괴로움의 악순환 속으로 그를 몰아넣었다. 그 순환의 고리를 깨는 것은 의식이나 상념 속에서만 가능할 수 없으며 민중 속으로 몸뚱이를 밀어넣는 데서 가능성이 열린다. 역사에서 폭력과 불의를 몰아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윤동주는 그 성과에서뿐만 아니라 그 한계에서도 많은 교훈을 주는 인물임이 분명하다. (140~141쪽)
산산히 깨진 그릇이 바로, 만약 나의 마음이라면……, 얼마나 무서울까요? 지금 내 곁에는 마음이 깨진 사람들이 또 얼마나 많을까요? 깨진 그릇처럼 자신을 내동댕이쳐 파괴하는 사람들, 깨진 조각을 들고 타인을 해치려는 사람들, 깨진 의식 속에 자신을 가두어 버리고 울고 있는 사람들, 사람들, 사람들……. 깨진 그릇은 좌절, 분노, 절망 등 부정적인 감정을 의미합니다. (235쪽)
한 평도 안 되는 감방에 앉아서 하이네와 브레히트와 네루다의 시를 번역하고 있는 한 인간을 상상해보라! 그것은 어떤 점에서 기괴한 풍경이고, 다른 점에서는 숭고한 장면이다. 독일어나 스페인어 원전을 손에 들고 있는 것도 아니고 미심쩍은 곳을 밝혀주는 참고서적이 곁에 있을 리 없으며 그나마 번역원고를 들키면 빼앗길지 모르고 도대체 펜과 종이조차 제대로 주어져 있지 않은 상황에서 그는 온 정신을 집중하여 온 신경을 곤두세운 채 하이네를, 브레히트를, 네루다를 번역하고 있는 것이다. 아마 이것은 세계 번역사에 길이 남을 참혹하게 위대한, 최악의 상황에 대한 최강의 저항으로서의 장엄한 한 장면일 것이다. (409~410쪽)
우리 문학사상 거의 유례가 없는 이 도저한 정직성과 치열성이야말로 김수영으로 하여금 모든 기존의 문예사조와 사회적 허위의식으로부터 벗어나게 만들었을 것이다. 김수영은 철저한 리얼리스트이자 탁월한 모더니스트이지만, 동시에 그 모두이기도 하고 또 그 모두를 넘어선 존재, 즉 가장 깊은 뜻에서 자기 자신에 도달한 시인이었다. 문학의 길에 들어선 우리 모두에게 언제나 새로운 목표로 다가오는 것이 바로 이 ‘자기 자신-되기’ 아닌가. (477쪽)
출판사 서평
“나의 편견이기를 바라지만, 오늘날 대다수 한국인은 ‘시 없는 삶’을 살고 있지 않은가 한다. 적어도 일상의 생활 속에서 ‘시적’ 감성을 간직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지금 이 땅의 현실은 너무도 각박하고 참담한 것이 사실일 것이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 시인으로 불리는 사람은 1만 명이 훨씬 넘는다고 한다. 그뿐만 아니라 한국은 여전히 시가 살아 있는 문학 장르로 여겨지고 있고 시집이 팔리고 있으며 상당수의 시인 지망생이 존재하는 예외적 국가라고 한다. 대체 이 역설적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염무웅 비평의 특징은 무엇인가?
한국 현대문학을 바라보는 대형 비평가 염무웅의 문제의식은 다음 다섯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김수이, 권말 해설 「문학이라는 생명체의 비밀을 탐구하다」 참조)
첫째, 염무웅의 문제의식은 위대한 문학과 위대한 삶의 긴밀한 관계다. 위대한 삶이 위대한 문학을 자동적으로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지만, 위대한 삶 없는 위대한 문학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둘째, 염무웅의 비평의식은 인간의 윤리와 문학의 윤리, 문학의 미학 사이의 삼자적 관계에 대한 집요한 질문이다. “왜 어떤 작가의 작품은 현실문제를 치열하게 다루는데도 미학적으로 빈곤한 성과를 노출시키는지, 현실에 대한 실천적 문제의식과 작품의 미학적 완성도가 만나는 지점 또는 그 모순적 관계를 해명하는 것. 이것이 나의 관심사입니다.”
셋째, 염무웅의 비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비평가의 자의식을 포함하면서 그것을 뛰어넘는 비평가의 윤리적 태도다. 그 윤리는 역사와 현실 앞에서 비평가 스스로의 삶을 성찰하는 윤리다. 염무웅의 경우 그 척도는 4ㆍ19혁명이다.
넷째, 문학평론가, 외국문학 번역가, 출판 편집자, 대학 교수 등 다양한 직업을 함께 지속해온 염무웅의 비평은 문학 전문가의 비좁은 제도적 비평을 넘어 비평의 ‘다른/새로운’ 독법을 발견하는 ‘경험적 비평’을 지향한다. 그것은 역사 앞에 선 작가의 윤리적 선택과 일상적 삶이 녹아든 ‘삶의 비평’으로 나타난다.
다섯째, 오랜 세월 출판사에서 편집자와 기획자로 일하며 그가 현장에서 추구한 민족문학과 민중문학의 진보적 열정은 ‘비평가의 윤리’를 자극하고 재점검하는 모티브로 끊임없이 작동한다.
한국 현대시의 역사적 맥락을 짚어가는 시론(詩論)과 시인론(詩人論)
우리 현대문학사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남다른 통찰력으로, 민중 민족문학론을 위시한 우리 문단의 주요한 문학담론을 기획하고 실천해온 염무웅은 단순한 이론 생산자가 아니라 현장의 비평가로서 현대 ‘한국문학사의 산증인’이기도 하다. 그의 섬세하고 자상한 독법을 통해 한국 문단에 보내는 따뜻한 위로와 애정의 시선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
1970년대와 1980년대에 걸친 군사독재 시절 한국문학의 가장 전위적인 화두가 된 것은 ‘민족’과 ‘민중’이다. 염무웅은 《창작과 비평》의 편집 동인에 합류한 뒤 백낙청과 더불어 민족문학과 민중문학 진영을 이끈 대표적 평론가 중 하나다. 문학을 평가하는 그의 일관된 잣대는 “민중적 현실과 민중적 실천에 대한 참여의 정도”다. 따라서 그가 지향하는 문학은 ‘민족ㆍ민중사관’에 바탕을 둔 문학이다. 그것은 민중에게 계몽적 · 해방적 작용을 하는 문학이다. 한편 그는 월북 문인들의 작품 발굴에도 힘쓰며 민족문학론의 구체적이고 역사적인 근거를 마련하는 데 이바지한다. 그는 ‘위대한 작가’란 어떤 시대이건 제 양심의 실체를 제가 속한 공동체의 운명 속에서 발견하는 사람이며, ‘위대한 작품’이란 일상 생활에 길든 범인들에게 계몽적 · 해방적 작용을 하는 작품이라고 주장한다.
염무웅은 현대시의 탄생과 성장에 관심을 가져왔지만 체계적인 공부에 몰두하지 못했다고 고백한다. 그럼에도 시론이나 시인론을 쓸 때마다 자신이 다루는 대상이 우리 현대시의 역사적 맥락 속에서 어느 지점에 위치하는지를 의식했다고 말한다. 그의 『한국 현대시: 그 문학사적 맥락을 찾아서』는 ‘실천적 양심의 시문학사’로 시인의 구체적 삶과 또 내면의 삼투과정이 어떻게 한 편의 시로 구현되는가를 보여주는 ‘증언의 시문학사’이기도 하다.
‘한국 현대시라는 옥동자’에 대한 애정어린 탐색
몇 가지 논란거리가 있지만 오랫동안 관습적으로 최남선의 신체시「해(海)에게서 소년에게」는 문학사의 시대를 가르는 이정표로 간주되었으며, 이를 기점으로 신문학의 태동을 이야기한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근대문학’이라는 역사적 개념 대신 ‘신문학’이라는 말이 주로 쓰였다. 신문학이 시작된 지도 한 세기가 넘으면서 수많은 작가와 시인들이 등장하여 우리나라의 근대문학을 수립하기 위한 힘든 노력을 기울여왔다. 그 결과 우리는 이제 공간적으로는 민족문학, 시간적으로는 근대문학이라 일컬을 만한 작품적 축적을 갖게 되었다.
20세기 초에는 오늘날처럼 직업으로서 ‘시인’ 개념도 희미했고, ‘시’에 대한 사회적 합의도 부재했다. 개인들의 시적 감정을 나타낼 어떤 선행하는 서정시의 모델도 존재하지 않았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쏟아져 나온 각종 시적 표현, 가령 동학가사ㆍ개화가사ㆍ의병가사는 전통적 시가 장르의 해체를 보여주는 말기적 현상으로서, 현대적 의미에서는 ‘시 이전의’ 또는 ‘시를 향하는’ 몸부림으로 저자는 이야기한다. 우여곡절 끝에 1920년대에 이르면 번역시집 『오뇌의 무도』(1921)가 간행되고 이를 전후한 시기에 김억(金億, 1896~?)을 비롯한 일본 유학생 출신의 문학청년들의 선구적 역할에 힘입어 오늘 우리의 머리와 심장에 여전히 생동하는 호소력을 가지는 언어적 형상물로서의 시가 우후죽순처럼 발표되기에 이른다. 염무웅은 이를 ‘바로 한국 현대시라는 옥동자의 탄생’이라고 언급한다.
이 책은 염무웅이 한국 현대시의 중요한 맥락에서 선별한 시인을 중심으로 논의를 이어간다. 엄혹했던 식민지 시기를 보냈던 이상화, 김동환, 김소월, 정지용, 임화, 윤동주를 비롯해 젊은 날 우상이었던 김수영을 비롯해 자신이 교류하기도 했던 신동문, 천상병, 신경림, 고은 등 한국 현대시의 역사에서 차마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시인의 시와 삶, 시세계를 총체적으로 그려낸다.
역사의 굴곡을 살아낸 가혹한 시대의 시인들
염무웅이 그려내는 시인의 삶과 시세계에는 그가 한국문학에 얼마나 깊은 애정을 갖고 있는지 깊게 투영된다. 그에게 시인들은 시대를 견디고, 또 시대를 맞서고, 시대를 세우고, 그러다가 좌절하기도 하는 역사 속에서 분투하는 시대의 영혼들이다.
「가혹한 시대 시인」은 식민지 시대 일본 유학을 경험한 네 명의 시인(김동환, 정지용, 이상화, 김소월)의 서로 다른 삶의 행로와 정신세계를 분석한다. 이들은 대한제국 시대에 태어나 식민지체제가 굳어지는 과정을 살았던 사람들이다. 따라서 그들의 삶과 문학은 식민지체제와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며 체제의 규정성을 피할 수 없었지만, 개성도 다르고 문학적 성향도 판이한 이들이 식민지 현실을 살아내는 방식이 달랐다. 김소월은 시대와의 불화 끝에 30대에 요절했고, 이상화도 고향 대구에서 낙백(落魄)한 상태로 40대에 생애를 마감했다. 김동환은 해방 후 친일파로 몰려 은둔해 있다가 6ㆍ25 때 납북된 이후 소식이 끊어졌고, 정지용은 갓 창간된 《경향신문》의 첫 주필로서 미군정체제에 비판적인 칼럼을 쓰다가 정권의 미움을 받아 칩거하던 중 역시 6ㆍ25전쟁 와중에 행방이 묘연해졌다. 염무웅은 그들 각자에게만 책임을 물을 수 없는 안타까운 결말이라고 말한다.
「순수, 참여 그리고 가난」은 천상병의 삶과 문학을 살펴본 글이다. 시인으로 데뷔하여 한때는 평론가로도 두각을 나타낸 천상병의 시세계가 어떻게 변모해갔는지를 흥미로운 일화를 곁들여가며 짚어낸다. 그는 가혹한 수난을 정신적으로 이겨내고 그것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지만, 뒤늦은 결혼으로 세속의 불행을 벗어나면서 그의 문학은 급속도로 긴장을 잃고 유아적 자기만족의 늪에 빠지기 시작했다. 염무웅은 천상병이 허망하게 ‘문학의 전장’에서 물러나는 모습에 안타까움을 표한다.
「김남주의 시 번역에 대하여」에서는 처절한 시 쓰기와 투쟁의 삶을 기린다. 아마 염무웅만큼 이 불굴의 시인에게 깊은 애정을 가졌던 평론가는 없을 것이다. 그는 『김남주 시전집』(창작과비평사, 2014), 『김남주 문학의 세계』(창작과비평사, 2014) 등을 엮는 작업을 통해 한국 문학사에서 김남주가 갖는 위상과 의미를 정립하려고 했다. 김남주는 염무웅의 민중적 관점의 문학론에 부합하는 인물이겠으나, 그렇다고 염무웅이 김남주의 사상적 주장에는 다소 동의하지 못하는 부분이 많다. 그럼에도 염무웅은 김남주가 자신의 ‘주장’을 순결하기 그지없는 마음으로 혼신의 힘을 다하여 밀고 나가고 있으며, 자신의 온 정신을 그 한곳에 치열하게 집중시키고 있음을 의심 없이 믿는다고 한다. 염무웅은 이런 열정과 극진한 헌신성, 비타협적 혁명정신과 불퇴전의 반항심이야말로 김남주 고유의 것이라고 하며, 그것이 그의 문학에 진정한 힘과 생동성을 부여하고 또 1980년대 민족ㆍ민주운동 속에서 그를 핵심의 자리에 위치시켰다고 주장한다.
이 책에서도 「김수영론」과 「김수영이 수행한 문학사의 전환」 2편의 ‘김수영론’이 실렸는데, 두 글은 45년이라는 긴 시차를 두고 있다. 염무웅은 김수영을 ‘젊은 날의 내 우상’이었다고 했지만, 한국 모더니즘의 위대한 비판자였으나 예리한 감각의 양심적 소시민이요 외국문학의 젖줄을 떼지 못한 도시적 지식인으로서의 그는 모더니즘을 청산하고 민중시학(民衆詩學)을 수립하는 데까지 나아가지는 못했다는 한계를 지적했다. 그럼에도 「풀」 「사랑의 변주곡」 같은 그의 마지막 무렵의 작품은 그가 1960년대부터 등장한 젊은 후배 시인들과 나란히 또는 앞장서서 그 자신의 시대적 한계를 뛰어넘는 사업에 적극 진출했으리라는 심증을 굳게 한다며, 그의 느닷없는 죽음을 슬퍼해야 할 이유는 너무나 많다고 말한다. 「김수영이 수행한 문학사의 전환」은 최근 김수영 탄생 100주년을 기념한 학술대회 〈다시, 100년의 시인-김수영학을 위하여〉의 기조 발제문으로 작성되었다. 이 글을 통해 김수영의 사후 반세기 동안 이루어진 문학사의 전환이 그의 문제의식을 출발점으로 한다는 점을 더듬어보았다. “우리 문학사상 거의 유례가 없는 이 도저한 정직성과 치열성이야말로 김수영으로 하여금 모든 기존의 문예사조와 사회적 허위의식으로부터 벗어나게 만들었을 것이다. 김수영은 철저한 리얼리스트이자 탁월한 모더니스트이지만, 동시에 그 모두이기도 하고 또 그 모두를 넘어선 존재, 즉 가장 깊은 뜻에서 자기 자신에 도달한 시인이었다. 문학의 길에 들어선 우리 모두에게 언제나 새로운 목표로 다가오는 것이 바로 이 ‘자기 자신-되기’ 아닌가.”
염무웅은 그 스스로가 한국문학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대표적 평론가다. 이 책은 그가 엄선하여 한 권으로 묶은 ‘한국 현대시의 문학사’로서, 시대를 대표하고 상징했던 시인과 그들의 시세계를 총체적이고 입체적으로 펼쳐낸다. 누구보다 한국문학을 사랑했고 이 땅의 현실에 뿌리를 내린 민족ㆍ민중문학의 역사적 실천에 한 평생을 앞장서 분투했던 노 평론가의 시론(詩論)을 통해 우리는 ‘시인 그 이상의 시인’, ‘작품 그 이상의 작품’을 마주하게 된다.
기본정보
ISBN | 9791130678856 |
---|---|
발행(출시)일자 | 2021년 12월 15일 |
쪽수 | 512쪽 |
크기 |
135 * 218
* 42
mm
/ 779 g
|
총권수 | 1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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