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라와 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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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을 놓아두고 싶다.”-김숨(소설가)
마음 둘 곳 없는 일상에 온기를 불어넣는 소설
어려서 아버지를 잃고 엄마가 자신을 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침묵을 선택한 노라는 좀처럼 남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다. 그런 노라에게 20년 만에 의붓자매인 모라가 연락을 한다. 모라 역시 친엄마를 떠나보낸 뒤 외부에 자신을 철저히 맞추며 살아왔다.
모라는 사업 실패와 계모와의 이혼 후 정처 없이 떠돌던 아버지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노라를 떠올린다. 이름도 생일도 비슷하지만 살기 위해 서로 다른 방법을 선택했던 두 자매가 기억과 경험의 편차를 넘어 어떻게 서로의 삶 안으로 들어갈 수 있을까?
작가정보
목차
- 눈을 감은 사람
그들에게는 그들만의
다시 만난 세계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있는 것과 없는 것
말할 수 없는 마음
노라
모라
혼자서 하나가 되는 법 …… 김숨
작가의 말
추천사
-
조용조용 말을 걸어오는 존재가 있다. 아무 할 말이 없는 것 같은 표정으로, 아무 마음이 없는 것 같은 표정으로…… 이 소설이 그러한데, 그런 존재들은 대개 나직하고 먹먹한 목소리를 가졌다. 함께 산다는 건 뭘까? 식구가 된다는 건? (……) “혼자서 하나가 되는 법을 배워가겠지”라는 문장에 오래 눈길이 간다. 소설은 내내 더없이 차갑고 더없이 따뜻하다. 누군가와 살고 있거나, 누군가와 살았던 적이 있거나, 누군가와 함께 살고 싶은 이의 창가에, 이 소설을 놓아두고 싶다. 노라의 말처럼 “있거나 없는 것. 그건 우리의 잘못이” 아니다. 그래서 우리 곁에 ‘있었지만 없었던’ 존재를 기억하고 그리워하고, ‘애쓰는 마음’을 놓지 못하는 걸까. 그래서 자꾸만 살아나는 마음을 어쩌지 못하는 걸까.
책 속으로
곤륜산에서만 자란다는 돌배나무의 라?. 그게 내 이름이다. 노魯가 성을 쓰는 덕분에 나는 그냥 노라, 띄어 써도 노 라, 다. 엄마는 자신의 임신중독으로 내 위의 아이를 태중에서 잃었다고 했다. 나에게 손수 이름을 지어준 사람은 아들을 잃고 딸을 얻은 아버지였다. (……) 내 이름은 라, 이지만 나는 누구에게나 노라로 불린다. 그게 노魯가인 아버지의 의도였을 지도 모르겠다. 부르기 쉽고 기억하기 쉽게. 어쩌면 아버지가 바란 건 쉽게, 또 쉽게 사는 거였던 거 같다.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아버지는 알았을까.
-「눈을 감은 사람」에서
어쩜. 이름도 딱이네. 누가 보면 정말 친자맨 줄 알겠어.
모라를 처음 만난 날, 엄마는 나란히 앉은 우리를 향해 입을 가리고 호호 웃으며 말했다. (……) 엄마는 나를 외면했고 가지런한 그물이라는 이름을 쓰는 아이는 나를 보고 자주 웃었다. 미간을 찡그리고 잇몸을 드러내서 우는 건지 웃는 건지 구분하기 어려운, 그런 웃음이었다. 같이 웃어줄 수가 없었다. 나는 그렇게 웃는 법을 몰랐다.
-「그들에게는 그들만의」에서
사실 계부가 죽었다는 사실 외에는 아무것도 아는 게 없다. 내가 전날의 통화에서 그 사실에 대해 캐묻지 않았던 건 관심이 없어서였다기보다 통화로 주고받을 사연이 아닐 거라는 짐작 때문이었다. 모라는 분명 계부의 죽음을 누군가로부터 전해 들은 것처럼 말했다. 돌아가셨어, 가 아니라 돌아가셨대, 였던 걸 다시 기억해 낸다. (……)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고, 나는 앞서 걸어가는 모라의 가파른 뒷모습을 바라보며 중얼거린다.
-「다시 만난 세계」에서
괜찮지?
아버지는 늘, 그렇게 말했다.
괜찮냐고. 괜찮지 않냐고.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고. 다, 괜찮다고.
나는 어느 순간부터 그게 아버지가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라는 걸 알았다. 그건 질문이면서 동시에 다
짐 같은 말이어서 우리는 늘 괜찮아야 했다. 어느 날 엄마가 온다간다 말도 없이 우리 삶에서 내뺀 날부터 아버지와 내가 할 수 있는 말들은 그런 게 고작이었다. 함께 살기 위해서는 새로운 가족이 필요했고 새로운 가족이 생긴 뒤부터는 겨우 얻은 풍선을 놓치지 않기 위해 애쓰는 마음으로 살았다. (……) 그러니까, 괜찮다는 말은 아버지와 내가 서로에게 할 수 있는 유일한 위로 같은 거였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에서
노라가 내 손등 위에 자신의 손을 얹으며 내 이름을 부른다. 나는 갑자기 잠에서 깬 사람처럼 멍하니 눈을 뜬다. 갑자기 느껴지는 손의 서늘한 감촉이 낯설어 어리둥절한 느낌마저 들 정도다. 처음 만나는 순간부터 헤어지던 날까지 먼저 뭘 하는 건 언제나 나였다. 정말이지 이 아이는 내가 먼저 묻고, 먼저 웃어 보여야 마지못해 입을 열거나 찡그린 건지 웃는 건지 모를 표정을 지어 보이던, 새침한 아이였다. (……) 그런데 노라가 지금 그 보이지 않지만, 엄연히 존재하는 선을 넘어 온 것 같다. 내가 부르지도 않았는데 말을 걸고 말을 한다.
그래도…… 아버지잖아.
노라가 그렇게 중얼거린다.
-「있는 것과 없는 것」에서
생일 따윈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아버지 덕분에 나는 내 생일을 자신할 수 없다. 아버지가 분명하게 기억하는 건 음력인지 양력인지 모를 생모의 생일, 혹은 그즈음에 내가 태어났다는 사실이 전부였다. 차라리 몰랐으면 좋았을 사실이었다. 나는 언젠가부터 생모를 떠올릴 모든 가능성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했다. 갈치나 꽁치, 고등어 따위를 먹지 않는 이유도 따지고 보면 생모 때문이었다. 왜 이렇게 됐을까. 혼자 잠들었다가 혼자 깨어나야 하는 많은 밤 동안 나는 그것에 대해 생각하다가 아예 생일을 잊는 쪽을 택했다. 아버지의 말대로 잊어버리면 아무 일도 아닌 일이었다.
-「말할 수 없는 마음」에서
양모라. 소리 내어 말하면 아직도 노래처럼 들리는 이름. 나는 모라가 자신의 공책 하단에 적어놓았던 이름의 모양을 아직 기억한다. 그런 ㅁ과 ㄹ 같은 것을 어디서도 본 적이 없고 앞으로도 그런 걸 볼 수는 없을 거다. 그건 이제 없는 것일까. 이제 없는 세계는 아예 없는 것일까. 나는 여전히 그것들에 대해 자신 있게 말할 수 없다. 앞으로도 내내 그럴 거 같다. 다만 나는 한때 하나였던 어떤 시간을 되풀이 생각하며 지내고 있다. 누군가 다녀갔다고 여기면 마음이 한결 좋아진다. 너무 애쓰지는 말자고, 모라는 내 손바닥에 메일 주소를 적으며 말했다. 애쓰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니까 더 애쓰게 되는 마음이 있다.
-「노라」에서
내가 아는 노라답게 노라는 사진 한 장을 달랑 보내왔다. 내 글씨가 적힌 노라의 손바닥이었다. 나는 길고 가는 손가락을 쭉 펼친 노라의 손과 몇 개의 곡선과 직선으로 이루어진 내 글씨를 오래 바라본다. 아주 긴 명줄을 가진 그 손바닥은 희고, 작다. 바닥을 기며 자라는 넝쿨이 빛을 향해 고개를 드는 순간이 있다. 웅크리고 있던 어린 새들이 입을 벌려 우는 순간이 있다. 그 순간 생겨나는 세계가 있다. 나는 새로 태어난 우리들의 손바닥을 본다. 낯선 사탕을 아껴 먹던 언젠가의 마음이 된다.
-「모라」에서
물컵처럼 옛날이 쌓인다. 한 번 쌓이면 걷잡을 수가 없다. 그리 오래되지 않았는데 옛날이라고 말하면 내가 까마득해진다. 잡았다 놓으면 옛날이 되는 이름들이 늘어간다. 층층이 쌓여 서랍이 된다. 서랍은 여는 것. 열면 오늘이 되는 이야기들. 나는 당신들을 꺼내 늘어놓는다.
하나의 이야기를 마무리할 때마다 생각한다.
더 무슨 할 말이 남았을까.
하지 못한 말은 하지 못한 대로도 좋다. 당신이 읽는 동안 내가 들을 수 있다면. 내가 듣는 동안 새들이 말할 수 있다면. 빗소리가 창문을 흔든다.
-「작가의 말」에서
출판사 서평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는 서로에게 있고 없다.
노라의 말처럼 “있거나 없는 것. 그건 우리의 잘못이”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곁에 ‘있었지만 없었던’ 존재를 기억하고 그리워하고,
‘애쓰는 마음’을 놓지 못하는 걸까. -김숨(소설가)
아무도 모르는 생애, 아무도 모르는 죽음
가까운 곳에 조용히 떠다니는 생의 물음표들
나지막한 문장과 섬세한 시선으로 삶과 죽음의 평행 관계를 역설하는 작가 김선재의 두 번째 장편소설 『노라와 모라』가 출간되었다. 소설가이면서 시인이기도 한 작가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애틋하고 특별한 삶의 순간들을 시적인 언어로 풀어내어 왔다. 그리고 이제 『노라와 모라』를 통해 선뜻 손 내밀지 못했던 존재들의 희미한 삶 한가운데로 독자들을 인도해 낸다. 우리의 이웃이자 나 자신이기도 한 세상의 모든 ‘노라와 모라’ 들에게 말이다.
『노라와 모라』에서 작가 김선재는 이전 작품들에서도 관심 있게 다뤄온 소외된 인물들을 가족의 연으로 다시 엮어낸다. 그의 작품에서 꾸준히 등장하는 관계가 바로 ‘엄마와 딸’, ‘아빠와 딸’이다. 이번에는 혈연과 서류로 묶인 가족이 온전히 하나가 되지 못하고 다시 혼자가 되고 마는 중에 ‘죽음’을 계기로 삶에 한 걸음 더 나아가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그리고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희생되는 개인들의 역사가 어떻게 지금 이 사회에서 온전히 일어설 수 있을지 고민하게 만든다.
섞이다 보면 하나가 될 수 있을까?
함께인 순간에도 더없이 외로운 날들에
우리를 누군가에게로 견인하는 기억의 연결고리
이야기는 노라의 독백으로 시작된다. 노(魯)가 성에 돌배나무 라(?) 자를 쓰는 ‘노라’는 자신이 어째서 이런 이름을 가지게 되었는지의 이유와 거친 손바닥의 촉감으로 남은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읊조린다. 어린 딸을 두고 어느 밤에 갑자기 죽어버린 아버지의 유품은 엄마도 처음 본다는 눈 감은 사진뿐이다. 아이 딸린 과부가 되어 딸에게 냉담한 엄마의 영향으로 노라는 어른이 되어서도 매사에 무심하고 다른 사람에게 쉽게 공감하지 못한다. 말 대신 침묵으로 일관하기를 선택한 노라에게 언제부턴가 회사는 시끌벅적한 회식을 강제하고, 그 길로 노라는 회사를 관둔다.
그런 노라가 새로 취직한 곳은 채소의 종자를 구별해 파는 가게 ‘명농사’다. 똑같은 종자를 심어도 여건에 따라 다르게 자라고, 겉모양이 똑같아 보여도 실상 다른 종자인 것들을 보며 세상일에 조금씩 마음이 여는 노라는 자신에게 몇 차례 걸려온 부재중 전화의 발신자가 동일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수화기 너머 들려오는 낯선 목소리는 20년 만에 듣는 의붓자매 모라의 것이다. 7년을 함께한 노라의 엄마와 계부가 이혼한 지 20년 만에 모라가 아버지의 부고 소식을 알리기 위해 전화를 걸었고, 노라와 모라는 그렇게 ‘죽음’을 계기로 연결되었다가 헤어지고 또 재회한다.
독특하게 작품의 중반에 이를 즈음 소설의 화자는 노라에서 모라로 바뀐다. 노라의 기억에서 발화되던 서사는 모라의 기억으로 치환된다. 엄마가 집을 나간 후, 일터에 나가는 아빠를 기다리며 보살핌 없이 지내야 했던 ‘모라’는 누구에게도 모나지 않은 사람이 되기 위해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다. 그런 모라의 기억은 노라의 기억과 조금씩 같으면서 다르다. 아버지와 달리 두 딸에게 공평하지 않았던 계모에 대한 기억, 방과 후 자신을 기다리는 노라를 뒤로하고 부러 다른 약속을 만들었던 일들까지 같은 장면이 만들어 내는 전혀 다른 기억들이 조우한다. 그럼에도 노라와 모라가 동일하게 간직하는 유일한 장면은 바로 태풍이 지나가던 어느 밤의 기억이다.
“딱 한 번, 노라의 이불 속으로 기어들어 간 적이 있었다. 태풍이 지나가던 어느 밤이었다. (……) 그 언젠가처럼 따뜻하고 안전한 곳이 간절했다. (……) 그게 내가 엉금엉금 기어 노라의 이불 속으로 들어간 이유였다. (……) 생각해 보면 그때 내가 느낀 건 상대적인 온도였고 절대적인 고요였다. 혼자가 아니라는 고요하고 따뜻한 실감. 나는 한동안 혼자라는 걸 깨달을 때마다 그 밤의 순간을 떠올리곤 했다. 어쩌면 20여 년 만에 노라에게 연락을 할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건 그 밤의 기억 때문인지 모르겠다. 내게는 있고 노라에게는 없는, 살을 맞댄 실감의 기억 말이다.” -「있는 것과 없는 것」
“나는 이불을 뒤집어썼다. 더 자고 싶었다. 뭔가가 내 이불 속으로 들어온 건 내가 다시 잠이 들던 순간이었다. 차고 낯선 감각이 팔뚝과 등허리에 닿았다. 흠칫 놀랐지만 나는 움직이지 않았다. 차고 말랑말랑한 그 감각이 모라의 손이고, 다리고 몸이라는 걸 닿는 순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뒤집어쓴 이불 속에서 모라와 내 숨소리가 섞이는 게 느껴졌다. (……) 같은 방에서 자고 깼지만 살이 닿은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들에게는 그들만의」
혼자서 하나가 되는 법을 알아가는 삶
단 하나의 희망만으로도 살아가는 인생
소설의 주인공 ‘노라와 모라’는 위태롭게 소외와 학대의 경계를 지나는 이 사회의 약자들과 닮아 있다. 각자의 몫을 감당해야 하는 인생의 순리는 강자에게도 약자에게도 똑같이 부여된다. 그렇기에 척박한 땅에서 피어난 생명의 몫은 때때로 가혹하다. 하지만 “혼자서 하나가 되는 법을 배워”가는 것이 삶이라고 말하는 인물의 속내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과 세계를 이어주는 희미한 연결고리가 있다. 작가는 ‘노라와 모라’를 통해 우리가 간직한 아픔과 외로움이 기실 모든 인생의 본질임을 보여주며, 이러한 공감을 통해 타인을 향해 마음 여는 데까지 이르게 한다.
살기 위해 궁핍한 기억을 지우려 애쓰지만 따뜻했던 기억은 꼭 붙잡아야 했던 노라와 모라. 이들이 함께한 7년의 기억 중에 유일하게 일치했던 ‘실감의 기억’은 불가해한 삶의 고통 속에서도 우리를 연대하게 만드는 작은 발원이 존재한다고 이야기한다. 세상의 가장자리에서 의지할 곳 하나 없다고 느껴질 때, 그럼에도 살아있는 한 만남은 계속된다고 말이다. 누군가와 이어지는 삶에는 온기가 흔적으로 남아 계속해서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고 믿어볼 수 있지 않을까.
기본정보
ISBN | 9791130632896 |
---|---|
발행(출시)일자 | 2020년 11월 24일 |
쪽수 | 208쪽 |
크기 |
127 * 195
* 27
mm
/ 303 g
|
총권수 | 1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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