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먹는 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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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뜨거워졌다가 식어 버리고, 이내 눈을 감거나 졸음에 빠져드는 염소 무리들 속에도 더는 아무도 다치지 않도록 분투하는 야경꾼 같은 염소들이 우리 주위에는 있다. 작가도 기꺼이 독자들에게 그런 염소가 되어 주겠다고 말한다. 그리고 작가는 소망한다. 생의 창밖으로 때로는 정체 모를 안개가, 때로는 거센 소나기가 찾아오더라도 자기 고통과 두려움만 보고 벌벌 떠는 염소 무리는 되지 않기를, 날마다 유리창을 닦아 자신의 상처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의 슬픔까지도 훤히 비출 수 있기를….
작가정보
저자 진주현은 프랑스 영화, 바다, 야구와 몽상을 좋아하는 보통의 은밀한 사람.
저녁이면 동네 가게에서 음악을 듣고 글을 쓰며 혼자 노는 것에 능통한 사람.
조금 더 고백하자면 별로 달콤하지도, 기력이 넘치지도, 부지런하지도 못하지만 고집스럽고 사소한 것에는 많은 생각을 소모하면서도 큰일에는 주저 없는 사람.
낯을 가리지만 착한 이에게는 한없이 약한 사람.
어쩌면 타인에게 호불호가 강한 사람.
노년에는 텃밭을 가꾸고 눈을 뜨자마자 아리아를 들으며 하루를 시작하고 저녁이면 아주 맛있는 맥주를 마시며 노을을 보고 곱고 현명하게 늙어지고 싶은 사람.
더 고백하자면 세상에 아주 작은 빛이라도 되고픈 소망을 아직 버리지 못한 사람.
명지대학교 영미문예과를 졸업했으며 현재 소설 작업과 작사 공부를 하고 있다.
거리에서 만나는 떠돌이 개와 길고양이들을 지나치지 못하고 돌보며 치료해 주는 동물 애호가이기도 하다.
목차
- 프롤로그 인간이 인간을 구원할 수 있을까
1. 안개
2. 열 살의 여름
3. 최고의 예술
4. 타인들이 원하는 실패
5. 창(窓)
에필로그 소망이 가진 성분
추천의 글
천천히, 차근차근, 꼭 읽어 내고 싶은 소설을 만나다 - 양재선(작사가)
찬란한 사물들의 세계 - 이수연(연극 연출가)
추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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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웠다 차가웠다를 수만 번 반복하며 켜켜이 쌓인 마음들이 섬세한 문장으로 정제되어 가슴에 차오른다. 차가운 물은 몸이 뜨거울 때 마셔야 제맛이듯, 마음을 달궈 놓고 읽고 싶은 책이다. 읽은 적 있는 시집을 곁에 두고 또 펼쳐 보듯, 난 이 소설의 접어놓은 책장을 펼쳐 두고두고 읽으며 위로받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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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현 작가가 《커피 먹는 염소》를 통해 풀어 나가는 의식의 흐름과 심리적 디테일에 놀라움을 숨길 수 없었다. 외롭고 적막하지만 온전하고 완전한 자기만의 고독에서 비춰지는 당돌함, 미세한 바람에도 금방 소멸할 듯 한없이 가볍고 여리게 흔들리다가도 무엇보다도 강한 자신만의 철학을 내어놓음에 난 미소를 짓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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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에는 속임수가 없다고 믿는다. 어디까지나 쓰는 사람의 조각이고 쓰는 사람의 부스러기. 읽는 내내 진주현 작가의 글은 섬세하고 사려 깊다는 생각을 했다. 반짝이는 상상들은 재미있었고, 펼쳐지는 이야기들은 풍성했다. 생각해 보니 진주현 작가도 그런 사람인 것 같아 기분이 좋아졌다. 섬세하고 사려 깊은 사람. 그러면서도 재미있고 풍성한 사람. 그런 사람을 알게 된 것도, 그런 글을 읽게 된 것도 행복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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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우리 언어권에 살아가는 젊은 여성들이 겪는 가슴속 세계를 솔직히 드러낸 글이다. 동시대 우리나라 여성들은 섬세한 사건들을 시간을 두고 철학한다. 그리고 그것을 충분히 표현하지 못한 채 가슴에 묻어 둔다. 마이크로 세상의 세심한 감각이 상처를 스쳐 지나갈 때 우리는 작가의 말대로 ‘매일매일 배어 내야 하는 목재가 빼곡한 숲’의 총체가 된다. 정말이지 여성의 마음을 이토록 낱낱이 드러내 준 작가는 이제껏 없었던 것 같다.
책 속으로
나는 처음으로 고개를 마주해 염소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염소는 내 손을 잡아 내리며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침묵을 지켜, 아직은 때가 아니야. 염소의 눈동자는 갈색의 눈동자를 가진 다른 염소들과는 달리 밝은 에메랄드빛이었다. 옆구리엔 낡은 바이올린을 끼고 있었다. 염소의 커다란 동공만은 내가 알던 누군가의 것이었지만 기억이 나지 않는다. _ p. 22
슬픔은 딸꾹질 같은 것이다. 갑자기 찾아와 잊고 있었다는 듯이 시간을 또박또박 정확하게 나눈다. 시간이 초 단위로 나뉘면 하루는 더 이상 24시간이 아니다. 240시간도 아니다. 1초속으로 무수한 선들이 그어지면 계산기 따위를 잡을 힘도 없다. 늘어나기만 하는 곱셈은 한번 시작되면 멈추지를 않고 스타카토처럼 튕기며 더 많은 선들을 만들어 낸다. 아무리 물을 마셔도 소용없다. 창밖을 보고 달력을 보고 설탕이 줄어 가는 것을 본다. 내 몸은 조금씩 말라 가고 내 입 속은 점점 더 살쪄 갔다. _ p. 36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어디선가 안개가 시작되어 이곳으로 오고 있다는 것을. 정확히 말하자면 나에게로 오고 있다는 것을. 나를 찾고 있다는 것을. 예기치 못한 오늘의 잠은 안개의 강력한 전조였다. 안개는 오늘을 기다렸다. 안개는 안다. 안개는 알고 있다. 오늘 밤 이 집에는, 아니 내게는 와플도, 초콜릿도, 그리고 남편도 없다는 것을. _ p. 43
엄마의 부재는 이상하고 생경한 느낌으로 둘러싸인 숲 같았다. 엄마가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게 될 때까지 매일매일 베어 내야 하는 목재가 빼곡한 숲 속에서 나는 한 그루의 나무도 베어 내지 못하고 나무둥치에 몸을 기댄 채 그저 멍하니 서 있었다. 그건 처음 사탕을 삼켜서 놀랐던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나는 생에서 두 번째로 긴 시간과 고독에 지독한 그리움까지 더해져 어쩔 줄을 몰랐다. 엄마가 돌아올 수만 있다면 나는 더 커다란 사탕이라도 몇 번이고 다시 삼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_ p. 57
‘커피 먹는 염소’ 간판에는 나무토막 위에 나란히 기대어 원두 알을 먹는 엄마와 아기 염소가 그려져 있다. 나는 두 마리의 커다란 물고기와 그 사이에 있는 작은 물고기를 올려다보고 가게 문을 밀었다. 귓가에 솔, 톤의 청아하고 맑은 풍경 소리가 울렸다. _ p. 68
중국 사람들은 고양이의 눈 속에서 시간을 읽는다고 한다. 영원은 순간을 선형적으로 이어 놓은 게 아니라 순간 속에서 영원을 보는 것이다. 한번 사로잡혀 버린 시간은 영원이다. 나는 이 소소한 나날들 속에서 처음으로 영원을 곁눈질했다.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나는 이것으로 충분하고 충분하다. _ pp.105~106
하지만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건 아무도 몰랐던 지독히 고요하며 우울한 〈글루미 선데이〉였다. 그 음악이 시작되는 것과 동시에 경기장은 아무도 몰래 비상구까지 다 닫혀 버렸다. 하나의 연주 위에 계속 겹쳐 대던 음악들은 이제 사라지고 선수도, 관중도, 아니 이곳에 있는 모든 이들은 같은 운명에 처하게 되었다. 라커룸으로 들어가다 다시 나와 버린 선수들도, 승리투수도, 패전투수도, 타자도, 포수도, 감독도, 구단주도, 여러 명의 해설자도, 카메라맨도 모두 그 음악에 기분이 묘해진다. 야구란 신사적인 게임이 아니라는 생각에 잠겨 든다. 그 슬픔이 번지자 경기장의 전광판이 부식되고 영구결번이 새겨진 여러 개의 명예의 깃발이 찢어지고 무수한 좌석 의자들은 스스로 부서져 내려앉았다. _ p. 132
나는 냄새를 맡는다. 흙의 냄새를, 비릿한 피의 냄새를, 봄이 살결에서 나던 어린아이 특유의 냄새를, 바우의 촉촉하고 까만 코에서 나던 사랑스러운 숨의 향을, 엄마의 마지막 봄에 만개했던 아카시아 꽃의 향을, 비에 놀란 가여운 염소들이 내뱉던 호흡 속의 솔직한 두려움의 공기를, 바이올린 염소의 손등에 뭉쳐 있던 먼지 냄새를. 나는 느낀다. 작은 손으로 하나의 민트 잎을 따던 그 싱그러운 탄력을, 내 등을 찌르는 뾰족한 자갈의 불편하지만 이상하게 시원한 감촉을, 온도계를 건네며 내 손에 잠시 닿았던 바이올린 염소의 의외로 부드러웠던 털을, 거름망 위에 옮기며 부서지던 말린 팬지 잎의 나비 같은 가벼운 무게를. 나는 상상한다. 한 번도 만져 보지 못했던 고양이 몸 위의 줄무늬 결을 따라 움직이는 내 손가락을, 맨발에 닿았던 지붕 위의 뜨거운 열기를, 내 속에서 망가져 영원히 나와 분리되던 하나의 신장과의 갑작스런 작별을. 그리고 생각한다. 모두 다르지만 어쩐지 한결같았던 것들의 이상하고 끈끈하고 다정한 그 연결을. _ pp. 184~185
내가 포기하고 발걸음을 옮기려는 순간, 돌로 만들어진 동굴 속에서 염소 한 마리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그리고 내 앞으로 곧장 걸어왔다. 가까이서 본 그 염소의 눈동자는 에메랄드빛이었다. 꿈속에서 늘 내 옆자리에 앉아 있었던, 빗소리에도 놀라지
출판사 서평
노랫말의 연금술사 양재선, 아티스트 김바다ㆍ심현보가 극찬한
신예 작가 진주현의 놀라운 데뷔작!
“여성의 마음을 이토록 낱낱이 드러내 준 작가는 이제껏 없었다.”-이수연(연극 연출가)
“켜켜이 쌓인 마음들이 섬세한 문장으로 정제되어 가슴에 차오른다. 두고두고 읽으며 위로받을 것 같은 소설.”-양재선(작사가)
“작가가 풀어 나가는 의식의 흐름과 심리적 디테일에 놀라움을 숨길 수 없었다.”-김바다(록 뮤지션)
“반짝이는 상상들은 재미있고, 펼쳐지는 이야기들은 풍성하다.”-심현보(싱어송라이터)
“인간이 인간을 구원할 수 있을까?”
어느 고요하고 한적한 소도시. 이곳에는 작은 카페와 헌책방과 공방들이 모여 있는 ‘상인의 골목’이 있고, 저마다 독특한 개성을 품은 가게들은 약속이나 한 듯 입구에 물고기 풍경(風磬)을 걸어 놓았다. 《커피 먹는 염소》는 바로 이 골목에 자리한 동명(同名)의 카페에서 만난 사람들이 서로에게 묵은 먼지처럼 달라붙어 있는 상처를 발견하고, 어느새 서로의 생에 깊이 스며들고, 지독한 우연과 불행이 그들을 한꺼번에 나락으로 데려가기 직전, 마침내 서로를 버팀목 삼아 치유에 이르는 이야기다.
소설 속 인물들은 저마다 결핍, 혹은 상실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이들은 모두 자신의 존재 자체가 곧 누군가의 부재, 혹은 소멸에 대한 증거라는 죄책감에 괴로워하지만, 끝끝내 지워 낼 수 없는 상실의 고통 속에서도 자신보다 더 약한 존재를 ‘딛고’(현실세계의 게임의 법칙처럼 약자를 ‘밟고’서가 아니라), 그 존재를 한껏 보듬음으로써 구원에 이른다.
작가 진주현은 다른 이들의 상처에, 트라우마에 점점 더 무뎌지다 못해 냉담해지는 세상 속에서 소멸 위기에 처한 종(種)을 연상케 한다. 자신이 다칠지, 혹은 죽을지조차 알 수 없는데도 빛을 향해 대책 없이 달려드는 주광성(走光性) 생물처럼, 두려움보다는 다가가지 않고 바라만 보는 것이 더 견딜 수 없어서 마침내 그 빛 가장자리에라도 기어이 제 날개를 태우고야 마는 부나방처럼, 작가는 상처 입은 사람들에게, 그 상처에서 배어나는 슬픔에, 깊은 우물 같은 절망에 거의 본능적으로라고 할 만큼 예민하게 반응한다.
“여성의 마음을 이토록 낱낱이 드러내 준 작가는 이제껏 없었다.”
첫 장편소설을 내놓은 작가라고 믿을 수 없을 만큼, 진주현의 문장들은 “빼어난 색조를 지닌 뱀이 천천히 감아 도는 듯 유려하고 찬란하”며, 이내 가슴을 “조여 오고 자아내고 슬픔을 실어 나른다.” 그리고 “뜨거웠다 차가웠다를 수만 번 반복하며 켜켜이 쌓인 마음들이 섬세한 문장으로 정제되어 가슴에 차”올라서 “마치 유리 공예가처럼 이 문장들을 늘이고 줄이고 구부려 모양을 만들며 공을 들여 다듬었을 그 시간들이 참 고맙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또한 독자들은 이 책을 읽는 내내 안개, 비, 유리창, 온도계, 염소, 사탕, 물고기, 고양이……처럼 익숙하고도 평범한 사물들이나 현상이 소설 속에서 얼마나 중층적으로 묘사되고 반짝이는 상징을 획득하는가를 확인하게 될 것이다. 소설의 앞부분에서 주인공의 조각난 기억 속에 잠복해 있던 정체불명의 사물과 현상들은 그 의미를 드러내려는 순간, 저항할 틈도 없이 기습적으로 덮쳐 오는 잠과 함께 다시 기억 밑바닥으로 가라앉는다. 그러나 무의식적으로 복원도 해석도 원치 않았던 그 기억들은 그리움의 깊이가 고통의 무게를 이겨 내는 순간, 마침내 “눈물로, 달리기로, 안개로 녹아내”리며 가슴 저릿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무엇보다 주목할 점은 작가가 이 책을 통해 풀어 나가는 의식의 흐름과 심리적 디테일이 “우리 언어권에 살아가는 젊은 여성들이 겪는 가슴속 세계를 솔직히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다. “동시대 우리나라 여성들은 섬세한 사건들을 시간을 두고 철학”하며, “그것을 충분히 표현하지 못한 채 가슴에 묻어”두곤 한다. 그리하여 “마이크로 세상의 세심한 감각이 상처를 스쳐 지나갈 때 우리는 작가의 말대로 ‘매일매일 배어 내야 하는 목재가 빼곡한 숲’의 총체가 된다.” 이 책을 읽은 여성 독자들이라면 “정말이지 여성의 마음을 이토록 낱낱이 드러내 준 작가는 이제껏 없었다”라는 평가에 기꺼이 동의하게 될 것이다.
생의 온기가 필요한 당신이라면,
‘커피 먹는 염소’ 가게로 들어오길.
우리가 점점 다른 이들의 상처에 둔감해지는 것은 어쩌면 셀 수 없이 많은 그 상처를 일일이 보듬을 수 없을 바에야 차라리 눈을 감는 쪽을 선택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러다 점점 자신이나 타인의 고통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이 불편해지고, 시간이 흘러도 휘발되지 않는 절대적인 “슬픔의 노예가 된 자”들을 “슬픔을 무기로 삼은 자로 오해”하기에 이른다.
이 소설 속에도 “사람들은 결국 다 비슷한 거예요. 비슷한 아픔, 비슷한 감정, 비슷한 경험과 반응. 그러니 당신이 기억을 잃었다고 해서 특별한 사람은 아니라는 거지요.”라거나 “구원은 생각보다 쉬워요. 마음먹기 나름이죠.”라고 말하는, 소위 ‘전문가’들이 등장한다. 그러나 주인공 유리는 타인에 대한 진정한 이해 없이 내뱉어지는 그런 말들에 상처받지도, 휘둘리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제 상처를 훈장처럼 드러내 보이지도, 무기처럼 휘두르는 법도 없이, 마치 좀비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무표정의 가면을 쓴 생존자처럼 최대한 평범함 속에 자신을 숨기고 살아간다.
어린 시절, 엄마의 갑작스런 죽음이 자기 탓이라며 수군대는 어른들의 이야기를 들은 후 자기 이름의 무게에 매몰된 유리, 자신의 실수로 누나를 잃고 어린 조카 봄이와 살아가는 영재, 어른들의 부재 속에 빛나는 영혼 봄이, 아내를 잃고 혼자 아들을 키우며 더치커피가 떨어지는 속도만큼이나 느리게 흘러가는 시간을 견뎌 내고 있는 염소아저씨, 심지어 유기견 바우까지…… 소설 속에 등장하는 존재들은 거의 예외 없이 가족의 상실을 경험한 이들이다. 그러나 자신의 슬픔만 돌보는 대신 이들은 마치 서정주의 〈자화상〉처럼 서로의 눈에서 죄인을 읽어 내고, 서로를 보듬기 시작한다. 유리는 같은 아픔을 지닌 어린 봄이를 만나 자신의 엄마라면 기꺼이 했을, 혹은 절대로 하지 않았을 일들을 헤아리며 따뜻하게 품어 주고, 열 살에 갇혀 있던 자기 자신을 성장시킨다. 그리고 너무나 다행스럽게도, 이 한없이 여리고 부서지기 쉬운 존재들 곁에는 “우주의 빛 쪽에 속한 인물”들이 있다. 유리의 오랜 친구인 민주와 남편, 그리고 ‘커피 먹는 염소’의 주인인 염소아저씨가 바로 그들이다.
쉽게 뜨거워졌다가 쉽게 식어 버리고, 이내 눈을 감거나 졸음에 빠져드는 염소 무리들 속에도 미온을 유지하며 더는 아무도 다치지 않도록 분투하는, 야경꾼 같은 염소들이 우리 주위에는 있다. 작가도 기꺼이 독자들에게 그런 염소가 되어 주겠다고 말한다. 그리고 작가는 소망한다. 생의 창밖으로 때로는 정체 모를 안개가, 때로는 거센 소나기가 찾아오더라도 자기 고통과 두려움만 보고 벌벌 떠는 염소 무리는 되지 않기를. 날마다 유리창을 반짝반짝 닦으며 자신의 상처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의 슬픔까지도 훤히 비출 수 있기를. 그리하여 최초로 빨간 커피 열매를 먹고 낯선 불면의 밤을 보내야 했을 에티오피아의 염소처럼, 오 분마다 숨을 쉬러 물 위로 올라와야 하는 듀공처럼, 우리도 늘 깨어 있는 고통을 감내하며 누군가에게 따뜻한 ‘커피 먹는 염소’가 되어줄 수 있기를.
기본정보
ISBN | 9788998965112 |
---|---|
발행(출시)일자 | 2016년 08월 30일 |
쪽수 | 232쪽 |
크기 |
142 * 201
* 16
mm
/ 355 g
|
총권수 | 1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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