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의 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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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정보
작가의 말
"「모두의 내력」은 작품집에 수록된 소설 제목이면서도, 이번 소설집을 관통하는 주제라고 생각합니다. 내력이란 단어에는 ‘역사’가 주는 무거움과는 다른, 개인의 사소하고도 은밀한 삶이 들어있는 것 같아요. 기존의 ‘역사’가 승자의 기록, 남성의 일대기, 왕을 비롯한 기득권자들의 이야기라면 문학, 그 중 소설은 패자와 여성, 아이, 장애인, 기득권이 되진 못했지만 기득권자보다 더 많았던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힘이 있는 것 같습니다. 역사에 기록되지 못했지만, 한 시대를 살아냈던 사람들에 대해서 말이죠. 제가 생각하는 소설이 바로 이것이에요. 거대서사에서 말하지 않는, 말할 수 없었던, 말하지 않으려고 했던 사람들에 대해서 말하는 것 말이죠. 그런 의미에서 ‘모두의 내력’은 소설집 전체 제목으로도 어울린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 모두, 각자의 내력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소설 속 인물들 뿐 아니라, 소설을 읽고 있는 독자들, 그리고 소설을 쓰고 있는 저도 말이죠.
음… 하지만 그 내력을 다 아는 사람이 있을까요? 모든 것을 다 안다는 말이 성립될 수 있을까요? 발굴현장에서 나온 유물에 대해 우린 이런저런 추정과 판단을 하지만, 그것을 사용한 이들은 이미 지금 여기에 없는 인물이잖아요. 우린 사물을 가지고, 그것의 쓰임과 역할에 대해 추정할 뿐이죠. 우리 삶도 그런 것 같아요. 지금-현재를 열심히 살고 있지만, 지금, 이 시점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모를 때가 많죠.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에, 과거를 회상하면서 그 일이 이런 뜻이었구나, 라고 알게 되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혹은 영원히 모르고 지나가는 경우도 많구요.
그래서 삶은 더 미지의 대상 같아요. 알 듯 하면서도 모르는 게 더 많으니까요. 하지만 모른다고 내버려둘 순 없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물이나 사람, 어떤 대상에 대해서도요, 알지 못하지만 알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 안다고 함부로 단정하지 않으면서 귀 기울이는 것. 그 과정에서 상대에 대한 애도와 사랑, 그리고 삶에 대한 희미한 희망 같은 것이 생기지 않을까요? 이게 제가 지금 생각할 수 있는 위로와 애도의 방법인 듯해요.“ - 소설가와의 만남, 261-263p
목차
- 해바라기 벽
로드킬
모두의 내력
칼
백과사전 만들기
밤의 행진
부고들
상자
소설가와 만나는 시간
작가의 말
추천사
-
"첫 소설집은 길 찾기다. 그동안 발표한 작품들을 한 자리에 불러놓고 보면 서로 다르면서도 닮아있다. 인물들의 고민과 생각, 장소와 사건과의 관계 짓기, 소재에 대한 작가의 해석 등이 조감된다. 등단작을 그런 징후의 발원으로 보는 게 문학 동네의 오래된 진맥법인데 나로선 「해바라기 벽」을 처음 읽었을 때의 강렬했던 인상이 생생하다. 도시재생을 둘러싸고 일어날 수 있는 여러 가지 문제점을 시의 적절하게 포착하고 시비해 나가는 솜씨도 공고하지만 주인공 여고생이 보여주는 격렬한 대응이 서늘하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소녀는 자라서 벽화동네를 떠났지만 여전히 불안정한 도시 빈민으로 살아간다. 그런 인물 중에서 우리가 매일 이용하는 택배제도의 숨은 의미를 비극적으로 파고 든 「상자」는 단연 문제적이다. 군인 아버지와 그 딸의 이야기를 계급과 자존심으로 돌기한 「백과사전 만들기」와 어른들의 욕망을 그린 「부고들」은 작가가 나아갈 길의 초입으로도 보인다. 가야할 길이 어딘지를 알고 다들 떠나지만 되돌아보고 둘러보면서 갈 일이다. 좋은 작가로 남기 바란다." -
"오선영의 소설은 한국사회의 중심문제, 곧 과잉과 결핍 사이의 심연이 고통과 좌절의 근원임을 생생하고 유니크한 방식으로 담아낸다. 승자가 독식하는 제로섬사회에서 가진 자와 못가진 자 사이의 구렁을 메울 길이 없고, 약자와 여성의 몸을 강자의 전리품으로 삼는 세계에 정의가 있을 수 없다는 것. 시선의 피사체로 전락한 작중인물들은 도달하지 못한 세계에 대해 부러움을 드러내지만, 석기로 철기와 맞장 뜰 수 없듯이 그들의 남루한 꿈은 박탈로 인한 반사행동일 것이다. 아버지의 백과전서가 더 이상 타락한 제도와 편견에 맞선 싸움의 도구일 수 없는 것처럼, 부재하는 아버지 또한 악몽 같은 삶에 가위눌린 자라는 것.
작중인물에게 남아 있는 미지의 영역이 협착한 것은 기회도 결과도 평등하지 못한 현실을 작가의 투명한 의식이 정조준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을 새롭게 발견하는 데 그런 의식의 무장이 중대한 참조점이 된다는 의미에서, 오선영의 소설에 거는 우리의 기대는 크다.
책 속으로
카메라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 것은 그때부터였다. 유명 블로그에 오른 벽화 그림은 사진 찍기 좋아하는 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검은색 도둑고양이와 노란머리의 어린왕자를 같은 앵글에 담을 수 있는 장소를 그들이 놓칠 리 없었다. 사람들이 인터넷에 올린 사진 속에는 구역질나는 공중화장실이 없었다. - [해바라기 벽], 14p
우리 집 벽과 담에 노란 해바라기가 수십 송이 피었다. 해바라기가 이글이글 뿜어내는 열기에 집안은 한증막처럼 뜨거워지는 것 같았다. 할머니와 나는 해바라기 씨앗처럼 작고 까맣게 익어갔다. 우리는 해바라기 감옥에 갇혀 버렸다. - [해바라기 벽], 22p
내 얼굴은 도굴꾼에게 금궤를 도난당한 인디아나 존스 같았다. 뭐라고 말해야 되나. 인디아나 존스와 라라크로프트는 내 영웅이자 롤 모델인데. 면접관은 그들을 한갓 유물파괴범, 죽은 사람의 물건이나 훔치는 잡도둑으로 치부하고 있었다. - [모두의 내력], 74p
김일성과 생일이 같은 아이는 나였다. 도시 아이들은 몰라도 강원도 최전방에 살았던 우리는 알았다. 우리는 도덕시간에도 반공교육을 받았다. 도시 아이들이 ‘후레시맨’과 ‘베르사유의 장미’를 볼 때, 우리는 정훈장교 아저씨가 틀어주는 ‘빨간 마후라’와 ‘돌아오지 않는 해병’을 봤다. - [백과사전 만들기], 138p
이름부터 집이 아니라고 말하는 ‘원룸’ 조차도 이전의 웬만한 ‘집’값을 넘을 정도로 비쌌다. 여자는 자신이 이 사회를 위협할 치명적인 바이러스나 병균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어느 누구도 저를 집 안에, 방 안에 들이는 것을 꺼려했다. - [밤의 행진], 163p
나를 괴롭히는 건 엄마가 아파트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도, 내가 그 아파트의 주인이 아니라는 것도 아니었다. 엄마가 돈을 모으는 동안, 나는 왜 돈을 모으지 못했는가였다. 나는 엄마보다 젊은 데, 공부도 더 많이 했는데, 더 건강한데. 나는 지금 왜 이렇게 살고 있는 거지. - [부고들], 199-200p
아기는 너무 작고 연약해서 조금의 힘만 줘도 바스러져 버릴 것 같았다. 내게 모든 것을 의탁하고, 의지하고 있는 저 힘없고 가여운 존재,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숨 쉬는 것뿐인, 본능 밖에 없는 미숙한 생명체, 아직 탯줄도 채 마르지 않은, 작디작은 인간. - [상자], 234p
출판사 서평
ㆍ 위장된 삶의 허위의식 비판과 부유하는 삶에 대한 응시
자기 자신의 이름(“명함”)을 잃어버린 채 길에서 비명횡사(“로드킬”)할 운명에 놓여 있는 K(로드킬), 아버지의 외도와 부재를 이해하는 엄마를 납득하기 어려운 ‘나’(모두의 내력), 인간 폭력의 근원과 파국적 미래를 예언하는 소녀(칼), 자기 자신에게 부여된 확고한 계급적 차이를 넘어설 수 있는 만능 백과전서를 상실한 아버지(백과사전 만들기), 빈곤한 신혼생활을 시작하기 위해 대출을 내어 작은 방을 구하러 다니는 젊은 남녀(밤의 행진), 어머니의 죽음 앞에서도 전세금을 걱정해야 하는 ‘나’(부고들), 잘못 배송된 것과 같이 세상에 던져진 ‘나’와 ‘아이’(상자)는 모두 이런 부유하는 삶들에 대한 작가적 응시이다.
해바라기 벽를 비롯한 8편의 작품들이 보여주고 있는 서사적 알레고리와 현실 인식의 근간에는 안정적인 정주 공간을 확보하지 못한 채 살아갈 수밖에 없는 현대인의 결핍과 욕망이 투영되어 있다.
ㆍ 불확실성의 시대, 자기 자신과 타인의 삶을 이해하기 위한 질문과 기다림
오선영 작가는 ”너무 쉽게 화해하는 것도 위로하는 것도 문제적“ 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녀는 “그저 거기 둔다. 한 인물이 지나치는 그때의 그 시간을 담담히 기록할 뿐이다. 감정을 전달하거나 결정을 내리는 순간이 왔을 때도 최대한의 거리”를 두고 있다. “억지로 정답을 찾으려고 한다면 오해와 왜곡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말하지 않은 것들을 추측하지 말 것. 그 어떤 것에도 정답은 없다”는 마음으로, “잘 살펴보고, 잘 들어볼 줄 아는 기다림”을 강조하고 있다. 소설가 오선영은 역사나 이데올로기 같은 거대 담론보다는, “‘나’의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 알고 싶지 않았던 일들과 대면하는 일”을 더욱 강조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이 인간의 삶과 세계에 대한 올바른 “의문들을 가질 수 있게 만드는 힘”이자, “나와 그, 우리의 세계를 알아가는 첫 단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두의 내력』은 자기 자신과 타인의 삶을 이해하기 위한 질문인 동시에 기다림이라 하겠다.
- 김필남, 소설가와 만나는 시간 (260-263p)
ㆍ ‘소설의 바다’를 항해하는 호밀밭 소설선, 각기 다른 ‘사연의 고고학’을 꿈꾸며
오선영 작가의 『모두의 내력』은 소설의 바다로 향하는 호밀밭출판사의 두 번째 소설선이다. 호밀밭 소설선 ’소설의 바다’는 한국 소설의 사회적 상상력을 탐구한다. 또한 문학과 예술의 미적 형식을 타고 넘으며, 우리가 잃어버린 삶의 흔적을 새롭게 탐사하는 서사적 항해를 꿈꾼다. 때로는 넘어지고, 때로는 아파하고, 때로는 분노하고, 또 때로는 서로를 보듬으며, 난파한 세상 속으로 함께 나아가는 문학적 모험을 지향하는 것이다.
그러나 호밀밭의 소설은 미지의 세계를 발명하는 낯선 이야기의 조타수가 되기보다는, 우리가 상실한 생의 가치와 존재 방식을 집요하게 되물으며, 동시에 우리 삶에 필요한 따뜻한 자원을 발굴하는 ‘사연의 고고학자’가 되고자 한다. 소설이라는 사회적 의사소통 방식은 분명 오래된 것이지만, 그 속에는 우리 삶과 공동체의 가치를 새롭게 정초할 수 있는 ‘여전한 힘’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이것이 바로 지금, 우리가 ‘소설의 바다’로 나아가려는 이유이다.
- 호밀밭 문학편집부
기본정보
ISBN | 9788998937638 | ||
---|---|---|---|
발행(출시)일자 | 2017년 12월 20일 | ||
쪽수 | 276쪽 | ||
크기 |
134 * 209
* 28
mm
/ 379 g
|
||
총권수 | 1권 | ||
시리즈명 |
호밀밭 소설선
|
Kl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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