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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민은 어떻게 사람들의 이목을 끌게 되었을까. 그가 무슨 이벤트를 벌이거나 퍼포먼스를 한 적은 없다. 그의 자연스러운 행적이 주목을 받았을 뿐이다. 인권변호사, 거리의 변호사, 세월호 변호사로서의 그의 이력이 알려지고, 문재인에게 영입되었지만 우여곡절 끝에 마지막 날 공천을 받고 세월호 유가족 등의 자원봉사로 국회의원에 당선된 뒤 본회의 출석 100%, 1주일에 한 건씩 법안 발의, 시위현장에 빠짐없이 참석하는 그의 광폭행보가 국민들 눈에 띈 것뿐이다.
작가정보
저자 박주민은 1973년 서울에서 태어나 대원외국어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했다. 공군 학사장교로 군 복무를 마치고 2003년 45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변호사가 되었다. 법무법인 한결, 이공 등에서 변호사로 일하면서 공익활동에 주력했고, 2012년에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사무처장을 맡았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2014년 세월호 유가족 법률대리인으로 활동했다. 참여연대 부집행위원장을 지냈고, 2016년 20대 국회의원(은평구갑/더불어민주당)에 당선돼 활발한 의정활동을 펼치고 있다.
엮음 이일규
엮은이 이일규는 대학과 대학원에서 법학과 미디어를 공부했다. 하와이 원주민운동 지도자인 하우나니-카이 트라스크의 《하와이 원주민의 딸》(2017), 아이티공화국 대통령이었던 장 베르트랑 아리스티드 신부의 《가난한 휴머니즘》(2007)을 우리말로 옮겼다. 1998년부터 출판편집자와 기획자로 일하고 있다.
이 책은 이일규가 의원회관과 지역구 사무실에서 인터뷰하고 전화 및 이메일 등을 통해 보충 질의하여 정리했다.
목차
- -머리말을 대신한 프롤로그
열심히 살면 부끄러움은 과거가 됩니다
Ⅰ. 운동
1. 소년과 공부
2. 운동권 법대생
Ⅱ. 변호
3. 거리의 변호사
4. 세월호 변호사
5. 세월호와 우리
Ⅲ. 촛불
6. 정치는 약자의 눈물을 닦아주는 것
7. 헌법은 나의 힘
8. 법과 사람
Ⅳ. 사람
9. 성실한 ‘거지갑’
10. 현실과 이상
11. 새로운 여정
12. 사람과 사랑
-엮은이 후기
우리 곁에 별종이 왔다
추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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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 기백과 선한 용맹을 갖춘 나무늘보. 이 불가사의한 조합을 실증하는 희한한 영장류, 박주민!
-
박주민과 방황과 모색의 대학시절을 같이 보낸 후, 그는 사시를 보고 나는 유학을 떠나면서 조금씩 길이 달라졌다. 무엇보다도 내가 나만을 바라보고 있는 동안, 그는 세월호와 함께 했다. 박주민은 미래를 위해 고민하는 젊은이에게 책이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고 했지만, 난 이 책을 통해 그와 동시대를 살아온 우리들이 오래된 기억의 조각을 다시 맞췄으면 좋겠다. 앞으로도 별종으로 살아갈 그의 짐을 조금씩 나눌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
박주민을 거리에서, 집회에서, 새벽 유치장에서 오랫동안 스치고 마주쳤다. 그러다 피고인과 변호인으로 만나 가까워졌다. ‘치열하게 이상을 향해, 편파적으로 약자를 위해.’ 이 점에 대해서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하지만 박주민은 나를 반성하게 만든 첫 번째 인물이었다. 좀 더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자세히 보아야 미남이다. 오래 보아야 머리숱도 많다. 박주민은 그렇다.
책 속으로
그날이 성탄절 전야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너무 슬펐죠. 문전박대를 당하고 철거민들과 같이 돌아가는데 내가 그분들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데 처절한 무력감을 느꼈어요. 그때 처음 ‘내가 변호사였다면?’이라는 상상을 해봤어요. 그랬다면 적어도 이렇게 그냥 되돌아가지는 않았을 거라고, 구청장이 거부하지 못할 최소한의 주선이나 조력이 가능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기왕 사회운동을 계속할 거라면, 변호사가 되어 어려운 사람들에게 힘이 되는 것도 괜찮은 선택이겠다는 확신 같은 걸 그날 가지게 되었죠. 그래서 학생운동을 잇는 마음으로, 군에서 전역하면 공부해서 변호사가 되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운동권 법대생
처음에는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막막해서 사무실 구석에서 한참을 가만히 서 있기만 했어요. 그러다가 회의하실 때 의자 가져다 놓고 음료수 깔고, 식사할 때 짜장면 놓고 다 드시면 치우기도 하고 그랬어요. 점차 저를 알아봐 주시는 분들이 많아지더군요. 초기에는 가족협의회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도왔어요. 정관 만들고 회의안건 잡고 회의 결과 정리하고, 유가족 입장 발표 때 의견 조율해서 발표문 정리하고 그런 일부터 시작했죠. 그러면서 특별법 협상 지원하고. 물론 그사이에 소소한 법률자문도 많았고요. 또 유가족과 시민운동 단체와의 연결고리나 통로 역할도 자연스럽게 맡았어요. 그 사이에서의 갈등도 중재하고요.
그렇게 제가 맡는 일이 점차 많아지니까 유가족 분들과 있는 시간도 많아지고, 그러다보니 변호사는 거의 저 혼자 남아 있더라고요. 한창 가까울 때는 저보고 가족이라 그러셨어요. 국회에 온 뒤로는 자주 못 뵙지만요. 그때는 다른 사람 말은 못 믿어도 ‘박변’ 말은 믿는다고 그러셨어요. 감사하게도 저를 많이 믿어주셨죠. -세월호 변호사
살아오면서 지금까지 쌓은 복을 선거에서 다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기존에 이 지역에서 정당 활동을 해왔던 당원들을 포함해서 좋은 분들을 너무 많이 만났어요. 누리꾼들의 전화도 많이 도움이 됐어요. 일본이나 미국에 사는 아들딸이 은평구에 사는 부모님들한테 전화했다고 해요. 박주민 찍으라고 말이죠. 이렇게 많은 사람들로부터 도움을 받은 만큼 이제는 제가 의정활동으로 돌려드릴 차례가 된 거죠. 세월호나 쌍용차에서 하던 일들을 계속할 거예요. 국회에서 그리고 당에서 외로워진다 하더라도 제가 할 일을 할 겁니다. -정치는 약자의 눈물을 닦아주는 것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헌법은 액세서리, 즉 장식에 불과한 것으로 치부됐어요. 법조인들도 큰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지나면서 시민들의 권리의식은 점차 높아졌는데 이명박 정부나 박근혜 정부 들어서 시민들은 오히려 자신의 정치적 권리가 정부에 의해 침해되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헌법을 찾게 되고 더 자세히 알고 싶어지게 되었어요. 국가가 권리를 침해하자 헌법에 의지해 자신의 권리를 보장받고자 했던 거죠.
광우병 촛불시위나 이번 박근혜 탄핵 정국에서도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 나온다”는 헌법 제1조를 시민들이 자꾸 내세웠잖아요.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대의기관인 국회에 국민주권의 원칙을 깨우쳐주려 했던 겁니다. 국민이 주인임을 보장한 문서를 들이미는 거죠. -헌법은 나의 힘
판사들이 안보위기론이나 경제위기론에 상당히 취약합니다. 그렇다고 판사들이 공부를 게을리 한다는 건 아니에요. 문제는 그 방식이죠. A라는 생각을 가지면 A라는 신념을 강화하고 뒷받침하는 공부만 해요. 일종의 확증 편향이죠.
다양하게 열려 있는 사실과 가능성에 대해 실사구시적인 접근을 안 한다는 게 문제입니다. 개방적이지 않고 폐쇄적이에요. 지식인이라면 자신의 신념도 객관화하고 검증받는 걸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고 보는데, 그렇지 않은 거죠.
일례로 대법원의 내란음모 사건 판결문을 보고 놀란 적이 있어요. ‘표현의 자유’의 가치에 대해 언급한 판결문 앞부분은 훌륭해요. 표현의 자유를 중시하는 1970년대 이후의 미국 연방대법원 판례 경향이나 분위기와 일치하죠. 그런데 뒷부분으로 가면서 갑자기 전쟁 중이라는 특수한 상황 탓에 매우 경직되어 있었던 제2차 세계대전 때나 1950년대 초반의 미국 판례 분위기로 돌아가는 거예요. 하나의 판결 안에 전혀 다른 두 개의 경향이 공존하고 있고 지금 현실의 분위기와는 전혀 다름에도 불구하고, 재판부는 거기에서 어떤 모순도 못 느끼는 거죠. 재판부가 열린 자세로 현실과 이론을 대하지 않고 기존의 관념대로 판단했다는 느낌이 강했습니다. -법과 사람
출판사 서평
참 별종이다. 가난한 집 꼬마 악동이 여자애에게 잘 보이고 싶어 책을 읽기 시작했고, 공부를 했다. 서울 변두리 초중학교 때 공부를 가장 잘했지만 덩치도 싸움도 지지 않아 ‘짱’을 먹었다. 중3이 되자 그는 쪼그라든 ‘범생이’가 됐고, 자신에게 쥐어터지던 아이들은 덩치가 산만해져 위협이 됐다. 그들을 피해 멀리 떨어진 대원외국어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첫 시험에 세 자리 등수를 받아든 그는 이를 악물었다. 거울 안 보기, 땅만 보고 걷기, 점심 혼자 먹기를 실천(?)하면서 깨알같이 적어가며 공부했다. 재수를 통해 서울대 법학과에 들어갔고 4년 내내 학생운동을 하고 공군 학사장교로 군복무를 마친 뒤 사법시험을 봐 변호사가 되었다. 사회운동, 공익활동을 수월하게 하기위해 변호사가 된 그는 거리로 나갔고 국가 권력에 시달리는 사람들, 약자들의 현장에 함께 했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자 안산으로 달려가 세월호 변호사가 되었다. 문재인의 영입제안을 받아들인 것은 세월호 진상규명을 위해서였다.
국회의원이 된 그의 생활이 달라진 것은 의정활동이 추가되어 더 바빠졌다는 것. 국회의원이 되자마자 ‘거지갑’이 되었고, 그는 ‘은평갑’으로 응수한다. 저자거리에 그에 대한 에피소드가 넘쳐나지만, 어떤 생각으로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그의 속을 깊게 들여다보았다. 미화나 과장 없이 육성으로 직접 들었다. 그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게 될지 모르는 터에 책을 내는 것이 두렵다고 했다. 이 책이,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이 앞으로 그의 삶에 감시자가 될 것이다. 그는 부끄러움을 과거로 만들기 위해 더 열심히 살겠다고 다짐했다. 우리는 10년 후 더 멋진 리더를 갖게 되기를 소망한다.
‘거지갑’이 왔다!
백팩을 멘 꾀죄죄한 행색이 거지 중의 상거지라는 의미로 그를 ‘거지갑’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생겼고, 그 별명은 삽시간에 인터넷을 달궜다. 물론 폄훼가 아니라 애정과 존경을 담은 애칭이었다. 그렇게 부르는 사람들의 마음을 모를 리 없는 박주민도 “거지갑이라네요. 은평갑인데.” 라고 즐겁게 응수했다. 거지라고 부르는 것에 약간 미안해진 사람들은 ‘성실갑’이라고 불렀고 그의 아내 강영구 변호사에게는 ‘미모갑’이라는 찬사를 바쳤다.
박주민은 어떻게 사람들의 이목을 끌게 되었을까. 그가 무슨 이벤트를 벌이거나 퍼포먼스를 한 적은 없다. 그의 자연스러운 행적이 주목을 받았을 뿐이다. 인권변호사, 거리의 변호사, 세월호 변호사로서의 그의 이력이 알려지고, 문재인에게 영입되었지만 우여곡절 끝에 마지막 날 공천을 받고 세월호 유가족 등의 자원봉사로 국회의원에 당선된 뒤 본회의 출석 100%, 1주일에 한 건씩 법안 발의, 시위현장에 빠짐없이 참석하는 그의 광폭행보가 국민들 눈에 띈 것뿐이다.
국민이 원하는 지도자
1960년 4월19일 학생들이 총궐기하여 정권을 들어냈다. 1987년 6월10일 대학생은 물론 넥타이부대로 불리는 국민들이 합세하여 개헌과 함께 독재정권 교체의 길을 열었다. 2016년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을 볼 수 없었던 국민들이 촛불로 궐기하여 기어코 대통령을 끌어내리고 새 정부를 세웠다. 국민들은 적폐청산과 개혁을 요구했고 촛불민심을 받아 안은 후보가 대통령이 되었다.
애초 국회의원에 뜻을 두지 않았던 박주민은 세월호 진상규명의 소명을 다하고자 영입을 받아들이고 국회의원이 되었다. 그는 대학생활 내내 학생운동을 하였고, 사법시험에 합격하고도 판검사는 아예 관심이 없었고 사회운동과 공익활동에 전념하고자 변호사가 되었다. 늘 거리에서 강정, 쌍용차 등 국가폭력의 희생자들, 사회적 불평등으로 신음하는 약자들 편에 서 있었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자 주저하지 않고 안산으로 달려가 세월호 유가족의 법률대리인이 되었다. 늘 약자들 편이었고 개혁의 선두에서 활동하였다. 야간집회 금지한 집시법 위헌, 경찰 차벽 위헌 등 위헌판결도 4건이나 받아냈다. 문재인의 밝은 눈에 영입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성실갑’ 박주민은 시대정신에 맞는 차세대의 유력한 지도자다.
응원과 감시의 대상
‘바보’ 노무현이 있었다. 안 될 줄 뻔히 알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덤벼든, 불의에 굴하지 않고 소신대로 자기 길을 가던 정치인이어서 그런 애칭이 붙었다. 조롱이 아니라 존경과 애정의 표현이다. ‘거지갑’도 그렇다. 행색은 꾀죄죄하고 아무데서나 잠들지만 다른 정치인보다 몇 배 더 일하는, 좌고우면하지 않고 묵묵히 자기 길을 가는 사람이어서 응원과 애정을 담은 애칭이다.
박주민이 공천되고 선거운동을 시작하자마자 그의 행보가 알려지기 시작했다. 인터넷에 그에 대한 끝도 없는 미담, 기행(?)이 떠돌았다. 처음으로 야당 단일화를 이뤄내고, 국회에 입성하면서 새벽에 출근하고 한밤중에 퇴근하는 그에게 응원이 쏟아졌다.
이제 꽃길만 걷게 된 걸까? 그러나 그는 국회의원이 되면서 거지 중의 상거지가 되고 말았다. 본회의 100% 출석, 법안 발의 압도적 1위는 그가 하는 일의 일부에 불과하다. 일정은 시간단위로 쪼개져있고 자동차는 사치라고 여기던 그가 자동차를 타고 이동해야 일정을 소화할 수 있게 됐다.
그는 책을 내자고 제안했을 때 나이도 어리고(45세) 겨우 초선이며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게 될지 모르는데 ‘나 이렇게 살아왔소’ 하는 것이 어떻게 비쳐질지 부담스럽다고 했다. 그러나 ‘왜 정치를 시작하게 되었는지 알려드리는 게’ 도리라고 여기고 책 출간을 결심했다. 그래서 이 책은 박주민 감시도구가 됐다. 지금까지 그가 살아온 이력을 보면 경이적이다. 앞으로는 과거보다 더 잘 살지 않으면 ‘박주민이 변했다’는 얘기를 듣게 될 것이다. 박주민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머리말에서 그는 “이 책을 통해 저 자신의 일부를 여러분에게 드러내 보인 것인데 부끄러운 모습이 많이 있는 듯 합니다. 부끄러움을 과거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살아야 할 것 같습니다.”라고 다짐하고 있다.
재선? 글쎄요.
21대 국회에도 진출할 생각이 있느냐고 물었다. 박주민은 손사래를 쳤다.
“(아이고) 너무 피곤합니다. 이제 초선 1년차인데 그런 말 꺼내는 게 시기상조이기도 하고요. 무엇보다 제가 잘할 수 있다는 판단이 먼저 서야 하는데,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어느 인터넷방송에서는 노무현, 문재인, 박원순, 이재명 안희정 등이 운동권이나 민변 소속이었다면서 대선에 나갈 생각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다며 펄쩍 뛰었다. 지금 그의 대답은 진심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가 대학시절부터 국회의원이 된 지금까지 공익활동에 주력해온 사실을 알고 있다. 판검사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공익활동을 더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 변호사가 되려고 사법시험을 치른 것도 알고 있다. 국회의원이 된 뒤의 열정적 활동은 매스컴과 인터넷을 통해 전국민에게 알려지고 있다. 그의 다음 행보가 기대되는 것은 그의 욕심이 아니라 지금까지의 행보 때문이다. “힘들어서 못 해먹겠다”는 소리는 하기 어려워진 것이다.
이 책의 목표는
미사여구로 포장한 홍보책자가 아니다. 정치인의 기준을 다시 생각해보자는 책이다. 자꾸 광장으로 나서야하는 국민의 피로감을 최소화하려면 국민의 대의를 받아 안은 성실하고 겸손하고 똑똑한 정치인을 키워야 한다.
박주민의 삶과 생각을 통해 우리는 정치인에 대한 기대치를 한층 놓일 수 있다. 다음 총선에서 어떤 후보를 내세워야 하는지, 누가 국민의 안전과 행복을 지켜줄 수 있는지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처칠은 “정치를 경멸하는 국민은 경멸 받을 수준의 정치 밖에는 소유하지 못한다”고 했다. 명말 청초 진보적 지식인이며 고증학에 일가를 이룬 고염무는 “한 나라의 흥망성쇠는 그 백성들 책임”이라고 했다. 우리는 피 한 방울 흘리지 않는 촛불혁명을 통해 국정농단 정부를 들어내고 소통과 통합을 앞세우는 새 정부를 세웠다. 이걸로 국민의 도리를 다 한 것이 아니다. 좋은 인재를 발굴하여 응원하고 감시하여 정치인의 자리가 권력이 아니라 봉사의 자리임을 명백하게 해야 한다.
박주민은 청년들에게 어떤 삶을 살 것인지 함께 생각해보자고 한다. “본인이 무엇을 진정으로 원하는지 알아보는 시간과 기회를 가져보고, 그렇게 알게 된 자신의 진정한 욕심을 위해 살아보라”고 권한다. 청년들이 지금 절박한 상황에 처했지만 고민하고 탐구하는 시간조차 갖지 못한다면 더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질 것이라고 우려한다. 그래서 이 책은 특히 청년들에게 권하는 책이다.
[추천사]
2014년 4월16일 나는 심장의 반쪽을 잃어버렸습니다. 작별인사도 못하고 떠나보낸 아들을 위해 세월호참사의 진상규명을 외치며 지금껏 거리에 서 있습니다. 그 거리에서 만난 가장 반가운 사람이 박주민 변호사입니다. 우리의 변호사에서 민주시민의 대표 정치인으로 성장해온 박주민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그가 천사가 된 우리 아이들이 보내준 참 고마운 선물이란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가 우리와 함께 만들어갈 안전한 미래를 기대합니다. 별이 된 우리 아이들도 힘찬 응원의 박수를 보낼 겁니다. 박주민 의원님! 당신을 만나게 되어 다행입니다.
장훈 _4.16세월호가족협의회 진상규명분과장
[책속으로 추가]
땀을 쏟아내며 인형 탈(도라에몽 마스크)을 쓰고 선거운동을 도와준 세월호 유가족 분들이 먼저 떠오르네요. 영석이 아빠와 경빈이 엄마는 유세 때마다 땀에 흠뻑 젖도록 안무를 하셨어요. 영석이 엄마는 새벽부터 선거사무실에 나와 청소하고 전화를 돌렸고요. 처음 선거 사무소 개소식에 오실 때 노란 팔찌나 리본 같은 것들 일부러 하나도 안 하고 오셨어요. 세월호 변호사라는 딱지 때문에 표 떨어질까 봐, 그런 데까지 마음을 써주신 거죠.
고인이 된 김관홍 잠수사는 선거운동 때 운전을 맡아주었습니다. 사실 둘이 동갑내기라 서로 잠수사님, 변호사님 하면서 많은 얘기를 나눴어요. 목소리 크게 내라, 고개 더 숙여 인사해라 하며 시어머니 같은 잔소리로 챙겨준 덕에 선거기간 내내 긴장을 늦출 수 없었죠. 그렇게 허망하게 가다니 지금도 믿어지지 않습니다.
그분들 덕에 기적이 만들어졌고 국회의원이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평생 잊을 수 없는 마음의 빚으로 남을 겁니다. -사람과 사랑
기본정보
ISBN | 9788997918225 |
---|---|
발행(출시)일자 | 2017년 06월 20일 |
쪽수 | 228쪽 |
크기 |
128 * 189
* 17
mm
/ 240 g
|
총권수 | 1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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