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 역사인식 무엇이 문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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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수많은 사실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우리는 거기에서 몇 가지 사실을 선택해서 인식하고 해석한다. 무라사키 시키부紫式部가 어떠한 시대 배경에서 《겐지모노가타리源氏物語》를 썼는가를 생각하는 것도 ‘역사인식’이며, 연전연승을 거뒀던 나폴레옹이 왜 러시아를 침공하여 제 스스로 무덤을 팠는가를 생각하는 것도 ‘역사인식’이다. 역사인식이란 어느 시대와도 관련이 있는 보통명사이며 일반 개념인 것이다.
1990년 이후 한국과 일본에서는 ‘역사인식’이 특정 역사와 관련이 있는 말로 사용되고 있다. 신문이나 텔레비전, 혹은 인터넷에서 ‘역사인식’이 문제가 될 경우 그것은 1931~45년 일본이 일으켰던 전쟁과 1910~45년 한국 식민지 지배와 관련된 문제일 경우가 많다. ‘위안부’ 문제, ‘난징 사건’, ‘야스쿠니 참배’ 등등.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일본 국내는 물론 한일, 중일 사이에 격렬한 대립이 존재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역사인식의 차이는 왜 생기는 것이며, 어떤 역사 속에서 발생했는가. 그리고 그러한 역사인식의 간극은 사라질 수 없는 것인가.
국제법 연구자로 1970년대부터 한일관계를 연구하고, 실천적인 활동을 해오고 있는 오누마 야스아키 교수는 신간《한중일 역사인식, 무엇이 문제인가》에서 도쿄재판, 전쟁책임과 전후책임, 난징사건, 사할린 잔류 한국인, ‘위안부’ 문제 등을 국제법과 역사학의 관점에서 연구해온 내용을 바탕으로 한중일 간 논쟁의 대상인 ‘역사인식’이란 테마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책에서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독자 여러분들에게 ‘역사인식’에 관한 ‘조감도’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의 독자가 지금까지 자신이 가지고 있던 역사 조감도를 조금이라도 다시 생각하고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과 그 조감도를 대조해보는 것을 돕는 것이다”
작가정보
저자(글) 오누마 야스아키
저자 오누마 야스아키 大沼保昭
1946년 야마가타(山形) 현에서 태어나 도쿄대학 법학부를 졸업하고 도쿄대학 대학원 법학정치학연구과에서 법학박사(국제법 전공) 학위를 받았다. 도쿄대학 교수와 메이지대학 특임교수, 아시아국제법학회 부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도쿄대학 명예교수, 소카(創?)대학 평화연구소 객원교수, 오에바시(大江橋) 법률사무소 상급고문으로 있다. Asian Journal of International Law, Cambridge Studies in International and Comparative Law, Journal of the History of International Law 등 국제법 관련 저명 학술지의 편집위원이며, 2017년 일본평화학회가 수여하는 제6회 일본평화학회 평화상을 수상했다. International Law in a Transcivilizational World(Cambridge University Press, 2017), 《?後責任》(岩波書店, 2014년, 공저), 《21世紀の?際法》(日本評論社, 2011년, 편저), 《東京裁判、??責任、?後責任》(東信堂, 2007년;中?語版, 2009년) 등 다수의 저서와 학술논문이 있다(오누마 교수의 상세한 경력과 학술 및 사회활동은 http://www.onumayasuaki.com을 참고하시기 바란다).
저자(글) 에가와 쇼코
저자 에가와 쇼코 江川紹子
1958년 도쿄에서 태어나 와세대대학 정치경제학부를 졸업했다. 가나가와신문사 사회부 기자를 거쳐 프리 저널리스트로 일하고 있다. 1995년 3월 지하철에 사린가스를 살포하는 무차별테러를 감행해 충격을 주었던 옴 진리교에 관한 취재와 연재를 높이 평가받아 1995년 일본문학진흥회가 주최하는 기쿠치 칸菊地?상을 수상하였다. 저서로《免罪の構圖》《魂の虜因》《勇氣ってなんだろう》《名張毒ブドウ酒殺人事件》《特?檢察は必要か》 등이 있다.
번역 조진구
역자 조진구 趙眞九
고려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일본 도쿄대학 대학원 법학정치학연구과에서 법학박사(국제정치 전공) 학위를 받았다. 민주평화통화통일자문회의 사무처 정책연구위원, 고려대학교 평화연구소 연구교수를 거쳐 현재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조교수로 있다. 주요 논문으로는 “한미동맹과 미일동맹에 있어서의 ‘사전협의’의 의미와 실제”, “아베 정권의 외교안보정책?국가안전보장회의, 집단적 자위권 그리고 헌법 개정 문제” 등이 있고, 저역서로는 《한국과 일본, 역사 화해는 가능한가》(공저), 《20세기의 전쟁과 평화》(공역), 《한일 경제협력자금 100억 달러의 비밀》(공역), 《일본 최악의 시나리오- 9개의 사각지대》 등이 있다.
역자 박홍규 朴鴻圭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일본 도쿄대학 대학원 법학정치학 연구과에서 법학박사(정치사상 전공)를 받았다. 현재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있으면서 평화와 민주주의연구소 소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한국 및 동양 정치사상을 전공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山崎闇齋の政治理念》, 《삼봉 정도전: 생애와 사상》, 《한국과 일본, 역사 화해는 가능한가》(공저)가 있으며, 번역서로는 《일본 정치사상사?17~19세기》, 《주자학과 근세일본사회》, 《마루야마 마사오-리버럴리스트의 초상》 등이 있다.
목차
- 한국어판 서문 ㆍ004
책을 펴내며(오누마 야스아키) ㆍ012
제1장 도쿄재판 _ 국제사회의 ‘단죄’와 일본의 수용 태도
뉘른베르크재판과 도쿄재판 ㆍ025 / ‘승자의 단죄’와 ‘아시아의 부재’ ㆍ028
침략전쟁 수행의 공동모의 ㆍ031 / ‘평화에 대한 죄’와 ‘인도에 대한 죄’ ㆍ032
재판은 공정했는가 ㆍ035 / 왜 난징사건의 사실관계는 확정하지 못하나 ㆍ037
‘도쿄재판사관’이란 무엇인가 ㆍ038 / 판결은 가혹했는가 ㆍ042
펄 판사의 ‘일본 무죄론’은 오류 ㆍ044 / 도쿄재판은 하지 않는 게 좋았을까? ㆍ047
전쟁책임은 다했는가 ㆍ051
제2장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과 한일·중일 ‘국교 정상화’ _ 쟁전과 식민지 지배의 ‘청산’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이란 무엇인가 ㆍ055 / 연합국의 관대한 강화 ㆍ058
배상과 동남아시아 경제 진출 ㆍ063 / 일본은 동남아시아를 ‘해방’했었나 ㆍ065
한일 국교정상화 ㆍ068 / 한국에게 일본의 식민 지배는 ‘플러스’였는가 ㆍ071
국가의 배상포기와 개인 보상 ㆍ076 / 중일 국교정상화와 중국의 배상 포기 ㆍ078
대중국 ODA는 배상의 대체? ㆍ082 / 일본인에 대한 중국과 한국의 이미지 ㆍ083
제3장 전쟁책임과 전후책임
‘패전책임’에서 ‘전쟁책임’으로 ㆍ089 / 피해자 의식과 가해자 의식 ㆍ093
교과서 문제와 나카소네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 ㆍ097 / 호소카와 총리의 ‘침략전쟁’ 발언 ㆍ102
일본의 ‘역사인식’을 보여준 ‘무라야마 담화’ ㆍ104 / 고이즈미 정권 이후의 흐름 ㆍ106
‘전후책임’이란 무엇인가 ㆍ108 / 사할린 잔류 한국인의 귀국 ㆍ111
재일한국·조선인과 ‘일본인의 범위’ ㆍ116 / ‘재일특권’은 특권인가 ㆍ122
정주 외국인의 지문날인 제도 철폐 운동 ㆍ126 / ‘보통 사람의 시선’의 중요성 ㆍ129
제4장 위안부 문제와 새로운 상황 _ 1990년대에서 21세기까지
왜 위안부 문제만이 주목 받는가 ㆍ135 / 위안부 문제는 한일문제? ㆍ137
강제연행이 문제의 핵심? ㆍ141 / 책임져야 할 것은 무엇인가 ㆍ144
한국 헌법재판소 판결의 의미 ㆍ146 / 아시아여성기금의 활동과 의의 ㆍ149
‘국가보상’에 매달리는 지원단체의 잘못ㆍ152 / ‘새로운 공공’의 시점에서 생각한다 ㆍ158
위안부 문제와 ‘역사인식’ ㆍ160 / ‘해결’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ㆍ166
제5장 21세기 세계와 역사인식
19세기까지의 전쟁관과 식민지관 ㆍ171 / 제1차 세계대전과 전쟁의 위법화 ㆍ174
시대를 읽지 못한 ‘탈아입구??入?’의 일본 ㆍ178 / 만주사변과 국제연맹 탈퇴 ㆍ181
국제법 위반이 빈번했던 제2차 세계대전 ㆍ186 / 집단안전보장체제의 확립과 한계 ㆍ188
국제형사재판소란 무엇인가 ㆍ191 / 서구의 ‘역사인식’에는 문제가 없는가 ㆍ193
독일의 대응은 왜 평가 받는가 ㆍ195
영국과 프랑스에게는 왜 식민지 책임을 묻지 않는가 ㆍ199
‘법적으로 해결 완료’로 끝나는 것인가 ㆍ204 / 언론과 저널리즘의 책임 ㆍ205
‘역사인식’ 문제는 극복할 수 있는가 ㆍ210
인터뷰를 마치고(에가와 쇼코) ㆍ223
대담자 후기(오누마 야스아키) ㆍ231
옮긴이의 말 ㆍ239
참고문헌·자료 ㆍ244
책 속으로
도쿄재판과 역사인식
제2차세계대전 때 일본의 주요 전쟁 범죄자를 처벌하기 위해 열린 도쿄재판은 1946년 미국, 영국, 중국, 소련,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프랑스, 인도, 필리핀, 네덜란드에서 온 11명의 재판관이 일본 전범자 도조 히데키 외 8명을 재판하였다. 장쩌린張作霖 폭살사건이 있었던 1928년 6월부터 1945년 8월의 패전까지가 심리 대상이었으며, 28명이 기소되었다. 재판 도중 사망한 2명과 정신장애로 면소된 1명을 제외한 25명 전원에게 유죄판결이 내려졌다. 이같은 도쿄재판에 대해 도조 등의 지도자가 단죄된 것은 당연하다고 받아들인 일본 국민도 있었고, 도쿄재판은 ‘승자의 단죄’라고 비판한 일본 국민도 있었다.
도쿄재판은 과연 공정했는가?
도쿄재판은 만주사변부터 1945년까지 일본이 일으킨 전쟁을 전체적으로 위법한 침략전쟁이었다고 규정했다. 그런 점에서는 전 세계의 많은 국제법학자, 역사가들이 이 판결을 지지하고 있다.
특정 국가가 국제법상 위법한 전쟁을 했다고 해서 해당 국가지도자가 그에 대해 형사책임을 지는 것은 아니다. 죄형법정주의라는 근대법의 원칙에 입각하면 어떠한 행위가 범죄에 해당하는가는 미리 법으로 정해두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부전조약은 전쟁을 위법하다고 규정했지만, 위법한 전쟁을 수행한 자에게 개인으로서 형사책임을 묻는 것은 규정하지 않았다.
1931년의 만주사변만이 아니라 1937년의 중일전쟁, 1941년의 진주만 공격과 말레이반도 상륙작전 당시에도 국제법상 위법한 전쟁을 수행한 자에게 형사책임을 묻는다는 관념은 확립되어 있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도쿄재판은 침략전쟁의 인정이라는 점에서는 옳았지만, ‘평화에 대한 죄’로 피고인을 단죄했다는 점에서는 사후법에 따른 처벌이며, 근대법의 기본원칙에 반한다는 지적도 있다.
이렇듯 도쿄재판에 일정한 문제가 있었던 것은 분명하지만, 1931년부터 1945년까지 일본이 치른 전쟁이 전체적으로 국제법상 위법한 침략전쟁이었다는 것,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일본이 수많은 전쟁법 위반행위를 저질렀음은 전 세계 국제법학자와 역사학자가 공유하고 있는 인식이며, 이는 패전 후 일본인이 점령군에게 세뇌당하거나 좌익의 교육으로 주입된 특수한 견해가 아니다. 그럼에도 이것을 ‘도쿄재판사관’이라고 부르며 막무가내로 부정하려 하면 할수록 일본은 국제사회의 공통 인식과는 괴리되어 고립될 것이라고 저자는 비판한다.
‘위안부’ 문제와 역사인식 - 위안부 문제의 본질은 무엇인가
위안부 문제는 1990년대부터 일본 국내외에서 주목을 받고 있는데, 1991년 한국의 고 김학순 할머니가 자신이 위안부였음을 공개한 것이 계기였고, 1980년대부터 힘을 갖기 시작한 여성운동의 영향이 커지면서 여성의 인권문제에 주목하게 된 것이었다.
1990년대 위안부제도의 희생자 이외에 일본제국의 일원으로 전쟁에 참가했던 한국, 대만 출신 군인 군속, 강제노동에 동원된 중국인과 한국인도 일본 재판소에 소송을 제기했지만 언론은 압도적으로 자극적인 위안부 문제를 집중 보도했다.
고 김학순 할머니의 등장 이후 한일 양국에서 위안부문제=한일문제라는 구도가 생겼고, 특히 한국에서 위안부 문제는 ‘식민지 지배를 반성하지 않는 일본’을 상징하게 됐다. 반면 일본 국내에서 위안부 문제는 ‘좌파 자유주의+페미니스트 對 우파 민족주의자’의 전장이 되었다. 저자인 오누마 교수에 따르면 일본은 아시아여성기금을 만들어 많은 사람이 이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하고, 진심으로 사죄하려 노력했으나 한국에서는 그만큼 평가 받지 못했다. 저자를 비롯한 일본의 지식인들은 이는 반일 반한 감정을 선동하는 양국의 일부 언론에 따른 문제였고, 양국 국민 사이에 실망감이 확산되며 노골적인 증오의 감정도 퍼지게 되었다고 안타까워한다.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 문제
2011년 한국의 헌법재판소가 옛 위안부에 대한 배상청구에 대해서 한국 정부가 일본 정부와 충분히 교섭하지 않는 것은 위헌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나아가 일본의 최고재판소에 해당하는 대법원은 2012년에 전시 중 강제징용된 노동자의 일본기업에 대한 개인청구권은 소멸되지 않았다는 판결을 내렸다. 한국 정부는 한국의 국내법상 사법부의 판단에 따르지 않으면 안 되었기 때문에 일본 정부에 다시 교섭을 요구하게 되었다.
이에 대해 저자는 1970년대 특히 1980년대부터 구미 선진국을 중심으로 ‘인권’의 힘이 강해지면서 세계적으로 인권에 대한 고려가 다른 가치와 판단에 대한 고려보다 우월하게 취급된 것과 관련이 있다고 분석한다. 유럽 인권재판소나 중남미의 미주인권재판소 등에서는 그것을 중시하여 피해자를 구제해야 한다는 판례가 나왔고 그것을 지지하는 학설도 상당히 유력하게 주장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1990년대 이후에는 페미니즘의 힘이 강해지면서 전시의 여성에 대한 중대한 인권침해를 ‘인도에 대한 (범)죄’로서 이해하게 되었다.
‘인도에 대한 (범)죄’는 유대인을 대량학살 했던 홀로코스트와 관련된 자들을 처벌하기 위해 고안된 개념이지만, 그것이 여성에 대한 전시 하의 심각한 인권침해 문제로까지 확대되었던 것이다. 저자는 2010년대의 한국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의 판단은 이러한 흐름에 입각한 것이라고 보았다. 이것은 분명 의미 있는 변화이기는 하나 국제법 해석상 또한 국제관계 그 자체에 대해서는 대단히 어려운 문제를 제기한다고 지적한다. 한국 정부나 일본 정부만이 아니라 세계 어느 나라 정부에게도 어려운 문제인 까닭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흐름이 확대되어 가면 국가 간 조약을 체결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의미가 흔들려버리기 때문이다.
위안부 문제에 국한하지 않고, 제2차 세계대전과 식민지 지배에 관련된 여러 문제에 대해서 일본은 법적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인식이 있지만 이것은 오류라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일본은 과거의 죄에 대해서 공식적으로 도의적 책임을 인정해 왔으며, 일본 총리가 위안부 출신 피해자 분들에게 보낸 사죄의 편지도 내각총리대신이라는 직함으로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郞 총리 이후 역대 총리가 서명한 공적 문서로서 일본은 도의적 책임을 인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아시아여성기금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여성을 위한 아시아평화국민기금(아시아여성기금)’이 만들어졌다. 이에 대해서는 일본 내부에서도 찬반이 있었다. 21세기인 오늘날에도 의미가 없다는 사람도 있고, 이전에는 비판적이었지만 이것이 있음으로 해서 일본도 피해자에게 성의를 가지고 임해왔다고 국제사회에 주장할 수 있게 되었다고 평가하는 목소리도 있다.
다만 그것이 좀처럼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 세계는 물론이거니와 한국민들에게도 인정받지 못하고 있고, 일본 국민에게도 전달되지 않아 ‘역사인식’의 대립이 생겨났다고 보고 있다. 또한 이로 인해 일본이 오해받고 있다는 불만도 일본에서는 확대되고 있다고 한다.
저자는 위안부 문제를 오로지 한일관계의 틀 속에서만 생각하는 것도 잘못이라고 지적한다. 그것은 위안부 피해자는 한국만이 아니라 일본에도 인도네시아에도 중국에도 필리핀에도 대만에도 네덜란드에도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위안부 문제란 무엇보다도 전쟁 중의 일본인이 저지른 죄를 전후의 일본 국민이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떤 자세로 바라보며 다음 세대에게 조금이라도 제대로 된 일본을 물려줄 수 있는가, 하는 문제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즉 문제는 한국을 만족시킬 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 관점 이전에 위안부 제도와 그 희생자에 대한 일본 스스로의 양식과 정의에 따른 판단과 반성의 문제라는 것이다.
저자는 지나치게 편향적인 일부 강경론을 제외하면, 위안부가 되었던 분들의 대부분이 속아서든 강제로든 성적 희생을 강요당했다는 사실은 학문적으로 이미 실증되었기 때문에 ‘강제는 없었다거나 위안부는 공창이었다’고 격하게 주장하는 일본 내 일부 주장에 대해서 그것은 일본은 물론 국제사회에서 거의 실증된 학문적 성과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그것은 부끄러워해야 할 태도이며, 일본의 국제적 평가에도 상처가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그보다는 과거에는 분명 나쁜 짓을 했지만, 현재의 일본은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다고 하는 일본 국민의 생각, 그리고 태도를 확실히 보여 주여야 한다는 것이다.
결론
일반적으로 ‘역사인식’과 관련 있는 문제─도쿄재판, 전쟁책임, 위안부, 야스쿠니 참배, 역사교과서, 영토문제 등등─의 대부분은 ‘샌프란시스코 조약’이나 한국, 중국과 국교 회복 당시 맺은 한일기본조약과 중일공동성명 등으로 ‘해결’했던 문제이거나 그 범위의 해석과 관련한 문제이다.
그럼에도 ‘역사인식’에 관한 여러 문제가 21세기에도 격렬하게 논의되고 또 대립을 초래하는 근본 원인은
① 전쟁과 식민지 지배, 그리고 인권에 대한 국제사회 전체의 생각이 20세기를 거쳐 크게 변화했다는 점
② 이에 수반하여 1970년대까지 제2차 세계대전과 한국의 식민지 지배 문제는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과 한일 및 중일 국교정상화 등으로 법적으로 해결되었다고 생각했던 문제가 1980년대 이후 수정을 요구받게 되었다는 점
③ 일본 국민들 사이에 전쟁과 식민지 지배 문제에 대해 반성을 하면서도 ‘도쿄재판=승자의 단죄’라는 견해로 대표되는 외국의 ‘불공평함’에 대한 석연찮은 생각이 일관되게 존재하고 있었다는 점
④ 중국과 한국 사람들이 근현대사를 보는 데 깊은 피해의식을 갖고 있고, 그 화살은 ‘가해자’ 일본을 향하기 쉽다는 점에 있다.
출판사 서평
도쿄재판과 역사인식
제2차세계대전 때 일본의 주요 전쟁 범죄자를 처벌하기 위해 열린 도쿄재판은 1946년 미국, 영국, 중국, 소련,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프랑스, 인도, 필리핀, 네덜란드에서 온 11명의 재판관이 일본 전범자 도조 히데키 외 8명을 재판하였다. 장쩌린張作霖 폭살사건이 있었던 1928년 6월부터 1945년 8월의 패전까지가 심리 대상이었으며, 28명이 기소되었다. 재판 도중 사망한 2명과 정신장애로 면소된 1명을 제외한 25명 전원에게 유죄판결이 내려졌다. 이같은 도쿄재판에 대해 도조 등의 지도자가 단죄된 것은 당연하다고 받아들인 일본 국민도 있었고, 도쿄재판은 ‘승자의 단죄’라고 비판한 일본 국민도 있었다.
도쿄재판은 과연 공정했는가?
도쿄재판은 만주사변부터 1945년까지 일본이 일으킨 전쟁을 전체적으로 위법한 침략전쟁이었다고 규정했다. 그런 점에서는 전 세계의 많은 국제법학자, 역사가들이 이 판결을 지지하고 있다.
특정 국가가 국제법상 위법한 전쟁을 했다고 해서 해당 국가지도자가 그에 대해 형사책임을 지는 것은 아니다. 죄형법정주의라는 근대법의 원칙에 입각하면 어떠한 행위가 범죄에 해당하는가는 미리 법으로 정해두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부전조약은 전쟁을 위법하다고 규정했지만, 위법한 전쟁을 수행한 자에게 개인으로서 형사책임을 묻는 것은 규정하지 않았다.
1931년의 만주사변만이 아니라 1937년의 중일전쟁, 1941년의 진주만 공격과 말레이반도 상륙작전 당시에도 국제법상 위법한 전쟁을 수행한 자에게 형사책임을 묻는다는 관념은 확립되어 있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도쿄재판은 침략전쟁의 인정이라는 점에서는 옳았지만, ‘평화에 대한 죄’로 피고인을 단죄했다는 점에서는 사후법에 따른 처벌이며, 근대법의 기본원칙에 반한다는 지적도 있다.
이렇듯 도쿄재판에 일정한 문제가 있었던 것은 분명하지만, 1931년부터 1945년까지 일본이 치른 전쟁이 전체적으로 국제법상 위법한 침략전쟁이었다는 것,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일본이 수많은 전쟁법 위반행위를 저질렀음은 전 세계 국제법학자와 역사학자가 공유하고 있는 인식이며, 이는 패전 후 일본인이 점령군에게 세뇌당하거나 좌익의 교육으로 주입된 특수한 견해가 아니다. 그럼에도 이것을 ‘도쿄재판사관’이라고 부르며 막무가내로 부정하려 하면 할수록 일본은 국제사회의 공통 인식과는 괴리되어 고립될 것이라고 저자는 비판한다.
‘위안부’ 문제와 역사인식 - 위안부 문제의 본질은 무엇인가
위안부 문제는 1990년대부터 일본 국내외에서 주목을 받고 있는데, 1991년 한국의 고 김학순 할머니가 자신이 위안부였음을 공개한 것이 계기였고, 1980년대부터 힘을 갖기 시작한 여성운동의 영향이 커지면서 여성의 인권문제에 주목하게 된 것이었다.
1990년대 위안부제도의 희생자 이외에 일본제국의 일원으로 전쟁에 참가했던 한국, 대만 출신 군인 군속, 강제노동에 동원된 중국인과 한국인도 일본 재판소에 소송을 제기했지만 언론은 압도적으로 자극적인 위안부 문제를 집중 보도했다.
고 김학순 할머니의 등장 이후 한일 양국에서 위안부문제=한일문제라는 구도가 생겼고, 특히 한국에서 위안부 문제는 ‘식민지 지배를 반성하지 않는 일본’을 상징하게 됐다. 반면 일본 국내에서 위안부 문제는 ‘좌파 자유주의+페미니스트 對 우파 민족주의자’의 전장이 되었다. 저자인 오누마 교수에 따르면 일본은 아시아여성기금을 만들어 많은 사람이 이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하고, 진심으로 사죄하려 노력했으나 한국에서는 그만큼 평가 받지 못했다. 저자를 비롯한 일본의 지식인들은 이는 반일 반한 감정을 선동하는 양국의 일부 언론에 따른 문제였고, 양국 국민 사이에 실망감이 확산되며 노골적인 증오의 감정도 퍼지게 되었다고 안타까워한다.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 문제
2011년 한국의 헌법재판소가 옛 위안부에 대한 배상청구에 대해서 한국 정부가 일본 정부와 충분히 교섭하지 않는 것은 위헌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나아가 일본의 최고재판소에 해당하는 대법원은 2012년에 전시 중 강제징용된 노동자의 일본기업에 대한 개인청구권은 소멸되지 않았다는 판결을 내렸다. 한국 정부는 한국의 국내법상 사법부의 판단에 따르지 않으면 안 되었기 때문에 일본 정부에 다시 교섭을 요구하게 되었다.
이에 대해 저자는 1970년대 특히 1980년대부터 구미 선진국을 중심으로 ‘인권’의 힘이 강해지면서 세계적으로 인권에 대한 고려가 다른 가치와 판단에 대한 고려보다 우월하게 취급된 것과 관련이 있다고 분석한다. 유럽 인권재판소나 중남미의 미주인권재판소 등에서는 그것을 중시하여 피해자를 구제해야 한다는 판례가 나왔고 그것을 지지하는 학설도 상당히 유력하게 주장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1990년대 이후에는 페미니즘의 힘이 강해지면서 전시의 여성에 대한 중대한 인권침해를 ‘인도에 대한 (범)죄’로서 이해하게 되었다.
‘인도에 대한 (범)죄’는 유대인을 대량학살 했던 홀로코스트와 관련된 자들을 처벌하기 위해 고안된 개념이지만, 그것이 여성에 대한 전시 하의 심각한 인권침해 문제로까지 확대되었던 것이다. 저자는 2010년대의 한국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의 판단은 이러한 흐름에 입각한 것이라고 보았다. 이것은 분명 의미 있는 변화이기는 하나 국제법 해석상 또한 국제관계 그 자체에 대해서는 대단히 어려운 문제를 제기한다고 지적한다. 한국 정부나 일본 정부만이 아니라 세계 어느 나라 정부에게도 어려운 문제인 까닭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흐름이 확대되어 가면 국가 간 조약을 체결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의미가 흔들려버리기 때문이다.
위안부 문제에 국한하지 않고, 제2차 세계대전과 식민지 지배에 관련된 여러 문제에 대해서 일본은 법적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인식이 있지만 이것은 오류라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일본은 과거의 죄에 대해서 공식적으로 도의적 책임을 인정해 왔으며, 일본 총리가 위안부 출신 피해자 분들에게 보낸 사죄의 편지도 내각총리대신이라는 직함으로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郞 총리 이후 역대 총리가 서명한 공적 문서로서 일본은 도의적 책임을 인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아시아여성기금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여성을 위한 아시아평화국민기금(아시아여성기금)’이 만들어졌다. 이에 대해서는 일본 내부에서도 찬반이 있었다. 21세기인 오늘날에도 의미가 없다는 사람도 있고, 이전에는 비판적이었지만 이것이 있음으로 해서 일본도 피해자에게 성의를 가지고 임해왔다고 국제사회에 주장할 수 있게 되었다고 평가하는 목소리도 있다.
다만 그것이 좀처럼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 세계는 물론이거니와 한국민들에게도 인정받지 못하고 있고, 일본 국민에게도 전달되지 않아 ‘역사인식’의 대립이 생겨났다고 보고 있다. 또한 이로 인해 일본이 오해받고 있다는 불만도 일본에서는 확대되고 있다고 한다.
저자는 위안부 문제를 오로지 한일관계의 틀 속에서만 생각하는 것도 잘못이라고 지적한다. 그것은 위안부 피해자는 한국만이 아니라 일본에도 인도네시아에도 중국에도 필리핀에도 대만에도 네덜란드에도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위안부 문제란 무엇보다도 전쟁 중의 일본인이 저지른 죄를 전후의 일본 국민이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떤 자세로 바라보며 다음 세대에게 조금이라도 제대로 된 일본을 물려줄 수 있는가, 하는 문제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즉 문제는 한국을 만족시킬 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 관점 이전에 위안부 제도와 그 희생자에 대한 일본 스스로의 양식과 정의에 따른 판단과 반성의 문제라는 것이다.
저자는 지나치게 편향적인 일부 강경론을 제외하면, 위안부가 되었던 분들의 대부분이 속아서든 강제로든 성적 희생을 강요당했다는 사실은 학문적으로 이미 실증되었기 때문에 ‘강제는 없었다거나 위안부는 공창이었다’고 격하게 주장하는 일본 내 일부 주장에 대해서 그것은 일본은 물론 국제사회에서 거의 실증된 학문적 성과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그것은 부끄러워해야 할 태도이며, 일본의 국제적 평가에도 상처가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그보다는 과거에는 분명 나쁜 짓을 했지만, 현재의 일본은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다고 하는 일본 국민의 생각, 그리고 태도를 확실히 보여 주여야 한다는 것이다.
결론
일반적으로 ‘역사인식’과 관련 있는 문제─도쿄재판, 전쟁책임, 위안부, 야스쿠니 참배, 역사교과서, 영토문제 등등─의 대부분은 ‘샌프란시스코 조약’이나 한국, 중국과 국교 회복 당시 맺은 한일기본조약과 중일공동성명 등으로 ‘해결’했던 문제이거나 그 범위의 해석과 관련한 문제이다.
그럼에도 ‘역사인식’에 관한 여러 문제가 21세기에도 격렬하게 논의되고 또 대립을 초래하는 근본 원인은
① 전쟁과 식민지 지배, 그리고 인권에 대한 국제사회 전체의 생각이 20세기를 거쳐 크게 변화했다는 점
② 이에 수반하여 1970년대까지 제2차 세계대전과 한국의 식민지 지배 문제는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과 한일 및 중일 국교정상화 등으로 법적으로 해결되었다고 생각했던 문제가 1980년대 이후 수정을 요구받게 되었다는 점
③ 일본 국민들 사이에 전쟁과 식민지 지배 문제에 대해 반성을 하면서도 ‘도쿄재판=승자의 단죄’라는 견해로 대표되는 외국의 ‘불공평함’에 대한 석연찮은 생각이 일관되게 존재하고 있었다는 점
④ 중국과 한국 사람들이 근현대사를 보는 데 깊은 피해의식을 갖고 있고, 그 화살은 ‘가해자’ 일본을 향하기 쉽다는 점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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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한국어로 출간되는 《‘歷史認識’とは何か》는 도쿄재판, 전쟁책임, 전후책임, 사할린 잔류 한국인, ‘위안부’ 문제 등에 관한 나의 지금까지의 연구를 바탕으로 한일 및 중일 간에 격렬하게 논의되고 각각의 국내에서도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는 ‘역사인식’이란 테마에 대해서 대화체로 이야기한 것이다…. 이 책의 간행으로 ‘역사인식’ 문제에 관한 한일 양국 국민의 상호 이해가 깊어지고, 문제의 정치화와 불필요한 대립을 막는 작은 노력의 일환이 될 것을 진심으로 바란다. _한국어판 서문 가운데
이 책이 역사인식과 관련한 모든 것을 다루고 있지는 않지만, 한일강제병합과 만주사변, 도쿄재판과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 한일 및 중일 국교정상화,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 ‘역사인식’ 문제를 이해하는 데 꼭 알아야 할 사실은 물론 그런 사실들이 어떤 역사인식을 만들어왔는지 하는 역사인식의 역사도 조망할 수 있게 해준다.
과거 역사에 대한 일본의 반성과 사죄가 충분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한국에서 비판받고 있는 것처럼 일본이 전혀 반성하지 않고 사죄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자료로 첨부되어 있는 고노 담화와 무라야마 담화를 독자들께서 꼭 읽어주시기를 당부드린다. 역자들은 이 책이 한국과 일본의 보통사람들이 “일본에게는 과거를 직시하고 역사를 두렵게 여기는 진정한 용기가 필요하고, 한국은 일본의 변화된 모습을 올바르게 평가하면서 미래의 가능성에 대한 희망을 찾을 수 있는”(1998년 10월 8일 김대중 대통령 일본 국회연설)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_옮긴이의 말 가운데
한중일 역사 갈등 문제에 대해 생각할 때 출발점이 될 수 있는 기본서. _일본 아마존 독자
좌우의 경계, 일본인과 외국인이란 경계를 넘어 가능한 많은 사람이 허심탄회하게 읽기를 바라는 양서이다. 내용이 좋은 것은 물론이고, 흥분해 말하는 사람이 많은 어려운 문제를 냉정하고 이해하기 쉽게 그리고 뚝심 있게 이야기하는 저자의 교양 있는 자세에 감복했다. _일본 아마존 독자나의
기본정보
ISBN | 9788997454273 | ||
---|---|---|---|
발행(출시)일자 | 2018년 08월 08일 | ||
쪽수 | 272쪽 | ||
크기 |
141 * 211
* 17
mm
/ 419 g
|
||
총권수 | 1권 | ||
원서명/저자명 | 《‘歷史認識’とは何か》/大沼保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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