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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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정보
1948년 서울 출생으로 고려대 영문과를 중퇴했다. 한국일보, 시사저널, 국민일보, 한겨레신문에서 기자로 일했으며, 2004년 이래 전업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장편소설 『빗살무늬토기의 추억』, 『칼의 노래 』, 『현의 노래』, 『개』, 『남한산성』, 『흑산』, 『공무도하』, 『내 젊은 날의 숲』, 『공터에서』, 소설집 『공무도하』, 산문집 『풍경과 상처』, 『자전거 여행 1, 2』, 『내가 읽은 책과 세상』, 『바다의 기별』, 『라면을 끓이며』, 『연필로 쓰기』 등을 펴냈다.
소설가이자 번역가, 신화학자. 1947년 5월 3일 경상북도 군위에서 출생하여 1977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하얀 헬리콥터」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독학으로 검정고시에 합격한 뒤 성결교신학대학원에서 공부했으며, 1991년부터 2000년까지 미시간주립대학교에서 종교학·문화인류학 초빙연구원과 객원교수를 지냈다. 번역과 문학에 헌신해온 이력을 인정받아 2005년 5월에는 순천향대학교에서 명예 문학박사학위를 받기도 했다. 장편소설 『하늘의 문』 『햇빛과 달빛』 『뿌리와 날개』 『나무가 기도하는 집』 『그리운 흔적』 『내 시대의 초상』, 중편 『진홍글씨』, 소설집 『나비넥타이』 『두물머리』 『노래의 날개』를 발표했으며, 그 밖에도 신화교양서 『이윤기 신화 거꾸로 읽기』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꽃아 꽃아 문 열어라』와 역사교양서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영웅 열전』, 산문집 『이윤기가 건너는 강』 『어른의 학교』 『잎만 아름다워도 꽃대접을 받는다』 『우리가 어제 죽인 괴물』 『무지개와 프리즘』 『위대한 침묵』 『시간의 눈금』 『내려올 때 보았네』 등 다양한 책들을 저술했다. 또한 그리스 신화를 해석해 소설화한 『뮈토스』를 펴내기도 했다. 번역가로서 왕성히 활동하여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 『푸코의 진자』 『전날의 섬』,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 『돌의 정원』 『미할리스 대장』, 존 버거의 『결혼을 향하여』, A. J. 크로닌의 『천국의 열쇠』, 알베르토 모라비아의 『로마의 여자』, 토머스 해리스의 『양들의 침묵』, 애거서 크리스티의 『열 개의 인디언 인형』, 보리슬라프 페키치의 『기적의 시대』, 도나 타트의 『비밀의 계절』, 오비디우스의 『변신이야기』, 존 버니언의 『천로역정』, 토마스 불핀치의 『그리스 로마 신화』, 조지프 캠벨의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 조지프 캠벨 · 빌 모이어스의 『신화의 힘』,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종교의 기원』, 칼 구스타프 융의 『인간과 상징』, 진 쿠퍼의 『그림으로 보는 세계문화상징사전』, 미르치아 엘리아데의 『샤마니즘』 등 소설에서 연구서까지 250여 권에 이르는 다방면의 책들을 우리말로 옮겼다. 동인문학상(1998)·한국번역가상(2000)·대산문학상(2000)을 받았으며, 2010년 8월 27일 심장마비로 타계했다.
1963년 서울특별시 은평구 갈현동에서 태어났다. 1967년 5세 때 아버지가 지병으로 사망하는 아픔을 겪었으며, 이후 하숙을 치는 어머니 밑에서 어려운 어린 시절을 보냈다. 숙명여자중학교와 진명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하였으며, 1987년 연세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였다. 1983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상실의 계절'이 당선되어 문단에 데뷔하였고, 같은 해 장편소설 '핏줄'을 발표하였다. 1985년 장편소설 '불꽃'을 발표하였으며, 1987년 대학시절 민중문화연합 산하의 굿패 '해원'에서 활동하기도 하였다. 같은 해 장편소설 '79~80 겨울에서 봄 사이'(전3권)가 출간되었다. 1988년 단편소설 '강'을 발표하였으며, 보고문학 '하나 되는 날'로 전태일문학상 특별상을 받았다. 1989년 단편소설 '가까운 불빛', '부정', '봄이 오면'을 발표하였고, 1988년 소설집 '칼날과 사랑'을 발표하였다. 1990년에는 중편소설 '한 여자 이야기'와 단편소설 '관리인 차씨'를 발표하였다. 1993년 '칼날과 사랑'을 발표한 뒤,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에서 생활하다가 1995년에 귀국하였으며 중국 다롄에 잠시 거주하기도 하였다. 단편소설 〈개교기념일〉로 현대문학상을, 단편소설 〈바다와 나비〉로 이상문학상을, 단편소설 〈감옥의 뜰〉로 이수문학상을, 소설집 《그 여자의 자서전》으로 대산문학상을, 소설집 《안녕, 엘레나》로 동인문학상을, 단편소설 〈빈집〉으로 황순원문학상을 수상했다.
199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 「사막의 달」이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염소를 모는 여자』 『바닷가 마지막 집』 『물의 정거장』 『천사는 여기 머문다』, 장편소설 『아무곳에도 없는 남자』 『내 생애 꼭 하루뿐일 특별한 날』 『난 유리로 만든 배를 타고 낯선 바다를 떠도네』 『열정의 습관』 『검은 설탕이 녹는 동안』 『황진이』 『언젠가 내가 돌아오면』 『엄마의 집』 『풀밭위의 식사』 『최소한의 사랑』 『해변 빌라』 『이마를 비추는 발목을 물들이는』 『이중 연인』, 어른을 위한 동화로 『여자는 어디에서 오는가』, 산문집 『그리고 삶은 나의 것이 되었다』 『붉은 리본』 『나비』 『사교성 없는 소립자들』이 있다. 한국일보문학상, 문학동네소설상, 21세기문학상, 대한민국소설상, 이상문학상, 현대문학상, 현진건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1962년 충남 예산 출생으로 단국대학교 불문과를 졸업했으며, 1990년 '문학사상'신인상으로 등단했다. 소설집에 '은어낚시통신', '남쪽 계단을 보라', '많은 별들이 한곳으로 흘러갔다' 등이 있으며, 장편소설에 '옛날 영화를 보러갔다', '추억의 아주 먼 곳', '달의 지평선', '코카콜라 애인', '사슴벌레 여자', '미란'등과 산문집에 '그녀에게 얘기해주고 싶은 것들'이 있다. 1994년 제2회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1996년 제20회 이상문학상, 1998년 제43회 현대문학상, 2003년 제4회 이효석문학상을 수상했다.단국대학교 불문학과 졸업. 창작집 '은어낚시통신', '남쪽 계단을 보라', 장편소설 '옛날 영화를 보러 갔다', '사슴벌레 여자', '미란' 등을 출간. 1994년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1996년 이상문학상, 1998년 현대문학상, 2003년 이효석문학상, 2007년 김유정문학상, 2012년 김준성문학상을 받음. 현재 동덕여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사진 이훈구
목차
- 권두시 너를 기다리는 동안 / 황지우…006
기어이 사랑이라 부르는 기억들 / 김 훈…008
부치지 못한 편지 / 김인숙…020
그 여자 / 김용택…036
완벽한 사랑의 내부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 전경린…046
내 영혼을 자유롭게 해준 그대여 / 박수영…066
기억 속의 사랑 / 공선옥…084
‘영혼의 변명’과 ‘진실한 사랑’의 이중주 / 김갑수…100
오래된 사랑 / 유용주…118
달에서 나눈 얘기 / 윤대녕…134
달아난 사랑을 위한 발라드 / 윤광준…150
Do it for Love /이상은…166
책 읽어주는 남자 / 정길연…180
사랑은 미친 짓이다 / 최재봉…196
사랑이라니…… / 하성란…212
사소하지만 치명적인 사랑 / 함정임…232
‘유일한 사랑’이라는 말에 깃든 함정 / 박범신…250
결혼은 미친 짓이 아니다 / 이윤기…262
epilogue 사랑은 운명과도 같은 것…278
출판사 서평
?사랑은 그저 사는 일이 아니라 살아 있는 그 자체,
곧 죽음을 거스르는 생명력이다.?
사랑이란 도대체 무엇인가요?
많은 사람들이 사랑을 이야기하고 사랑에 겨워하고 또 사랑을 두려워하면서 살아갑니다. 태초에 소리가 있고 혼돈이 있었듯이 그때부터 사랑이 있었는지 모릅니다.
사랑하지 않고 결혼하는 커플이 몇이나 될까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랑하기 때문에 결혼한다고 믿고 있고 또 그래서들 결혼합니다. 성장하면서 이성을 만나 사랑하고 사랑하면 결혼하는 것을 당연한 인생의 통과의례로 알고 받아들여 왔기 때문이지요. 그렇지만 정략결혼이라는 말이 예전부터 사용되어 온 것을 보면 결혼은 사랑 없이도 할 수 있는 것이 분명한 듯합니다. 그리고 저 유명한 로미오와 줄리엣의 이야기를 기억한다면, 사랑하는 사람들이라고 해서 반드시 결혼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 또한 분명해집니다. 사랑은 결혼의 필요조건일 수는 있어도 충분조건은 아닌 듯합니다.
요즈음 젊은 세대에서는 독신이 증가하고 그만큼 결혼을 기피하는 현상이 감지되기까지 할 정도라고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에게 사랑이 없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겠지요. 사랑은 그 실체를 정의하기가 퍽이나 어렵기는 하지만, 오늘 지금 이 순간에도 곳곳에서 그 이름으로 뜨거워지고 행복해 하고 아파하고 괴로워하는 열정들이 피어오르고 또 식고 있을 테니까요. 그렇지만, 그들이 “사랑은 날카로운 칼끝에 발라져 있는 달콤한 꿀과도 같다.”는 그리스의 속담이 뜻하는 바를 알고 결혼을 숙고하는 것이라면, 최소한 전前세대보다는 덜 아파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랑하면 결혼하고, 결혼은 곧 행복이라는 법칙이나 흐름은 없습니다. 사랑은 폭풍과도 같이 열정적이고 격정적이며 또한 그 깊이와 넓이의 끝을 알 수 없는 것이겠지만 그 자체로 반드시 행복이라고 할 수는 없으니까요. 또한 결혼은 무수히 많은 ‘사랑’들 가운데 일부가 입는 ‘옷’이나 잠시 거주하는 ‘집(물론 영원한 안식처일 수도 있지요)’과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떤 이유로든 결혼하지 않는(또는 못하는) 사랑, 아픈 사랑이 적지 않은 것을 보면 말이지요.
사랑은 참으로 알 수 없음인지도 모릅니다.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藝人 17인, 이 시대의 사랑에 대해 발언하고 고백하다
수줍은 김훈, 멋진 이윤기, 뜨거운 전경린, 아릿한 하성란……
기억조차 아스라한 옛사랑의 모습부터 고통스러운 최근 사랑의 고백, 그리고 세월의 향기 속에서 깨달은 삶과 사랑의 지혜를 들려주는 작가들의 이야기는 지금 사랑으로 인해 고통스러워하거나 괴로워하는 이는 물론 기쁨에 겨워하는 이들 모두에게 따듯한 위안이자 소중한 교훈으로 다가옵니다.
작가 김훈은 수줍은 소년처럼 사랑의 기억을 에둘러 표현합니다. 모든 닿을 수 없는 것들과 참혹한 결핍이 바로 사랑이라고. 그리고 왜 자신의 작품 속에서 사랑이 잘 묘사되지 못하는지를 고백하듯 토로합니다.
다시 ‘사랑’의 메모장을 연다. ‘시선’이라는 단어가 적혀 있다. ‘강’이라는 단어도 적혀 있다. ‘시선’을 적은 날은 봄이었고, ‘강’을 적은 날은 가을이었다. 봄에서 가을 사이에는 아무런 메모도 없었다. 메모가 없는 날들이 편안한 날들이었을 것이다. ‘시선’ 밑에는 ‘건너가기’라고 적혀 있고, ‘강’ 밑에는 또 ‘혈관’이라는 말이 적혀 있다. ‘농수로’도 있고 ‘링거주사’도 보인다. 불쌍해서 버리고 싶은 단어들인데, 버려지지가 않는다.
모든 닿을 수 없는 것들과 모든, 건널 수 없는 것들과 모든, 다가오지 않는 것들과 모든, 참혹한 결핍들을 모조리 사랑이라고 부른다. 기어이 사랑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김훈 〈기어이 사랑이라고 부르는 기억들〉 중에서
페미니즘과는 색깔을 달리하는 여성주의 작가, 정념과 귀기의 작가라고 일컬어지는 전경린은 삶이 죽음에 대한 순종이라면, 사랑은 그 죽음을 거스르는 진정한 생명력의 원천이라고 은근하지만 당당한 여성의 견해를 내비치기도 합니다.
이 나이에 굳이 사랑하면서 살려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열정이 없을수록 삶은 선량해지는데……. 사랑 없이 못 사는 사람과 사랑 없이 사는 사람 중에 누가 더 나쁜 사람일까. 생명과 삶은 이리도 다르다. 삶은, 실은 순조롭게 죽어가는 일이다. 그리고 사랑은 사는 일이 아니라, 살아 있는 그 자체, 곧 죽음을 거스르는 생명력이다. 그러니 삶 속에서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은 반역자이고, 순교자이고, 혁명가이다. 그래서 사랑이 영원한 문제적 화두인 것이다. --전경린 〈나보다 더 많이 나를 찾아온 사랑〉 중에서
그런가 하면 불현듯 우리 곁을 떠난, 우리 시대의 뛰어난 입담가 이윤기는 스스로 느끼한 남자 팔불출을 자처하며 결혼을 예찬합니다. 사랑이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가치를 만들어 내는 그러한 결혼으로 이어지기를 바라는 성숙한 사랑론이라고나 할까요? ‘사랑은 미친 짓’이라는 견해에 단호히 ‘결혼은 미친 짓이 아니다’라고 이야기합니다.
나에게, 이 세상에서 가장 존귀하신 분은 나의 어머니이다. 결혼을 통해 맺어진 나와 내 아내 사이에서는 아들딸이 태어났다. 아내는 내 아들딸의 어머니이다. 아들딸이 장차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한다면 내 아내는 그들에게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사람이다.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가치는 결혼을 통하여 탄생한다. 결혼은 미친 짓이 아닌 것이다. 이것이 나의 결론이다. --이윤기 〈결혼은 미친 짓이 아니다〉 중에서
영원한 문학청년 박범신은 편협한 사랑, 이기적인 소유욕의 사랑을 넘어서서 깊고 향기로운 사랑으로 가는 길이 어디에 있는지를 경험으로 일러줍니다.
시간은 단지 사랑을 일상화시키는 역할로 끝나지 않는다. 일상화는 슬픈 일이지만 일상화조차 견뎌내고 나면 다른 것들, 이를테면 참된 인간 우의로서의 향기로운 사랑이 찾아든다. 그때 만나는 사랑은 어느덧 유리그릇이 아니라 금강석처럼 변해 있어 내 손에서 설령 미끄러져 바닥에 떨어진다 하더라도, 쉽게 깨뜨려지지 않는다. --박범신 〈‘유일한 사랑’이라는 말에 깃든 함정〉 중에서
소설가 박수영은 사랑하면서도 헤어진 통속적인 주제의 이야기를 담담하지만 고해성사 하듯 펼쳐 내 읽는 이들의 가슴을 아프게 하기도 합니다.
나는 지금 내 사랑을 떠났다. 이제껏 살아오면서 그 누구보다도 사랑했던 내 사랑에게서 스스로 떠났다. 그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는 나를 떠나보냈다. 우리는 사랑하면서 헤어졌다. 섹스가 삶의 전부도 아니고 사랑의 전제조건도 아니지만, 우리는 바로 그 사랑의 고귀함 속에서 아팠다. 채워지지 않는 것, 어찌할 수 없는 것이 있었으므로…….--박수영 〈내 영혼을 자유롭게 해준 그대여〉 중에서
이밖에도 시인 김용택의 아련한 첫사랑 ‘그 여자’ 이야기, 낯선 땅에서 ‘전염병의 공포에 떨며 쓴 소설가 김인숙의 그리움과 사랑에 대한 편지, 윤대녕과 유용주의 슬프고 아름다운 사랑을 떠올리는 작품, 가수 이상은과 작가 공선옥, 정길연, 하성란, 시인 김갑수, 사진가 윤광준 등의 자기 고백적인 사랑 이야기가 잔잔하게 때로는 격렬하게 펼쳐집니다.
주요 내용
나는 사랑을 묘사하지 못한다. 늘 말이 막혀서 써지지가 않는다. 불륜이건 합륜(이런 말이 있는가?)이건 치정이건 순정이건 다 똑같다. 거기에 언어를 들이댈 수가 없다. 소설이나 영화에 나오는 사랑도 나에게는 잘 전달되지 않는다. 아마도 그것은 전달되거나 설명되지 않고 다만 경험될 뿐일 것이다. 경험될 뿐, 전달되지 않는 것이 이 세상을 지옥으로 만든다. 낙원은 그 지옥의 다른 이름일 터이다.
내 빈곤한 ‘사랑’의 메모장은 거기서 끝나 있다. 더 이상의 단어는 적혀 있지 않다. ‘관능’이라고 연필로 썼다가 지워버린 흔적이 있다. 아마도, 닿아지지 않는 관능의 슬픔으로 그 글자들을 지웠을 것이다. 너의 관능과 나의 관능 사이의 거리를 들여다보면서 그 두 글자를 지우개로 뭉개버렸을 것이다. 모든, 닿을 수 없는 것들과 모든, 건널 수 없는 것들과 모든, 다가오지 않는 것들과 모든, 참혹한 결핍들을 모조리 사랑이라고 부른다. 기어이 사랑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김훈 〈기어이 사랑이라 부르는 기억들〉 중에서
어느 봄날 쓴 편지인 듯합니다. 부치지 않은 편지가, 정리되지 않은 서랍 속에서 우연히 발견되듯, 삭제하지 않은 편지 파일이 우연찮게도 컴퓨터 문서함 속에서 나타났습니다.
사랑이 삶을 얼마나 많이, 오래 끌어안고 있을 수 있습니까? 반대로 삶은 사랑을 얼마나 오래 끌어안아줄 수 있습니까? 오래 전에는 그 두 단어를 분리할 수 없었습니다. 사랑과 정염과 열정과 상처와 통곡과 오르가즘과 추락, 그 모든 단어들을 또한 사랑과 삶이라는 단어와 분리할 수 없었습니다. 지금도 실은 냉정한 것이 어느 쪽인지, 사랑인지 아니면 삶인지. 그 차가운 손이 어느 쪽의 것인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김인숙 〈부치지 못한 편지〉 중에서
그 옛날 옆 마을에 살았던 그 여자, 열아홉 꽃 같았던 그 여자, 생각하면 아 바로 내 첫사랑 아니겠는가……. 지금도 생각하면 저녁 굴뚝에서 포근하고 아스라하게 연기 솟아오르듯 떠오르는 그 풋풋한 기억과 얼굴은 젊은 날의 잊히지 않는 사랑이 아니겠는가.
어두운 밤에도 구비 구비 하얗게 살아나던 길, 달이 뜨면 뽀얗게 떠 보이는, 적막하고 다정한 길이 늘 펼쳐졌답니다. 해 저물고 바람 불면 바람 따라 길 따라 하얗게 춤을 추던 개망초 꽃, 그리고 해맑은 풀잎들. 그 길은 슬프고 외롭고 쓸쓸하고 그리고 정다운 길입니다. 아버지들이 하얀 달빛을 받으며 나락을 져 나르던 길이며, 어머니들이 애기 업고 머리에 곡식을 여 나르던 길입니다. 내 누이들이 돈 벌러 가던 길이며, 동무들이 밤도망을 치던 길입니다. 어머니들이 울면서 자식들을 떠나보내고 눈물로 자식들을 기다리던 길입니다. 꽃길입니다. 서러운 눈물 뿌리던 길입니다. 기쁨의 길입니다. 그 여자를 만나러 가는 내 사랑의 길이기도 합니다. 김용택 〈그 여자〉 중에서
나는 사랑의 옳고 그름을 말하지 않는다. 오직 사랑 그 자체를 말한다.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니다.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감당할 수 있는가 없는가가 문제이다. 당신은 당신의 사랑을 이 삶 속에서 감당할 수 있는가?
사랑에는 달리 목적이 없다. 사랑 외에는. 나는 사랑하는 사람들의 가장 큰 힘은 지성이라고 생각한다. 스스로 자기 현실을 사유하고 자각하고 해결하며 어떤 벽 앞에서도 문을 열고 나가는 힘이 진정한 지성이다. 사랑은 한 나라 문화의 총체적 결산이며 꽃이다. 사랑은 개인적인 일 같지만 실은 이 사회의 문화 환경과 가치와 물질적 조건에 교묘하게 지배당하며 그 속에서 움직이고 있다. 가장 개인적인 일이기는 해도, 그 조건들과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는 한 그것 역시 이 사회에 영혼을 저당 잡힌 볼모들의 개인사인 것이다. 전경린 〈완벽한 사랑의 내부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중에서
그렇게 당신을 떠난 후 나는 뒤늦게 당신이 내게 준 계약을 실행했어요. 우연히 알게 된 어떤 남자와 잤어요. 사랑하지 않았지만 그와 잤어요. 반드시 나를 사랑해주는 남자를 만나라고 당부했던 당신이 떠올랐어요.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남자를 만나면 내가 그저 그의 성적 유희의 대상으로 전락할까봐 당신은 미리 슬퍼했던 거지요. 그런데 나는 사랑하지 않는 남자와 잤어요. 사랑하지 않아도 남자와 잘 수 있다는 것. 그때 처음 알았어요. 하지만 당신 슬퍼 말아요. 나는 그 남자의 성적 유희의 대상이 아니었어요. 당신의 사랑이 있는 한 나는 어떤 누구에게도 유희의 대상이 아니에요. 박수영 〈내 영혼을 자유롭게 해준 그대여 중에서
나이 사십이 넘은 여자에게 무슨 사랑이 있겠는가. 애들 키우느라 삶에 정신이 없는 내게도 사랑이 있었던가? 내가 두 번씩이나 결혼을 하고 아이들 낳으면서 살아온 것을 보고 사람들은 엄청난 이야기가 숨겨져 있는 줄 안다. 그러나 내게 사랑은 남들과 똑같이 평범하게 아주 조용하게 왔다 갔다. 그리고 또 오려나? 아무튼 지금 생각해보면, 여고생 시절부터 뜨거웠던 불의 이십대를 지나 지금껏 살아오면서 사랑을 한 번도 마주하지 않고 살아왔다면 그 또한 거짓 아니겠는가……. 아, 사랑은 삶 속에 생활 속에 밥처럼 녹아 있는 것인가 보다, 밀~크 같은 사랑 말이다……. 공선옥 〈기억 속의 사랑〉 중에서
‘사랑’이라는 말이 우리 사회에서는 잘못 통용되고 있다. 특히 불륜 또는 혼외 사랑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그리고 그 사랑에는 반드시 섹스가 수반되어야만 하는가? 배우자 이외의 상대와 아무리 애절하고 지독한 사랑을 나누었을지라도 섹스가 수반되지 않으면 순수하고(죄가 안 되고), 운동이나 게임을 즐기듯 만나 하룻밤 회포를 풀고 지나가도 섹스를 함께 나누었다면 불륜이고 타락인가? 무엇이 진실인가……. 우리는 지금 모두가 사랑을 잘못 알고 이야기 하고 있다. 김갑수 〈영혼의 변명과 진실한 사랑의 이중주〉 중에서
선숙이 몸에서는 싸리꽃 향기가 났다. 찔레꽃 향기가 났다. 물 창포 내음이 났다. 산나리꽃 냄새가 났다. 오랜 가뭄 끝에 갑자기 소나기 내릴 때 맡아 본 흙 비린내가 났다. 물비린내가 났다. 안개 냄새가 났다. 이 세상에서 한 번도 맡아보지 못한 깊은 바다 속, 바다 냄새가 났다.
나는 그 바다 속으로 침몰하지 않으려 눈을 부릅떴지만 매번 질 수밖에 없었다. 가라앉으면 건져 올리고, 가라앉으면 건져 올리고, 숨을 가다듬기도 전에 또 엄청난 속력으로 추락하기 시작한다. 이번에는 맨땅이다. 낙하산을 펴야 하는데, 아래로 떨어지면 온 몸이 산산조각 날 텐데. 떨어지면 받아주고, 떨어지면 안아주면서 선숙이는 밤새도록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마름모꼴 창문으로 훤히 날이 샌 뒤에야 까무룩히 나는 가라앉았다. 죽음보다 깊은 잠이었다. 유용주 〈오래된 사랑〉 중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조차 너무 오만합니다. 아침에 뜨겁게 만나 점심 때 아프게 사랑을 하고 저녁에 쿨하게 헤어지는 모습 말입니다. 게임과 사랑은 엄연히 다른 거라고 생각합니다. 격렬함이 없는 사랑, 자신은 방치해 둔 채 상대를 통해서만 만족을 추구하는 사랑은 어째 컴컴한 방에서 혼자 키보드를 두드려대는 컴퓨터 게임처럼 보입니다. 일종의 자위행위 말입니다. 알고 보면 나 자신도 누군가의 보잘 것 없는 상대이며 또한 타인일 때가 있습니다. 사람은 매우 섬세한 감정 조직을 가진 동물입니다. 누구나 양성을 가지고 있죠. 우리가 흔히 아니마, 아니무스라고 부르는 남녀의 혼합 감정체 말입니다. 그런데 어느 한쪽을 방치하다 보면 감정에도 녹이 슬고 그만큼 감각이 둔화되게 마련이죠. 더 이상 상대가 보이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윤대녕 〈달에서 나눈 얘기〉 중에서
나는 지금도 여자가 그립다. 아니 예쁜 여자가 그립다. 잘 다듬어진 균형 잡힌 아름다운 여체의 소유자를 보면 가슴이 뛴다. 그건 그 자체로 아름다움이고 가치로운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간 수많은 여자를 만나고 또 그들의 육체에 카메라 앵글을 들이대고 살아왔음에도 진정 사랑을 나눈 여자가 내게는 없었음을 이제야 알겠다. 늘 서랍 한켠에 처박아둔 낡은 만년필 같던 아내가 진정 향기로운 파트너임을 알게 된 것도 이즈음이다. 서로가 서로를 구속하지 않을 때, 또한 서로가 서로에게 약간의 긴장감을 가지고 살 때 부부관계도 더 풍요로워지는 것은 아닐까. 난 예쁘고 아름다운 여자가 좋다. 윤광준 〈달아난 사랑을 위한 발라드〉 중에서
사랑에 모든 것을 거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그보다는 모든 것을 사랑을 위해 하는 편이 낫다. Do it for love! 일도 사랑을 위해서 하고 삶도 사랑을 위해 열심히 산다. 사랑만 하는 맹목보다는 사랑을 위해 무엇인가를 열심히 하는 것이다. 사실 알고 보면 모든 사람은 사랑을 위해 일하고 사랑을 위해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이상은 〈Do it for Love!〉 중에서
예기치 못한 일은 당신의 편지를 읽는 동안 내 안에서 일어났다. 왜 그랬는지, 결코 잘 안다고 할 수 없는 당신의 생이 그대로 이해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내 생의 어떤 부분이 환하게 설명되어지는 듯한 전율에 휩싸였다. 수정하기 어려웠던 어떤 오류, 어떤 결핍과 결락, 어떤 경직과 부자유 등이 한 순간 간결하게 정리되고 해소되는 듯한 홀가분함이었다. 이성을 향한 급작스런 끌림이나 절실함과는 무관한 ‘열림’이었다. 정길연 〈책 읽어주는 남자〉 중에서
사랑은, 미친 짓이다! 사랑은 확실히 광기의 소산이다. 사랑에 빠진 자는 정상적인 사고 능력을 잃어버린다. 사랑은 이성의 일시적인 작동 중지를 가리킨다. 사랑에 빠진 자가 아무리 이치에 맞게 제 사랑을 해명하려 해도 그것이 말하는 것은 사랑의 합리성과 필연성이 아니다. 그것은 사랑의 합리적인 설명이 되지 못한다. 필연성을 알려주지도 못한다. 바깥 관찰자가 보기에 사랑은 한갓 우연적이며 불합리한 감정의 작동이자 소모일 뿐이다. 사랑의 감정은 공유할 수 없다. 우리가 누군가의 사랑을 이해한다고 할 때,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미루어 짐작한다는 것이다. 합리적인 사유란 사랑의 적이다. 마지막 순간까지 냉정과 합리를 유지할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 자는 사랑에 빠지지 않을 수가 있으리라. 한마디로, 사랑과 이성 혹은 사유는 서로 적대적이며 모순적인 관계에 놓인다. 그러니, 사랑 앞에서 힘 자랑 하지 말자. 다친다! 최재봉 〈사랑은 미친 짓이다〉 중에서
집에 돌아와 누워 이름들을 떠올려보았다. 연애까지는 간 적이 없지만 난 누군가를 끊임없이 혼자서 좋아했다. 말을 하지 못해 버스 정류장에서 그냥 헤어지고 나중에 그도 날 좋아했다는 이야기를 생뚱맞은 사람에게 전해 듣기도 했다. 서로 결혼을 한 뒤여서 만나서 확인하고 할 것도 없었지만 하루 종일 애꿎은 그 남자애에게 욕을 해댔다. “무슨 남자가 고백할 용기도 없냐. 병신같이.”
내가 먼저 울었다. 괜히 서러웠다. 사랑이 그렇게 쉽게 옮겨가는 게 어이가 없어 울었다. 이젠 돌이킬 수 없다는 생각에 안타까웠다. 그러면서도 이상하게 깃발이란 시가 떠올랐다. 영원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 손수건, 손수건……. 하성란 〈사랑이라니, 가슴속 수많은 별들이라니〉 중에서
아, 매번 사랑을 쓰는 일은, 매번 사랑을 하는 일만큼이나 설레고 황홀하고 곤란하고, 그리고 피로한 일이다. 그래서 나는 또 소설 끝에 그녀를 빌려 쓴 것이리라. ‘사랑한 후엔 긴 비행을 마치고 내려왔을 때처럼, 귀가 먹먹하고 피로가 몰려온다. 그녀는 휴식이 필요하다’고. 사랑은 우리 몸의 염분, 우리 영혼의 소금과 같다. 내가 아는 한 소설은 인간을 탐구하는 학문, 인간학이다. 사랑은 인간의 영역을 확장시켜주는 몇 가지 감정 중 가장 강력한 것이다. 나는 그 동안 사랑을 얼마나 쉬었던가, 그러고 보니 또 다시 사랑을 쓸 시간이 된 것 같다. 함정임 〈사소하지만 치명적인 사랑〉 중에서
한때는 유일한 사랑만이 진실한 사랑인 줄 알았다. 그러나 이제는 그것이 유일한 진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겠다. 유일하다는 것처럼 위험하고 독선적이고 이기적인 것은 없다. 사랑은 그게 아니다. 더 크게 볼 때 함께 할 수 있는 너그러움, 포용, 이해, 관용이 함께 하지 않는 눈물이 없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유일한 사랑이라는 말은 집착과 독선과 아집에 다름 아니다. 사랑은 짤츠부르크의 암염과도 같이 오래 묵고 곰삭아서 스스로 향기로워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박범신 〈유일한 사랑이라는 말에 깃든 함정〉 중에서
내 숙제의 핵심 중 하나는 사람의 관계를 관류하는 시혜 의식施惠意識과 수혜 의식受惠意識의 마찰과 윤활이다. 시혜 의식은 관계의 끝을 알리는 징후라는 것이 나의 잠정적 결론이다. 행복한 관계에 시혜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따라서 다만 수혜자가 있을 뿐이다. 그 까닭은, 언제나, 충분히 고마워하는 수혜자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 아내가 자신을 시혜자로 여기고 있는지 수혜자로 여기고 있는지 그게 나는 조금도 궁금하지 않다. 아내는 나를 위해 존재하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단지 나 자신을 수혜자로 여길 뿐이다. 내가 아내를 위해 존재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의 이 믿음은 꽤 강고하다. 결혼은 지고지순한 가치를 창출하는 소중한 양식이다. 그를 통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인 모성(어머니)을 만나게 된다 우리는. 따라서 결혼은 미친 짓이 아닌 소중한 선택과 행동의 결과이다. 그리고 아내(어머니)는 남자를 위해 존재하는 종속된 사람이 아니다. 이윤기 〈결혼은 미친 짓이 아니다〉 중에서
기본정보
ISBN | 97889974540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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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출시)일자 | 2012년 09월 07일 |
쪽수 | 280쪽 |
크기 |
140 * 210
* 20
mm
/ 462 g
|
총권수 | 1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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