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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작가들은 “연구자"이자 “관찰자”로서 전시 프로젝트에 임했으며, 전시된 작품들은 자갈마당에 관한 혹은 자갈마당으로부터 촉발되는 화두를 다양하게 모색했다. 특히, 전시장 다른 한 공간에 마련된 자갈마당 관련 아카이브는 참여작가들의 작품에 대한 ‘독해'를 도와주는 ‘거대한 캡션’으로서 기능했다. 출판사 사월의눈 디자이너 정재완도 이 전시에 참여했으며, 작품은 당시로서는 비가시적 형태의 ‘출판 프로젝트'였다. 전시 종료 후 관련 논의가 진행되면서 전시에 참여했던 사진가 오석근, 전리해, 황인모를 주축으로 사진책 〈자갈마당〉을 발행하자는 최윤정 큐레이터의 제안이 있었으며, 책 작업은 지난 2017년 9월을 시작으로 본 궤도에 오르게 된다. 사진책 〈자갈마당〉은 이렇듯 2016년의 전시로부터 시작했으며, 사진가 세 명의 다양한 사진연작을 책이라는 공간에 담아 내는 것이 과제였다.
오석근
오석근 작가는 묵직하고 어두운 톤으로 자갈마당을 포착했다. 책에 수록된 그의 사진은 ‘축'(2016~2017)으로서, 이는 다시 ‘삼면화(tryptych)' 사진과 자갈마당 건축물 사진으로 나뉜다. ‘삼면화'는 세 장의 사진을 하나의 작품으로 붙여 놓음으로써 사진들간의 이질감을 자아낸다. 몽타주 효과가 돋보이는 이 시리즈에서 오석근은 성매매종사자들의 신체부위와 자갈마당의 건축물 사진을 영화에서의 ‘쇼트'처럼 연결시킴으로써 자갈마당의 가장 깊은 심연(고통, 구속, 상처 등)과 그 심연을 가둬놓고 있는 상징으로서의 건축물이 갖는 간극을 환기시킨다. ‘축'은 자갈마당 부근의 건축 풍경을 찍은 시리즈로서, 오석근 작가의 평소 관심사인 한국적 근대화에 대한 시선이 자갈마당 건축물이라는 대리물로 나타났다. 자갈마당이 한국적 가부장제와 자본주의가 잉태한 역사적 파생물인 만큼 신축 아파트와 낡은 자갈마당 건물, 건물 외벽에 겹겹이 붙은 외장재들은 자갈마당 100년에 대한 환기이자, 한국적 근대화에 대한 발언으로서 기능한다.
전리해
전리해 작가는 일찍이 2015년부터 자갈마당에 관한 관심을 갖고 이 주제를 다뤄왔다. 판소리 영상, 소설 등을 통해 자갈마당에 관한 의문을 꾸준히 던졌다. 사진책 〈자갈마당〉에 수록된 전리해 작가의 사진은 이후 새로 작업한 시리즈로서, ‘자갈마당'(2016~2017)은 활동가들과 함께 방문했던 자갈마당의 업소 내부와 외부 사진이며, ‘태연한 기울기'(2016)는 자갈마당 인근 지역을 흑백으로 담아낸 연작이다. ‘자갈마당'의 실내를 찍은 전리해의 사진은 기존의 성매매집결지에 관한 시각적 전형에서 물러나 있다. 성매매집결지라는 설명이 없다면 그의 사진들은 주인이 여성이라고 짐작되는 일반적인 방 사진의 모음으로 보인다. 전리해 작가는 섬세한 시선과 화사한 톤으로 업소 내부의 벽지와 구조 등을 담아냈다. 꽃장식, 키티, 파스텔톤의 색감 등 일면 화사해 보이는 ‘장식적 표면'들은 성매매종사자들이 처한 암흑적 현실과 극적으로 대비된다. ‘태연한 기울기'는 자갈마당 인근에 자리한 북성로 일대 및 달성공원(동물원)을 포착한다. 애써 태연해 보이지만 태연하지 않은 자갈마당 안과 밖의 현실이 새롭게 보인다.
황인모
다큐멘터리 사진에 전념해 온 황인모 작가는 이번 책에서 두 시리즈를 선보였다. 대구여성인권센터의 사진기록을 담당하기도 했던 황인모 작가는 ‘자갈마당 26호'(2016)와 ‘사물의 기억'(2016)을 책에 담아냈다. 전자는 활동가들과 함께 자갈마당 내 위치한 한 업소를 단시간(길어야 20분이라고 한다) 내 스냅샷의 방식으로 촬영한 시리즈이다. 전리해 작가와 황인모 작가 모두 비슷한 계기로 업소를 방문하고, 촬영 시간 또한 30분 미만으로 짧았음에도 불구하고 대상에 대한 접근법이 전혀 다르다는 것이 흥미롭다. 황인모 작가는 감성적 접근과 조형적 해석 보다는, 객관적 기록에 충실했다. 그의 업소 사진들은 차갑고, 냉랭하다. 작가의 시선을 애써 반영하기 보다는, 긴박한 성매매 현장을 담아내는데 주력한다. ‘자갈마당 26호'와는 다른 극점에서 자갈마당을 환기시키는 작업이 ‘사물의 기억'이다. 황인모 작가의 흑백사진이 돋보이는 이 시리즈는 사진으로 찍은 일종의 정물화이다. 각 사진에는 성매매종사자들의 일상이 사물로 전달되고 있다. 종사자들이 흔히 사용하게 되는 사물들(음료, 약품 등)에는 이들이 처한 비극적 환경을 가감없이 말하는 종사자들의 인터뷰가 동원된다. ‘자갈마당 26호'가 차가운 다큐멘터리라면, ‘사물의 기억'은 자갈마당의 일상에 대해 되돌아 보게 만드는 의인화된 풍경이다.
도해적 캡션(illustrative caption)으로 주선되는 사진과 글의 관계
집합적 시선 안에 혼재된 개별적 시선
‘자갈마당’이라는 장소를 공유하면서도, 각자의 주제의식이 드러난 세 작가의 사진시리즈는 사진책 〈자갈마당〉에서 별도의 캡션이나 작가명 없이 뒤섞인채 배치되었다. 책의 말미인 인덱스에 도달해야만 각 사진가의 작품을 ‘판별'할 수 있다. 이는 세 작가의 시선을 일종의 집합적 시선으로서 묶어내기 위함이다. 하나의 ‘콜렉티브'로서 세 작가의 시선은 제시되되, 책은 세 작가의 서로 다른 유형과 성격의 사진들을 교차시키면서 자갈마당에 입체적 바라보기를 유도한다.
도해적 캡션
책의 편집과 디자인에서 가장 주안점을 둔 것은 사진과 텍스트의 관계였다. 큐레이터 최윤정이 앞선 2016년도 전시 기획문에 썼듯이, 예술가들은 당사자들이 아닌 이상 어디까지나 “바깥의 행위자"이다. 예술가들의 시선과 발언은 제아무리 성매매종사자들과 그들의 환경을 연구하고 탐구했다고 해도 ‘타자화'라는 행위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않다. 책 〈자갈마당〉은 이러한 예술적 행위가 지니는 한계를 작가들과 공유하고, 사진에 ‘도해적 캡션' 덧붙이기를 시도했다.
오석근 작가의 ‘트립텍' 연작이 게이트폴드 방식으로 삽입된 파트를 중심으로 크게 1부(일제강점기부터 1990년대)와 2부(성매매방지법이 제정된 2004년부터 오늘까지)로 나뉘는 〈자갈마당〉에 작가 전리해와 황인모의 사진들이 자갈마당 관련 사건 연대기순으로 배치되었다. 왼쪽 페이지 상단에는 주요 사건, 사고를 담은 연표와 그 밑으로는 관련 사실을 ‘보고'하는 신문기사나 관련 문서들이 인쇄되었다. 이 ‘텍스트'는 오른쪽에 실린 사진에 대한 ‘도해적 캡션(illustrative caption)’'으로서 기능한다. ‘도해적 캡션’이라 함은 기존 문자언어 중심의 캡션에 도판, 신문기사 등의 그래픽 이미지가 추가된 캡션을 뜻한다. 열린 기호로서 자의적 해석이 언제나 가능한 사진이기에 각종 연표와 도판, 신문기사 등으로 구성된 ‘도해적 캡션'은 사진의 의미를 특정 해석망 안에 제한한다. 정치사회 및 성매매 관련 사건사고가 제시된 연표 및 사건 관련 기사, 여성인권운동 관련 자료들이 사진과 함께 평행하면서 자갈마당 사진에 대한 설명문으로서 기능한다. 물론 이는 편집상의 의도일 뿐 독자의 ‘읽기' 방식은 편집이라는 의도된 노선으로부터 자유롭게 이탈할 수 있다.
‘도해적 캡션'에 해당하는 연표와 도판, 신문기사 등은 대구여성인권센터로부터 협조 받았다. 신박진영 소장과 소통하며 적재적소의 ‘캡션'이 자리잡을 수 있도록 여러 차례 수정 과정을 거쳤다. 대구여성인권센터는 20여년 이상 대구 자갈마당 관련 자료를 아카이빙해 왔으며, 이를 2016년 ‘발화, 문장의 외부에 선 행위자들’ 전시에서 선보였다. 사진과 ‘도해적 캡션'이라는 편집의 큰 축은 해당 전시로부터 영감을 받았다.
그간 약 20년 가까이 대구여성인권센터는 성매매집결지인 ‘자갈마당’에 대한 문제에 집중해왔고, 정책 제안 발언은 물론 기록물 자료수집 등 연구작업도 꾸준히 진행해왔다. 그들의 문제의식은 성매매집결지의 폐쇄는 마땅한 일이나, 당사자 여성들의 생존에 대한 아무런 구체적인 대책도 없고(타 집결지로의 유입), 인권유린의 현장으로서 역사에 대한 성찰도 없이 ‘재개발’의 명목으로 마구잡이로 장소 자체가 사라져버리는 것에 대한 우려에 있었다. 이에 대구여성인권센터는 몇 년 전부터 지역연구가들과 자갈마당이 사라지기 전에 그곳을 기록해야 한다는 논의들을 진행해왔고, ‘자갈마당_기억변신프로젝트2016’은 그 과정에서 방법론으로서 구상된 것이었다.
- 최윤정(독립큐레이터), “자갈마당 100 년의 역사와 사진가 3 인의 시각예술아카이브” 중
압축성장, 가부장제, 인권유린 등 한국적인 그 모든 것의 총체, ‘자갈마당'
“2016년 처음 내가 마주한, 자갈마당이 위치한 도원동 일대는 고층아파트 공사가 한창이었다. 지금은 이미 다 지어져, 세대별 입주 중인 것으로 안다. 주지하다시피 한국의 성매매 집결지는 ‘유곽’이라는 이름으로 1876년 개항 이후 일본인 거류지에서 시작하여 조선 전체로 확산된 공통의 역사를 갖는다. 따라서 전국 성매매집결지들의 상황을 보자면, 그 태생은 물론이거니와 변화나 전개 과정에서도 서로 비슷한 추이를 보이고 있다. 최근 전국적으로 성매매집결지 폐쇄에 대한 지자체들의 논의가 한창이다. 그러나 그 이면을 살피자면, ‘인권에 대한 문제의식의 발로’는 당위를 꾸며주는 하나의 수식일 뿐이고, 결국은 자본과 재개발이다. 그로 인해 해당 장소에서 벌어졌던 비인도적인 행태들이나 인권에 대한 근본적인 사유는 성찰되지 않고 있으며, 애초부터 없었던 곳인 양 다뤄지고 있다는 것이 관련 단체들이 우려하는 문제적 지점이다.”
- 최윤정(독립큐레이터), “자갈마당 100 년의 역사와 사진가 3 인의 시각예술아카이브” 중
한국의 성매매집결지는 여성인권 유린의 현장이자 한국적 압축성장과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질서가 혼탁하게 결합된 장소이다. 성매매방지법 제정 및 인권 활동가들의 꾸준한 활동 덕분에 관련 문제는 매체의 수면 위로 올라왔다. 그리고 그 성과 중 하나로 지역별 성매매집결지는 폐쇄 수순을 밟고 있다. 대구 자갈마당도 예외가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지점에서 조금은 끈질긴 질문을 던져야 한다. 장소의 폐쇄만이 과연 답이 될 것인가, 여성인권 유린이 과연 장소의 ‘삭제'만으로 뿌리 뽑힐 것인가, 종사자들은 이후 어디로 가야할 것인가. 현재 보다는 ‘폐쇄 이후'를 질문하고 준비해야 하는 이유이다. 그리고 이 책이 그 ‘이후'의 시간들에 대한 작은 가이드라인이 되었으면 한다.
장소의 존재유무는 ‘역사적 복기' 방식에 영향을 미친다. 언젠가는 사라지는 그 곳에 이 책이 자갈마당의 장소성을 대변할 수 있기를 바란다. 집결지 폐쇄와 동시에 부동산 문제가 붉어지는 현상은 100년 동안의 여성인권 유린의 현장이 ‘이름만 다른' 또 하나의 인권 유린 현장이 될 수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폐쇄와 함께 장소를 기억하고, 성매매집결지라는 기표 너머 복잡한 의미작동체계를 이해해야 하는 이유이다. 그 노력 없이 한 세기의 착취적 구조는 다른 이름으로 재생산되기 마련이다.
기본정보
ISBN | 9788996937388 |
---|---|
발행(출시)일자 | 2017년 12월 31일 |
쪽수 | 156쪽 |
크기 |
130 * 210
mm
|
총권수 | 1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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