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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 기업 제국 파나샤에 의해 폐허 속 바깥세상으로 파견된 주인공 유울모가 업무를 마치고 밀양림으로 복귀하면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사회의 모든 일원이 의식화 및 통제되고 있는 도시국가 밀양림. 천국 같은 낙원 속에서도, 지옥 같은 바깥세계에서도 인간은 또 다른 세계를 찾아 나선다. 정체불명의 여인 미아보라와 주인공 유울모가 벌이는 바깥세상을 향한 디아스포라, 영원불사의 마을 샹그릴라에서 죽지 않는 할머니의 죽음 저편에 대한 갈망과 자살 등을 통해 인간의 본성을 폭넓게 망라한다.
작가정보
저자 김진우는 SF 소설로 등단한 이래 예술, 인문학, 과학 등에 대한 지적 호기심과 독특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소설, 에세이, 희곡 등 다양한 장르에서의 글쓰기 활동을 하고 있다. 특히 그가 관심을 기울이는 탐구 대상은 그동안 파헤쳐지지 않은 지적·미적 동토(凍土)와 신대륙이다. 아울러 모든 장르를 융합하거나 해체하는 뉴웨이브· 컬트 스타일에 매력을 느껴 왔으며, 미래 세계에 대한 공상적 시뮬레이션도 관심 영역 속에 있다. 장편소설 『애드리브』(2012년), 에세이집 『하이테크 시대의 SF 영화』(1996년), 희곡 『스페이스 치킨 오페라』(2010년) 등을 발표. 아울러 1990년대 중반부터 현재까지 다양한 이슈와 소재에 관심을 갖고 신문, 잡지 등에 기고해 왔다. 음악 분야에서도 작곡가, 피아니스트, 기타리스트로서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단독 콘서트 「Play the Piano」(판아트홀, 2001년), 「Musik Rocket」(창무포스트 극장, 2004년). 음악 앨범 1집 「LUNA」(2006년), 2집 「졸린 영화」(2008년), 음악극 「Origin」(2011년) 발표. 아울러 다양한 아티스트들과 새로운 예술적 미감을 찾기 위한 실험적 작업을 해 왔다. 공연 기획·연출 분야에서도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그는 ‘소통’을 주제로 연극, 세미뮤지컬, 렉처 퍼포먼스 성격을 가진 다양한 작품들을 발표해 오고 있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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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 …… 주위가 다시 조용해졌을 때 그녀는 애원하듯 내게 다시 말했다.
“밀양림으로 날 데려가 주세요.”
그녀는 고깃덩어리에 불과하다. 그녀는 그것을 팔고, 나는 그것을 먹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고기가 도대체 어쩌자고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이고 있단 말인가. 그녀는 잠자코 있어야 한다.
■ …… 태양의 불이 높이 치솟았다. 세상을 한순간에 궤멸시켜 버릴 기세였다…… 그날 이후, 마치 거대한 불도마뱀 살라만드라와 같이 변한 태양의 입김에 지구는 화염지옥으로 변했고, 만년빙은 녹아내렸다. 그리고 더운 바다는 해안가를 집어삼켰다. 그 사이 숱한 인간들이 거세게 덮친 열파에 목숨을 잃었다. …… 급기야 내륙의 곳곳에 종말의 상징과도 같은 버섯구름이 피어올랐다. 지구상의 숱한 생명들이 사라지고 오랜 핵겨울이 시작됐다. …… 그렇게 세상은 끝나는 듯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하늘을 가렸던 검은 장막이 걷히면서 멀어져 갔던 희망이 다시 찾아왔다. 지구상의 생존자들이 다시 등장하는 인류사의 제2막이 올랐던 것이다.
■…… 파견 기간 3년. 태어나서 처음으로 밀양림이란 둥지를 떠나 바깥세상에서 보냈던 그 기간은 참으로 절묘하게 가늠된 것이었다. 낯선 세계, 그 불안 속에서의 더듬이질과 적응…… 그러다가 모든 것에 익숙해져 긴장감을 잃어버리고 타성에 젖기 시작할 무렵의 복귀였다. 나를 바깥세상으로 내보낸, 기업 제국 파나샤의 러페트사는 아마 그러한 점을 고려해 3년이란 기간을 정했으리라.
■…… “잠시 후 밀양림에 착륙하겠습니다. 승객 여러분은…….”
기창 밖으로 밀양림의 모습이 보였다.
3년 전 비행기를 타고서 처음으로 밀양림의 실제 외관을 내려다보았을 때의 느낌이 되살아났다. 거대해 보이면서 동시에 작은 모형 세트 같은 그 이중적 느낌. 무릇 당연한 그 느낌이 내게는 꽤 이상스럽게 여겨졌다.
역사다리 꼴의 성곽 도시 밀양림은 마치 바다에 떠 있는 배를 연상시켰다. 인구 120만 명이 타고 있는 거대한 배. 그러나 점점 그곳에 접근할수록 배의 모양은 사라지고 대신 푸른 물이 그득히 담긴 거대한 접시 모양이 살아났다. …… 그 호수는 빛의 조화로 만들어진 신기루와도 같은 것일 뿐이었다. 태양 에너지를 흡수하기 위해 촘촘히 깔려 있는 수많은 수정 박편들이 만들어 낸 오묘한 빛의 조화였다.
■……다시 먼 기억 속으로 빠져드는 할머니를 다시 현실의 둔덕 위로 끌어올리기 위해 나는 큰 목소리로 물었다.
“건강은 어떠세요?”
할머니는 한숨부터 내쉬었다.
“여기에 사는 노인들은 모두들 건강하지. 그게 탈이야. 온갖 호르몬 주사를 맞고 유전자 치료를 해서 200세를 넘기면 뭐하겠니. 몸속의 시계는 거의 멎은 상태인데 말이야. 기운이 떨어지고 정신이 흐려지면 그만 끝내야 하는 거야. 질질 끄는 것은 구차스러운 짓이야. 나는 얼마 전 내 담당 간호사에게 이젠 우리 집에 올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또 내 옷과 신발, 의자, 변기, 침대에 붙어 있는 온갖 검진기들을 모두 없애 버렸지.”
…… “제가 보기엔 앞으로 몇십 년 동안은 지금처럼 정정하실 것 같아요. 그리고 그때가 되면 뇌가 죽어 가는 걸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거예요. 안다라의 거울 얘기를 들어 보셨나요?”
“아니.”
“안다라라는 천재 과학자가 괴질로 죽어 가는 아내를 위해 만들어 낸 그 기계는 사람의 기억을, 어쩌면 영혼까지도 고스란히 복제해 낼 수 있대요. 누구든 그 거울에 모습을 비추면 자기 분신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거예요.”
할머니는 피식 웃었다.
“그거 끔찍한 얘기로구나.”
■……밀양림으로 돌아온 지 30일째가 되던 날 밤.
나는 퇴근 후 오랜만에 집에서 한가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창에 뜬 달을 보며 상념에 빠져 있을 때였다. 초인종이 울렸다. 나는 미랑이 찾아왔을 것으로 짐작했다. 비늘처럼 몸에 착 달라붙은 옷을 입고 인터몬 냄새를 풍기며 문밖에 서 있는 그녀를 상상했다.
“누구?”
“윗집에서 왔습니다.”
미랑이 아니었다. 문밖에서 낮고 음산하게 느껴지는 여자 목소리가 울렸다. 무언가 성가신 일이 벌어질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나는 문을 열고 고개를 내밀었다.
복도에 두건을 쓰고 긴 가운을 입은, 언뜻 보기에 수녀 같은 한 여자가 서 있었다.
■……미아보라, 그녀도 미랑처럼 음의 성기를 갖고 있을까? 어쩌면 여자이되, 순식간에 남자의 정기나 영혼을 빨아들이는 요사스러운 음의 성기를 갖고 있을는지도 모른다.
고루한 회색 가운 밑에 육식 식물처럼 입을 쩍 벌린 채 먹이를 노리고 있는 그녀의 심벌!
남성, 혹은 중성 인간은 아닐까?
아무튼 그녀는 내 마음속에 흉물스런 마리오네트가 돼 있었다. 19세기말적인 괴괴한 기운과 더불어 온갖 의혹과 망상을 불러왔다.
미아보라, 그녀는 마니처럼 빛나는 밀양림의 여자들, 값싼 모조품 같은
출판사 서평
존엄한 도시를 위한 하찮은 인간들의 사투가 시작됐다!
소셜 포비아
● 책 소개
인간은 본능적으로 속해 있는 곳으로부터 일탈을 꿈꾸며 이상적인 사회를 꿈꾼다.
설사 그곳이 모두가 꿈꾸던 ‘낙원’이라도 하더라도, 인간은 시간이 흐르면 ‘또 다른 낙원’을 꿈꾸기 시작하는 것이다!
김진우 장편소설『소셜 포비아』는 멸망한 인류 문명의 세계, 즉 포스트 문명 세계를 배경으로 한 SF 소설이다. 이 작품은 태양 표면의 대폭발, 즉, ‘슈퍼플레어(superflare)(초화염)’ 현상으로 지구에 아마겟돈과 같은 대재앙이 닥치고 인류가 핵전쟁을 벌이면서 지구 문명이 초토화되는 것으로 그 서막을 열고 있다.
이후 오랜 핵겨울의 시대가 지나자, 인류는 더 이상 태양에 기대지 않는, 그래서 하늘이 없는 공간인 새로운 인류의 낙원 도시, ‘밀양림’을 건설하여 인류사 제2막을 연다. 그리고 거대 기업 제국 파나샤에 의해 폐허 속 바깥세상으로 파견된 주인공이 업무를 마치고 밀양림으로 복귀하면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밀양림은 분명 유토피아라고 할 수는 있지만, 그곳은 파나샤에 의해 디자인된 도시국가로서, 사회의 모든 일원의 의식이 철저하게 균형 잡힌 상태로 유지된다. 즉 ‘하느님’이라 불리는 중앙 통제 인공 지능체와 ‘천사’라 불리는 기계들에 의해 사회가 완벽한 시스템 속에서 순조롭게 돌아가는 것이다. 따라서 바깥세계 인간들은 저마다 낙원을 꿈꾸며 ‘밀양림’을 찾아 나선다. 한편, 모두가 ‘낙원’이라고 꿈꾸는 밀양림에 있는 사람들도 바깥세계를 동경하며 여행을 떠나기 시작한다.
● 출판사 리뷰
인간은 호모소시올로지쿠스(Homo sociologicus)인가,
아니면 정반대로 호모비아토르(Homo viator)인가?
의학 용어인 ‘소셜 포비아(Social Phobia)’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 당황하거나 바보스러워 보일 것 같은 사회 불안을 경험한 후, 다양한 사회적 상황을 회피하게 되고 이로 인해 사회적 기능이 저하되는 정신적 질환이며, 보다 구체적으로는 ‘사회 기피증(혐오증)’으로 나타나게 된다.
김진우 작가는 『소셜 포비아』라는 작품 속에서 폐허의 지구촌과 낙원의 도시 밀양림이라는 양극단의 환경 속에서 주인공 유울모, 미아보라, 할머니 등 다양한 캐릭터를 통해 인간이 가진 원초적인 본능과 불안, 그리고 또 다른 낙원을 향한 갈망을 해부하고 있다. 등장인물의 캐릭터들은 사회적 동물(호모소시올로지쿠스), 도구적 인간(호모파베르), 놀이하는 인간(호모루덴스), 성애적 인간(호모에로스), 희망하는 인간(호모에스페란스), 게임하는 인간(호모루두스), 생태 파괴적 인간(호모라피엔스), 통신하는 인간(호모텔레포니쿠스), 떠돌이 인간(호모비아토르) 등 인간의 본성을 거의 망라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작가는 특히 그 가운데서도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적 관점에 정면으로 반기를 들 듯, 떠돌이 인간인 ‘호모비아토르형’의 캐릭터들을 내세워, 인간은 원래부터가 지옥 같은 현실 사회에서건, 천국 같은 낙원 사회에서건 사회적 기피증(소셜 포비아)을 떨쳐 내지 못하여, 탈사회적 떠돌이 존재, 즉 또 다른 낙원을 찾아 떠나는 ‘소셜 포비안(Social Phobian)’이 됨을 극단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다시 말하면, 인간의 사회적 동물성과, 또다시 사회에 안주하지 못하고 떠나는 떠돌이 인간, 이 두 상충적인 관계를 유토피아적 가공 도시 ‘밀양림’이라는 무대에서 극명하게 보여 주는 것이다.
특히 정체불명의 여인 미아보라와 주인공 유울모가 꿈꾸는 바깥세상으로 향한 디아스포라(diaspora)적 갈망이나, 영원히 죽지 않는 할머니의 죽음 저편에 대한 갈망과 자살은 그 극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기본정보
ISBN | 9788996876663 |
---|---|
발행(출시)일자 | 2013년 01월 14일 |
쪽수 | 320쪽 |
크기 |
135 * 224
mm
|
총권수 | 1권 |
Kl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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