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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상추는 아버지 노철의 명을 받고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아버지 역시 열아홉 살 때부터 일기를 썼다. 이것은 일기를 쓴 사람은 노상추이지만 노상추 개인만의 일기가 아님을 알 수 있다. 노상추의 일기는 집안의 가장이 가계를 운영하면서 써나가는 ‘가계일지’ 또는 ‘가족일기’이다. 그렇다고 일기가 가문의 기록인 것만은 아니다. 기록들 사이사이 비치는 그의 고민과 생각이 남자로서, 가장으로서, 무인으로서 그 시대를 살았던 노상추의 면모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노상추가 남긴 일기는 자신과 가족의 역사를 복원하는 차원을 넘어 18세기 후반, 그리고 19세기 전반의 조선을 살다가 수많은 사람들의 일생이며 역사이다. 일기 속에 등장하는 무수한 사람들은 종횡으로 얽혀 있는 그의 인간관계를 보여주며, 시기별 그리고 그의 공간적·사회적 위치에 따른 변화양상을 나타낸다. 개인의 일기를 통하여 가족의 탄생, 결혼 제도와 성 풍속도, 노비의 존재, 당시 물가 정보, 과거시험 열풍과 관직 생활기 등 당대의 일상사를 만나볼 수 있다.
작가정보
서강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석사 및 박사학위를 받은 후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연구원으로 9년 동안 근무했다.
석사과정 때 우연히 전남 구례의 운조루에 보관되어 있던 고문서를 접한 후 고문서에 입문하게 되었다. 전국을 돌며 고문서를 조사하고, 이를 정리?분석하는 것이 오랜 일상이 되어 있을 즈음에 재산상속 문서인 ‘분재기分財記’를 분석하여 '조선전기의 재산상속'이라는 제목으로 박사학위 논문을 집필하였다. 이후에도 고문서의 양식론과 고문서를 통한 조선시대 가족사로 관심 영역을 확장해가면서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다. 최근에는 양반 신분의 일기를 통해 본 조선시대 양반가의 일상과 남녀관계, 연망(聯網)을 분석하는 데에도 관심을 쏟고 있다.
저서로 《조선시대 재산상속과 가족》(2004)과 《의식주, 살아있는 조선의 풍경》(공저, 2006) 등이 있으며, ?조선시대 分財文記와 明代의 分家文書 -근세 한국과 중국의 재산분할 관행 및 문서 비교?(2006)와 ?조선후기 양반의 일상과 가족내외의 남녀관계-노상추의 <일기>(1763-1829)를 중심으로?(2006) 등의 논문이 있다.
목차
- ㆍ가족일기와 그 주인공들
1. 노씨가의 실록, 한 세기의 기록
일기라는 제목의 가족사
일기의 저자와 주인공
인생의 굴곡과 일기의 내용
어떻게 써 내려갈까
2. 일기의 주인공 3대
정신적 지주, 조부 죽월공
가정적인 아버지
장남 아닌 장남
ㆍ가족의 탄생
3. 출생에서 사망까지
출산, 삶과 죽음의 귀로에 선 모험
출생의 축복
흔적 없는 출생
가족구성원
4. 결혼
누이가 하회 명문가로 시집가기까지
나의 두번째 혼례와 마지막 혼례
상대 고르기 전략
5. 부부관계
세 아내를 그리워함
재혼하는 남성, 수절하는 여성
해로, 불가능한 꿈
첩, 또 다른 동반자
6. 또 하나의 관계
변방생활과 기생
결코 일시적이지 않은 인연
석벽이와 옥매
ㆍ꿈과 인생
7. 붓을 버리고 무예의 길로
할아버지의 뒤를 잇다
과거시험 예행연습
무과에의 도전
무과급제로 가는 마지막 관문
8. 과거합격과 관직의 길
조상님께 합격을 고함
드디어 관직에 입문하다
내직에서 외직으로, 다시 내직으로
관직생활에 대한 소회
9. 내 뒤를 이은 동생과 아들
영중의 도전, 13전 14기
관운은 끝내 따라주지 않고
붓을 던지고 내 뒤를 따른 장남 익엽
10. 피로 맺은 자식, 의리로 맺은 자식
가문을 이끌어갈 유자(猶子)
무과의 맥을 이은 장남 익엽
끝까지 내 곁을 지켜 준 막내아들
열부로 추앙된 셋째 손부 정씨
ㆍ가계경제와 생업
11. 과행(科行)으로 재산을 탕진하고 공명을 얻다
재산상속
14년간의 과행
빚을 얻어 빈곤한 행차에 나섬
12. 노비, 가족과 재물의 경계
노동력 제공자로서의 노비
생활의 동반자
관리하는 자와 도망하는 자
쉽게 해체되는 노비 가족들
13. 농사로 가족의 생계를 꾸리다
이앙하고, 김매고, 수확하기까지
물가에 대한 관심
매매와 환퇴, 서울 인심에 한탄하다
ㆍ사고와 세계관
14. 꿈과 욕망 사이
출세에 대한 욕망의 표출
선인들은 항상 곁에 있다
가족ㆍ지인을 만나는 장
15. 자유로운 성, 경직된 사고
기생 한 명 잡으려다 대여섯 남성의 목숨을 앗아간 인동옥사
남편 때문에 목숨을 버린 열부들
자유로운 성, 경직된 사고
관의 개입은 어디까지
16. 소회와 세계관
자수성가에 대한 자부심
그러나 그도 양반일 뿐
사회와 정치현실에 대한 인식
ㆍ은퇴하여 다시 집으로
17. 종족 그리고 지역공동체
씨족모임, 종계
송곗날 벌어진 살인사건
지역공동체 동회.향회
18. ‘집’이라는 공간과 가족
좋은 곳만 있다면 이거(移居)도 자유자재로
정착할 집을 짓다
종가를 짓고, 가묘를 모시고
변방의 관사도 내 집 짓듯이
마지막 시간과 공간, 그리고 가족
책 속으로
부모와 형제, 자식과 손자에 이르기까지 4대에 걸친 가족의 삶의 궤적을 담고 있는 노상추의 일기를 통해 한 세기를 성실하게 살다간 조선후기 무부와 그 가족의 일생을 재구성하는 일은 역사학을 하는 나로서는 정말 흥분되는 일이다. 일기 속에 등장하는 무수한 인명들은 종횡으로 얽혀 있는 그의 인간관계망을 보여주고 있으며, 시기별 그리고 그의 공간적?사회적 위치에 따른 변화 양상을 나타내고 있다. 때로는 일기의 저자가 되고 때로는 냉정한 관찰자가 되어 그의 세계관을 주관적?객관적 시각에서 모두 음미해봄으로써 제도사와 거시사에 지친 역사학적 감수성을 일깨울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 9쪽 ‘머리말’ 중에서
그가 남긴 일기는 자신과 가족의 역사를 복원하는 차원을 넘어 18세기 후반, 그리고 19세기 전반의 조선을 살다간 수많은 익명의 화자를 대변하는 일생이며 역사이다. 그런 점에서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 모두는 21세기 역사의 주인공이다. 매우 개인적인 열망들, 다양한 성향의 정치적 견해들, 그리고 모든 고민들이 차후에 노상추의 일기처럼 어떤 매체를 통해 역사로 복원될지 생각해보는 것만으로도 가슴 벅찬 일이 아닐 수 없다.
― 243쪽 ‘책을 마치며’ 중에서
일기에 기재된 노상추의 12명의 자녀 중 족보에 등재된 4명을 제외하면, 2/3에 해당하는 존재가 흔적 없는 삶을 살았다는 의미가 된다(도 1 참조). 그들은 아명만 일기에 수록되어 있거나, 아예 이름이 쓰여 있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졸년이 확인되는 4명은 모두 6세 미만에 사망했다. 졸년이 확인되지 않는 이들은 혼인 이전에 사망했거나 정식 혼인을 거친 부부 사이에서 출생하지 않은 경우이다. 일기가 없었다면 한 가족의 역사에서 2/3의 구성원이 흔적 없이 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은 살아 있는 생생한 역사, 인간 중심의 역사를 연구하겠다고 자부하는 연구자들을 두렵게 하기에 충분하다.
― 54쪽, ‘출생에서 사망까지’ 중에서
노씨가에서 부리던 노 점발이 도망한 1767(영조 43)년 2월 14일, 노상추는 일기에 ‘그의 죄는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라 썼다. 점발을 찾은 것은 그로부터 6개월 후였다. 비산(飛山)이라는 곳에 사는 딸 집에 온 점발을 그 곳 사람인 김상화(金相華)가 쇠사슬로 묶어 노상추의 숙부인 노수(盧洙)의 집으로 보내주었다. 이를 받은 숙부는 점발이를 묶은 채 가두어두고 노상추에게 알렸다. 그로부터 사흘 뒤 노상추는 노를 시켜 점발이를 붙잡아 왔다. 그리고 자신의 죄를 알도록 해야 한다며 점발이를 ‘죽을 만큼’ 때렸다. 일기에서 스스로 ‘죽을 만큼’ 이라고 표현한 것으로 보아 그에 대한 응징의 정도가 어땠는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또 친척과 지인들이 모두 도망한 노비를 찾는 데 동원되었음도 알 수 있다. 노비들은 이처럼 모든 양반들의 지배를 받는 존재였다. 거주지를 벗어나 멀리 도망간다 하더라도 양반들의 광범위한 네트워크의 안에 있었고, 양반들의 연망(聯網)은 이처럼 노비의 관리에 유용하게 활용되었다.
― 154쪽, ‘노비, 가족과 재물의 경계’ 중에서
노상추가 삭주에서 돌아온 해에 한양에서 일어난, 북병사 정관채(鄭觀采)의 며느리가 장용위와 통간(通奸)한 사건도 그 중 하나이다. 두 사람이 통간한 후 장용위의 집에 숨어 있다가 발각되어 장용영으로부터 조사를 받았다. 장용위는 ‘양반집 부녀자인줄 몰랐고 유녀(遊女)인 줄 알았다’고 했고, 정관채의 며느리는 ‘시아버지와 서고(庶姑)의 악행을 견딜 수 없어서 이 지경에 이르렀다’고 답했다. 더 이상 구체적인 원인은 알 수 없고, 또 누구의 말이 사실인지도 알 수 없다.
주목할 것은 사건의 결과이다. 장용영에서 조사한 끝에 장용위는 장형(杖刑)을 받고 풀려났으나, 정관채의 며느리는 관비(官婢)가 되어 제주로 보내졌다. 정관채는 아들이 없어 동생인 정양채(鄭亮采)의 아들을 양자로 들였다. 즉 그렇게 代를 이은 그의 유일한 며느리가 도저히 입에 담기도 민망한 사건을 일으킨 셈이다. 또 정관채는 당시 북병사였고, 입후한 양자의 생부 정양채는 당시 한성서윤이었다. 내로라하는 집안의 외며느리가 무사 신분인 남성과 통간한 사실은 충격적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결과는 장용위에게는 장형이라는 일회성 형벌을 주면서, 정관채의 며느리는 관비로 삼아 제주로 보내는 즉 양반 신분에서 최하층 천민 신분으로 추락시키는 전혀 다른 처벌이 주어졌다.
― 197쪽, ‘자유로운 성, 경직된 사고’ 중에서
출판사 서평
“제도사와 거시사에 지친 역사적 감수성을 다시, 새롭게 하기 위하여”
1. 조선후기 어느 무반의 68년간 쓴 일기를 통해 역사적으로 가족의 실체를 찾는다
“한 가족의 생애와 일상을 통해 신분제 사회에서 당시인들이 지향하고 추구해온 삶의 방식과 세계관을 직접 체험하는 것”
경상도 선산의 안강노씨(安康盧氏) 집안에서 태어난 노상추(盧尙樞, 1746-1829)라는 사람은 열일곱살 때부터 일기를 쓰기 시작하여 여든네살에 생을 마감하기 이틀 전까지 일기를 남겼다. 《68년의 나날들, 조선의 일상사》가 저본으로 삼은 노상추의 일기는 68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일기를 썼다는 것 외에도 가족의 일상을 기록했다는 특징을 가진 자료이다. 그의 일기는 자신 뿐 아니라 3~5대에 이르는 가족구성원과 친족, 이웃과 하인 등을 주인공으로 한 조선후기 한 촌락 구성원들의 생활 및 친교의 기록이며, 관료로서의 일상과 동료들과의 인간관계의 기록이다.
이 책은 노상추를 주인공으로 하여 혼인과 출산, 가족구성과 유지ㆍ운영, 과거급제와 정계 진출, 대를 이은 가계 운영을 주요 내용으로 하면서 몇 대에 걸친 가족의 삶의 궤적을 추적한다. 이 책의 저자 문숙자 박사는 “68년간의 일기가 주는 다종다기한 내용과 더불어 청년기에서 노년기에 이르는 그의 감정 변화를 따라가다 보면 마치 나 자신이 18ㆍ19세기를 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는 서문의 표현처럼 때로는 노상추에 감정이입하기도 하고 때로는 냉정한 관찰자가 되어 그들의 세계관을 주관적ㆍ객관적 시각에서 조명한다. 따라서 이 책은 특정 주제에 접근하기 위해 관련된 부분을 발췌하는 방식이 아니라 일기 전체를 음미한다는 느낌으로 기술한다. 한 사람의 일기를 통해 그와 그 가족의 생애를 복원하는 작업이다. 개인의 생활일기를 통해 조선 사회 전체를 바라보고자 한다면 과욕일까. 그러나 한 가족의 생애와 일상을 통해 신분제 사회에서 당시인들이 지향하고 추구해온 삶의 방식과 세계관을 직접 체험하는 것, 이것이 이 책이 독자에게 던지는 과제이다. 과연 한국인에게 가족은 무엇일까?
2. 익명에서 역사로, 어느 무부의 기억과 나날
“우리의 어머니의 아버지, 그의 할아버지가 살았을 그 시대에 과연 그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생각했을까, 느꼈을까’.”
이 책은 노상추가 일기를 쓰게 되는 배경에서부터 시작한다. 일기의 주인공을 소개하고 그들의 가족이 탄생하는 모습과 꿈을 가지고 인생을 개척해 나가는 과정, 생계와 생업, 그들의 사고와 세계관을 개관한 뒤 만년에 모든 활동으로부터 은퇴하여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과정은 일기 주인공의 라이프사이클이지만 현대인의 삶의 방식도 고려한 구성이다. 노상추가 80세를 넘겨 수(壽)한 만큼 그는 많은 사람들의 죽음을 목도해야 했다. 부모는 물론이고 자신의 세 아내와 형제들, 손자와 손부, 그리고 영유아기에 사망한 이름 모를 수많은 가족들까지. 노상추의 일기는 18세기 후반의 향촌사회가 가족이라는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대가를 치렀는지를 보여준다. 일찍 사망한 형을 대신하여 장남 노릇을 하던 젊은 시절 이야기, 어느 날 일등 양반을 포기하고 붓을 꺾고 무예를 익히면서 무과에의 도전기, 무과에 합격한 이후 내직과 변방의 직임을 전전하면서 만남과 이별을 반복하는 과정에서 샘솟는 가족애 등 무수한 굴곡과 사연을 만난다.
이 책은 제도사와 거시사에 지친 역사적 상상력과 감수성을 다시 새롭게 한다. 노상추가 남긴 일기는 자신과 가족의 역사를 복원하는 차원을 넘어 18세기 후반, 그리고 19세기 전반의 조선을 살다간 수많은 익명의 화자를 대변하는 일생이며 역사이다. 일기 속에 등장하는 무수한 인명들은 종횡으로 얽혀 있는 그의 인간관계망을 보여주고 있으며, 시기별 그리고 그의 공간적, 사회적 위치에 따른 변화 양상을 나타내고 있다. 가족의 탄생, 결혼 제도와 성 풍속도, 가족과 재물의 경계에 서 있는 노비의 존재, 당시 물가 정보, 과거시험 열풍과 관직 생활기 등 당대의 일상사가 마치 벽화처럼 펼쳐진다.
30여년의 관직생활을 보낸 노상추는 66세 때 마지막 관직인 가덕첨사에 몽점되어 떠날 때조차 빚을 내어 빈곤한 행차를 나선다. 14년간 과행(科行)으로 거의 전 재산을 허비한 이에게 과거에 합격하여 얻는 반대급부는 경제적인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노상추가 공명이라 표현한 것은 즉, 사회적 지위를 얻기 위해 경제적 희생을 감수해 온 것이다. 그러나 공명의 대가로 예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빚에 쫓기고 여든을 바라보는 나이에 손자 혼수품을 마련하기 위해 여기저기 손을 벌려야 하는 상황이 되는 것을 그들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68년의 나날들, 조선의 일상사》는 지금까지 화석처럼 각인되어 있던 역사상을 버리고 그들이 살았던 과거의 시간으로 되돌아가 본다. 우리의 어머니의 아버지, 그의 할아버지가 살았을 그 시대에 과연 그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생각했을까, 느꼈을까’.
3. 무부(武夫)는 비류(鄙類)가 아니다 - 이 책의 독법
일기의 주인공 노상추와 그의 안강노씨 가문은 무반 가문이다. 이 점은 이 일기의 주인공이 조선후기 사회에 대해 가지고 있는 많은 여운을 독자로 하여금 행간을 통해 음미하게 한다. 주인공의 84세 인생은 양반이라는 자부심과 그러나 문관이 아닌 무관이라는 일종의 자격지심으로 점철되어 있다. 이 점은 자신의 인생을 나름의 기준으로 성실하고 원칙에 맞게 이끌어가는 원동력이기도 했다. 관직생활 내내 ‘무부(武夫)는 비류(鄙類)가 아니라는 것’, 즉 ‘무관도 문관에 비해 비천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입증이라도 하듯이 권력에 아부하지 않고 성실하고 곧은 관직자의 자세로 일관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신이 조선 사회의 지배계층인 양반임을 한시도 잊지 않고 신분제 상위계층으로서 상천민(常賤民)들을 대하고, 그들과의 경계를 명확히 해 온 것이다. 그의 이러한 신분적, 사회계층적 위치를 인식한다면 생활일기이면서도 일기 전체에서 비장함이 묻어나오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4. 생애사, 그들의 삶의 방식, 사고와 세계관을 복원할 수 있다는 새로운 예시- 차별점
지금까지 조선시대 양반들이 남긴 생활일기를 통한 연구는 그들의 혼인, 제사 봉행, 독서와 교육, 선물 수수, 첩살이와 그 소생의 신분 등 특정 주제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그 이유는 잘 알려지고 연구된 일기 자료가 10년 내외의 기록이거나 심지어는 2~3년의 짧은 기간 동안 기록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 양반의 생활일기 자료는 지금까지는 조선왕조실록이나 양반들의 문집을 통해 밝힐 수 있는 역사적 사실에 실제성과 생생함을 불어넣은 보조적 역할에 그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책은 특정 주제에 접근하기 위해 자료를 발췌하는 방식이 아니라 일기 전체를 음미하는 방식을 취하였다. 즉 한 사람의 일기를 통해 그 가족의 생애를 복원하는 작업이다. 이야말로 68년 동안 자신과 가족의 일상을 기록해 온 노상추의 일기가 추구해온 가치를 제대로 구현하는 방식이다. 이 책에서 시도한 생애사의 복원 작업은 몇몇 영웅 중심의 역사, 열려진 인물 중심의 역사 연구가 아니라 모든 인간의 생애와 그들의 삶의 방식, 사고와 세계관을 복원할 수 있다는 하나의 예시가 된다.
자칫 노상추의 일기를 가지고 조선후기 사회와 가족사 전체를 일반화 하고 싶을 수도 있다. 그러나 《치즈와 구더기》나 《몽타이유》가 의미가 있는 것은 그것으로 당시 유럽 사회 전체를 재단하지 않은 점에 있다. 다만 출생, 성장, 혼인, 출산, 사망 등의 과정을 통해 가족의 일원이 되고 그 안에서 성장하며, 다시 가족을 재상산하는 주인공들의 삶을 그들의 입장에서 묘사하고자 한 것이다. 이 책은 조선시대 가족의 의미를 그들의 관점에서 찾아나가는 과정이다.
기본정보
ISBN | 9788996123965 |
---|---|
발행(출시)일자 | 2009년 08월 07일 |
쪽수 | 251쪽 |
크기 |
153 * 224
mm
|
총권수 | 1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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