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의 안개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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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개의 다리를 사이에 두고 이상한 나라와 안개나라는 놓여 있다. '이상한 나라'가 지식과 물질, 욕망에 찌든 도시인 반면 '안개나라'는 할아버지가 창조한 우리 아버지들의 나라, 동방나라 사람들이 살았던 곳으로, 권력에 물든 군주에 의해 한 국가이던 나라가 세 부족으로 나뉘게 되고 국가의 보배인 '장미정원'마저 이상한나라의 사기꾼들에 의해 도난당함으로써 미궁 속 안개에 묻혀버린 나라다.
소설은 동방나라를 되살리려는 소녀의 보이지 않는 눈물과, 소녀의 시든 장미를 손에 쥐고 끊임없이 안개나라 속을 헤매며 문제의 비밀을 추적하는 비트의 모습을 환상적으로 보여준다. 비트는 '이상한나라'와 '안개나라'를 오가며 시간의 굴레 속에서 세상의 온갖 경험과 번민 속에서 자아를 완성해간다.
이 책은 시간을 뛰어넘는 '시간여행'을 통해 어린 소년 비트가 진리를 깨달아가는 과정을 섬세하게 그려낸 청소년 성장소설이다. 가이아를 사모하는 여인, 크로노스, 오딘의 그림자 등 그리스 신화 인물이 은유와 비유를 통해 소설에 등장하며 흥미롭게 전개되어 나간다.
작가정보
시인, 화가, 공간철학자와 건축가의 길을 가고 있는 저자는 대한민국에서 태어났다. 니체, 괴테, 헤세 등의 철학과 문학에서 영감을 얻어 삶의 의미를 탐구했다. 물, 돌, 나무 등의 자연적 요소에 많은 사유의 시간을 보내왔으며, 2006년 〈마루〉잡지에 ‘자연에 대한 철학적 사유’를 연재했다. 홍익대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유학하여 프랫Pratt대학원을 졸업하고,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건축과 디자인을 공부했으며, 홍익대학교 건축학과에서 ‘공간철학’의 연구를 통해 건축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6년 44일간의 유럽 10개국 여행을 통해 서구사회의 친환경적 삶과 문화에 매료되어 자연과 문화, 그리고 인간과 행복이라는 문제에 대해 많은 사색을 했다. 2006년 《건축은 나무다》 시집을 출간했으며, 2007년 U.C.버클리 건축대학 뉴미디어센터에서 안식년을 보내며 《비트의 안개나라》라는 장편소설을 집필했다. 현재 국민대학교 조형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목차
- 제1부 세상나들이
어둠에서 깨어나/ 안개 속으로/ 이상한나라의 일상/ 자연의 소리를 들으며/ 세 사람의 음모/ 장미정원/ 물을 사려는 사람들/ 꿈과 현실 사이에 서서/ 되찾은 장미정원
제2부 비트의 안개나라
변화하는 세상/ 디지털 시대의 국가 속으로/ 새들은 새장을 떠나고/ 바람, 구름 그리고 바위의 녹색나라/ 시스템의 흐름 속에서/ 가방의 무게에서 벗어나/ 지중해를 꿈꾸며/ 분배된 삶을 찾아
제3부 안개 속으로
밤원숭이 사회에서/ 영혼들의 강/ 영혼들의 흔들림/ 황금산에 갇힌 영혼들/ 우물을 향하여
출판사 서평
■기획의도
이 소설은 시간과 지식, 물질에 쫓기는 현대인의 바쁜 일상을 꼬집으며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우리에게 일깨워주는 한 편의 동화 같고, 철학적 재미를 주는 판타지 소설이다. 또한 일종의 청소년 성장소설로, 저자 윤재은(1961년생)은 시인, 화가, 공간철학자, 건축가의 길을 걷는 사색가답게 현실, 시간을 뛰어넘는 ‘시간여행’을 통해 어린 소년 비트가 진리를 깨달아가는 과정을 소설로 완성한다. 마치 헤세의 《싯다르타》처럼 비트는 ‘이상한나라’와 ‘안개나라’를 오가며 시간의 굴레 속에서 세상의 온갖 경험과 번민 속에서 자아를 완성해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시간은행’에 헛되이 시간을 저축(낭비)하는 어른들을 일깨워주는 미하엘 엔데의 《모모》처럼, 끝없이 물질을 좇으려는 현대인들에게 시간의 소중함과 삶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특히 ‘세 사람의 음모’와 ‘물을 사려는 사람들’의 부분에서 우매한 인간들을 속여 국가를 팔아넘기려는 세 사기꾼의 음모 장면은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을 연상시키는 재미를 주고 있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할아버지(전지전능한 신)는 비트를 우리 세계로 내려보내 인간으로서 진정한 삶이 무엇인가 자각케 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또한 침묵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바위와 바람, 구름, 그림자와의 대화를 통해 자연은 비트로 하여금 세상의 올바른 정의를 바로 세우게 하는 ‘스승’ 역할을 한다. 그리고 안개나라의 생명수 우물에서 만난 장미정원의 소녀는 비트에게 두려움 없이, 용기 있게 세상을 헤쳐나가게 하는 희망의 존재로서, 할아버지와 더불어 동방나라의 장미정원을 되살리는 근원적 힘이 된다.
형체는 없고 죽은 영혼들이 흐느끼는 장미정원, 권력욕 때문에 동방나라를 분열시키는 ‘제우스의 권력’, 키키가 다스리는 밤원숭이 사회, 지식의 덩굴에 갇혀 있는 ‘오딘의 그림자’, 바다나라를 건설하기 위해 배를 만드는 어부, 동네에서 작은 행복을 일궈왔던 우리가게 아저씨의 좌절, 새장 속 새들의 탈출, 안개나라에 물을 팔아먹으려는 이상한나라의 세 명의 사기꾼 등은 이 소설 이야기를 흥미롭게 풀어주는 열쇠이다.
“아침이면 무거운 가방을 둘러메고 지혜 없는 지식을 가득 채우기 위해 우리 아이들은 하루를 돌아다녀야 한다. 세상의 모든 지식을 다 배워야 미래가 보장된다는 어른들의 생각에 떠밀려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이 행복인지 모른 채 ‘지식의 굴레’에 갇혀 있다. 우리 아이들의 암담한 현실을 바라보면서 이 책의 집필을 결심했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 책은 열두 개의 손이 달려 있어도 무거운 지식을 담아내기 버거워하는 우리 아이들에게, 성공을 위해 질주하는 어른들에게 지혜를 주는 책이다.
■주요내용
●이상한나라, 안개나라, 동방나라와의 관계를 연계해서 읽는 것이 소설 내용을 이해하는 데 관건
‘이상한나라’는 우리가 사는 현실세계를 말한다. 항상 가방 속에 가득 찬 책들을 통해 진리를 말하고, 자연을 이해하기보다 자연을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사는 곳, 지나치게 과학의 힘을 믿고 있어 시간의 속도를 따라잡을 때 인간의 문화는 성숙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 ‘이상한나라’이다.
열두 개의 다리를 사이에 두고 이상한 나라와 안개나라는 놓여 있다. ‘이상한나라’가 지식과 물질, 욕망에 찌든 도시인 반면 ‘안개나라’는 할아버지가 창조한 우리 아버지들의 나라, 동방나라 사람들이 살았던 곳으로, 권력에 물든 군주에 의해 한 국가이던 나라가 세 부족으로 나뉘게 되고 국가의 보배인 ‘장미정원’마저 이상한나라의 사기꾼들에 의해 도난당함으로써 미궁 속 안개에 묻혀버린 나라다.
책에서는 동방나라를 되살리려는 소녀의 보이지 않는 눈물과, 소녀의 시든 장미를 손에 쥐고 끊임없이 안개나라 속을 헤매며 문제의 비밀을 추적하는 비트의 모습이 환상적으로 그려져 있다.
죽어 있는 장미정원을 되살리고 안개나라의 죽은 영혼들을 되살리는 길이 비트의 손에 쥐어진, 시든 장미 한 송이의 생명에 담겨 있다. 여기에도 꿈속에 나타나는 할아버지는 장미정원을 되살리는 열쇠로 작용한다.
●가이아를 사모하는 여인, 크로노스, 오딘의 그림자 등의 신화에 근거하여 이야기를 흥미롭게 풀어간다
이 소설에는 이야기 핵심을 이끌어가는 이야기의 근간이 되는 신화가 자주 등장한다. 어둠속에서 비트가 태어나며 빛을 발하는 그 순간이 ‘오이디푸스(아버지를 살해하고 어머니를 범한다는 신탁으로 비극을 맞는 그리스 신화의 인물)의 기억’으로 은유되어 되살아난다. 또한 동방나라에서 정의와 법을 멋대로 휘두른 군주를 ‘제우스(그리스신화에 등장하는 최고의 신)의 권력’으로 상징하고 있으며, 인공둥지를 수십 채 가지고 있는 돈 많은 이상한나라의 부자를 ‘가이아(대지의 여신)를 사모하 는 여인’으로 나타내고 있다. 지식의 목마름을 견디지 못해 안개나라로 온 영혼 ‘오딘의 그림자’가 등장하는 등, 그리스 신화 인물이 은유와 비유를 통해 소설에 등장하며 흥미롭게 전개된다.
또한 동방나라의 패망 이유를 ‘크로노스(제우스의 아버지)의 뒷다리를 보지 못하고 앞머리만 보았기에 분열되었다는 것’으로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만약 인간에게 앞과 뒤 혹은 원추를 돌리는 모든 곳에 천 개의 눈이 달려 있다면, 인간은 생의 마지막 절벽을 향해 정처 없이 방황하지 않았을 거야. 안개나라 사람들에게 잠시라도 뒤를 돌아볼 여유만 있었어도 앞에 놓인 소유, 집착보다는 놓쳐버릴 아까운 시간을 위해 하루의 삶을 황금 시간으로 만들었을 거야.” 하면서 옛 동방나라의 영화를 그리워하며 소녀가 한탄하는 대사는 인상적이다.
●바위와 바람 구름, 그림자와의 대화 등, 자연과의 대화는 세상의 정의를 바로 세우는
‘스승’ 역할을 한다
꿈과 현실 그리고 시간을 뛰어넘는 《비트의 안개나라》는 비트라는 어린 소년의 눈을 통해 세상을 깨우쳐가는 성장소설 형식을 띠고 있다. 비트는 침묵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바위와 바람, 구름 그리고 그림자 등과 대화를 나누는데, 여기서 자연은 세상의 정의를 바로 세우는 ‘스승’ 역할을 한다. 침묵하던 바위는 이렇게 세상 사람들에게 일침을 가한다.
“만약, 우리가 자기들보다 더 적은 언어를 가지고도 세상의 모든 것과 소통하고 할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하며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그들이 알게 된다고 생각해봐. 그들은 우리가 말을 하고 인간의 언어를 알아듣는다는 것을 아는 순간부터 또 다른 음모를 꾸미려 할지 몰라. 그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최상의 선물인 지혜가 무엇인지 모르고 살잖아.”
또한 비트는 바위를 통해 ‘침묵’과 ‘스스로 성장하는 영혼’의 중요성에 대해 깨우침을 얻는다.
“침묵으로는 말하지 않고도 들을 수 있어. 저 도시의 인간들을 봐. 그들은 수많은 언어로 많은 말을 하지만 그것을 듣지 않고 살아도 세상은 변함없이 생성되거든. 침묵은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영혼이기도 해. 영혼 없는 삶을 생각해봐. 이 세상에 영혼은 없이 물질만 넘쳐난다면, 썩어가는 고기와 다를 바 없지. 나는 침묵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려고 해. 세상은 깨어 있지도, 잠들어 있지도 않은 영혼의 세계거든.”
또한 우물에서 만나게 된 소녀도 인간의 언어가 지닌 한계를 꼬집으며 바위의 침묵에 대해 언급한다. “천 년을 넘게 살아온 바위도 이름 없는 그냥 그대로의 바위인데, 백 년 넘게 살지 못하는 인간들이 왜 그렇게 이름 붙이기를 좋아할까. 하나의 이름이 자신의 진정한 존재라도 되기나 하는 걸까. 인간은 번거롭게 자기에게 주어진 이름을 꼬리표 삼아 끝없이 달고 다니면서 수많은 의미를 부여하려 하지.”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 미하엘 엔데의 《모모》 조지 오엘의 《동물농장》적 요소가
가득!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에서 “그것은 자아였다. 그 의미와 본질을 나는 알고자 했다. 그곳에서 내가 빠져나오려고 했던 것, 극복하고자 했던 것, 그것은 자아였다.”라는 말이 나온다. 또한 “지식은 전달할 수 있지만, 지혜는 전달할 수 없는 법이야. 지혜로 기적을 행할 수 있지만, 지혜를 말하고 가르칠 수는 없네.” 이와 마찬가지로 《비트의 안개나라》도 꿈과 현실을 넘나들며 주인공 비트는 이상한나라, 안개나라를 체험하면서 삶의 지혜, ‘자아’를 깨달아가고 있다. 이상한나라의 회색도시에서 만난 무거운 가방을 둘러멘 아이, 바다나라를 건설하기 위해 배를 만드는 어부, 동네에서 작은 행복을 일궈왔던 우리가게 아저씨, 새장 속 새들의 탈출, 꿈속에서 보았던 ‘키키가 다스리는 밤원숭이 사회’, 안개나라에 물을 팔아먹으려는 이상한나라의 세 명의 사기꾼, 황금산에 갇힌 영혼들 등의 이야기는 이 세상의 본질을 이해하고 세상의 이치를 깨달아가기 위한 열쇠로 작용한다.
황금에 눈이 어두웠던 사람들을 향해 소녀는 비트에게 이렇게 말한다. “그들은 주위를 둘러볼 여유는 있었을지 모르지만 하늘에 떠 있는 태양을 바라보는 지혜는 없었거든. 태양은 그들에게 황금을 보여주면서 그 대가로 그들 몸에 있는 수분을 전부 가져가 버렸던 거야.” 또한 비트는 어머니의 기쁨이 자신의 기쁨일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 속에 가방에 가득 채워넣었던 지식의 무게를 줄이면서 ‘과중한 지식의 자만보다는 쓸모 있는 지혜가 국가와 사회를 이루기 위해서 우선적으로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또한 그림자가 비트에게 진리를 일깨워주는 다음의 말도 의미 있다. “아는 것은 지식이요, 모르는 것을 아는 것은 지혜라고 말해!”
이 책은 니체, 괴테, 헤세의 철학과 문학에서 삶의 영감을 받고 공간철학가, 건축가로서의 길을 걷고 있는 저자의 진리를 향한 진지한 자세가 돋보이는 책이다. 이 책에서 입증하듯, 저자가 오랫동안 물, 돌, 나무 등의 자연과 대화를 나누며 많은 사유의 시간을 보내왔다는 것은 괄목할 만한 점이다.
《비트의 안개나라》는 또한 동화처럼 재밌고 철학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그런 점에서 미하엘 엔데의 소설 《모모》와 견줄 만하다. 아동학대를 못 이겨 고아원을 탈출한 아이 모모는 글도, 셈하는 것도 모르는, 그러나 지혜가 번뜩이는 아이이다. 모모는 끈기 있게 사람들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는 재주가 있으며, 사람들 사이에 다툼이 있을 때 이를 중재하는 역할을 하며, 한 번도 울지 않던 새를 울게 하는 등, 마을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아이다. 급기야 성실하던 사람들이 시간도둑들이 차린 ‘시간은행’에 그들의 소중한 시간을 저축(낭비)하는 일이 생기자, 모모는 어른들에게 빼앗긴 소중한 시간을 되찾아주고 옛날의 웃음과 여유, 생활을 되돌려주는 역할을 한다. 그렇다면 《비트의 안개나라》의 비트는 어떠한가. 비트는 어둠속에서 깨어나 빛을 향해 나가며 할아버지와 소녀, 바람과 구름, 바위와 그림자들을 만나면서 그들을 통해 진리를 일깨워나간다. 비트 자신이 모모처럼 지혜의 소산자는 아니지만, 꿈속에서 만난 전지전능한 할아버지의 도움으로 안개나라를 구하고, 소녀에 대한 순수한 사랑으로 동방나라의 장미정원을 되살리는 근원이 된다. 이상한나라에 살고 있는 비트는 지혜를 지닌 할아버지와 자연, 소녀를 통해서 세상을 살리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비트의 안개나라》는 20세기 최고의 정치우화로 꼽히는 조지 오엘의 《동물농장》과 비유할 만하다. 물론 《동물농장》은 동물들이 반란을 일으켜 인간을 몰아내고 그 자리를 차지한 동물들끼리 농장을 운영해간다는 이야기지만, 《비트의 안개나라》에는 이상한나라의 세 사기꾼이 등장하는데, 그들은 동방나라의 장미정원을 훔치는 바람에 안개나라에 그들의 영혼이 묻히게 되는 데 결정적 요소로 작용한다. 또한 소설에는 이상한나라의 모든 물을 안개나라에 팔아넘겨 이상한나라를 그들 소유로 만들려는 세 사기꾼이 등장한다.
《동물농장》에서 어리석은 동물들에게 공평성의 논리를 적용하며 노동력을 착취했던 것처럼 이 소설에서도 세 사기꾼은 ‘동방나라 사람들에게 장미 한 송이 꺾는 것쯤은 아무 문제가 없고, 한 송이 장미를 꺾어오면 한 달치 식량을 주겠다’는 회유책을 쓴다. 이에 대해 소녀는 얘기한다. “한 사람에겐 하나의 장미지만, 열 사람에겐 열 개의 장미이고, 동방나라 사람들 모두의 수를 채울 수 없는 장미였어. 그들이 꺾어간 장미는 장미정원의 모든 장미였지.”
또한 《동물농장》에서 인간을 몰아내고 동물농장을 세우는 중추 역할을 하는 ‘나폴레옹’(스탈린을 상징)이 독재자로 군림하듯, 《비트의 안개나라》에서도 이상한나라의 사기꾼 ‘관료적 사내’가 등장한다. 그는 이상한나라를 자기 손아귀에 넣을 계략을 짜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우선 돈을 이용해 조직을 만들어야 해요. 절대 남들이 눈치 채지 못하도록. 그리고 사람들한테 밝은 미래를 보장받기 위해선 어린 시절의 교육이 중요하다고 말해야 해요.”
“우리는 이상한나라 사람들의 모든 동의를 구해야 해요. 만약, 모든 동의를 구할 수 없다면, 다수의 동의를 구해서 우리 의견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설득하거나 처단하면 될 거예요.”
이러한 글에서 권력을 쥐려는 그의 간교한 의도를 잘 알 수 있다. 재밌는 것은 이러한 계략을 침묵을 지키고 있던 바위가 묵묵히 듣고 있다가 비트에게 전달한다는 것이다. 또한 세 사기꾼의 말을 듣고 돈을 많이 벌 수 있다고 생각한 ‘뚱뚱한 사내’가 이상한 계산법으로 우매한 사람들을 속아넘기는 장면이 압권이다. 물 한 통씩을 가방에 담아온 사람들에게 그는 다음과 같은 계산법을 적용한다.
“하루 곱하기 한 통은 한 통(1×1=1).”
“한 통 빼기 하루는 영 통, 영 통 곱하기 열 통은 영 통(1-1=0×10=0).”
그 사이 군중들이 화를 내기 시작했다.
“저 뚱뚱이가 우리를 현혹시켜 우리가 가진 한 통마저 빼앗으려 한다!”
한 사람이 외쳤다. 옆에 있던 사람들도 덩달아 외쳤다.
“저놈을 죽여서 저놈 것을 나눠 갖자!”(중략)
뚱뚱한 사내는 이 문제를 산술적으로만 계산했기 때문에 엉뚱한 결론이 나온 것이라고 했다.
“여러분이 오늘 제 이야기를 듣고 그 대가로 나에게 물 한 통을 준다고 합시다. 물론, 여러분의 가방에 있는 한 통마저 줘버리는 것이 아쉬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제 이야기를 통해 열 통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되었습니다. 한 통을 잃었지만 열 통을 만들 수 있게 된 거죠. 즉 다음과 같은 계산이 나옵니다. 한 통 빼기 한 통은 영 통, 영 통 더하기 열 통은 열 통(1-1=0+10=10).”
뚱뚱한 사내는 자신의 계산법으로 사람들을 설득했다.
“열 통을 얻게 된다면 내게 준 한 통을 아쉽게 뺀다 해도 결국 여러분은 그것을 아홉 통이나 얻는 셈이지요.”
이러한 속임수에 넘어간 사람들은 이상한나라에 있는 모든 물들을 끌어모은다. 장미정원도 한 송이 장미 때문에 장미정원이 사라져버렸듯, 물 한 병으로 이상한나라가 사기꾼들 손에 넘어갈 위기에 처해 있었다. 사람들은 강에서 물을 퍼내고, 심지어 나무에 호스를 끼어 물을 뽑아내는 등, 이상한나라의 모든 물은 말라갔다. 비트는 이 위기에서 어떻게 이상한나라를 구할까? 여기서 저자의 기지와 지혜가 돋보인다. 그림자의 조언과 바람과 구름이 몰고 오는 안개로 사기꾼들이 안개나라에 물을 건네주는 지점에서 길을 잃도록 유도한다는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전개된다.
●할아버지, 소녀, 소년 그리고 영원한 사랑으로 되살아나는 ‘장미정원’
무엇보다 이 소설을 이해하는 데 관건으로 작용하는 것은 ‘할아버지’와 ‘소녀’이다. 여기서 할아버지는 전지전능한 신을 뜻한다. 할아버지는 꿈속에서 죽음의 낭떠러지에 떨어지는 순간, 비트의 팔을 붙잡아주는 분이다. 이상한나라에서 무거운 가방을 둘러메고 지친 하루를 보낸 비트는 꿈속에서 할아버지를 만나며 그의 영혼이 새롭게 되살아난다.
비트는 꿈의 영혼을 통해서 할아버지가 보여주는 ‘장미정원’을 보게 되는데, 여기서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장미의 ‘가시’에 얽힌 전설은 매우 흥미롭다. 무엇보다 장미의 전설을 저자가 만들어냈다는 점이 놀랍다. 이야기의 출발은 그 옛날 젊은 남녀의 사랑을 질투한 여인이 신탁(사랑의 신 에로스가 둘의 사랑을 못마땅히 여겨 보름달이 지는 밤이 오면, 사랑의 화살로 청년을 쏘아 청년의 사랑과 영혼을 모두 가져가 버리겠다는 내용)을 보고 이 내용을 처녀에게 알리면서 사랑의 비극을 맞게 된다는 내용이다. 다소 진부한 내용일 수 있으나 슬프고도 아름답다. “처녀가 흘린 붉은 눈물 자리에 핏빛의 붉은 꽃이 피어나기 시작했지.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운 그 꽃을 사람들은 ‘장미’라고 불렀어. 장미가 너무 아름다워서 사람들 마음에 파문을 일으킬 정도였지. 죽어서도 처녀를 아낀 청년은 영혼이 벗어난 제 육체의 뼈를 녹여 장미의 몸에 가시를 달아주었단다. 이 소식을 들은 마을사람들은 장미와 가시로 맺어진 두 젊은이의 사랑이 영원하도록 장미정원을 만들었던 거야.”
이렇게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장미정원의 전설 이야기가 자못 흥미롭다. 또한 할아버지는, 장미 향기를 되찾는 방법은 안개나라의 영혼을 일으켜 세우는 것만이 유일한 길임을 얘기한다. “사랑의 영혼이 결합된 하나의 생명이 안개나라의 영혼으로 되돌아가야 해. 그렇게 해서 안개가 걷히면 세상은 다시 동방나라의 현재로 되돌아갈 수 있단다. 두 개이던 영혼이 하나가 되고, 안개나라 사람들의 마음에서 죽은 영혼이 되살아나 솟아올라야 해. 그렇게 된다면 이상한나라는 오늘의 새로운 세상을 향해 날개를 펼 수 있게 될 거야. 우물은 안개를 통해 구름을 만들고, 사람들은 구름의 날개를 타고 새로운 동방나라를 만들게 되겠지. 모든 비밀은 이상한나라에 있어.”
할아버지의 예언대로 비트는 안개나라의 죽은 영혼을 되살릴 수 있을까.
먼 옛날 할아버지가 하나로 만들어준 잃어버린 반쪽이 과연 우물에서 만난 ‘소녀’일까. “하염없이 흐르고 있는 소녀의 눈물은 비트의 몸을 통해 소녀에게 흘러간 눈물이었다. 비트는 소녀의 눈을 통해 자신의 눈물을 보았고, 소녀를 통해 그의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리는 것을 보았다. 비트와 소녀 서로에 대한 그리움이 시간의 벽을 넘었고, 두 사람은 하나의 인간이 되어 그들의 근원적 본류를 찾아간 것이었다.”
소설 속에서 소녀는 비트에게 상징적으로 다음과 같은 말을 건넨다.
“네가 시간의 속도에 끌려가지 않고 자신을 찾을 수 있다면, 난 항상 너와 함께할 수 있어.”
이 소설은 다시 되찾을 수 없는 과거가 바로 현실로 다가오며, 오지 않을 미래가 현실 속에 존재해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기본정보
ISBN | 9788995855270 |
---|---|
발행(출시)일자 | 2008년 02월 11일 |
쪽수 | 303쪽 |
크기 |
148 * 210
mm
|
총권수 | 1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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