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못이 졸고 있는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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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정보
저자(글) 방화선
목차
- 시인의 말
제1부
한가閑暇 15
송곳 16
개나리 17
3월을 열다 18
사월 19
수세미 20
기차놀이가 있는 공원벤치 22
생각을 직조하다 24
태풍 불던 날 26
간병인 27
어미 28
모닝콜 29
옷걸이 30
녹슨 칼 31
개미 32
또치 34
경칩 다음날 35
제2부
복수초 39
유채꽃 40
불두화 42
붉은 수국 43
엉겅퀴꽃 44
지심도 · 1 45
지심도 · 2 46
붉은 등대 47
억새꽃 48
아까시나무 49
봄, 당산나무 50
게으른 농사 52
겨우살이 53
솔숲을 걷다 54
소나무 재선충 55
승희와 은행나무 56
냉기 속의 꽃 58
제3부
기지개 61
허수아비 곁 62
저녁의 가장자리 64
수다의 정석 66
정년퇴직 68
운전 중 69
세貰 70
무서리 71
구두점에서 72
구두수선집 73
카페에서 74
기림사 가는 길 75
번개 치는 밤 76
부석사에서 78
빗속의 보도블록 80
늦가을을 만지다 81
조각이불 82
제4부
몽당연필 87
깃발 88
울타리 90
아내의 손 92
맛의 비밀 93
육수를 우리다 94
울화병 95
가방을 닫다 96
그림자를 밝히다 98
스카이댄서 99 마침표 100
8월의 강 102
깃발 · 2 103
게이트볼 104
유후인 긴린코 호수* 105
하까다의 밤 106
길 고양이 108
겨울바람 109
시집평설/ 유 진 평범한 일상과 일체성의 시 111
책 속으로
방화선 시인의 시적 출발은 일상의 체험에서 시작된 다. 시인이기 이전에 여자이고 아내이며, 엄마이고 할머 니이고 전업주부이다. 생활반경을 넓히기 쉽지 않은 환 경이다. 어떤 경우에도 가족을 챙기는 일이 먼저이고, 언제나 집안일이 우선이다. 하지만 친분관계에 있는 사 람들과도 신의를 지키기에도 소홀하지 않은 바지런한 사람이다. 시적환경과 자신을 이분화 시키지 않는다. 어 떤 경우에도 자신의 본분을 놓지 않고, 자신의 본질이 변질된 적 없는 시인이다. 겉으로 보기엔 그럴듯하지만 알맹이가 없는 시가 아 니라, 재주와 기교가 앞서 내달리는 시가 아니라, 평범 한 일상을 소재로 하되 단순한 관찰자가 아닌, 삶 속에 동화되어 있는 시선을 가진 시편들이다. 시인의 시편들 대부분이 평범한 일상과의 일체성을 보여주고 있는 것 도 그 때문일 것이다. 시는 언어의 운동체다. 시는 구체적인 일상에서 시작 한다. 어떤 모양을 가지든지 전달하고자 하는 이미지가 선명하고 진솔성이 살아 있다면 시로써의 면모는 갖추 게 되는 것이며, 경험의 구체성에 미적 기능을 덧입혀서 시적효과를 꾀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시의 모양은 시 인의 성향과 기호에 따라 만들어 진다. 일상사를 잔잔하 게 그려갈 수도 있고, 사물의 본질에서 유추해내는 사유 나 추상적인 관념에 집중할 수도 있다. 방화선 시인의 시에서 시적 출발은 일상의 체험을 잔 잔하게 그려내고자 하는데에 있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시인의 시가 굳이 고차원적 형태를 갖추기 위해 멋을 부 리거나 유려한 어휘로 비틀거나 과장된 장식을 사용해 야 할 필요도 없을뿐더러 화려하거나 난해해야 할 이유 도 없다. 시인은 일상의 고단함과 현실적 심정을 솔직담백하게 그려내고 있지만, 시의 발화점은 생활 속의 어느 역할 의 시점이 아니라 항상 자신의 가슴 중앙에 자리한 ‘연 못’ 곧 자신의 본질적 자아에 있다. 다시 말하면 현실은 가족중심의 일상이 전부이지만 자기만의 정신적 공간을 간직해두고 있다는 뜻이다. 그런 의미에서 『연못이 졸고 있는 사이』를 시집의 표제로 정하게 된 것이라 본다. 자기만의 연못에서 자연생태적인 자신을 오롯이 살고 싶지만 가족중심의 현실을 살고 있다. 자신의 본질적 자 아인 그 연못이 졸고 있는 사이에 많은 일이 생기고, 문 제가 해결된다. 삶을 향한 연민이나 안간힘, 머뭇거림과 긍정 등등의 사사로운 인간사가 시간과 함께 흘러가고 있다는 말이 된다. 잠시 푹신한 카페 의자에 묻혀 한가閑暇를 즐기는 시
간에도 시선은 내면의 자신과 시에 고정된다. 틈이 생기 면 곧장 시를 떠올리는 그녀에게 시는 망중한忙中閑인
셈이다. 그녀에게 시는 어쩌면 전업주부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기 위한 에너지 충전소인지도 모른다. 적극적이되 적극적이지 못한 삶, 적극적이되 적극적 이지 못한 시, 떠날 수도 없는 일상과 바짝 매달릴 수도 없는 시가 한 덩어리가 되어 시인의 사사로운 일상사를 업고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것 같다.
고정관념 사라진 식탁
왜, 반찬은 간간해야 하고
밥은 싱거워야 하느냐는 질문이
분주한 자유를 만끽한다
약속된 기능을 이탈하려는 식기들
못 갖춘 마디의 식사법을 강조하고
여과되지 않은 말의 충돌까지
허용되는 시간
멍청해질수록 가벼워지는 가방에서
종합영양제 한 알을 꺼내
물도 없이 삼킨다
아직 해독하지 못한 생각의 공식을 접어 넣고
‘나’라는 가방을 닫아버리면
주부로서의 하루가 민첩하게 정돈된다.
― 「가방을 닫다」 전문
아침의 부산함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음악을 들으며 기분 좋게 일어난 아침이지만, 이내 자신의 감정이나 여 유와는 상관없이 가족의 식사를 준비해야 하는 주부의 손길은 바빠진다. 출근과 등교를 서두르는 가족들의 어 떤 언짢은 짜증도 다 허용되는 시간이다. 한바탕 소란이 끝나면 남는 것은 어지러운 식탁과 설 거지, 빨래와 청소다. 자신의 존재는 없고 집안일만 남 았을 때 ‘나’라는 가방을 닫아버리면 오로지 주부로서의 본분으로 돌아갈 수 있다. 멍청해질수록 감정은 단순해진다. 마음도 자신이고, 몸도 자신이지만, 마음가짐에 따라 몸을 감정과 상관없 이 움직인다. 수십 년 반복해 온 가사노동이다. 되도록 단순해져야 한다. 시인은 ‘나’라는 자기만의 가방을 닫아버리고 로봇처럼 자동으로 일을 처리하게 된다는 것 을 잘 알고 있는 주부이다.
바닥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동강東江 다리 밑
물장구 첨벙이는 아이들 머리 위로
굉음을 지르며 몇 차례 기차가 지나가면
살갗 굽는 햇살은 턱턱 숨을 넘겼지
…(중략)…
바지랑대에 고추잠자리 졸고
해바라기 새까만 눈 까르르 웃는 싸리울 아래
사금파리 밥을 짓던 영희가
고모 손에 이끌려 서울로 간 그 해
東江변 철길을 따라 개망초는 어찌 그리
넘치게 피어대던지
공원을 지키는 나무 그림자 사이로
칙칙폭폭 칙칙폭폭
지칠 줄도 모르는 아이들 기차놀이
동강의 여름 해를 싣고 다닌다
― 「기차놀이가 있는 공원벤치」 부분
나무 그림자 드리운 공원놀이터의 여름, 기차놀이에 열중하는 아이들 모습이 맑고 평화롭다. 시인에게도 저런 맑음이 있었다. 영월이 고향인 시인의 어린 시절은 인위적인 놀이터 보다 훨씬 자유스러운 맑은 강이 있었고, 가난한 마을 의 아이들은 나이보다 일찍 철이 들었고, 피붙이로 느껴 지던 친구들이 있었다. 물질이 넘쳐나고 편의에 길들여 진 현대를 살면서 아직도 그 시절을 그리워하게 되는 걸 까? 시인의 연못 안에는 아직도 순수의 맑음이 그대로 보관 되어 있음을 엿볼 수 있다.
초겨울 추적이는 비를 맞으며
네가 불 속에 사그라지는 동안
무너졌던 하늘이 다시 무너졌어
가늘어진 팔목에 숫자의 사슬이 채워졌던 봄
소생의 의지는 풀지 못할 숙제처럼 쌓이고
흘리지 못한 첩첩눈물 수액과 함께 말라갈 때
수없이 기울고 뒤흔들리던 너의 하늘은
풀썩풀썩 무너지고 있었던 게지
― 「마침표」 부분
동생을 먼저 보냈다. 서로 사느라 바빠서 동생이 병상 으로 옮겨 누울 때까지 동생의 고초를 알지 못했던 시인 에겐 하늘이 무너지는 아픔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불 속에서 사그라지는 동생의 일생을 지켜보는 동안 무너졌 던 하늘이 다시 무너졌다고 한다. 오십에도 닿지 못한 생애에 마침표를 찍어버리는 동생의 식구들이 원망스러 웠고, 표정 없는 장례사의 능숙한 손놀림이 공연히 야속 했다고 한다. 유달리 자존심이 강했던 동생의 그 오뚝한 콧대가 서서히 내려앉고 있었다는 걸 모르고 지냈다는 자신을 생각하면 명치에 무거운 돌 하나가 박힌 듯하다. 차마 보내지 못하고 가슴에 묻은 동생 때문에 산수유가 노랗게 피어도 봄은 오지 않는다는 시인의 아픔에 공감이 간다.
열일곱에 대처로 간 아들은
언제나 어린 자식인데
전쟁을 치르고 있을까
새 물을 얻었을까
대처보다 넓은 어미의 어항에
또 파도가 인다
― 「어미」 부분
시집을 보내놓고도
또 다시 시작되는 육아전쟁
열세 번째 새날의 사춘기
울타리기둥을 움켜쥔 고집이
또 하나 무게를 더한다
하교 시간과 학원 시간을 맞추어야 하는
나는 끊임없이 밥을 주어야 하는
벽시계
후줄근해진 초침에 나사를 조인다
낡은 고무줄 마냥 늘어난
손목 인대와 허리 통증이
잠시 자리에 누우면
골수 깊숙이 스며든 바람이 부풀어
쉼 없이 울타리를 넘나드는데
고생이면서 행복인 무게를 맞들고
서로에게 울타리인 모녀의 관계는
돈독하고도 모호하다
― 「울타리」 부분
엄마라는 이름이 가지는 노파심과 인내력은 무한대 다. 낡은 고무줄 마냥 손목의 인대가 늘어나고 허리 통 증이 자리에 눕게도 하고, 때로 손녀의 사춘기가 모녀 관계를 모호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래도 구피를 보면서 도 아들을 걱정하고, 시집을 보내고도 전문직에 종사하는 딸의 가정생활을 조력한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자신 의 몸 돌보기는 뒷전이다. 자식이 기쁨이고, 노여움이 고, 슬픔이고, 즐거움인 것은 엄마라는 이름이 가진 위 력이다. 세상은 넓고 험하고 냉혹하다. 품안에 있던 자식들이 집 바깥세상에서 사회의 일원으로 자리매김을 해나간다 는 일이 얼마만큼 힘이 드는 일이라는 걸 안다. 그래서 자식은 부모에게 기대고 부모는 자식에게 기대고, 그래 서 서로에게 든든한 울타리가 아니던가.
쓰지 않는 칼은 녹이 스는 법이라고
단단히 이르시던 말씀도 딸려 나온다
진하게 우려지지 않는 한 땀 속 어휘
형광등 불빛에서 몸살을 한다
무딘 칼을 숫돌에 간다
무딘 시詩 한 줄을 간다
― 「녹슨 칼」 부분
묵은 살림 들추다가 녹이 슨 칼을 발견한다. 쓰지 않 는 칼은 녹이 스는 법이라고 단단히 이르시던 어머니가 신접살림 속에 넣어주셨던 칼이다. 주부의 손이 부지런 해야 살림을 제대로 산다는 말의 뜻에 자신이 시인임을 연결 짓는다. 시인이면서 시 쓰는 일에 게으른 것은 녹 슨 칼과 다를 바가 없다는 반성이다. 숫돌에 무딘 칼을 갈 듯이 무딘 시를 갈아 보겠다는 각오다.
방향 잃은 언어들이 무모한 경주를 한다
화성에서 온 남자의 까탈진 속내에
꼬리가 밟힌 금성 여자
한 장의 백지에 예리한 심장을 색칠한다
빨 주 노 초 파 남 보 그리고 잿빛
초췌한 덧칠 위에 낭자한
선혈이 벼랑으로 흐른다
콩깍지 사라진 눈가 주름이
꼬깃꼬깃 싸맨 어둠의 포장을 뜯는다
순
출판사 서평
방화선 시인의 첫시집 『연못이 졸고 있는 사이』는 자 전적인 시편들로 69편이 수록되었는데, 자기만의 연못 도 전업주부로서의 구체적인 일상도 분리될 수 없는 자 신의 삶이다. 거의 대부분이 매일 진행되는 일상을 대상 으로 얻은 시적발상에 명확한 이미지를 드러내며 솔직 담백하고 잔잔하게 그려내고 있으므로 시적거리가 멀지 않고, 억지로 멋 부리지 않아서 자연스럽고 편하다. 이 번 시집은 평범한 전업주부들의 삶을 대변하고 있다는 것에 공감이 모아질 것으로 본다.
기본정보
ISBN | 9788994645438 |
---|---|
발행(출시)일자 | 2018년 08월 16일 |
쪽수 | 126쪽 |
크기 |
130 * 208
* 8
mm
/ 204 g
|
총권수 | 1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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