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의 발견 역사를 흔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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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정보
저자(글) 후쿠다 데쓰유키
저자 후쿠다 데쓰유키福田哲之는 1959년 시마네 현에서 출생. 효고교육대 대학원 석사학위, 오사카대에서 박사학위(문학전공)를 받았다. 현재 시마네대 교 육학부 조교수로 재직 중이며, 중국문자학 및 서법사를 연구 하고 있다. 이시카와 교요石川九陽 편, 『문서의 우주書の宇宙』(二玄社) 제1-3책의 「書と書論」의 집필을 담당하였다. 주요 논문으로는 「郭店楚簡 『語叢 三』の再檢討―竹簡の分類と排列」, 「楚墓出土簡牘文字における位相」 등이 있다.
번역 김경호
역자 김경호金慶浩는 성균관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중국사회과학원 방문학자를 거쳐 현재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중국 고대 출토자료를 이용한 진·한 시기의 역사와 문화를 연구하며 최근 고대 동아시아사 전반으로 그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주요 논저로 『중국출토문 헌자료와 학술사상』(역서, 2010), 『지하地下의 논어 지상紙上의 논어』(2012), 『한대 경학의 발전과 사회 변화』(역서, 2015) 등이 있다.
번역 하영미
역자 하영미河英美는 성균관대 동아시아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일본 니쇼가쿠샤대 객원연구원 및 인하대·한양대·일본외무성연수소 강사 등을 거쳐 현재에는 인하대 고조선연구소 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연구 분야는 동아시아문학(일본운문 하이쿠)이다. 주요 논저로 「고바야시 잇사의 자아의식-고바야시 잇사 하이쿠의 ‘我’를 중심으로」(2016) 등이 있다.
작가의 말
2002년 2월 6일에 호남성 용산현에서 2만 매가 넘는 시황제 시대의 진간이 발견되었다. 또 비공식이지만 곽점 초묘 죽난, 상해박물관 소장 전국 초죽서에 이은 제3의 사상 관계 전국 초간이 출토외었다는 정보도 들었다. “역사를 뒤흔든 문자의 발견”은 아마 21세기에도 계속될 것 같다. - 저자 후쿠다 데쓰유키
이 책을 통해서 얻은 출토문자 자료에 대한 이해와 지식의 폭을 중국만이 아니라 고대 한반도와 일본까지 확대한다면, 고대 동아시아 사회에 대한 새로운 인시의 지평 또한 넓힐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 역자 김경호(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교수)
목차
- 머리말
옮긴이의 말
1_ 고대 은 왕조는 실재하였다 : 갑골문
세기말의 대 발견 |갑골문 발견의 진실 |갑골문 해독
은 왕조의 실재를 둘러싼 논쟁 |갑골문의 정인과 서계자
2_ 은·주 혁명의 증인 : 서주 금문과 이궤
은 왕조의 멸망|서주 청동기 이궤의 발견 |서주 금문의 서체와 계보
<고고학의 현장> 『상서』 「대고」와 서주 갑골
3_ 공자가 예언한 ‘집안 소동’의 전말 : 후마맹서
공자의 예언 |회맹의 시대|진나라 조씨의 내분
춘추 전국 시대의 필기문자의 실태
4_ 수정이 불가피한 유교사의 통설 : 곽점 초간·전국 초죽서
두 개의 현대판 급총서 |수정이 불가피하게 된 유교사의 통설
전국 시대 문자의 분립과 혼란
<고고학의 현장> 상해박물관장 전국 초죽서의 신빙성
5_ 시황제 시대의 법률 지침 : 수호지 진묘 축간
수호지 진묘 죽간의 발견 |진 제국의 허상과 실상 | 진 예서와 그 기원
6_소생하는 한대 학술의 세계 : 마왕퇴 한묘 백서
마왕퇴 한묘 발굴 |중국 고대 과학사에서의 대발견
『천문기상잡점』과 망기술 |진말·한초 필기문자의 다양한 실태
<고고학의 현장> 대나무와 비단에 쓰다
7_ 잃어버린 『손자』의 발견 : 은작산 한묘 죽간
두 사람의 손자 |은작산 한묘 죽간 『손자』의 발견
진에서 한으로, 필기문자의 연속성
<고고학의 현장> 위서의 오명을 씻은 기록물
8_ 삼국지 시대에 싹튼 해서의 생생한 육성 : 주마루 삼국오간
경탄할 만한 수량 |주마루 삼국오간의 내용과 의의
해서의 성립과 종요
<고고학의 현장> 주마루 삼국오간은 왜 우물에 매장되었나?
9_ 서성 왕희지 글씨를 찾아서 : 누란 출토 문서
사막에 묻힌 왕도, 누란의 발견 |오타니 탐험대의 누란 조사
이백 문서의 수수께끼 |이백 문서와 왕희지
<고고학의 현장> 누란 문서의 번짐 막기
10_ 당대인이 연습한 왕희지의 글씨 : 투루판 출토 문서
역사의 음과 양 |왕희지 「상상황기」 첩의 발견
왕희지 「상상황기」 첩의 성격 |잃어버린 「상상황기」 첩의 수수께끼
왕희지 수용의 양면성
맺음말
책 속으로
주마루 삼국오간에 관한 가장 큰 수수께끼는 10만이나 되는 대량의 간독이 왜 우물에 매장되었을까 하는 점이다.「장사주마루22호 우물발굴보고 長沙走馬樓二十二號井發掘報告」는 그 원인으로 두 가지 가능성을 지적하고 있다.
그 하나는 전쟁에 따른 매장이다. 함녕 6년(280) 서진 무제 사마염이 일으킨 20여 만의 압도적인 군사력 앞에 오의 군대는 궤멸하고 손권의 손자 오왕 손호는 서진 군대에 투항한다. 오 왕조의 멸망이라는 일대사에 민심은 혼란스러워졌고 장사군의 관리들은 보관하고 있던 공문서를 우물에 묻었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문서 관리 방법의 일종이다. 주마루 삼국오간의 대부분은 보존용 공문서이고 대체로 계약 증서 종류에 속한다. 고대의 문서 관리 제도를 보면 시기가 지난 일반 보존 문서는 필요하지 않아도 금방은 폐기하지 않고 다시 몇 년 동안 보관한다. 또한 거연이나 돈황에서 발견된 한간에도 폐기 문서를 정리해서 보관한 현상이 보이며 그 대부분은 땔감으로 불태워지거나 화장지에 해당하는 측간厠簡으로 사용되었다. 즉 주마루 삼국오간은 폐기된 것이 아니고 문서 처리의 한 형식으로서 보관이나 재생산 목적에서 우물에 묻었다는 것이다.
후자의 관점에서 호평생胡平生(후핑셩)과 송소화宋少華(송샤오화)는 「장사주마루 간독개술 長沙走馬樓簡牘槪述」에서 다음과 같이 추정하였다. 주마루 삼국오간이 출토된 22호 우물은 직경이 310센티미터나 되는데 바닥 부분에 지하수를 집중시켜 건조를 방지하기 위한 소형 우물이 존재하였다. 게다가 간독이 바닥부터 350센티미터나 되는 퇴적층 위에 놓여 있었고 대나무 상자에 담겨 있었다. 즉 22호 우물은 실제로는 우물이 아니라 폐기된 빈 창고였으며 그 안에 간독을 수장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전쟁설과 문서관리설에 반해, 새로운 관점에서 매장 원인을 추리한 주목할 만한 견해로는 구동련邱東聯(치우동렌)의 「장사오간과 여일사건 - 장사오간의 매장원인 長沙吳簡與呂壹事件-試析長沙吳簡的埋藏原因」이 있다. 대략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구동련은 1997년의 시점에서 석문이 완성된 4만여 매의 간독에 보이는 연대 상한을 건안 25년(220) 하한을 가화 6년(237)으로 잡는다. 그중 「이민전가 별吏民田家?」 2,480매에 보이는 연호는 모두 가화년간이며, 특히 가화 4,5,6년의 3년 사이 집중된 주마루 삼국오간이 매장된 연대는 가장 빨라야 가화 6년(237)으로 추정한다.
『삼국지』 「오서」에 의하면 장사군은 이때가 비교적 안정적인 발전 시기로서 주마루 삼국오간의 분석에서도 전쟁에 관계된 주된 임무는 군대 감독과 식량 수송이었음이 증명된다. 따라서 삼국 말 전쟁의 혼란을 매장 원인으로 보는 전쟁설은 납득하기 어렵다.
- 본문 208~210 쪽 중에서
출판사 서평
“사실(史實)이 소설보다 극적이다”
19세기 말, 은 왕조의 실재를 증명한 갑골문 발견 이후, 20세기는 실로 ‘발견의 세기’였다.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진 시황제의 군사 조직인 병마용 갱을 발견한 이듬해인 1975년 호북성 운몽현에서는 진 시황제 시기 관리들의 무덤이 발견되었다. 112호 무덤의 유골 주변에는 진의 예서로 쓰인 1,155매의 죽간이 발견되었다. 이른바 ‘수호지 진묘 죽간’은 『사기』나 『한서』 등 문헌에서 잘 알 수 없던 진나라 법률의 자세한 조항이었으며, 진대의 법가적 통치 실상에 대해 새로운 역사적 사실을 밝혀주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1973년에는 살아 있는 듯한 미라가 발견되어 세계적인 돌풍을 일으킨 마왕퇴 1호 한묘 옆의 3호 한묘에서는 비단에 쓰인 기록문(백서)이 대량으로 발견되어 의약, 천문, 군사, 사상 등 다방면에 걸친 한대 학술의 실태를 보여주었다. 또한 바로 그 무렵 신강 자치구 투루판에 산재하는 고분군에서 당나라 사람들이 연습한 왕희지의 글씨가 발견되어 그동안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일면이 드러났다.
은·주 왕조 교체를 증언한 ‘서주 금문과 이궤’, 유교사의 통설을 뒤집은 ‘곽점 초간과 전국 초죽서’, 『손자』가 위서라고 하는 오명을 벗게 한 ‘은작산 한묘 죽간’등 20세기 일련의 출토문자의 발견은 이 책의 제목이 암시하듯 ‘문자가 역사를 뒤흔든’ 사건이었다. 『문자의 발견 역사를 흔들다』는 중국 은나라에서 당나라까지 중국 고대사의 각 시기를 대표하는 열 가지의 출토문자를 선별하고 이를 중심 줄기로 하여 문자가 증언하는 역사적 실체와 그 의미를 일반 독자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안내한다. 각 장의 첫머리에는 연표와 지도를 실어, 자료의 연대와 출토지 등을 제시하였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출토문서의 발굴과 그 내용뿐만 아니라 한자의 생명력에 주목하고 있다는 점이다. 갑골문에서 청동기 금문, 춘추전국시대 문자 그리고 전서-예서-해서의 변천을 겪어 오늘날에 이르는 한자의 변천과정을 출토문자를 가지고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게 알려주는 것이다. 중국 고대사를 공부하고 국내에서는 거의 유일한 중국 출토문자 전공자 김경호 교수(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가 번역하였다.
이제‘발견의 세기’를 열어젖힌 세기말 갑골문의 발견부터 출토문자의 세계로 들어가 보자.
지하로부터 전해온 메시지, 중국 고대사를 새로이 증언한다
청말 민국 시기에 이른바 고힐강을 대표로 한 ‘의고학파’와 서구에서 도입한 근대 학문을 주창한 학자들은 은 왕조를 실재를 부정하였다. 이 사건은 찬란한 중화문명의 주인공이라 자부하던 당시 중국인에게는 단순히 사마천의 『사기』「은본기」에 기록된 은 왕조에 대한 의심을 넘어서 자신들의 고대 문명이 사라져버리는 커다란 상실감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당시 한약재 상인에게 용골이라는 만병통치약으로 팔린 거북이 등딱지가 허구라 주장되었던 왕조가 실재했다는 사실을 밝혀내는 결정적 문자 자료로서의 역할을 했다. 이는 그야말로 문자가 역사를 뒤흔든 사건이다.
갑골문이 은 왕조를 증언한 사실(史實)은 지금 상식이 되었지만 이 책이 전하는 흥미로운 점은 앞의 ‘용골 이야기’야말로 지어낸 이야기라는 것이다. 용골은 가루 상태로 팔았으므로 골편에 새겨진 문자를 알아보는 일 따위는 없었으리라는 점 등 여러 정황 근거를 드는 저자가 정작 강조하는 것은 손이양 등 중국 금석학자들의 노력과 ‘한자의 생명력’이다. 갑골문의 발견과 해독은 우리 상상을 훨씬 더 초월하는 한자의 위력을 다시 한 번 증명한 사건이었다.
사마천 『사기』의 진술이 의문시되었던 것이 또 있었다. 주나라 무왕이 은나라 주왕을 토벌하여 은 왕조를 멸망시킨 ‘목야 전투’에 관한『사기』「주본기」기록이 신빙성이 있느냐는 것은 오래된 논란이었다. 1976년 섬서성 임동현에서 청동기가 출토되었는데, 그 청동기 바닥에 그 전투에 참전했던 무왕 신하의 명문이 남아 있었다. 명문이 해독해보니 무왕이 은을 토벌한 사실이 날짜까지 기록되어 있었던 것이다. 사마천의 기록을 명백하게 입증한 사례다. 이 책은 이어서 하극상이 빈발하던 춘추시대 후기 격동의 시대를 증언한다. 1965년 산서성 후마시의 동쪽 근교에서 공자가 살던 시대의 맹약서가 발견되었는데, ‘후마맹서’라고 불리는 이 자료는 잘 정리 정돈된 가장 오래된 필기문자로서, 춘추 후기, 격렬했던 권력 투쟁의 현장을 생생하게 기록하고 있다.
사서오경의 하나로 알려진 『역경』은 어떠한가? 이제까지 연구에서는 진·한 시대 이후에야 유교 경전이 되었다고 보는 것이 통설이었다. 그렇지만 전국시대 초나라 죽간 문서인 ‘곽점 초간’과 ‘전국 초죽서’가 1990년대 발견되면서 두 문서가 도굴로 세상에 나왔다는 공통점뿐만 아니라 『역경』이 이미 전국시대 중기 이전부터 유교 경전으로서 인정받고 있었으며 「육경」의 성립 시기도 전국 시대 중기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음을 실증하면서 학계에 충격을 던졌다. 이 초간들에 대한 연구가 진전되면서 이제까지의 유교사의 통설은 더욱 수정되고 출토문자 자료에 기초한 중국 사상사의 큰 틀이 많이 바뀔 수밖에 없음을 저자는 강론한다.
앞서 소개한 ‘수호지 진묘 죽간’이 전하는 현실은 진 제국의 강력한 법치 이미지와 다르다. 백성들에게 유연하게 대응하라는 것과 지방 풍습을 악습으로 규정하고 법대로 강경하게 하라는 양립할 수 없는 두 지침이 치옥 직무에 종사한 이 무덤의 주인 ‘희’의 수중에 있었다는 것이다. 진의 역사를 주로 한(漢)대인이 쓴『사기』를 중심으로 연구되어왔다면 이 자료는 무엇보다 시황제와 동시대의 자료라는 데 의의가 있다.
문자를 기록한 재료는 재질에 따라 죽간, 목간 그리고 비단을 사용한 백서 등이 있으며 이를 총칭하여 ‘간백(簡帛)’이라 한다. 간백은 무덤, 우물, 밭 등 발견한 장소는 다르나 우선 출토, 즉 땅속에서 발견되었다는 의미가 있다. 또한 문자가 기록되어 있어 당대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다시 말해 출토문자는 역사적 사실을 가감 없이 우리에게 전하는, 지하로부터 전해온 메시지이다.
“새로운 학문은 새로운 자료의 발굴에서 나온다”
한 대 학술의 정수를 담았다는 마왕퇴 3호 한묘 백서에는 과연 무슨 내용이 수록되어 있을까? 이 책에서 주목할 대목은 ‘수술류(점술)’ 및‘방술류(의술)’와 관련된 문헌이 전체의 반 이상을 차지한다는 점이다. 이는 천문학, 역학, 의학, 약학 등 중국 과학의 원형에 해당한다. 저자는 백서 중『천문기상접점』의 여러 그림을 보면서 “지구 주위를 돌고 있는 군사 위성을 떠올랐다. 현대 과학 기술의 정수를 모은 군사 위성에 비하면 망기술과 점성술은 근대 과학 이전 주술의 범주를 넘어서지 못했지만 양자의 배후에 있는 인간의 본성은 마찬가지지 않을까?”라며 소생하는 한대 학술 세계와 대화한다.
이 책이 들려주는 역사의 수수께끼는 고전『손자』의 작가가 손무와 손빈 중 누구인가로 이어진다. 논란이 된 가장 큰 원인은 두 사람 모두 저명한 병법가였다는 점 때문이었다. 1972년 ‘은작산 한묘 죽간’이 발견되면서 오랜 세월의 논쟁에 종지부를 찍었다. 과연 이 죽간은 두 명의 손자와 두 종류의 『손자』 사이의 관계를 어떻게 해명하고 있을까? 또 『문자의 발견 역사를 흔들다』는 어떻게 풀어내는지 그 세계로 들어가보자.
1996년 호남성 장사시 주마루에서 10만 매가 넘는, 『삼국지』로 유명한 오나라 손권 시대의 죽간과 목간이 출토되었다. 주목할 만한 발견은 『삼국지』「오서」에 일대기들이 남아 있는 ‘보즐’, ‘여대’, ‘고옹’, ‘반준’과 같이 문자 그대로 역사에 이름을 남긴 인명과 관명을 기록한 죽간이다. ‘주마루 삼국오간’은 『삼국지』에 기록되지 않았던 역사의 공백을 동시대 자료로 메우는 꿈과 같은 이야기가 현실이 된 것이다.
동아시아 지식인이 글씨의 규범으로 삼으려 항상 서도사의 중심 자리를 지켜온 왕희지. 그러나 그 진필은 존재하지 않아 그 글씨의 진상은 베일에 싸여 있었다. 이 책의 마지막은 20세기 초엽 신강의 누란 유적과 20세기 중후반 같은 신강의 투루판 고분에서 각기 나온 고문서를 소개하면서 변경 지역 생활의 실체와 함께 그동안 베일에 싸여 있었던 왕희지 글씨의 진상과 그 해명에 커다란 진전을 가져온 내용을 들려준다.
문자학과 서도사 자료로서의 이 책의 의미
『문자의 발견 역사를 흔들다』의 또 다른 가장 큰 특징은 출토 자료의 내용뿐만 아니라 문자 자체를 탐구 대상으로 한다는 점이다. 춘추시대 후기의 최초의 필기문자 자료인‘후마맹서’는 춘추시대 후기에서 전국시대 전기, 중국에는 공통된 양식의 문자가 있었음을 증언하고, ‘수호지 진묘 죽간’은 그 자체로 진 예서(隸書)의 실물이다. ‘마왕퇴 한묘 백서’는 진말 한초의 다양한 필기문자의 견본으로, 다양한 서체의 공존을 의미하는데 예를 들어, 일부 자료에 보이는 초(楚) 문자의 실제는 문자의 통일이 다른 문자의 말살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새로운 사실을 제공한다. 또한 저자는 ‘주마루 삼국오간’에 대해 “종요(151~230)의 해서가 전설이 아닌 진실인 것을 밝히기 위한 시대의 증언자”라 설명한다. 사막에 묻힌 왕도인 누란왕국에서 발견된 이백(李伯) 문서를 통해 모사와 모각만으로 전해지고 있던 왕희지의 서체에 대한 해명에 한걸음 다가선다.
기본정보
ISBN | 9788994606422 | ||
---|---|---|---|
발행(출시)일자 | 2016년 08월 24일 | ||
쪽수 | 280쪽 | ||
크기 |
142 * 206
* 19
mm
/ 366 g
|
||
총권수 | 1권 | ||
원서명/저자명 | 文字の發見が歷史をゆるがす 20世紀中國出土文字資料の證言/福田哲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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