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유사 끊어진 하늘길과 계란맨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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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정보
속명은 김견명(金見明)이다. 자는 일연(一然)이고, 시호는 보각(普覺)이다. 경상북도 경산(慶山)에서 태어났다. 1214년(고종1년) 9세에 전라도 해양(海陽:현재 광주) 무량사(無量寺)에 들어가 학문을 닦다가 1219년 승려가 되었다. 1227년 승과(僧科)에 급제, 1237년 삼중대사(三重大師), 1246년 선사(禪師), 1259년 대선사(大禪師)가 되었다. 1261년(원종2년) 왕명으로 선월사(禪月寺) 주지가 되어 목우의 법을 이었다. 1268년 운해사(雲海寺)에서 대덕(大德) 100여 명을 모아 대장경 낙성회(大藏經落成會)를 조직, 그 맹주가 되었다. 1277년(충렬왕3년) 운문사(雲門寺) 주지가 되어 왕에게 법을 강론, 1283년 국존(國尊)으로 추대되고 원경충조(圓經沖照)의 호를 받았다. 1284년 경상북도 군위(軍威)의 인각사(麟角寺)를 중건하고 궁궐에서 구산문도회(九山門都會)를 열었다. 저서로는 '삼국유사(三國遺事)'를 비롯하여 '어록(語錄)', '계승잡저(界乘雜著)', '중편조동오위(重編曹洞五位)', '조도(祖圖)','대장수지록(大藏須知錄)', '제승법수(諸僧法數)','조정사원(祖庭事苑)', '선문점송사원(禪門拈頌事苑)'등이 있다.
저자(글) 조현범
저자 조현범은 서울대학교 종교학과를 졸업하고 19세기 조선에 온 선교사들에 대한 연구로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얌전한 모범생인 아들에게 자유분방한 상상력을 심어 주고 싶다는 생각으로 여러 책을 공부하며 이 책을 썼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연구원과 한신대학교 연구교수를 거쳐 지금은 한국교회사연구소에서 역사와 철학, 고전 등을 넘나들며 폭넓은 연구를 하고 있다.『문명과 야만 - 타자의 시선으로 본 19세기 조선』『근대 한국 종교문화의 재구성(공저)』『한국 천주교회사의 빛과 그림자』등의 책을 썼다.
목차
- 들어가는 이야기
1장 계란맨의 비밀
계란맨의 비밀 / 대나무를 시켜 폭로한 임금님의 비밀 / 표훈 스님과 끊어진 하늘길 /
변장한 천사들일지도 몰라
2장 아름다운 것도 죄인가요?
꽃미남 박군의 슬픈 죽음 / 아름다운 것도 죄인가요? / 문제아 김춘추, 그의 아버지는 누구인가 / 검붉은 얼굴의 처용 / 진실을 꿰뚫어 보는 지혜로운 눈
3장 네 모습이 네 마음을 감당하지 못할 테니
연오랑의 신발과 세오녀의 비단 / 김유신 장군 출생의 비밀 / 호랑이와 결혼한 남자들 /
네 모습이 네 마음을 감당하지 못할 테니 / 망국을 알리는 이상한 징조들
4장 모험왕의 모험은 계속된다
그날 포석정에서는 무슨 일이? / 모험왕의 모험은 계속된다 / 비열하고 교활한 영웅들 /
만불산, 자동기계의 상상력
나오는 이야기
책 속으로
경문왕의 귀가 길어진 사연에는 어딘가 잃어버린 한 토막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대부분의 신화가 그렇듯이 너무 오래되어서 빠진 부분이 있는 것이겠지요. 우리가 빠진 부분을 찾아 넣으면 어떨까요? 세계의 다양한 신화 가운데 귀가 길어지는 이야기가 담긴 신화를 찾아내어 빠진 조각을 맞추어 보는 겁니다. 마치 퍼즐 조각 맞추듯이 말이지요. 사람의 귀가 당나귀 귀처럼 길어지는 이야기들을 찾아보면 깜짝 놀라게 됩니다. 신화나 설화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선생님들이 전 세계의 신화집이나 설화집에서 찾아낸 당나귀 귀 이야기는 서른다섯 가지나 되니까요.
- 33~34쪽
표훈 스님은 함부로 다닐 수 없는 하늘 세상을 마치 제집 드나들듯이 다니는 신비한 능력을 지닌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표훈 스님은 무엇을 타고 하늘로 갔을까요? 『해와 달이 된 오누이』에 나오는 것처럼 하늘에서 내려온 동아줄을 타고 올라갔을까요? 아니면 『잭과 콩나무』에 나오는 것처럼 하늘까지 자란 큰 나무를 타고 올라갔을까요? 그것도 아니면 『선녀와 나무꾼』처럼 하늘에서 내려온 두레박을 타고 올라갔을까요? 표훈 스님이 무얼 타고 하늘로 올라갔는지는 『삼국유사』에는 나오지 않습니다. 하지만 동아줄이건 두레박이건 나무건 상관없습니다. 모두 서로 통하니까요. 신화에는 비슷하게 생겼거나 속성이 비슷한 것들을 하나로 묶어서 똑같이 다루는 신기한 논리가 들어 있습니다.
- 47쪽
저는 원효와 자장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갑자기 『성경』에 나오는 소돔과 고모라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소돔에 사는 사람들은 어느 날 남루한 옷을 입은 낯선 이방인들이 찾아오자 그들을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 이방인들은 변장한 천사들이었습니다. 천사들은 자기들을 친절하게 맞이한 롯의 가족에게만 가르침을 주어 도시를 떠나도록 하였습니다. 그 뒤 소돔과 고모라에는 유황과 불이 떨어져서 모두 타 죽고 말았습니다. 소돔과 고모라 이야기는 서양 사람들에게 매우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 서양의 이야기꾼들도 수많은 이야기를 만들어 내었답니다. 그래서인지 프랑스 파리에 있는 어떤 유명한 서점 입구에는 이런 말이 붙어 있다고 합니다. “변장한 천사들일지 모르니 이방인들을 친절하게 대하시오.” 낯설거나 옷차림이 허술하다고 해서 얕보거나 함부로 대하지 말라는 교훈이지요.
- 57~58쪽
김춘추의 아버지가 누구인가에 관한 이야기는 구조가 매우 독특합니다. 진지왕과 도화녀의 사랑 이야기가 귀신 부리는 비형랑의 신통한 이야기로 이어지다가 갑자기 뚝 끊어집니다. 그러고는 약간 뒤로 가서 김춘추라는 역사적 인물의 영웅적인 업적이 등장합니다. 그러니까 신화적인 기원 이야기와 실제 이야기가 시차를 두고 떨어져 있으면서 양 끝의 실마리가 가느다랗게 이어져 있는 형국이지요. 이처럼 신화와 역사가 기묘한 방식으로 서로에게 의지하면서 자기를 드러내는 이야기야말로 우리가 상상력을 펼쳐 나가는 데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재료가 된답니다.
- 94~95쪽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추남이 김유신 어머니의 품속으로 들어가는 꿈을 꾸었다고 해서 고구려를 멸망시키겠다는 추남의 저주가 김유신을 통해서 실현되리라고 생각한 대왕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잠자리를 가지는 꿈을 같은 날 꾸었다고 부인이 낳은 아이가 실제로 그 부부의 자식이라고 선언하는 임금이 있었죠. 그런 이야기들, 또는 그런 이야기들을 사람들에게 들려준 사람들 모두 어리석다고도 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어쩌면 우리의 상식적인 생각이 사로잡혀 있는 틀을 깨는 특별한 이야기라고 보아도 좋지 않을까요? 시간적인 순서대로 인생을 배열하느라 진이 빠진 사람들의 뒤통수를 치는 이야기 말입니다. 혹은 꿈결 같은 시간이 가져다주는 무한한 상상력의 세계 속에서 영웅의 활약을 제대로 음미할 수 있게 해 주는 멋진 이야기 말입니다.
- 136~137쪽
출판사 서평
신화의 눈으로 본 삼국유사,
매혹적인 상상력과 깊은 지혜가 담긴 세계가 펼쳐진다
『삼국유사 끊어진 하늘길과 계란맨의 비밀』은 『삼국유사』의 여러 이야기들을 옛사람들의 활달한 상상력과 삶의 지혜가 담긴‘신화’의 시각으로 새롭게 풀어쓴 책이다. 종교학과 역사를 공부해 온 저자 조현범 선생은 문헌 연구를 바탕 삼아, 동서양과 고대에서 현대를 넘나드는 다채로운 독서 경험과 자유로운 상상력을 발휘하여 발랄하고 재미있으면서도 사유의 깊이가 돋보이는 전혀 새로운 『삼국유사』의 세계를 펼쳐 보인다.
알에서 태어난 왕들을 ‘계란맨’이라 부르자면서, 세계 여러 곳을 살펴보아도 유독 삼국시대의 왕 중에 계란맨이 많은 이유를 ‘구구탁예설라(닭을 귀히 여기는 나라)’라는 단서에서 찾아, 왕들을 하늘에서 온 사람들로 보았다고 설명해 준다. 두 주인공보다 서로를 찾게 해 준 단서, ‘신발’과 신라에 해를 되찾아 준 ‘비단’이라는 장치에 주목해 본 연오랑 세오녀 이야기에서는 신화 읽기의 새로운 재미를 느끼게 해 준다. 도화녀와 진지왕 혼령의 아들로 귀신을 마음대로 부렸던 비형랑이 삼국통일을 이룬 김춘추의 아버지임을 들려주며 역사와 신화가 어떻게 연결되는지 이야기해 주고,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자동기계 ‘만불산’이야기를 통해 고대인들의 상상력을 현대인들의 문화적 감수성과 과학적 상상력으로 이어가자고 한다. 이러한 새로운 신화 읽기를 통해 십대들은 자유로운 상상의 힘을 즐기며 우주와 자연을 겸손하게 바라보았던 고대인들의 삶의 통찰력, 무엇보다 지금 이 시대에 꼭 필요한 지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십대들을 위한 새롭고 재미있는 고전 이야기 시리즈 ‘너머학교 고전교실’ 시리즈의 첫 책이다.
새롭게 삼국유사 읽는 법 - 근엄한 책의 세계와 생생한 삶의 세계를 엮어 보다
『삼국유사』는 동화책을 포함하여 수많은 해제본까지 가장 널리 읽히는 고전 중의 하나일 것이다. 대부분은 읽기 쉽게 풀어쓴 재미있는 이야기 또는 우리 민족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담은 책이라는 관점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遺(유)史(사)’라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삼국유사』에는 기록으로 남아 있던 책에 실린 이야기뿐 아니라 기록되지 않고도 사라지지 않은 이야기들이 많이 담겨 있다. 즉 근엄한 책의 세계와 생생한 삶의 세계가 씨줄과 날줄로 엮여서 만들어진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점을 주목하며, 저자가 제일 재미있었던 이야기, 읽으면서도 왜 그럴지 의심이 들었던 이야기, 또 여전히 우리 삶에 해답을 가르쳐 주는 이야기 18편을 뽑아 들려준다. 각 이야기들을 읽기 쉽게 풀어 주고, 기존의 연구 성과들을 참고하며 해석하되, 저자 나름의 상상력을 마음껏 발휘하여 전혀 새로운 이야기로 만든 것이다.
이차돈의 순교와 불교의 공인을 다룬 ‘꽃미남 박군의 슬픈 죽음’은 이차돈과 법흥왕, 신라의 귀족들의 불교를 둘러싼 사건의 전개를 정리하고 다양한 문헌에서 다룬 해석들을 들려주며, 현세보다 더 높은 이상을 추구했던 ‘형이상학적 혁명’이라고 할 수 있다고 설명해 준다.
또한 삼국시대의 이야기라고만 가두지 않고 동서양의 비슷한 이야기들을 모아 함께 들려준다. 귀가 길어진 경문왕 이야기인‘대나무를 시켜 폭로한 임금님의 비밀’편에서는 미다스 왕 이야기를 비롯하여 전 세계적으로 비슷한 이야기가 퍼져 있는데, 이는 ‘금기와 위반’, 즉 지켜야 하는 금기와 그것에 대한 필연적인 위반은 동서고금에 공통된다는 것을 보여 준다. 보살을 직접 만나기를 원했던 자장 법사와 원효 대사가 만나기도 하고 또 못 만나기도 했던 이야기를 들려주며 허름한 옷을 입은 천사를 못 알아보았던 소돔과 고모라 사람들 이야기를 떠올린다. 파리의 한 서점에 붙어 있다는 ‘변장한 천사들일지 모르니 이방인에게 친절하게 대하시오.’라는 글귀와 불교의 ‘사소한 인연도 가벼이 여기지 말라’는 가르침이 이어지는 순간이다.
책에는 오늘날 세상 사는 이야기와 그에 대한 사유가 담겨 있기도 하다. 이유 없이 차별당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해서는 처용랑(‘검붉은 얼굴의 처용’)을 떠올리고 정글의 법칙에 목을 매는 학교 교육에 대해서는 호랑이와 결혼한 김현 이야기(‘호랑이와 결혼한 남자들’)를, 몸에 칼을 대서라도 예뻐지고 싶은 사람들에 대해서는 묘정이 여의주를 가졌다가 잃는 이야기(‘네 모습이 네 마음을 감당하지 못할 테니’)를 떠올리며 다른 사유를 해 보자고 다정하게, 때로는 단호하게 이야기를 건넨다.
우주와 자연과 인간이 하나였던 시대 - 고대인의 세계관과 통찰력을 배운다
『삼국유사 끊어진 하늘길과 계란맨의 비밀』에서 저자가 주목하는‘우리 주변을 보는 새로운 눈’은 고대 사람들이 가졌던 세계관과 통찰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알에서 사람이 태어나거나 하늘을 마음대로 오르내릴 수 있다거나, 호랑이가 사람으로 변하는 등 이야기를 그저 과학이 발달하지 못한 옛날이야기 정도로만 치부하기 쉽다. 하지만 옛날에 살았던 사람이라고 우리보다 생각이 짧다거나 어리석었던 것이 아니라 단지 생각하는 관점이 달랐을 뿐이다. 운명에 대해 설명하는 신화적 방식으로 바라보게 되면 그 안에서 우리가 읽을 수 있는 것이 훨씬 더 풍부해진다.
하늘을 오르내리는 능력을 가졌던 표훈 대사가 딸을 아들로 바꿔 달라는 경덕왕의 소원을 말하자 더 이상 그 능력을 잃게 되고, 또 딸의 운명이었다가 아들로 바뀐 혜공왕은 결국은 살해당하고 만다는 이야기는 인간이 가져야 할 자세가 어떠해야 할지를 말해 준다. 인간만이 가장 중요한 존재라는 현대인의 인식과 개발 욕구에 대해 지구가, 자연이 어떻게 답을 하고 있는지는 기후 변화와 전염병 등 최근의 여러 가지 일들이 말해 주고 있지 않은가?
숯과 숫돌을 숨겨 남의 집을 빼앗았던 석탈해, 거짓 노래를 지어 불러 공주를 얻은 백제 무왕 이야기를 보자. 어찌 보면 비열하고 치사한 술수를 쓴 이들 이야기가 『삼국유사』에 실린 이유는 세상은 선과 악, 신과 인간, 이렇게 이분법적으로 나뉘는 것이 아니라는 데에 있다. 그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면서 매개해 주며 웃음을 선사하는 존재가 있어야 풍부해진다는 통찰력이 담겨 있는 것이다.
한편으로 고대인과 현대인의 사고에는 어쩌면 여전히 흐르는 같은 유전자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저자는 조심스럽게 말한다. 우물이 핏빛으로 변하고 거대한 물고기가 나타나고, 탑 그림자가 거꾸로 서는 등 을 보고 당시 사람들은 나라의 운이 다해간다고 여겼는데, 사실 현대에도 표충비가 땀을 흘리면 나라에 큰 일이 생긴다는 이야기가 여전히 전해진다. 언제가 될지, 어떤 것이 될지 모르지만 고대인들의 사고가 현대인들에게 다시 살아날 때 우리의 삶은, 미래의 삶은 더욱 풍요로워질 것이다.
마르지 않는 상상력의 원천으로 존재하는 『삼국유사』를 다시 읽어야 하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반대로 그렇게 다시 읽어 내야 하기에 삼국유사가 마르지 않는 원천이 될 수 있을 것이기도 하다.
때로는 탐정의 예리한 눈을, 때로는 상상력의 날개를 펼쳐 보자
저자가 『삼국유사』를 새로 읽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이다. 우선 명탐정 셜록 홈즈처럼 예리한 눈으로 상식적인 것에도 질문을 던지자고 한다. 한밤중에 개가 짖지 않은 이유는 낯선 이가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이라 추리하여 범인을 찾아내었듯이, 신화 속에서 수상쩍은 흔적에 질문을 던지고 하나씩 찾아가 보자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질문은 다를 수 있고 정답은 없지만 그래서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삼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 수로부인 이야기를 보자. 수로부인은 용에게 납치되었는데 왜 노인은 ‘거북아 거북아 수로부인 내놓아라’로 시작하는 노래를 부르라고 했을까? 납치되었다 돌아온 수로부인은 왜 용궁이 멋진 곳이었다고 하고, 기이한 향기가 났을까? 신화에서는 용과 거북은 물에 사는 존재로 서로 바꾸어도 상관없는 존재들이었다는 것, 어쩌면 ‘水路(수로)’라는 이름에서 추리할 수 있듯이 자발적으로 생명의 원천인 물에 들어가 에너지를 얻어온 것이 아닐까 라는 해석으로 이어진다.
또, 고려에 원병을 청했던 경애왕이 포석정에서 잔치를 벌이고 있을 때 후백제군이 쳐들어왔던 포석정 사건을 보자. 때가 한겨울이었는데 물이 어는 포석정에서 술잔을 띄우는 놀이를 할 수 있었을까? 저자는 이런 상식적인 질문을 던진 후 사실은 포석정이 ‘포석사’로 성스러운 장소였고, 경애왕은 그곳에서 신라를 구하기 위한 제사를 올렸던 것이 아닐까 라는 새로운 해석을 제시한다. 이렇게 해도 좀 아쉬운 점이 있다. 이처럼 잘 해석이 되지 않을 때, 저자는 과감하게 상상력을 발휘하여 새로운 이야기를 지어 보자고 한다. ‘스타 크래프트’의 설정을 빌어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보자는 것이다.
신라를 테란족, 후백제는 프로토스족, 고려는 저그족으로 할까요? 테란족과 프로토스족이 전쟁을 벌이게 되었습니다. 테란족이 저그족과 연합을 하고자 합니다. 그러자 프로토스족이 먼저 테란족을 공격하기 위해 진지로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테란족은 과거 영광을 빛냈던 용사들을 모신 포석 신전으로 갑니다. 그곳에는 거의 무한대의 공격력을 가진 전설적인 유닛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때 프로토스족은 새로 개발한 유닛인 스페이스 워프(공간 이동장치)를 이용하여 테란족 진지의 후방에 갑자기 나타났습니다. (중략)
이처럼 마치 영화 『쥐라기 공원』의 잃어버린 공룡 유전자를 개구리에서 찾아 끼워 넣듯이 자유로운 상상력으로 이야기를 한두 개쯤 만들어 넣으며 읽으면 전혀 새로운 맛이 생겨나고 생각도 넓어진다.
삼국유사에는 색다른 상상력이 빛나는 이야기들도 많다. 거타지 모험 이야기를 보자. 신라 사신으로 당나라에 가다가 섬에 남겨진 거타지는 활을 쏘아 여우를 죽이고 용을 구한다. 용은 딸을 꽃으로 만들어 품에 넣어 주고 거타지가 용을 타고 당나라로 갈 수 있게 해 준다. 한국판 오디세우스 거타지 이야기는 왕건의 할아버지 작제건의 이야기로 이어지고, 『심청전』 『김원전』『이수문전』 등 수많은 고전 소설들의 원천이었다.
높이 약 3.5미터 정도 되는 인공산에 미풍이 불면 벌과 나비가 나풀거리고 수많은 불상과 사당도 살아 움직이듯 돌고, 승려들은 종이 울리면 절을 하는 장치, ‘만불산’은 자동으로 움직이는 기계에 대한 고대인들의 상상력을 흥미롭게 보여 준다. 이러한 상상력을 현대에 적절히 녹여내면서 새로운 문화적 창조력으로 승화시키는 주역이 이 책을 읽는 십대 청소년들이기를 바란다. 상상력은 다른 말로 하면 꿈꾸는 능력이고, 상상력을 추진 로켓으로 아득한 하늘과 우주 공간까지 뻗어가다 보면 새로운 눈을 얻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독특하고 재치 넘치는 일러스트와 다채로운 삼국시대와 동서양의 유물 사진
저자는 재치 있는 제목과 발랄한 문장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SF 영화와 컴퓨터 게임 등을 인용하며 십대들의 감각에 맞추기 위한 노력도 돋보인다. 연꽃과 돌멩이와 나뭇가지, 시계 판과 토우 모양 인형 등 다양한 오브제와 그림을 조합한 독특한 사진일러스트를 실어 책 읽는 재미를 한껏 높여 주었다. 도화녀를 복숭아 사진으로 형상화하고 알에서 태어난 왕들을 계란 사진 위에 인형으로 세우는 등, 이전의 삼국유사와 전혀 다른 자유롭고 재미있고 유쾌한 상상의 세계를 시각으로 드러내 보여준다. 우리나라 고대 유물들과 세계 신화와 관련된 다양한 사진자료들, 신화에 대해 더 생각해 볼 거리들도 읽기를 즐겁게 해 줄 것이다.
저자의 말 - 지상 인터뷰
* 다른 삼국유사 해제 책과 가장 큰 차별성을 든다면?
굳이 차별성을 말하라면 삼국유사에 실린 이야기들을 있는 그대로 설명해 주겠다는 생각을 집어 던졌다는 것이겠지요. 말하자면 ‘나대로 삼국유사’인 셈입니다. 제가 읽으면서 제일 재미있었던 이야기, 읽으면서도 이건 왜 이렇지, 저건 또 왜 저럴까 의심이 들었던 이야기, 여전히 우리에게 삶의 해답을 가르쳐 주는 이야기들을 제 나름대로 뽑았습니다. 그리고는 제 상상력을 가미하여 만약 현대인이 신화를 짓는다면 어떤 식으로 이야기를 풀어 나갈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글을 썼습니다. 그렇다고 완전히 새로 지어낸 이야기는 아닙니다. 책의 본문에서도 썼지만 삼국유사에 실린 이야기를 충실히 소화하고, 또 대학교수님들이 쓰신 논문들도 참고하여 해석하였습니다.
이렇게 책을 쓴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삼국유사의 저자로 알려진 일연 스님도 당시에 남아 있던 삼국시대에 관한 책들을 많이 참고하였지만, 시골의 할아버지나 할머니들에게서 전해들은 이야기들도 많이 적어 넣었습니다. 즉 근엄한 책의 세계와 생생한 삶의 세계가 씨줄과 날줄로 엮여서 만들어진 것이 바로 삼국유사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삼국유사를 읽을 때에도 메마른 사실들을 적은 역사책으로만 대하지 말고 온갖 상상들이 시끌벅적 뛰노는 자유로운 상상 공간으로 바라보자는 것입니다.
* '역사'로 볼 때와 '신화'로 볼 때 가장 큰 차이는 무얼까요?
저는 소설가 이병주 선생님의 작품을 어릴 때부터 좋아하였습니다.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과거의 사실이 햇빛에 바래면 역사가 되고, 달빛에 물들면 신화가 된다.”는 요지의 구절을 읽은 기억이 납니다. 그런 거겠지요. 신화로 대하면서 삼국유사를 읽으면 옛날 사람들의 꿈꾸던 것, 바라던 것, 싫어하던 것, 좋아하던 것, 이런 것들을 더 생생하게 느낄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러니까 역사가 가르쳐 주는 교훈과 신화가 가져다주는 의미는 약간 차원이 다르다고 해야겠지요. 신화는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줍니다. 상처받은 마음에 붕대를 감아 주고 위로의 말을 건넵니다. 때로는 의기소침한 마음에 용기를 불어 넣어 줍니다.
* 옛사람들과 현대 사람들의 사고가 다르다면 가장 큰 것은, 또 그 이유는 무얼까요?
인간과 자연, 우주를 바라보는 방식에서 차이가 있지 않을까 합니다. 물론 고대인들을 이상화한다는 핀잔을 하실 분도 있겠습니다. 적어도 어떤 면에서는 오늘날의 사람들보다 옛날 사람들이 자연을 더 경건하게 바라보고, 인간의 능력에 대해서 겸손한 자세를 가졌던 것 같습니다. 현대인들은 자연은 개발의 대상, 가축은 마음껏 부리거나 잡아먹는 존재로 보지요. 그러다가 큰 코 다칠 수 있다는 것을 아주 최근에 와서야 서서히 깨닫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한 사고의 차이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왜 그렇게 된 것일까요? 저도 정확하게는 모릅니다. 다만 과거의 어떤 시점에 감당할 수 없는 힘이 사람들의 생각에 변화를 만들어 내지 않았을까요? 갑작스럽게 이루어진 일인지, 아니면 서서히 작용한 것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리고 외부에서 들어온 강제인지, 내부에서 생겨난 변화인지도 모호합니다. 그렇지만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이 매우 오만해졌고, 밀어붙이면 다 된다고 생각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마치 세상의 주인인양 착각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고대인과 현대인이 완전히 동떨어진 사람이라고 보는 것도 잘못입니다. 이런 낱말을 써도 될지 모르겠지만 현대인의 문화적 유전자 속에도 고대인의 사유가 잠재된 형태로 숨어 있는 것이 아닐까요? 언젠가는 다시 등장하여 활개를 칠지도 모르지요.
* 세계 신화, 혹은 다른 시대의 문학작품, 또 현대와 비교하면서 이야기를 끌어가는데 그러고자 한 이유가 있다면?
삼국유사라고 삼국시대의 이야기로만 가두어 놓고 읽으면 재미가 없잖아요? 같은 인류라는 공통점에서 나오는 유사한 이야기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것이 굳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전파된 흔적이라고만 볼 필요도 없겠지요. 사실 이런 것은 증명될 수도 없습니다. 그리고 똑같은 이야기라고 모아놓은 것도 아니고요. 다만 동서양을 넘나들면서 엉뚱한 이야기들을 모아서 엉뚱한 자리에 함께 붙여놓고 자기네들끼리 아우성치게 만들면, 생각하지도 않았던 특별한 이야기가 튀어 나올 수도 있답니다. 게다가 오늘날이라고 해서 옛 이야기의 흔적들이 완전히 사라져 버린 것도 아니지요. 그래서 요즘 사람들에게 좀 더 친숙한 이야기 그리고 저 멀리 서양의 이야기와 삼국유사에 나오는 이야기를 나란히 놓아보고 싶었던 것입니다. 저 자신은 오늘날 세상사는 이야기를 해 보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유 없이 차별당하는 외국인 노동자, 정글의 법칙에 목을 매는 학교 교육, 몸에 칼을 대서라도 예뻐지고 싶은 사람들, 죽어버리면 다 해결되겠지 하는 생각에서 벌어지는 슬픈 소식, 이런 것들에 대해서 제발 생각을 조금이라도 바꿔 보자는 마음을 담고 싶었다고 할까요? 그러다 보니 삼국유사의 이야기들이 더 생생하게 다가오더군요.
* 십대들에게 고전을 재미있게 읽는 방법을 알려주신다면?
저도 흔히 말하는 ‘고전’을 읽는 일이 즐겁지만은 않습니다. 무슨 말인지 도통 알아들을 수조차 없는 경우도 있고요. 읽고 나서도 무언가 인생의 지혜를 얻었다는 느낌보다는 이 어려운 것을 읽어 치웠다는 생각이 먼저 들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면 철학을 공부하는 제 친구의 말이 떠오릅니다. 그 친구는 아무리 어려운 철학 고전도 소설책이라고 생각하면서 읽는답니다. 소설책을 다 암기하면서 읽지는 않죠? 읽다가 모르면 넘어가고 재미있는 대목이 나오면 그 다음에 어떻게 될까 궁금해 하면서 읽지요. 고전 읽기는 그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몰라도 소설책 읽듯이 읽는 것이지요. 몇 년 뒤에 다시 읽게 되면 예전에는 눈이 가지 않았던 부분이 새롭게 다가온답니다. 그리고 또 한참 세월이 지난 뒤에 다시 읽을 때에는 옛날에 이러저러하게 이해했던 대목이 전혀 다른 의미로 읽히기도 하지요.
고전을 읽을 때 누구나 자기 수준과 처지에서 가장 절실하게 가슴에 와 닿는 구절들이 머릿속에 오래 남는 법입니다. 그리고 그런 독서가 사유를 풍성하게 해준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가 권하는 독서법은 어렵건 쉽건 가리지 말고 장르를 불문하고 닥치는 대로 읽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마치 술통 속에서 거품이 일듯이 우리의 머릿속에서 온갖 이야기들이 발효되어 부글부글 끓어오르면서 새로운 신경회로들, 독창적인 사고들, 이런 것들이 분출되지 않을까요?
너머학교 고전교실 시리즈
『삼국유사 끊어진 하늘길과 계란맨의 비밀』은 십대들을 위한 새로운 고전 이야기‘너머학교 고전교실’시리즈의 첫 번째 책이다.
너머학교 고전교실은 21세기를 살아갈 우리 십대들에게 새로운 관점과 다양한 고전 리스트, 자유로운 형식을 선보이며 재미있고 유쾌하게 고전을 만나게 하자는 문제의식으로 시작되었다.
오랫동안 해석되어 온 관점에서 벗어나 오늘날, 지금 한국사회에서 새롭게 바라보는 관점을 제시하는 고전, 또 오래된 고전뿐 아니라 20세기에 나온 잘 알려지지 않은 명저를 찾고자 한다. 특히 청소년을 위한 고전 시리즈가 대부분 택하는 저자 소개, 원전 축약, 해설 혹은 현대적 의의 등의 단조로운 구성을 벗어나 고전이 갖는 의미를 최대한 살릴 수 있는 형식을 각 권마다 자유롭게 펼쳐 보일 예정이다.
고전을 오랫동안 공부하고 애정을 가져온 전문가들이 재미있고 쉽고 유쾌하게 고전 이야기를 풀어내고, 그에 맞는 본문 구성과 읽기 편한 문장, 생각을 넓혀 주는 일러스트와 사진 자료 등을 섬세하게 편집하고 정성들여 펴낼 계획이다.
〈책속으로 추가〉
그렇다면 한국의 신화나 설화에서 탈해나 서동과 같은 교활한 영웅이 출현할 수 있는 근본적인 힘은 어디에서 나올까요? 어떤 사람들은 탈해나 서동 이야기를 예로 들면서 고대 한국인에게는 자기 자신이나 상대방의 명예를 존중하는 사고가 부족했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이런 교활한 영웅 이야기를 치사스러운 ‘모략의 문화’라고까지 말합니다. 이렇게 해석하는 것은 신화 속에서 윤리적인 가르침을 찾으려는 의도가 들어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과연 그렇게만 보아야 할까요? ‘트릭스터(trickter)'라는 것이 있습니다. 원래는 사기꾼, 협잡꾼 또는 책략가를 뜻하는 낱말입니다. 신화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세계의 신화나 민담, 설화 등에 등장하는 장난꾸러기 혹은 어릿광대와 같은 존재를 트릭스터라고 일컫습니다. 탈해나 서동과 같은 교활한 영웅의 존재를 트릭스터라는 관점에서 보면 새로운 해석의 여지가 생깁니다. 신적이고 초자연적인 세계와 인간적인 세계의 중간에 위치해 양쪽을 중재하고 매개하면서, 독특한 자기 자리를 확보하는 존재가 바로 트릭스터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벌이는 사기와 협잡은 꾀나 기지 등으로 불리면서 영웅적인 위업을 달성하는 데 조미료와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지요.
- 205~206쪽
기본정보
ISBN | 9788994407050 | ||
---|---|---|---|
발행(출시)일자 | 2011년 01월 15일 | ||
쪽수 | 222쪽 | ||
크기 |
170 * 220
* 20
mm
/ 471 g
|
||
총권수 | 1권 | ||
시리즈명 |
너머학교 고전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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