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 무위 무욕 노자 노자익 강해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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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정보
저자 현재鉉齋 김흥호金興浩는
1919 2월 26일 목사인 아버지 김성항, 어머니 황성룡의 다섯째 아들로
황해도 서흥에서 출생. 평양과 용강에서 성장.
1937 평양고보 졸업.
1944 와세다 대학 법학부 졸업.
1947 국학대학 철학교수.
1948 스승 다석多夕 유영모柳永模 선생을 만나 6년 만에 깨달음을 얻고,
스승으로부터 현재라는 호를 받음.
1956 이화여대 철학교수 취임.
1965 미국 버틀러 대학 종교사학 석사.
미국 인디아나 주 감리교회의 정목사로 안수 받음.
1975~1984 이화여대의 교목 역임.
1984 이화여대 정년퇴임.
1986 감리교 신학대 종교철학과 교수 취임(15년 재직).
1996 이화여대 명예철학박사.
1965~2009 이화여대에서 학생, 교수, 일반인을 상대로 45년간 고전강독을 함.
2012 12월 5일 별세. 향년 93세.
목차
- 머리말
권재의 노자
일러두기
노자 · 권재 · 현재
제49장 분별을 넘어서
제50장 노자가 말하지 않은 하나
제51장 아버지는 낳으시고, 어머니는 기르시고
제52장 시간성
제53장 지혜의 대도
제54장 이신관신
제55장 상
제56장 에베레스트 정상
제57장 덕유풍 민유초
제58장 깬 사람의 정치
제59장 노자의 아낌
제60장 노자의 정치철학
찾아보기
책 속으로
고故로, 그렇기 때문에 능시불선유선能視不善猶善, 불선도 선으로 인정해주자. 능시, 능히 봐주자 이거지. 뭘 봐주나? 불선유선不善猶善, 불선도 선한 사람으로, 아무리 악한 사람이라도 착한 사람으로 우리가 인정해주자. 그러니까 용서해주는 거지.
지일체상무비실자知一切相無非實者, 일체상一切相이라는 건 실實 아닌 것이 없어. 하늘나라라는 건 실實 아닌 게 없어. 무비실無非實, 실實 아닌 게 없으니까. 고故로, 능시불신유신能視不信猶信, 믿지 않는 사람도 다 천당에 보내주자 이거야. 우리만 자꾸 천당에 가겠다고 그러지 말고, 믿지 않은 사람도 다 보내주자. 이렇게 되면 괜히 교회 다녔다 그런 사람도 있겠지요. 그런 사람도 있겠지만, 성인인세지정聖人因世之情, 이 세상의 정을 생각해서 강립훼예强立毁譽, 교회 다녀야 된다, 교회 안 가면 망한다, 지옥 간다, 그렇게 말을 하지만, 알겠지요? 그렇게 말을 하지만, 우리 속마음으로서는 아무리 악한 놈이라도 다 용서해주고, 믿지 않는 놈이라도 다 천당에 보내주고, 그래서 우리 다 같이 구원을 받는 게 좋지 않으냐. 그것이 하나님의 마음이요, 부모님의 마음 아니겠는가.
예수님께서도 하나님은 비를 선한 자와 악한 자에게 다 주지, 꼭 선한 사람에게만 비를 딱 뿌려주고, 악한 놈은 비도 안 준다, 그렇게는 안 한다 이거지요.(49장)
생지도生之徒, 여기서 ‘생’은 죽지 않고 산 사람이지. 죽지 않고 산 사람이 십유삼十有三, 열 명 가운데 셋이야. 사지도死之徒, 그 죽은 사람이 십유삼十有三, 열 명 가운데 셋이야.
인지생人之生 동지사지動之死地, 죽어가는 사람이 역십유삼亦十有三, 열에서 셋이야. 이건 이 세상에 빠져서 죽은 사람이 셋이고, 죽어가는 사람이 셋이고, 아직 죽지 않은 사람이 셋이고.
부하고夫何故, 왜 그런가? 이기생생지후以其生生之厚, 너무 살려고 야단치기 때문에 그래. 너무 살려고 야단치기 때문에 죽고, 죽어가고, 죽지 않고 아직도 살아남아 있는 것, 생생지후야. 너무 살려고 야단치기 때문에 그래.(50장)
도자徒者 언기류야言其類也, 도徒라고 하는 것은 그 유類를 말한다. 일자본난언一字本難言, 요 한 일一 자, 이건 말할 수가 없어. 뭐라 그럴 수가 없어. 왜? 이건 형이상이니까. 이 사람은 지금은 일一을, 일념지시一念之始, 일념의 시작이라. 형이상의 시작이라 그렇게 말했어요. 강명지强名之, 그것도 억지로 말하는 거지. 역미위적절亦未爲的切, 그것도 적절하지 않아.
그러니까 일一은 각요자체인야却要自體認也, 자기가 체득해야지, 이런 건 설명할 수가 없는 거야. 이 진리는 자기가 체득해야지, 어떻게 설명할 수가 없는 거야. 그러니까 각자 체득해라 그런 얘기죠.(50장)
출판사 서평
노자 · 노자익 강해 무지 · 무위 · 무욕
교재 『노자권재구의』 제5~8권
현재鉉齋 김흥호金興浩 선생의 『노자 · 노자익 강해: 무지 무위 무욕』후편 5권~8권(전 4권)이 출간되었다(김흥호 사상전집 17~20권). 이로써 『노자 · 노자익 강해』 전 8권이 완간된 것이다.
현재 김흥호 선생의 『노자 · 노자익 강해』는 이화여대 대학교회 연경반에서 2004년 11월부터 2006년 4월까지 매주 일요일 일반인들 상대로 47회 강의한 내용이다. 교재는 『노자권재구의』이고, 부교재로는 초횡의 『노자익』과 저자의 보충자료들이다.
책의 구성은 노자 도덕경의 해석과 권재 임희일(중국 남송시대인)의 노자구의에 대한 해석, 그리고 저자가 발췌한 『노자익』(초횡)에 나오는 주해들 및 기타 자료들에 대한 해석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렇게 노자의 주해가 집대성되어 해석되기는 국내에서 유일하며, 최초의 책이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노자권재구의』와 초횡의 『노자익』의 주해가 자세하게, 이해하기 쉽게 풀이된 것도 처음이며, 조선시대 박세당의 주해도 전부는 아니지만 함께 다루었다는 것도 큰 의의가 될 것이다.
『노자권재구의』는 조선왕조 세종대왕 때 경자자庚子字로 출판(세종 2년 1420년 금속활자 인쇄본, 보물 제1655호)할 정도로 우리나라에서 많이 읽혀졌던 책이다. 특히 권재 임희일의 노자, 장자, 열자의 〈삼자권재구의〉는 조선시대 유학자들에게 널리 읽혀졌고, 그들의 노장사상 이해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이 책은, 현재 김흥호 선생이 한문교재들을 한 줄 한 줄씩 읽고 풀이하며 강의해나간 내용을 녹취하여 강의의 현장감이 드러나도록 편집되었다. 한문을 전혀 몰라도 이야기 듣듯이 편하게 읽어갈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본 전집의 대단원에 해당하는 제8권의 부록들은 노자사상에 관심있는 독자들에게 큰 도움이 되리라 본다.
본 전집은 총 8권으로서 분량으로는 상당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반드시 순서대로 읽을 필요는 없고 나름대로 골라서 읽어나가도 좋을 것 같다. 제1권에서 〈권재구의〉의 ‘노자사상의 원리’를 설명하는 부분이 다소 길게 느껴지면, 2권, 3권 등 다른 권을 먼저 읽고 1권을 읽어도 되고, 중간 중간 1권을 참고서 삼아서 읽어도 된다. 또 제8권은 대단원에 해당하므로 전체 이해를 도와줄 수 있다.
간단히 각권의 특징을 소개한다.
5권: 제37장부터 제48장까지 수록되어있다.
제38장에서는 〈노자의 종교와 공자의 도덕〉이라는 설명이 들어있다.
6권: 제49장에서 제60장이다. ‘절대자, 철인, 이상세계’에 대한 해석과 진리의 체득, 노자의 정치철학을 이해할 수 있는 비유들이 풍부하다.
7권: 제61장에서 제72장까지이다. 이 책에서는 ‘질적 변증법’이라는 제목이 보인다.
‘범신론’, ‘무위 · 무사 · 무미’, ‘신즉자연’을, 빙상경기 선수, 축구 선수들을 예로 들 어 해석했다.
또 제70장을 원리, 제71장을 진리, 제72장을 실존으로 정의하여 과학, 철학, 종교의 세계에 대하여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였다.
8권: 제73장에서 제81장까지이며, 마지막 책으로서 선생의 노자사상 강의의 대단원을 보여 준다. 마지막 장인 〈노자 강의를 끝내며: 노자, 오천 언의 열매〉가 있고, 편집후기가 있다. 부록으로 〈전 8권의 차례〉와 〈주해자 및 관련 인물〉, 〈참고문헌〉, 〈노자 1~81 장 전체 찾아보기〉, 제8권의 〈찾아보기〉로 끝을 맺었다.
현재 김흥호 선생은 2012년 12월 5일 향년 93세로 타계했다. 선생은 노자익을 유영모 선생님으로부터 배웠고, 이 노자를 무척 사랑했다. 선생은 생전에 이 책의 서문들을 쓰고 원고를 읽어가면서 내용을 일일이 확인했다. 이제 이 책이 완간이 되어 현재 김흥호 선생의 노자사상을 누구든 만나볼 수 있게 되었다. 이 책을 선생의 손에 올리지 못한 아쉬움이 세월이 갈수록 커진다. 2015년 12월에는 추모 3주기를 맞았다. 이 책을 선생의 영전에 바친다.
출판사 서평
노자老子, 권재?齋, 현재鉉齋의 무無
『노자 · 노자익 강해: 무지 · 무위 · 무욕』, 전 8권
교재 『노자권재구의』 사색출판사 2016년 2월 5일 출간
이윤식(작가)
동서양 철학을 섭렵한 김흥호 선생의 사상 전집 중에『노자 · 노자익 강해』가 지난 2013년, 노자老子 5천 자, 총 81장 중에서 36장까지 4권이 발간되었고, 2016년 2월, 37장부터 마지막 81장까지 4권이 발간되었다.
현재鉉齋 김흥호 선생은 이화여대 교수직에서 정년퇴임하고서도 강의를 놓은 경우가 거의 없었다. 2012년 93세로 돌아가시면서 선생의 강의 모습은 더는 볼 수 없게 되었다.
제자들이 힘을 모아 그동안 연경반에서 강의한 주역周易, 원각경圓覺經, 법화경法華經, 화엄경華嚴經 등이 이미 출간되었고, 다음 강의들도 제자들이 모두 녹음해 두었으며, 그것을 그대로 글로 살려, 한 권씩, 한 권씩 계속해서 발간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 소개할 『노자ㆍ노자익 강해: 무지ㆍ무위ㆍ무욕』도 그 일환이다.
노자가 주나라에서 서역으로 떠나던 중 함곡관에서 당시 관령 윤희尹喜의 요청으로 남긴 81장으로 구성된 5천 자가 노자가 썼다는 글의 전부라고 한다. ‘노자’는 중국에서는 ‘스승 중의 스승’으로 일컬어지는 호칭이기도 하다. 서기전 6세기경의 인물이라 베일에 싸인 부분도 많다. 공자와 만났다는 이야기나 서역으로 넘어가 백 년, 2백 년 장수했다는 것도 사실 확인되지 않은 신화적 이야기다. 사마천의 『사기』에 의하면 5천 자를 남기고 홀연히 사라진 노자의 성은 이李, 이름은 이耳, 춘추전국시절 초나라 태생이다.
김흥호 선생의 노자 강해는 노자의 5천 자와 이 5천 자를 주해한 권재?齋의 해석, 그리고 김흥호 선생의 해석 등 3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재 임희일(?齋 林希逸, 1193∼1271)은 중국 남송시대 사람이며, 유불도의 사상을 섭렵하여, 노자의 5천 자를 강의한 『노자권재구의老子?齋口義』를 남겼다. ‘구의’는 ‘강의’라는 뜻이다.
노자사상과 그 주석들에 대한 해석서는 이미 국내에도 많이 나와 있고, 대학 철학과에서도 많은 강의가 있어왔다. 그러면 김흥호 선생의 노자 강해는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을까. 그 특징들이란 김흥호 선생의 철학세계와 직결되기에 간략하게나마 이와 함께 언급해야겠다.
이 책은 노자의 사상을 ‘무극 · 태극 · 음양’으로 보고, 이를 노자 5천 자, 81장 내용을 꿰뚫는 핵심개념으로 파악하고 있다.
노자의 원문을 김흥호 선생 특유의 누구나 알기 쉬운 비유적 표현으로 설명하고, 그다음 권재의 해석, 그 외 여길보, 정구, 이식재, 소자유, 박세당 등 역대 주석들을 해석하고 있다.
이를 통해 무엇보다도 김흥호 선생의 철학사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는 점이다. 선생은 정인보 선생으로부터 양명학을, 유영모 선생으로부터 일좌일식의 철학을, 지식이 아닌 지행합일, 체득으로 배움을 이어온 철학자이면서 유교, 불교, 기독교와 동양철학과 서양철학을 섭렵하였다. 이러한 학문적 배경이 노자 강해의 결정적 특징으로 드러나고 있다. 다시 말하면 노자의 자구해석에서 지엽적인 해석에 얽매이지 않고, 기독교사상, 동서양 철학을 꿰뚫는(일이관지一以貫之) 해석에 있다. 따라서 읽는 이로 하여금 마음이 풍요로움을 느끼는 독서체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선생은 불교와 노자사상, 기독교사상 등이 본질적으로 핵심이 같거나 비슷하다는 점을 책 전편에서 많은 비유를 들어 강조하고 있다. 노자의 무無는 서양에서 말하는 ‘절대자’로, 불교에서 말하는 ‘진공眞空’으로, 그 무를 직관으로 체득한 자를, 성인 혹은 철인으로 보고 있다. 유영모 선생은 이것을 ‘없이 존재하는 분’으로 표현한 바 있다.
노자의 무사상은 참으로 어렵다. 말로 표현하기가 결코 쉬운 것이 아니다. 해서 노자의 5천 자에서도 그렇고, 다른 사람들의 주석에서도 상징과 비유적 표현이 많다. 김흥호 선생도 비유적 표현을 많이 들고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에베레스트 산’이다. 무는 히말라야 에베레스트 정상에 있는 ‘얼음’으로, 에베레스트 산은 절대자를 만난 석가, 예수, 소크라테스 등 성인, 철인으로, 꼭대기에서 흘러내려오는 물은 만인, 만물을 먹여 살리는 ‘말씀’(성경, 팔만대장경 등)으로 비유하고 있다. 결국 노자사상은 ‘형이하학’이 아니라 ‘형이상학’에 대한 사상이라고 볼 수 있고, 노자는 이것을 ‘도道’라고 했지만 결코 설명할 수 있거나 이름 붙일 수 있는 것(도가도道可道 비상도非常道)으로 보지 않았다.
김흥호 선생은 ‘무’라는 절대를 만나기 위해서는 노자의 자구적 해석 등 지식의 습득에 머물기보다는 일좌일식 등 실천적인 체득을 강조했다. 노자는 육체(욕망)의 삶에서 정신의 삶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절대(무無)를 만나야 하고, ‘나’를 알자는 것이 5천 자를 남긴 목적이라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도 노자의 ‘진신眞身’ 개념을, 불교에서의 ‘법신法身’, 기독교에서의 ‘도신道神’, 유교에서의 ‘성신誠身’으로 대비하고 있다.
선생은 노자의 글, 81장의 전체내용이 도, 철인, 이상세계(우주관, 세계관, 인생관) 등 세 개의 핵심 내용이 반복해서 설명되어 있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이러한 관점에서 원문을 분석, 풀이하면서 분별지에서 통일지로 나아가는 노자사상을 소개하고 있다.
이러한 특징들 때문에 노자의 원본 자구字句의 직역을 원하는 사람에게는 난감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어쩌면 원본에 대해 어느 정도 지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봐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수 있다.
가령, 제5장에 나오는 구절을 보자. “천지불인天地不仁 이만물위추구以萬物爲芻拘”라는 구절이 있다. 이것을 직역하면 “천지는 어질지 못해서 만물(백성)을 꼴과 개처럼 여긴다.” 하지만 이것이 도대체 무엇을 뜻하는 것인가. 직역을 하면 노자의 사상과는 전혀 다른 엉뚱한 뜻이 된다. 왜 노자는 이렇게 말했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인仁이란 세상이 어질지 못하니 억지로라도 실천해야 되는 유위有爲에 해당한다. 김흥호 선생은 이 구절에서 ‘천지’는 ‘자연’으로, ‘불인’을 인위적인 사랑이 아닌 무위적 행위, 즉 저절로 하는 사랑으로 풀이한다. 그러므로 추구芻拘는 “꼴과 개” 혹은 “꼴로 만든 개”가 아니라 맹자가 언급한 “추환芻?”이 된다. 즉 제일 맛있는 음식이라는 뜻이 된다. 맹자는 “마음이 제일 좋아하는 것은 진리와 정의라. 눈이 제일 좋아하는 것은 아름다운 경치고, 귀가 제일 좋아하는 것은 음악이고, 입이 제일 좋아하는 것은 추환이라” 하였다. 김흥호 선생은 위 구절의 ‘추구’를 맹자가 이렇게 언급한 ‘추환’으로 보고, “가장 행복한 존재”로 해석한다. 따라서 위 구절의 의미는 “천지는 인위적인 사랑을 하지 않고, 저절로 하는 사랑이라 만물을 행복한 존재로 만든다”라는 것이 된다고 선생은 풀이하고 있다. 이 5장에 대한 권재의 주석을 보면 선생의 해석이 더 타당하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렇듯 자구의 좁은 해석에 연연하지 않는다면 이 책은 누구에게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책이다. 수많은 비유들이 노자의 핵심사상을 이해시키고도 남게 해주기 때문이다. 다시 언급하지만 노자의 ‘무’니, ‘자연’이니 ‘무위’니 하는 것은 머리로 이해는 돼도 이를 체득을 하기 위해서는 ‘일좌일식’이라는 실천적 덕목이 필요하다. 선생은 이 점을 누누이 강조하고 있다.
“이금지유고以今之猶古 즉지고지유금則知古之猶今, 금今이 오히려 고古가 되면, 고古가 또 금今이 되는 거고, 그래서 원리에는 시작도 끝도 없다. 우리가 지금 노자를 읽는 것도 옛날의 이치를 배우자는 거죠. 이치를 배워가지고 무엇을 하자는 건가? 현실적인 나의 문제를 해결하자는 거지요. 이것을 소위 도기道記라고 그런다. 도의 핵심이라고 그런다. (…) 도기자道記者, 도기라는 원리는 무거래야無去來也 고금지위야古今之謂也. 원리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과거나 현재나 언제나 진리지, 과거에는 진리인데, 지금은 진리가 아니다, 그럴 수는 없다. (…) 노자, 이런 고전은 무슨 특별히 해석하는 방법이 있는 게 아니에요. 글자 그대로 뜻이 있는 게 아니죠. 이걸 전체로 직관해서 핵심을 붙잡아 거기에 맞춰서 해석하는 거죠.”
2천 5백여 년 전에 남긴 노자의 글은 종교적, 철학적, 도덕적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다. 전쟁의 참화가 비일비재했던 춘추전국시대였다. 무례함이 판을 치니, 예를 강조하게 되고, 무법이 판을 치니 법을 강조하게 된다. 그래서 인仁이니 예禮라는 것이 나왔다. 하지만 이러한 유위有爲보다 무위無爲가 사람을 더 사람답게 하고, 세상을 더 세상답게 만들고 있음을 노자는 놓치지 않았다. 이러한 무위사상을 요임금, 순임금의 경우로 비유하고 있다. 세상이 풍요롭지만 백성들이 왕이 잘해서 그렇다고 보지 않는다. 백성들 자신들이 열심히 일해서 잘 살게 되었다고 여겼다고 한다. 백성들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게 할 정도로 무위의 정치를 펼치는 왕이 진정한 왕이고, 김흥호 선생의 해석대로 절대자(무無)를 만난 철인의 정치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철인에 대한 언급도 결국 절대자의 무위無爲를 설명하기 위한 예인 것이다.
노자의 원문에 나오는 수레바퀴 30개의 살이 도는 것도 축이 들어가는 바퀴의 빈 공간이 없으면 불가능하다는 예도 그렇고, 바다에 사는 물고기에 비유한 것도 모두 무와 무위에 대한 설명이다. 종교적이면서도 철학적인 심오한 사상인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빈 공간’은 무엇인가. 그것이 무無다. 아무것도 없이 비어 있어서 무無라는 게 아니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선생은 이 무無를 ‘절대자’로 보았다. 선생은 노자의 글은 이 절대자, 절대자를 만난 철인, 철인에 의한 이상세계를 전편에서 다루는 핵심이라고 하였다. 제37장에 나오는 글을 보자.
“도상무위道常無爲 이무불위而無不爲”
“절대자를 만나면 무위, 언제나 철인이 되는 거다. 철인이 되면 거기가 이상세계다.”
오늘날 우리 시대에 절박하게 와닿는 구절이 다음에 나온다.
“후왕약능수候王若能守 만물장자화萬物將自化.”
“이 세상 왕들도 이 말을 이해하면 모든 왕들이 철인이 될 수 있다. 모든 만물이 저절로 철인의 덕을 감화를 받아서 스스로 다스리고, 그래서 자유가 생기고, 이상국가가 될 수 있다. 온 세상이 이상세계가 된다.”
이 37장의 권재구의나 육희성陸希聲의 주, 여길보呂吉甫의 주를 보면 왕에 국한되지 않는다. 왕이 아버지와 같은 마음, 어머니와 같은 마음이 되어야 “모든 만물이 잘 자란다”라고 하였다.
오늘날 식으로 말한다면 대통령에서부터 사회 각 분야의 지도자들, 각 가정의 부모들이 제 자리를 지켜야 이 세상이 바르게 된다고 볼 수 있다. ‘나’가 무엇이 되었든, 어느 지위에 있든지 ‘나’가 먼저 철이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절대자와 만났다고 표현하든, 철인이 되었다고 표현하든 같은 뜻이라고 선생은 해석한다. 여길보의 주 마지막에는 “동지천하同之天下 이선지후왕而先之候王 의야義也”라는 말로 장을 맺는다.
“천하 사람들하고 같이 살겠다 하기 전에 먼저 왕이 철이 들어야 한다. 그것을 의義라 한다.”
정치처럼 시끄러운 것도 없는데 도대체 정치는 왜 하나? 우리는 매일 같이 일하러 나간다고 하는데, 일은 왜 하나? 선생의 표현방식으로 풀이하면 “사람이 사람답게 되기 위해서”이고, “하루하루의 삶이 깨끗하게(깨달아 끝을 맺는)” 되기 위해서인 것이다. 수천 년 전 노자가 오천 자를 남긴 것도 바로 이 때문이 아니겠는가.
일일이 다 소개하기 어려운 보석 같은 이 고전의 마지막 장, 제81장에서는 “신언불미信言不美 선자불변善者不辯 지자불박知者不博”으로 압축될 수 있다. 선생은 “참된 말은 듣기에 아름다운 것이 아니고, 깨달은 자는 변명하지 않으며, 진리를 깨달은 사람은 많이 아는 사람이 아니다”라고 하였다.
선생은 말한다.
“노자가 하고 싶은 소리는 생명을 얻어야 되고, 도에 통해야 되고, 진리를 깨달아야 되고, 이것이 노자의 전 내용이 아니겠어요? 어떻게 하면 진리를 깨닫나? 어떻게 하면 도에 통하나? 어떻게 하면 생명을 얻나? 내가 늘 말하던 빛과 힘과 숨이라는 거죠.”
‘생명, 도, 진리’ 혹은 ‘빛과 힘과 숨’을 선생은 ‘통일, 독립, 자유’라고 쉽게 풀이하기도 하고 “눈을 뜨고 일어서서 날아가는 것”이라고도 하였다.
이러한 말들은 노자사상에 대한 선생의 핵심이기도 하다. 노자의 ‘무無’를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노자 오천 자의 해석은 크게 달라질 수밖에 없다. 선생은 노자의 철학에서 과학, 철학, 예술, 종교를 하나의 관점으로 꿰뚫어 해석해 나아갔고, 그 하나의 관점이란 ‘참 존재’ 즉 ‘절대자와의 만남’이고, 이것이 노자 해석의 원점이면서 귀결점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책의 머리말 선생의 글을 보면 이 점이 명확해진다.
“노자 6장에서는 하나님을 곡신谷神이라고 한다. 없이 계신 하나님이란 말이다. 노자는 이것을 무극이라고 한다. 없고 없는 하나님, 절대무다. 마치 어머니가 주고주고 주다가 자기는 숨어버리는 것과 같다. 무위자연이다. 그것을 하이데거는 에르아이그니스(Ereignis)라 한다. 절대무다. 인간은 절대무에서 걸려오는 말을 듣게 된다. 이것이 본질직관이다. 이때 인간의 영성이 깨어난다. 하이데거는 노자를 영성이 깨어난 사람으로 보았다. 하이데거는 노자를 가장 사랑했다고 한다. 노자는 우주를 허이불굴虛而不屈 동이유출動而愈出이라 한다. 텅 비어 있지만 계속 솟아나오는 것이 무위자연이다. 노자는 그것을 사랑이라고 한다.”
마지막으로 권재의 주석을 설명한 김흥호 선생의 글을 소개하면서 서평을 마치기로 한다.
“독자불오기의讀者不悟基義, 독자는 그런 말에 끌려 다니지 말고 노자가 뭘 말하려고 하는지, 노자의 근본 뜻을 깨닫지 않으면 안 된다. 노자의 근본이 무엇인지, 그걸 깨달아야 한다. 이불견타문자기처而不見他文字奇處, 만일 글자에 끌려 다니게 되면 우다견강지설又多牽强之說, 억지로 갖다 붙이는 억지투성이가 되고 만다. 억지로 해석하고, 억지로 끌어다대고 그렇게 되고 만다. 요는 득이망어지得而亡語之이죠. 근본 뜻을 얻었으면 말은 잊어먹어도 좋다. (…) 말에 너무 집착하지 마라. 근본 뜻을 깨달았으면 그만 아닌가.”
* 책속으로 추가 *
차수어위此數語爲, 여기에 여러 마디, 죽지 않고 사는 사람, 죽은 사람, 죽어가는 사람, 차수어此數語, 여러 마디가 있는데, 금고양생자今古養生者, 옛날부터 도 닦는 사람들이 이거 중요하게 생각해. 학문지조學問之祖, 그것이 공부의 핵심이야. 어떻게 하면 이 아홉 사람 속에 들어가지 않고 한 사람이 되는가. 아홉 사람이라는 건 뭔가? 나쁜 친구라는 거지. 어떻게 하면 나쁜 친구에게 빠지지 않고, 좋은 선생님 하나를 만나나? 그것이 학문지조야. 그것이 그 사람들 공부의 핵심이야.
고故로, 그렇기 때문에 노자어老子於, 노자는 여기서 차설득역정중此說得亦鄭重, 정중하게 이렇게 가르쳐주는 거야. 정중하게 가르쳐. 이런 말 정말 다른 책에 없지요. 이런 말이 어디에 있겠어요, 정말. 이건 노자 같은 데밖에 없어요. 그러니까 정중하게 가르쳐주는 거야.(50장)
그리고 무이후능유無而後能有, 나 자신을 없다 이렇게 생각해야 유가 되고. 허이후능영虛而後能盈, 비운다 그렇게 되어야 참이 되는 거다. 언제나 이 사람들 생각은 뭔가 그러면 진공묘유라는 거지. 진공묘유, 자기를 없이해야 자기가 있어진다. 자기가 무가 돼야 자기가 유가 된다. 언제나 이거 같은 생각이니까. 손이후능익지의損而後能益之意, 자기가 손해가 나야 자기가 이익을 얻는다, 다 같은 말이지요. 설도차처說到此處, 이렇게 말하다가 우제기개개문又提起箇蓋聞, 또 이런 얘기를 한다. 이렇게 들었다 그러고 또 얘길 하게 된다.(50장)
도생지道生之 덕축지德畜之, 이건 도덕이라는 거죠.1 도道는 원리지요. 진리를 도라 그러죠. 덕德은 실천하는 거예요. 사람이란 언제나 이 진리를 실천해야 생명이 되지요. 진리를 실천하지 못하면 생명이 아니다. 그래서 언제나 도덕, 도덕, 이렇게 자꾸 갖다 붙이는 거죠. 여기서 도는 아버지고, 덕은 어머니다, 그렇게 또 비유를 하고 있어요. 진리도 중요하지만 실천이 또 중요하다. 믿음도 중요하지만 행行하는 것도 중요하다. 다 같은 생각이죠. (51장)
천하유시天下有始, 천하에는 시작이 있다. 이위천하모以爲天下母, 그걸 마치 어머니라 그렇게 말해두자. 요전에는 또 아버지라 그랬는데 오늘은 그냥 어머니라 그렇게 해두자. 기득기모旣得其母, 그 어머니를 내가 알아야, 그 어머니를 내가 얻어야 그래도 되고, 그 어머니를 내가 알아야 이지기자以知其子, 나를 알 수가 있어. 자, 이게 중요한 거예요.
철학적으로 말하면 하나님을 알아야 나를 알지. 하나님을 모르면 나를 모르는 거지. 너 자신을 알라 그러는데 나 자신은 나 자신을 모른단 말이야. 그런데 내가 하나님을 알 때 내가 날 알게 되거든. 이게 소위 믿음이라는 거지. 믿음이라는 게 뭔가? 하나님을 알면 나를 알게 돼. 그렇게 해서 하나님하고 나하고의 관계가 이게 믿음이라는 거지.(52장)
언인부지대도言人不知大道, 사람이 도덕을 모르면, 사람이 사람을 사랑할 줄을 모르면, 뭐 다 같은 말이죠. 사랑할 줄 모르면 이자긍총명而自矜聰明, 자기를 총명하다고 언제나 뽐내고, 자과문견自誇聞見, 자기만이 다 안다고 그러고 자랑해. 그런 놈들은 차호경지도야此好徑之徒也, 그것은 좁은 길로 가는 사람들이야. 기지지도豈知至道, 어떻게 그것이 인간이 갈 수 있는 큰 길이고 바른 길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53장)
고故로, 그렇기 때문에 이신관신以身觀身이다. 자, 이것이 아주 제일 중요한 말이지요. 이신관신以身觀身, 내가 ‘나’가 돼야 나를 볼 수가 있다, 그런 말이지요. 내가 내가 돼야 나를 볼 수 있다. 그런데 물론 나만 보는 게 아니고 하나님도 볼 수가 있다. 또 하나님만 보는 게 아니고 사람도 볼 수가 있다.
그건 세 가지로 확대해서 생각하는 게 좋아요. 하나는 내가 내가 돼야 나를 볼 수 있다. 이것이 ‘너 자신을 알라’이죠. 너 자신을 알게 될 때 너는 너 자신을 볼 수가 있다. 안다고 하는 것이 여기서는 ‘본다’ 이렇게 되니까. 너 자신을 알라, 그 말을 다른 말로 말하면 이신관신이에요. 내가 내가 될 때 내 본체를 볼 수 있다. 또 하나는 나를 본 자는 하나님을 보았다, 같은 말이지요. 그러니까 내가 내가 될 때 하나님도 볼 수 있다. 그다음은 하나님을 사랑하면 이웃도 사랑할 수 있다. 내가, 내가 되면 이웃도 사랑할 수가 있다. 그래서 그건 세 가지를 다 생각해야지요. 내가, 내가 될 때 나 자신도 알 수가 있고, 하나님도 알 수가 있고, 이웃도 알 수가 있고, 이제 그런 것이에요. 단순히 아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할 수도 있고, 이웃을 사랑할 수도 있고, 또 나를 사랑할 수도 있고, 그렇게 해서 넓게 넓게 그렇게 생각하는 게 좋다는 말이지요. 그래서 이신관신이라는 말이 참 좋은 말이에요.(54장)
득본이응만물자야得本以應萬物者也, 언제나 우리가 하나님과 같이 사는 거야. 득본得本이지. 본을 얻어서, 하는 말은 언제나 하나님을 붙잡고 그리고 응만물應萬物이야. 이 세상의 만물에 응한다. 이 세상을 살아간다 그거지. 이 세상을 살아갈 때는 하나님과 같이 살아가고, 이 세상을 떠날 때는 하나님께 돌아가고. 돌아가도 영원한 생명이고, 여기 살아도 영원한 생명이고. 우린 사나 죽으나 언제나 영원한 생명이다. 그래서 이걸 상常이라 그런다.
이것도 참 좋은 말이에요. 어떻게 이 사람들이 이런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어요. 난 성경에만 이런 말 있는 줄 알았는데, 이 사람들은 벌써 이런 생각 많이 했단 말이지.
그러니까 우리가 살 때는 그리스도와 같이, 죽어도 그리스도와 같이, 바울의 생각과 꼭 같아요. 우리가 죽으면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도 영원한 생명이고, 살아갈 때는 하나님과 같이 사는 것도 영원한 생명이고, 둘 다 상常이다. 그래서 지화왈상知和曰常 득본이응만물자야得本以應萬物者也라.
기실일도야其實一道也, 사나 죽으나 마찬가지다. 기실일도其實一道야. 고故로 그렇기 때문에 위지상謂之常, 이것을 영원한 생명이라 그런다. 아주 말이 다 근사하지 않아요? 어떻게 이천년 삼천년 전에 이런 얘기를 했지, 벌써.(55장)
즉도덕수유간則道德雖有間, 그러니까 도덕道德, 죽어서 하나님께 가는 걸 도道라 그러고, 살아서 하나님과 같이 사는 걸 덕德이라 그러고, 도덕이라는 게 수유간雖有間, 그 사이가 있는 것 같은데, 딴 것 같은데, 급기회어상及其會於常 즉동야則同也, 끄트머리에 가면 다 같은 거다. 살아서 하나님하고 같이 사나, 죽어서 하나님께 돌아가나, 다 같은 거다.(55장)
진리를 깨달았다고 하는 사람들은 그 깨달은 내용에 대해서는 절대 말하지 않아요. 예수님더러 빌라도가 진리가 무언가 그랬어도 예수님은 아무 대답이 없거든. 선불교에서도 진리를 깨달은 사람들에게, 그 제자들이 진리가 뭔가 물어보면 대답하는 사람들이 없단 말이지.
내가 지금 이름 갑자기 생각 안 나는데 어떤 사람은 선생님한테 아무리 졸라도 대답을 안 하니까 선생님을 때렸어요. 때리다가 나중에는 아주 엎어 뉘고는 짓밟았어요. 그래도 난 말 못한다. 말 못한다 해서 결국 아무 말도 못 들었어요. 그런데 얼마 후에 그 제자가 그 진리를 깨달았어요. 깨닫고 보니 만일 자기 선생이 말해줬더라면 자기는 영 못 깨달을 뻔했다는 거지. 그래서 말 안 해준 것이 너무 고마워서 선생님 있는 데를 찾아갔더니 선생님은 벌써 세상을 떠났어요. 그래 선생님의 무덤에 가서 한없이 고맙다고 절을 했다는 그런 얘기가 있어요.(56장)
이런 것을 다른 말로 할 때 ‘모순의 자기통일’이라고 하죠. 생과 사는 모순이거든. 모순이지만 그것을 하나로 꿰뚫는 것, 말하자면 우리가 도를 닦는다는 것이 바로 그거지. 모순을 꿰뚫는 거죠.
우리의 제일 큰 문제가 뭐냐 하면 이북과 이남을 꿰뚫지 못해서 그런 거지. 꿰뚫어야 통일이 되는 건데, 꿰뚫지 못하니까 통일이 되지 못하는 거거든. 인간의 모든 문제는 모순을 하나로 통일하자는 건데, 그런데 그것이 어렵다. 신라, 백제 통일하기도 어렵고, 또 지금 우리가 남과 북을 통일하기도 어렵다. 이게 다 어려운거지. 우리가 개인적으로 생사를 통일한다, 이것도 참 어렵다. 아무래도 살고 싶지, 죽기 싫겠지요. 생사를 통일한다는 것, 이것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에요.
도라는 것은 언제나 정반대를 통일하자는 거죠. 길 도道 자는 가운데 글자가 머리 수首 자죠. 그 아래는 달아날 주走 자거든. 그러니까 머리하고 발하고를 통일하는 것. 다르게 말할 때는 지행일치라고 하죠. 지행일치 하는 것이 통일이지. 그런데 알기는 쉽지만 행하기는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니지. 또 어떤 사람은 행하지만 알기가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니지. 그러니까 지행이라는 두 모순을 어떻게 통일하는가? 알기도 하고 행하기고 하고, 이래야 제대로 되는 거니까.(56장)
불언자不言者, 말하지 않는 사람은 비밀이불언非密而不言이야. 정말 비밀로 하느라고 말하지 않는 것이 아니야. 성誠, 진실로 무소사언無所事言, 말할 수가 없어서 말 못하는 거야. 하즉何則, 왜 그런가? 불견일법고야不見一法故也라. 이럴 때 법法은 물건이죠. 만법萬法 그러면 만물이나 같아요. 이 법이라는 말이 여러 가지로 쓰여지니까. 만물 그럴 때도 만법 그러고, 또 우리가 무슨 법률이라고 그럴 때도 법이라고 그러고, 또 진리라고 할 때도 법이라고 하고, 실재라고 할 때도 법이라고 하고, 하나님이라고 할 때도 법이라고 하고. 이 법 자가 아주 팔방미인이에요. 여러 가지로 쓰여지니까.
중국 사람들 한문자에 이 물物 자, 이것이 또 팔방미인으로 쓰여지죠. 동물, 식물 할 때도 물이고. 사람, 인물 할 때도 물이고, 또 하늘, 신神도 물物이고. 다 물, 물, 그러지만 내용은 다 천양지차예요. 그런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되지, 그런 걸 모르면 한문이라는 것을 참 알기가 어렵게 되거든. 그래서 불견일법不見一法, 아무 물건도 보지 못했어. 고야故也, 왜 그런가?
불견일법不見一法, 아무 물건도 보지 못했어. 아무 형태도 보지 못했어. 고물물이불물어물故物物而不物於物, 그렇기 때문에 물물物物, 물건을 창조하는 분이지. 불물어물不物於物이야. 물건에게 창조되는 물건이 아니다. 하나님이다 이거지. 기독교로 말하면 하나님이지. 그 하나님을 우리가 어떻게 보겠어요. 하나님을 어떻게 보고, 또 어떻다고 말하겠어요. 말할 수가 없잖아. 그러니까 말할 수가 없다는 거지. 무슨 뭐 비밀로 하느라 말할 수가 없다 그것이 아니다. 뭐가 보여야, 나무처럼 보여야 저걸 나무라고 그러고, 돌멩이다 그럴 텐데 아무것도 보이는 것이 없는데, 무인데 그것을 어떻게 말하느냐 이거지. 그러니까 물물이불물어물物物而不物於物, 이런 말도 참 특별한 말이지. 만물을 창조하는 분이지. 불물어물不物於物이야. 만물에게 창조되는 분이 아니야. 물을 물이라는 분이지 물에게 물 되는 분이 아니야. 그 아주 근사한 말이에요.
황況, 하물며 가득이친소귀천지호可得而親疏貴賤之乎, 그런 물건을 우리가 친親했다든가, 소疏했다든가, 귀貴하다든가, 천賤하다든가, 그런 상대적인 말로 수식할 수가 있는가. 그럴 수가 없다. 산꼭대기를 얼음이라고 그럴 수도 없지, 물이라고 그럴 수도 없지. 그것은 산꼭대기지. 그것은 그냥 공이야. 그것은 그냥 중이야. 그것은 그냥 또 불이야. 그런 거지. 그게 무슨 뭐 물도 아니고, 얼음도 아니고,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산꼭대기야. 자, 그런 세계지요. 어떻게 귀천을 붙일 수가 있겠는가.
가득친소귀천자可得親疏貴賤者, 친소귀천을 붙일 수가 있다면 물이이의物而已矣, 그것은 물이야. 그런데 붙일 수 없으니까 그것은 하나님이지. 피물물彼物物 이불물어물而不物於物, 하나님은 물건을 창조하는 분이지, 물건에게 창조 되는 분이 아니야.
고故로 그러니까 막지작莫之爵, 그분을 어떻다 그러고, 벼슬을 준다거나 그럴 수가 없어. 그럴 수가 없으니까 이상귀야而常貴也, 그저 영원히 높으신 거야. 귀하다, 라는 말보다 그냥 높다 그럽시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는 영원히 높으신 이지, 뭐 귀하다고 하기 어려워. 그저 한없이 높으시다. 예수님 말로 하면 그저 한없이 크시다. 그저 그런 분이지. 거기에 우리가 무슨 형용을 해서 하나님은 사랑이다, 뭐 어떻다 하는 것은 다 우리 사람들의 얘기지. 하나님은 사랑인지 개똥인지 우리가 어떻게 알아. 그 알 수 없잖아요. 물물이불물어물物物而不物於物인데 그것을 어떻게 말하겠어요.
그저 그냥 입을 딱 열고 아, 하고 말았지 어떻게 할 수 없어. 아, 했다가 그냥 멘, 하고 말아야지. 아멘 하고 말아야지. 지자불언知者不言 언자부지言者不知, 정말 유명한 글이에요. 이거 언어학자들이 많이 연구하는 글이에요.(56장)
이정치국以正治國, 나라를 다스리려면 바로 다스려야지. 공자도 정政은 정야正也라 했어요. 정치한다는 정政 자는 바를 정正 자야. 바로 해야 돼. 정을 가지고 나라를 다스려야 돼.(57장)
성인무위무사무욕聖人無爲無事無欲, 성인은 착취하지도 않고, 전쟁도 안 하고, 백성들한테 욕심도 안 내고, 그러고 이시천하而示天下, 천하를 다스린다. 왕은 마치, 덕유풍德猶風, 바람 같고, 민유초民猶草, 백성들은 풀 같애. 그러니까 초상지풍草上之風, 풀 위에 바람이 불면 필언必偃, 모든 풀들이 수그러들 것 아닌가.
그러니까 왕이 정치를 잘하면 백성들은 무조건 행복해질 것 아닌가. 결국 그 소리지요.(57장)
고지성인古之聖人, 옛날 성인은 무의어용병無意於用兵, 절대 전쟁하려고 하는 생각은 없었다. 부득이유정벌지사不得已有征伐之事, 그런데 자꾸 반역하려는 사람이 나오면 할 수 없이 정벌이 있게 돼. 수연雖然, 그렇지만 미족이취천하未足以取天下, 그것으로는 천하를 내 것으로 만들기 어려워. 천하신기天下神器, 천하는 하나님의 거야. 사람의 천하가 아니야. 불가위야不可爲也, 사람의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어. 역사는 하나님이 만드는 거지, 사람의 힘으로 어떻게 되는 것이 아니야. 해방, 이것도 우리의 힘으로 된 것이 아니야. 이것도 하나님의 힘으로 된 거야.
체도자體道者는 도를 깨달은 사람들은 확연무사廓然無事, 자꾸 어떻게 해보려고 그러지를 않아. 전쟁을 해서라도 어떻게 해보겠다, 뭐 그러지 않아. 확연廓然은 텅 비었다, 아무 욕심 없이, 그 소리지요. 그러니까 마음을 텅 비게 해가지고, 아무 욕심 없이 무사無事, 절대 전쟁을 일으키지 않아. 불취천하不取天下, 천하를 내 것으로 만들겠다, 그러지 않아도 이천하귀지의而天下歸之矣, 천하가 저절로 돌아와. 천하가 저절로 통일이 돼. 이렇게 되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안 된다.(57장)
개蓋, 대개, 복의어화福倚於禍, 복은 화 속에 숨어 있을 수도 있다. 아까 말한 대로 불행 속에 행복이 있을 수도 있다. 여생사지상계如生死之相繼, 그러니까 생 속에는 사가 있고, 사 속에는 생이 있고. 생사라는 건 언제나 같이 있는 거지. 내가 지금 살아가는 거지만 동시에 난 지금 죽어가고 있는 거지, 무슨 생사가 따로 있는 게 아니야. 생즉사生卽死요, 사즉생死卽生이요, 그런 거다. 생이나 사나 같은 거야. 여름 속에 겨울이 있고, 겨울 속에 여름이 있고, 다 같은 말이에요.
미시유지未始有止, 계속 흘러가는 거니까 미시유지未始有止, 절대 그치는 날이 없어. 멎어있는 때가 없어. 이미자而迷者, 그런데 세상에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부지不知, 그런 걸 몰라. 겨울이 여름, 여름이 겨울, 생이 사, 사가 생, 이런 걸 통 몰라. (58장)
이 색嗇이란 글자를 생각해보면 알기가 쉬워요. 치인사천治人事天 막여색莫如嗇 부유색夫惟嗇, 그래서 아끼고 아껴야 시이조복是以早復, 빨리 가난을 회복할 수 있다. 그런데 조복早復 그러면 어떤 책에는 조복도早復道라 이렇게. 길 도 자가 붙어있는 것도 있어요. 그러니까 우리는 길 도道 자 붙어있는 걸로 합시다. 조복도야. 그래 도를 빨리 회복한다.
그러고 조복위지중적덕早復謂之重積德, 덕을 많이 쌓게 된다. 그러니까 조복도중적덕早復道重積德 이렇게 되는 거지.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건 조복도지. 이웃을 내 몸 같이 사랑한다는 건 중적덕重積德이지. 같은 말이에요. 조복도가 되려면 부지런히 일해야 되고, 중적덕이라고 하려면 아끼고 아껴서 저축해야 되고. 그래 덕 하면 그건 후덕하다. 저축이 많다 이거지. 또 조복도 하면 새벽부터 나가서 열심히 일한다. 하나님을 사랑하려면 새벽부터 나가야 되고, 그리고 또 아껴야 되고 다 같은 말이지요. 그래서 언제나 조복도중적덕이지. 조복도는 네모난 거고, 중적덕은 동그라미고, 언제나 그렇게 되지.
그런데 중심에 누가 있나? 내가 있다. 언제나 내가 무엇인가? 나는 언제나 하나님을 사랑해야 되고, 이웃을 섬겨야 되고, 그렇게 돼있는 거지.(59장)
치대국治大國, 나라를 어떻게 하면 잘 다스릴 수 있나? 약팽소선若烹小鮮이다. 지을 팽烹 자, 소선小鮮, 조그만 생선을 조리는 거나 같아. 조그만 생선을 조린다는 말은 무슨 말이죠? 생선을 가만 놔둬야지, 이리 들치고 저리 들치고 그러면 나중에 살은 다 떨어지고 가장자리만 남는다는 거죠. 아까 58장에서 민민悶悶, 순순醇醇하는 거나 같은 말이지. 어수룩해야 백성이 살게 된다, 그거나 같은 말이지요. 그러니까 나라를 다스리는 건 그저 간단해. 약팽소선若烹小鮮이다. 조그만 생선을 조리는 거나 같아. 정치면 이게 다죠 뭐. 이 이상 더 어디 있겠어요? 그걸 그러지 않고 백성들을 자꾸 못 살게, 이렇게 들추고 저렇게 들추고 그러면 이거 안 돼.
요 한마디가 노자 정치철학의 핵심이지요. 어떻게 요런, 말 한마디로 딱 이렇게 꼬집어내는지 정말 알 수가 없어요. 이거 유명한 말이에요. 약팽소선若烹小鮮, 조그만 생선을 조리는 거나 같다. 이걸 소위 무위자연이라는 거지. 가만 내버려둬야 저절로 되는 거지, 자꾸 야단치고 시끄럽게 그러면 그만 아이들이 다 신경쇠약 걸려서 죽고 말아. 약팽소선若烹小鮮이다.(60장)
천즉직복天則職覆, 하늘의 직책은 이 천하를 덮어주는 거다. 지즉직재地則職載, 땅의 직책은 모든 만물을 실어주라는 거다. 하늘은 덮어주고, 땅은 실어주고, 성인즉직교聖人則職敎, 성인의 직책은 백성들을 가르쳐서 깨우치라는 거다.
하늘도 사랑, 땅도 사랑, 백성도 사랑, 농사짓는다고 치면 하늘은 비가 와서 사랑이고, 땅은 비료 기운을 많이 가지고 나무들을, 초목들을 힘차게 길러내니까 사랑이죠. 농사짓는 사람은 나무, 풀, 곡식들에게 벌레도 잡아주고 보살펴준다. 하늘과 땅과 사람이 나무를 기르듯이 백성들을 길러야 된다. 이것이 소위 노자의 핵심이죠. 그것을 우리가 한마디로 무위자연이라 그래. 어머니가 아들을 기르듯이 그렇게 보살펴야 된다. 한마디로 말하면 사랑이라는 거지요.
이것 때문에 성경하고 가장 가까운 경전이 노자다, 옛날부터 그렇게 돼있지요. 노자를 공자보다도 훨씬 더 사람들이 많이 읽고 사랑하고 그래요. 아마 번역으로만 해도 노자 번역은 굉장히 많다나 봐요. 확실하진 않지만 61개 국어로 번역됐다 그러는 것 같아요. 하여튼 굉장히 많이 번역이 됐어요.
그런데 공자는 도덕이니까, 공자의 세계는 아무래도 한계가 있지요. 그러나 노자는 철학이니까 아주 한계가 없다 이렇게 봐야 되겠지요. 그래서 노자가 훨씬 더 유명하고 사람들에게 많이 읽히고 사랑을 받는 글이에요. 또 그런 이유로 기독교의 성경하고 가장 가까운 게 노자다, 이렇게 말해요.
자, 그래서 삼자三者, 이 세 가지가 각직기직各職其職, 다 직책을 가지고 있어. 이불상침월而不相侵越, 서로 침범하면 안 돼. 하늘은 비를, 땅은 거름을, 사람은 벌레를, 그렇게 다 자기 직책이 있지. 하늘이 비가 오게 할 수 있지, 땅이 비가 오게 한다, 그건 할 수 없는 거거든. 그러니 각각 자기의 직책을 다 하는 거야. 이불상침월而不相侵越, 서로 침범하거나 넘어서면 안 돼. 즉개득기도의則皆得其道矣, 다 자기의 갈 길을 가야 돼.(60장)
기본정보
ISBN | 9788993994216 | ||
---|---|---|---|
발행(출시)일자 | 2016년 02월 05일 | ||
쪽수 | 304쪽 | ||
크기 |
148 * 210
* 30
mm
/ 419 g
|
||
총권수 | 1권 | ||
시리즈명 |
김흥호 사상 전집 노장사상
|
Kl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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