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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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의 젊은 날에 간접적인 통과의례 역할을 하는 듯, 특별한 줄거리가 없는데도 마치 내가 책 속의 화자가 된 듯이 빠져 읽게 되는 마력을 지닌 작품이다. 그 도특한 매력 속에서 이상과 현실, 욕망과 책임, 질주본능과 안정성 추구, 유혹과 절제 사이 등 살아가면서 겪게 될 무수한 길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또한 ‘말 왈드론’, ‘루이스 본파’, ‘제임스 브라운’ 등 한 시절을 풍미한 음악 역시 만나볼 수 있는데 주인공 류의 결정적인 장면마다 등장해서 음악적 장치를 제대로 활용한다.
작가정보
역자 양억관은 전문번역가. 경희문학상을 수상했다. 무라카미 류 최적의 번역가로 평가받고있다. 무라카미 류의 《공생충》 《타나토스》 《최후의 가족》 《희망의 나라로 엑소더스》 《코인로커 베이비스》 《69》 등을 번역했고, 무라카미 하루키의 《색채가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마쓰모토 세이초의 《제로의 초점》, 미야베 미유키의 《모방범》, 히가시노 게이고의 《용의자 X의 헌신》 등 일본을 대표하는 작가들의 수작들을 번역했다. 또한 《게르마늄 라디오》 《베드타임 아이스》 《120%쿨》 《탐정 갈릴레오》 《한밤중의 행진》 《중력 삐에로》 《러시라이프》 《나는 공부를 못해》 《스텝 파더 스텝》 《공자》 《장량》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 등을 번역했다.
저자 무라카미 류는 1952년 일본 나가사키 현에서 태어났다. 1976년 《군조》 6월호에 미군 기지촌주변에 사는 광란에 빠진 젊은이들의 일상을 그린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를 발표해, 그해 《군조》 신인상과 제75회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소설가로 데뷔했다. 목적의식 없는 젊은이들의 무료함과 상실감, 소외를 술과 마약, 폭력과 섹스에빠진 그들의 일상과 버무려 몽롱하게 그려낸 이 책은 특별한 줄거리 없이 펼쳐지는 데도 독자들조차 거대한 허무주의의 물결에 휩쓸리게 해 좀처럼 읽기를 그치지 못하게 한다. 애초에 안정된 직업이나 화목한 가정, 일체의 도덕적 절제 따위를 거부해 버리고 성적 탐닉과 음악에 빠져 지내는 젊은이들의 모습에서 즐거움이 아니라 아련한 슬픔과 연민이 떠오르는 것은 그들의 쾌락과 방탕의 도취 이면에 극도의 외로움과 갈 바를 알지 못하는 방황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출간 당시, 고도의 경제 성장을 이루었지만 문화적으로는 미국의 대중문화에 중독되어 휘청거리는 일본 사회에 경각심과 충격을 안겨준 이 작품은 세월이 흘러서도 여전히 자본주의 사회의 풍요로움 이면에 움튼 인간 소외와 인간성 박탈을 적나라하게 일깨운다. 이 작품은 작가 무라카미 류의 출발점인 동시에 이미 그의 작품 세계의 모티브를 담고 있다.
목차
-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
리리에게 보내는 편지‥ 후기를 대신하여
해설 현실에 대한 완벽한 자기 부인과 헤테로토피아
책 속으로
완전한 자기상실을 통한 ‘청춘’의 종말과 깨달음의 세계!
이 책의 주제를 호사카 유지(세종대 인문대학 교양학부 교수)는, “그는 나락으로 떨어진 자기상실 상태에서 인간 본연의 자세로 회귀하는 모습을 하나의 주제로서 그리고 있다”고 말한다. 그의 말처럼, 젊은 시절의 무라카미 류는 자신의 삶과 작품 세계의 모티브를 이 작품에서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빨리 죽여줘, 빨리 죽여. 나는 빨간 줄이 그어진 목을 잡았다.
그때 시공의 끝자락이 빛났다.
파란 섬광이 한순간 모든 것을 투명하게 드러냈다. 리리의 몸에도 내 팔에도 기지도 산들도 하늘도 다 드러나 보였다. 그리고 나는 투명해진 그것들 저편을 달리는 한 줄기 곡선을 보았다. 지금까지 본 적이 없는 형태의 곡선, 하얀 기복― 부드러운 커브를 그리는 하얀 기복이다.(107쪽)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의 주인공 류는, ‘나’를 버린 자기 상실 상태에서 ‘나’의 진정한 모습을 찾아내고, 그제야 세상을 덮고 있는 ‘검은 새’의 품속에서 벗어난다. 이는 한 젊음의 끝에 이른 젊은이의 고뇌에 세상에 대한 스스로의 결단이다. 하나의 세계를 깬 그는 비로소 ‘청춘’의 한 순간을 벗어나, 그의 길을 찾아낸 것이다.
숨을 쉴 때마다 나를 잊어간다. 몸에서 온갖 것들이 하나씩 빠져나가고, 내가 인형 같다는 느낌이 든다. 방은 달콤한 공기로 가득 차고 연기가 폐를 마구 긁는다.
내가 인형이라는 감각이 점점 더 강해진다. 놈들 생각대로 움직이면 된다. 나는 최고로 행복한 노예다.(79쪽)
리리, 저게 새야, 자세히 봐, 저 도시가 새야, 저건 도시가 아니야, 저 거리에 사람 같은 건 살지 않아, 저건 새야, 몰라? 정말 몰라? 사막에서 미사일에게 폭발하라고 외친 남자는 새를 죽이려 했어. 새를 죽이지 않으면 안 돼, 새를 죽이지 않으면 난 나를 알 수 없게 돼, 새가 방해한단 말이야, 내가 보려 하는 것을 나에게서 숨겨버려. 나는 새를 죽일 거야, 리리, 새를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어. 리리, 어디 있어, 같이 새를 죽이자니까, 리리, 아무것도 안 보여 리리, 아무것도 안 보여.
나는 바닥을 구른다. 리리가 바깥으로 달려 나간다, 자동차 소리가 난다.
전구가 빙글빙글 돈다. 새가 날아간다, 창 바깥을 날아간다. 리리는 어디에도 없다. 거대하고 시커먼 새가 이쪽으로 날아온다. 나는 카펫 위에 있던 글라스 파편을 주워들었다. 꽉 쥐고 떨리는 팔에 꽂아넣었다.(184-185쪽)
출판사 서평
영원한 청춘의 묵시록!
나른하고 건조한 독백을 배경으로 청년들이 전력 질주하는 오프닝으로 먼저 가슴 뛰게 하던 대니 보일의 1997년 영화 《트레인스포팅》은 혹시 무라카미 류의 이 소설에서 모티브를 얻지 않았을까? 절망과 질주, 쾌락과 무기력, 방황과 방탕 사이에서 몽롱한 현실을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이미지는 1970년대의 전후 일본이나 세기말을 앞둔 영국이나 비슷해 보인다. 그리고 어릴 적부터 무한경쟁의 학업 분위기에 쫓기다 대학을 졸업해서도 마땅한 일거리를 찾지 못해 허탈해 하는 지금 대한민국의 젊은이들과도 비슷해 보인다고 하면 지나친 비약일까.
아직 다가오지 않은 인생에 대해 꿈꾸고 기대할 수 있는 젊음의 특권을 일시적인 쾌락에 맞바꿔 버린 듯 보이는 청춘은 안쓰럽다. 그러나 돌아보면 누구의 청춘에도 이렇게 놓아버린 날들이 있었으리라. 어쩌면 이들에겐 쾌락과 폭력, 게으름과 무책임이 아닌 출구는 없었던 게 아닐까?
무라카미 류의 데뷔작인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는 아쿠타가와 상과 군조 신인상을 동시 수상했다. 또한 일본 문학의 새 지평을 연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왜냐하면 이 작품은 기존의 문학 경향을 완전히 뒤엎는 파격적인 작품으로 평가받았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하는 무라카미 류지만, 데뷔작인 이 책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의 명성을 뛰어넘는 작품은 많지 않다. 특히, 이 작품은 번역가 양억관 선생과 소설가 장정일 선생이 ‘무라카미 류’의 재발견을 위해 선정한, 《무라카미 류 셀렉션》의 화룡점정이라고 할 수 있다. 원전의 의미에 가장 가깝게 전달하는 완전한 번역과, 새로운 해설까지 만날 수 있을 것이다.
특별한 줄거리가 없는데도 마치 내가 책 속의 화자가 된 듯이 빠져 읽게 되는 마력을 지닌 이 책은, 우리 모두의 젊은 날에 간접적인 통과의례 역할을 하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오랜 시간을 두고 지속적으로 읽히는지 모른다. 이상과 현실, 욕망과 책임, 질주본능과 안정성 추구, 유혹과 절제 사이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인생의 길을 묵묵히 끝까지 가야 하는 인생에게 건네는 축배 같은 소설!
현실에 대한 완벽한 자기 부인과 ‘헤테로토피아’
‘구토ㆍ벌레ㆍ부패’에 대한 압도적이고 생생한 이미지는 모든 것이 썩어버린 세상에서 저 홀로 명징성을 유지하고자 하는 소설 속 주인공 류의 것이기도 하지만, 스물네 살 먹은 작가 무라카미 류의 것이기도 하다. 세상의 모든 젊은이들이 세계에 대한 환멸과 거부 의식으로 무장되어 있듯이, 이 소설을 쓸 즈음의 류 또한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를 온몸으로 부정했던 것이다. 소설 속의 열아홉 살짜리 실존주의자 류와 스물네 살 먹은 실제의 류는 청춘의 감각으로 맺어진 도플갱어다.
‘다른’과 ‘장소’의 합성어인 ‘헤테로토피아’는 임재하지 않는 유토피아와 달리,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일상의 공간 속에 접혀 들어와 있다. 화자인 류를 비롯한 이 소설의 등장인물 모두는 사회 부적응자들이면서, 동시에 헤테로토피아의 건설자들이다. 이 소설의 주요 무대인 레이코의 바, 섹스 파티가 벌어진 오스카의 집, 로큰롤 공연이 벌어진 히비야 야외음악당은 기존의 사회 관습ㆍ권력ㆍ도덕이 통용되지 않는 그들만의 해방구다. 이들은 그곳에서 비로소 주인이 된다. 누구도 이들에게 그들이 속한 헤테로토피아의 당당한 주인 역할을 내버리고 주류 사회에 안착하라고 말할 수 없다. 그들은 주류 사회의 일원이 되기보다 오히려 강고한 주류 사회에 구멍(헤테로토피아)을 뚫고자 한다. - 장정일 해설 중에서
언어적 표현의 한계를 넘는 ‘음악’이라는 또 다른 장치
이 소설에서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은 바로 ‘음악’이라는 매개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음악’은 주인공 류의 결정적인 장면마다 등장해서, 작품의 분위기를 좀더 풍요롭게 만드는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이 소설이 단순히 ‘청춘의 한 때’를 묘사하는 것을 떠나 언어적 표현으로 담을 수 없는 한계까지 표현하고자 하는 작가의 치밀함을 읽을 수 있다.
‘도어스’, ‘롤링 스톤스’, ‘바 케이스’, ‘말 왈드론’, ‘루이스 본파’, ‘제임스 브라운’, ‘찰스 밍거스’, ‘레드 제플린’, ‘재니스 조플린’, ‘핑크 플로이드’, ‘버즈the byrds’, ‘밴 모리슨’ 등 한 시절을 풍미한 엄청난 음악의 향연이 이 소설 속에 펼쳐진다. 특히 ‘루이스 본파’의 늘어진 삼바, 《흑인 오르페》와 아프리카 리듬을 담은 《오시비사》는, 주인공 류의 정신적인 피폐함을 보여주는 광란의 파티 현장을 마치 영화 속의 한 장면들을 떠올리듯, 진한 감정을 전달하는 중요한 매개로 작용한다.
최고의 번역가의 새 번역, 최고의 서평가의 새 시각으로 만나는
무라카미 류 문학의 정수精髓! 《무라카미 류 셀렉션》 완간!
이상북스에서 펴내는 《무라카미 류 셀렉션》은 민감한 사회적 문제들을 다룬 작품들을 선별해, 완전히 맞지는 않겠지만 현재 한국 사회가 부닥뜨린 여러 현상들을 소설을 통해 되짚어볼 수 있게 했다. 《무라카미 류 셀렉션》은 또한 ‘새로운 시대에 맞는 새로운 번역’에 의의를 둔다. ‘무라카미 류 최적의 번역가’로 알려진 양억관 번역가가 류의 여러 작품들 가운데 《무라카미 류 셀렉션》 기획 의도에 적합한 작품들을 골라낸 후, 기존 번역의 오류를 수정하고 현 시점에서 재해석하는 작업을 했다. 또한 한국 최고의 서평가이자 소설가, 장정일의 해설로 좀더 진지하고 명쾌하게 무라카미 류의 문학 세계를 읽어내려갈 수 있다.
독자들은 《무라카미 류 셀렉션》에 선별된 작품들을 읽어 내려가며, 진지한 성찰을 통해 여러 사회적 문제들을 치밀하게 천착하는 작가 무라카미 류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기본정보
ISBN | 9788993690286 | ||
---|---|---|---|
발행(출시)일자 | 2014년 08월 22일 | ||
쪽수 | 215쪽 | ||
크기 |
143 * 206
* 10
mm
/ 350 g
|
||
총권수 | 1권 | ||
시리즈명 |
무라카미 류 셀렉션
|
Kl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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