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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정보
저자(글) 신화연
저자 신화연은 호주연방정부 복지부에서 시니어 정책연구분석가. 공부를 전문적으로 해보겠다고 마음먹은 사람들 중 적잖은 사람들이 처음엔 무슨 대단한 공부를 혼자만 하는 양, 논문 하나로 학계를 흔들어놓을 양, 허영이 장난이 아니다. 저자도 그랬다. 불안할 정도로 넘치는 아이디어와 스스로도 잘 이해가 안 되는 주제에 기대 적어도 아리스토텔레스부터 섭렵해 줘야 할 것 같은 지적(知的) 오지랖으로 지쳐가고 있을 때, 부끄러움이라는 주제가 저자 앞에 뚝 떨어졌다. 어느 날 저자 앞에 뚝.
한편으론 부끄러움을 공부한다는 것이 폼이 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 정서가 가지는 생활의 구체성을 거부할 수 없었다. 부끄러움으로 갈아탄 후, 저자의 부끄러움 연구는 학계를 흔들어놓지는 못했지만 저자 스스로는 뒤집어놓았다. 인간관계의 비밀, 갈등, 절망,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대 소실점 밖으로 떨어져 나가지 않는 부끄러움이라는 프레임 안의 희망… 부끄러움의 치명적 매력은 마르지 않는다. 저자는 부끄러움과 인생을 함께하기로 결심했다.
이화여대와 동대학원 심리학과를 졸업하고, 호주국립대학에서 사회심리학 박사를 마쳤다. 현재 호주연방정부 복지부에서 시니어 정책연구분석가로 일하고 있다.
목차
- 추천의 말
프롤로그 빗기는 시선, 움츠러드는 몸, 다가가는 마음…부끄러움의 형상
여는 말
1부 - 부러움 재조명:
부끄러움은 디지털 세계를 온전하게 할 유일한 아날로그적 감정이다
ㆍ부끄러움은 두 얼굴의 야누스
ㆍ부끄러움은 얼굴에 있다?
ㆍ부끄러움, 그 존재 이유
ㆍ보이니? 들리니?
ㆍ비너스, 마르스의 세계에 말을 걸다
2부 - 생활의 발견:
숨은 부끄러움 찾기
ㆍ선수의 유실(遺失)
ㆍ다 말해도 돼, 다 보여줘도 돼, 네가 다쳐도 상관없다면
ㆍ보릿자루의 꿈
ㆍ부끄러움에 대처하는 두 미녀의 자세
ㆍ아줌마도 가끔은 산다는 게 가슴 저릿한 아픔이다
ㆍ칼로 물베기의 실천을 위한 조언
ㆍ문화 쓰레기 혹은 문화 선도자?
ㆍ코리아에는 코리아타운이 없다
ㆍ데드 맨 워킹
ㆍ스러짐에 대하여
3부 - 희망이 지나간 자리엔 부끄러움도 없다(스코틀랜드 속담)
ㆍ삐에로는 웃고 있지만
ㆍ천사의 분노
ㆍ사랑은 가상의 공간을 타고
ㆍ수치심과 투쟁한 히틀러
ㆍ「밀양」의 송강호가 사랑스러운 이유
ㆍ웰컴 홈
ㆍ부끄러움의 나침반: 부끄러움의 적응적 경영을 위하여
닫는 말
감사의 말
책 속으로
부끄러움이 얼굴에 나타난다는 것은 저주이면서도 어떻게 보면 또 축복이다. 잘못도 모르고 뻔뻔하게 버티는 사람에게는 별것 아닌 잘못도 용서해 주고 싶은 마음이 일지 않는 반면, 부끄러움 때문에 잘못했다는 말도 못하고 기본적 자아방어도 못하는 사람에게는 잘못의 크고 작음에 상관 없이 마음이 맥없이 허물어지던 경험을 누구나 한 번쯤은 해본 적 있을 것이다. 즉 그것이 안 보이는 어느 곳에 나타나 감출 수 있기라도 하면 좋으련만 떡하니 얼굴에 보여지니 여간 고역이 아닐 수 없지만, 그것이 얼굴에 보여지기 때문에 또 소통의 소망이 있는 것이다. 얼굴에 나타나는 부끄러움은 결국 ‘너’에게 보내는 ‘나’의 소망의 메시지다. (「부끄러움은 얼굴에 있다」, 38쪽)
부끄러움은 인간의 심리적 거리뿐만이 아니라 신체적 거리에도 개입한다. 서로에게 접근하는 과정이 개인영역의 침범이 되지 않으려면, 부끄러움이 동의하는 속도와 거리의 조절이 필수다. 어기면 어떻게 될까? 선전포고 없는 적정거리 파기는 발포다. 따라서 사랑하는 사람들의 망설임과 설레임 사이의 왕복달리기는 사랑이 가져오는 감정적 격변에 대비하는 워밍업이라고 할 수 있다. 부끄러움은 설레임이 망설임을 추월해 버리지 않도록 균형을 잡아주며 상대방에 대한, 그리고 자신의 결정에 대한 신뢰를 테스트하는 시간과 공간을 제공한다. 이 마음의 움직임을 믿어도 되는지, 위험성은 없는지…부끄러움은 쉬지 않고 자아경계의 전방에서 평범치 않은 움직임을 살피는 것이다. (「선수의 유실(遺失)」, 82-84쪽)
본처를 일본에 두고 오가며 즐기는 일본인들의 젊은 한국 현지처들은 그 시대 한국사회의 슬픈 자화상이었다. 그로부터 30년여, 한국 남자들도 동남아시아 개발국가들로 똑같은 여행을 떠난다. 일본사람들을 비난했던 것과 같은 강도는 아니라 할지라도 매춘관광을 떠나는 한국 남자들에 대한 시선이 고울 리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섹스관광으로의 자본의 흐름은 아직도 완강하다. 왜? 그들은 늘 한덩어리, ‘동남아로 섹스관광을 떠나는 사람들’로 비난받을 뿐, 개인들은 익명의 그늘 뒤에 숨어 안전하게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현지에서 어떤 파렴치한 행동을 해도 그들은 다만 ‘어글리 코리안’으로 인식될 뿐 누구에게도 개인으로 기억되지 않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역사를 갖춘 개인으로 구체화되지 않는 한, 그리고 그 개인이 주변의 다른 사람들과 관계로 맺어진 실체로 화하지 않는 이상 부끄러움의 통제기능은 미약할 뿐이다. (「코리아에는 코리아타운이 없다」, 134-135쪽)
한국사회 같은 권위주의 문화에서는 허풍과 허세가 부끄러움을 관리하는 임시방편이 되기도 한다.
사돈의 팔촌이 한다하는 사람이라든지, 자신이 누구누구의 18대손이라든지, 어떻게 짚어가야 할 관계인지도 까마득한 사람들이 가끔 자신의 허약한 정치적 위치를 보수하기 위해 전방에 설 때가 있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내세울 권력이 없다는 것, 그게 해결 안 되는 부끄러움이다. 허장성세로 한세월 메워가는 사람에게는 어떻게 하면 권력을 잡을 수 있을까가 우선과제가 아니라 추풍낙엽 같은 그의 신세가 어디서도 드러나지 않게 꼭꼭 여미는 데 있다는 것은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삐에로는 웃고 있지만」, 167-168쪽)
히틀러는 불안정한 어머니의 희망이었고, 아버지의 존재는 폭력적으로 멀었다. 그는 어린시절 이미 이 세상에 정의란 없다는 것을 체득했을 것이고, 오직 힘센 자만이, 더 정직하게는 폭력적인 사람만이 약육강식의 정글구도를 가진 이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믿게 되었을 것이다. 그 세계관은 공포에 의해 형성되었다. 아버지의 혁대 푸는 소리에 경기를 일으키며 방 한구석에서 오들오들 떠는 아이를 평생 가슴에 담고 사는 겁쟁이가 그려본 세상이다. 국민들의 끓어넘칠 듯한 사랑을 받은 총통 히틀러와 가정폭력으로 주눅든 히틀러를 한 사람으로 일관되게 찾아가는 길은 쉽지 않다. 그의 삶의 궤적을 따라가려면 애초에 길라잡이를 잘 세워야 한다. 수치심과 폭력이 그 키워드다.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에는 이렇게 손을 대기가 꺼려지는 어두운 고장이 있다. 마치 늪과 같아서 몸부림치면 칠수록 더 빠져들기도 하고, 빈사의 상태로 빠져나왔다 하더라도 결정적인 순간에 다시 그러잡아 똑같은 일을 반복시킨다. (「수치심과 투쟁한 히틀러」, 196-197쪽)
출판사 서평
이화여대와 동대학원 심리학과를 졸업하고 호주국립대학에서 사회심리학 박사를 마쳤으며 현재 호주연방정부 복지부에서 시니어 정책연구분석가로 일하고 있는 저자는 책을 통해 부끄러움, 그것은 현사회의 문제점을 꿰뚫는 정서이기에, 이제 사회 소통의 공간을 마련하는 부끄러움에 우리 모두 귀를 기울여야 하지 않느냐고 조심스럽게 말하고 있다. 지금이야말로 지난날 오직 남부럽지 않은 부(富)와 명예, 출세를 위해 앞만 보고 달려온 나와 가족, 그리고 이웃들의 정신세계의 웰빙과, 그러느라 찢기고 상처입은 마음을 다독이고 치유할 때가 아니냐고 권하고 있는 것이다.
더불어 저자는 오늘날 우리가 잃어가고 있는 것, 사라지도록 방치하고 있는 것이 사실은 중요한 인간의 조건일 수 있다는 중요한 메시지를 전한다. 즉 부끄러움의 내밀한 중요성과, 도무지 현대인의 필수교양일 수 없을 것 같은 부끄러움이 실은 선한 인간의 사회적 본성을 회복하게 해주는 감정임을 알리고자 하는 것이다. 이 책은 그 부끄러움의 복원을 위해 시작된 추적이다. 이러한 식의 부끄러움 연구는 학계에서도 새로운 시도인데다, 한국사람 중에 아직 부끄러움을 체계적으로 연구한 사람이 없어서 이는 동양적이면서도 독창적인 접근이 될 것이다. 더욱이 이론적 구조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학술적인 표준체계를 갖추고 있지 않아서 학술적이라고 하기도, 또 가벼운 수필이라고 하기도 뭐한 하이브리드란 점은 오히려 학술적 체계 대신 현재의 포맷을 선택함으로써 일반 독자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어하는 저자의 뚜렷한 목적에 걸맞아 책을 편안하고 수월하게 읽어나가게 해주는 장점이 되고 있다.
부끄러움의 사회적 생존기능과 필요성을 밝히는 것이 이 책의 주목적이라면, 부차적 목적은 부끄러움의 낭만적 회고에 있다. 절망에 찬 목소리로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고 외치면서도 자본주의의 거대한 힘과 죽을둥살둥 내달리는 경쟁, 남보다 못났다는 상대적 박탈감으로 인한 열등감 앞에 지레 무릎을 꿇고 뻔뻔스러움으로 무장한 얼굴로 방황하던 길에서 잠깐 멈춰서서 책을 펼쳐들고 자신의 현재 위치를 되돌아보는 것은 참으로 의미 있는 작업이 될 것이다. 베이비 부머들을 포함한 3,40대만이 아니라 디지털 시대를 살고 있는 20대, 아니, 울면서도 웃는 낯을 한 삐에로의 가면을 쓰고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들이라면 누구나 책이 소망하는 부끄러움의 발견을 통해 서로 따뜻한 마음으로 소통하고 배려하고 기대며 살아가는 것이 인간의 본질임을 마음 깊이 이해하게 될 터이기 때문이다.
‘부끄러움은 이제는 멀어진, 우리의 근원을 향한 잊혀지지 않는 그리움이다.
부끄러움은 우리로 하여금 그 어그러진 관계를 비통해하면서
근원으로의 회귀를 무기력하게 소망하게 한다.’
-디트리히 본회퍼
부끄러움, 그것은 현사회의 문제점을 꿰뚫는 사회적 정서다
이른바 ‘동방예의지국’인 우리나라는 체면이 밥 먹여주고, 얼어죽어도 곁불은 안 쬐고, 남의 눈이 무서워 열 계집 마다한 채 헛된 소망을 가슴속으로만 삭이는, 과도하리만큼 부끄러움에 얽매인 사람들이 살아가는 곳이었다. 하지만 지지리궁상의 가난을 떨쳐내줄 돈에 미치고, 직장에서, 사회에서 앞서가기 위해서라면 상대의 뒤통수를 치거나 짓밟는 짓쯤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제 몫을 손에 넣기 위해서라면 인륜조차 서슴지 않고 저버리게 된 사람들은 이제 부끄러움을 부끄러워하고 있다. 부끄러움은 패자(敗者)의 감정이며, 희생자에게 강요된 사회적 족쇄 같은 감정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부끄러움은 내 인식의 넓이 안에 다른 사람의 시각이 함께 한다는 점에서, 인간의 한계를 깊게 그리고 솔직하게 인정하는 감정이라는 점에서 오히려 강자(强者)의 감정이다. 뭐든 또박또박 대답하고 자신만만한 아이들은 앙증맞고 예쁘지만, 어른들의 꾸중에 볼을 붉히며 “죄송합니다”라고 우물우물 반성하는 아이들을 보는 건 무슨 천연기념물이라도 보는 것 같아 신통하다. 자신있고 당당한 모습도 좋지만 겸손하고 수줍은 젊은이는 마음 아릿한 반가움을 일으킨다. 아무 데나 퍼질러 앉아 무슨 얘기든 막힘없이 할 수 있는 중년의 여인을 보면 마침내 성적(性的) 긴장에서 벗어나 삶의 자유를 누리고 있는 것 같아 미소를 머금게 하지만, 설 자리 앉을 자리 가려가며 자신의 존재를 수퉁맞게 드러내지 않는 젊지 않은 여자는 향기롭다. 이렇듯 부끄러움이 유발한 행동은 우리가 채 마음을 쓰기도 전에 작은 몸짓으로 다가와 자아의 경계를 허물고 타아(他我)를 초대하는 소통의 코드이자 그들과의 관계를 꿈꾸게 하는 관계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부끄러움은 사람들간의 소통의 길을 틔워주는 감정이다
또한 사회진화적 관점에 따르면, 부끄러움은 우리를 사회에 더 잘 적응하는 사람으로 만든다. 즉 적절한 부끄러움은 주어진 상황에서 그와 관련된 ‘정보의 실마리’를 읽고 그 실마리를 ‘지식’으로 전환하게 함으로써 개인으로 하여금 좋은 관계와 사회적 웰빙을 유지하게 하고, 나아가 개인의 능력과 가능성을 개선하게 해준다.
관계를 잘 맺고 운영하는 '사회적 근육'이 발달된 사람은 관계 사이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에 더 분별력있고 현명하게 대처하게 된다. 이런 사람들은 타인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일을 했을 때 예민하게 알아차리고 사과할 줄 알며, 남이 불편해할 일은 미리 자제하고 안 할 줄도 안다. 게다가 현재의 실수가 반면교사가 되어 미래에는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잘 기억한다. 따라서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은 매력적이다. 그는 관계가 작동되어 가는 방향을 볼 줄 아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부끄러움의 기능이 멈춘 사람과는 누구도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가 없다. 남의 돈을 꿀꺽하고 오리발 내미는 불한당들, 된장녀?패륜녀?발길질녀로까지 진화해 가는 공주병, 왕자병에 걸린 젊은이들, 시도 때도 없이 출몰하는 바바리맨이나 상대를 가리지 않는 성폭행범들, 소중한 자식과 아내를 힘으로 다스리는 가정폭력범들, 통제 불가능한 공격성으로 인해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심각할 정도로 부끄러움의 기능이 훼손된 사람들이다. 더욱이 이들의 허세와 후안무치, 폭력성에는 과부화된 부끄러움이 언제 분노로 폭발될지 모르는 시한폭탄이 재깍거리고 있기에 두렵다.
부끄러움의 적응적 경영을 위하여: 부끄러움의 나침반
부끄러운 일을 부끄러워할 줄 아는 것, 잘못한 일을 부끄러워하는 것은 인간의 미덕이며 소중한 능력이다. 따라서 고통스럽지만 인간다워서 아름다운 이 감정을 어떻게 경영하고 극복해야 하는지를 배우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그리고 이보다 더 중요한 일은 부끄러움에 대한 사회적 통념을 깨는 것이다.
부끄러움의 경영에는 적응적 경영과 비적응적 경영이 있다. 적응적 경영은 어떤 잘못을 저질렀을 때 부끄러움을 느끼고 용서를 구하는 한편 진정한 관계 회복의 의지를 보인다. 그리고 그 의지가 주변사람들에 의해 거부되지 않을 때 부끄러움은 비로소 안전하게 해소된다. 이를 위해서는 부끄러움을 느끼는 개인의 성숙된 가치의식도 필요하지만, 관계 회복을 위한 주위사람들의 따뜻한 반김도 필수적이다. 반대로 비적응적 경영은 단기적이고 성숙하지 못한 대응을 말한다.
부끄러움이 비적응적으로 경영되는 방법에는 은둔형/위축형, 자아공격형, 회피형, 타인공격형 등이 있다. 오랫동안 부끄러움을 연구해 온 네아산슨의 '부끄러움의 나침반‘에 따르면(221-238쪽), 은둔형 또는 위축형은 부끄러운 일을 당했을 때 타인과 멀리함으로써 무너져내리는 자아를 추스른다. 노인에게 막말과 폭행을 했다고 해서 언론의 총공격을 받았던 배우 C씨가 무릎도 꿇고 사과도 했지만 여론이 돌아서지 않자 산으로 들어가 콘테이너 생활을 한 적이 있는데, 이것이 대표적인 은둔형 해결방식이다. 일본에서 몇 년씩 제 방에 틀어박혀 바깥세상과 단절하고 살아서 사회문제화되고 있는 히키코모리 증후군도 은둔형 반응이다. 우리나라에도 인간관계가 순조롭지 않아 회사를 그만둔 한 젊은이가 몇 년을 집에 틀어박혀 온라인 게임과 인터넷으로 세월을 보내고 있는 은둔형 외톨이들이 늘고 있는 실정이다.
자아공격형은 '모든 것을 내 탓‘으로 받아들인다. 몇 년 전 탤런트 C씨의 안타까운 자살도 극단적인 자아공격적 경영과 관계가 있다. 그녀는 자신의 죽음으로 자신의 결백을 증명해 보이겠다는 결정을 한 것 같다. “너희들은 나를 잃을 거야.” 자신을 거부하는 사람들에게 던지는 그녀의 힘없는 마지막 저항이다. 자아공격형은 파괴적인 자기도취와도 맞닿아 있다.
회피형은 한국형 허장성세를 예로 들 수 있다. 명품족, 몸짱문화 등이 부끄러움의 회피를 업고 키워지는 대표적 대중문화다. 멋있어 보이고, 섹시해 보이고 싶은 그들의 욕망 뒤엔 숨기고 싶은 부끄러움의 그늘이 있다. 음성적으로 확대되는 음주마약문화도 회피형에 속한다. 최근 술과 마약에 빠져든 헐리우드 배우들의 우발적 사고가 끊이지 않는 것도 부와 명성이 인기 앞의 불안이나 노출된 사생활의 부끄러움을 달래기에는 역부족인 탓이다.
타인공격형은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화풀이하는 적반하장격 유형이다. 자기 일이 잘 안 풀리면 부모 탓 하는 사람들, 자신이 실업자가 되고 알코올중독자가 된 걸 아내 탓으로 돌리는 남자, 자신이 요모양 요꼴로 사는 건 순전히 무능한 남편 때문이라고 장탄식을 늘어놓는 여자들이 이 유형이다. 정신분석학적으로 보면 투사의 전형이다. 가장 극단적인 타인공격형은 살인이다. ‘묻지마 살인’도 그 근원을 따지면 우리 사회의 주먹구구식의 부끄러움의 소통과 만난다. ‘묻지마 살인’을 저지르는 사람들은 대부분 직장에서 내?기고, 가족에게 외면받고, 친구들에게 무시당하는 등 사회에서 벼랑끝으로 내몰린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그들을 어떻게 처리할까를 고민하기 전에 그들의 분노가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먼저 설명되어야 한다. 이유를 모른다고 우리는 편하게 ‘묻지마 살인’이라고 부르지만, 그들은 오래 전부터 제발 좀 물어봐달라고 말을 건네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사회 소통의 공간을 마련하는 부끄러움에 귀를 기울여야 할 때다
사람들은 자유를 꿈꾼다. 관계나 인연에서 벗어나고도 싶고, 거추장스러운 옷일랑 벗어던지고도 싶고, 날것 그대로의 자기 모습을 보여주고 싶을 때도 있다. 또한 사람들이 전혀 정제되지 않은 행동에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부추겨보고 싶은 강한 유혹을 느낄 때도 있다. 그러나 그런 자유를 꿈꾸는 사람은 부끄러움의 경계선을 넘어선 나머지 결국은 소속감도 잃고 생존적 불안에 사위어가게 될 수도 있다. 반면에 그 경계선을 넘어서지 않는 사람은 탄탄하고 선명한 부끄러움의 경계가 ‘나’를 규격화된 삶의 틀 안에 가둔다는 생각에 갑갑증이 들기도 하겠지만, 그 경계선 안에 머무르는 한 나를 잃을 리 없으니 마음놓아도 된다.
게다가 우리가 부끄러움의 경계선을 넘어서서는 안 되는 또 하나의 중요한 이유는, 무법자로 이 세상을 살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 세상은 나 혼자 살아가는 세상이 아닐 뿐더러, 우리에겐 세상의 법만이 아니라 지켜야 할 마음의 법도 있다. 또 나를 다치지 않게 하며 사는 법도 배워야 한다. 신뢰관계를 형성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속사람을 내거는 것은 모험이다. 무모한 자기노출은 비수가 되어 자신에게 되돌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부끄러움은 ‘여기서부터는 사적인 공간이다. 나를 아는, 그리고 신뢰할 수 있는 사람에게만 건넬 필요가 있다’는 것을 신호해 주며 그 속사람을 지켜주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속사람이 누울 따뜻하고 평안한 공간은 그런 사람들의 마음속에만 준비되어 있다.
우리의 삶이 따뜻하고 평안하기를 바란다면, 부끄러움을 직시해야 한다. 자신의 정체성을 거부하면서 평안을 바랄 수는 없다. 자기 내면의 부끄러움을 들여다보고 다시 시작하는 것은 참으로 복된 일이다. 그 부끄러움에 직면하지 못하는 한, 우리는 영원히 그 자리에 머문 채 만져지지 않는 행복을 잡아보려고 허공을 더듬거려야 하기 때문이다.
기본정보
ISBN | 9788992538398 |
---|---|
발행(출시)일자 | 2010년 06월 10일 |
쪽수 | 244쪽 |
크기 |
153 * 224
mm
|
총권수 | 1권 |
Kl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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