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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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문기관 추천도서 > 문학나눔 선정도서 > 2015년 선정
작가정보
작가의 말
너무나 멀리 와버렸다. 버려야 길들이 많아졌다. 내 심장을 밟고 지나간 수많은 발자국들 검은 벌레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이제는 내게 붙잡혔던 시간을 놓아 주어야 할 때 詩여! 아름다운 멸망을 꿈꾼다. (2015년 봄 영종도에서)
목차
- 시인의 말
제1부
봄날/ 어둠의 복제/ 꽃의 쿠데타/ 거미/ 건들장마/ 오늘의 문장/ ONE + ONE/ 마가렛꽃/ 세상의 모든 여자는 내 엄마다/ 낙화암/ 덤/ 여자사용 설명서/ 남자사용 설명서/ 수화/ 솜틀집과 버전 2.0 골목
제2부
산수유나무/ 前生旅行/ 수상한 계절/ 아내의 四季/ 아버지의 마술/ 엄마/ 저녁 무렵/ 그리운 것은 다 먼 곳에 있다/ 패랭이꽃/ 고라니/ 바람의 행로/ 滿山紅葉/ 한 그루 나무/ 어떤 안부
제3부
나를 복사하다/ 관세음보살/ 386 Computer/ 늙은 애인의 바람이 되다/ 짝퉁/ 사랑의 패턴/ 하늘별빛로/ 개꿈/ 파안대소/ 낮잠/ 협심증에 걸린 기타/ 아름다운 멸망/ 까치내 가는 길/ 노숙
제4부
슬픔은 늘 햇빛 쨍한 날 일어났다/ 공중 戰/ SK에너지 구름공장/ 포교당 가는 길/ 桃花/ 호칭/ 배다리 헌책방 골목/ 손님구함/ 다행이다/ 혼잣말/ 조약돌/ 소쩍새 우는 사연/ 바람벽에 뻐꾸기 울면/ 저 검은 날짐승
추천사
-
만개한 벚꽃 나무를 안고 한판 씨름이라도 벌였는지 피고 지는, 지고 피는 언어의 꽃잎들이 질펀하다 아니 질탕하다. 시를 어르고 녹이는 솜씨가 가히 장인의 그것이니 누가 첫 시집이라 할 수 있으랴.
그에게 시는 “어느 기방에서 가야금 산조나 팔고 있는 전생과 후생의 기생”이며, “하룻밤 동침한 관세음보살”이며 “홀레가 끝난 암컷에게 잡아먹히는 치명적인 사랑을 꿈꾸는 수놈 거미”이다. “한 번 빠지면 헤어나지 못하는 위험한 종교”이니 이제 그의 일과는, 그의 운명은 시로 인해 재편성되고 재조립될 것이다.
“한 세계가 닫히고 새로운 한 세계가 열리는 저녁 골목길”에 서 있는 그는 “하루에도 몇 번씩 당신이 당신을 처형”한다 하였으니 그 “핏빛 쿠데타”로 인해 처절히 피 흘릴 것이고 결국 패배할 것이다. 시에게 승리한 시인은 아직 한 사람도 없었으니.
그러니 당신은 당신의 과거에게, 당신의 미래에게, 또는 당신의 꿈에게서 배신당할 확률이 높다. 부디 철저히 패배하시고 철저히 배신당하시라. 거기서 “행과 행 사이에 감춰진 심오한 말씀 하나 줍는”, 당신은 이미 시를 살고 있는 사람이며, 그로 인해 충분히 아름다운 사람이다.
책 속으로
건들장마 속 작달비가 지나간 아침
무 싹이 손톱 만큼 올라와 있다
배추벌레가 사각사각 아침요기를 끝낸 배추 잎
푸른똥 몇 개 점점이 놓여 있다
어미젖을 물고 있는 애호박의 몸무게는 닷 돈 가량
늘어났고 갓 뒷물을 끝낸
며느리 밑씻개는 축축이 젖어있다
누런 삼베옷을 입은 방아깨비 한 홉 정도의 가을을
찧어내고 있고 막내 조카 영희 가슴이
자두알 만하게 올라와 있다
3조 2교대 야간 근무를 마치고 돌아온 내 턱수염은
한 치 정도 자라 있고 허리는 어제보다
1도 정도 휘어져 있다
하늘은 뻐꾸기 울음소리로 반쯤 젖어 있고
세상은 어제 보다 말가웃 더 늙어졌다
다 건들건들 지나간 건들장마 탓이다
? 「건들장마」 전문
동인천역 출발하여 용산역 가는 급행전동열차 안
부평역 지날 때쯤 전생의 여자에게 슬어 놓았던
알들이 두런두런 부화되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지청구를 들으며 개차반으로 자라나고
동구 밖에는 빗살무늬토기시대를 건너온
맨발의 여자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이름도 성도 모르는 여자의 손을 잡고 있었고
손등에 화석이 된 아내의 손톱자국이
선명하게 찍히고 있었다
옆 자리 아가씨가 피곤한 듯 어깨를 기대어 왔다
수세기전의 밥값을 받으려는 듯
낯선 손 하나가 내 갈비뼈를 뒤지고 있었다
? 「개꿈」 전문
어느 봄날이었어요
똥지게를 지고 온 아버지가 고염나무에 마술을 걸어
놓았어요 고염나무의 마술이 풀리기도 전에
아버지는 고염나무 속으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가셨지요
봄이 가고 계절이 바뀌어도 돌아오지 않던 아버지
다음해 봄날 어린 감잎 속에서 똥지게를 지고
자박자박 걸어 나오셨지요
가을이면 감나무에 환한 등불 밝혀 놓고 계시다
감잎이 지면 다시 감나무 속으로 들어가셨어요
아버지 다시 봄이 오고 있어요 이제 아버지의
마술에서 풀려나 저도 한 그루 감나무가 되고 싶어요
봄이면 하얀 감꽃을 피우고 가을이면 푸른 하늘에
붉게 물든 시 한 줄 매달아 놓고 싶어요 아버지!
? 「아버지의 마술」 전문
출판사 서평
이권 시인의 첫시집 『아버지의 마술』이 애지시선에서 출간되었다. 충남 청양 출생인 그는 한국철도공사에서 철도 노동자로 30년간 근무하다 2013년 정년퇴직하였으며 2014년 《시에티카》로 등단한 늦깎이 시인이다. 그러나 등단한 이듬해 첫시집을 묶는 것이니 등단 이전의 시력과 창작열을 가히 짐작할 만하다.
“만개한 벚꽃 나무를 안고 한판 씨름이라도 벌였는지 피고 지는, 지고 피는 언어의 꽃잎들이 질펀하다 아니 질탕하다. 시를 어르고 녹이는 솜씨가 가히 장인의 그것이니 누가 첫 시집이라 할 수 있으랴.”
이화은 시인의 표사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시인의 언어는 섬세하고 낭창하기 이를 데 없다. 서정과 서사를 아우르는 이미지와 리듬이 수려하고 메시지가 단아하다. 生(생)과 滅(멸), 만남과 헤어짐 등 우리 가까이서 무수히 일어나는 일이되 결코 가볍지 않는 인연들에 대한 사유, ‘부모미생전의 나는 누구였으며 어느 모습이었을까’ 하는 고민, 시인의 몸속에 흐르는 남성성과 여성을 바라보는 성에 대한 탐구가 융숭 깊다. 여기에 작고 보잘 것 없는 소외된 것들의 소리를 받아 적으며 자신을 돌아보는 성찰의 시선이 두드러진다.
또한 시집 전편에서 돋보이는 것은 시인의 여성성이다. 이권 시인의 몸속에 담긴 시적인 여성성은 우주 안에 살아 있는 모든 생명의 상징이다. 《관세음보살》에서는 곁에 왔다간 어머니, 시인의 곁에 잠시 머물다간 여인들의 대자비를 그렸으며 《세상 모든 여자는 내 엄마다》에서는 저마다의 사연을 안고 이 세상을 건너가고 있는 우리 주위 흔한 모습의 엄마들을 그렸다. 사방천지 모든 여인이 엄마이고 애인이며 생명 순환의 관세음보살임을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어둠의 복제》에서는 사랑이건 미움이건 모든 것은 나에게서 시작되어 그녀에게까지 번져갔음을, 세상을 한 바퀴 돌아 그 어둠이 다시 내 안을 들여다보고 있음을. 《아버지의 마술》에서는 떠난 것들에 대한 아쉬움, 아직 복원되지 못하고 있는 아버지와의 관계, 마술처럼 봄날의 아지랑이처럼 아버지와 화해를 하고 싶은 마음을 그려내고 있다.
손병걸 시인은 “이권 시인의 시세계를 하나의 명사로 표현하면 ‘목탁’이다. 목탁의 맑은 공명은 자신을 비우지 않으면 불가하다. 이권 시인은 자신을 비우는 과정으로 언제나 시와 함께 했다”고. “목탁처럼 몸을 비워낸 이권 시인의 메시지는 맑다. 윤회를 넘어서는 생사의 모심이 마음자리에 그득하기 때문”이라고 해설하고 있다.
“좀 더 사유하고 깊이 있는 글을 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진솔한 시를 쓰겠습니다. 세상의 시선이 미치지 못하는 곳, 쓸쓸하고 외로운 것, 작고 소소한 것, 그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겠습니다. 내가 나를 바라보는 시간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시인은 늦은 나이에 첫시집을 출간한 기쁨과 설렘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앞으로의 시창작에 대한 결기를 다지고 있다. 지금 여기, 아름다운 멸망을 꿈꾸며 그리움이 있는 곳으로 바람의 길을 내고 있는 시인의 행보가 더욱 기대된다.
기본정보
ISBN | 9788992219594 | ||
---|---|---|---|
발행(출시)일자 | 2015년 06월 29일 | ||
쪽수 | 125쪽 | ||
크기 |
128 * 182
mm
|
||
총권수 | 1권 | ||
시리즈명 |
애지시선
|
Kl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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