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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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정보
정군칠
제주 중문에서 태어났으며 1998년 <현대시>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수목한계선’이 있으며 제주작가회의와 현대시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중ㆍ고등학교 시절 백일장 대회에서 몇 번의 수상 경험이 오랜 시간이 흐른 다음 문학의 길로 이끄는 계기가 되었다는 시인은 토목학을 전공하여 건설직종의 일을 하다가 마흔 살 넘어 시를 다시 접했다. 지난해에 30여 년 해오던 건설업을 접고 거의 일년을 두 번째 시집을 내는 일에 매달렸으며 요즘에는 지난 6월에 개관한 제주도립미술관에서 ‘전시해설사’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시인의 말
바다 밑 끓던 용암이
섬 오름 봉분을 만들었다
내 안의 불화들이
살갗 아래 물집을 만든다
누구는 맹물로 그림을 그린다는데 나는 굳이 먹으로
흔적을 남기고 만다
2009년 여름 정군칠
목차
- 시인의 말
제1부
게와 아이들/ 모슬포/ 천원 장터/ 놋숟가락/ 유월 스무날/ 겨울 감자밭/ 봄날, 다시/ 분홍 넥타이/ 붉은 꽃으로 가다/ 飛揚島/ 바다의 물집/ 노을의 지층/ 곶자왈 괴석/ 붉은 꽃/ 빈방
제2부
나비 상여/ 유성우/ 벌초/ 할머니 장터는 나의 태반이다/ 멀리 가는 봄볕/ 지주목/ 바람의 지문/ 철쭉/ 달빛 수국/ 창꽃/ 추자도 朴씨/ 아버지의 가처분 신청/ 실걸이꽃/ 절벽
제3부
西로 간다/ 굴비상자 안의 사내/ 나무의 뼈/ 이덕구 산전/ 穴風/ 서건도/ 제주 팽나무/ 木碑/ 다랑쉬오름의 낮달/ 산의 주인은/ 먼 그대/ 음각을 새기다/ 우회도로를 빠져나가지 못하는 것들/ 동광리 헛묘 앞에서/ 환청
제4부
花信/ 수평선에 묻다/ 겨울 연못/ 단산 그늘/ 萌芽林/ 달의 난간/ 쑥, 쑥물/ 봄은 또 엉겁결에/ 바위그늘집/ 들꽃들의 사유가 쓸쓸하다/ 3번 여인숙/ 칸나/ 산수국/ 孤內
책 속으로
전갈좌로 태어난 나는, 손톱을 기르고 있습니다 손톱이 자랄수록 내 눈은 자주 손톱 끝에 머무는데요 손을 오므리면 길게 자란 새끼손가락 손톱이 생명선에 닿지요 새끼손가락에 힘을 주면 목젖 근처 칼칼한 갈증이 번개를 만난 것 같고 더욱 세게 누르면 숨이 막혀 오지요 덜컥 겁이 나 손을 펼치면 손바닥에 피어나는 꽃 아, 거기 붉은 꽃 핍니다
꽃은 참, 독충이나 그 무엇엔가 된통 가슴을 찔리고 나서야 피어나는 것 같습니다 더운 김이 피어오르고 버섯구름이 떠다니고 찔레꽃 피었다 지고 깨꽃이 피었다 지고 실핏줄 따라 이어진 생명선에 결국 무우수꽃 마저 차례로 피었다 지고
하루에 한두 번씩 나는 새끼손가락 손톱으로 생명선을 누릅니다 독으로 독을 씻어내는 것이지요 그럴 때마다 붉은 꽃 피는 목숨, 나를 죽인다는 것은 품었던 독을 안으로 돌려주는 것, 마음에 고인 독으로 누구를 겨냥하겠는지요. 꽃들도 뾰족한 칼끝으로 제 몸을 찌르고서야 비로소 꽃이 되지 않나요
―?붉은 꽃? 전문
출판사 서평
새 잠시 앉았던 자리 고사리 돋았다//너는 벌써 저쪽 언덕을 넘어갔는데//어느새 돌아와 고개 숙인다//너의 가느다란 발가락이 닿았던 자리//헛기침인 듯 솟은//가시덤불 속 성자//누구신지요? (‘동광리 헛묘 앞에서’ 전문)
제주 시인 정군칠의 두 번째 시집. “포말져오는 바다에서 ‘바다의 물집’을 읽고 ‘내 안의 물집’을 읽어내는 그의 시안은 제주의 아름다운 풍광 속에 깃든 역사의 내상(內傷)을 어루만지고, 그 내상을 어루만지는 언어들이 ‘날을 세운 모슬포 바람’처럼 절제된 시편들로 일어서고 있다.”(고진하 시인)
“매일 바라보는 수평선은 어릴 때나 지금이나 나에겐 하나의 한계선일 수밖에 없습니다. 수직으로 세워져 앞을 가로막는 벽만이 나아가는 걸음을 되돌리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안으로 들일 수밖에 없는 욕망들이 늘 갈증으로 남아 분출의 한 방법으로 시를 가까이 하게 됐습니다.”
그래서일까. 섬 안 구석구석에 닿아 있는 시선은 따뜻하고 쓸쓸하고 깊다. 곡절 많은 제주의 역사 또한 사유의 근저에 깔려 있어 이번 시집의 들숨과 날숨을 통과하며 흐느낌을 자아내는데, 그것은 차마 고요하고 정밀하여 더욱 곡진하게 다가온다.
시인에게 시집에 수록된 시 중 아끼는 다섯 편의 시를 고르라고 했더니 ‘달의 난간’, ‘바다의 물집’, ‘목비’, ‘붉은 꽃’, ‘들꽃들의 사유가 쓸쓸하다’를 꼽는다. 거듭 읽어보아도 사회적, 역사적 상처를 헤아리며 존재의 깊이를 탐색하는 시안이 빛나는 명편들이다.
더불어 겉넘지 않은 언어들이 스스로 그림자를 만들어내고 결을 이루며 ‘해원상생’의 집을 짓도록 밀고가는 힘이 단단하다. 마지막 시 ‘孤內’에서 “외로운 자들은 제 안의 화를 제 안에 태운다”는 문장에서 그려지듯 언어 안팎에서 철저하게 겸손하고 냉정하고자 했던 시인의 결 또한 이 시집의 미덕이다.
정군칠 시인을 처음 만났을 때 그는 내게 제주도 모슬포 해안 모진 찬바람 속에 피어나던 수선화를 보여주었다. 그때 내 눈엔 시인의 맑은 눈빛과 수선화의 눈빛이 자연스레 포개졌다. 그 포개짐이 그의 목마른 서정이고, 그 포개짐이 제주 바다와 숱한 오름들을 끌어안는 그의 따뜻한 시안(詩眼)이다. 포말져오는 바다에서 ‘바다의 물집’을 읽고 ‘내 안의 물집’을 읽어내는 그의 시안은 제주의 아름다운 풍광 속에 깃든 역사의 내상(內傷)을 어루만지고, 그 내상을 어루만지는 언어들이 ‘날을 세운 모슬포 바람’처럼 절제된 시편들로 일어서고 있다. 오랜 절차탁마를 거친 그의 시가 ‘달이 만든 내 그림자를 보며 달의 뒤편’까지 꿰뚫어보며 일어서기 때문일까. 그가 스스로 판독하는 시의 몸엔 ‘억겁의 시간을 이어온 푸른 피멍’이 도드라지고, 그 사유가 ‘들꽃들의 메마른 사유’만큼이나 쓸쓸하다. 하지만 그 쓸쓸함은 ‘일만 년 전 서쪽을 향해 걸어간 발자국 화석’에서 그것에 겹쳐지는 ‘일만 년 전 노을’의 지층을 탐사해 들어가는 깊이에 닿아 있다. 존재의 깊이를 탐색하는 시인을 일러 영혼의 고고학자라 할 수 있을까. 하여간 우리는 그의 여러 시편에서 그가 발굴해낸 영혼의 진귀한 보석들을 감상하는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
_고진하(시인)
정군칠의 시집을 따라가는 것은 제주의 名詞를 읽는 일이다. 먼 바다 큰 섬에서 일어나는 희노애락 중 어떤 것들은 물집에 가까운 제 이름이 있다. 희노애락에서 명사가 되려면 해원상생굿의 흐느낌을 거쳐야하는데, 그 발원 속에서 건져올린 심금이 따로 정리되어 시집 <물집>이 상재되었다. 따라서 정군칠의 명사들은 모두 우리와 지척지간, 간절한 생이기도 하다.
_송재학(시인)
기본정보
ISBN | 9788992219228 | ||
---|---|---|---|
발행(출시)일자 | 2009년 08월 17일 | ||
쪽수 | 126쪽 | ||
크기 |
127 * 194
mm
|
||
총권수 | 1권 | ||
시리즈명 |
애지시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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