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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정보
저자(글) 하영휘
하영휘
1954년 경상남도 의령에서 태어났다. 부산고등학교와 서강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박사 학위를 받았다. 고서와 고문서를 깊이 연구하기 위해 태동고전연구소에서 3년간 한문을 연수했다(1983~1985). 이후 아단문고에서 17년간(1989~2006) 사장된 고문서의 조사, 발굴, 수집, 정리, 석문, 번역, 해제 등에 주력했다. 현재 가회고문서연구소를 열어(2007),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지원하는 ‘옛 편지 낱말사전’ 편찬을 비롯한 몇몇 고문서 연구 작업을 동학들과 공동 수행 중이다. 그 밖에도 사단법인 우리문화사랑과 태동고전연구소 등에서 고문서 관련 강의를 하고 있으며, 경남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된 데라우치 문고의 고문서 자료를 석문, 번역, 해제한 ‘한마고전총서’를 간행하고 있다.
목차
- 머리말
조병덕은 누구인가?
프롤로그
1장 조병덕의 가계와 학맥 그리고 생애
노론의 숙명을 타고 나다 : 조병덕의 가계와 학맥
슬프고 처량한 선비 : 조병덕의 생애
2장 일상공간으로서의 삼계리와 청석교
호리병 속 아버지 : 삼계리와 조병덕
시장의 아들 : 청석교와 조장희
십리, 아버지와 아들의 거리 : 삼계리와 청석교
3장 생계로서의 도덕경제
가난한 선비의 점잖은 사치 : 조병덕가의 지출
밭 가는 유학자 : 조병덕가의 수입
조경모독, 하나의 이상 : 조병덕의 생존철학
4장 19세기 조선의 정치 그리고 사건들
천만 뜻밖의 변괴 : 교졸돌입사건
도둑묘 사건 : 화산사
아들의 토호질 : 조장희정배
5장 왕래망 사회
바깥 세상 소식 : 조병덕의 정보
편지 심부름꾼 : 전인
더둘어 도를 추구하다 : 조병덕의 왕래망
6장 변괴가 가득한 세상
조병덕의 일생과 편지
주석
참고문헌
찾아보기
출판사 서평
1,700통의 편지로 들여다보는 19세기 조선 양반의 사생활
《양반의 사생활》은 유학자 조병덕의 편지를 통해 19세기 조선을 재발견한 책이다. 저자는 ‘고문서古文書’의 대가 하영휘(가회고문서연구소). 그는 산더미처럼 쌓인 낡은 문서들 속에 파묻혀 살다시피 한다. 몇 해 전까지 아단문고의 연구실장이었던 저자는 그 ‘희귀 사료의 보고寶庫’에서 17년간 옛 편지(간찰), 호적대장, 토지 장부 등의 고문서들을 끄집어내 먼지를 털어내고 정리한 장본인이다.
더불어 저자에게는 ‘국내에서 초서를 해독하는 데 첫손가락에 꼽히는 실력자’라는 타이틀이 하나 더 붙는다. 사실 옛 편지(간찰)의 경우 오늘날의 필기체에 해당하는 초서로 쓰였기 때문에 글자를 해독하지 못하면 연구 자체가 불가능하다. 말 그대로 ‘제 멋대로 쓰인’ 이 글자는 그 모양을 기억하는 것은 둘째 치고, 편지가 쓰인 당시의 법도와 문서 양식 등에 관한 배경지식을 갖춰야만 해석이 가능하다. 여기에는 역사학자라는 저자의 또 다른 이력이 한몫을 한다.
이번에 출간된《양반의 사생활》은 저자의 고문서를 보는 감식안과 해독력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다.
유학자 조병덕이 아들에게 쓴 편지 -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개인의 편지묶음
이 책의 원자료인 ‘조병덕 편지’는 아단문고 소장 고문서다. 저자가 조병덕의 편지를 발견했을 때의 감흥은 그 어떤 국보 혹은 보물이 전해준 것 이상이었다고 한다. 저자는 이 만남을 다음과 같이 술회한다.
이 아버지의 편지가 어떤 경로로 아단문고에 소장되었는지 필자는 모른다. 필자가 처음 아단문고에 갔을 때, 수많은 고서와 고문서가 일부는 정리되어 있었고, 일부는 박스에 담긴 채 쌓여 있었다. 그중 어느 박스엔가 아버지의 편지가 들어 있었다. 애초에 내용을 검토하여 하나씩 체계적으로 수집한 고서와 고문서가 아니기 때문에, 이 자료의 유래를 알 길은 없다. 다른 자료와 함께 뭉텅이로 들어왔을 것이다. 차곡차곡 쌓아놓은 수많은 박스를 풀고 그 속에 있던 고서와 고문서를 정리하다가, 필자는 유려하면서도 단정한 절제미가 있는 글씨의 편지 뭉치들을 발견했다. 봉투도 없고 시간적인 순서도 없이 뒤죽박죽 상태였으나, 보존 상태는 양호했다. 그 편지를 하나하나 정리해 가면서, 필자는 그 글씨의 주인은 조병덕趙秉悳이며 그 편지의 수신자는 조병덕의 아들 조장희趙章熙임을 알게 되었다. 아들 조장희와 소통하던 조병덕의 편지는 150여 년의 세월을 기다려 다시 필자와 소통하게 된 것이다.
평생을 고문서 더미에서 버텨냈기에 만날 수 있는 행운이다. 조병덕 편지는 보관 상태가 깨끗하고 무엇보다도 그 양이 많다. 현재 남아 있는 편지만으로 계산해 봐도, 조병덕은 대략 6일에 한 번씩 아들에게 편지를 썼다.
우리에게《숙재집》이라는 문집으로 알려져 있는 조병덕은 1800년 2월 18일 한성 황화방皇華坊 취현동聚賢洞에서 태어나, 1870년 2월 22일 충청도 남포현藍浦縣 심전면深田面 삼계리三溪里에서 죽었다. 그의 집안은 17, 18세기에 화려한 지위를 누린 노론 화족이었으나, 할아버지로부터 삼대가 문과에 급제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른바 ‘몰락양반’의 신세를 면할 수 없었다. 그의 아버지가 한성에서 삼계리로 이사한 것도 몰락양반으로서는 서울 생활을 버틸 수 없었기 때문이다.
과거에 응시한 적은 있으나 적극적이지 않았던 조병덕은 20대 초부터 스승을 모시고 경학에 열중했다. 그의 스승이었던 노주 오희상, 매산 홍직필 등은 당시 노론의 대표적인 학자였으므로, 조병덕은 노론 학문의 적통을 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가 살았던 삼계리는 은거하며 학문하기 좋은 곳이었지만, 그가 바깥 세계와 완전히 담을 쌓았던 건 아니어서 전국 각지의 사람들과 끊임없이 편지를 주고받았다. 그의 아들 조장희는 삼계리에서 고개 넘어 십여 리 떨어진 청석교靑石橋에 살았다. 아버지는 삼계리를 떠난 적이 거의 없었지만, 아들은 과거를 위해 서울에서 생활한 기간이 꽤 길었다. 아들이 서울에 머물 때도 아버지의 편지는 끊임없이 아들을 찾아갔다. 그리하여 아버지가 보낸 편지 1,700여 통이 아들에게 쌓이고, 또 그것이 고스란히 남아 지금 우리와 만나게 된 것이다.
조선시대 개인의 편지가 이처럼 많이 발굴된 예는 아직 없다고 한다. 문집이 간행된 인물의 경우 극히 일부분이 문집에 수록되어 있을 뿐이다. 최근 각 연구기관에서 간찰을 정리한 자료집을 출판하고 있으나, 양적으로 조병덕 편지에 비교될 만한 것은 없다. 게다가 아버지가 아들에게 이렇게 많은 편지를 보낸 사례는 앞으로도 발견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조선 양반의 이면이 드러나다
이 책에 따르면 조선시대 양반은 공公과 사私의 구분이 매우 엄격했다고 한다. 학문, 벼슬살이, 사회생활 등은 공에 속했고, 가정생활은 사에 속했는데, 공은 훤히 드러나 있었던 반면, 사는 철저히 가려져 있었다. 양반들은 늘 공을 앞세웠기에 평소의 말과 행동은 모두 공에 속하는 것이었다. 게다가 감정까지도 공과 사로 구분하고 있었다. 혹 사적 감정이 드러날 경우 반드시 ‘사적인’이라는 수식어를 앞에 붙였다. 가령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사적으로’ 슬펐고, 아들이 과거에 합격하면 ‘사적으로’ 기뻤다고 말할 정도였다고 한다.
조병덕 편지는 사적 영역에서도 가장 내밀한 부분에 속한다. 그의 편지에서 이따금씩 보이는 ‘남의 눈에 띄게 하지 마라’, ‘지승으로 만들어라.’, ‘태워라’ 등의 당부는 내용이 지극히 사적임을 반증한다.
홍산현감의 아버지가 그 권속을 데리고 하향下鄕했다고 하는데, 이것도 돌아다니는 소문이다. 대저 소란스런 말이 전보다 백배나 더 심하다.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 이 종이는 즉시 태워라. 이만 줄인다.
?1866년 9월 15일 편지
아버지의 주문을 실행에 옮겼다면 우리가 이 편지들을 볼 수 있었을까? 조병덕 편지는 양적 측면뿐 아니라 그 내용 역시 어떠한 자료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없는 것들이다. 일반적으로 양반들의 사적 영역을 보여주는 편지는 태워버렸거나, 문집의 편집과정에 걸러졌을 것이다. 그래서 대개 상투적인 편지만 남은 것일지도 모른다. 반면에 내용이 다양하고 풍부하며, 지극히 사적이라는 점에서 조병덕 편지는 여느 편지들과는 확연히 다르다.
지금까지의 양반 연구가 사적 영역을 고찰할 자료가 부족해 공적 영역에 다룰 수밖에 없었다면, 조병덕 편지는 두고두고 참고하고 인용할 수 있는 자료가 될 것이다. 이 편지가 남아 있지 않다면, 양반가에서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쫓아내는 이야기를 어디서 들으며, 19세기 조선의 유학자가 밤낮 빚 걱정에 시달리는 모습을 어찌 상상이라도 할 수 있었겠냐고 저자는 묻는다. 조병덕 편지의 내용은 금전거래, 빚, 가족 간 갈등, 아들에 대한 실망, 시국에 관한 언급, 질병 등 개인 사생활 중에서도 가장 내밀한 영역에 속해 남에게 알리기 힘든 것들이 대부분이다.
내 이미 돈 ‘전錢’자를 편지에 쓰지 않으려 했는데, 지금 어찌 이 결심을 깨뜨릴 수 있겠느냐. 내 죽을 날이 멀지 않아 다시는 재물을 만들 길도 없고 사방 어디에도 도와주는 사람은 없으니 그저 앉아서 죽음만 기다릴 뿐이다. …… 또 달마다 이자가 붙는 60여 냥 화급전火急錢이 있는데 8월이나 9월 사이에 구하면 난처함을 면할 수 있으나 역시 옴짝달싹할 수 없다. 나는 늘 이 생각 때문에 밤에도 잠을 이루지 못하며, 내간內間의 부채도 산과 같고 바다와 같아서 지금은 손가락 하나 꼼짝하지 못하고 머리카락 하나 꼼짝할 수 없으며, 동서남북의 빚 독촉이 끊이지 않는 것도 실로 하루하루 큰일이니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1859년 7월 9일의 편지 중에서
나는 설사로 오래 고생하여 피골이 상접하여 지탱하기가 어렵다. 사람들이 모두 인삼을 써야 한다고 하지만, 양식 대기도 어려운데 어찌 약을 먹을 생각을 할 여유가 있겠느냐? 그리고 매일 먹는 것은 토장土醬일 뿐인데, 이것이 진실로 안분지족에 합당하나, 그래도 병중에 밥맛이 없어 감내하기 어렵다. 이러다가는 어찌 세상에 오래 살 수 있겠느냐?
?1844년 6월 30일 아버지의 편지 중에서
조선시대 양반의 삶은 겉으로 도덕과 명분을 내세우면서 사생활을 철저하게 감추는 이중성을 지니고 있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조선시대 양반의 모습은 ‘겉으로 내세우는 도덕과 명분’을 통해 형성된 것이다. 반면에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은 ‘드러나지 않는 사생활’이다. 이 책이 갖는 의미는 바로 이 점에 있다고 할 수 있다.
10리, 아버지와 아들의 거리 혹은 19세기 조선과 21세기 우리의 거리
나와 너, 그리고 너희 형제가 모두 남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은 무엇 때문이냐? ‘소 잃고 외양간 고치고, 목마른 후 우물 판다.’고 비록 남의 웃음거리가 될지라도, ‘착해지기를 빠른 바람처럼 하고 허물을 고치기를 사나운 천둥처럼 하며, 분노를 누르기를 산을 무너뜨릴 듯이 하고 욕망을 막기를 죽어 골짜기에 버려지듯 하며, 독서하고 수신하기를 죽음에 이르러도 변치 않는다.’는 말들을 오늘부터 시작하여 한결같이 이마에 붙여라. 늘 이 말들을 생각하여 잠시라도 마음에서 잊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 아버지의 편지 중에서
조병덕이 아들을 걱정하며 쓴 편지들은 마치 바로 옆에서 말을 듣는 듯한 느낌을 준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고, 목마른 후 우물 판다.’와 같이 그는 당시에 회자되던 속담도 간혹 인용하기도 한다. 당시의 상황을 이보다 더 생생하게 그릴 수는 없을 것이다.
조병덕이 사는 삼계리와 아들이 사는 청석교는 10리가량 떨어진 거리였다. 걸어가면 한 시간도 채 걸리지 않는 거리에 살면서 아버지는 아들에게 왜 그토록 많은 편지를 쓴 것일까?
아버지와 아들은 서로 많은 부분에서 달랐다. 아버지가 유학의 관습이 몸에 밴 양반의 전형인 반면, 아들은 악명 높은 토호였다. 이렇게 상반된 성향의 부자를 이어주고 소통을 가능하게 한 것이 바로 편지였다. 거리상 멀지 않지만, 직접 말을 건네기는 힘든 10리의 거리를 편지가 메웠던 것이다. 편지의 사적 내용이 양반의 이면을 드러낸다면, 부자의 모습은 당시 양반의 갈등을 보여주기도 한다.
아버지의 편지는 아들 외에 각지의 지인들에게 전하는 편지들도 많았는데, 그것은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묻고 답하는 구실을 했다. 아들이 아버지와 세상을 이어주는 일종의 창구 역할을 한 셈이다.
조병덕 편지는 일상사日常史의 보고라 할 수 있으며, 19세기 조선 사회의 실상을 다른 어떤 자료보다 생생하게 전해준다. 편지를 읽어가다 보면, 관혼상제, 과거, 가계, 음식, 농사, 생활도구, 교통과 통신, 서적과 문방구, 질병과 처방, 화폐와 고리대 등 조선시대 일상생활의 모든 영역이 우리 앞에 펼쳐진다. 아울러 서얼, 노비, 상놈, 잡류, 첩, 토호, 아전 등 다채로운 인간 군상들의 생생한 모습도 만날 수 있다. 때문에 글월을 접하면 쉽게 놓지 못할 정도로 흥미진진하다.
우리에게 19세기 조선 사회는 10리쯤의 거리에 있다. 시간상 제법 가까운 과거지만, 그 접근은 15세기 혹은 18세기보다 먼 게 사실이다. 이 책은 ‘편지 쓰는 인간’ 조병덕을 통해 19세기 조선 사회와 양반의 내밀한 일상을 손에 잡힐 듯 보여준다. 조병덕의 편지가 지닌 매력은《조선왕조실록》이나 문집 같은 정통적 자료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이 책을 통해 고문서가 가진 역사적 의의뿐 아니라 흔치 않는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기본정보
ISBN | 9788991510784 |
---|---|
발행(출시)일자 | 2008년 09월 08일 |
쪽수 | 359쪽 |
크기 |
152 * 223
mm
|
총권수 | 1권 |
Kl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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