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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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정보
목차
- 1부
지독한 힘
빛무덤
화려한 반란
짝짝이가 하나를 이룬다
의자를 고치다가
뜨거운 암전
티티새의 전설
가시나무
품
순간의 빛
사라진 신발
콩깍지
물을 준다는 것
저물녘
무늬는 제 몸이 없다
2부
상처에 대한 다른 생각
숨은 명령
내가 없는 곳에 내가 서서
힘에는 무게가 없다
꽃 사주
지도
낙지부인의 하소연
벚꽃 잎을 쓸면서
멈춰버린 시계
새 한 마리 날다
정적(靜寂)은 신의 말이다
빗소리는 다 다르다
남광주 국밥집
어떤 엽서
너에게 가는 길에는 이름이 있다
계단을 오르며
3부
낯선 신발과 함께
기울임에 대하여
대립이 세상을 구성한다
번짐에 대하여
관계
거울
옷
우의
도시의 야경
익숙한 미래 속으로
부드러운 힘
결혼(結婚飛行)
어떤 시간
종자들의 지론
나무의 세제곱센티미터
4부
산, 수유
초록, 그 가장 뜨거운 색깔에 대하여
꽃눈의 뿌리는 기억이다
겨울 냇가에서
섬진강
뱀과 언니, 그리고 나
뭐 어때?
말을 빚는다고 하지만
초록 발효
뿌리와 가지
한로(寒露)
웃고 있는 마네킹
점검 중
딸깍 다리
한 마리 물고기가 되다
해설 | 이원론을 넘어서는 여성적 살림과 삶에 대한 사랑 | 오철수 | 298
책 속으로
지독한 힘
뒷산을 오르다 본다
봉분들 위로
올망졸망 피어나는 아기별꽃들,
진통이 시작됐다
구구구구 멧비둘기의 신호로
산파를 찾아 재빠르게 뛰어가는 청설모
자진모리로 감겨드는 허리의 통증으로
딱 죽을 만큼 뒤틀릴 때마다
그녀의 발은
늘 흙투성이 맨발이다
울퉁불퉁 불거진 발등에 걸려
때깔 좋은 햇살이 넘어진다
우지끈, 입술 깨무는 소나무 가지에
둥지를 트는 새들은 바쁘고
자잘한 돌멩이들이 땀처럼 비탈을 구른다
온 산이 들썩인다
낯선 신발과 함께
아무리 찾아봐도 내 신발이 없다
식당 안, 남아 있는 누군가의 신발 한 켤레
가만히 발 집어넣어 보는데
남모를 생이 기록된 이 신발은 도통 낯설다
몇 걸음 걸어보지만
모양도 크기도 다른 시간
자꾸만 벗겨져 헛발을 짚는다
오랫동안 잊고 살던 내 발의
생김새와 버릇이 떠오른다
신발 속에는 그 사람의 굴곡이 있다
서로를 맞춰간 침목 같은 시간으로
동행이 되어준 신발,
발을 꼼지락거려보니
내 발만 놀고 있는 것인데
낯선 신발의 완고함은
내 걸음마저도 바꾸려고 한다
관계
1.
새 한 마리 갈대 위에
앉아 있다, 튕겨오를 수 있을 만큼의
휘어짐을 딛고
잠시 재잘거리다가
푸드득, 날아오른다
새의 무게만큼
굽어지는 생
순간 흔들리다가
탄력으로 다시 팽팽히 서는
갈대, 저 푸른 힘
2.
활짝 핀 선홍색 꽃 위로
날아든 나비 한 마리
여린 꽃잎 가장자리
사알짝 발끝으로 밟는다
상처를 염려하며
조심조심 내딛는
발가락의 힘이 눈부시다
저, 저것 좀 봐
꿀을 빠는 나비의 입을 따라
파르르 떨며 확확 달아오르는
꽃, 꽃잎들!
출판사 서평
안오일 시인의 첫 시집 『화려한 반란』은 관계론적 사유로 충만하다. 그 세계 안에서 모든 것들은 서로 대립하면서 조화롭고 투쟁하면서 생성한다. 그것들은 “공존의 방식”으로 서로 대립하고 있고 “지독한 힘”으로 서로를 “포옹”하고 있다. 이것이 가능한 데는 시인이 가지고 있는 여성적 체험의 깊이와 진정한 공감 그리고 ‘더한 삶’으로 뚫고 나아가는 생명의 힘에 기초한다.
『화려한 반란』에 가득 차 있는 ‘살림의 여성성’은 요즘 시단에서 유행하는 자극적이고 감각적인 미 추구와는 무관하다. 여성성과 삶을 단선적이거나 이원적으로 가두지 않고 생생한 생성의 세계 속에 마음껏 풀어놓는다.
뒷산의 봉분 위에서 피어나려는 아기별꽃과 그 진통을 위해 함께 긴장하는 온갖 생물들(「지독한 힘」), “튕겨오를 수 있을 만큼의 휘어짐”만을 딛고 갈대 위에 앉은 새와 그 “탄력으로 다시 팽팽히 서는 갈대”(「관계」), 물이 새는 낡은 냉장고와 ‘요실금 앓는 어머니’(「화려한 반란」) 등에서 볼 수 있는 사물들은 다들 ‘통증’ 하나씩을 가지고 있지만 그 통증으로 인해 서로를 생(生)하게 한다.
‘지독한 힘’으로 서로를 ‘포옹’하고 있는 생명들, 각자의 통증들로 인해 ‘들썩이는’ 세계
안오일 시인의 첫 시집 『화려한 반란』은 관계론적 사유로 충만하다. 시인이 구축한 세계 안에서 모든 것들은 서로 대립하면서도 조화롭고 투쟁하면서도 새롭게 생성한다. 그것들은 서로 대립하고 있지만 “공존의 방식”으로 화합하며 “지독한 힘”으로 서로를 “포옹”하고 있다. 이것이 가능한 데는 시인이 가지고 있는 여성적 체험의 깊이와 여성으로서 바라보는 세계에 대한 진정한 공감 그리고 ‘더한 삶’으로 뚫고 나가는 생명의 힘 때문이다.
『화려한 반란』에 가득 차 있는 ‘살림의 여성성’은 요즘 시단에서 유행하는 자극적이고 감각적인 미 추구와는 무관하다. 여성성과 삶을 단선적이거나 이원적으로 가두지 않고 생생한 생성의 세계 속에 마음껏 풀어놓는다. 거기에서 온갖 사물들은 함께 뒤엉키고 함께 흘러간다.
뒷산의 봉분 위에서 피어나려는 아기별꽃과 그 진통을 위해 함께 긴장하는 온갖 생물들(「지독한 힘」), “튕겨오를 수 있을 만큼의 휘어짐”만을 딛고 갈대 위에 앉은 새와 그 “탄력으로 다시 팽팽히 서는 갈대”(「관계」), 물이 새는 낡은 냉장고와 ‘요실금 앓는 어머니’(「화려한 반란」) 등에서 볼 수 있는 사물들은 다들 ‘통증’ 하나씩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 통증으로 인해 서로를 생(生)하게 하는 동시에 “크르르르 뜨거운 소리를” 내며 “화려한 반란”을 꿈꾼다.
닦아내도 자꾸만 물 흘리는 그녀
헐거워진 생이 요실금을 앓고 있다
짐짓 모른 체 방치했던 시난고난 푸념들
모종의 반란을 모의하는가
아슬아슬 몸 굴리는 소리
심상치 않다, 자꾸만 엇박자를 내는
그녀의 몸, 긴 터널의 끄트머리에서
슬픔의 온도를 조율하고 있다
뜨겁게 열 받아 속앓이를 하면서도
제 몸 칸칸이 들어찬 열 식구의 투정
적정한 온도로 받아내곤 하던
시간의 통로 어디쯤에서 놓쳐버렸을까
먼 바다 익명으로 떠돌던
등 푸른 고등어의 시간,
연하디연한 분홍빛 수밀도의 시간,
세월도 모르게 찔끔찔끔 새고 있다
입구가 출구임을 알아버린
그녀의 깊은 적요가 크르르르
뜨거운 소리를 낸다, 아직 부끄러운 듯
제 안을 밝혀주는 전등 자꾸 꺼버리는
쉰내 나는 그녀 아랫도리에
반란이 시작되었다
―「화려한 반란」 전문
시인은 물이 새는 낡은 냉장고에서 ‘요실금 앓는 그녀’를 본다. 그녀는 다름 아닌 “열 식구의 투정”을 받아내던 시적 화자의 어머니일 것이다. 그녀는 “등 푸른 고등어의 시간”과 “연하디연한 분홍빛 수밀도의 시간”을 지나 이제 “긴 터널의 끄트머리”까지 다다랐다. 그녀의 “헐거워진 생”은 “자꾸만 엇박자를” 낸다. 그러나 시인은 “입구가 출구임을 알아버린/ 그녀의 깊은 적요가 크르르르/ 뜨거운 소리를 낸다”고 읽는다. “제 안을 밝혀주는 전등 자꾸 꺼버리는/ 쉰내 나는 그녀 아랫도리에/ 반란이 시작되었다”고 가만히 읽어낸다.
이처럼 안오일의 시세계는 타자의 통증을 통해 서로가 소통하고 감응하며 새로운 운동성으로 창조된다. 「지독한 힘」에서 시인은 봄이 충만해지는 과정을 산이 생명을 낳는 ‘진통’으로 묘사한다. 진통이 오고, 산파를 부르러 가고, 몸을 뒤틀고, 입술을 깨물고, 땀을 흘리고, “온 산이 들썩인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화폭에 등장하는 모든 것들이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아기별꽃과 함께 멧비둘기와 청설모, 때깔 좋은 햇살, 소나무 가지, 둥지를 트는 새들, 자잘한 돌멩이들까지 함께 ‘들썩이는’ 것이다.
이것이 안오일의 시세계에 드러나는 강력한 여성적 힘의 원천이다. 그녀의 서정은 생성의 ‘지독한 힘’에 뿌리를 둔다. 그래서 안오일 시인의 서정은 표면적으로 부드럽고 연한 듯하지만 강하고 집요하다. 콩깍지가 “콩알을 담고 있을 때의 집요함”처럼 ‘앙다물었던 표정’(「콩깍지」)이다.
새 한 마리 갈대 위에
앉아 있다, 튕겨오를 수 있을 만큼의
휘어짐을 딛고
잠시 재잘거리다
푸드득, 날아오른다
새의 무게만큼
굽어지는 생
순간 흔들리다가
탄력으로 다시 팽팽히 서는
갈대, 저 푸른 힘
-「관계」 부분
시인이 그려낸 이 눈부신 장면은 또한 관계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이 나눔의 관계는 조심스럽다. 그 속에는 서로에 대한 배려가 있기 때문이다. “튕겨오를 수 있을 만큼”만의 “휘어짐을 딛고” 갈대 위에 내려앉은 새와 “굽어지는 생”이 “탄력으로 다시 팽팽히 서는” 갈대는 대립하지 않는다. 아니 대립을 통해 생성하고 변화한다. ‘새’나 ‘갈대’라는 실체 중심에서 풀려나 관계 중심의 세계관이 열리는 것이다. 그래서 “저 푸른 힘”의 에너지 생성이 가능하다.
이처럼 안오일의 『화려한 반란』은 대립을 이원적으로 보지 않고 이중성의 관계로 보고, 그 관계를 서로가 서로를 살리는 길(道)로 본다. 그 관계를 타고 ‘생명-배려-사랑-건강’이 흐르며 생명 세계 전체가 생생해진다. 그 흐름이 살림의 ‘지독한 힘’이다. 시인의 몸으로 우주의 법이 흐르고, 그것이 관계의 그물망을 느끼고 보존하고 창안한다. 그러기에 죽어 가는 것도 살리는 것이다.
고재종 시인의 말처럼 “담담하면서도 부드러운 목소리로 갖가지 존재나 사람살이에서 세계에 대한 가장 깊은 곳, 곧 진실을 묘파해내는 안오일 시인의 시와 삶에 대한 진정성이 요새 젊은 시인들에겐 보기 드물어서 무척 미덥다.”
[ 추천사 ]
시로 꿈꾸고 시로 상처 입고 시로 깨닫고 시로 다시 일어서는 안오일 시인이 드디어 첫 시집을 냈다. 그녀에게 시는 그 빛이 무덤인 줄 알면서도 생의 가장 찬란한 한 순간을 향해 빛으로 달려드는 메뚜기의 날개다. 그녀에게 시는 백 개의 혀로 사랑하는 이의 백 개의 가시를 뽑는 티티새처럼 형벌을 형벌로 다 살아낸 뒤 비로소 ‘내’가 되어 날아오르는 운명이다. 그 운명의 시로 그녀는 너무 낡아 밑으로 물을 흘리는 냉장고를 보고 그 가족들의 냉장고를 운영했던 어머니의 요실금을 화려한 반란으로 읽는다. 그 시로 상처 난 사과에서 되레 더 진하게 풍기는 향기를 맡으며 ‘내’ 상처도 타자들을 풍성하게 하리라고 생각한다. 의자를 고치다가 연결 부위에 고이게 마련인 피로를 보면서도, 또한 포옹하는 사람의 등을 보고서도 품는 것은 짊어지는 것이라는 애절한 사랑의 전언까지 들려준다. 담담하면서도 부드러운 목소리로 갖가지 존재나 사람살이에서 세계에 대한 가장 깊은 곳, 곧 진실을 묘파해내는 안오일 시인의 시와 삶에 대한 진정성이 요새 젊은 시인들에겐 보기 드물어서 무척 미덥다.
―고재종(시인)
기본정보
ISBN | 9788990492838 | ||
---|---|---|---|
발행(출시)일자 | 2016년 08월 03일 (1쇄 2010년 08월 10일) | ||
쪽수 | 148쪽 | ||
크기 |
123 * 194
* 12
mm
/ 195 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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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권수 | 1권 | ||
시리즈명 |
삶창시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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