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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정보
저자(글) 미셸 파스투로
1957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한국외대 불어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및 박사 학위를 받았다. 프랑스 브장송 대학에서 수학한 후 한국외대와 건국대 등에서 강의했으며, 2003년 '올해의 출판인 특별상'을 수상했다. 2007년 현재 전문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지은 책으로 '강주헌의 영어 번역 테크닉', '현대 불어학 개론', '나는 여성보다 여자가 좋다'등이 있다. 옮긴 책으로 '문명의 붕괴', '촘스키, 세상의 권력을 말하다', '내 인생을 바꾼 스무 살 여행', '천일일화', '가면 - 마음을 읽는 괴물, 헤라클레스 바르푸스의 복수극', '부사들', '150장의 명화로 읽는 그림의 역사' 등이 있다.
목차
- 1장 줄무늬 옷을 입은 악마/19
가르멜 수도회의 저주받은 줄무늬망토/21
줄무늬와의 전쟁/28
색과 의복의 질서를 파괴한 무늬/34
다양함은 죄악이다/41
배신자에게 주어진 가로줄무늬 방패/50
2장 귀족적인 세로줄무늬와 서민적인 가로줄무늬/61
악마의 옷에서 하인들의옷으로/63
하인들의 옷에서 낭만적인 옷으로/72
줄무늬에 담긴 혁명의 이데올로기/81
창살과 죄수복의 상관관계/90
3장 수치의 상징에서 젊음과 건강의 상징으로/101
줄무늬 잠옷을 입어야 편히 잠들 수 있는 이유/103
해변가의 줄무늬 열풍/111
평범함에서 일탈하기 위한 변장/120
줄무늬는 위험의 경고/128
얼룩말은 검은 줄을 가진 흰말일까 흰줄을 가진 검은말일까/136
출판사 서평
⊙ 개요
이 책의 저자인 미셸 파스투로는 중세 문장학의 대가로 이미지의 역사와 색의 역사 연구에 몰두하고 있는 이 분야의 세계적인 전문가이다. 이미 《블루, 색의 역사 : 성모 마리아에서 리바이스까지》를 통해 국내 독자들에게 알려진 저자는 이번에는 줄무늬의 역사를 다양한 역사적 사실과 풍부한 인문 지식을 바탕으로 재미있게 소개하고 있다.
줄무늬는 인간이 만든 무늬이다. 자연에서는 줄무늬가 흔치 않다. 줄무늬는 바탕과 무늬를 구별할 수가 없다. 또한 바탕이 되는 색과 그 위에 덧칠해진 색이 무엇인지도 구분할 수 없다. 자연적이지 않은 사람이 만든 무늬, 사람을 혼동시키는 모호함, 이런 것들 때문에 중세 유럽에서는 줄무늬를 악마의 무늬로 보았다. 그래서 줄무늬는 오랫동안 배척과 위반을 뜻하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창녀, 망나니, 배신자, 이단자, 어릿광대, 하인 등 사회의 아웃사이더를 대표하는 무늬였다. 이런 의미는 현대에까지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아웃사이더를 뜻하는 범위는 많이 달라졌다. 사회에서 지탄받아야 하는 무리가 아니라 보수적인 기존 질서에 저항하는 젊은이나 일상의 질서를 벗어난 휴가철의 해변가를 대표하는 무늬, 사회의 보호를 필요로하는 어린이를 상징하는 무늬가 되었다.
이 책 《악마의 무늬, 스트라이프》에서는 중세의 악마적 이미지에서 현대 사회가 지향하는 중요한 가치 가운데 하나인 역동성과 젊음을 상징하기까지 줄무늬의 의미 변화를 통해 인간들의 인식의 변화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같은 줄무늬이지만 은행가가 입은 옷의 줄무늬와 악당이 입은 옷의 줄무늬는 전혀 다른 인상과 의미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또한 횡단보도의 줄무늬나 유치장 창살의 줄무늬, 수영복의 줄무늬도 각각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 책은 줄무늬가 각 시대와 장소에 따라 어떤 의미를 가지고 어떤 용도로 쓰였는지를 흥미진진하게 풀어간다.
⊙ 주요 내용
1. 줄무늬 옷을 입은 악마(13~16세기)
13세기 중반 십자군 원정에 나갔던 루이 왕을 따라 파리에 온 가르멜회 수도자들은 파리 시민들의 냉대를 받았다. 다른 수도회처럼 부패하지도 않았고, 권력을 휘두르지도 않았지만 그들은 경멸과 비난을 한몸에 받았다. 그 이유는 바로 그들이 줄무늬 망토를 입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중세 때 줄무늬는 소위 악마의 무늬로 인식되었다.
어느 색이 바탕이고 어느 색이 그 위에 덧칠해진 줄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 줄무늬의 모호함이 중세사람들에게는 악마의 무늬로 받아들여진 것이다. 유럽의 중세시대에는 다양한 것은 불순하고 공격적이며, 비도덕적이고 기만적인 것으로 취급되었다. 따라서 다양함은 죄악이었다. 이러한 인식은 동물에게도 적용되어 줄무늬를 가진 동물은 인간에게 두려움을 주는 잔인하고 악의 가득한 동물로 취급되었다. 심지어 얼룩말까지도. 18세기 프랑스를 떠들썩하게 한 '제보당의 야수' 사건에서도 사람들이 목격했다는 야수는 어김없이 줄무늬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중세 때 줄무늬 옷은 창녀나 곡예사, 어릿광대, 망나니 또는 이단자들이 입는 옷이었다.
이런 경향은 중세의 그림에서도 잘 드러난다. 중세의 그림을 보면 줄무늬를 의당 입어야 하는 집단 외에도 성자 요셉과 같은 인물에게도 줄무늬 옷을 자주 입혔다. 요셉에게 입혀진 줄무늬 옷은 표면적으로는 경멸의 의미를, 더 깊이 들어가면 이중성의 의미를 담고 있었다. 요셉은 성모만큼 신성시된 인물도 아니면서 평범한 인물도 아니고, 아버지가 아닌 아버지였으며, 반드시 필요하면서도 성가신 인물이었다. 한마디로 규정하기 힘든 인물이면서 상반된 면을 지니고 있는 요셉이란 인물은 15세기에 줄무늬가 상징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담은 인물이었다.
중세 유럽에서 각 가문이 사용한 문장(紋章)에도 줄무늬가 이용되었다. 당시 유럽에서는 실제하는 사람이 아니라 문학 작품 속의 인물에게도 문장을 부여했다. 당연히 줄무늬 문장은 배신한 기사, 왕위를 찬탈한 제후들, 잔인하고 부정직하며 부도덕한 인물들에게 주어졌다. 그런데 이 줄무늬가 실제 가문의 문장으로도 많이 사용되었다는 점이 눈에 띈다. 당시 통용되던 줄무늬의 이미지를 무시하고 자신의 문장으로 과감히 채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2. 귀족적인 세로줄무늬와 서민적인 가로줄무늬(16~19세기)
중세 말과 근대 초기에 줄무늬 옷은 악마의 옷에서 하인들의 옷으로 변해갔다. 하인들은 남녀 구별 없이 줄무늬 옷을 입었다. 특히 아프리카에서 온 노예들에게 줄무늬 옷이 많이 입혀졌는데, 흑인의 종속적인 지위를 상징하는 이러한 경향은 그림에도 나타나 그림에서 흑인은 왕이라 할지라도 줄무늬 옷을 입고 있어야 했다. 오늘날 만화에 등장하는 하인이나 호텔보이 등이 줄무늬 옷을 입은 모습으로 그려지는 것은 이러한 영향 때문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하인들만 줄무늬를 독차지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낭만주의 시대가 되면서 줄무늬는 낭만의 무늬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중세의 줄무늬가 가지고 있던 경멸의 의미가 어느 정도 퇴색되면서 줄무늬는 서서히 사람들의 사랑을 받기 시작했다. 귀족들은 새롭게 가로줄무늬가 아닌 세로줄무늬를 택하면서 기존의 줄무늬가 가지고 있던 의미에서 비껴날 수 있었다.
줄무늬가 경멸의 의미에서 벗어나 완전히 새로운 의미로 떠오른 것은 프랑스 혁명에 줄무늬가 광범위하게 사용되면서부터였다. 프랑스 혁명기에 줄무늬는 혁명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이때 사람들은 옷, 휘장, 표장, 각종 상징물에 줄무늬를 사용함으로써 자신들의 혁명 의지를 내비쳤다. 한걸음 더 나아가 줄무늬는 프랑스 국기의 무늬로 채택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오랫동안 내려온 줄무늬의 의미가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니었다. 줄무늬는 죄수복에도 쓰였던 것이다. 죄수복의 가로줄무늬와 감옥 창살의 세로줄무늬는 교차되면서 죄수를 외부 세계와 격리시키는 그물조직을 만들어내어 자유를 빼앗았다. 장애물로 쓰인 이러한 줄무늬의 의미는 오늘날에도 이어져 출입금지선, 국경선 등에 쓰인다. 그렇지만 이런 의미에 보호라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세상으로부터 격리되어 악마의 유혹에 가장 잘 노출될 만한 사람에게 보호의 의미로 줄무늬 옷이 입혀진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
3. 수치의 상징에서 젊음과 건강의 상징으로(19~20세기)
오랫동안 사람들에게 수치의 상징으로 인식되었던 어둡고 긴 세월을 지나 현대에 들어서면서 줄무늬는 젊음과 건강을 상징하는 무늬로 바뀌어갔다. 사람들의 색에 대한 인식이 변하면서 속옷으로 흰색, 자연색만을 고집하던 것이 점점 유색에 호기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러나 짙은 색을 바로 몸에 걸치는 것이 꺼림칙했던 사람들은 그 중간 단계로 줄무늬를 선택했다. 줄무늬는 바탕의 흰색을 더 돋보이게 하면서 위생을 상징하는 무늬로 잠옷, 욕실, 병실, 의약품 포장 등에 널리 애용되었다. 한편 뱃사람들로부터 시작된 바닷가의 줄무늬는 해수욕과 해변에서의 레저가 대중화되면서 바닷가 곳곳으로 퍼졌다. 수영복, 가운, 파라솔, 공 등에 사용된 줄무늬는 위생의 개념과 더불어 젊음과 건강, 즐거움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줄무늬의 큰 수요층 가운데 하나는 어린이들이다. 어린이들이 즐겨입는 줄무늬 옷에는 위에서 이야기한 위생의 의미가 내포되었을 수도 있지만 사회적 관점에서 살펴보면 훨씬 재미있는 줄무늬와 어린이의 관계를 살펴볼 수가 있다. 오랜 세월 줄무늬는 어릿광대의 상징이기도 했다. 따라서 줄무늬는 놀이와 관련이 있다. 즐거움을 주고 웃음을 주는 역할을 하는 무늬가 어린아이와 연결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어린아이의 줄무늬는 바로 건강과 평화, 즐거움과 역동성을 동시에 상징한다. 이러한 의미는 오늘날 스포츠 용품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운동 선수는 어떤 의미에서는 대중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존재이다. 운동선수들이 즐겨 착용하는 스포츠 용품의 다양한 줄무늬도 바로 이런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현대의 줄무늬는 이와 같이 긍정적인 의미로 해석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중세부터 내려온 부정적인 이미지를 이어가기도 한다. 영화나 만화 등에서 줄무늬 옷을 입은 사람은 대개 악당이나 마피아 등의 위험한 인물이다. 한걸음 더 나아가 줄무늬는 출입금지선, 횡단보도, 정지선 등 위험을 경고하는 의미로도 사용된다. 줄무늬는 피카소와 같은 추상예술가에게 아주 매력적인 무늬였으며, 음악과도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음악이 인간과 시간 사이의 질서를 조율하는 것이라면, 줄무늬는 인간과 공간 사이의 질서를 구축한다. 이때의 공간은 기하학적이며 사회학적인 공간이다. 줄무늬는 이제 인간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매력적인 것으로 변했다. 왜? 줄무늬는 자연의 기호가 아니라 문화에 의해 만들어진 예외적인 기호이기 때문이다.
본문 소개
중세의 줄무늬는 무질서와 범법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근대 이후 줄무늬는 점차 질서를 뜻하는 상징적 기호로 변해갔다. 그러나 줄무늬가 우리 사회를 질서 있게 조직해주는 수단이라 하더라도, 줄무늬는 지나치게 엄격하거나 지나치게 제한된 조직에는 어울리지 않는 듯하다. 줄무늬는 어떤 기준 아래에서 역할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 자체로 하나의 기준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줄무늬는 구체적인 것이면서도 추상적인 것이다. 예를 들어 설명해보자. 줄무늬 천은 더 큰 줄무늬 천의 일부가 될 수 있고, 이런 관계는 무한히 계속될 수 있다. 요컨대 줄무늬의 기호학적 세계는 무한하다.
따라서 우리는 이 책에서 줄무늬에 얽힌 기호학적 의미 이외에 사회의 역사에 대해서도 살펴볼 것이다. 실제로 줄무늬의 문제는 한 사회에서 시각적인 면과 사회학적인 면의 관계에 대한 흥미 있는 연구가 될 수 있다. 그런데 서양 세계에서 대부분의 사회적 현상들이 무엇보다 시각적인 기호로 줄곧 표현되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시각이 청각이나 촉각보다 사물을 더 명확하게 구분하기 때문일까? '본다'는 것이 '구분한다'는 뜻일까? 물론 이런 관점이 모든 문화권에서 수용되는 것은 아니다. 동물의 세계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또한 경멸의 뜻이 담긴 기호, 즉 버림받은 사람이나 위험한 장소나 도덕적 타락을 뜻하는 기호가 긍정적인 뜻을 내포한 기호보다 항상 더욱 강렬하게, 즉 눈에 띄게 표현되어야 하는 것일까?
(중략) 줄무늬의 역사는 무척이나 역동적으로 변해왔기 때문에 신속하게 움직이지 않으면 그 역사를 뒤쫓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줄무늬는 우리가 쫓아오기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줄무늬의 의미는 지금도 변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해서 변할 것이다. 화가나 사진작가, 영화인 등 예술가들이 줄무늬에 매료되는 것도 바로 이런 역동성 때문이다. 줄무늬는 관련된 모든 것에 생동감을 더해주면서 바람처럼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간다. 중세시대에 인간의 운명을 좌지우지했던 운명의 여신은 거의 언제나 줄무늬 옷을 입은 모습으로 그려졌다. 요즘의 학교 운동장을 둘러보자. 줄무늬 옷을 입은 학생이 다른 학생들보다 훨씬 민첩하게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가?
(서문, 15-17쪽)
1310년 루앙에서는 구두수선인이면서 성직자로 알려진 콜랭 도리쉬에(Colin d'Aurrichier)라는 사내가 결혼을 하고 '줄무늬 옷을 입었다'는 이유로 사형에 처해졌다. 이때부터 성직 사회에서 줄무늬와의 전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특히 붉은색이나 초록색, 노란색처럼 선명한 색들이 번갈아 사용된 얼룩덜룩한 느낌을 자아내는 옷과의 전쟁은 치열했다. 고위 성직자들의 눈에는 이처럼 얼룩덜룩한 옷이 악마 중의 악마로 보였던 까닭에 그들은 법까지 만들어 그런 옷의 착용을 막아보려 했다.
반면 세속에서는 버림받거나 배척받은 사람에게 두 가지 색의 옷이나 줄무늬 옷을 강제로 입혔다. 중세 중기의 독일 관습법과 유명한 《작센슈피겔》(Sachsenspiegel, 1220년부터 1235년에 제정된 작센 지방의 법령집)에서도 사생아와 농노와 죄수는 이런 옷을 입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한 중세 말에 남유럽의 여러 도시에서 줄기차게 제정된 사치단속법과 옷에 관한 법령에서는 창녀, 곡예사, 어릿광대, 망나니에게 줄무늬 옷의 착용을 의무화시키고 있다. 간혹 몸에 걸치는 모든 것을 줄무늬로 입도록 의무화시키기도 했지만 대개의 경우는 어떤 식으로든 줄무늬가 있는 옷이나 액세서리를 몸에 걸치면 충분했다. 따라서 창녀는 목도리나 어깨띠나 치마에, 망나니는 바지나 두건에, 곡예사와 어릿광대는 웃옷이나 모자에 줄무늬를 넣어 신분을 표시했다.
말하자면 이런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선량한 시민들과 혼동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시각적으로 뚜렷이 구분되는 줄무늬를 그들에게 강요했던 것이다. 특히 독일의 여러 도시에서는 문둥이, 불구자, 집시에게도 줄무늬 옷을 입도록 의무화시켰을 뿐 아니라 극히 드문 경우이기는 하지만 유대인을 비롯해서 기독교인이 아닌 모든 사람에게 줄무늬 옷을 입도록 의무화시킨 도시도 있었다.
(1장. 줄무늬 옷을 입은 악마, 31-32쪽)
이데올로기의 상징물이 옷과 결부되면서 옷이 혁명이념의 선전수단이 되었다. 많은 혁명가들이 평등사상을 의복에까지 확대시키려고 똑같은 줄무늬 옷을 입으면서 시민들이 그 뒤를따랐던 것이다. 그래서 프랑스 혁명 이전부터 존재했던 재봉사나 세탁부의 푸른색과 흰색 줄무늬 치마와 앞치마, 직공과 농부의 붉은색과 흰색 줄무늬 바지와 조끼가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제복'처럼 변했다. 따라서 줄무늬 옷을 입는 것은 애국자라는 증거를 보여주는 행위인 동시에, 당시를 휩쓸던 이데올로기의 가치관에 적극적으로 동조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혁명세력은 줄무늬의 형태와 구조 그리고 색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했다. 예컨대 머리모양과 의상에서 앙시앵 레짐 시대의 인물과 다름 없었던 로베스피에르는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기 전부터 줄무늬 연미복을 착용한 것으로 유명했다. 그러나 1792년 국민공회가 구성된 뒤부터 그의 연미복은 외형상으로 어떤 변화도 보이지 않았지만 혁명의 상징물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따라서 모든 면에서 혁명의 시기는 줄무늬의 역사에서 중대한 위치를 차지한다. 줄무늬가 사회의 전 구성원에게 확대되었을 뿐 아니라 다양한 형태와 구조로 발전한 시기였기 때문이다. (중략) 3색, 4색, 심지어 5색의 줄무늬 옷감이나 옷이 등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일정한 순서대로 색이 교체된다는 줄무늬의 기본 원칙은 변하지 않았다.
(중략) 무엇보다 청색, 백색, 적색의 3색 깃발이 자유와 독립을 상징하는 원형(原型)처럼 여겨지면서 그런 개념들을 상징하는 3색의 아류들이 전세계에서 우후죽순처럼 탄생했다. 그 이후에도 특히 유럽의 국가기관들은 줄무늬를 기하학적으로 변형시킨 도안을 그들의 문양으로 채택했다. 동물이나 식물을 모티프로 사용한 과거의 문양에 비해서 제작하기가 훨씬 쉬웠기 때문에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변화였다. 군부(軍部)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러나 줄무늬를 기본으로 한 휘장과 문양이 국가와 국가기관에서만 사용된 것은 아니었다. 줄무늬는 마침내 개인 사업체와 사설기관 그리고 스포츠 분야까지 확대되었다. 이처럼 프랑스 혁명을 기폭제로 줄무늬는 사회의 거의 모든 분야에서 가장 즐겨 사용하는 문양이 되었다.
(2장. 귀족적인 세로줄무늬와 서민적인 가로줄무늬, 84-87쪽)
서구문화가 오랫동안 줄무늬라는 개념을 장애, 금지, 징계라는 개념과 연계시켜온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인 듯하다. '줄을 긋는다'는 것은 '제외한다'는 뜻이었다. 따라서 줄무늬 옷을 입은 사람은 사회에서 배척받은 사람을 뜻했다. 그러나 이런 제외가 때때로 권리와 자유의 박탈이 아니라 보호라는 뜻으로 사용되지 못할 이유는 없었다. 중세 사회가 미치광이와 비정상적인 사람에게 입혔던 줄무늬 옷은 경멸적인 뜻인 담긴 기호였고 배척을 뜻하는 기호임에 틀림없었다. 그러나 다른 각도에서 해석하면 줄무늬는 그들을 악령과 악마의 심부름꾼들에게서 보호하기 위한 장벽, 창살 또는 여과장치였을지도 모른다. 장애물을 나타내는 줄무늬를 이런 식으로 해석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장애물을 나타내는 줄무늬가 부정적인 역할만을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아무런 방어수단이 없어 허약한 존재일 수밖에 없는 미치광이는 악마의 희생양이 되기 쉽다.
이처럼 허약한 존재를 악마에게서 지켜주기 위해서 줄무늬 옷을 일종의 보호막으로 입혀주었던 것이 아닐까? 옷의 줄무늬가 악마의 침입을 막아주는 창살 역할을 해주기를 기대하면서 말이다. 이처럼 옷의 줄무늬가 보호막 역할을 한다는 믿음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파자마가 줄무늬인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우리는 잠이 드는 순간부터 무방비 상태가 된다. 무방비 상태로 잠든 동안에 악령의 침입과 악몽에서 우리를 지켜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줄무늬 파자마를 입는 것이 아닐까? 줄무늬 파자마, 줄무늬 시트, 줄무늬 매트도 악령과 악몽에서 우리를 보호하기 위한 창살이나 울타리가 아닐까? 프로이트와 그의 후계자들은 이런 관계를 한번도 생각하지 않았을까?
(2장. 귀족적인 세로줄무늬와 서민적인 가로줄무늬, 98-99쪽)
2차대전 이후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으면서 사회 전체의 공통분모인 듯한 몇 가지 상수(常數)가 확인된다. 몸에 닿는 모든 옷 그리고 일부 겉옷에서 옅은 색의 가는 줄무늬가 뚜렷이 대조되는 색을 사용한 넓은 줄무늬보다 선호된다는 사실이다. 예컨대 은행가와 악당이 똑같이 줄무늬 셔츠에 줄무늬 양복을 입었지만 엄격히 살펴보면 똑같은 줄무늬가 아니었다. 은행가의 옷은 눈에 띄지 않는 차분한 색의 가는 줄무늬였지만 악당의 옷은 강렬한 색의 넓은 줄무늬였다. 따라서 강렬한 색의 넓은 줄무늬는 천박한 것이라 여겨졌다. 그러나 분위기와 상황에 따라서 천박함을 일부러 드러내보이는 것이 '최후의 멋내기'일 수도 있다.
또한 많은 여성이 줄무늬 옷을 즐겨 입었지만 줄무늬는 여성적이라기보다 남성적인 것이라는 인식이 서서히 자리잡은 듯하다. 따라서 남성적인 줄무늬 장식과 여성적인 꽃이나 별무늬 장식을 대립시키기도 하지만(길쭉한 타원과 동그란 원의 대립에 비유된다), 이런 차이가 조직적인 것은 아니었다. 별이나 꽃무늬로 장식된 속옷을 입은 남자는 거의 없지만(남자가 이런 무늬의 속옷을 입는 것은 사회적 관습의 위반이었다), 여성의 경우는 줄무늬를 경원시하지 않았다. 실제로 많은 여성이 여성다운 멋을 살린 앙증맞은 줄무늬가 있는 팬티와 브래지어를 착용했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의복에 사용된 줄무늬는 점점 다양하고 복잡하게 변해갔다. 하지만 몸에 닿는 속옷의 줄무늬만 변한 것은 아니었다. 다른 종류의 줄무늬가 여기에 더해지면서 줄무늬 코드가 한결 복잡해지면서도 체계화되었다.
(3장. 수치의 상징에서 젊음과 건강의 상징으로, 109-110쪽)
⊙ 추천의 글
이 매력적인 책에서 저자는 그림이나 문헌에서 보여주듯 중세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의복에 있는 줄무늬의 부정적인 의미를 추적하고 있다. 줄무늬 옷은 13세기에는 매춘부, 광대, 하인, 범법자, 강제수용자에게 입히는 수치의 상징이었으나 현대 사회에서는 진보적인 의미로 받아들여지며, 현대 패션에서 경멸이 아니라 선풍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 라이브러리 저널 Library Journal
저자는 줄무늬 특유의 역사적 사실을 탐구하고 있다. 이 책은 우리가 색과 무늬를 감지하는 방법과 같은 문제에 핵심을 두고 있다. 이 재미있고 유익한 책이 행사할 영향력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 뉴욕타임스 북리뷰 New York Times Book Review
줄무늬에 관련된 역사를 읽는 것은 마치 아이가 장난감을 하나하나 분해했다가 다시 조립하면서 가지고 노는 것처럼 마냥 즐거울 것이다. 그것을 어떻게 작동시킬 것인지, 또 부분과 전체는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당신은 이해해야 한다. 그 장난감은 우주의 전체 역사이다. 여기에 더 어떤 권한을 줄 수 있을까?
- 뉴욕타임스 New York Times
중세시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별나고 이상한 무늬의 전기를 다룬 매혹적인 책이다. 그 누가 위험한 의미가 내포된 이 줄무늬에 대해 이처럼 알 수 있을까?
- 에스콰이어 Esquire
이 책의 저자는 연구와 조사를 통해 줄무늬의 긍정적인 의미와 부정적인 의미를 밝히고 있다. 그는 줄무늬에 대한 많은 재미있는 의문에 대답을 하고 있다. 미국과 프랑스 혁명에 수평적 혹은 수직적 컬러가 들어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줄무늬'라는 독어나 불어에서 '줄무늬'라는 단어에 부정적인 의미가 담겨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 북리스트 Booklist
저자 소개
저자 미셸 파스투로(Michel Pastoureau)
파리 고문서학교와 파리 박물관학교에서 수학하였으며 파리 국립도서관 매달진열실 학예관을 지냈다. 1983년부터 파리 고등연구실천학교(E.P.H.E.)에서 서양상징사를 가르치고 있다. 프랑스 문장학(紋章學)협회 부회장이자 파리 사회과학고등연구학교(E.H.E.S.S.) 객원교수이다. 중세 문장학의 대가로 과일과 동물의 역사, 이미지의 역사, 특히 색의 역사 연구에 몰두하고 있으며 이 분야의 세계적인 전문가이다. 저서로는 《문장학 개론》 《염색업자 집의 예수》 《성서와 성인》 《사과의 상징적 역사》 《돼지의 역사와 상징체계 그리고 돼지 요리》《블루, 색의 역사 : 성모 마리아에서 리바이스까지》 등이 있다.
옮긴이 강주헌
한국 외국어대학교 불어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불어학으로 석사 및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프랑스 브장송 대학에서 수학하였다. 현재 전문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번역서로는 《폴 고갱 야만인의 절규》 《외젠 들라크루아 위대한 낭만주의자》 《마네 뒤늦게 핀 꽃》 《드가 춤추는 여인》 《얼굴의 역사》《그림만 보고 알 수 없는 액자 밖 화가 이야기》 《인류 최초의 문명들》 《지식인의 종말》《스탕달의 이탈리아 미술 편력》 등 다수가 있다.
기본정보
ISBN | 9788990429018 | ||
---|---|---|---|
발행(출시)일자 | 2002년 12월 21일 | ||
쪽수 | 178쪽 | ||
크기 |
153 * 224
mm
|
||
총권수 | 1권 | ||
원서명/저자명 | (L')etoffe du diable/미셸 파스투로 |
Kl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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