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의 상상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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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내역/미디어추천
“사회적 격차와 권력의 독과점은 날로 심화되고, 교육의 실패는 돌이킬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으며, 민주주의는 후퇴를 거듭하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인간다운 덕성과 자질을 뿌리로부터 부정하는 물신주의의 일방적인 위세 속에서 걷잡을 수 없이 망가지는 인간관계, 그에 따른 인간성의 황폐화” 등 ‘근대의 어둠’이 짙게 깔린 오늘날, 김종철은 문학이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한 하나의 대답을 내어놓고 있는 듯하다. 그렇다면 이번 문학론집 역시 김종철이 문학으로 ‘회귀’한 증거로 삼기보다는 《녹색평론》의 연속선상에 있는 작업으로 보아야 할 것 같다.
작가정보
1947년 경남 함양에서 태어나, 진주의 남강 변에서 자라던 유년 시절에 6.25전란을 겪었다. 전쟁 이후 마산에서 초·중·고등학교를 다녔다.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대학원에서 영문학을 읽고, 공군사관학교의 교관으로 군복무를 했다. 제대 후 숭전대학교, 성심여자대학, 영남대학교 등에서 교편을 잡았다. 1970~80년대에는 문학평론 활동을 하다가, 1991년에 격월간 《녹색평론》을 창간하여 에콜로지 사상과 운동의 확대를 위한 활동에 열중해왔다. 2004년에 대학의 교직을 그만두고 《녹색평론》의 편집·발간에 전념하면서, 2011년 3월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계기로 한국 최초의 ‘녹색당’ 창립을 위한 활동에 참여하였다. 또, 2004년 이후 10여 년 간 ‘일리치읽기모임’이라는 이름으로 시민자주강좌를 개설·진행했다.
저서에 《시와 역사적 상상력》(1978), 《시적 인간과 생태적 인간》(1999), 《간디의 물레》(1999), 《비판적 상상력을 위하여》(2008), 《땅의 옹호》(2008), 《발언 I, II》(2016) 등이 있고, 더글러스 러미스의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2002), 리 호이나키의 《정의의 길로 비틀거리며 가다》(2007) 등의 책을 우리말로 옮겼다.
목차
- 책머리에
블레이크의 급진적 상상력과 민중문화
디킨스의 민중성과 그 한계
인문적 상상력의 효용―매슈 아놀드의 교양 개념에 대하여
리비스의 비평과 공동체 이념
식민주의와 ‘대지의 저주받은 자들’―프란츠 파농에 대하여
리처드 라이트와 제3세계 문학의 가능성
대지로 회귀하는 문학―미나마타의 작가 이시무레 미치코
주석
색인
책 속으로
급진적 민중문화의 대변자 블레이크
“블레이크는 한 사람의 위대한 시인·예술가일 뿐만 아니라 탁월한 사상가이기도 했다. 그의 시와 산문에 개진된 사회적·정치적·철학적 발언들은 유럽 근대 지성사 전체의 맥락 속에서도 최고 수준의 심오한 사색의 흔적을 드러내고 있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그의 작품들이 삶의 다양한 국면들에 대한 이러저러한 부분적·파편적인 관심이 아니라, 근대 자본주의의 발흥으로 뿌리로부터 뒤틀려온 인간생존의 현실에 관한 가장 근원적이며 포괄적인 지적·도덕적·정신적 성찰에 토대를 둔 것이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성찰은 블레이크 자신의 평생에 걸친 ‘인간해방’에의 강력한 실천적 관심에 결부되어 있었다.”(본문, 22쪽)
“노동이 사람의 신성(神性)을 드러낸다는 블레이크의 생각은 단순한 물리적인 움직임을 두고 하는 말은 아니다. 노동이란 무엇보다 집단적인 협력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그리하여 그 노동이 속박이 아닌 자유 속에서 자발적으로 수행될 때, 모든 창조적 노동은 개인으로 하여금 자신의 이웃과 생생하고 유기적인 조화로운 관계 속으로 들어가게 한다. (…) 그에게 ‘예루살렘’은 무엇보다 우애와 관용의 공동체인 것이다.”(81쪽)
“블레이크는 ‘모든 신성한 것은 인간의 가슴속에 있고’ ‘인간이 없는 곳에 자연은 황폐하다’라고 말했다. 결국, 블레이크가 억압적 정치·사회·신학체제를 거부한 것은 무엇보다 인간과 인간의 창조적 가능성에 대한 그러한 확고한 믿음 때문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온갖 고난을 겪으며 억압적인 체제에 저항하는 과정에서 우애와 협동을 통해서 진정한 인간적 사회에 대한 래디컬한 비전을 보여주고 있었던 산업혁명기의 근로 대중의 움직임과의 긴밀한 연대 속에서 우러나온 믿음이었다.”(83쪽)
디킨스의 민중성과 그 한계
“디킨스는 사회이론가나 정치사상가로서는 뛰어나지도 믿을 만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예술가로서의 디킨스는, 그의 문학적 형상화 속에서 당대의 어떠한 일급 사상가에게도 발견하기 어려운 포괄적이고 근본적인 인식에 도달한 것이다.”(116쪽)
“디킨스는 근원적인 감수성에 있어서는 민중문화의 상상력에 친근했으나 역사적 변혁의 실질적인 주체로서의 민중의 존재를 발견하는 데까지는 나아가지 못했고, 그럼으로써 결국 프티부르주아 작가로서의 궁극적인 한계를 드러내고 말았다. 그 자신이 옹호해마지 않은 ‘순진한’ 삶을 지키려면 무엇보다 현실의 억압적 힘들에 맞선 치열한 투쟁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디킨스에게는 이 점을 깊이 성찰할 수 있는 시력(視力)이 약했던 것으로 보인다.”(136쪽)
매슈 아놀드의 교양 개념
“그리고 무엇보다 부르주아사회의 경제철학인 방임주의, 그리고 그것과 짝을 이루는 개인주의적 습관에 아놀드 자신이 당대의 가장 큰 재난이라고 생각한 무질서의 근원이 있었다. 이렇게 볼 때 교양 개념의 한결 구체적인 사회적 용도는 분명하게 드러난다. 아놀드는 자기 시대의 광범위한 기계에의 신앙, 공리주의, 사회계급들의 배타적인 이익추구, 그에 따른 극심한 갈등과 무질서―이러한 것에 대하여 교양이라는 무기로 대항하려고 한 것이다.”(162~163쪽)
“낭만주의 시인들의 ‘상상력’은 ‘천재’의 개념처럼 배타적인 능력을 암시하는 것으로 생각될 수도 있지만, 본질적으로 그것은 인간 누구나가 지닌 인간다움에의 욕구, 인간적 존엄성에 대한 공감력에 뿌리를 둔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하여 낭만적 상상력이 맞서서 싸우려 한 것은 비인간적인 일체의 것, 즉 기술지배의 산업체제, 상품의 논리, 소외된 노동, 인간의 인간에 의한 착취와 지배, 자연의 파괴 그리고 이러한 것들을 논리적으로 옹호하는 이데올로기였다. 그런 의미에서 ‘상상력’은 어디까지나 민중의 편에 서서, 민중적 삶의 근원적 소박성과 인간다움을 옹호하기 위한 급진적 개념이었다. 이와 대조적으로 아놀드의 ‘교양’ 개념은 무엇보다 혼란스러운 사회질서에 대한 치유책의 의미를 가진 체제수호적 개념이었다고 할 수 있다.”(165쪽)
리비스의 비평과 공동체 이념
“리비스에게 문학비평은 결코 도구적인 방편이 아니다. 물론 그는 언제나 문학이 여하한 형식주의적 미학이 아니라 철저히 ‘삶’을 위해서 존재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하지만 그가 ‘삶’의 의미를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단순한 수단으로 문학이나 비평을 보았다는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그는 문학을 도구나 방편으로 보는 일체의 공리주의적 태도에 대해서 극히 적대적이었다. 즉 그에게 있어서 문학비평은 여러 다양한 인간활동 가운데서 선택할 수 있는 한 가지 활동이라기보다 오늘의 삶의 상황을 지적·정신적으로 가장 깊게 파악하고, 현상을 타개하는 데에 가장 중요한 의미를 갖는,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최고의 활동이었다.”(191쪽)
“리비스의 근본 입장이 정당하게 이해되든 안되든 그의 비평이 좌파 지식인들 사이에서 상당한 호감의 대상이 되어온 것은 사실이다. (…) 그러나 리비스 자신은 대체로 사회주의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지식인들과 그 자신 사이에 존재하는 간극을 늘 의식하고 있었다. 실제로 거기에 대해 직접 언급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해도, 리비스는 일반적으로 개체적 진실에 대한 섬세한 접근을 소홀히 하는 입장에 쉽게 동조할 수 없는 예민한 감수성과 의식의 소유자였다. 하지만 리비스가 보기에 무엇보다 간과하기 어려웠던 것은, 현대세계에서 사회주의의 흐름을 대변하는 맑스주의가 자신과 적대적 관계에 있는 부르주아 문화가치들에 대하여 본질적으로 대안적인 가치를 제시하지도, 선양하지도 못한다는 문제였다.”(192~193쪽)
“지금은 리비스의 생존 시에 비해서도 상황은 극적으로 악화되었다. 무엇보다 리비스의 생존 당시에 비해 압도적으로 악화된 생태적 위기상황을 생각하면, 이제 산업문명이 근본적인 방향전환을 하지 못한다면 파국은 불가피한 것으로 보인다. 리비스가 이런 문제에 대하여 직접적으로 유용한 성찰을 남겨 놓았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미 그의 평론활동의 초기부터 리비스는 산업문명 속의 심각한 인간위기에 주목하였고, 만년에 이르러 한층 절박한 어조로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언급하면서 이미 재앙은 시작되었다고 되풀이해서 말했던 것이다. 어떤 면에서, 비평가로서 또 교육자로서 리비스의 전 생애는 여하히 산업기술체제의 파멸적 힘으로부터 ‘삶의 가치’를 수호할 것인가 하는 데 바쳐졌다고 할 수 있다.”(195쪽)
식민주의와 프란츠 파농
“파농이《대지의 저주받은 자들》전체를 통하여 말한 것은 제3세계가 존재해야 할 방식에 대한 원칙의 천명이었다. 그는 식민주의의 극복이 결과적으로 또 다른 형태의 식민주의로 전락하게 되는 것을 가장 경계하였다. 인간과 휴머니즘에 관해 쉴 새 없이 이야기하면서 세계 도처에서 인간을 말살해온 서구 식민주의의 방식을 제3세계가 모방해서는 안된다고 파농은 역설한다. 그리고 제3세계의 문제는 ‘다른 대륙의 다른 시대의 사람들에 의해 설정되었던’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사이의 선택의 문제도 아니라는 것을 강조했다. 중요한 것은 제3세계가 새로운 사회관계, 새로운 인간의 이념을 독자적으로 발전시키는 것이다.”(262쪽)
리처드 라이트와 제3세계 문학
“라이트는 흑인 자신의 정체성에 눈을 뜬 초기 흑인문학의 전통을 계승하되 초기 흑인문학에 따라다니던 자기방어적 입장을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린 작가라고 할 수 있다. 라이트 이전의 흑인문학이 모두 그런 것이었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초기의 흑인문학은 대체로 백인사회에 대한 도덕적 항변이나 ‘검둥이도 인간이다’라는 식의 발상에 머물거나 흑인 및 아프리카적 가치를 지나치게 강조·미화함으로써 결과적으로는 백인문화에 대한 지적·정서적 종속관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흑인문학의 진정한 독립을 위해서는 (…) 백인문화의 본질적 성격에 대한 검토, 즉 노예제도와 인간 차별을 그 발전의 불가결한 구성요소로 삼아온 미국 및 서구문명의 근본적 존재방식에 대한 철저한 깨달음이 선행되어야 했다. 라이트는 이러한 깨달음을 그의 문학적 노력 속에 명확한 언어로 표현하고, 그것을 그 자신의 이론적 및 실천적 행동의 바탕으로 삼은 아마도 최초의, 그리고 아직까지 가장 중요한 흑인 작가 중의 한 사람으로 평가될 수 있다.”(301~302쪽)
21세기의 새로운 작가, 이시무레 미치코
“엘리트문학이라고 해서 중요하지 않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그것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고 봐야지요. 문제는 이게 시효가 끝났다는 거예요. (…) 이제는 돌이킬 수 없이 고도 산업사회가 된 상황에서 근대 초기의 비판적 지성이 지녔던 문제의식은 어떻게 보면 시대착오적인 것일 수도 있습니다. 현대사의 큰 역설의 하나는 서구화·산업화를 죽을힘을 다해서 성취해낸 순간 그 결과가 바로 수습하기 어려운 재앙이라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엄청난 충격일 수 있는데, 어쩌면 서구에 대한 열등감을 심하게 앓아온 동아시아 사회가 특히 그렇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문학이 제구실을 하자면 이런 역설을 직시해야 합니다. 물론 쉬운 일이 아니죠. 근대문학의 오랜 습성이라는 게 있으니까요. 우리가 문학이라고 생각해왔고 문학이라고 배워왔던 모든 것이, 사실은 근대주의 논리에 충실한 사고방식을 근저에 깔고 있는 것입니다. ‘근대문학의 종언’이라는 테제는 오히려 이런 맥락에서 진지하게 논의될 필요가 있을 거예요. (…) 이런 상황에서 예외적이라고 생각되는 작가가 있습니다. 그게 바로 이시무레 미치코예요. 나쓰메 소세키가 일본 근대의 엘리트문학을
출판사 서평
“어떤 사람들에게는 맑스의 사상이나 그 밖의 다른 사상가·철학자에 대한 학습의 경험이 그들의 세계에 대한 이해와 판단의 기초를 형성하는 힘이 되었다고 한다면, 내 경우에는 내가 지난 30년 남짓 동안 생태주의적 세계관에 의지하여 작업을 해온 것은 젊은 시절의 문학공부를 통해서 자신도 모르게 형성된 일정한 사고습관과 감수성 덕분이었다고 할 수 있다.
블레이크는 산업혁명 초기의 사회적 격변기를 누구보다 예민하게 온몸으로 체험했고, 그 체험에 의거하여 후세의 어떠한 변혁사상가들보다 더 일찍 그러한 시대변화의 심층적 의미를 가장 통렬하게 투시하고 포착했던 시인이자 예술가, 민중사상가였다. 그 점에서 그는 산업문명의 발흥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근대문명의 의미를 천착해온 숱한 급진적 사상가들에게 길을 열어준 선구자였다고도 할 수 있다.
한번 블레이크의 문학에 경도되기 시작한 나는 그 이후에도 그의 정신을 계승하는 것으로 보이는 시인, 작가, 평론가들을 차례로 발견하는 행운을 누릴 수 있었다. 이들은 한마디로 ‘근대’의 어둠에 맞서서 ‘삶-생명’을 근원적으로 옹호하는 일에 일생을 바친 사람들이었다.
그러한 문학을 읽고 생각함으로써 나는 이른바 압축적인 산업화로 인해 온갖 인간적인 비극과 재난을 겪고 있는 한국사회의 문제를 인류사회 전체가 공통적으로 경험해온 곤경의 일부로 보는 사고습관에 다소간 익숙해질 수 있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그와 같은 사고습관이 길러지지 않았더라면 내가 《녹색평론》의 발간작업에 열중하는 일도 없었을 것임은 거의 틀림없다고 할 수 있다.”
― 김종철, 〈책머리에〉 중에서
◆◆◆◆◆◆◆
“근대국가와 자본주의가 성취된 대부분의 서구 선진국에서 문학은 대중문화에 투항하거나, 과민한 자의식만을 표현한다. 거기서 작가와 평론가들은 대학과 출판계에 안주하거나 투신하여 스스로 제도가 됨으로써, 사회적 ‘공감’능력을 잃게 된다. 가라타니 고진은 ‘문학의 종언’이 한국에서도 감지된다면서 “1990년대에 만났던 한국의 문예비평가 모두가 문학에서 손을 떼었다”고 썼지만, 최원식의 말대로 “내가 알기론 김종철을 제외하고 문학을 떠난 비평가는 없다”(<한겨레> 10월 27일치 19면). 하지만 그걸 책잡아 ‘종언’이 주는 문제의식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것은 오만이다. 근 15년 동안 한국 문학이나 문학평론가들은 《녹색평론》을 능가하는 어떤 사회적 의제도 만들지 못했다. 유일하게 문학계를 떠난 그만이 그럴 수 있었다는 사실은, 결국 무엇을 반증하는 것일까?”
― 장정일(소설가), <한겨레> 2007년 11월 10일자
기본정보
ISBN | 9788990274861 |
---|---|
발행(출시)일자 | 2019년 04월 15일 |
쪽수 | 376쪽 |
크기 |
151 * 216
* 27
mm
/ 488 g
|
총권수 | 1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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