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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정보
목차
- 시인의 말
오래된 우물
의치를 하세요 어머니
두만이 아버지
왕버들나무
생명
아름다운 저녁
사리
동지죽
노란 小菊을 베어 문 낮달이 뜨거든
가을은
눈 오는 날
귀 닫고 세상을 보면
꿈꾸기
산책
들국화는 피었는데
세상 아래 서 있는 나는
저녁 밤꽃은 지는데
화탄강에 서면
뒷모습
누에의 방
낡은 잎으로 이야기를 쓴다
밥 때문에 비 맞는다
그해 여름의 사투리 調
장욱진
생의 낮은 기침소리 듣던 날
일탈에 대하여
틈입자
마음
小寒
골목길에서 두부 아줌마를 보았다
먼지도 길이다
추억은 우리 곁에 낯설다
초록 나뭇잎이 흔들릴 때
신발 벗은 하루
고흐를 생각하며
큰고모
기도
둥근 말을 따라가면
운전연습장에서
타 들어가는 저 녹두빛 쇨
화해
홍매화
그리움은 부슬비로 내리고
앵두꽃은 피었네
깨꽃 피는 그곳은
겨운 하루
이른 홍시
찰감나무 집 뒤란엔 웃음이 있다
고향
선암사에서
비비새
나의 시
만연산에 와서-기울어가는 노을을 안고 그날 겨울산에 왔다
사는 일
기도문을 외며
돼지 풍선
파란 떼 한 올 살아
맨드라미꽃
되새 떼 훨훨
내가 무엇인데
임실 아짐
지상에서의 한 철
재만이 아재
에스더가 보고 싶다
기원
감목리
대자리를 펴면서
빨래
깨꽃 피는 고향은 살아 있다
詩는 내 뒷등을 쳐주었다
폐차장에서
유배지에서 온 편지에 답장을
쓰고 싶었던 시간
중복날
해설: '기억'을 통한 '시적인 것'의 신생-유성호
출판사 서평
시적 전언의 근간, 남도 땅의 “사투리 調”- 중년 화자의 인생론적 성찰의 목소리
함진원 시인의 시적 발상과 표현의 진원지는 그가 나고 자란 “알싸한 꽃향기 전해오는 남도 끝자락” 땅과 거기서 대부분의 시간을 나누어가진 사람들에 대한 남다른 경험이다.
“올해도 울 엄니 울 밑에다가 봉선화 씨앗을 한 주먹도 넘게 뿌리셨는디”, “앵두꽃 피어부렀네”, “지집년이 어디 하나뿐이간디 ……워째서 저렇게 사삭을 떨고” …….
시인은 생활의 실감이 얹혀 있는 언어 형식인 남도 “사투리 調”를 구사해, 힘겨운 시간을 함께 지나온 자신과 가족들,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재현하고 있다. 여기서 “사투리 調”란 표준어 권력이 지배하는 언어 지형에서 변방으로 밀려난 방언을 의미하지 않는다. 함진원 시인의 “사투리 調”는 지방성(혹은 변방성)과 국지성의 틀을 뛰어넘어 생활의 구체성과 인간관계의 직접성을 담는 표현 방식이다. 삶의 풍부한 세목을 드러내는 데는, 또 기억과 친밀감을 공유하는 데는 매끄럽게 정제된 ‘표준어’가 아니라 자연발생적으로 터져 나와 유통되고 있는 “사투리 調”가 더 적합한 것이다. 이는 곧 언어 형식이 시적 전언(傳言)의 근간을 이루는 사례라 할 수 있다.
시인의 “사투리 調”는 그가 나고 자란 고향땅이 품고 있는 여러 고통의 형상들과 그 시간들을 온몸으로 통과해 온 중년 화자의 인생론적 성찰의 목소리기도하다. 그 목소리는 때로는 아름답고, 때로는 처연하게, 우리 기억의 원형들을 자극하면서 살갑게 다가온다.
“풍랑이 일상을 덮”친 삶의 자잘한 문양(紋樣)들- 혹독한 가난과 상처의 서사
시인은 자신의 삶과 그 주변에 엄청난 무게로 주어졌던 비극성의 흔적들을 자신의 넉넉한 품으로 거두어내고 있다. 그 흔적들은 시인의 성장사와 고스란히 겹쳐 있기도 하고, 또 그가 남도 땅에서 관찰해온 사람들의 생의 형식 속에 각인되어 있기도 하다. 함진원 시편의 미덕은 가족사든 이웃의 이야기든 간에 시인이 강렬한 애착을 가지고 그 이야기의 뿌리까지 거두어들이고 있다는 데 있다.
시인이 애정 있게 관찰하고 시로 재현해 낸 인물들은 아주 다양하지만, 그들의 삶은 하나같이 “풍랑이 일상을 덮”쳐 버려 가난하고 고단하다.
시인은 “우리집 토방에 걸터앉아 버릇 같은 쓴 소주 한 잔” 걸치며 “파고다 담배 연기” “피워 올려주시던 ‘아버지’, “도립병원에도 한 번 가보시지 못하고, 꽃물 든 각혈 너머로 눈물 같은 햅쌀밥 한 그릇도 미처 비우지 못하고 그해 여름의 뒤란을 끝내 떠나가”신 ‘어머’니, “불기 없는 방 우두커니 까지칩 짓다가 가슴에 피 줄렁줄렁” “지아비 기다리는” ‘큰고모’ 등 자신의 피붙이들의 삶에 얽힌 서사를 일상의 자잘한 문양으로 풀어낸다.
그러나 시인의 애정은 여기서 머무르지 않고 타인으로 좀 더 확대된다. 시인은 “천태 아짐 쓰고 남긴 농약병”을 콜라병인 줄 알고 “목구멍 칼칼하도록 들이켜” 죽어 “무덤에는 여지껏 떼가 살지 않”는 ‘천태 아저씨’, 자식 “꼭 닮은 붉은 앵두” 보며 “봄에 취한 두만이 아버지”, “돌림병으로 아들을 다 잃어버리고 가는귀까지 먹었던 북실이 아버지”, “제 각시 매달 벌어 보내오는 마음 함부로 쓸 수 없어 차곡차곡 쌓아두고 있는” ‘재만이 아재’, “언제 잠자고 애기를 낳았는지 한 세상 내달려 온” ‘임실 아짐’ 등 제 주변 삶의 비극성의 흔적들까지 제 품으로 넉넉히 거두어내고 있다.
시인은 안간힘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삶 속에서도 생의 근원적 형식을 이루는 삶의 지혜를 발견하고자 한다. 그를 위해 시인은 커다란 틀보다 잔잔한 일상사에 더 주목한다. 삶의 지혜는 큰 목소리가 아니라 “생의 낮은 기침소리”를 들게 될 때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기억’을 통한 시적인 것의 ‘신생’- “인적 드문 숲길은 시작되었네”
‘기억’이란 ‘생활체(사람이나 동물)가 경험한 것이 어떤 형태로 간직되었다가 나중에 재생 또는 재인(再認), 재구성되어 나타나는 현상’이다
기억이란 그 생활체가 발견하기 전까지는 그저 “인적 드문 숲길”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숲길은 내가 지나온 길이기에 “차마 저무는 풍경이라 말”할 수는 없다.
시인의 지나온 시간에 대한 기억은, 어느 부분에서는 아름답고 신비롭게 가다듬어져 있지만, 그와는 달리 혹독한 가난과 상처의 서사를 일체의 과장 없이 사실적으로 재현하고 있기도 하다. 따라서 시인에게 기억의 힘은, 지난 시간에 대한 미화보다는 혹독했던 고통과 상처를 추스르고 견디는 데서 완성되고 있다. 그렇다면 시인의 “인적 드문 숲길”은 끝나는 길이 아니라, “버거운 이파리 버리지 말라고 툭툭 어깨를 두드려주”며 “한 풍경이 다시 살아나길 원”하는 숲길이다. 이제 시인의 “인적 드문 숲길은 시작되었네”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그의 시편이 보여주는 한결같은 특징은, 고백적 어조가 갖는 직접성을 통해 구체적인 사물과의 유추적 관련성에 의한 서정적 환기력을 조성하고 있다는 점이다. 결국 그와 같은 방법이 시인에게는 ‘시적인 것’의 신생을 위해 불가피한 고통의 작업이었던 셈이고, 시인은 그 고통의 기억을 통해서만 ‘시적인 것’을 신생시킨 것이다.
“푸른 언어를 찾아가는 황소걸음”을 걷는 함진원 시인
시인이 지나온 시간에 대한 기억들 속에는 유독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노란 小菊’, ‘앵두꽃’, ‘패랭이꽃’, ‘질경이’, ‘쑥부쟁이’, ‘옥잠화’, , ‘며느리밥풀꽃’, ‘봉선화’, ‘개망초꽃’ 등등. 많고많은 꽃들 가운데 시인은 ‘노란 小菊’을 많이 닮았다.
시인은 “살아간다는 것은 삶을 은유하는 것”이라 했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든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을 보내고 나서야 터득하게 되는 삶의 성찰이다. 앞만 보고 달려가는 젊은 시절인 20대, 30대에는 미처 깨닫지 못하는 것이기도 하다. 한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울어대던 소쩍새처럼, 시인의 삶에도 천둥이 치고 무서리가 내렸을 것이다.
시인은 불혹(不惑)의 나이에 “꽃에게 하늘에게 저무는 법 배워야겠다”며 “황소걸음으로 푸른 언어를 찾아 길을 걸어가겠다”고 한다. 하지만 “함박눈이 귀한 손님으로 오는 날 대접할 것 없어 그릇마다 맛난 말들 담아 보냈네” “펑펑 옹글지게 살다 가라고 고봉으로 마음 가득 얹어 보”내겠다는 걸 보면, 함진원 시인의 걸음걸이는 그의 심성만큼이나 푸질 것이다.
1959년 전남 함평에서 태어났으며, 1995년 『무등일보』 신춘문예에 「그해 여름의 사투리 調」가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추천평
함진원의 시를 읽는 동안 고향집 뒷마당의 장독대 풍경이 떠올랐다.
채송화꽃이 피기도 하고 맨드라미꽃이 피었다 지기도 하는 장독대에는 우리네 어머니들이 살뜰히 아꼈던 오지항아리들이 줄지어 서 있기 마련이었다. 투박하고, 거무튀튀한 살빛으로 우두커니 서 있는 항아리들……. 비 오면 비 맞고 바람 불면 바람 쏘이다가 문득 세월이 흐르면 깨어져 다시 흙으로 돌아가는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존재들. 그러나 그 안에 담긴 된장이며 간장이며 고추장들은 우리들 삶의 근저에서 아주 평안한 산처럼, 아주 평안한 노래처럼 머무르지 않았던가. 오래된 그 노래를 묵묵히 부르고 있는 다정한 소릿결이 묵은 장맛으로 살갑게 다가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곽재구(시인)
작품 가운데
올해도 울 엄닌 울 밑에다가
봉숭화 씨앗을 한 주먹도 넘게 뿌리셨는디
집안일 텃밭일 새중간 참이면
울 밑을 자꼬만 쳐다보시는디
웃거름꺼정 놓은 봉숭화 물 좋은 꽃대궁들은
아직 꽃을 틔우지 않았고
멍사도 모르는 쇠비름 명아주 이파랭이들만 잔뜩 푸르렀는디
해질녘, 저문일 마치고 오신 아버지가 우리 집 토방에 걸터앉아 버릇 같은
쓴 소주 한 잔 뒤에 쇠스랑 메고 오셨던 어깨 너머로 그윽하게 피워 올려 주시
던 파고다 담배연기가 나는 무척이나 좋았다
가난한 우리 집 마당에 스무 살 적 어머니의 볼빛으로 피어나던 봉숭화, 그 꽃
을 좋아하셨던 아버지
도립병원에도 한번 가보시지 못하고 꽃물 든 각혈 너머로 눈물 같은 햅쌀밥
한 그릇도 미처 비우지 못하고 그해 여름의 뒤란을 당신은 끝내 떠나가셨다 상
여가 나서는 사립문 울 밑에 아버지의 봉숭화들은 그 여름 말없이 지고
울엄니 애잔한 마음 쓰임과도 같을
오뉴월 폭폭한 땡볕을 묵고 마침내 꽃들은
오지고 환장허도록 무지막지 피어났는디
온 마당이 장해 부렀는디
모녀의 스무 손톱에 꽃물은 또 그렇게 아프게 스며
남정네 자리 빈 그 허한 집의 저녁이 때론 스산할사
청승 끼친 울 엄니 마음 버릇은 애통 터져
늘그막의 그 노친네 올해도 꽃씨 받는디
잘 익은 것들만 툭툭 건들어 잘도 받는디
- 「그해 여름의 사투리 調」 전문
신발 벗은 하루가 저무네
한 풍경이 뒤를 따라가고 있네
땟국물 흐르는 한 세기가 지구 밖으로
저물어가네
모퉁이 돌 베고 푹 고꾸라지네
거대한 우주가 주무시는 소리
오그라진 나뭇가지 열고
몸부림으로 일어서네
살살 일어서고 있네
인적 드문 숲길은 시작되었네
차마 저무는 풍경이라 말하지는 않겠네
새털처럼 가볍게
자존을 일으켜 주고 싶었네
버거운 이파리 버리지 말라고
툭툭 어깨를 두드려주고 싶었네
한 풍경이 다시 살아나길 원했네
신발 벗은 하루가 일어났네
- 「신발 벗은 하루」 전문
기본정보
ISBN | 9788989776345 |
---|---|
발행(출시)일자 | 2003년 06월 05일 |
쪽수 | 130쪽 |
총권수 | 1권 |
Kl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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