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염병의 세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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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내역/미디어추천
- 미디어 추천도서 > 주요일간지소개도서 > 경향신문 > 2011년 8월 3주 선정
저자는 전염병을 인류에게 재앙을 초래하는 돌발적이고 일회적인 우연한 사건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교역망의 확대, 생활환경의 변화, 생태계의 교란, 정치적 및 경제적 상황, 인구동태 등 인간사의 총체적인 측면과 맞물려 있는 중요한 변수로 파악하고 있다. 이를 통해 세계사에 대한 우리의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획기적인 재해석을 시도한다.
작가정보
저자(글) 윌리엄 맥닐
윌리엄 맥닐(William H. McNeill) 1917년 캐나다에서 태어났다. 유년시절 미국으로 이주하여 1934∼1939년에 시카고 대학과 대학원에서 공부했다. 코넬 대학 박사과정에 입학한 후 군에 입대하여 5년 동안 군복무를 하고 복학, 1947년에 박사학위(Ph.D)를 받았다. 이후 40년간(1947~1987) 시카고 대학 역사학과 교수로 재직했으며, 미국역사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1996년에는 유럽 문화와 학문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미국인으로서는 최초로 네덜란드 정부재단에서 수여하는 에라스무스 상을 수상했다. 현재 시카고 대학 역사학과 명예교수이며, 우리 시대의 가장 빼어난 역사가로 평가받고 있다. 20여 권의 저서가 있으며, 그 중에서 우리말로 번역된 책으로는 이 책을 비롯해 이 책의 자매편인 〈전쟁의 세계사〉(The Pursuit of Power)가 있다. 또한 〈세계사〉(A World History)와 〈휴먼 웹〉(The Human Web)이 곧 번역 출간될 예정이다. 옮긴이 김우영 1959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고고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대학원 인류학과와 미국 코넬 대학 대학원 인류학과에서 인류학을 전공했다. 현재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인류학의 거장들〉 〈그람시·문화·인류학〉 〈문화의 숙명〉 〈미라〉 〈고고학 탐정들〉 〈디아스포라의 지식인〉(공역) 〈현대일본의 역사〉 등을 번역했다.
번역 김우영
목차
- 머리말
감사의 말
서론
1. 수렵민으로서의 인류
2. 역사시대로
3. 유라시아 대륙 질병상생지간의 교류: B.C. 500~A.D. 1200년
4. 몽골제국의 발흥과 질병 균형의 격변: 1200~1500년
5. 대양을 뛰어넘은 질병의 교환: 1500~1700년
6. 1700년 이후 의학과 의학조직이 초래한 생태적 영향
부록 - 중국의 전염병 연표(조지프 H. 차 엮음)
지은이 주
옮긴이의 말
찾아보기
책 속으로
● 본문 19~24쪽 이 책을 쓰게 된 동기 약 20년 전에 나는 〈서양의 발흥: 인간공동체의 역사〉(The Rise of the West: A History of the Human Community)를 쓰기 위해 문헌을 조사하다가 우연히 스페인의 멕시코 정복에 관한 자료를 접하게 되었다. 누구나 알고 있듯이 코르테스는 600명도 채 안되는 병력으로 인구가 수백만 명에 달하는 아스테카 제국을 정복했다. 그렇게 적은 숫자로 어떻게 승리할 수 있었을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그때까지 제시된 설명들로는 충분히 납득이 되지 않았다. 처음에는 몬테수마[1480~1520. 아스테카 왕국 최후의 왕]와 그 신하들이 스페인 사람들을 신이라고 믿었을지 몰라도 직접 상대해본 뒤에는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간파했을 것이다. 또 처음 본 말과 화기(火器)는 놀라움과 공포의 대상이었겠지만 무력충돌이 시작된 후에는 스페인군이 사용하는 군마나 총포의 위력이 그다지 대단치 않다는 사실을 곧 알게 되었을 것이다. 멕시코 인디언들 사이에서 협력자들을 찾아내고 이들을 규합해 아스텍인과 싸우도록 유도한 코르테스의 수완도 분명 한몫했겠지만, 그와 내통한 인디언 동맹군 대부분이 스페인 편에 붙은 것은 코르테스의 승산이 충분히 예상된 뒤의 일이었다. 멕시코 정복에 얽힌 이 놀라운 이야기와 이에 못지않게 경이로운 피사로의 잉카 제국 정복기는 더 큰 수수께끼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바다를 건너 신대륙까지 원정할 수 있었던 스페인 사람의 수는 그리 많지 않았으나, 이들은 수적으로 훨씬 우세했던 아메리카 인디언들에게 자신들의 문화를 이식하는 데 성공했다. 유럽 문명이 지닌 매력이나 스페인이 보유한 기술적 우위 같은 요인만으로 원주민들이 오래전부터 고수해온 생활방식이나 신앙을 송두리째 저버리게 한 까닭을 설명하기에는 아무래도 미흡하다. 멕시코와 페루의 전통적인 종교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 이유는 무엇일까? 왜 그들은 아득한 옛날부터 자신들의 땅에 풍요를 안겨주었던 여러 신과 의례를 고수하지 않았을까? 그리스도교 선교사들의 열성적인 전도와 그리스도교 교리나 신앙의 내적 호소력만으로는 당시의 상황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을 것 같다. 물론 선교사들의 입장에서 볼 때 그리스도교 진리의 절대성은 명명백백하기 때문에 수백만의 원주민을 개종시키는 데 성공한 것은 굳이 설명할 필요조차 없었을 것이다. 이런 의문들에 어떻게 답해야 할지 고민하던 나는 코르테스의 정복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어떤 문헌?이것을 어디서 봤는지는 잊어버렸다?에서 저자가 무심결에 내뱉은 듯한 말 한마디로부터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다. 이것을 근거로 삼아 나는 새로운 가설을 세웠는데, 그것에 관해 심사숙고하고 그것이 시사하는 바를 따져보는 과정에서 가설은 점차 개연성과 의미를 확보하게 되었다. 아스텍인들이 코르테스와 그의 부하들을 잉카에서 몰아낸 뒤 넉 달 동안 천연두가 창궐하여, 코르테스에 대한 공격을 주도했던 지휘관을 비롯해 많은 사람이 죽었다. 천연두를 처음 경험한 아스텍인들은 전염병의 공포 앞에 속수무책이었다. 그들은 천연두에 대해 유전적 또는 후천적 면역력이 전혀 없었으므로 질병이 발생한 초기에 인구의 25~30%가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그 질병이 원주민만을 죽이고 스페인인에게는 아무런 피해도 주지 않았다는 사실이 던지는 심리적 파장도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그런 일방적인 현상은 초자연적으로밖에 설명할 수 없었을 것이며, 전투를 벌이는 양자 중 어느 쪽이 신의 은총을 받고 있는지는 너무나 명백했다. 스페인인이 숭배하는 신의 우월성이 유감없이 입증된 마당에 전통적인 원주민의 신들을 중심으로 조직된 종교·사제단·생활양식이 존속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렇다면 원주민들이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이고 스페인의 지배에 순순히 복종하게 된 것은 필연적인 결과라고 볼 수도 있다. 그들은 신이 정복자들의 편에 서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그 후로도 감염성 질병이 유럽이나 아프리카에서 유입되어 폭발적으로 유행할 때마다 그러한 교훈을 재인식하게 되었다. 이처럼 감염성 질병이 원주민에게만 일방적으로 피해를 주었다는 사실은 스페인이 아메리카를 군사적·문화적으로 정복하는 과정이 비교적 순탄했던 이유를 설명해주는 열쇠였다. 그러나 이 가설은 곧 몇 가지 다른 의문을 낳았다. 스페인인은 언제 어떻게 천연두를 경험했기에 신세계에서 전염병의 유행으로 덕을 볼 수 있었을까? 스페인군을 대량 살육할 수 있는 독특한 질병이 아메리카 인디언에게 없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이런 질문에 잠정적으로나마 답하려고 궁리하다 보니, 역사가들이 지금까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역사의 숨겨진 차원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출판사 서평
전염병의 기원 아프리카에서 인류의 조상이 출현한 이후 소규모 수렵공동체를 이루고 생활할 때까지 인류는 주변의 자연환경과 어느 정도 안정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 균형상태에 변화가 생긴것은 인류가 농경을 하고 가축을 기르며 정착생활을 하면서부터다. 농업생산이 늘어나자 당연히 인구도 급격히 증가했다. 늘어난 인구를 바탕으로 더 많은 농경지를 개간하면서 자연환경을 농경에 적합하게 만들고 가축을 사육하자 일부 종의 동식물이 과다 증식하게 되었고, 반면에 종의 다양성은 파괴되었다. 종의 다양성이 파괴된다는 것은 먹이사슬이 단축된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것은 기생생물의 잠재적인 먹이가 인간공동체 내에 밀집하는 사태로 이어졌다. 특히 관개시설의 확충은 미시기생체의 이동을 수월하게 해주었고, 도시의 발달은 인구의 집중을 가속화시켰다. 도시의 인구밀도가 어떤 임계점을 넘어서면서 기생생물에 의한 감염증이 인간을 통해 인간으로 전파되는 그야말로 걷잡을 수 없는 대량감염으로 폭발했다. 인류 역사에 나타난 전염병에 의한 떼죽음은 이렇게 해서 시작되었다. 전염병이 인류 문명에 미친 영향 전염병이 인간에게 고통만 준 것은 아니다. 고대 문명의 형성에도 눈에 보이지 않는 크나큰 영향을 미쳤다. 고대 인도 북서부에서 성장한 힌두 문화는 세력이 막강했음에도 불구하고 인도 동남부의 고온다습한 숲지대 종족을 완전히 정복하지 못하고, 이들을 불가촉천민으로 규정하여 소극적으로 힌두 문화에 동화시키려 했다. 그것은 숲지대 종족의 군사적 저항이 거셌기 때문이 아니라 침입자들이 열대성 전염병에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숲지대 종족은 힌두 문명에 침식당하지 않고 자신의 문화와 전통을 이어갔으며 오늘날 인도 문화의 다양성을 구성하는 한 부분이 되었다. 중국 황허 문명도 초기에는 이와 비슷한 경험을 했다. 황허 문명의 건설자들은 사나운 황허의 물줄기와 싸워 나름대로 성공을 거두면서 화려한 문명을 꽃피웠으나, 진 시황제의 막강한 군사력으로도 양쯔 강 이남으로 진출하지는 못했다. 중국사에서 본격적으로 양쯔 강에 진출하기 시작하는 것은 한대(漢代)가 끝나고 삼국시대가 시작되면서부터다. 사실 농경을 위한 자연조건으로만 보면 황허 유역보다 양쯔 강 이남이 비할 바 없이 유리했으며, 황허와 비교하면 양쯔 강은 그야말로 온순한 강이었다. 한족이 그런 사실을 몰랐을 리는 없다. 더욱이 그들은 충분한 인구와 군사력과 농경기술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한족은 황허의 치수사업에 성공하고 무려 천 년이나 지난 뒤에야 양쯔 강 이남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결국 양쯔 강 이남에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어떤 장벽이 있었다는 것인데, 그것은 다름 아닌 열대성 전염병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북부에는 없는 새로운 전염병에 적응하는 데 그만한 시간이 걸린 셈이다. 한족은 이 장벽을 넘어섬으로써 명실상부한 중국문명을 건설할 수 있었다. 전염병의 전지구적 균질화 지역간 교역과 교통이 발달할수록 전염병의 피해규모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커졌다. 몽골족이 대제국을 건설하면서 동서가 하나로 연결되자 질병의 교환도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해졌다. 1346년 몽골군이 크림 반도의 카파를 포위 공격할 때 몽골군 안에서 페스트가 발생했다. 몽골군은 곧 퇴각했으나 유럽의 진짜 재앙은 이때부터였다. 몽골군을 통해 유럽에 유입된 페스트(흑사병)는 1350년까지 불과 4년 동안 유럽 인구의 거의 3분의 1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그러나 이것도 아메리카 원주민이 겪은 불행에 비하면 약과다. 1521년 스페인의 코르테스는 단 600명의 병사로 인구 수백 만의 아스테카 제국을 정복했다. 이것은 군사력에 의한 정복이 아니었다. 코르테스의 진짜 무기는 전염병이었다. 이후 120년 동안 멕시코와 페루는 유럽인이 지난 4천 년 동안 겪었던 전염병을 순차적으로, 즉 처음에는 천연두를, 그 다음에는 홍역을, 그 다음에는 발진티푸스와 유사한 질병을, 그 다음에는 인풀루엔자와 디프테리아를 경험하면서 인구가 90%나 감소했다. 지역에 따라서는 전멸한 곳도 있었다. 아마존 밀림에는 아프리카의 말라리아와 황열증이 침투하여 오늘날까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이런 엄청난 전염병의 재앙은 인간의 마음과 가치관에도 변화를 가져온다. 페스트의 침입 이후 유럽에는 신비주의가 등장했고 가톨릭에 반기를 드는 종교개혁이 일어났다. 하물며 유럽보다 더한 고통을 겪은 아메리카 원주민이 기존의 제도와 전통, 종교를 모두 버리고 새로운 신앙을 받아들인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이처럼 교역 및 교통의 발달로 인간은 대양을 뛰어넘어 질병을 교환하게 되고, 전 인류가 거의 모든 질병의 패턴을 균질적으로 경험하게 되었다. 신종 전염병이 생기면 항로를 따라 빠르게 전세계로 전파되었다. 매독은 바로 대항해시대의 산물이다. 18세기 이후 의학의 발달이 초래한 생태적 영향 17세기 중반 이후 세계 각지의 문명은 뚜렷하게 생태적 균형을 보이기 시작했다. 일부 지역을 제외하면 더 이상의 인구감소는 없었다. 특히 유럽과 중국은 역사상 유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인구가 크게 증가했다. 인구성장의 가장 큰 원동력은 농업생산성의 향상과 농촌 인구의 영양상태 개선이었다. 여기에는 아메리카 대륙에서 전래된 옥수수와 감자가 크게 한몫했다. 전염병 발생이 감소한 데는 의학의 발달이 기여한 바도 있지만 그보다는 인간의 저항력 이 커진 것이 더 주요했다. 18세기까지만 해도 도시에는 엄청난 인구가 밀집해 있었고 여전히 도시의 사망률은 출생률을 앞질렀다. 다시 말해 농촌에서 도시로 유입되는 인구가 없으면 도시는 존립할 수 없었다. 19세기에 인간에게 가장 큰 위협이 된 전염병은 콜레라였다. 콜레라는 인간에게 공포를 안겨준 동시에 생활환경을 개선하고 공중보건을 더욱 체계화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콜레라가 수인성 전염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뒤 대도시에서는 상하수도 시설을 개편하기 시작했고, 이후 도시의 위생상태는 크게 개선되었다. 그리하여 지구상에 도시가 생겨난 지 약 5천 년이 지난 1900년에 이르러서야 도시는 농촌에서 유입되는 이주민 없이도 인구를 유지 또는 증가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었다. 지난 몇 세기 동안 인류의 문명은 눈부시게 발전해왔으나 그 발전이 생태적 균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혹은 미시 기생생물이 어떻게 반격해 올지 우리는 가늠할 수 없다. 실제로 지금 이 순간에도 예측불허의 신종 감염증들이 우리를 공포에 떨게 만들고 있다. 물론 언젠가는 인간이 사망률에 맞추어 출생률을 조절하여 인구와 자원의 완벽한 균형을 이룰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맥닐은 분명하게 말한다. "가까운 과거에 그랬듯이 적어도 가까운 미래에 인류는 엄청난 생태적 격변을 맞을 것"이라고.
기본정보
ISBN | 9788987608471 | ||
---|---|---|---|
발행(출시)일자 | 2005년 09월 30일 | ||
쪽수 | 392쪽 | ||
크기 |
154 * 226
mm
|
||
총권수 | 1권 | ||
시리즈명 |
히스토리아 문디
|
||
원서명/저자명 | Plagues and peoples/McNeill, William H. |
Kl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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