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의 재미, 선과 색의 자유로움으로 어우러진 환타지 그림책
글자벌레 시리즈 셋째 권, <혼자서도신나벌레는 정말 신났어> 출간!
한 성실한 그림책 작가가 3년간 자신이 개발한 캐릭터에 매달려 씨름하면서 매년 새로운 이야기와 그림을 한권 한권 완성해왔다. 컴퓨터 게임과 만화 등에 빠져 사는 요즈음의 아이들을 그림책이란 조용하고 차분한 이미지의 매체로 가깝게 끌어들인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 작가 권윤덕은 우리말이 가지고 있는 재미와 게임같은 그래픽 놀이 등을 화선지에 동양화 기법으로 옮겨 요즈음 아이들고 함께 노는 새로운 그림책 시리즈 3권을 완간했다. 그 동안 글자를 뜻 모르고 집어삼키는 벌레를 비롯해서 소름끼치는 말들에 겁먹고 사는 벌레 등 다양한 글자벌레 캐릭터를 소개해 온 작가는 이번 책에서는 우리만의 색깔을 표현하는 다양한 말과 그 말에 어울리는 색깔모험을 떠난다.

줄거리
"검푸르접접? 이건 처음 보는 낱말인데?"
혼자서도신나벌레는 친구들이 만들어준 글자구슬을
한입에 날름 먹었어. 그러자 온몸이 썩은 곰팡이처럼
지저분해지는 거야.

책 속에서 글자벌레들이 글자를 모아 낱말을 만들어 먹고산다. 혼자서도신나벌레는 색깔 낱말을 만들어 먹으면 몸 색깔이 변하는 글자벌레이다. '노린재'의 '노'자와 '조랑말'의 '랑'자를 모아 '노랑'을 만들어 먹으면 온 몸이 노란색으로 변하고, '빨·주·노·초·파·남·보'를 차례로 먹으면 온 몸이 무지개 색으로 변한다. 그가 날마다 멋진 색깔을 만들어 먹고 혼자서만 신이 나서 돌아다니니까, 친구들이 그를 골려주려고 꾀를 낸다. 그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혼자서도신나벌레는 신이 나고, 게다가 이제는 친구들과 함께 노는 재미까지 알게 된다. 친구들이 심심해하면 나타나서 재미있는 색깔 낱말을 만들어 먹고 친구들을 즐겁게 한다. 혼자 노는 것도 신나는데, 친구들과 함께 노니 얼마나 더 신날까?

이 책의 특징
첫째, 이 책은 성급하게 규범을 강요하지 않는다.
글자벌레 그림책은 모두 아이들의 버릇이나 습관을 이야기의 소재로 삼았다. 첫째 권의 씹지않고꿀꺽벌레는 음식물을 잘 씹지 않고 꿀꺽 꿀꺽 삼키는 버릇을 가진 아이들을, 둘째 권의 생각만해도깜짝벌레는 깜짝 깜짝 잘 놀라고 겁이 많은 아이들을 빗댄 것이다. 이번의 혼자서도신나벌레는 형제나 자매 없이 혼자서 어른들의 과잉 보호 속에 자라나는 요즘 아이들, 그 가운데 자기 잘난 줄만 알고 남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아이들을 빗댄 것이다.

아이들의 이러한 버릇이나 습관은 언뜻 보아 규범에서 벗어나는 부정적인 것들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그것들을 곧바로 나쁘다고 말하거나 고치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그것들은 각자의 본성과 환경이 어우러져 만들어 낸 아이들마다의 개성이다. 우선 아이들 하나 하나의 개성을 충분히 인정하고, 그런 다음에 그것을 새롭게 개척하고 활용하는 길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의 혼자서도신나벌레는 비록 잘난 체 잘하는 버릇이 있지만 재주와 슬기를 가진 아이이고, 마침내 그 재주와 슬기로 친구와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깨달아 가는 아이이다.

둘째, 이 책은 색깔 낱말을 이야기 전개의 모티프로 삼는다.
글자벌레 그림책은 재미있고 특색 있는 우리말을 이야기 전개의 중요한 모티프로 삼는다. 첫째 권에서는 씹지않고꿀꺽벌레가 '얼근덜근', '시큼털털', '알짝지근'과 같이 맛과 관련된 낱말들을 만들어 먹고, 둘째 권에서는 '근들근들', '달각달각', '떼걱떼걱'과 같이 무서움과 관련된 낱말들이 나와서 생각만해도깜짝벌레를 놀라게 한다. 이번의 셋째 권에서는 혼자서도신나벌레가 친구들과 함께 '누르무레', '거무죽죽', '시푸르퉁퉁', '불그데데', '거무튀튀'와 같이 색깔과 관련된 낱말들을 만들어 먹고 논다.

이 낱말들은 대부분 모음조화의 운율을 갖춘 의성어나 의태어들이다. 그것들은 발음만으로도 아이들에게 재미를 주고, 짧은 글로도 아이들의 머리 속에 풍부하고 다양한 형상을 만들어 낸다. 씹지않고꿀꺽벌레와 아낀다고야금벌레, 생각만해도깜짝벌레와 무서워도꾹꾹벌레, 혼자서도신나벌레와 무얼해도심심벌레 등 의도적으로 조직된 글자벌레 이름들과 함께 이 의성어·의태어를 소리내어 읽다보면, 마치 소리글자에 바탕을 둔 우리말의 성대한 잔치에 참여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셋째, 이 책은 색깔로 이야기를 표현한다.
글자벌레 그림책은 한지에 그린 붓 그림을 기본으로 한다. 여기에 글자벌레들이 사는 책과 책장을 도시의 빌딩이나 대지의 높고 큰 언덕으로 그려내고, 눈에 보이지 않는 글자벌레와 글자구슬을 표현하기 위하여 다양한 표현법을 병행하였다. 첫째 권과 둘째 권은 연필과 볼펜으로 낙서하듯 선을 긋기도 하고, 먹의 번짐과 마른 붓 선을 뒤섞어 가면서 그림을 그렸다. 그리고 이번의 셋째 권은 전통 민화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진한 채색법으로 색깔을 두드러지게 하고, 이를 통해 이야기를 전개해 간다.

이것은 이 셋째 권의 주제가 '색깔'인 점과 통한다. 색깔을 보여주고 색깔로 이야기하기 위하여, 형태는 되도록 단순하게 다듬었다. 화면을 크고 작은 여러 개의 면으로 나누고 색깔을 입혔으며, 색깔의 다양한 배열을 통해 기쁨과 슬픔, 익숙함과 낯설음, 단정함과 어수선함 같은 느낌을 가질 수 있도록 하였다. 전체적으로는 맑고 선명한 원색으로 시작해서 점차 여러 색이 혼합된 중간색으로 옮겨가는데, 이것 역시 색깔이 이야기의 흐름을 일관되게 이끌어 가고 있음을 보이는 것이다.

넷째, 이 책은 컴퓨터 게임이나 만화 등의 요즘 아이들에게 친숙한 표현 기법을 활용한다.
글자벌레 그림책의 다양한 표현방식은 그림 기법 상의 변화에만 한정하지 않는다. 이야기 그림책이면서도 구상적 표현보다는 추상적 표현을 위주로 하고, 심지어는 만화책의 말풍선과 동작을 표시하는 기호, 컴퓨터 게임에서 볼 수 있는 것 같은 게임판들을 활용한다. 한 마디로, 표현 기법에서 퓨전적이다. 이러한 점은 글자벌레라는 가상의 존재와 그들이 사는 가상 공간을 표현하기 위해 어느 정도 불가피한 것이면서, 동시에 요즘 아이들의 기호와 환경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작가의 적극적인 의도를 담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어떤 면에서 글자벌레 그림책은 장난감이나 낙서장과도 같다. 아이들은 부모가 읽어주는 소리를 들으면서, 아니면 혼자 낱말 하나 하나를 읽어 가면서 키득키득 거리고, 마침내 그림 속의 글자벌레들에 동화된다. 그리하여 책에 선을 긋기도 하고 말풍선을 만들기도 하면서 글자벌레 친구들과 어울려 논다. 작가는 어느 곳에서도 그림책이 '책'으로서, 지식과 정보를 전달하는 매체 가운데 특별한 권위를 지닌다고 고집하지 않는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상대적으로 단순하고 소박한 형식을 갖고 있는 책이야말로 여전히 사람들의 상상력을 북돋고 지혜를 자극하는 최고의 매체임을 실증해 보이고 있는 듯하다.